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승론 하권
3. 순수제행품(2)
[네 가지 불가사의: 불ㆍ선정ㆍ용신ㆍ업보]
【문】 비록 일체의 처소를 얻을 수 있다고는 말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만약에 큰마음을 일으켜 지혜가 증장하면 이 사람은 전에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응당 분별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답】 네 가지 부사의(不思議)가 있으니, 이른바
불(佛)부사의ㆍ선정(禪定)부사의ㆍ용신(龍神)부사의ㆍ업보(業報)부사의이다.
부처님의 불가사의함은 응당 법을 잘 드러내 보일 수 있으니, 오직 근기가 뛰어난 중생들만이 노사나불 이래로 설해진 모든 법을 받아 지니는 일을 감당할 수 있다.
[중생을 교화하는 네 가지 방편]
【문】 어떻게 저 부처님으로부터 차례로 지금에까지 이를 수 있었는가?
【답】 여래의 법신이 중생을 교화하는 데에는 네 가지 방편이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다단다라바라비지(多檀多羅波羅比地)이고,
둘째는 다단다라니비치(多檀多羅尼比致)이며,
셋째는 아단다바라비치(阿亶多波羅比致)이고,
넷째는 아단다라비치(阿亶多羅比致)이다.
[이 네 가지 심묘한 방편은 진(秦)나라 말로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범본 그대로 남겨두었다.]
[부처님의 빛깔의 몸]
【문】 만약에 여래의 법신이 항상 적멸이고 무상(無相)이며 무위(無爲)라면 어떻게 유상(有相)을 수순할 수 있는가?
【답】 본원력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멸진정에 든 비구는 비록 무심상(無心相)이어도 우선 마음을 살피고 있으니,
만약에 건추(揵搥)를 쳐 소리가 울려 귀에 이르면 그 소리가 나는 것에 따라 그 정(定)으로부터 나온다.
[건추(揵搥): 시각을 알리거나 경계 내에서 인원을 소집할 때 쓰이는 기구로서 본래는 목재로 만들었으나 후세에는 구리로 제작하였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보리심을 발하고 본원적인 서원력이 있어서 자신이 적멸의 법신을 얻게 되면, 이때 심식(心識)은 비록 다시 무상(無相)이지만 무작력(無作力)이 있기 때문에 중생을 교화한다.
그러므로 여래의 무상법신은 널리 유상(有相)에 응해 수순할 수 있다.
삼천대천세계의 백억 도솔천이나 백억 염마천을 모두 갖추었을 때 색신(色身)을 시현한다.
색신을 보인 다음에는 다시 수명을 버리거나 태(胎)에 들어가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거나 세상에 처음 태어나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거나 석범(釋梵)이나 사천왕 등의 모습을 지어 좌우의 직무를 인계받거나 일곱 걸음을 걷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거나 사자후를 하는 모습을 나타내 보인다.
또한 스스로 천상과 인간 중에서 가장 존귀하고 가장 위라고 말하고 최후변신(最後邊身)이 생로병사를 끊거나 동자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거나 궁에 들어가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거나 출가하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거나 고행하는 모습을 나타내 보인다.
도량에 앉은 모습을 나타내 보이거나 악마를 항복받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거나 최초로 성불하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거나 깨달은 중생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거나 오랫동안 성불한 모습을 나타내 보이거나 석범(釋梵)이 법륜을 굴리기를 정하는 모습을 나타내 보인다.
성숙했거나 성숙하지 못한 중생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거나 열반에 드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거나 이미 열반에 든 모습을 나타내 보이거나 염부제의 전신사리(全身舍利)나 분신사리(分身舍利)를 나타내 보이거나 도솔천으로부터 내려오는 모습을 나타내 보이거나 나아가 성숙한 중생을 도탈시키는 모습을 나타내 보인다.
응하는 바에 따라 모두 형상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또한 자주 모습을 나타내 보이거나 혹은 잠시 모습을 나타내 보이기도 한다.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진실한 뜻이라고 할 수 있으니, 3아승기겁 동안 모든 바라밀을 닦아도 끝내 성취할 수 없는데, 40년이나 50년쯤으로 과(果)가 멸진(滅盡)될 수 있겠는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가?
인(因)은 수미산이나 지라산(只羅山) 등과 같은데, 과(果)는 겨자씨처럼 미세하게 나눌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대가 말한 것은 전도된 것이다. 나의 법 가운데서는 인(因)이 겨자씨 정도여도 그 과(果)는 수미산이나 지라산처럼 웅대하니, 이것이 이치에 합당하다.
그러므로 3아승기겁 동안 수행의 인(因)을 지으면 일체 생사의 과보를 멸진할 수 있다.
중생에 응하여 교화하여도 법신은 상존하니, 『법화경』 「수량품(壽量品)」에서 밝히고 있고 또한 「문수사리수기품(文殊師利授記品)」에서도 말하고 있다.
저 다단다라니비치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있다.
“나는 불사(佛事)를 지었으니 마침내 모든 비구들에게 말하노라. 내가 열반할 때에 이르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도 또한 이와 같으리라.”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으나, 사실 멸함은 없으시며 일체의 불국토에서 신통변화하시면서도 모든 허공법계와 더불어 나란히 평등하시다.
따라서 법신은 항상하지만 색신은 중생의 처소에 응하여 교화해야 하기 때문에 무상(無常)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만일 색신으로 부처님을 보고자 한다면 여래를 볼 수 없으니,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설하신 바와 같다.
만약에 색신으로 부처를 보거나
음성으로 여래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잘못된 도를 행하는 것이니
부처를 본다고 할 수 없네.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법신으로 부처님을 관찰하는 것이 진정으로 여래를 보는 것이다.
연화(蓮花)비구니가 부처님의 색신을 보고
“내가 가장 먼저 부처님을 보았구나”라고 생각하자,
부처님께서는
“그대가 가장 먼저 나를 본 것이 아니로다. 오직 수보리만이 법신을 알아봤으므로 먼저 나를 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응당 알아야만 하나니, 십주(十住)의 위계(位階)만을 ‘법신을 본다’고 말한다.
만약에 법신에 예를 올리면 일체의 색신에 예를 올리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법화경』에서
“만일 사람이 관세음법신을 칭명하고 공양한다면 62억 모든 부처님의 색신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훌륭하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 위계가 십지이므로 부처님의 법신을 얻어 보살이라 부를 수도 있고 부처라고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신이 근본이고 무량한 색신은 다 법신에 의지해서 화현하여 출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설령 62억 항하사의 색신에게 공양하더라도 한 법신에 공양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말씀하셨다.
예를 들면 부처님께서 『보적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가섭아, 세상 사람들은 달이 처음 초승달이었을 때에는 공경하여 예배하지만 그것이 가득 차 보름달이 되면 공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초승달로부터 보름달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가섭아, 만일 선남자가 나를 공경하고자 한다면 먼저 마땅히 보살을 공경하여 예배해야 한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보살지(菩薩地)로부터 만족함을 얻었기 때문이고, 보살은 생사를 거치면서 색신의 모습을 변화시켜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저 보살은 이미 불과(佛果)를 얻었으니, 부처님이라고 칭해도 진실한 말이지 허망한 말은 아니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