1 건물 자체가 찬란한 공연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세계 최고의 공연이 무대에 오르는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Opera Garnier(프랑스 최고의 오페라 극장으로 건축가의 이름을 따 오페라 가르니에라 부른다)는 그 자체로 찬란한 예술이다. 외관부터 눈부시다. 지붕 중앙에는 하프를 들고 있는 아폴로상이 상징처럼 박혀 있고, 지붕의 양쪽에는 흡사 날개 달린 황제를 연상시키는 황금색 청동 조각상이 고고한 아우라를 풍기며 자리한다. 내부는 더욱 눈부시다. 살아 움직일 듯 섬세한 표정의 대리석 조각상, 거대한 벽화로 가득한 내부 풍경은 과거 나폴레옹 시대로 순간 이동을 한 듯 몽환적이다. 8000kg에 이르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비추는 통로를 지나 공연장 안으로 들어설 때의 느낌은 아직도 선연하다. 붉디붉은 2200여 개의 객석, 그리고 돔 천장을 받치고 있는 섬세한 조각의 황금색 기둥! 그 위압적 ‘공기’는 그곳을 찾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이게 한다. 황제를 위한 별도의 관람석까지 갖춘 이곳은 현재 발레 전용 극장으로 운용되고 있다. 파리 시민이 가장 환호하는 작품은 연말에 선보이는 <호두까기 인형>. 2008년 ‘파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라면 눈 내리는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에서의 발레 공연을 염두에 두시길. 오페라 가르니에 홈페이지 www.operadeparis.fr 글 정성갑 기자 | 사진 협조 프랑스 관광성
2 고귀함과 화려함의 하모니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음악 축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라고.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음악’을 물었다면 훨씬 소박한 답을 했을 것이다. 산해진미를 다 맛본 사람도 죽기 전에는 어머니의 밥상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그러나 ‘음악’이 아닌 ‘음악 축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음악 연회장, 잘츠부르크. 천국의 고귀함과 지옥의 탐욕스러움을 동시에 지닌 묘한 동네로 음악 팬이라면 한 번쯤 꼭 찾아봐야 할 곳이다. 매년 여름에 열리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올해도 7월 26일부터 8월 31일까지 이어진다. 프로그램은 크게 오페라*콘서트*연극 공연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오페라다. 오페라 프로그램의 양적*질적 급성장은 1956년부터 33년간 이어진 카라얀 체제하에 완성됐다. 모차르트 하우스(2006년 개관)와 더불어 잘츠부르크 오페라의 주 무대인 페스티벌 대극장Grosses Festspielhaus(1960년 개관)은 카라얀 시절, 페스티벌의 상업적 팽창을 대변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나 역시 2005년 8월 8일, 이곳에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첫 경험을 치렀다.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 피리>(연출 그레이엄 빅*지휘 리카르도 무티)의 시대 배경은 과거가 아닌 ‘오늘’이었다. 한 예로, 자라스트로 왕의 성은 어둠이 없는 ‘태양의 나라’가 아닌 실버타운으로 설정됐다. 1991년 이후 자라스트로 역으로 다섯 번째 잘츠부르크 무대에 오른 르네 파페 역시 태양의 나라 왕이 아닌, 청렴하고 연륜이 묻어나는 재야 정치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처럼 연출가의 시각에 따라 무대 위의 시대와 장소는 변하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모차르트의 음악! 언제나 그래 왔듯이 새 잡이 파파게노와 그의 연인 파파게나의 신나는 이중창으로 현실 세계는 다시 환상 세계로 변한다. 입 모양만으로 조용히 “파파파파파~” 노래를 따라 부르며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모차르트는 진짜, 진짜, 진짜 천재야!’ 잘츠부르크의 주요 프로그램은 축제가 시작되기 전 일찍이 매진된다. 보고 싶은 공연이 있다면 미리 부지런을 떠는 수밖에 없다. 올해는 죽음만큼 강한 사랑을 테마로 <돈 조반니>, <푸른 수염 영주의 성>, <로미오와 줄리엣>, <오셀로> 등 7편의 오페라가 잘츠부르크 무대에 오른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홈페이지 www.salzburgfestival.at 글 박용완(<월간 객석> 기자) | 사진 협조 오스트리아 관광청
3 러시아의 자부심 마린스키*볼쇼이 발레단
어쩌면 당신은 발레 팬이 아닐지도 모른다. 거식증이라도 걸린 듯 깡마른 젊은 처자들이 우스꽝스럽게도 우산 뒤집어놓은듯한 치마를 입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에 별반 감흥이 없을 수도 있고, 마법에 걸린 백조라든지 왕자 공주 이야기가 태반인 발레의 내러티브가 영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으며, 아니면 이 유럽 태생의 고급 예술이 낯설어 멀게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린스키(흔히 키로프 발레단이라 부른다)와 볼쇼이는 문외한이라도 거부하기 어려운 발레의 진수, 절정의 클래식을 보여준다. 플루트로 연주하는 ‘에델바이스’처럼,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의 기타 선율처럼 고매한 지식 없이도 누구라도 빠져들 수 있어 친숙하면서도 깊은 뿌리가 느껴지는 클래식을 말이다.
이 두 발레단을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이 생각난다. 이어 붙인 듯 긴 팔다리, 칼날로 깎아놓은 듯한 절제된 움직임, 긴 선들이 교차하며 뿜어내는 에너지에, 수십 번도 더 본 <백조의 호수>와 <지젤>을 보면서 마치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넋을 잃고 말았다. 키로프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100여 년 전 안무가 프티파가 초연한 곳답게 군더더기 없는 절정의 짜임새를 자랑했고, 볼쇼이 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는 발레가 여성적인 예술이라는 생각을 한 방에 날릴 만큼 드라마틱하고 강렬한 춤과 에너지로 압도했다. 날 선 칼날처럼 정확하고 날카로운 테크닉을 보여준 주역 무용수들은 물론이고, 한 명의 호흡으로 춤추는 듯 일사불란한 군무의 아름다움도 세계 제일이다. 종종 뉴욕에서 그들이 공연하는 발레 갈라 쇼를 보면, 전막이 아닌 짧은 2인무에서 어떡하면 저렇게 자신만의 스타일과 에너지를 뿜어낼까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춤을 보여준다. 기회가 생긴다면, 이 두 발레단의 갈라 공연보다는 <백조의 호수>나 <지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전막 공연을 꼭 보기를 권한다. 갈라 쇼가 종합 선물 세트처럼 스타들의 테크닉 정점을 확인할 기회이기는 하지만, 2시간을 넘어서는 대형 발레 안에 담긴 발레의 힘을 만끽하려면 단연 전막 발레를 봐야 한다. 자그마한 머리 장식 하나부터 압도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무용수들의 손끝 놀림까지, 전통과 거장의 숨결이 살아 있는 발레를 보는 것은 인생에서 그리 흔치 않은 기회이므로. 마린스키 발레단 홈페이지 www.mariinsky.ru 볼쇼이 발레단 홈페이지 www.bolshoi.org 글 제환정(무용 칼럼니스트) | 사진 협조 중앙일보 문화사업단
4 속속들이 일본, 그러나 세계에서 각광받는 가부키
가부키歌舞伎는 가장 일본다운 대중 예술이라 일컬어진다. 독특한 분장과 화려하고 정교한 의상, 움직임, 연주, 노래, 극 진행, 소재까지 속속들이 ‘일본’이다. 일본에는 도쿄의 가부키자歌舞伎座, 교토 미나미자南座, 오사카 신가부키자 新歌舞伎座 등의 가부키 전용 극장이 있다. 가부키는 이 세 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했는데 도쿄에서는 남성적인 역사물 ‘아라고토荒事’가 발달했고 교토와 오사카에서는 남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와고토和事’ 작품을 주로 상연한다. 규모는 가부키자가 가장 크지만, 교토의 아름다운 전통 유흥가 기온 지역에 있는 미나미자南座는 가부키가 최초로 공연된 곳이라는 점에서 더 매력적이다. 번역가이자 도서출판 시유시 대표인 여상훈은 “가부키는 볼 때마다 아주 재미있습니다. 남성적인 활극 느낌이 강한 <가나데혼주신구라.名手本忠信藏>도 유명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미나미자에서 본 <소네자키신주曾根崎心中>랍니다. 일본인도 꼭 한번 볼만하다고 꼽는 작품이죠. ‘신주’는 사랑을 위한 동반 자살을 일컫는 말로, 소프 오페라보다 강도를 백배쯤 높인 스토리에 가슴이 미어지는 대사로 가득한 작품입니다”라고 가부키를 본 소감을 말했다. <소네자키신주>는 2005년 서울 국립극장에서도 상연했다. 일본의 인간국보 ‘나카무라 간지로中村雁治郞’가 창단한 가부키 극단 ‘지카마쓰자近松座’와 일본 최대 가부키 제작사인 ‘쇼치쿠다이가부키松竹大歌舞伎’가 함께 만든 작품이다. 나카무라 간지로는 18세기의 전설적 가부키 배우 사카타 도주로坂田藤十郞가 200여 년 만에 부활했다고 할 만큼 최고로 추앙받는 배우다. 가부키에서는 작품 이상으로 어떤 배우가 출연하느냐가 중요하다.
가부키를 관람하는 재미에서 ‘마쿠노우치幕の內 벤토’를 빼놓을 수 없다. 관객이 막간에 먹는 도시락으로 알려진 이 도시락은 막 안쪽에서 스태프들이 먹던 도시락에서 유래했다. 검은깨를 뿌린 주먹밥이나 흰밥에 반찬 가짓수가 여타 도시락보다 조금 많은 것이 특징이다. 관광객을 위해 30분짜리 짧은 공연도 하지만 이왕이면 2시간 정도 상연하는 <소네자키신주>를 마쿠노우치 벤토를 먹으며 관람하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관람 태도도 엄숙하지 않다. 함께 환호하고 박수치며 편안하게 볼 수 있다. 미나미자 홈페이지는 따로 없다. 일본 교토부京都付 홈페이지(www.pref.kyoto.jp/visitkyoto/en/theme/others/m_minamiza)에서 미나미자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가부키자 홈페이지 www.kabuki-za.co.jp 글 성현수 기자 | 사진 협조 국립극장
5 먹다 말면 두고두고 후회할 ‘잘 차린 한 상’ 완창 판소리
판소리에는 진솔한 삶이 담겼다. 어려운 상징이나 매끄러운 형식미 없이도 많은 것을 함축한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판소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판소리를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다. 누구나 <춘향가>, <흥보가> 한 대목씩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 앞과 그 뒤가 어떤지 궁금하지 않은가? 다 아는 이야기라고? 그러나 판소리의 재미는 이야기 흐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판소리 사설의 해학 넘치는 말맛은 음식으로 치자면 입에 착착 붙는 ‘감칠맛’이다. ‘종종종’ 발끝으로 달려가는 듯한 자진모리부터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인연처럼 질기게 늘어지는 진양조까지 거침없이 펼쳐지는 장단은 찬 음식, 더운 음식을 제때, 제 온도에 딱딱 맞춰 먹는 것처럼 맛깔스럽다. 이 거나한 한 상을 받을 수 있는데도 겨우 한 입만 먹다니! 정말 아깝다. 그 진짜배기 맛은 잘 차린 한 상 받아놓고 느긋하게 갈비짝도 뜯고, 저냐도 한 점 먹고, 국물도 한술 뜨고, 밥그릇 싹싹 비운 사람만이 안다. 안 먹은 이만 손해다. 판소리 다섯 마당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청춘 남녀의 희롱과 애끓는 사랑, 통쾌한 반전이 있는 <춘향가>. 그중 ‘사랑가’나 ‘쑥대머리’ 같은 대목은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 이야. 어화둥둥 내 사랑~”으로 시작하는 사랑가 중중모리 대목. 좋아하는 이에게 무엇을 줄까 물어대는 풋내기 도령과 이것도 저것도 싫다고 앙탈부리는 꽃다운 처자가 벌이는 사랑의 줄다리기. 듣다 보면 피식 웃음이 나면서 은근한 재미에 쏙 빠져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이어 부르는 완창 판소리는 길다. 짧게는 3시간, 길게는 대여섯 시간 동안 공연한다. 창자唱者에게도 청자聽者에게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볼수록, 들을수록 재미있다. 판소리 관객은 입 딱 봉하고서 겨우 박수만 치지 않는다. 고수도 추임새를 넣지만 관객도 추임새를 넣는다.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절로 “얼쑤!” 하고 신명이 나는 것이다.
이 신명 나는 잔치 ‘한 상’을 오랜 세월 잘 차려온 곳이 국립극장이다. 1985년 국내 최초 완창 판소리 상설 공연을 시작해 올해로 23년째를 맞는다. 그동안 명창 190여 명이 기량을 펼쳤으며 7만여 명의 관객이 이를 관람했다. 작년 6월 공연은 더욱 특별했다. 동초제의 대모, 명창 오정숙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변함없는 기량으로 <춘향가> 완창 공연을 펼쳐 갈채를 받았다. 12월 제야 완창 공연은 판소리계의 스타인 명창 안숙선이 <흥보가>로 많은 관객을 불러 모았다. 조선시대 판소리는 야외 공연이었다. 그에 걸맞게 8월, 한여름 밤 선보이는 심야 완창 판소리 공연은 천장이 밤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하늘극장’ 무대에서 선보여 더욱 운치 있다. 올해도 3월에 시작해 12월 ‘제야 완창’ 공연까지 매월 소리판이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진다. 명창의 완창 판소리, 진수성찬을 놓치면 후회한다. 국립극장 홈페이지 www.ntok.go.kr 글 성현수 기자 | 사진 협조 국립극장
6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인도를 준다 해도 셰익스피어와 바꾸지 않겠다”던 영국인들의 말을 오만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다. 하지만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공연을 본 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항상 새롭게 해석되는 그 대단한 깊이와 넓이라니! 세상에서 단 한 편의 연극만 볼 수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대답은 셰익스피어다. 그것도 셰익스피어가 태어나 눈을 감은 고향 스트랫퍼드어펀에이번Stradford-upon-Avon에서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가 상연하는 것으로 말이다. 한국말로 하는 연극도 지루한데, 영어로 된 연극이라고? 그의 주요 작품이라면 줄거리 정도는 알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오랜 연습을 거쳐 무대를 휘어잡는 최고의 연기, 때로는 고전적으로 때로는 초현실적으로 만들어지는 무대, 같은 레퍼토리지만 연출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처럼 바뀌는 해석력이 관람객을 감동시키는 것을 넘어 기절시킬지도 모른다.
이른 아침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스트랫퍼드어펀에이번으로 향하자. 우선 셰익스피어의 생가와 박물관을 둘러본 후 조금 늦은 점심을 먹고, 백조와 오리가 떠다니는 강가에서 잠시 바람과 햇살을 즐 기자. 해가 떨어질 무렵 트리니티 성당의 셰익스피어 묘소에 가서 잠시 상념에 빠진 후 이른 저녁을 먹고 공연장으로 향하자. 2007년부터 극장이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하는 바람에 에이번 강변 옆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은 2010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기에 요즘엔 코트야드 극장Courtyard Theater에서 공연이 열린다. RSC의 주요 레퍼토리는 우리가 잘 아는 <햄릿>,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 <헨리 5세>, <리처드 2세> 등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로렌스 올리비에와 비비언 리, 리처드 버턴 등으로 시작해 케네스 브래너, 에마 톰슨, 헬렌 미렌, 폴 배서니 등 영어권 배우 중 ‘연기 좀 한다’는 소리를 듣는 배우 대부분은 RSC 출신으로, 운 좋으면 이들이 무대에 선 모습을 볼 수 있다. 7시 30분부터 시작되는 공연이 끝나면 10시가 훌쩍 넘는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열심히 역으로 달려 런던행 마지막 기차를 탄다. 런던에 도착 하면 자정.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숨 가쁘게 보낸 하루는 공연 팬이라면 인생의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기에 부족함이 없다!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홈페이지 www.rsc.org.uk 글 김은령(<럭셔리> 편집장) | 사진 협조 RSC Press Office
7 바그너 순례자들의 성지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년)는 이탈리아 오페라와는 성격이 다른 독일 음악극Musikdrama의 창시자로, 바이에른 군주 루트비히 2세의 후원을 받아 독일 동부의 소도시 바이로이트에 그의 음악극을 공연하는 전용 극장을 지었다. 1876년에 극장을 개관하면서 4부작 <니벨룽의 반지>를 초연했고, 1882년에는 이 극장의 특이한 음향 시설을 고려해 작곡한 <파르지팔>이 무대에 올랐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매년 7월 25일에 시작해 8월 28일에 끝나며, 이 기간 동안 객석이 2000석에 달하는 이 극장에 연 5만4000여 명이 찾아온다. 독일 유학 시절, 베를린이나 뮌헨 등지에서 바그너 음악극 공연을 더러 보면서도 굳이 바이로이트에 가보지 않은 것은 바이로이트 극장이 한때 ‘히틀러의 전용 극장’으로 불릴 만큼 나치와 친밀했던 터라 정치적 반감이 커서였다. 그러나 지난 8월, 드디어 최초의 바이로이트행을 결행해 <파르지팔>의 전주곡을 들었다. 그 순간 그 유명한 ‘바이로이트 사운드’의 신화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극장 바닥과 의자는 모두 나무로 만들었으며, 특히 오케스트라가 위치한 피트는 계단식이 어서 뒤로 갈수록 높이가 낮아진다.
무대 아래 그 깊은 심연에서 비단에 감싸인 듯 아련히 들려오는 금관악기의 부드럽고 영롱한 울림, 무대 위를 보려 하는데도 저절로 눈을 감게 만드는 그 황홀하고 정교한 소리는 중간 통로도 없이 일렬로 붙여놓은 좌석의 숨 막히는 불편함을 완전히 잊게 했다. 1925석을 꽉 메운 청중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잡아낼 기세다. 맨 앞자리에 앉았다가 그 섬뜩한 기운에 뒤를 돌아본 순간, 비밀 종교 의식에 참여하는 듯한 청중의 ‘집중력 포스’는 바이로이트 사운드보다 더 엄청난 전율을 선사했다. 옷 자랑과 사교에도 관심이 많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청중과는 달리 오로지 음악만을 숭배하는 그들의 마력에 이끌려 나는 올해도 바이로이트에 간다. 일생에 한 번의 체험만으로는 너무 아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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