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진학하며 취업반으로, 그리고 성균균대학교 국문과 입학
당시 선린상업은 1~6반까지는 주간, 7~10반까지는 야간으로 구성되었고, 특이하게 실업학교 이면서도
1 ~ 4반까지는 진학반, 5~6반은 취업반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취업반 학생이 적어 졸업식에는 은행에서
인사 담당자들이 직접 來校를 하여 은행으로 데려가는 立稻先買하는 형식으로 인기가 엄청나게 있었다고 한다. 주 영근 선배님은 취업반 학생들과 대학교 진학 원서를 쓰고 입학시험을 응시하였는데 취업반에서 혼자 합격의 영광을 얻는 쾌거를 이루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이신 신 만호 선생님(제가 학교에 다닐때도 상업계산을 가르켰음)이 자기 체면을 세워주었다고 엄청난 칭찬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신 만호 선생님은 한일은행에 입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본인도 동의를 하여 마음을 굳히고 있는데, 종례 시간에 윤 량모 교장선생님이 찾는 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장실에 갔는데 뜻 밖에 취업 제의를 받았다.
교장 선생님 : 주 영근! 무슨 은행이냐? 성대에 합격을 하였으니까, 장 기영 선배님한테 특별히 이야기를 할테니까 한국일보 입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주 영근 선배님 : 그래도 은행원이 좋을 듯 싶은데요.
교장 선생님 : 너는 문학적 소질이 탁월하니까 한국일보에 입사해서 성균관대 국문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도 좋아!
주 영근 선배님 : 그럼 , 교장 선생님 말씀대로 한국일보사로 취업을 하겠습니다.
주 영근 선배님은 한일은행( 현 우리은행 전신)대신 한국일보사에 교장 추천으로 입사를 하였다. 첫번 째 발령지가 "교정부'에서 원고를 교정하는 일을 맡았다. 당시 한국일보는 조간과 석간을 동시에 발행하여 시간이 쪼들려 학교에 갈 시간적 여유가 없어 고민이 날로 깊어갔다. 천성이 원칙과 기준을 중시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라 대학에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편의 제공을 요청하였던 바, 덩쿨 채 호박이 들어오는 결과를 얻었다. 선린상업에서 럭비부에서 활동을 하였던 사실을 알고 미식 축구부에서 활동하면 1년간 장학금과 학점 편의를 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흔쾌히 수락을 하였다.
그리고 대한적십자사와 청파회에 깊이 관여하며 후배들을 독려하며 농촌계몽운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식단 및 교재를 직접 만들어 후배들에게 전달하여 화전민들에게 새로운 농사법과 세상에 대하는 방법등을 일러주었다. 한국일보사와 성균관대에서 주경야독하며 대한적십자사와 청파회 활동을 병행하다보니 자연적으로 회사일에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일보사를 퇴사하고 새로운 직장을 물색하던 중, 선린상업에서 취업 자리가 있으니 학교로 빨리 오라는 연락을 받고 "天佑社"에 응시할 원서를 받았다. 천우사는 대한민국 무역상사 제1호로 화신그룹과 국내에 양대 재벌로 군림하였던 시기였다. (이후 天佑社는 5.16 군사혁명으로 부도 처리됨) 더불어 천우사에 근무하는 남자 직원들은 100% 대졸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고졸출신으로 주 영근 선배님이 최초로 입사하는 신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천우사 시험을 보고 합격자 발표를 개별통지하기로 하였는데 7일이 지나고, 10일 지나도 통지를 받지 못하여 불합격되었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아주 우스운 일화가 있었다.
응시원서에 서울시 마포구 대흥동 212 - 121로 표기를 하였는데 121호가 1자가 굵은 선과 겹쳐 천우사 인사과에서 합격자 발표를 마포구 대흥동 212 - 12로 발송을 하였는데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 가서, 천우사는 선린상업에 학생을 찾아 달라는 합격통지서를 보내어 당시 선린상업에 재학중인 4촌 동생이 합격 통지서를 가지고 집을 방문하여 전달받고 천우사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고 출근하였다고 한다.
더불어 성균관대 대학교 2학년을 자퇴하고 서라벌예대 편입학하여 문학에 대한 수업을 쌓아갔다.
천우사는 많은 계열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주경야독을 하려면 본사 근무는 절대로 할 수 없어 인사 담당자가 仲兄 친구로 편의를 제공하여 대성목재로 발령을 받고 제2의 직장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당시 대성목재는 영등포에 있었는데 교통상황이 무척 좋지 않아 집에서 출근하려면 3번이나 차를 환승할 정도로 열악한 사정이었다고 한다.
나는 정선군수로 발구덕마을을 찾겠습니다
주 영근 선배님을 발구덕마을 주민과 두가지 약속을 하였다고 한다.
정선군수로 부임하여 화전민촌을 번듯하게 개발시키며, 발구덕 마을에서 일생을 마감하겠다고......
실제로 주 영근 선배님은 발구덕 마을에 상당량의 토지를 현재 보유하고 있으며 명예 정선군민이시다.
1966년 주 영근 선배님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4대 의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육군에 입대하여 논산 수용연대에서 훈련을 받으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당시에 군대라는 것이 보급시설이 형편없어 군인들의 의식주가 형편없던 시절이었던 시기였고 병력들의 수준도 질이 상당히 낮아 군대안에서 폭력이 난무하고 탈영 및 군대를 기피하는 것이 다반사 였던 호랑이가 담배를 피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군대 선임에게 호출을 당하여 폭력을 당하는데 그 자리에서 졸도를 하였다고 한다. (사람을 가격할 때는 반드시 날숨을 쉴 때 하고, 급소를 때려야 외상 및 진단이 적게 나온다고 한다) 졸도에서 깨어난 후 복수를 다짐한다. 논산 수용연대 인사계 경리담당은 대부분 선린상업 선후배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선배 한 사람이 " 그 자식을 잡으려면 연무대에 사창가에 가서 지켜라. 그리고 서울 가는 기차표는 창녀를 통하여 구매를 하되 대전에서 내려 경부선을 바꾸어 타라"는 이야기를 해주어 입대 동기생에게 탈영을 하자고 제의를 하였다고 한다. 이윽고 D - Day를 잡고 고참을 박살내고 동기생과 함께 창녀가 구입해준 기차표를 가지고 대전에서 하차하여 경부선으로 갈아타고 서울역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탈영 후 집에서 소일을 하고 있었는데 중학교 친구 가운데 故 金 弘 壹 장군(전 신민당 당수, 마포구 지역구 국회의원) 처남이 있었다. 5.16 군사혁명이후 신민당은 많은 외부 인사를 영입하였는데 그 중에 한 분이 김 홍일 장군이었다. 처남이 매부 선거업무를 돕기 위하여 주 영근 선배의 도움을 간곡히 請하였다. 친구의 간청으로 김 홍일 장군을 만나러 가는데 동석한 사람이 前 노 승환 국회부의장이다. 그 자리에서 주 영근 선배는 선전부로 배속되어 전단지를 보고 연설 원고를 작성하고 가두 연설을 하였는데 청중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일종의 파트 타임으로 선거운동을 하였는데 김 홍일 장군이 연설하는 모습에 크게 매력을 느껴 신민당 입당원서를 쓰라고 강요를 하여 입당을 하여 정치인으로 변신을 하였다. 입당 후에 처음 직책이 신민당 선전부 선전차장으로 임명되었으며, 부장은 노 승환 전 국회부의장이었다. 김 홍일 장군은 마포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에 무난히 당선되어 활동하며 마포 지역구는 노 승환 선전부장, 다음에는 주 영근 선전부 차장 순서로 지역구를 계승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1971년 김 대중 후보가 신민당 후보로 대통령 후보에 입후보할 당시 주 영근 선배의 활약은 실로 대단하였다. 김 대중 후보도 연설에 일가견있다고 대중들이 평가를 하는데 주 영근 선배도 버금가는 연설로 서울시 전지역 연사로서 김 대중 후보를 힘껏 도왔다. (주 영근 선배님은 1971년 대통령 선거는 김 대중 후보의 압승이었는데 공무원들이 개표를 하면서 김 대중 후보의 지지표를 무효로 만들어 극소한 차이로 석패를 하였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신민당에서는 반드시 정권교체를 한다고 하여 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올 때 김 홍일 장군이 주 영근 선배에게 집권 후에 희망하는 직책을 이야기를 하라고 할때 그는 " 강원도 정선군수"라고 과감히 이야기를 하였다고 한다. ( 정선군수는 서기관이 발령받아 부임하는 자리로 중앙정부에 국장보다도 못한 자리였다고 한다) 개표 결과 김 대중 후보는 석패를 하고 유신을 맞이하는 기구한 운명을 맞이한다.
첫댓글 실타래처럼 주선배님 일화를 풀어가고 있네요... 재미나고 자랑스럽습니다
선배님!! 계속적으로 읽어 주어서 글쓰는 보람을 느끼네요. 추석 명절 잘쇠시고 조만간 모임을 해요.
일대기를 음미하노라니 감회가 새롭군요^*^ 계속 수고 부탁해요
선배님 !! 감사해요. 글구 12기 선배님들이 당시에 같이 활동하였던 여자 동기들을 수배해서 모임에 동참시키라고 강력히 주문을 하네요. 힘써 주세요.
학교명과 이름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 모임에 12기 선배님한테 물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