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잘나고 못나고 지위고하와 관계없이
어떻게든 태어났기에 살아가고 마침내는 죽어갈 뿐이다.
이처럼 결과는 같을지라도 살아가는 과정은
한날한시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모두 다르다.
그 이유는 사람이 태어나고 사는 곳이 다르고,
조상과 만나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도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운명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정재인의 소설, 『서동요』(2005)에서, 선화공주가
자신의 운명이 이끄는 대로 제 한 몸을 오롯이 던져
주어진 운명의 길(서동과의 사랑)로 나가고 있음에 대해
신라 보량법사의 말이다.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수 없는 게 사람의 운명이거늘
일개 미천한 중생의 힘으로 어찌 막으리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헬렌 피셔가 쓴
『왜 사람은 바람을 피우고 싶어 할까』(1992)에서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라는 말이 시사하듯,
나는 이 피셔의 말을 인생의 문법과 다른 ‘운명’이라 생각한다.
이 운명은 피하고자 해도 피할 수 없고
돌아가고자 해도 돌아갈 수 없다.
고대 그리스 비극시인 아이스킬로스는
집의 붕괴에 위협을 느끼고 뛰쳐나왔다가 그만 날아가던
독수리의 갈고리 발톱에서 떨어진 거북껍질에 맞아 죽음을 당했다.
김근우 장편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2015)에 나오는 말이다.
“원수와 싸우기로 한 사람은 말릴 수 있어도
운명과 싸우기로 한 사람은 말릴 수가 없다.”라는 문장 속에서,
운명은 피할 수도 돌아갈 수도 없음을 알기 쉽게 표현했다.
인생은 우리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운명이 이끄는 대로 갈 수밖에 없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날지, 어떤 외모와 지능을 갖게 될지,
어떤 병에 걸릴 것인지, 어떤 사람들을 만날 것인지 등
우리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인생은 이러한 필연적 운명과 만나 부딪히며 울고 웃는다.
피할 수 있고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거리의 길路이지,
인생의 길道은 아니다.
한편, 운명을 곧, 팔자라고도 한다.
가수 나훈아가 2019년에 이별을 주제로 작사·작곡하고 직접 부른
「자네」란 노래의 맨 끝부분에서 팔자가 잘 묘사되었다.
“자네는 아는가, 진정 아는가./ 팔자는 뒤집어도 팔자인 것을….”
그러기에, 똑같은 돌 속에서 어떤 사람은 금가루로,
어떤 사람은 복대기(돌가루)로 태어나는 것, 이 또한 운명이지 않은가.
강물 위에 떨어져 물결 따라 흘러가는 나뭇잎이
어찌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겠는가.
김경옥의 장편 『개와 늑대의 시간』(2016)에서 교도소장의 말이다.
“천국 갈 사람, 지옥 갈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졌다.
하지만 누가 천국과 지옥에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느님도 모른다.”
독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프리드리히 니체의
‘운명애’(amor fati)를 구현한 사람은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꼽히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들 수 있다.
그는 아흔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1989)까지 종업원 수가
13만 명에 달하는 570개의 기업을 거느렸던 사람이다.
그는 아버지의 파산으로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젊은 시절을 어렵게 보냈다. 자신의 성공 비결은 하늘에서 내려준
세 가지 은혜를 입고 태어난 덕분이라 했다.
첫째, 가난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부지런하게 일하는 습관을 익혔고
둘째, 허약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부지런히 신체를 단련했으며
셋째, 배우지 못했기에 무엇이라도 배울 점이 있으면
부지런히 열심히 배웠기 때문에 지식과 지혜를 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보통사람 같으면 좌절하고 절망했을 텐데 그는 역경을
성공의 디딤돌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긍정적으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사람으로 추앙받아왔다.
나무가 강하게 자라나기 위해서는 거친 폭풍우가 필요한 것처럼
위대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지간한 사람들은
좌절하고 말 정도의 열악한 환경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박재현의 번역판 『니체의 말』(2020)에서
“하늘 높이 자라려는 나무들이 과연 비바람이나 눈보라를 겪지 않고
제대로 그렇게 자랄 수 있을 것인가.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불운과 저항·증오·질투·불신·냉혹·폭력 등은
덕의 위대한 성장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수 김연자가 엉덩이 흔들며 불러대는 「아모르파티」는
좀 뜨악하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란 가사가 언짢다.
가뜩이나 저출산 시대에 “연애는 선택,
결혼은 필수”라고 외장쳐도 시원찮은데 말이다.
나는 우한코로나의 혹독한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맥쩍게 보낼지라도
잠자리에 들 때마다 오늘의 편안함에 지난날을 뒤돌곤 한다.
그럴 때마다 아찔했던 순간순간이 다시 한번 몸을 웅크리게 한다.
넓은 농토를 보유한 사람이 절대 부자의 상징이었던 그때 그 시절,
우리 집은 마을에서 ‘부잣집’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성장했다.
그러니까 나는 부모님을 잘 만났고 장손 우선주의에 힘입어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혜택이 동생들한테는 겁나게 미안할 정도였다.
그리고 초⸱중학교 담임 선생님과 고등학교 때 선생님 한 분을 잘 만나
주어진 진로에 따라 공직생활을 거쳐 오늘에 닿았다.
자식들에게 손 뻗치지 않아도 손주들에게 용돈 정도는 줄 수 있으니
이 또한, 느긋하고 성공적인 운명애의 삶이 아니겠는가.
수구초심, 늙어갈수록 고향을 그린다고 했던가.
새장 속의 새도 옛 숲을, 웅덩이의 물고기도 옛 연못을 그리워하듯
홀로 계신 어머님이 4년 전에 돌아가시고
계속 비워진 고향의 고택을 오랜만에 찾았다.
부모님께서 크게 마음먹고 지은 집인데
전주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거리의 벽촌(정읍소성면 기린마을)인지라
그동안 발걸음이 둔했다.
그러다 보니 공허하다 못해 집 기운마저 흉흉했다. 본숭만숭하던 차,
아내가 먼저 용기를 내어 한 달에 두어 번 숙식이라도 할 모양으로
업자를 불러 고택 손질을 마치니 새로운 기운이 솟는다.
비록 고향 친구는 없을지라도 다행히 마을을 지키는 자식 같은
너덧 명의 중씰한 총각들과 술 한 잔의 아모르파티를
이 늙수레가 또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세계적인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가 20여 년 이상을 미국에 살면서
가장 편안했던 집은 어린 시절의 고향집이었다고 했다.
그렇다. 어머님의 품속과 같은 고향이 오늘따라 포근하다.
올해의 맹추위마저 하얗게 녹아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