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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도서관 스크랩 예수를 전염시키는 사람들
스코필드 추천 0 조회 56 10.06.25 13:3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예수를 전염시키는 사람들/빌 하이벨스 외 공저

예수를 전염시키는 사람들

빌 하이벨스 외 공저/한기웅 옮김

두란노/2003년 11월/334쪽/10,000원

▣ 저 자

빌 하이벨스

미국 일리노이주 사우스 배링톤에 위치한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의 담임목사이다. 시카고지역에 사는 불신자들을 전도하여 현재 미국에서 가장 성장한 교회 중 하나로 만들었다. 하이벨스 목사는 많은 책을 저술했으며, 린 사모와 함께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 : 스토리와 비전』『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와 『Fit to Be Tied』를 썼다.

마크 미텔버그

윌로우크릭 교회의 전도부장이며, 관계성을 통한 전도법의 기술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프로그램 ‘예수를 전염시키는 사람들’을 개발했다.

▣ Short Summary

이 책은 현대 크리스천들이 관계성을 통해 '예수를 전염시키는 일'의 큰 의미와 또 자신에게 맞는 전도 전략을 발견․개발하도록 하기 위해 쓰여졌다. 특별히 불신자 전도로 놀라운 성장을 이룬 윌로우크릭 교회 성도들의 경험적인 사례와 성공담, 상황에 따른 전략에 근거하였기 때문에 이 책은 매우 실제적이며, 전도의 새로운 비전과 자신감을 갖게 할 것이다.

▣ 차 례

1부 왜 예수를 전염시키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하나?

1장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소중하다

2장 예수를 전염시키는 크리스천에게는 보상이 따른다

3장 당신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공식

2부 강한 전염력을 갖기 위한 전제 조건

4장 진실성(Authenticity)

5장 긍휼히 여기는 마음(Compassion)

6장 희생

3부 전염시킬 기회를 찾는다

7장 교제 중의 전략적 기회

8장 안 믿는 사람들과 어울린다

9장 적절한 접근 방법 찾기

4부 분명한 의사 전달의 힘

10장 영적인 대화 시작하기

11장 메시지를 명료하게 함

12장 믿음에 이르는 장애물 허물기

5부 최대의 효과

13장 신앙의 선으로 건너서기

14장 전염성 있는 크리스천과 전염성 있는 교회

15장 사람들에게 당신의 삶을 투자하라

예수를 전염시키는 사람들

빌 하이벨스 외 공저/한기웅 옮김

두란노/2003년 11월/334쪽/10,000원

1부 왜 예수를 전염시키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하나?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소중하다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전염시키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진심으로 갈망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렇게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확실히 모른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향해 누군가의 마음을 열도록 하는 것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다고 그들은 가슴속 깊이 느낀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적인 영향을 준다는 착상은 좋다. 하지만 열심을 내지 않는다면 결정적인 행동에 착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열심도를 높이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는 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시각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두 가지 교훈을 가지고 시작해 보자. 둘 다 그 출처가 예상 밖이다. 하나는 과학 분야에서, 다른 하나는 사업 분야에서 기인한 것이다. 첫째로, 과학의 인류 발생론의 원리에 따르면, 우주는 어떤 방법으로든 인류의 삶을 지탱시켜 주고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처럼 보인다. 실례로, 우주의 팽창률을 단지 일백만 분의 일만 올리거나 내려 보아라. 그러면 생명의 가능성은 전무했을 것이다. 산소와 탄소의 비율이 현재와 약간이라도 차이가 있었다면 우리 중 누구도 여기서 공기를 마실 수 없었을 것이다. 지구의 중심축을 조금만이라도 바꾼다면 우리는 동사하거나 타 죽을 것이다. 요컨대, 현대 과학은 우리가 하나님께 정말로 소중하다는 사실을 지적해 주고 있다. 둘째로, 사업의 세계로 옮겨 보자. 톰 피터스와 켄 블랜차드 같은 전문가들은 ‘고객혁명’이라는 의미 심장한 도전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제는 기업의 피라미드를 뒤집어서 ‘최고’에 있는 사람들이 서비스하는 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기라는 말이다.

크리스천 공동체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치를 두게 될 때에만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직분을 다하게 될 것이다. 사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의 중심 취지 중 하나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권속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시각을 바꾸라고 촉구하는 것에 있었다.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된 이야기들 속에는 몇 개의 공통적인 줄거리들이 있다. 첫째, ‘중요한 가치를 가진 무언가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길 잃은 양은 목자에게 매우 소중했다. 또한 잃어버린 동전은 여인의 생존에 필수적이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말 안 듣는 탕자 아들은 아버지에게 매우 소중했다. 이 모든 비유를 통해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비록 네가 궤도를 벗어난다 할지라도 그래도 너는 내게 소중하다! 너는 정말로 소중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 옆에 있던 두 강도 중 한 명은 예수님께 야유를 퍼부은 반면 다른 한 명은 예수님을 향하여 말한다. “우리는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아무 잘못도 범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어리석은 질문을 용서해 주십시오. 나와 같은 죄를 지은 사람도 그 누군가에게는 그래도 소중한가요?” 이 질문에 예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그분은 주저하지 않고 이 사람에게 확신을 주셨다. “그대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네. 그대의 믿음과 회개한 영혼으로 인하여 잠시 후 낙원에서 나를 만나 영원히 함께 있게 될 것일세!” 이러한 자비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한번 생각해 보자. 당신이나 나의 사랑과는 매우 다르다.

나는 최근에 인도에서 온 어떤 이민자를 고용한 스포츠 센터에 나가서 운동을 했다. 그 사람은 엉터리 영어를 하는 키가 작고 대머리에 약간 변덕스러운 사람이었다. 게다가 독실한 회교도였다. 그곳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가 그들의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명백히 보여 주고 있었다. 이러한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소중하다고 말씀하실 때 뜻하셨던 바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것이 신학적으로 의미하는 뜻은 알고 있었다. 이해하기 쉬웠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처음엔 다소 어설프게 그와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농담도 곧잘 했으며, 점차 어느 정도 관계를 형성했다. 난 그에게 성경을 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겠는가? 이번엔 그가 내게 코란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얼굴에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내게 왔다. “빌, 내 처가 나를 버리고 떠났어. 정말 어떻게 해야 되지 모르겠네!” 내 기억으로 그에게는 조그만 아이가 있었다. 쉽게 그의 고통이 느껴져 왔다.

그가 말하고 있는 동안 나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순간 성령께서 내 손을 내밀어 이 남자를 포옹하도록 인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난 본능적으로 타임아웃을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성령께서는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빌, 난 이 사람이 고통 중에서 자신이 하나님에게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네. 내 마음을 전해 줄 사람을 찾고 있어. 자네가 나를 위해 그 일을 해주겠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말을 해야겠다. 그러나 내가 두 팔로 그 사내를 감싸자, 그는 곧바로 변화를 일으켰고 눈물로 내 어깨를 적셨다. 그에게는 분명히 중요한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그랬다. 하나님께서 이 남자를 얼마나 염려하셨는지 깨닫게 되면서 나는 크리스천이면서 목사인 내가 얼마나 자주 바리새인들과 똑같은 추악하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질렀는지 스스로 인정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와 있는 예수님의 비유는 다른 사람들을 놓고 하나님께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는 고정된 시각을 가지지 말라고 말한다. 즉 잃어버린 것은 총력적인 수색을 정당화할 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임무 수행 중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염시키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원하신다.

예수를 전염시키는 크리스천에게는 보상이 따른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4장에서 두 가지 예를 드셨다. 망대를 세우는 일과 전쟁을 치르는 일이다. 두 가지 모두 동일한 교훈이 담겨 있다. 즉 계획을 추진하기 전에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는지, 또 그 일을 끝까지 완성하기 위해 투자해야 할 값 다시 말해서 ‘기회 비용’을 계산해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전염시키는 크리스천’이 되는 일에 적용해 보자.

우선 이익부터 계산하고 나중에 비용을 하나씩 가늠해 보겠다. 첫 번째 혜택으로는 개인적인 ‘진기한 체험’을 들 수 있다. 하나님이 일상적인 일을 놀라운 것으로 바꾸시는 모습을 보고 싶은가? 하나님은 그런 일을 만들어 내시려고 기다리고 계신다. 그리고 당신이 이러한 진기한 체험들을 점점 더 많이 경험하게 되면,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일상의 임무를 대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얼마 전 우리 교인 몇 사람이 잡지 취재를 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일정을 마치고 공항에 도착하여 여섯 석짜리 비행기에 올랐을 때, 갑자기 탈영 군인 두 명이 공항의 안전망을 넘어 자동 소총과 폭발물을 거머쥐고 그 조그만 비행기를 탈취했다. 그들은 엉터리 영어로, 즉시 자신들의 목적지 마이애미로 가자고 강요했다. 재앙으로 치달을 수 있는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편집장 롭과 사진기자 래리는 어떤 목적 의식을 가지고 그들이 처한 곤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들은 겁먹은 군인 두 사람에게 가벼운 질문을 함으로써 간신히 그들의 긴장을 완화시켜 주었다. 그렇게 말을 시작한 지 얼마 후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무기를 치워놓았고 대화를 계속하다 심지어는 웃기도 하고 코카콜라까지 나누어 마셨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주신 사랑과 용서를 설명하기 위해 종이 위에 복음을 설명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롭과 래리에게는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또는 무슨 일을 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찌됐든 그들은 하나님께 소중하고 그들 또한 그것을 알아야 했다. 이것은 아무리 어렵고 위험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목적을 이행한다는 자각이었다.

매일매일 우리가 행하는 일이 하나님이 가지신 계획의 큰 구도 속에서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순간순간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들 가운데서 분명한 목적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찾고자 애쓸 때, 우리는 일상사에서 맛볼 수 없는 ‘성취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분명한 목적이란 베드로후서 3 : 9에 요약되어 있다.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나와 함께 이 책을 쓴 마크는 65세 된 유태인 남자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려고 했다. 여러 해 동안 유태 문화와 신앙에 젖어 있던 사람과 대화하면서 그가 얼마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을지 당신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그 남자가 예수님을 그의 메시아로 영접한다는 기도를 올렸을 때, 마크는 마치 자신이 메이저리그에서 우승한 것 같은 기분이었지 않았을까? 이 남자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지 일 년이 되어 영적인 돌을 축하하기 위해 함께 만났을 때 마크는 밀려드는 기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믿음은 가지고 있지만 더 발전시키지 못한 채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는 크리스천들을 자주 만난다. 한때는 큰 열정을 가지고 이야기했던 그들이 회심 경험이 지금은 기억조차 어렴풋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무기력한 신자들이 어떤 구도자들을 만나게 될 때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영적인 문제에 대한 서로의 의사를 교환할 때 말할 것을 준비하기 위해 성경을 읽고 심지어 몇 구절은 암기까지 한다. 기도의 영역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난다. 또한 하나님께 경배하고 싶은 욕망이 커진다. 배신 잘하고 반역 잘하는 우리들에게 그토록 자비롭고 끈기 있게 사랑을 펼쳐 보이시는 한 분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의 표현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그분의 인격과 그분이 행하시는 일을 찬송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적인 성결이 이루어진다. 높은 행동 규범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자신의 영적 성장과 영적 확신에 도움을 준다.

예수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경고하셨다. 우리의 많은 시간과 정력을 영원히 지속되지 못할 물건에 투자한다는 것은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그러나 예수를 전염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영구적인 투자’에 집중하여 열정을 쏟아 붓는다.

마지막으로 예수를 전염시키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는 영예’가 따른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나는 사역한 지 수년이 된 지금도 평범할 뿐이라는 생각으로 흔들린다. 그러나 그 흔들림은 나로 하여금 그분의 대리인이 되는 높은 영예를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게 한다. 우주적인 하나님을 대신하는 사자가 된다는 영예는 하늘 나라의 약속을 받아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하나님께도 이익이 있다. 그분은 당신의 자녀들이 길 잃은 사람들을 위해서 당신의 사랑을 흉내내는 기특한 모습을 지켜보실 수 있다. 부모라면 누구나 이것이 주는 기쁨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요한복음 15 : 8).”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누가복음 15 : 10).”

그러나 한 가지 의문점이 남아 있다. 이에 대한 ‘기회 비용’은 무엇이며, 그것이 지금까지 열거한 이윤들로 말미암아 상쇄되는가 하는 문제다. 개인적인 전도 사역을 하려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하며, 독서와 연구를 통해 지식과 이해를 증대시켜야 하고, 지갑 속에 있는 얼마간의 돈을 지출해야 하며, 또한 당혹스러운 반대와 박해당할 위험성도 무릅써야 한다. 그리고 가장 큰 대가는 상대방의 염려와 생활에 말려들게 된다. 이미 복잡해진 우리의 삶을 더 복잡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우리가 계속적으로 받게 될 이익 배당금을 지불하는 것임을 잊지 말라.

당신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공식

미국 속담 중에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은 가능케 하신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보잘것없는 이 세상이 하나님께는 소중하다는 말일 뿐 아니라 이들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예수님은 오래 전 가버나움 근처의 산기슭에서 제자들과 앉아 계실 때 그 계획을 말씀하셨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감화시키기 위한 정확한 계획이 추출될 수 있는 원리들을 우리가 쓰는 말로 설명하셨다. “HP + CP + CC = MI" 이 신비한 방정식은 무엇인가? 화학 교과서에 나오는 어떤 공식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영적으로 길 잃은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하나님의 전략이 담긴 공식이다.

MI, 이것은 최대의 효과(Maximum Impact)를 뜻한다. 우리 주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최대로 영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 전반에 걸쳐 표현된 하나님의 목적이기도 하다. 산상 설교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소금이 가장 강력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성분에 효과를 내기에 충분한 효험이 담겨 있어야 한다. 둘째로 그것이 어떤 효력을 발휘하려면, 소금은 영향을 주기로 되어 있는 물건이 무엇이든 그것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소금의 비유를 선택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 공식에서 HP는 최고의 잠재력(High Potency)을 의미하며 CP는 근접 접근(Close Proximity)을 뜻한다.

몇 년 전 아내와 나는 빌리와 루스 그레이엄 부부와 함께 북 캐롤라이나의 산 정상에 자리잡은 그들의 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저녁에 호텔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자 놀랍게도 빌리는 자신의 성경을 내 손에 쥐어 주면서 말했다. “빌, 가기 전에 나에게 하나님 말씀 좀 먹여 주게.” 그는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아야 한다네. 그리고 그게 좋다네.”라고.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빌리 그레이엄이 그토록 오랫동안 높은 잠재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계속적으로 소금기를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있는 동안 일어났던 일 가운데서 그때 그 일만큼 머리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은 없다.

또 빛의 비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최대의 효과를 주기 위한 공식의 마지막 성분을 제공해 준다. 그 마지막 성분은 CC로서 복음의 메시지에 대한 분명한 전달(Clear Communication)을 상징한다. 모두 한자리에 모아 보면 “HP + CP(salt) + CC(light) = MI"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소금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빛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분명하게 하나님의 은총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것이다. 호세아 4 : 6에서는 ”내 백성들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한다. 사도행전 8 : 31에서는 성경을 읽고 있던 한 구도자가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나님은 당신과 나에게 세계 도처에 흩어진 사람들에게 그분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할 책무를 맡기셨다.

2부 강한 전염력을 갖기 위한 전제 조건

진실성(Authenticity)

「시카고 트리뷴」 지의 기자 리 스트로벨이 최근에 개종한 아내를 따라 윌로우크릭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리는 이렇게 회고한다. “내가 의심 많은 불신자로서 교회에 나갔던 초창기 때부터 나의 ‘위선 행위를 탐지하는 안테나’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교회 놀이를 하는 징후를 찾고 있었다. 사실 나는 교회를 거부할 구실을 찾으면 마음놓고 기독교를 반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위선과 기회주의, 기만의 가능성에 대해 공격적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는 그 반대의 것을 찾아냈다. 지금 그는 윌로우크릭의 교육 목사들 중 한 사람이다.

‘야곱의 사다리’라는 노래로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던 휴이 루이스는 그 노래 속에서 자신에게 구원을 파는 어느 뚱뚱한 사람이 좇아오는 장면을 노래했다. 그 사람을 피하며 “나는 당신 같이 되고 싶지 않아요.”라는 말을 냉정하게 덧붙이는 모습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생활 전도』라는 책의 저자 조 알드리치는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인은 좋은 소식을 나누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이 좋은 소식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저는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요 15 : 5).” 예수님은 우리가 소금과 빛으로 살아갈 때, 사람들이 “당신의 좋은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할” 것을 아셨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영생에 이르는 길과 연결된다.

전염성을 지닌 크리스천이 되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요소를 든다면 진실성과 긍휼, 그리고 희생이다. 가끔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의 특성 중에 그들을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부정직함이나 진실치 못함이다. 사람들은 진실성에 언제나 마음이 강하게 끌린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그저 진실해지는 길뿐이라는 말도 거기서 나온다. 당신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것은 현재 당신의 모습 그 이상을 바라거나 그보다 못한 모습을 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본래 그대로의 당신 모습을 찾아라.

신자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 가운데 하나가 바로, 좀더 영적으로 보이려는 헛된 시도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독특함을 포기하거나 억제하는 것이다. 10년이나 15년 동안 당신의 주체성을 억압하고 나면 당신 본래 모습을 전혀 식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전염시키는 크리스천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당신 모습에 대해 더 이상 미안하게 생각하지 마라. 당신의 독특함을 확실히 드러낼 때, 그것은 당신의 개성이 흘러나오는 원천으로 다른 사람을 끌어당길 수 있는, 강한 관심을 유발하는 모델이 될 것이다.

하나님 앞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또 하나의 강력한 자석은 ‘감정적으로 진실한 삶’이다. 애석하게도 많은 크리스천들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혼동한다. 화를 내거나 슬픔을 드러내서는 안되고, 상처받거나 슬퍼하는 것은 믿음이 적거나 천박한 성품의 증거라고 일부 목사들과 지도자들이 잘못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두 가지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난다. 첫째는 ‘정서의 혼란’이요, 둘째는 구도자들은 감정적으로 진실하지 않음에 대해 금방 혐오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친구 나사로가 죽었을 때 대중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고 그분의 진솔한 감정 표현이 구도자들로 하여금 그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숨기지 마라. 감정은 중요한 것이므로 불식시키려 하지 말고 기독교적으로 승화시켜라.

또 유사한 맥락으로, ‘진실한 고백’을 들 수 있다. 꾸밈없는 진실한 고백은 생활하면서 그리스도의 권능을 전달하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기독교 정신은 구도자로 하여금 오늘날처럼 무과실을 주장하며 배상하려 하지 않는 사회에서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감화만이 “제 잘못이에요, 죄송합니다.” 하고 말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들이 크리스천에게서 보고 싶어하는 것은 겸손과 참회, 심지어는 책임 있는 배상이다. 그리고 자신이 ‘말하는 대로 생활하기’, 즉 ‘진실한 신념대로 살아가기‘도 진실성의 빼놓을 수 없는 측면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되던 날 그 과정을 지켜본 한 로마 백부장에 대해 묘사한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드라마의 한 장면에 관객으로 서 있었다.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백부장은 그 모든 희생과 자신의 임무에 대한 예수님의 철저하신 헌신,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포기하려는 그분의 자원함 등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앞에서 벌어진 모든 일로 인해 몹시 괴로워했다. 그의 마음은 혼돈으로 가득했다. 마침내 그의 마음은 그의 이성이 진실이라고 깨달은 것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드디어 자신의 깊은 곳에서부터 외치기 시작했다. “분명히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놓겠다는 의도가 조금이라도 부족했다면 그 빈정대는 로마 군인을 납득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백부장으로부터 그런 선언을 가능케 한 것은 자신의 임무에 대한 예수님의 진솔하고도 용기 있는 헌신이었다. 구도자들은 나약한 크리스천들에게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은 진리를 설정하고 진리를 선포한 다음 대담하게 진리에 따라 생활하는 누군가를 찾고 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Compassion)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야고보서 1 : 27).“ 자비와 긍휼의 속성은 성경 전체에 걸쳐 드러나 있다. 특히 긍휼은 행함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으면 무언가 영적으로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내 주는 것이다. 문제가 조직에 있든, 개인에게 있든 돌봄이 없는 기독교 정신은 탐구자들을 양의 우리로 이끌지 못한다. 자선 행위는 다른 어떤 것도 열지 못할 듯한 사람들의 마음을 연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라고 하시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단 한 번의 친절한 행위 속에도 엄청난 힘이 담겨있다.

최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자비심을 느낀 적이 언제였는가? 그 감정에 부응하여 사람들을 섬기고 용기를 주며 실제적으로 사랑을 표현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위해, 타인을 향한 현재 당신의 긍휼의 정도를 숫자로 적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 숫자를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긍휼 지수’라고 부를 것이다. 0에서 10까지의 숫자 중 하나를 선택하라. 0은 당신의 마음이 완전히 냉랭하다는 것을 뜻하고 10은 테레사 수녀를 쏙 빼닮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약간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5라는 숫자는 빼놓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살아온 환경에 따라 혹은 가정이나 작업 환경에 따라 점수를 망치기도 하고 얻기도 한다. 한편 낮은 긍휼 지수에 머무르는 원인으로는 삶의 불건전한 행보를 그대로 유지하려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부상당한 사마리아 사람을 그냥 지나치면서 사제와 레위인은 말한다. “당신이 곤경에 처해 있는 것은 알지만, 나는 해가 지기 전에 모임이 여섯 개나 남아 있단 말이야!” 이러한 위태로운 생활 양식은 당신의 행보가 통제력을 상실한 채 계속적으로 속력을 다해 달려가는 곳에 존재한다. 그러나 과잉 연민에서 비롯되는 문제도 있다. 크리스천 생활을 시작한 초기에 너무나 고무되어 사실상 준비된 것보다 너무 지나치게 베풀다가 어느 날 은근히 분노를 느끼는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전도서 3 : 1~8에서처럼, 베풀어야 할 때가 있듯이 그 반대를 위한 시간도 있다. 인생을 만끽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일상적인 시간을 지내면서 긍휼의 저장고가 새로이 보충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사랑은 사랑을 기르고 긍휼은 긍휼을 낳는다. 그러므로 정기적으로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나오는 사랑과 생생한 접촉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그 다음에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과 유사한 은혜와 친절을 베풀어 준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해 주는 수도관이지 저장고가 아니다. 테레사 수녀가 이 점을 잘 말해 준다. “당신과 나는 전선이고, 하나님은 전류이다. 우리는 전류가 우리 몸을 통과하여 세상에 빛을 발하도록 하는 능력이 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통하여 빛을 발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들 중 어떤 사람들은 긍휼을 받아들이는 데 그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설상가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전하는 수도관이 되기는커녕 나에게 빚진 5달러를 갚으라고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당신은 현재 당신의 긍휼 지수에 만족하는가? 그 지수를 하락시키는 문제는 무엇이며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당신의 지수가 3~4단계 정도 상승했을 때 가정에서, 가족들에게서, 직장에서, 혹은 학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한번 생각해 보라. 얼마나 더 많은 인생들이 감화를 받을 것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지 상상해 보라. “하나님은 틀림없이 계실 거야. 저분한테서 얼마나 많은 사랑이 흘러나오는지 보라구. 그 어떤 사람의 마음에서 저런 친절이 생겨날 수 있겠어?”

희생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는데 베트남 참전 용사 추모회에 참석한 한 젊은 군인이 벽에 새겨진 어느 병사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이 나왔다. “그는 나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주었습니다.” 그는 계속 친구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그 말만 읊조렸다. 이 병사가 경험했을 일을 조금이나마 생각하면서 앉아 있을 때 문득 한 생각이 스쳤다. 누군가 그를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하려 했기 때문에 그의 삶에 그 사건이 큰 감동으로 남아 있으리라. 이처럼 희생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사람들을 녹인다.

또 여러 해 전 중앙 아메리카를 거쳐 남아메리카까지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외딴 곳에 사는 종족을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그 집 주인이 우리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있을 때 나는 그 집 아이들의 얼굴에 걱정이 드리워져 있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곧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저녁을 먹으면 그들이 먹을 음식이 모두 없어져 다음날 굶주리게 될까 봐 근심하는 것이었다. 식사하는 동안 내내 그 얼굴이 떠나지를 않았다.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약간의 돈을 식사비로 지불했지만 그들은 극구 마다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의 표현을 하기 위해 그 희생을 자처했던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일을 잊지 못한다. 희생은 사람들에게 평생 동안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진실성이 주는 매력을 보았고 긍휼이 끌어당기는 힘을 느꼈다. 그러나 진실성이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또는 어떤 흑심을 품고 선행을 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아편처럼 긍휼을 베풀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과 관심으로 베푸는 희생은 그 가치를 감소시킬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왜 예수님이 그러한 희생적인 삶을 사셨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우리를 부르셨는지에 대한 이유가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함으로써 우리의 사랑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시간의 희생을 드린다거나, 당신이 가진 자원을 재투자하는 희생을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희생은 장기간에 걸친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내가 빌리 그레이엄에게 깊은 감동을 받는 또 한 가지는 함께 거의 50여 년 간 목회하면서 크리스천의 일관성에 따르는 값을 변함없이 지불해 온 것에 있다. ‘생생한 희생’의 반세기였다. 미혹, 타협, 나락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던 유혹에 맞선 반세기. 진리, 긍휼, 봉사 정신과 겸손을 펼치고 표현하는 반세기였다는 말이다. 많은 빌리 시대의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 “빌리는 자신이 하는 말을 충분히 증명해 보였어요. 반세기 동안 지켜보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게 됐지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예수님이었다. 우리가 친구들을 위해 삶의 일부를 내어 줄 때, 우리의 본보기가 예수께서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 제물로 내어 주셨다는 주장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 기운이 솟을 것이다.

3부 전염시킬 기회를 찾는다

교제 중의 전략적 기회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과 신실한 관계를 조성하는 것은 때로는 어색하고 서먹하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요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그들과의 관계 조성을 빠른 시간 내 결정짓고 싶은 나머지 그들이 준비되었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영적 도전장을 내밀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최단거리처럼 보이는 것이 결국은 그 사람을 영적 진로에서 이탈하게 만드는 그릇된 전환점이 된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대부분의 시간을 종교의 제도권 밖에 있는 사람들과 보냈다. 때로 종교인을 만나신 것은 그들의 태도에 이의를 제기하고 길 잃은 사람들이 그분께 얼마나 소중한지 환기시키기 위함이었다. 또 하나의 역할을 보여 준 모델은 바울이다. 고린도전서 9 : 22~23에서 그는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계를 조성하려 함에 있어서 그 노력을 방해하는 걸림돌들이 많다. 첫째는 성경적 쟁점들이다. “세상과 벗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고”와 같은 성경 구절들을 반복적으로 들으며 자란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고려해야 할 문제이고 심지어는 성서에 위배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말씀에 비추어 보면, 여기서 ‘세상’이란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서 사람들이 범한 죄와 악을 일컬음을 알 것이다.

둘째는 영적 위험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라고 말한 바울의 의도는 우리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할 것과 방어보다는 공격적이 되라는 데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변화시키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친선을 도모하려 할 때 도덕적으로 바르고 진실하다는 확신이 서 있다면 그 일을 좀더 끈기 있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그런 사람들과 있을 때 평판이 위협 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넷째로는 개인적인 불편함을 들 수 있다. 가끔 이렇게 생각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저들은 큰소리로 떠들어대고, 쓰는 말마다 악취가 나고, 자아는 자제력을 잃었어. 왜 내가 여기 있지?’ 그러나 그때마다 성령님이 내게 부드럽게 속삭인다. “너는 다리를 건설하고 있다. 진리를 바로 세우고 있다. 너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대면하게 하시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수고를 영예롭게 하실 것이다. 병을 옮길 만큼 충분히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서지 않고는 전염시키는 신자가 될 수 없다.

내 친구 디에터 잰더가 말했던 이 방법을 나는 좋아한다. “우리는 먼저 우리가 전할 사람들에 관해 하나님께 아뢰고, 그리고 나서 하나님에 관해 사람들에게 전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메시지를 들고 당신의 친구, 가족, 직장 동료들에게 다가갈 때 성령께서는 보이지 않는 당신의 파트너가 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명심하라. 성령님과 함께 진지한 전략을 짜 가지고 사람들과 우정을 쌓아갈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안 믿는 사람들과 어울린다

성장기에 나는 신앙인들이 모이는 파티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후 고등학교 시절, 나는 배교자 부류들과 어울렸다. 그런데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두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자리하는 일이다. 적어도 의도적으로는 함께 자리하지 않았다. 결혼 피로연 같은 자리에서 더러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항상 불편했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 두 부류는 서로를 무시했고, 배교자 무리는 끝내 그 자리를 독차지하고는 신앙인들이 자리를 뜰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누가복음 5 : 29을 보면 마태가 연회를 연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전대미문의 파티였다. 그는 신앙인 친구들과 믿지 않는 동료들을 한 자리에 초대했다. 의도적으로 대중을 섞어 놓은 파티였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말이다. 세리였던 마태는 예수님을 만나면서 급속하게 마음이 변화되었다. 그 결과 그는 아직 예수님께 위탁하지 않은 자신의 친구들에게 즉각 관심이 쏠렸다. 그의 당연한 바람은 그가 찾아낸 것을 그들도 찾도록 돕는 것이었다. 파티장에서 그의 바리새인 친구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지나치게 흥겨워하는 것을 문제삼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의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병 든 사람들임을 환기시킴으로써 마태가 연회를 베푼 것을 칭찬하셨다.

마태가 했던 식으로 우리가 믿지 않는 친구들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하나님의 바람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궁지에 몰려 양손을 쥐어짜며 포기하기를 분명 바라지 않으신다. 혁신적이어야 한다. 창조적으로 생각하라. 위험을 감수하라. 실수하면서 배우고 적절히 접근법을 맞춰 가라. 프로그램이나 예정표보다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을 잊지 마라.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 ‘마태의 파티’를 열어라. 얼마간 영의 씨를 뿌리고 신앙의 문제에 대한 대화를 시작하기에 그곳은 아주 좋은 장소이다. 파티가 끝난 다음 함께 하는 개인적인 시간은 수레 바퀴를 돌려 당신이 초대한 많은 사람들이 완전히 새로운 영원에 이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개중에 어떤 사람들은 얼마나 빨리 마음을 열고 기독교를 향해 중요한 영의 발걸음을 떼어놓는지 당신은 놀라게 될 것이다. 골프 행사나 휴일 파티, 환영 파티, 세례식 초대도 좋고, 음식 나누기, 경기 관람, 여가 활동, 운동 시간, 아기 돌보기와 일손 돕기, 아이들의 활동, 전략적인 직장 생활 등의 일상의 활동에 타인들을 끌어들여라.

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들에게도 시험 삼아 전화해 보라. 그들은 아마도 당신의 기대 이상으로 더 관심을 쏟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접촉점을 찾아라. 우리들은 모두 주유소, 식당, 세탁소, 식료품 가게, 옷가게, 그리고 일상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파는 여러 장소를 찾는다. 우리가 사전에 신중한 계획을 세운다면 사사로운 일들이 감동적인 복음 전도 사건으로 바뀔 수 있다. 또한 당신이 어떤 분야에서 활동을 하든지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기회를 잘 이용하라고 골로새서 4 : 5은 다시금 우리들 각 사람을 상기시킨다.

적절한 접근 방법 찾기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향해 나아가도록 이끌어 줌으로써 그분을 영광스럽게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지 모른다. 자신의 개성과는 상반되는 어떤 뭔가가 되어야만 하리라는 생각 때문에 믿음을 전하겠다는 열정이 식어 버린 적이 있었는가? 이런 생각들은 교회 입장에서 비극이다. 방황하는 자들에게는 더욱 나쁘다. 사실, 나는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막으려는 사탄의 계획으로부터 생겨났다고 믿는다. 사탄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극도로 성공적인 작전이 되어 왔으므로, 이제 교회가 그것을 막아야 할 때다.

언젠가 내가 “개인 복음 전도 중에 일어나는 희한한 사건들”이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마크는 우리 교회에서 주중 며칠 동안 실시하는 예배에 참석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신앙을 전하기 위해 각각 다른 접근법이나 유행을 어떤 식으로 따랐는지 내가 알아낸 한 원형을 설명하고 있었다. 마크에게는 새로운 정보였다.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는 ‘정도’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특히, 그는 자기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은 바울이 사용했던 접근법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날 밤 마크가 들은 메시지는 그가 앞으로 신앙을 전하는 일에 참여하는 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고린도전서 12 : 11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이 정말로 각 사람에게 영의 선물을 분배해 주신다면, “그가 결정하신 대로” 우리는 그의 역사하심을 더욱 신뢰하여 진행 방향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각기 모양을 달리하는 구원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신약에서 여섯 명의 사람들에게 채비해 주셨던 방법을 살펴보자. 조사하다 보면, 성경이 제시하는 여섯 개의 복음 전도 유형 - 베드로의 정면 대결형 접근법, 바울의 지성형 접근법, 소경의 증거형 접근법, 마태의 대인 관계형 접근법, 사마리아 여인의 초대형 접근법, 도르가의 봉사형 접근법 -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유형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 완벽하게 일치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당신이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은 하나님이 본래 그들에게 의도하셨던 구상대로 사역하는 것을 터득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또한 다른 유형의 크리스천들과 협력하여 힘을 결합한다.

4부 분명한 의사 전달의 힘

영적인 대화 시작하기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평범한 일상 용어를 사용하여 영(Spirit)의 개념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인간의 죄로 인한 대가는 어떤 것이며, 우리들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베풀어주시는 용서와 생명을 받아야 하는 절실한 필요성이 있다고 그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함으로써 복음을 분명히 전달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두 가지 면에서 깊은 확신을 가지고 출발해야 한다. 지금 당신의 삶이 하나님을 알기 전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워졌다는 사실과, 다른 사람들의 삶 또한 일시적인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결국에는 보다 더 좋아지리라는 확신이다.

그 다음 영적인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방법으로는 직접적인 방법과 간접적인 방법, 권유적인 방법이 있다. 여기 간략하게 직접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예문이 몇 개 있다. “영적인 문제에 관해 생각하고 있나요?” “당신이 생각하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였나요?” “당신은 종교적으로 어떤 배경에서 자랐나요?” “사후에 무슨 일이 있을지 궁금하게 생각한 적이 있나요?” “진정한 기독교는 어떠해야 된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의 영적 여정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질문들이 단순하다고 해서 결코 그 효과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말 그대로 영생에 이르는 문을 열어 줄 수 있다.

간접적인 방법으로는 사업상의 인사나 이사 온 이웃집과의 인사, 취미와 여가 활동 중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시작할 수 있고, 자연에서, 음악에서, 스포츠에서 공통 분모를 찾아내어 대화를 꺼낼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이 누군가와 공통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성경에서 얻은 지혜, 염려해 주는 믿음의 친구들, 또는 하나님의 중재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그에게 말해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내 인생을 바꿔 놓은 그 강권적인 힘에 대해 말해 드릴까요?” “아내와 나는 의사 전달 방식에 있어 서로 비슷한 절망감을 느꼈답니다. 제가 몇 가지 성경적 원칙을 소개해 드릴까요?”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를 포기하고 싶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압니다. 하지만 크리스천 상담가가 저술한 책을 한 권 소개해 드리고 싶군요. 그분의 충고는 우리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그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등등의 말로 시작해 보자.

우리들은 대부분 실제로 사람들이 영적인 진리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자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최종적인 목적이 없는 상태로 살아가는 데 지쳐 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는 이보다 더 값진 게 있어!”라고 말할 지경에 이르고 있다. 실제로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

메시지를 명료하게 함

언젠가 배에서 한 불신자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내가 목사라는 사실을 알고도 놀라지 않았다. 우리는 성심을 다했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잊지 못할 순간이 닥친 것은 막 헤어질 무렵이었다. 그 사람이 내게 물어 왔다. “빌, 떠나기 전에 질문에 대답 좀 해주실 수 있겠어요? 하나가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크리스천을 만나면 꼭 물어 보고 싶었거든요. 대답해 줄 수 있나요?”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약 45초 동안 그의 집중된 시선을 받고 나서야 진정한 신자가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요약해 설명했다.

만일 당신이 내 처지였다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성경은 우리에게 이런 주의를 준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라(벧전 3 : 15).”고 말이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주의도 본다(딤후 4 : 2). 다른 사람들이 복음의 진리를 깨달아 알도록 그분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명령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일 때라고 생각한다. 그 말씀들은 단순한 제의가 아니라 신성한 명령이며 그분의 너무나 소중한 길 잃은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자신부터 복음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과 우리, 그리스도, 그리고 당신, 이 네 가지 기본 요소에 대해 정확히 검토해 봄으로써 복음 메시지의 기본 요소에 관한 지식을 증진시키기 바란다. 그 실례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는 수단 가운데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방법으로 ‘하라/했다’를 설명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노력이 하나님의 구원을 획득하는 데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의문점을 잘 설명해 주는 방법이다. “타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이라면 타 종교는 ”하라(Do)."라고 말하지만 기독교는 “했다(Done)."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타 종교는 신의 용서와 호의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이 ‘행해야’ 하는 일들로 이루어져 있음에 반해 기독교는 우리 스스로가 할 수 없는 일을 그리스도께서 이미 ‘대신하셨다’고 합니다. 진정한 신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용서의 선물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그분의 통솔을 따르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은 우리를 권속으로 삼으시고 내부로부터 우리를 변화시키기 시작하십니다.”

이밖에도 1981년에 출판된 네비게이토의 『The Bridge』에서 인용된 브릿지 전도의 실례는 가장 잘 알려져 있고 그 타당성 때문에 가장 폭 넓게 사용된다. 이것은 사람들의 곤경과 하나님의 해결책을 도표로 나타내 보여 준다. 일단 영적인 대화를 시작하게 되면 성경의 중심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표를 알고 있다고 불쑥 말을 꺼낸 다음, 그것을 볼 의향이 있는지 물으면 된다.

다음으로는 로마서의 방법으로, 로마서 3 :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6 :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10 :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세 구절을 읽어준 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간단한 일인 줄 아십니까? 우리가 할 일은 다만 죄를 범했고 죽어 마땅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분의 용서하심과 우리에게 주시는 새로운 삶을 소리쳐 구하는 것입니다. 수년 전 나도 그랬습니다. 당신에게도 똑같이 해보라고 권하고 싶군요.”라고 말해보라.

내가 언급하고 싶은 제시법 중 마지막 방법은 개인적인 체험담이다. 간결하면서도 잘 짜여진 당신의 신앙 여정에 관한 묘사는 상대방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 사도 바울도 사도행전에서 세 차례에 걸쳐 사용한 적이 있는 방법으로, 삶 가운데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면 된다.

이 모든 방법을 동원할 때 주의할 것은, 상대는 당신과 대화하고 싶은 것이지, 당신의 일방적인 연설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연설조로 말하지 말라. 일회용 분량만 말하라. 그리고 담대하라. 기회를 맞기 위해 준비하고 기도하면 결국은 그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예고하건대 아마도 당신은 준비되었다는 느낌이나 임무를 충실히 감당해 낼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가 성령께서 공급해 주시는 지혜와 능력에 의지할 때이다. 가슴에 사랑을 담고 심호흡을 한 다음, 상대의 눈을 들여다보고, 솔직하게 말하라. 그리고 어디쯤 해서 하나님이 당신의 말을 들어 쓰시는지 지켜보라.

믿음에 이르는 장애물 허물기

우리는 예수님이 의심을 품었던 도마와 마주 서 있는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 볼 수 있다. 추측해 보건대, 다른 사람들은 분명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젠 꾸중을 듣겠지? 그럼 크게 후회하겠지?’ 예수님께서 도마에게로 가까이 다가서자 그들은 질끈 눈을 감아 버린다. 방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진다. 바로 그때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나를 만져 보라.“ 친절한 한 마디였다. 그 말씀은 예수님이 갖고 계신 인격의 분량을 전해 주었다. 그날 도마를 비롯한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교훈은 오늘날 우리의 친구들이 받아들여야 할 교훈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추구하는 중에 갖게 되는 솔직한 의구심 때문에 하나님이 노하시거나 싫어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상대가 의심을 표명할 때 당황하지 마라. 의구심이 생긴다는 것은 그들이 진리에 대해서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세밀히 관찰하다 보면,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몇몇 장애 요인들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오해, 지적인 장애들, 그리고 도덕적 염려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우리들 주변에는 고지식하고 포용력이 없으며 염세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하나님, 성경 그리고 교회라는 이름으로 잘못된 일들을 행하며, 이에 대해 구도자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또한 그릇된 가르침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부정확한 초상을 그리기도 한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을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는 책을 권해 주는 것은 친구들이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바로잡도록 해 주는 좋은 방법이다. 필립스의 『당신의 하나님은 너무 작아요』, 제임스 패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 리 스트로벨의 최근 저서인 『예수라면 어떻게 말씀하실까』는 바른 통찰을 그들에게 제공해 줄 것이다.

한편 인생을 바꿔 놓는 선택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히 결정의 순간에 다가서기를 주저하게 된다. 이 당연한 두려움과 염려는 우리가 심사숙고하고 있는 마음의 생각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살아 계실 때 이것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이 점에 대해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사탄은 너희의 생명을 멸망시키러 오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너희가 생명을 찾고 그 충만함을 누리게 하기 위해 왔다.” 본질적으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죽기 위한 탁월한 방법일 뿐만 아니라 살기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이 사실을 이해시켜 그들의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지적인 장애물들로는 성경의 역사적 정확성에 관한 논란, 믿음의 논리적 타당성, 악의 문제, 기독교와 과학의 문제 등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영적으로 꼬치꼬치 캐묻는 친구들이 질문하고 의혹을 제기하도록 권장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검토하고 책들을 읽어 사실성 여부를 심사숙고한 다음, 기독교 신앙의 타당성 여부를 일생을 바쳐 연구한 석학들의 말을 들어보라고 권면하거나 그들의 테이프를 제시해 줄 수 있다. 조지 맥도웰, 모어 랜드, 윌리암 래인 크래이그, 휴 로스, 게리 해버마스, 밥 앤 그레첸 파산, 노만 기슬러, 래비 제커라이어스, C. S. 루이스 등이 지적 장애물들을 넘도록 도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덕적 염려의 장애물이 있을 수 있다. 포기할 수 없는 죄나 도덕적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이다. 이 때는 그가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해 주고,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아 받지 못하는 이익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접근법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모든 장애물을 허무는 과정이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 과정에서 그들에게 두 가지를 가르쳐 주면서 격려할 수 있다. 바로 기도와 약속이다. “하나님, 나는 당신이 계시는지조차도 확신이 서지를 않아요. 하지만 만일 계시다면 제가 알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계시다면, 나는 당신을 알고 싶어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진지하게 받아 주시는 기도라고 믿는다. 예레미야 29 : 13에서 하나님은 약속하셨다.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이 말씀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약속과 같다.

5부 최대의 효과

신앙의 선으로 건너서기

나는 모험을 좋아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누군가를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만드는 것에 비할 수 있는 모험은 지금껏 없었다. 하나님이 몸소 인간의 삶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쉼없이 변화시키는 기적에 동참한다는 것에는 놀랍고도 잊지 못할 그 무엇이 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역사를 일으키시기 위해 당신을 주된 도구로 사용하신다. 많은 신자들이 전염성 있는 크리스천이 되는 이 최종 목표를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그 과정을 이루어 낼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몇 가지 지침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결단의 지점으로 이르게 하는 ‘선에 다가서기’ 단계는 그들로 하여금 현재 자신들의 위치가 어디인지 깨닫게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당신은 적절하게 그들의 관심도와 이해력, 준비 여부 등을 판단해야 한다. 그들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도록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지고 제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두려움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하나님께는 영의 적이 있다는 사실을 그 사람에게 차분히 설명해 주라. 일단 사람들이 그 적이 속이는 영임을 이해함으로써 무장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 보호해 달라는 조용한 기도를 드림으로써 사탄의 간교를 훨씬 쉽게 물리칠 수 있다. 또한 그들이 준비되었다고 한다면 ‘선을 건너기’ 단계로 진입하면 된다.

이 ‘선을 건너기’ 단계에서도 사실, 마법 같은 공식은 없다. 회개하는 태도만 유지시키면 된다. 두 사람이 함께 조용한 장소를 찾은 다음 합심하여 기도하라. 일차적으로 명확하게 하기 위해,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의 생각을 당신 앞에 솔직히 표현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며 이제는 하나님께도 그렇게 똑같이 하면 된다고 말해 주어라. 하나님은 평상시 말하는 대로 드리는 기도를 기뻐하신다고 이야기하면서 지속적으로 그들의 기도를 이끌어 주고, 다음으로는 그들 스스로 기도하게 하라.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도록 도와라. 그 두 가지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지불하신 하나님의 용서와 그분의 인도하심이다. 그들의 기도를 마무리하면서 그들과 아주 자연스럽게 동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라. 앞으로 살아갈 흥미진진한 그러나 도전적인 날들을 통하여 이 새로운 아들이나 딸을 보호하시고 인도해 달라는 간단한 요청의 말을 부언하라.

마지막 단계인 ‘선을 넘어가기’ 단계에서는 찬양하고 그들의 언약을 확인시켜 주라. 그리스도와의 친밀함과 그분을 섬기면서 느끼는 흥분도에는 기복이 있을 수 있음을 알도록 현실성 있는 그림을 그려 주어라. 영의 성장 단계를 설명하라.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해서는 하루의 몇 분 정도는 기도 시간으로 비워 놓아야 한다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요한 수단은 기록된 그분의 계시인 성경을 통해서라는 것, 다른 크리스천들과의 깊이 있고 신실한 관계를 도모하는 일과 정기적으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의 중요성 등을 강조하라. 이 즈음에서 하나님은 새 신자들이 전염력 있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바라고 계신다는 것을 주지시켜도 결코 시기상조라 할 수 없으나 성급하지는 말라고 주의를 주라. 장기간에 걸쳐 영의 자양분을 공급해야 하는데, 지금껏 신뢰를 쌓아 온 인도자가 계속해 나가는 것도 괜찮겠지만 다른 성숙한 크리스천에게 양자 결연을 맺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전염성 있는 크리스천과 전염성 있는 교회

프레드는 복음 전도법에 있어 정면 대결형 전도자로서 직접적이고 허튼 짓을 하지 않는 윌로우크릭의 대단한 실무가이다. 그는 삶이 거의 밑바닥을 치닫고 있는 경건치 못한 유형의 사람들 30여 명을 인도해 상대하는 도전을 맛보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프레드는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이다. 그러나 줄리에는 프레드와 같지 않다. 그녀는 수줍음을 타고 말씨가 상냥하다. 교외에 살고 있는 그녀와 남편 밥은 온건한 교회에 출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줄리에는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예수님께 의탁하게 되었다. 그녀는 성경에 입각하여 역할을 다하는 교회를 찾다가 윌로우크릭의 일원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간 이후로 겨우 일 년이 지난 지금, 줄리에는 개인적으로 열네 명을 인도하여 하나님께 서약 기도를 드리게 했다. 줄리에의 내성적인 성격과 또 그에 맞는 접근법 때문에 사람들은 무엇이 자신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대부분 모른다. 우리 교회의 복음 전도부는 그녀를 가리켜 “하나님의 비장의 병기”라고 말한다.

크리스천들의 다양성은 종교적 배경, 민족성, 사회적 기준, 교육, 교회, 그리고 하나님께 어느 정도 마음이 열려 있는가 등의 많은 요소가 결합되어 생겨난다. 하나님은 그분의 지혜로 온갖 유형의 크리스천을 창조하셨으며 그들을 각양각색의 영적 구도자들과 함께 영향력 있는 모임 속에 두셨다. 이러한 모임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은 크리스천과 구도자 모두에게 자연스런 방법으로 전달될 수 있다.

전염시키는 크리스천 한 명 한 명이 그렇게 효과적으로 하나님께 사용될 수 있다면, 모든 교회가 전염성을 갖게 되었을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모든 사회에 만연하는 폭발적인 영적 충격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개인적인 노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교회에서 함께 일하는 우리 모두의 결집된 힘과 활동을 통해 결국 하나님이 손을 내밀어 세상을 구하시리라는 사실이다.

당신의 교회를 좀더 전염성 있는 교회로 만들고 싶지 않은가? 유능한 교회에서 찾을 수 있는 15가지 특성 목록을 살펴보고 당신의 교회가 전염시키는 교회의 일조를 담당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라.

① 복음 전도가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② 잃어버린 자에 대한 관심이 우선한다.

③ 목회 활동이 목회 전체 전략 속에 포함된다.

④ 구도 과정을 존중하고 활성화한다.

⑤ 구도자들이 제기하는 질문들을 존중하고 인정한다.

⑥ 교회 지도자들이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일에 본이 된다.

⑦ 교인들은 신앙을 전파할 준비를 갖춘다.

⑧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과 친분을 맺는다.

⑨ 다양한 전도 방법을 시도한다.

⑩ 모든 봉사직을 교회 전도 사역의 일환으로 본다.

⑪ 큰 전도 행사를 통해 교인들의 개인적 전도 활동을 지원한다.

⑫ 혁신적인 방안을 높이 평가하고 채택한다.

⑬ 성경의 삶에 대한 적용성을 강조한다.

⑭ 복음은 결코 타협될 수 없다.

⑮ 초자연성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있다.

사람들에게 당신의 삶을 투자하라

나는 한 달여 간이라는 긴 여행의 마지막 행로에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후원하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돈을 전달해 주라고 중미와 남미 지역에 나를 보내셨다.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대단한 발달기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그때 나이 열아홉 살이었으니까. 그 즈음 나는 크리스천이 되었지만 남아 있는 생애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 여행의 처음 목적지는 인디언 부족이 살고 있는 중미의 정글 한복판이었다. 그 정글 속에 한 교회가 부흥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곳이었다. 성령이 역사하고 삶이 전 영역에 걸쳐 변화되고 있었다. 나는 그곳을 필두로 다른 여러 도시들을 돌았고, 제트기를 타고 세계의 유흥가를 누비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루에서 여행을 마쳤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평생에 한 번 휴가를 즐기게 된 것이 일생일대의 굉장한 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옆 좌석 한 노부부의 대화를 들으며 우아한 레스토랑에 앉아 혼자 저녁을 먹고 있었다.

‘잠깐만, 이 사람들은 60세 정도 돼 보이는데 이 시간을 평생 기다려 왔단 말이야? 나는 열아홉인데 벌써 이 자리에 앉아 있으니 앞으로 삼사십 년 동안 뭘 하지? 나의 모든 미래를 걸 만큼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 아버지 회사에서 근무하던 몇 년을 떠올려 보면 어리석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것은 내 영혼의 갈망을 충족시켜 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정글 한복판에 자리한 그 조그만 교회, 그 인디언들 사이에서 봉사하는 일에 자기들의 인생을 바치고 있는 눈이 반짝거리던 사람들을 되새겨보았다. 그들은 이제 친구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신자들로 구성된 굉장한 공동체를 이루어 놓았다.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을 목청껏 부르며 예배를 드리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던 일이 기억났다. 그날 밤 리오데자네이루에서, 나는 사업에서 돈을 버는 것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절실하며 더 중요한 그 무엇을 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반대 방향으로 나를 잡아끌려고 하는 그 모든 유혹들과 기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일단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을 낚는 사업’이라는 것을 이해하기만 하면, 그 다음에는 주위 사람들과 그들의 필요에 대해 집중할 것이기 때문에 다르게 살고, 다르게 기도하고, 다르게 사랑하고, 다르게 일하고, 다르게 베풀고, 다르게 봉사한다. 어떻게 하면 가장 유능한 사람 낚는 어부가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마음을 온통 지배할 것이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것을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으려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우리들 가운데 그물을 버리고 직업을 포기하라고 요청 받을 사람은 사실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목회자가 되도록 인도하시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다.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은 현재 직업을 계속 가지는 한편, 하나님의 생각을 반영하는 완전히 새로운 사고 방식을 가지고 직분을 다하라는 요청을 받게 될 것이다. 베드로가 다시 돌아가 물고기를 잡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말씀하셨다. “사람을 낚는 사업을 계속해라.” 베드로는 그 말씀에 순종했고,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셔서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게 하셨다.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당신의 삶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당신 자신의 이익과 길 잃은 사람들을 위하여 당신에게 애원한다. 만일 마음과 영혼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사람을 낚는 사업에 충실하라. 매일 성령님께 말하라. “오늘은 제가 단순히 물고기를 잡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을 하겠습니다. 단지 상품을 파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을 하게 도와 주세요. 단지 봉사에 그치지 않도록 영감을 주세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해주세요. 나를 통해 역사하셔서 남자든 여자든 당신께 인도하게 해주세요. 저는 사람 낚는 사업에 종사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를 전염시키는 크리스천들의 사고 방식이다.

애플 컴퓨터의 공동 창시자인 스티브 잡스가 펩시콜라에서 일하고 있는 존 스컬리라는 최고 중역을 스카웃할 때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했다던 말이 기억난다. “설탕물이나 팔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소, 아니면 세계를 바꿔 놓을 기회를 잡고 싶소?” 스컬리는 이 도전이 그의 숨을 멈추게 만들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마침내 펩시콜라를 그만두고 애플 사에 합류한다.

오늘이 바로 당신의 인생에 설탕물을 파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날로 기록될 날이 아닐까? “당신의 도움으로 나는 가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에 어떤 연쇄 반응을 일으키겠습니다. 당신의 권능으로 사람들의 삶을 바꿔 놓겠습니다.”라고 하나님께 말씀드리기에 오늘이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출발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가치 있는 일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자신을 드린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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