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묵자는 전쟁을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지금까지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묵자의 주장대로라면 이익이 없는 행동을 왜 할까요?
인류의 전쟁이 계속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각국의 경제적인 이익 추구로 인한 갈등, 권력과 영토 분쟁 등의 문제에서 비롯한 갈등, 그 외에 인종이나 종교로 인한 갈등으로 인해 전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몇 해 전 이슈가 되었던 미중 무역전쟁을 살펴보면, 미국이 중국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부여하면서 시작된 이 갈등은 전 세계 경제를 혼돈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또한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엄청난 경제적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되자 국내에서는 이를 초강대국 간의 패권 싸움으로 바라보며 ‘미국의 편에 설 것인가, 중국에 편에 설 것인가’ 와 같은 담론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트럼프와 시진핑의 극단적인 대치 이면에는 21세기 글로벌 경제의 최대 공동 수혜국으로서 양국의 보이지 않는 상호 이익적 협력관계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을 통한 손실보다 더 큰 이익을 고려하기에 전쟁이 계속된다고 생각합니다.
2. 오늘날 대한민국은 다문화사회입니다. 묵자의 겸애(兼愛)사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오늘날의 문제는 무엇이 있나요?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에게 이로우면 악도 선이 될 수 있고, 나에게 해로우면 선이 악이 되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 우리들의 삶에서 이러한 극단적 이기주의는 점차 더 커져가고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나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에게만 집중하고, 어떤 일을 선택할 때에도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이로움을 주는지에 따라 판단합니다. 사회나 국가 차원의 사안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나의 이익에 따라 반응합니다. 나의 이익과 연결되는 사안은 적극 지지하면서도, 나의 이익을 해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극렬하게 반대합니다. 심지어 모두를 위한 일이라도 나의 이익에 거스른다면 냉정하게 거부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극단적 이기주의는 전반적인 시대 흐름인 것 같습니다. 물질만능, 치열한 경쟁, 냉혹한 능력주의와 각자도생의 현실, 불안정과 불확실성의 혼란 등이 결국 나와 나의 이익에만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묵자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가르침을 제시한 인물입니다.
묵자의 겸애는 차별 없이 더불어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만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더불어 사랑입니다. 묵자는 인간의 이익 추구 본능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결국 나에게 이익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제시합니다. 이제 다문화사회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습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상호 존중되는 진정한 다문화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우선 외국인 근로자나 국제결혼 이주자 들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편견 등을 버리고 묵자의 겸애사상을 바탕으로 그들도 우리사회 구성원이라는 생각으로 서로 존중하며 포용해야 합니다.
3. 상(賞)과 벌(罰) 중 어떤 것이 교육적으로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합니까?
교육활동에서 상과 벌은 동기유발의 한 방법인데 체벌은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학생의 근본적인 변화나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적개심과 반발심을 갖게 하여 교사와 학생 간의 불신감만 커지게 되고 상호 간의 관계만 더욱 악화될 우려가 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학생들의 바른 행동을 찾아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4. 학교폭력 근절 대책으로 묵가의 겸애와 한비자의 법 중 어느 것이 더 실효성(實效性)이 있을까요?
법은 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규율입니다. 어느 사회나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 사회의 엘리트 계층이기 때문에 법이 항상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것은 아닙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라는 말이 있듯 법 앞에 평등이란 말은, 사실은 법 앞에 불평등하다는 말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법이 발달할수록 법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유리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매스컴을 통해 보는 우리 사회는 정치인이나 판검사, 재벌 등의 사람들을 상대로 한 판결은 일반 서민들과 다른 잣대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법이 편향되게 적용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도 합니다. 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잣대로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지만 그 법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법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난 것 뿐입니다. 결국 법을 철저히 지키면 지킬수록 법적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역설적인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최근 이슈가 된 '정순신 부자 사태'를 살펴보면 학교폭력을 저질러 놓고도 좋은 집안 뒤에 숨어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가해자와 평생 고통받는 피해자의 현실에 분노와 허탈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학교폭력을 다룬 드라마 ‘더 글로리’가 픽션이 아님을 실감했고, 현실에선 소송이라는 법률적 절차 안에서 피해자를 더욱 잔인하게 몰아붙였다는 사실에 더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과연 법이라는 것이 공정함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