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떠났다. 일상은 나를 전전긍긍 똥 마린 강아지처럼 미치게 했다. 붙박이 장롱같이 들러붙은 반복적인 삶에 연줄 엉키듯 꼬이는 새끼줄도 넌더리가 났다. 왜 또? 안티 성폭력대회는 출전한다고 그랬을까. 결국 머리에 깻잎을 붙인 소녀로 변장하고 후배들과 ‘바바리맨 퇴치법’ 공연을 했다. 다시 무대에 오를 일을 꾸미면 사람도 아니다’ ‘그런 말한 사람이 벌금내자’ 이러길 벌써 일곱 번째. 양치기 언니들이다.
원래 금요일 밤 설악산 대청봉 산행팀이 떠나기로 되있었다. 땡하고 마차가 호박으로 변하는 시간에 버스를 타서 새벽에 한계령부터 올라가는 무박산행. 좌우경치도 안보고 꽁무니만 따라서 숨차게 오르는 산행은 질주와 경쟁의 속성과 다를 바 없는 속도전. 원하는 바가 아니다. 차라리 운기조식하며 느릿느릿 오래도록 걷고 싶다. 걸어서 바다를 만나자. 강화 섬을 돌자.
다리를 건너자마자 차에서 내려 48번 국도를 버리고 북쪽 해안아를 따라 세 여자는 걸었다. 6월인데도 땡볕 아스팔트길은 후끈거린다. 고개를 넘으니 손에 잡힐 듯 바다건너 북한 땅이 지척인데 나무 한그루 없이 헐벗은 민둥산이 안쓰럽다. 길 끝에 해병대 초소가 막아선다. 걸어서는 못 들어간단다. 말귀를 못 알아듣겠다. 아니?...금강산, 개성, 평양도 가는 세상이 되었건만 치근대는 여자들을 귀찮아하며 파리 쫓듯 손 사레를 친다.
근데 자동차는 보내주네. 허참. 섬 일주를 계획한터라 삥 돌아서 갈 우리가 아니다. 대로에서 쫓겨나 논두렁 건너 작은 길로 접어든다. 고개엔 하얀 찔레꽃들이 피어 은은한 향기가 감돌고 엉겅퀴 망초꽃 창포 토끼풀도 정겹다. 시골집 마당에 피어난 탐스러운 모란꽃과 줄지은 넝쿨장미는 아찔하게 붉다. 도시탈출 성공을 자축하며 겨우 반나절 걷고 조직이름을 ‘들장미파’로 정했다. 깔깔.
길가에 허름한 원두막 발견. 이게 왠 방이냐? 신발까지 벗고 올라가 그대로 퍼질러 누웠다.
“요즘은 김매기하다가도 배달이 온다는 디 이런데서 냉커피나 한잔 시켜 먹으면 좋겠다“는 오하라의 군시렁에 마을회관 이름을 보고 114에 전화 해서 다방을 물었다. 당연히 있을 턱이 있나. 가물거리며 졸다가 오토바이 소리에 깨어보니 동네아저씨다. 낯선 과객들의 말을 듣더니 집에 가서 보온병을 가져오셨다. 커피 배달 소원 풀었다. 하하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어느새 끼어든 아저씨가 두 명 합이 셋, 우리도 셋이다. 졸지에 번개팅. 민망;;
걸으면서 줄기차게 붙들고 늘어진 화두는 ‘먹기’. 나날이 늘어가는 식탐에 늘어가는 몸집. 버겁다 버거워. 자. 천천히 조금씩 먹기를 하자구...젓가락 양부터 흘리는 탓하지 말고 조금씩 집자구. 아무리 목구멍에서 넘기라고 잡아 당겨도 오래 씹자. 입 작은 개구리처럼 조그맣게 집어넣고 천천히 음미하면서....꾸울꺽.
느긋하게 잘 먹은 것은 좋은데 아뿔싸. 청양고추의 화끈한 유혹에 된장 찍어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어쩔수 없이 길가 숲 속으로 들어갔다.(이하 편집) 뱀한테 궁둥이 물릴까봐 벌벌 떨었다. 앞으로 고추는 조심해야겠다. ㅋㅋ
일요일....꿈꾸며 걸었다.
새벽부터 걷는데 일요일이라 도로에 차가 많다. 상쾌 신선한 공기에 산들바람에 홀린 듯 걷노라니 길가에 앵두나무닷! 다들 잽싸게 달라붙어 입속에 한웅큼 넣고 주머니에 담고 좋아서 어쩔줄 모른다. 새콤한 앵두가 입속에 터지니 우와...눈까지 밝아지는 듯 피로가 싹 가신다. 쉬려고 길가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우와~~운동장 한쪽이 호수다. 겨우 두발자국 들어선 것 뿐인데 담장 밖에선 안보이던 풍경을 만난 거다. 시소도 타보고 벤치에서 참외를 깎아 먹었다. 인간이나 사물이나 마음을 기울이고 눈길을 줘야 진면목의 일부라도 드러나는 거구나. 겉핥기식으로 스쳐간 인연, 지나쳤던 순간들을 잠깐 아쉬어 했다.
논에는 하얀 도포자락을 휘날리는 백로들이 우아하게 거닐고 있다. 포플라 잎새가 재잘거리듯 바람결에 나부낀다. 논에 여릿한 모들이 파릇파릇 자라서 연두 들판이다. 가르마처럼 뻗은 수로가 손짓하는대로 옆길로 새서 돈다. 걷기가 편하고 좋기만 하진 않다. 난폭한 자동차가 부르릉 뀌어대는 방귀가 고약스럽고 걷는 사람을 위한 갓길조차 없으니 옹색하기 찍어 없다. 차를 마주보면서 눈에 잘 띄는 옷을 입고 걸어야 한다. 지옥은 천국으로 만들 도로의 반사열에 얼굴은 석양주 마신듯 벌써 붉은 노을이다. 딱딱한 아스팔트에 발뒤꿈치가 아파서 두꺼운 양말을 신고도 운동화 바닥에 생리대를 깔았다. 그제서야 푹신하다. ㅋㅋ
석유도 아끼고 이산화탄소도 적게 배출하고 공기오염과 지구 온난화를 막으려면 보행자 천국을 만드는 정책이 절실하다. 한낮이 지나서 마니산이 보이는 서쪽해안에 닿았다. 30도 넘는 날씨에 걸어야할 피치 못할 사연도 없으니 느티나무 정자에서 꿀맛 같은 낮잠을 잤다. 일몰까지 바닷자락을 끼고 도는 길이다. 오랫동안 지켜본 낙조. 해무 짙은 수평선에 해가 달걀노른자처럼 익었다.
섬엔 일주도로 공사 중이라 큰 트럭들이 질주한다. 산을 통째로 무너뜨려 해안가에 딱 붙여서 아스팔트를 깔면 조립식 가건물에 횟집부터 다닥다닥 들어서고 간판이 어지러울 건 안봐도 비디오. 섬 둘레 100km면 자동차로 1시간 반, 생선회 몇 점으로 배불리고 ‘볼장 다봤다’며 쓰레기만 남기고 돌아갈 도시인들만 꼬일 뿐. 관광단지니 방조제니 성장 환타지에 희생시킨 환경은 한번 망쳐버리면 회복불능이다. 점령군처럼 밀고 들어가 개발하고 파먹다가 폐기시키고 다른 곳으로 몰려가 또 망쳐놓으니 우리가 바로 메뚜기 떼다.
강화는 산과 들, 바다 풍광이 기막히게 어우러진데다가 세계 5대 갯벌을 가진 섬이다. 청동기시대 고인돌부터 섬 전체가 유적지다. 갈매기는 바람의 등을 타고 날고 철새들은 북쪽에서 발진하여 강화 섬에 내려앉는다. 섬 북쪽의 민통선 철조망 안에는 ‘흙길’이 소롯하게 남아있다. 사람 발길이 금지된 갈대밭에 새들은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운다. 청둥오리는 뒤똥거리며 수풀에서 나와 유유자적 물놀이를 하다가 때가 되면 철조망을 보란 듯이 훌쩍 날아 안쪽 들판에서 배를 불린다. 강화 바닷가에 사는 함민복 시인은 말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그렇다. 폭이 일 미터도 안 되게 철조망은 두 겹인데 엉겅퀴가 보라색 띠를 만들고 있다. 경계에는 꽃만 아니라 새가 날아오른다. 깡패 인간들을 접근 금지시킨 결과 자연과 갯벌은 목숨과 자유가 보장되었다. 서해에서 동해까지 ‘아스팔트’ 말고 ‘흙길’을 만들면 전쟁과 문명의 합병증으로 중병을 앓고 있는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는 <평화와 자연의 순례길>이 되지 않을까. 한비야 씨와도 여러 번 같이 강화를 걸으며 말했었다.
“갯벌 고스란히 살려두고 철책선은 설치미술 삼아 외국친구들이 걷고 소문이 퍼지면 세계 평화의 메카가 되고 자연도 보존되고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으니 진짜 멋질 거예요.”
꿈만 꾸지 않고 그날이 오도록 걷고 또 걸으리라.
‘밤의 피크닉’이라는 일본소설은 고등학생들이 졸업 전에 밤을 새워 걷는 보행제가 무대다. 밤을 새워 걸으며 아이들은 사랑과 우정, 집안일. 진로고민들을 털어 놓으며 80km를 간다. 겨우 이틀 짧은 듯해도 죽순이 밤새 쑤욱 자라듯 아이들은 훌쩍 자란다. 우리도 이제부터 걷는 길을 만들면 좋겠다. 이미 섬을 뺑 돌아 광성보 초지진등 조선시대의 돈대가 수십 개 남아 있으며 땅기운이 가장 센 마니산에 낮은 산들이 아기자기하고 양명한 햇살이 너른들 가득 내리 쪼여 강화降華 아니던가. 흙길 자전거 길을 만들면 딱 좋을 천혜의 조건이다.
대관령 옛길. 문경새재길이 아름답지만 짧아서 아쉽고 감질 난다. 전국에 걷는 길을 찾고 만들고 이어서 어른 아이 국토순례하면 자연과 나라사랑 하는 마음 절로 우러나리라. ”
저녁은 식량보급 지원을 나온 선배가 꽃게탕을 사줬다. 하루분의 걷기를 끝내니 다리가 질질 끌리고 어기적거린다. 엉덩이 붙인 것만 좋아서 신나게 먹었다. 걸은 수고는 내 다리가 했지만 알고 보면 온통 협찬이다. 길가의 꽃들, 흰색 백로한테 고마움을...어머니가 당신의 낡은 등산바지를 허리를 꿰메서 줄여 주신 것 역시 협찬...식후 ‘껌’ 일발장전 해준 오하라도 고맙고 왕 언니가 물려준 하얀 잠바는 자동차가 날 피해주길 바라면서 입었다. 우아사 회원에게 선물 받은 골프양말(발목이 졸려서 가위로 잘랐다)..갯벌 펜션의 황토방값을 내준 조직원도 있으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우정들이다.
강화섬 한바퀴- 월요일 마지막 코스 끝
월요일...모녀가 걸었다.
한방에 낑겨 자니 잠버릇이 제각각. 가르릉...쿠루릉...커억컥..고단하니 잘들 잔다. 새벽 3시에 잠이 깨어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날이 밝자 다섯 시에 혼자 살금살금 빠져 나왔다. 문가에는 팬션 주인이 길 떠나면 먹으라고 달걀을 삶아서 얌전히 놓았다. 달걀 한 개를 집어 들고 새벽 상큼한 공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장화리에서 동막 해수욕장을 거쳐 전등사까지 가다보면 다들 천천히 일어날테고 나중에 합류하면 되니까.
황진이처럼 겨울밤 한허리를 베어내듯이 시간을 내서 온전히 걸을 수 있는 사람 많지 않다.
우선 형편이 안받쳐주고. 엄두가 안 나고 걸을 필요도 못 느낀다. 뭐하러 그딴 짓을 하나도 싶고. 직장 일에, 집안일에, 제사에, 조카 결혼식에...강아지가 걱정 되서...밀린 일감에...밥벌이에 시간 못 내고...일상은 힘이 쎄서 우릴 잡고 놔주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단 며칠만이라도 오감이 깨어 있는 채 온전하게 내 시간으로 살 권리와 의무가 있지 않은가.
긴 오르막 길, 하얀 찔레꽃 청순한 향기가 새벽 공기 속에 엷게 퍼져있다. 상큼하다. 반대편 쪽에서 고개를 오르던 자전거를 탄 젊은 남자가 자가 말을 시킨다. 이른 아침 복장도 어수선한 여자에게.
“어디 가요?” “동막해수욕장 가요.”
“자전거 타세요” “아니예요. 걸을 꺼예요.”
“거기 멀어요, 왜 걸어요? ” “그냥 걸어요.”
“하느님이 걸으라고 시켰어요?”
썰렁한 물음에 할말이 없다. 안탄다고 했더니만 그냥 가버린다. 짧은 순간, 자전거 타고 저 남자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달리면 재수 좋은 거 아닌가. 고개를 젓고 다시 걷다보니 바로 밀려드는 후회. 혼잣말로 나오는 기도.ㅋㅋ
하느님! 그제는 커피배달 아저씨를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우리가 젊은 남자라고 꼬집어서 기도를 안해서 그러신줄 다 알아유. 오늘은 신경써서 자전거와 젊은 남자를 함께 보내주셨는데 ....미련한 중생이 굴러 들어온 복을 발로 찼구만유~아까버라. 지나간 자전거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하느님 다시 자전거 한대만 보내 주시믄 안될까요?
오토바이 소리 요란해서 보면 여성 농민이 떡하니 타고 온다. 멋지다. 길가 밭에 배낭이 떨어져 있길래 임자없는 건 줄알고 휘휘 둘러보니 저 앞에 김매는 아주머니. 수건 물병 간식이든 일터용 배낭인 것. 도시여자의 무식함이라니. 농민이 남자라는 편견을 버리자구.
호젓하게 걸어왔다. 전등사 근처의 나물 집, 널찍한 평상에 자릴 잡고 일행을 불러낸다. 걸어서 4시간인데 차로 오면 15분이다. 버스비로는 900원어치, 택시비로 따지면 한 만원 쯤 될까. 내가 산보 나간 줄 알고 느긋하게 아침잠을 즐긴 조직들이 합류하여 ‘걸은 자’ 에게 밥보시를 해준다. 때죽나무와 아카시아 흰꽃이 우수수 날리는 평상에서 동동주 한잔에 도토리 묵사발에 나물밥 참기름 넣고 썩썩 비벼 넣으니 꿀맛이다.
점심을 먹고 나자 들장미파는 다 떠나고 딸아이가 합류했다. 한낮에는 기온이 벌써 30도로 치솟는다. 모녀가 헝겊인형처럼 널 부러져 늘어지게 한잠 잔 뒤 광성보로 갔다. 전등사 앞 온수리 84번 도로는 너무 혼잡하여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길은 굉성보에서 해안도로를 걸어 <강화역사관>까지다. 그나마 자전거 도로가 있지만 그늘 없이 땡볕이다. 결국 길가 트럭에서 냉커피 한잔을 나눠 마셨다. 3일 동안 마신 커피 총량이 딱 한잔이다.
나무그늘에 자리 잡고 소주파티를 벌이는 일행들이 나그네를 불러 세운다.
‘아줌마 캔 게 뭐요?“ 엄마 핫바지에 허름한 배낭은 나물장수처럼 보인다. ’바늘특공대‘가 만들어 준 모자가 너무 더워서 밥집에서 뚜껑을 잘라내고 시침질을 했으니 허수아비 모자다. 자꾸 소주나 한잔하고 가라고 붙잡는 것을 주저앉으면 맘 약해 질까봐 지나쳤다.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도 아득해 보이는 강화다리. 한 발짝씩 걷다보면 그사이에 다리가 이사 가지 않는 한 결국 닿게 마련. 넘어가는 석양에 내 얼굴도 불타오른다.
딸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보니 영락없는 우리 엄마 자세. 그 안에 마포를 주름잡던 관광계 오야 할머니의 모습도 있지 않을까. 오리표 운동화에 몸뻬 바지를 입고 전국구로 놀러 다니셨던 그분의 핏줄이 어디 갔겠냐 내속에 흐르겠지. 마지막 날, 딸과 같이 걸은 건 오래 기억될 모녀추억이다. 오늘날 걷기 싫어해도 내 나이되면 저 역시 길로 나서겠지. 유전자의 꼬드김이 얼마나 무서운데. ㅎㅎ
걷다보면 아는 노래란 노래는 죄다 흥얼거리게 된다. 테이프 늘어지듯이 부르고 또 부른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 하하하하 웃으면 그 소리 들리겠네~ 달나라까지~앞으로~ 앞으로~
인간이 한평생 걷는 거리는 지구를 돌고도 남는다고 하니 걸어서 온 세상 사람들 다 만나보고 싶다고 소리 높여 부른다.
나팔꽃에 귀 대보고, 구름 이름 부르며, 별자리도 알아 맞추던, 나무 뒤에 숨던, 어스름 저녁에 술래잡기 하던 풍경은 지워지고 도시생활의 소란함과 분주함이 자리 잡은 인생....
관계에 집착하는 내가 보인다. 보여. 속에 두려움과 외로움, 고통의 면적을 숨기려 잔머리를 굴린다. 행복하지 않은 것도 죄, 사랑하지 않는 건 더욱 큰 죄. 미련과 아둔함으로 한 세월 가는데 맞바람에 따귀를 몇 대 얻어맞았다. 산들 바람 타고 너풀너풀 날개 짓도 했다. 백로 따라 외발로 서보기도 하고 비싼 밥?먹고 헛기운도 뺐다. 그래 철 안 나도 좋다. 씩씩하게만 살아다오. 명호야.
단 사흘간의 출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한 밤. 온몸이 제각각 다리 따로 허리 삐그덕 관절 시큰 아우성쳐서 오히려 깊은 잠이 안 든다. 한 100km는 걸었을까. 날씨를 베풀어준 하늘과 땅, 바다 산 반달 구름까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오래된 몸도 고맙다. 눈을 감으니 선하게 떠오르는 풍경 사람들. 벌써 그리워진다. 나 제대로 바람 들은갑따. 민들레 홀씨마냥 두둥실 가벼워졌으니~.
벌써 일년전 일이다. 이 글은 몸을 살리는 다이어트 여행 후기에 실렸다.
아무나 누구라도 맘대로 어디든지 걸으라고 꼬드기기 위해서..
~~사진은 마지막 종점 강화역사관에 도착해서.
햇볕에 그을고 석양주를 마신듯 붉어진 얼굴이다. 후련한 심정으로.
강화. 새들도 명상을 하는 섬 (여성신문)
강화, 새들도 명상을 하는 섬
아무래도 난 조증이다. 머리 꼭대기 백회혈에서 김이 모락모락 날 지경으로 일거리를 늘어놓고 포맷도 못하고 허부적 거리는걸 보면.
잿빛의 매캐한 공기 속에서 찌들어 가며 무거운 몸과 마음을 끌고 까칠한 채 살아
가자니 누군들 자연의 품이 그립지 않겠는가. 그러나 오고 갈 때의 체증과 관광지
의 번잡을 생각하면 차라리 방콕이 낫다고 집에 눌러 있기 일쑤. 쇠털 같이 많은 날이라고 하지만 지지고 볶다 보면 털 뽑힌 새같이 몇줌 안되는 날만 고작 남을 터,
목숨 다하면 소나무 옷입고 실컷 잘 수 있으려니 밀린 피로와 잠, 숙제 타령은 접고 설 연휴에는 어디로든 떠나보자. 자주 산과 바다의 순정한 기운을 흠뻑 마셔 닳아 가는 몸과 마음을 충전해보자.
강화도의 외포리에서 카페리를 타고 석모도를 찾아간다. 가까운 거리지만 바다를
건너는 설레임과 뱃전에서 새우깡을 던지면 멋지게 낚아채는 갈매기를 볼 수도 있다.
섬에는 기도처로 유명한 보문사의 '마애석불'이 있어 사람들은 대개 절 뒤편의 400
계단을 올라 눈썹바위까지만 갔다온다.
좀더 호기심 있는 사람이라면 염전 가운데 소금창고를 지나 '어유정항'이나 해수욕장이라고 말하기 민망한 갯벌이지만 '민머루 해수욕장'을 찾아 볼것이다. 또는 섬의 뒤를 차로 돌아 일주하며 영화 '시월애'의 촬영 장소였던 하리를 지나칠 것이다. 곳곳에 예쁘게 지은 카페도 통나무 민박집도 많이 늘어났다. 여기까지도 무척 괜찮은 새끼줄이긴 하나...
바뜨, 내가 권하는것은 이 섬에 솟아오른 작은 산맥의 등뼈를 달리는 능선 종주다. 해명산 낙가산. 힘이 남으면 상봉산까지 줄기차게 걷는거다..
배가 닿자마자 보문사행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나즈막한 고개를 올라간다. 자그마한 초가 교회를 지나 전득이 고개에서 내리면 우측으로 해명산 등산로다.
해발 300여 미터 밖에 안되고 고개에서 시작하면 절반은 올라간 거라 힘은 안든다. 노란 리번이 매인 등산로가 외길로 꿈틀대면 뻗어있고 양옆은 탁트인 바다라 거칠 것이 없다.
남쪽에서 시작된 해명산을 넘고 나면 왼쪽 마을길로 내려서도 좋다 여기까지 2시간.
계속 북쪽 산줄기를 걸으면 마애석불 위를 지나 고갯마루 억새밭 무덤가에 이른다.
여기가 내가 좋아하는 명상터.
청명한 날이면 인공조명과 화장으로 찌든 얼굴에 햇살을 쪼여도 좋고 바람이 불면 몸을 맡겨 겹겹이 쌓인 번뇌와 욕심을 풀어 헤쳐도 기쁘리라.
바위에 걸터앉아 양손으로 눈을 가리고 귀를 접고 거칠고 신선한 대기를 흠뻑 들이
마시면 바람소리에 몸 전체의 세포가 우웅하고 울리는 것이 느껴진다.
소나무도 되었다가 돌멩이도 되었다가 바다도 되었다가 골을 넘는 세찬 바람에 등을 떠밀려 세상으로 내려오면 보문사 종점....나에게 돌아갈 곳이 있었던가.
(수년전 새해맞이 여행지로 강화 석모도를 소개했던 글이다.
지금은 너무 개발이 되어 가기가 겁날 정도다.
그래도 산속에 들어가면 간판과 시설물이 안보일테니
다시 한번 종주 할 마음만 굴뚝같다. 사진은 멀리서 바라본 석모도의 상봉산이다,)
강화도 순례길 <한국일보 서화숙 대기자>
[서화숙 칼럼] 강화도 순례길
8월말의 태양 볕은 따가웠다.
그 날 강화의 최고 기온은 30.3도. 여자 넷이 강화도 북단을 걷기 시작한 오후 두 시 반에는 조금 떨어졌겠지만 세 시까지도 30도가 넘었다(기상청 관측). 땀이 물처럼 흘렀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 더운 줄 몰랐다. 오른쪽으로는 개펄과 바다가 펼쳐졌고 그 너머 북한 땅 개풍군의 민둥산이 따라왔다.
찌는 듯 더운 날도 이렇게 좋은데 선선한 가을이나 따뜻한 봄날은 얼마나 좋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칼칼한 겨울은 나쁘랴 싶었다.
넷 가운데 하나는 한의사 이유명호씨로 강화도 순례길을 만드는 운동을 한다. 전단 뿌리고 확성기 들고 하는 운동이 아니라 걷는 운동이다.
● 물새떼 반기는 한국판 산티아고
이씨가 강화도 걷기에 빠진 때는 수년전이다. 강화산에 올랐다가 바다와 그 너머를 보았다. 바다쪽으로 걸어가보니 바다를 따라 길이 이어졌다. 철책이 막아서 답답했지만 바다의 아름다움을 가리지 못했다. 가을이면 청둥오리가 수도 없이 날아왔다.
헐벗은 개풍군은 안쓰러웠다. 생태와 분단이라는 이 시대의 화두가 저절로 떠올랐다.
강화에는 고인돌과 단군성지인 마니산이 있다. 천주교 성지와 불교 명찰도 있다.
그는 스페인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다면 한국에는 강화도 순례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온 몸으로 사색하는 이들을 강화도로 초대하고 싶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꼭 이 길을 걷게 하고 싶었다.
그부터 강화도를 걷기 시작했다. 본섬을 일주하니 사흘이 걸렸다. 좋았다. 문제는 차에게는 허용된 길이 뚜벅이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 포장된 찻길 너머에는 그보다 훨씬 좋은 흙길이 있는데, 군부대가 통제한다는 점이었다.
군대 덕분에 걷기 좋은 길이 지켜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군대로 인해 갈 수가 없었다. 자동차는 포장도로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정자 연미정으로 보내줘도 사람은 못 가게 했다.
최근 들어 걷기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방마다 걷는 길을 만들지만 며칠을 걸을 수 있는 길이 없다. 차량통행이 뜸하겠거니 싶어 국도를 걸었다간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차량에 비명횡사할 수도 있다.
전국에 차도를 만들 때는 걷는 길(인도)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7월26일자 칼럼 '내 마음의 국도')을 편 후 독자 메일을 받았다. "작년에 섬진강을 걸어서 걷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곡성, 구례 지나 하동까지 걷다가 놀라 자빠질 뻔했습니다.
인도도 없는 국도 길을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데 옆으로 지나는 차들이 어찌나 무섭게 달려대는지, 묵상은커녕 내가 왜 시간 들여 돈 들여 이런 위험한 일을 하고 있나 후회만 몰려 오더라구요." 이 독자는 마음껏 걷는 길을 찾아 9월에 산티아고로 떠난다고 전했다.
비록 산티아고처럼 한 달짜리는 못되어도 이들에게 강화도는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다. 비행기표도 필요 없고 겨울이면 물새떼가 비상을 한다.
문제는 철책선으로 구분되는 제한구역이다. 간첩의 접근을 막기 위해 설치된 바닷가 철책선에 대해 정부는 단계적으로 없애겠다고 발표하고 동해안에는 일부를 걷어냈다.
강화도는 에로틱하다. 결코 나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곳곳에서 방문객을 조바심나게 만든다. 저 산자락을 돌아볼 수 있다면, 저 너머에 들어가볼 수 있다면…. 교교함은 섬 북단 철책이 둘러쳐진 군사시설 보호구역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이곳을 살짝이라도 들춰볼 기회를 얻은 이들은 강화도와 혼연한 한 몸이 될 날을 꿈꾼다.
△ 늦가을 강화도는 아늑한 유년의 기억을 떠올려준다. 봉천산 아래에서 창후리 포구까지 들녘 수로를 따라 걷고 또 걸으면 바다에 닿는다.
한국적 원형질을 그대로 지닌 곳
강화도는 여성적이다. 쏟아지는 햇볕과 날 서지 않은 바람이 섬 전체를 부드럽게 감싼다. 들녘은 만추에 빛난다. 아무도 배제하거나 밀어내지 않지만, 누구도 쉽게 파악하거나 귀속할 수 없다. 국내 4대 강 가운데 유일하게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역이 트여 있는 한강 하구는 뭇 생명들의 젖줄이다. 섬 북단을 휘돌아 내리며 펄에 몸을 댄 것들을 먹이고 키운다.
강화도는 역설적이다. 군사적 대치가 섬의 평화를 지켰다. 생태와 자연과 토착민의 살림은 쇳스러운 무기들이 결집된 휴전선 끝자락에서 오히려 편안했다. 강화도의 길은 그래서 밟는 길이 아니라 스며드는 길이다. 서울의 지척인데도 수도권에서 시작해 전국을 뒤흔든 개발 광풍은 아직 48번 국도를 휩쓸지는 않았다.
“자 이번에는 랩송을 시작합니다.”
11월3일 오전 11시, 봉천산 꼭대기. 일군의 여성들이 흔들흔들 몸을 놀린다. 산불 감시초소 옆에 써붙여진 시구가 랩 버전으로 바뀐다. “청산은 날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요~요.” 북쪽의 송악산, 광덕산, 물가 마을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북녘 땅이 훤히 내다뵈는 봉우리에서 춤을 추는 이들은 이날 아침 강화군 하점면사무소 앞마당에 모인 ‘강화 번개’ 참석자들이다. 수년째 강화도 구석구석을 ‘걸어온’ 이유명호 한의사를 중심으로, 오한숙희 여성학자, 서명숙 (사)제주올레 대표,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주간, 정정엽 화가 등이 눈에 띈다.
△ 봉천산 중턱에서 바라본 강화도 일대.
산 아래에서 봉우리까지는 불과 1.2km이다. 운동화 신고 편안하게 산보 삼아 들기에 맞춤하다. 틈나는 대로 쉬고 놀며 올라도 40분이면 족하다. 15분 남짓 올랐을까. 시야가 탁 트이며 섬과 일대가 한 품에 안긴다. 단정하게 구획된 들녘에는 수로가 흐르고, 석모도·교동도 너머 서쪽 바다까지 너르게 펼쳐진다. 늦가을 햇살에 천지가 반짝인다. 봉천대는 예부터 서민들이 천제를 올리던 곳이다. 관이 마니산에서 천제를 지냈다면 민은 봉천산에서 하늘을 모셨다.
제주도에서 걷는 길을 만들고 있는 서명숙 대표는 “제주의 풍광이 드라마틱하고 이국적이라면, 강화도는 유년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한국적인 것들의 원형질을 그대로 지닌 곳”이라며 “풍경에도 음악과 같은 장르가 있다면 강화도는 편안함과 아늑함으로 분류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야, 갯벌, 수로 같은 ‘시시한 풍경’은 현대문명이 굉음을 내며 작살낸 것들이기에 더 애틋하다.
수로를 따라 걸어 바다에 닿다
김포에서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빠져 달리다 보면 어느 틈엔가 내비게이션이 작동을 멈춘다. 지도에도 길이 없다. 철조망이 삼엄하게 쳐져 있다. 해안에서 꽤 떨어진 봉천산 역시 북쪽 봉우리는 일반인 출입 금지이다. 방문객이 오를 수 있는 곳은 남쪽 봉우리의 서남쪽 능선뿐이다.
고려 고종이 학생들을 모아 공부시켰다는 월곶리 연미정도 군사시설 보호구역에 속해 있다. 연미정 절벽 아래로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해 한 줄기는 서해로, 또 한 줄기는 강화해협(염화강)으로 흐른다. 그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지만, 군부대 허가 없이는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북쪽으로 적북돈대, 의두돈대를 거쳐 불장돈대를 꼭짓점으로 돌아 서쪽 구등곶돈대, 인화돈대를 지나 창후리 무태돈대에 이르기까지 철조망이 계속된다. 길은 강에서 멀었다 가까웠다 한다. 허가 없이는 강과 땅이 만나는 경계에 발을 들일 수 없다. 흐르는 물길이 휴전선이다.
△ 강화도 북단을 돌아 서쪽 인화리에 이르면 48번 국도의 끝자락이다.
강화도 최북단 마을 철산리에서 북쪽 개풍군까지는 지척이다. 가까운 곳은 물폭이 불과 1.7km이다. 두 해 전 빈 페트병 다섯 개를 묶고 헤엄쳐 넘어온 용감무쌍한 ‘귀순 동포’도 있었다. 물길을 잘 만났기에 무사했지, 잘못 탔다면 강화도를 코앞에 두고 백령도쯤 떠내려갔을 것이다.
언니들과 나들이에 나서면 두 가지가 좋다. 첫째, 허덕대며 쫓지 않아도 된다. ‘간세다리’(게으름뱅이를 뜻하는 제주도 말)가 될 수 있다. 앞사람 발자국만 따라 ‘고지를 정복’하는 식의 등산이 아니라 틈나는 대로 쉬고 노는 입산이다. 봉천산은 능선이 완만해, 아이들과 노인들도 쉬엄쉬엄 오를 수 있으니, 정복욕 강한 이들은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두 번째, 입만 가도 된다. 찐 고구마, 김밥, 떡, 오이, 과일, 각종 차… 이날 등장한 먹을거리만도 셀 수가 없다. 야채수프까지 보온병에 한가득 담겨왔다.
봉천대에서 몸을 풀고 내려오는 길, 석탑을 만난다. 봉은사지 5층 석탑이다. 봉은사는 개성에 있던 고려의 국가 사찰로 고종 19년(1232) 수도를 강화로 옮길 때 함께 옮겨왔다. 강화도는 39년간 고려의 왕도였다. 외침과 부침의 역사가 곳곳에 스며 있다.
석탑 주변은 수십 명이 앉아 수건돌리기를 해도 좋을 만큼 그늘이 넉넉하다. 풀밭도 폭신하다. 두어 시간 등산을 마치고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고, 내처 바다까지 걸을 이들은 이곳에서 신발끈을 다시 묶는다. 하점초등학교 앞에서 길을 건너 들판으로 내리면, 그때부터 ‘걸어서 바다까지’이다. 수로를 따라 걷고 또 걸으면 바다에 닿는다.
강화도를 걷는 묘미는 섬 북단 군사시설 보호구역의 해안 철책길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성묘 등을 이유로 외지인이 오기는 하지만 이곳을 드나들 수 있는 이들은 현지인들뿐이다. 외지인은 신분증을 맡기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앞서 10월7일 현지인과 함께 찾은 강화 북단은 천혜의 ‘생태적 요충지’였다. 부지런한 개리 몇 마리가 벌써 겨울을 나러 왔다. 먹이를 잔뜩 잡아먹었는지, 뒤뚱대며 기분 좋게 ‘과악, 과악’ 놀고 있었다. 인적이 닿지 않은 광활한 습지가 모두 이들의 놀이터다.
△ 10월7일 강화도 북단의 철책 너머로 겨울 철새 개리들이 노닐고 있다.
강화 북단은 남북의 화해 국면에서도 여전히 긴장이 서려 있다. 오랜 대치에 따른 긴장이 아니다. 지금의 것은 개발과 보존이 맞선 팽팽한 긴장이다. 남북 정상이 한강 하구 공동 이용 등을 담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에 합의하기 전부터 온갖 장밋빛 개발 구상들이 쏟아져나왔다. 10·4 공동선언은 이들 구상에 날개를 단 셈이 됐다.
계획이 현실 된다면 ‘한심해’ ‘열바다’
한 대형 건설회사는 영종도부터 강화도를 거쳐 개성까지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59.9km의 고속도로를 놓을 계획을 짜고 있다. 인천시는 강화 본섬과 석모도·교동도를 잇는 제방을 쌓고 조력발전시설을 두겠다고 나섰고, 환경부는 영종도 북단에서 강화 남단 일대를 매립해 해상공원을 만들기 위한 사전 조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력 대선 주자는 이곳에 아예 여의도 면적의 10배에 달하는 인공섬을 짓겠다고도 공약했다.
이곳을 찾기 바로 전날, 한강 하구에 쌓인 모래라면 앞으로 20년은 채취해도 넉넉하다는 뉴스가 각종 언론에 쏟아져나왔다. 동행한 고은광순 한의사는 개풍과 강화도를 잇는 연륙교 자리로 꼽힌 철산리의 한 지점에서 “지금 나오는 계획이 현실이 된다면 저 바다는 ‘한심해(海)’, 혹은 ‘열바다’로 길이길이 불릴 것”이라고 말했다. 뭇 생명들이 다 죽어나갈지 모른다는 우려이다. 실제 김포 쪽 한강 하구가 개발되면서 머나먼 강화 남단 동막의 개펄까지 점점 딱딱해지는 것으로 관찰됐다. 물 흐름이 급격히 바뀌어 먼 바다로 떠나가야 할 퇴적물들이 쌓인 결과로 추정된다. 조류 전문가들은 강화도 개발로 새들이 번식처를 위협받으면 일부 종은 급격히 멸종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람들이 즐겨찾는 강화도는 마니산, 전등사, 동막 해변 등이 위치한 섬의 남단이다. 섬의 생태도 주로 이곳을 중심으로 한 얘기다. 섬 북단은 체계적으로 조사를 한 적조차 없다. 날아다니는 새들의 개체 수 정도만 파악됐다. “거기 들어가면 지뢰에 다 죽을 텐데 누가 함부로 들어가느냐”는 얘기가 떠돌기도 했다.
△ 봉천산 봉우리에서 한눈에 내다뵈는 북녘땅. 가운데 뾰족한 산이 송악산이다.
환경·생태주의자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각종 개발계획을 세우기 이전에 최소한 이곳의 생태 환경이 어떤지, 어떤 생물종이 서식하는지 확인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항변하고, 정부와 지자체와 개발업자들은 남북이 공생할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환경·생태적 가치를 유보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고속도로를 놓겠다는 건설업체 담당자는 “사과에 머리카락 굵기의 바늘을 찌르는 정도일 뿐”이라고 도로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했다. ‘개발’과 ‘보전’이 평화롭게 공존하기란 남북 통일보다 요원한 것일까.
강화도가 그저 좋아 12년 전 가족과 함께 들어왔다는 김순래(50) 강화고 교사는 “남북의 화해와 번영을 위해 물길은 풀되, 막개발은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가령 교동도는 북쪽 바다가 군사경계지역이라, 강화 본섬을 오갈 때 물때를 잘못 맞추면 15분이면 되는 뱃길이 남쪽으로 빙 돌아 한 시간 넘게 걸린다. 김 교사는 “풀어야 할 것은 이런 소모적인 일들”이라며 “개발 소식에 들썩이는 사람들은 땅을 소유한 이들이고, 절반 이상은 외지인들”이라고 귀띔했다.
강화도를 아끼는 이들은 그런 탓에 철조망을 걷지 않는 게 좋다고 입을 모은다. 강화도의 자연을 지켜준 ‘생태 보호선’이었기 때문이다. 철조망을 그대로 두고 그 옆으로 평화 순례길을 만들자는 얘기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유명호 한의사는 “분단의 역사, 개발과 생태의 긴장, 미래의 평화까지 고루 체험할 학습장”으로서의 ‘걷는 길’을 제안한다. 돈을 아무리 들여도 이만한 천연 학습장은 절대 만들기 어렵다는 새로운 ‘개발’ 논리이기도 하다.
한강 하구 깃대종 삼총사 개리, 재두루미, 저어새… 일산대교 등 건설 뒤 찾아드는 수 줄어
한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하는 생물종을 ‘깃대종’이라고 한다. 생태계가 얼마나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는지 가늠할 중요한 잣대라는 뜻이다. 펄 속에 머리를 파묻고 먹이를 찾는 개리, 유려한 맵시를 뽐내는 재두루미, 주걱 같은 부리를 휘휘 저어 먹이를 얻기에 이름이 붙여진 저어새는 한강 하구의 깃대종 삼총사이다. 넓은 습지와 농경지, 다양한 식물과 저서생물, 어패류 등을 고루 갖춘 한강 하구는 새들의 안식처이다. 그중 철조망으로 막혀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강화 북단은 새들의 낙원이다.
△ <철새지킴이 노빈손, 한강에 가다> 뜨인돌출판사 제공
거위의 조상인 개리는 전세계 5만 마리 정도 생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과 동북아로 나뉘어 월동하는데, 동북아에서는 우리나라, 그중 한강 하구에서 집중적으로 볼 수 있다. 10·11월에 머물다가 한겨울에는 남쪽으로 이동하고, 2·3월에 다시 나타나 먹이를 얻은 뒤 시베리아로 이동한다. 개리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서 자라는 매자기 같은 기수식물의 알뿌리를 먹고 산다. 최근 들어 급격히 개체수가 줄고 있다.
역시 겨울 철새인 재두루미도 매자기 알뿌리를 파먹는데, 개리가 완전 초식성이라면 재두루미는 잡식성이다. 일반적으로 두루미는 낟알을 먹지만, 강화도를 찾는 재두루미는 펄에서 갯지렁이와 게도 잡아먹는다. 일산대교와 이산포 나들목 등이 건설되면서 이산포와 장항습지를 잠자리로 하던 재두루미가 잠을 설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들이 다니고 불빛이 밝고 소음이 많아지면서다. 먹이가 많아도 잠자리가 뒤숭숭하면 월동지를 바꾸게 마련이다. 1970년대 2천 마리 넘게 우리나라를 찾았으나 지금은 500~800마리 정도를 꼽는다.
저어새는 세계적 희귀종으로 환경부도 멸종위기 야생종으로 분류했다. 지구상에 1천~1500 마리 생존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유일하게 동북아에서만 서식하고 여름철 우리나라에서 번식한다. 한강 하구의 유도와 강화도 일대 섬과 무인도에서 새끼를 친다. 바위에다 둥지를 틀기 때문에 사람들, 특히 낚시꾼을 극도로 경계한다.
*도움말: 윤상훈 녹색연합 국장
붉은발말똥게를 아시나요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가 61년 만에 발견… 대형 공사는 서식에 치명적 영향
△ (사진/ 백용해 제굥)
강화 북단은 멸종위기종인 붉은발말똥게의 서식에 큰 영향을 끼치는 곳이다. 붉은발말똥게는 1941년 일본 연구자의 보고 이래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가 지난 2002년 한강 하구에서 61년 만에 처음 발견된 종이다. 서식 조건이 까다로운 이들은 해수와 담수가 만나 어우러지는 강 하구에서도 해수의 영향이 가장 높게 미치는 지역에서만 산다. 하지만 바다 가까이 염도가 높은 곳에서는 살지 않고, 참게처럼 완전 담수에서도 살지 않는다. 한강 하구는 서해에서 유일하게 이들의 서식 조건을 갖췄다.
붉은발말똥게의 주 서식처는 장항습지와 곡릉천 하구로 강화 북단과는 거리가 있지만, 강화 본섬과 석모도, 교동도를 이어 조력발전을 하거나 연륙교 등을 건설하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게는 어미 배 속에서 일정 시간 인큐베이팅된 다음 세상에 나오는데, 처음에는 몸뚱이에 눈과 꼬리만 달린 모양새다. 언뜻 보면 장구벌레와 비슷하다. 이들은 꼬리를 흔들며 조류가 흐르는 대로 멀리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거치며 자란다. 수면에 둥둥 떠다니며 플랑크톤을 먹이로 하다가, 어미처럼 10개의 다리가 생겨난 다음에야 땅을 붙잡고 몸을 댄다. 강화 일대가 개발되면 한강 하구 물의 흐름이 크게 바뀌어, 서식 환경이 뒤죽박죽된다. 특히 대형 공사가 진행되면 물속 부유물이 많아져 먹이량과 활동량에 치명적인 역향을 끼친다.
도움말: 백용해 녹색습지교육원 원장
강화올레 수로를 걸어서 바다를 만나다.<하점교-창후리포구>
강화올레, 걸어서 바다를 만나다 <하점교 창후리 수로>
짧은 결혼생활을 하고 어린 두 자식을 데리고 출가한 나.
아빠 몫의 일부까지 힘닿는 대로 커버해야 할일이 많다.
사실은 제대로 한건 없다.
그냥 밥 안굶기고 키운것만도 내가 대견하긴 하지만..
심봉사가 지팡이 짚고 청이 손에 끌려가듯이
작년에는 야간신행이라고 바람은 내가 잡았지만
사실은 아이 뒤를 따라 걸었었다.
아들이 이번에는 낚시를 가잔다.
비린내 묻혀 오는게 싫지만 건전야외활동 교육이니까
적극동조에 얼른 따라 나선다. 지난주엔 미리 장비구입비도 집어주었다.
물고기가 눈을 뜨고 입질을 시작하는 새벽에
낚시터에 자리 잡으려면 동트기 전에 떠나야한다.
간만에 모자간에 아웅다웅하며 안개 깔린 길을 달려
수로에 도착하니 물안개가 보얗게 올라온다.
들판엔 모내기하는 농민들로 분주하고
하얀 백로가 유유히 날개짓을 한다.
아이옆에 김밥과 물을 챙겨주고
난 홀로 들판 길을 정찰 나간다.
“야. 엄마...이리로 걸어 가볼껴. 각자 쏠로 인생을 살자구.
멋있는 남자랑 눈 맞으면 혹시 따라 가버릴지도 몰라
찾지 않아 주시면 감사하겠어. 히히.“
“ 어? 그러셔..누가 말려서 못갔나? 엄마 시력 별로라는거 세상이 다알거든요.
잘 보구 따라 가셔요.” $%^&*
긴 수로를 따라 논길 사이를 걷는다.
간간히 다리가 걸려있고 흘러가는 물길은 비단폭처럼 반짝인다.
저 끝자락 쯤이면 바다에 닿으리라.
와~~그냥 푸른 들인줄 알았더니 가까지 다가서니 보리가 새파랗다.
6월이면 누렇게 익으려나 초록물결이 넘실댄다.
청보리밭에서 종달새가 솟아오를 때쯤이면
춘정을 못이긴 청춘들이 숨어들기도 한다는데 그럴만도 하네ㅋㅋ
보리줄기를 한줄기 꺽어 까끌한 털들을 얼굴에 대어본다..
짙은 잿빛 흑로가 날개짓을 한다.
우아하게 바람을 타는 동작을 눈으로 따라가다 내 몰골을 보자니
까망모자.티 바지..배낭까지 눈만 내놓은 까마귀같다.
이앙기로 모심는 것을 쭈그려 앉아서 구경을 했다.
모판에 촘촘히 박힌 것을 싹이 뭉개지지 않게 어찌
콕콕 심는지. 참 신기하기도 하여라.
말로는 농사쉬워 졌다고 하지만 모판을 들었다 놓았다
허리가 휘고 쎄가 빠질듯한데....
왠 까마귀같은 여자는 길을 묻는다. 민망 미안...
아저씨 바다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해요?
저쪽으로 쭈욱 가면 창후리고..
다리건너 왼짝으로 틀면 망월리요.
망월리라. 달을 바라본다는 동네. 창후리는 교동가는 배선착장이고.
혼자 씩씩한척하며 걷는 들길정찰이 끝나간다.
뒤돌아보니 연두빛 논사이로 하얀 가르마처럼 쪽 곧은 길을 지나
색시하게 구불구불 휘어진 수로제방길이
아스라하다.
조금만 다가서면 갯벌 서해바다.
갈매기가 끼룩끼룩하고 병아리같이 뿅뿅 우는 새들도 무리지어 난다.
두시간 쯤 걸어서 바다에 당도했다.
팔 벌려 바람을 맞고 펄쩍펄쩍 뛰기도 했다.
갯벌에 포복하듯 자세를 낮추고 오줌도 놓고
찐 달걀도 까먹고 ...눈을 가늘게 뜨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오래도록.
이 순간은 누구엄마도 선생도 딸도 아니고
노래가사처럼 진심으로 그냥 ‘나’ 였다.
환청처럼 울리는 핸드폰도 꺼놓고 종적을 감춘 엄마가
절룩거리며 돌아오자.
왜 아저씨 못만났어? 기개가 대단하더니 패잔병같네....
나, 고개 도리도리. 대신.... 걸어서 바다를 만났어.
친구들과 같이 와서 오늘 탐사해둔 “걸바” 걸을거야.
엄마. 근데 요즘 왜 걸을 궁리만 해???
으응~~그동안은 일과 육아 잡다한 활동들이었잖아.
친구들은 나의 과거였고 고향이었는데 이젠 나의 미래며 노후보험이야.
나이들며 자식들한테 목매달고 개기지 않고 친구들과 놀 궁리하니까
솔직히 말해봐. 너 다행스럽지? 히히.
그대들은 나의 비빌 언덕이며, 어울려 먹는 두레밥상,
힘들고 억울하면 편 들어주는 아군,
갈증을 채워주는 동네우물이고 슬픔을 나눠갖는 장바구니.
행복 감사 사랑의 소식을 전해주는 우체통이지.
걸으면서 내내 그대들들 생각 많이 했다.
여기 같이 와서 걸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하늘과 땅이 눈꺼풀처럼 맞닿고 땅의 자락이 바닷물을 적시는 이곳.
들판에 친구들을 풀어 놓으면?
춤추듯 걸어가며 함박웃음을 지으면 얼굴 주름살이 활짝 펴지리라.
벌판을 휘감는 바람에 몸을 맡기면 찌들린 가슴이 크게 부풀리라.
도시에서 교양과 자세로 포장된 굳은살과 껍질이 벗겨지겠지
뽀얀 속살과 초롱한 눈망울만 살포시 남지 않으려나.
이렇게 놀 궁리에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가 참 좋다!
걸으면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제대로 가사 아는 게 없어서
새타령 심지어는 노들강변을 부르며 팔 휘젓다 말았다는 거.
이참에 명랑가요 공부도 해야겠다.
<개념도>
하점면 사무소 뒷산이 동쪽이다. 수로길을 바라보면 오른편이 북쪽 별립산
왼쪽이 고려산 능선, 저 멀리 서쪽 해지는 방향에 두둥실 떠있는 산은 석모도다.
수로는 벌판의 동쪽에서 시작하여 서쪽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군데군데 하점교 삼거천 창후교가 나타난다. 그 길을 걷는 것이다.
<수로 찾아가는 길>
신촌그랜드 백화점 뒤에 강화버스터미널에서 버스가 자주있다.
강화읍 버스터미널에서 내리면 바로 하점면 가는 군내버스를 탄다.
‘하점면 사무소’에서 하차 후 맞은 편 길건너 들판길로 내려서
수로를 찾는다. 수로를 따라 서쪽 석모도를 바라보고 걷는다. 약 4킬로.
종점은 창후리 포구다. 무태돈대를 들려서 낙조를 보고 버스를 타면
하점면사무소를 지나서 강화버스터미널로 귀환할 수 있다.
<맛집>
강화는 저녁에 길이 막힌다. 아침 일찍 소박한 백반을 주는 “우리옥”이 있으니
일찍 들어가서 따뜻한 밥을 먹고 올레를 시작하는 것도 좋다.
하점면사무소 맞은편에는 건강손두부집도 괜찮다. 송해 삼거리 우체국 옆의 ‘푸른언덕’도
정말 맛있다. 들판 수로길에는 간판도 가게 전무하다. 물과 간식은 준비하는 게 필수.
화장실은 하점면사무소와 창후리포구를 이용한다. 강화벌판의 바람, 북서풍을 정면으로 맞는다.
첫댓글 이걸 좀 퍼가고 싶은데 막아놨네요. 아쉽다. 내가 사는 곳, 내가 좋아하는 강화를 내 친구들에게도 알리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