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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문학관 시동인 [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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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신문 [김주완의 문화칼럼] 스크랩 [시론] 개관 10주년 맞은 구상문학관 이대로 좋은가 / 김주완 [칠곡신문]
김주완 추천 0 조회 64 12.09.19 11:2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2.09.10.월. 칠곡신문 5면]

뉴스 > 오피니언 > 칼럼-독자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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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10주년, 구상문학관 이대로 좋은가

문화 불모지, 칠곡의 명소로 만들어야

2012년 09월 17일(월) 23:36 [칠곡신문 스마트뉴스]

 

 

 

김주완 전

대구한의대 교수
-1949 경북 왜관 출생
-1984 구상 시인 추천으로『현대시학』등단
-현)한국문인협회 이사
-시집 『구름꽃』,『어머니』,『엘리베이터 안의 20초』외
-카툰에세이집 『짧으면서도 긴 사랑 이야기』
-논문 「시의 정신치료적 기능에 대한 철학적 정초」외
-철학박사(예술철학 전공)
-현)대한철학회 고문

'세계 200대 시인' 구상 선생에게 빚진 마음
구상선생기념사업-문학관 운영이원화도 문제


오는 10월 4일이면 칠곡군 구상문학관이 개관 10주년이 된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10년이란 참으로 긴 세월이다. 그동안 구상문학관은 얼마나 발전하였고 그 운영성과는 어떠한가?

구상문학관은 칠곡군이라는 작은 지역에 소재하지만 존재의의는 국가적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구상(1919∼2004) 시인은 한국 시단의 거장이었으며 세계적인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되어 세계문학사의 한 획을 긋고 있으며 그는 프랑스에서 선정한 ‘세계 200대 시인’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1999년과 2000년에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두 번이나 선정되기도 했다.

서울에서 출생하여 함경남도 문천에서 살다가 해방 후 월남한 그는 1953년에서 1974년까지 칠곡군 왜관읍 현재의 문학관이 있는 바로 그 자리, 낙동강 가에서 살았다. 이승만 정권에 대한 반독재 투쟁을 벌이다 투옥되기도 한 그가 이곳 왜관에 관수재(觀水齋)라는 서재를 마련하고 기거한 것이다. 당호의 의미부여는 진주의 설창수 시인이 관수세심(觀水洗心;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마음을 씻는다)으로 규정하여 휘호를 써 온 데서 유래한다는 말을 구상 시인 당신으로부터 들은 바 있다.

요컨대 그는 이곳 관수재에서 ‘형이상학적 인식과 존재론적 시’라는 그의 독보적 시 세계를 확립했다. 여름 한낮 하얀 모시옷을 입고 갱빈을 산책하는 구상시인의 모습은 그 당시 이곳 사람들의 눈에 고고한 은자(隱者)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김광림 시인이 그를 두고 ‘난세(亂世)의 시인’이라고 한 것이나 이승하 교수가 ‘시와 인간이 일치된 큰 시인’이라고 평가한 것은 모두 여기에 연유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뜻 있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이곳 왜관으로 문학관을 유치하여 시인의 생존당시인 2002년에 개관하게 된 것이 구상문학관이다.

한국문학관협회에 등록된 전국의 문학관은 현재 58개소 정도이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수가 230여 개에 이르는 것에 비추어 보면 문학관은 희소가치가 있다. 경북에 소재하는 문학관은 5곳 정도이다. 인근 대구나 구미에도 없는 문학관이 이곳 칠곡군에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자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칠곡군과 칠곡 사람들은 그 중요성을 아직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보석도 보석인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보석이 아니다.

개관 10주년이 되는 오늘까지 구상문학관을 운영한 성과는 어느 정도인가? 오다가다 들리는 내방객이 있었다는 것과 문학창작교실을 운영하여 문인 20여 명을 배출함으로써 지역에 문인 지망생을 다소 증가시켰다는 것이 고작이다. 필자도 강좌를 맡아 시인 11명을 등단시켰으며 지금도 구상문학관 시동인 '언령' 회원들을 무보수, 연중무휴로 지도하고 있다.

‘언령’ 회장인 김인숙 시인은 제21회 신라문학대상에 당선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이다. 그나마 운영되던 전문적인 문학창작강좌도 올해부터는 없어졌다. 비가 오면 구상문학관은 빗물이 새어 양동이를 받쳐놓아야 하고 정원의 대나무 숲이 고사한 적도 있다. 시간제 계약 근로자 2명이 겨우 문학관을 지키고 있다.

구상 시인을 기념하는 행사를 매년 소규모로 개최하기는 하지만 ‘구상문학제’라고 하였다가 ‘구상예술제’라고 하는 등 아직까지 행사 명칭조차 하나로 정착된 것이 없이 자의적·즉흥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것도 칠곡문협에 위임하여 일과성 동네행사 수준에 머무르게 하고 있다. 인구 3만 명의 의령군이나 5만 명의 남해군에서는 군수가 추진위원장이 되어 매년 1억여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데 인구 13만 명을 앞두고 있는 칠곡군에서는 문학상 하나 없이 고작 1천만 원 이내의 예산을 할애하여 기념행사를 치르고 있다.

물론 전용 주차장을 마련하는 등 칠곡군도 나름대로 문학관 발전 방안을 찾고 있는 듯 하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방향을 잡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구상선생기념사업회’가 서울을 중심으로 하여 따로 움직이고 있고 ‘구상문학상’ 또한 이미 2009년부터 영등포구에서 제정·운영함으로써 구상선생기념사업과 구상문학관 운영이 이원화되어 있는 것도 하나의 큰 요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구상 시인은 신인 추천을 극히 저어했다. 그는 생전에 소수의 시인만을 천거했다. 대구·경북에서 구상 시인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온 사람은 필자 한 사람 뿐이다. 그와 같이 구상 시인에게 사사를 받고 문단에 이름을 올린 필자는 늘 그분에게 빚을 지고 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칠곡군은 제대로 된 구상문학관 발전방안을 찾아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기를 바란다.

구도자 같은 삶으로 시를 읊고 노래한 구상 시인을 기리는 왜관 구상문학관의 눈 온 풍경.

스마트뉴스 편집국  newsi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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