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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촌처럼 지내야 하는 나라 中國(Zhongguo 중궈, China)
<長江(Changjiang)을 거슬러 오르면서
④ ; 구이저우(貴州), 윈난(雲南)
厚堂 고 광 창
1. 구이저우(貴州 Guizhou 귀주)
이곳은 漢族으로부터 소외된 지역이라 ‘소수민족의 天國’이라 불릴 만큼 소수민족들이 많이 살았다. 그런데 중•일 전쟁으로 장제스 국민당 정부가 임시 수도를 충칭(重慶)으로 옮기게 되자 이 때 중국 각지에 살았던 중국 국민들이 충칭으로 피난 오게 되었는데 충칭이 그 많은 인원을 모두 수용할 수 없게 되자 그 피난민 일부가 남쪽인 이곳 ‘구이저우’(貴州)로 밀려들면서 이곳에 살고 있었던 소수민족들은 자연히 漢族에게 밀려나게 되었다 한다.
지금 현재 ‘구이저우’의 큰 도시나 평야지역은 漢族이 살고 소수민족은 남동부 지방 野山이나 奧地로 밀려나 살고 있다. ‘구이저우‘는 인구의 35%정도가 서로 다른 소수민족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소수민족들은 수시로 민족 특유의 축제를 하며 즐기고 있다고 한다. 특히 남동부 지역 인구의 72%는 먀오족, 등족, 기타 소수민족들의 混成村이라 한다.
省都인 ‘구이양(貴陽)’에 도착했다. 오는 길이 구불구불하고 도로 확장공사가 진행되는 곳이 여러 군데 목격되었는데 ‘구이양’ 시내에도 큰 건물들 공사하는 곳이 여러 곳 눈에 띈다. 하여튼 ‘구이저우(貴州)는 현재 공사 중’이라는 푯말을 써 놓아야 할 것 같다.
구이양(貴陽) 북쪽으로 160㎞ 떨어진 곳에 ‘쭌이(遵義)’라는 도시가 있는데 이곳은 1935년 국민당 장제스(장개석)군에 쫒겨 가던 공산당 간부들이 모여 지금까지 활동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일을 협의하던 곳인데 이곳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어 이때부터 마오(毛)가 권력을 장악하는 핵심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공산당 정부는 ‘쭌이회의’라고 부르며 이곳을 聖地처럼 여기고 있다고 한다.
여기 ‘구이저우’에서 볼거리는 중국에서 제일 큰 동굴인 ‘즈진(織金 직금)동굴’과 중국 제일 큰 폭포인 ‘황궈스(黃果樹 황과수) 폭포’다. 이곳을 가기 위해 저녁때 쯤 安順으로 갔다. ‘安順’은 구이저우 서부지역의 상업중심으로 소수민족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길거리에는 여러 색깔의 전통 복장을 한 소수민족이 걸어 다니고 있고 가게의 주인들도 전통 복장을 하고 있다. 소수민족 마을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호텔(3星級)을 정한 후 체크인 하고 나오려고 하니 호텔 직원이 우리를 부른다. 黨(공산당)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는데 외국인은 3성급 호텔에서 잘 수 없다는 것이다. 4성급이나 5성급 호텔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짐을 빼라는 것이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어리둥절해서 그 이유를 알고 따지기 위해서 당 사무실을 가겠다고 하니 안 된다고 앞을 가로 막는다. 이곳은 외국인 호텔 숙박까지 당 사무실에서 간섭하는 지역인 것 같아 불쾌했다. 앞쪽에 있는 4성급 호텔을 가리키면서 그곳으로 가라고 해서 그 호텔로 옮겼다. 4성급 호텔은 정원도 예쁘게 가꿔놓고 방안 인테리어도 고급스럽게 잘 해 놓았다. 하지만 3성급과 4성급 호텔요금 차이는 꽤 크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3성급 호텔을 즐겨 찾는다. 그런데 왜 외국인은 4,5등급 호텔에만 묵으라는 걸까? 시내 관광을 포기 하고 우리끼리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 해본 결과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이곳 ‘구이저우’는 관광자원이 많지 않아 외국 관광객이 거의 없어 4,5등급 호텔을 찾는 여행객이 없으니까 공산당 당 사무실에서 4,5등급 영업을 도와주기 위해서 외국인을 강제로 4,5등급에 배정하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뒷맛은 안 좋았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이해하니 마음이 편했다.
‘즈진(織金 직금) 동굴’은 安順에서 기차나 버스로 갈 수 있는데 3시간 정도 걸린다. 기차에서 내리니 역 앞에 즈진동굴 가는 봉고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즈진동굴은 높이 150m, 동굴 안 넓이 175m인데 동굴 길이는 10㎞정도로 무척 길어 중국에서 가장 큰 동굴이다. 관광인원이 10명 이상이 모여져야 안내원이 안내를 시작하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구역을 나누어서 동굴 안에 조명장치를 해 놓고 안내원이 설명을 시작할 때 조명을 켜고 안내원의 설명이 끝나면 조명등이 꺼져버리는데 안내원이 중국어로만 설명을 하니까 우리는 알아들을 수가 없어 사진만 찍으려 해도 무척 바빴다.
작은 통로로 이어진 거대한 공간들이 연이어 있고 그 속에 칼슘이 퇴적하여 여러 가지 모양과 나선형 기둥들을 만들고 있는가 하면, 때로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솟아있는 기둥들이 별세계의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동굴 벽면은 여러 가지 모양이 그려진 예쁜 커텐을 두른 듯 아름다웠다. 織金동굴(금으로 짜놓은 동굴)이란 말이 어울리는 동굴이었다. 그러나 길이가 10㎞나 되고 관람하는데 3시간 이상 걸린다고 하는데 안내원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차츰 지루한 느낌마저 들어서 우리는 도중에 관람을 포기하고 동굴을 나와 시내 구경을 하면서 점심을 먹고 安順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조금 전 찍은 사진을 보니 여러 가지 희귀한 모양은 그대로인데 굴속에서 눈으로 보았을 때 황홀한 빛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아마 조명 때문에 더 황홀하게 보였던 것 같다. 중국 최대의 동굴인데 관광객이 많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황궈스(黃果樹 황과수) 폭포’는 安順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 걸렸다. 폭포는 길이가 81m, 높이가 74m인 거대 폭포로 입장료는 30元이었다. 황궈수 마을 입구에서 내려 걸어들어 가 폭포 바로 뒤편에 있는 수이렌동 동굴로 들어가면 폭포가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름철 우기인데다가 며칠 전 내린 비로 인하여 수량이 많아 폭포가 내는 천둥소리가 요란했고 폭포의 물안개가 장관을 이루었다. 방수복장과 신발을 준비하지 않아 신발과 옷이 좀 젖었다. 이곳에 黃葛榕(황갈용- 황갈색 맹골보리수 나무)가 널리 분포되어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폭포에서 나와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마을을 구경하면서 물길을 따라 상당히 걸어 내려와 싱이(興義 Xingyi)가는 버스를 탔다.
싱이(興義 Xingyi 흥의)에서 매력적인 마링(馬領 Maling)협곡을 갔다. 싱그러운 협곡 안으로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다리를 건너가니 눈앞에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장관이다. 황궈수 폭포보다 더 멋있는 것 같았다.
또 싱이(興義 Xingyi)시내에서 30분 정도 가면 완펑린(萬峰林 만봉림)에 갈 수 있다.
사발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긴 카르스트형 봉우리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 있는데 10,000개가 넘는다고 해서 ‘萬峰林’이라고 한단다. 총면적은 2,000㎢로 싱이시의 2/3를 차지하고 있고 동서 길이가 200㎞나 된다고 한다. 치솟은 봉우리도 예쁘지만 봉우리 사이사이를 개간한 농지의 모습이 그림보다 더 예쁘다. 그 중 유명한 밭이 빠과텐(八卦田 팔괘전)인데 옹기종기 펼쳐진 밭 모양이 팔괘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봄철 유채꽃이 만발했을 때는 물론 봄부터 가을까지 온 들판이 녹색으로 물들어 녹색 세상을 만든다고 한다. 중국은 땅덩어리도 크지만 별별 모양이 다 있다. 하기야 우리나라도 이에 못지않은 산이 있다. 금강산은 일만이천봉이 아닌가! 이곳처럼 사발을 엎어 놓은 것 같이 예쁘지는 않지만 ---
윈난(雲南 Yunnan 운남)省 쿤밍(昆明 Kunming 곤명)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서둘러 싱이(興義 Xingyi 흥의)기차역으로 향했다.
2. 윈난(雲南 Yunnan 운남)
‘윈난(雲南)’의 이름은 글자 그대로 ‘구름의 남쪽’을 의미하는데 일년내내 온화한 기후로 각종 야생 화초와 식물이 잘 자라 ‘식물 왕국’ ‘천상의 화원’이란 별명이 붙어 있는 고장이다.
윈난에는 26개 소수민족이 주로 省의 남쪽(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국경)에 살고 있는데 이는 省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깝다.
※ 몽골이 쳐들어 왔을 때 이들 소수민족들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등으로 밀려 내려갔고 윈난의 한 소수민족은 집단으로 타이랜드(태국)로 내려가 泰國의 主流民族이 되기도 했다.
(1) 쿤밍(昆明 Kunming 곤명)
윈난의 省都인 쿤밍(昆明 곤명)은 ‘봄의 도시’(春城)라는 별명을 지닌 도시로서 해발 1,890m에 위치해 있는데 온화한 날씨 때문에 호텔이나 택시에 온•냉방 장치가 없다. 1992년 스페인 바로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의 영웅 황영조 선수의 연습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는 먼저 茶상점을 찾았다. 윈난이 중국에서도 이름난 차 생산지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많은 차를 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윈난省 지방 정부 광장 앞에 있는 텐푸밍차(天福名茶)가게에 들렀다. 가게가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고 40대 후반의 주인장이 친절하게 보였다. 좋은 차를 끓여서 우리를 대접하면서 우리 요구 사항을 책크한다. 우리가 주인장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그 부모님과 아내가 와서 인사를 한다. 아마 가게 안쪽에 살림집이 있고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모양이다. 자녀들을 물어보니 딸만 한 명 있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인구 억제 정책으로 漢族에 한해 1가정 1자녀 갖기 운동을 펼치고 있어 이집에서도 딸 하나만 낳은 모양이다.
광주시내 차를 즐겨 마시는 분들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의 회장이 우리와 동행인이어서 주문하는 차의 종류도 고급이고 양도 많으니 주인이 무척 즐거운 표정이다. 우리 일행은 윈난 관광이 끝나면 上海로 다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上海 기차표 예매를 부탁했더니 흔쾌히 승낙한다. 여행 중 어려움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해결해 주겠다고 장담한다. 우리는 한 짐을 덜었다. 중국에서 자유 여행하는 경우 가장 어려운 일은 기차표를 예매하는 일이다. 거리에 따라 며칠 전에 예매하는데 여행 도중에 표를 예매하러 쿤밍까지 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명절 앞두고 표를 예매하면 창구가 붐비듯이 이곳에서도 장거리 표 예매는 전쟁을 彷佛하는 것처럼 치열한가 보다. 우리 일정을 살펴보더니 몇 군데는 자기가 잘 아는 사람에게 우리 일행을 잘 도와드리라고 메모를 써 주기까지 했다. 숙소와 식당을 정하는데 까지 배려를 해 준다. 참 좋은 사람이다. 어려운 일도 무엇이든 도와주겠다고 장담하는 걸 보면 이 주인장이 공산당 당원이고 간부급 인사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곳 중국에서는 사람과의 관시(關係)를 중시하는데 이 주인장은 관시가 좋은 사람인 것 같다.
茶전문가답게 茶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이곳 윈난이 중국에서도 유명한 茶 생산지이고 모두가 즐겨 마시는 푸얼(普洱 puer 우리가 말하는 보이차)차는 푸얼(普洱)이라는 지역에서 생산하는데 깊은 산속 100년 가까이 오래된 높은 나무에서 잎을 채취하기 때문에 채취하기도 어렵고 量도 많지 않아 가격이 비싸다고 한다. 보성 차밭을 보면 사람들이 사람 키 보다 낮은 차나무를 기르면서 그 나무에서 찻잎을 따던데 이곳 푸얼(普洱)차는 다르구나 ---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여자분이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여자 기사가 없을 때여서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곳 중국에서는 여자 기사들이 택시, 버스, 트럭, 트랙터, 포크레인 등 중장비 차를 모두 운전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운전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는 말을 덧붙이며 웃는다. 운전석 옆에는 우리의 물병격인 차통(茶桶)이 있었다.
쿤밍의 주요 음식은 치궈지(汽鍋鷄 기과계 -뚝배기에 약초와 닭고기를 넣고 끓인 것), 궈차오 국수(過橋米線 과교미선 - 닭고기, 오리고기, 돼지고기를 넣고 끓인 국수) 등이다.
오늘이 마침 우리 일행 중 한 명의 생일이라 케익을 자르면서 축하 해 주었다.
쿤밍시에 있는 ‘윈난민족촌’과 ‘윈난민족박물관’은 소수민족이 많이 사는 고장답게 알뜰하게 잘 꾸며져 있어서 잠깐 구경하고 나왔다.
(2) 스린(石林 Shilin 석림)
스린(石林 석림)은 쿤밍에서 동남쪽으로 78㎞ 떨어진 곳에 있는데 무수히 많은 회색의 석회석 돌기둥 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2억 7,000만 년 전 바다 속 석회암이 지각 변동으로 융기한 후 그동안 물에 침식되고 바람에 풍화된 카르스트 지형으로 여러 가지 동물 모양의 형상들이 눈길을 끈다. 중국에서는 같은 종류가 많이 모여 있으면 숲 같다 해서 끝에 ‘林’자를 붙인다. 스린(石林 석림)이란 ‘돌 숲’이란 뜻이다.
(3) 다리(大理 Dali 대리)
다리(大理)는 쿤밍으로부터 북쪽으로 400㎞ 떨어진 ‘얼하이후’(珥海湖 이해호)남족 끝에 있는 ‘바이족(白族)’ 자치주이다. 바이족은 3,000년 전부터 이곳에 거주해 왔으며 8세기 초 송나라 때 그들은 ‘난자오궈’(南沼國 남조국)를 건설하여 이 지역을 크게 장악했는데 그 흔적이 남아있어 大理(크게 다스리다)라는 지명과 어울린다. 호수의 넓이가 250㎢로 상당히 큰 호수인데 호수 주변에 볼거리가 많고 일주 도로가 있어 미니버스 타고 다니거나 호수를 동서로 횡단하는 페리를 타고 양쪽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어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大理 - 麗江 - 虎跳峽 - 샹그릴라 구간은 옛날 茶馬古道 교역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오늘날은 중국 10대 관광지로 지정되어 있다.
※ 차마고도(茶馬古道) - 옛날 중국 宋나라는 遊牧民인 여진족(金 나라)과 몽골족(元나라)의 騎馬部隊 습격을 자주 받았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는 말(馬)이 필요했고 ‘티베트’ 遊牧民은 비타민을 얻기 위해 茶가 필요했다. 이들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티베트의 馬은 송나라로 보내고 송나라의 茶는 티베트로 보내게 되었는데 이때 활용했던 무역로가 4,000m가 넘는 험준한 산악 도로였고 이 도로를 茶馬古道라고 부른다. 이 도로는 ‘실크로드’ 보다도 200여 년이나 앞 선 것이다. 馬를 잘 다루는 티베트 商人들이 말(馬)등에 소금, 비단, 銀 등을 싣고 茶馬古道를 넘어와 중국에 팔고 대신 중국에서 茶나 곡식을 사가지고 갔다고 한다. 티베트에서 중국으로 올 때는 짐이 많으니까 말(馬)이 여러 마리이지만 티베트로 돌아 갈 때는 가벼운 茶만 가지고 가니까 말(馬) 몇 마리만 데리고 가고 나머지는 중국에 팔고 茶를 사갔다고 한다.
당시 무역경로는 여러 군데 있었지만 가장 많이 이용했던 곳은 윈난(雲南)省에서는 大理, 麗江, 샹그릴라, 德欽이고 쓰촨(四川)省에서는 캉딩(康定)과 더그(德格)였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에 도착한 티베트 상인들이 돌아가기 전까지 쉬어야 할 휴식처가 필요했고 또 다음에 올 상인들을 위해서도 티베트인들만의 주거지역이 필요했다. 그래서 여기 저기 만들어놓은 티베트 집단촌이 오늘날 티베트인 자치주가 되었다고 한다.
(4) 리장(麗江 Lijiang 려강)
리장(麗江 려강)은 다리(大理)의 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地名대로 ‘江이 아름다운 곳’이다. 중국의 베니스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 江邊 계곡에 자리 잡은 관광지이고 휴양도시다. 1996년 규모 7이 넘는 지진이 발생해서 300여 명이 사망하고 16,000여 명이 부상을 입었으나 전통적인 ‘나시(納西 납시) 건축물’은 지진을 잘 견디어 냈다. 그래서 유네스코에서 1999년 리장(麗江 려강)현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리장(麗江 려강)시는 신 시가지와 구 시가지로 나뉘는데 구 시가지에 나시(納西 납서)족의 건축물이나 생활상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많았다. 시가지 도로는 아스팔트가 아니고 돌을 네모지게 잘라서 이어 놓았다. 해발 2,000m 높이에 있는 조용하고 차분하여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다. 우리는 두 차례 다 이곳에 와서 머물렀다. 나시족은 1,400여 년 전 부터 이곳에서 살아온 티베트족의 후예로서 모계(母係)사회라는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아주’(친구)제도는 가정을 꾸리지 않고도 두 남녀가 연인이 되는 것을 허용한다. 두 남녀는 각자의 집에 계속 살면서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 집에서 밤을 보내고 낮에는 돌아와서 부모 집에서 살면서 일 한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에게 귀속되고 어머니가 자식을 양육할 책임을 진다. 남자는 생활비 일부를 지원하는 정도고 아버지임을 인정받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나시(納西 납서)족은 1,000여 년 전부터 상형문자를 써 왔는데 바로 유명한 둥바(東巴 동파)문자다.
구시가지 광장에서는 밤에 나시(納西)족들이 전통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요일별 동네별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나시(納西)족들이 나와서 1시간 이상 함께 즐기는데 볼만했다. 참 즐거움이 많은 민족인 것 같아 행복해 보였다. 먹거리는 윈난 음식은 물론 나시(納西)족 전통 음식도 있는데 한국 여자가 중국 현지인과 결혼해서 한국 음식을 만드는 식당도 있었다. 이곳 들깨가 품질은 좋고 가격이 싸다고 해서 두 번째 갔을 때 조금씩 사가지고 왔다.
(5) 후타오샤(虎跳峽 Hutiaoxia 호도협)
長江의 상류인 진사(金沙 금사)강이 두 巨大한 산 옥룡설산과 허바설산 사이 협곡을 통과하면서 갑자기 급류로 변해서 깊은 계곡을 만들었는데 계곡의 길이는 16㎞이고 강의 수면에서 산꼭대기 까지 3,900m나 되는 아찔한 높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급류가 씻어 내려갔으면 계곡이 이렇게 깊이 파였을까? 계곡은 깊지만 호랑이가 뛰어 건널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다고 해서 虎跳峽(호도협)이라한단다. 이곳부터는 위험지역이라 개별 여행은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리장(麗江)의 여행사에 의뢰했다. 리장(麗江)에서 차를 타고 虎跳峽의 하류 지점인 ‘다쥐’에 가는 도중에 차속에서 위룽쉐산(玉龍雪山)을 봤다. 5,596m로 솟아있는 산은 눈이 녹지 않아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2시간 여 만에 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는 여행사 직원의 안내를 받아 虎跳峽을 구경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 하류, 중류, 상류에서 한 번씩 내려 계곡을 내려다보니 깊은 계곡의 강물 색깔이 푸르다 못해 쪽색이다. 이 푸른 물이 소리를 내며 빠르게 흐르고 있었는데 소리만 들어도 아찔했다. 중류에 오니 옥룡설산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산이다. 흙 한 줌도 없이 벌거벗어 알몸인 바위만 남은 바위산이다. 그래도 부끄러움은 아는지 안개구름으로 온 몸을 가리고 있다. 아랫부분만 보아도 이 산의 덩치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바위 모양 색깔이 玉처럼 예쁘다고 해서 산 이름에 玉자를 넣은 모양이다.
우리는 호도협 상류인 ‘차오터우’라는 곳에서 북쪽으로 3시간을 달려 중덴(中甸 중전)으로 갔다.
(6) 중덴(中甸 Zhongdian 중전)
중덴(中甸 중전)은 해발 3,200m의 고지대에 있는 도시로 티베트와 접경지대에 있어 티베트족이 많이 살고 있었다. 중덴(中甸)은 티베트어로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郊外’라는 뜻이다.
시내에 300년 된 티베트 사원 ‘간단쑹짠린쓰(甘丹宋贊林寺)’가 있는데 라마교(티베트식 불교)식 건물에 600명 정도의 수도승이 있다고 한다.
印度에서 발생한 불교가 티베트에 정착할 때 티베트 전통 신앙의 영향을 받아 변질되어 ‘라마교’(티베트식 불교)가 되었다고 하는데 티베트에도 여러 민족이 살고 있고 ‘라마교’에도 여러 종파가 있기 때문에 종파 간 알력 때문에 일부 종파는 쓰촨(四川)등지로 밀려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중덴 동쪽 25㎞지점에는 푸른색으로 빛나는 비타하이(碧塔海 벽탑해) 호수가 있고 동남쪽 108㎞ 지점에는 바이수이타이(白水臺 백수대)라는 석회암 광산의 高原이 있다. 고원으로 오르는 길이 계단 모양으로 되어 있지만 햇빛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폭포로 인해 길이 미끄러워 말을 타고 올라가서야 탁 트인 시원한 주위 경관을 관람할 수 있었다.
(7) 더친(德欽 Deqin 덕흠)
더친(德欽)은 윈난省의 서북쪽 맨 끝, 시장(西藏 티베트)省과의 경계선에 있는 평균 해발 3,350m되는 곳으로 12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고 하지만 전체 인구의 80%정도는 장족(티베트)이다. 중국 당국에서는 이곳이 제임스 힐튼의 고전 <잃어버린 지평선>에 대한 영감을 주었던 곳이라고 주장하면서 이곳을 지상의 낙원 ‘샹그릴라'(香格里拉신비롭고 아름다운 산골짜기, Utopia’)라고 명명하였다. 그만큼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자연그대로 잘 보존된 곳이다. ‘德欽’은 티베트어로 ‘자연 모습을 恭敬한다’는 뜻이 담긴 地名이다. 우리는 흔히 아름다운 경관을 보면 ‘한 폭의 그림 같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잘 못된 표현이라 생각한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자연 모습을 恭敬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그 모습을 스케치 해 놓은 것이 그림이고 찍어 놓은 것이 사진인데 그림과 사진은 자연에서 보는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곳 더친(德欽)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은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고 싶다.
바로 앞이 시짱(西藏 티베트)이지만 거기에 가려면 외국인은 별도로 출입허가증을 받아야 한단다. 분리 독립운동을 강력히 하고 있으니까 그들에게 독립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그런 조치를 취한 것 같다. 안내원에게 물어보았지만 못 들은 채 해버린다.
리쟝(麗江 려강)에서 출발할 때 겨울옷을 겹겹이 입고 왔는데도 무척 추워 오랫동안 머무를 수가 없어 돌아가는 길을 재촉했다. 자유여행 다닐 때 옷 보따리가 한 짐이다. 사계절 옷을 다 가지고 다녀야 하니까 ---
리쟝까지는 여행사차로 온 후 리쟝에서 직행 버스를 타고 쿤밍으로 돌아왔다.
※시짱(西藏 Xizang 서장)은 본래 나라 이름은 ‘Tibet’인데 중국이 점령한 후 중국의 1개 성으로 간주하면서 중국식 이름으로 시짱(西藏 서장)으로 부르고 있다. 西藏이란 ‘서쪽에 있는 보물창고’란 뜻인데 보물창고에 무엇이 감추어져 있을까 궁금하다.
(8) 루구(爐沽 Lugu 로고)호수
2,685m나 되는 고지대인 윈난(雲南)과 쓰촨(四川)의 경계선에 있는 호수인데 호수 주변에 사는 모쑤어(摩梭 마사)족은 리쟝(麗江) 나시(納西)족의 支派로서 아직까지 母系위주의 女家長制가 남아있는데 리쟝에서는 사라진 모습들이 여기에서는 눈에 띤다.
(9) 사린(沙林 Shalin 사림)
윈난성에는 삼린(三林)이 있는데 그게 바로 스린(石林), 사린(沙林), 투린(土林)이다. 스린(石林)은 쿤밍 동남쪽 78㎞에 있는 걸 이미 보았고 오늘은 사린(沙林)을 볼 차례다.
쿤밍 북동쪽 150㎞ 치아오지아(巧家 교가)에 사린(沙林)이 있다고 해서 그 곳을 가려고 쿤밍 버스 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탔다. 버스 차체가 워낙 낡은데다가 도로 사정도 안 좋고 또 가다가 정차하는 곳에서 오랫동안 멈춰 서 있다. 완행 중 완행이다. 우리가 마음이 바빠 기사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을 해 보았으나 반응이 없다. 2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을 4시간 이상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거기에서 쿤밍가는 버스가 출발했다. 차가 하루에 2번 있는데 막차라는 것이다. 오늘 쿤밍으로 돌아가기는 틀린 것 같다. 또 주차장에서 사린(沙林) 가는 버스는 없으므로 택시를 타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택시를 30분 정도 타고 갔다. 입장료 외에 乘馬費를 별도로 받는다. 말을 타고 관람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린(沙林)을 보는 순간 시루떡을 보는 듯했다. 모래층이 여러 층인데 신기하게도 층마다 색깔이 조금씩 다르고 이것들이 어울리니 무지개처럼 무척 예뻤다. 말을 타고 沙林 층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여기가 '그랜드캐년' 축소판 같았다. 중국이 땅덩어리가 넓다보니 참 신기한 지형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沙林에서 모래가 조금씩 계속 흘러내리고 있다. 걸어서 관람하면 이 모래를 손으로 만질 수도 있으니까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말을 타게 한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모래로 여러 가지 모양도 만들어 놓았는데 그것도 볼 만 했다. 사린(沙林)은 좋은데 쿤밍에서 너무 멀고 교통편도 안 좋으니 무척 아쉬웠다.
관람객이 적어서 들어오는 택시가 거의 없으므로 곧 바로 택시를 타고 나와서 시간 보내기로 안마를 받으러 갔다. 안마사들은 모두 어린 소녀들인데 안마를 손으로 하지 않고 발로 한다. 안마사들이 손은 방 천장에 있는 봉을 잡고 발로 우리 등 이곳저곳을 밟고 다니는데 무척 시원했다. 안마사들 몸집이 적은 편인데 손으로 봉을 잡아 자기 체중을 조절해 가면서 안마를 하는 것 같았다. 무슨 안마법인지 묻고 싶었으나 말이 안 통하니까 말은 입 밖에 내지도 못했다. 밖에 나오니 전깃줄에 제비들이 앉아 있는데 그 수가 엄청 많아서 놀랬다. 50m 정도 두 줄 전깃줄에 제비가 수 백 수천마리가 빈틈없이 빼곡이 앉아있다. 이렇게 한 군데 많은 제비가 모여 있는 걸 처음 보았다. 퍽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10) 옌즈동(燕子洞 Yanzidong 연자동)
이번에는 쿤밍에서 남쪽지방으로 가기로 했다. 남쪽 지방의 중심도시 위안양으로 가는 도중에 제비굴이 있다고 하여 먼저 그곳으로 갔다. 쿤밍에서 남쪽으로 200㎞쯤 되는 建水縣에 燕子洞이라는 제비 동굴이 있었다. 굴 입구 높이가 100m쯤 되는 석굴인데 천장에 많은 제비가 집을 짓고 살고 있고 동굴 바닥에서는 옌와탕(燕窩湯)을 만들어 파는 식당이 여럿 있다. 옌와탕은 명나라 때부터 궁중에서 먹던 요리라고 하는데 제비집을 떼어다가 끓는 물에 넣어 국물을 만들고 거기에 다른 음식을 넣어 만든 탕이다. 제비가 흙을 물어다 집을 지을 때 자기 침(?)으로 흙을 붙이기 때문에 그 침이 우리 몸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한편에서는 높은 사다리를 놓고 석굴 천장에 붙어있는 제비집을 떼고 있고 그 밑에서는 연와탕을 끓이고 있는데 자기 집을 잃게 되는 제비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어 동굴 속이 어수선하였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맛이나 보자는 의견이 있어서 두 그릇을 시켜 나누어 먹었다. 국물은 뽀얗게 보였지만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었다. 중국을 ‘먹거리 천국’이라 하고 중국 사람들은 네 발 달린 것은 책상 다리를 빼놓고는 모든 걸 다 먹는다는 말이 있지만 옌와탕은 별로 인 것 같았다.
(11) 위안양(元陽 Yuanyang 원양)
젠수이(建水 건수)에서 남쪽으로 1시간 여 달려 위안양(元陽 Yuanyang 원양)에 도착했다. 날씨가 후덥지근하다. 더친(德欽 덕흠)에서는 추워서 겨울옷을 입었는데 여기는 반대다.
1,2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다랭이 논으로 유명한 곳이다. 해발 280~1800m되는 곳에 치마 주름처럼 층층이 펼쳐진 독특한 모양의 다랭이 논이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모양과 크기가 다르고 논바닥 색깔도 모두 다른 논들이 주변의 촌락과 산과 어울려 알록달록 무척 아름답다. 또 햇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다채로운 모습이고 구름이 낄 때는 구름이 낀 대로 또 아름답다고 한다. 아! 아름답다 외에 더 할 말을 잊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연 본래의 모습 그대로인 ‘自然 美’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고 광시성 롱성티티엔(龍貹梯田 다랭이 논)과 함께 중국 10대 관광지로 꼽힌 곳이기도 하다. 다랭이 논이 모양은 보기 좋았으나 농사지을 때 기계를 동원하지 못하니 농부들 고생이 많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사진 애호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고 또 그들이 즐겨 찾는 전망 point가 있다고 해서 우리도 거기를 찾아 가서 몇 컷을 찍었다. 책상 앞에 걸어두고 오래도록 보고 싶은 장면이 몇 개는 될 것 같다.
멀리 앞쪽을 보니 저기 남쪽 산 너머에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점심을 해결하려고 동네로 내려가니 식당에 외국 사진사들이 많이 와 있었는데 그들은 동네 사람들과 舊面처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밥은 붉은 쌀 紅米밥이고 반찬은 4~5가지인데 손으로 찢어먹는 절임 채소 쏸차이(?)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다음에는 유채 꽃이 만발한 ‘뤄핑’으로 갔다. 요즘 유채꽃은 흔히 볼 수 있지만
이곳은 색깔도 곱고 꽃밭의 크기가 세계최대라 기네스북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서둘러 소수민족을 보러 ‘망시’로 향했는데 가다 물어보니 오늘이 전통장날이라 장에 가면 볼 수 있다고 한다. ‘입이 서울’이라는 말이 있는데 물어보길 참 잘했다. 전통시장은 그곳 주민들의 애환과 끈끈한 정과 부대끼며 살아온 삶이 녹아있는 곳이다. 그곳에 가면 어쩐지 정겨웁고 따뜻한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장터에 가니 울긋불긋 전통의상을 입은 소수민족이 많았다. 전통의상으로 보아 여러 소수민족이 이 지역에 모여 사는 모양이다. 물건을 사로 온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모두 전통 복장을 하고 있어서 장터가 화려했다. 중국에서 소수민족을 구분할 때 전통 의상을 보고 구분한다고 하는데 정말 전통 의상이 독특했다.
옷의 색상과 모양도 다르지만 모자나 목걸이 팔걸이 발목거리 악세셔리 등이 모두 달랐는데 전통의상을 입은 소수민족들은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왜 여자들만 전통의상을 차려 입고 남자들은 입지 않을 걸까?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의 권리를 어느 정도는 인정해 주고 있다. 省전체인구의 20%이상을 차지한 민족이 있으면 그 민족의 自治州로 인정해 주고 省내에서는 자기 민족어 사용은 물론 민족 학교도 세울 수 있도록 허용하고 省의 행정 책임자도 소수민족이 알아서 뽑도록 하고 있다. 단 군인이나 경찰은 漢族이 맡고 있고 은행, 여관, 식당 가게 등도 漢族이 경영한다. 관내 치안 유지 권한이나 상권은 모두 漢族이 가지고 있고 소수민족은 거기 종업원으로 일한다. 만약 省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민족이 없을 때에는 省보다 작은 규모인 顯단위로 자치주를 허가해 주고 있다. 吉林성 우리 조선족 옌벤(延邊 연변) 자치주는 顯단위 자치주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중국에 한국 관광객이 많아지자 관광지나 호텔, 식당 등에서 한국어를 잘하는 조선족을 데려가기 때문에 옌벤 조선족 자치주의 조선족 인구수가 20%가 못되어 자치주를 해제할 위기에 처했다고도 한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늦은 오후에 쿤밍(昆明)으로 돌아왔다. 오늘 날씨가 좋아서 계획된 대로 여러 가지 것을 모두 보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특히 전통시장에서 소수민족까지 보았으니 ---
다음 ⑤는 : 쓰촨(四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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