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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10)
욥42:1~6
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제10주일
27문: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입니까?
답: 섭리란 하나님의 전능하고 언제 어디나 미치는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의 손으로 하듯이,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잎새와 풀,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먹을 것과 마실 것,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
참으로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그의 손길로
우리에게 임합니다.
28문: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섭리로써 여전히 보존하심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우리는 어떠한 역경에서도 인내하고, 형통할 때에 감사하며,
또한 장래 일에 대해서도 우리의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굳게 신뢰하여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완전히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므로 그의 뜻을 거슬러 일어나거나 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본문은 창45장일 것입니다.
창45:4,5에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분명히 처음에는 자기 형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것과 상인들에게 자기를 팔았던 형들이 미웠을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입니다.
근데, 요셉은 시간이 흘러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45:7,8에 있습니다.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합니다.
즉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생각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 의지에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악을 두고 하나님이 없다고 비난하며, 자연재해를 두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을 무능력한 분으로 무책임한 분으로 취급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주관하십니다. 그 증거로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의지를 주관하시는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악’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믿게 하시며, 자연재해를 통한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게 하시며, 종종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는 것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주관하심으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제26문답에는
26문: “전능하신 성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나는 믿사오며”라고 고백할 때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답: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아무것도 없는 중에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한 그의 영원한 작정과 섭리로써
이 모든 것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심을 믿으며
이처럼, 성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2가지입니다.
하나는 ‘아무 것도 없는 중에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이며, 또 하나는 ’그의 영원한 작정과 섭리로써 이 모든 것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섭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는 창조주에 대한 고백은 있으나,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고백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창조의 하나님으로서 중요한 역할에 해당되는 ‘섭리’를 포함시켜, 창조주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을 더욱더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먼저(첫 번째로), 폭을 넓혀서,
하나님의 작정, 창조, 섭리에 대한 용어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제26문답에도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작정’에 대해서는 소요리 문답 제7문답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이란 그 분의 뜻대로 계획하신 영원한 목적이다’라고 설명하며, ‘그 목적을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라고 보충합니다. 즉 하나님의 작정이란, 토마스 빈센트가 언급하듯이 ‘앞으로 되어 질 일들을 영원 전에 계획하시고 미리 명하시고 정하시고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뜻대로 계획하신 영원한 목적을 하나님의 작정이라 부릅니다.
여기에 대표하는 구절은 엡1:11입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시115:3에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시135:6에도
‘여호와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계획에 해당되며,
하나님이 영원 전에 작정하신 계획을 따라 실행한 것이 바로 ‘창조와 섭리’인 것이다.
소요리문답 제 8문답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작정을 창조와 섭리의 일로써 이루십니다.’라고 정리하고 있는데요,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님의 작정에 따른 것이며, 하나님의 섭리 또한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수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아무 것도 없는 중에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것’입니다.
느헤미야9:6을 보면,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벌코프 목사는 느9:6을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가장 완전하고 아름다운 진술 중 한 구절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지식은
오로지 성경에서 시작되어,
우리에게는 믿음으로만 받아들여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해나 사실에 근거하여 합리적인 판단으로 하나님의 창조지식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믿음을 통하여 성경의 내용을 지식으로 확신할 수 있습니다.
히11:3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우리는 믿음으로만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압니다.
이처럼 믿음만큼 확실한 지식은 없습니다. 은혜로 주어진 믿음만큼 확실한 신뢰를 갖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즉 어떤 교육이나 경험이나 사고를 통해서 아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펴보았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1문답에서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답은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 그의 말씀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이 진리라고 여기는 확실한 지식이며, 동시에 성신께서 복음으로써 내 마음 속에 일으키신 굳은 신뢰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즉 참된 믿음은 확실한 지식이며, 굳은 신뢰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일으키신 결과이며, 은혜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없는 것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믿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섭리’에 관한 용어입니다.
조금 전에 읽었던 느9:6을 보면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라고 했습니다.
‘지으시고’와 ‘보존하시고’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창조와 섭리는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한 절대 주권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떠나 계시지 않고, 붙들고 계시는데, 이 붙드심, 보호하고 계심을 우리는 ‘보존’라고 부르며,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붙들고 보존하시는 섭리가 단순한 보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과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다스림을 뜻할 때, 이것을 우리는 ‘통치 혹은 다스림’라고 부릅니다.
마10:29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보존’에 관한 분명한 말씀입니다.
사45:7에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 다스림’에 관한 분명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보존과 통치’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26문답에서도 ‘또한 그의 영원한 작정과 섭리로써 이 모든 것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심을 믿으며’라고 답하며, 제27문답에서도 ‘섭리란 하나님의 전능하고 언제 어디나 미치는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의 손으로 하듯이,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시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정리해 보면,
하나님의 작정이란 ‘창조 이전, 영원 전부터 장차 있을 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며,
창조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아무 것도 없는 중에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것을 말하며,
섭리란 하나님이 작정 중에 창조하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보존과 통치를
의미하며, 그 중에
보존이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계속된 사역을 뜻하며,
통치(다스림)이란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속되는 행동, 다스림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로 확인해 볼 것은
하나님의 작정과 창조와 섭리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작정과 창조, 섭리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작정에 대해서 소요리문답 제 7문은
‘하나님께서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로
정의내리며,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도 사43:7에서는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라고 말씀하며,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5장에서는 ‘만물의 위대하신 창조자이신 하나님은 그의 무오류의 예지와 그의 뜻의 자유롭고 불변의 계획에 따라 모든 피조물들, 행동들 및 사물들, 곧 가장 큰 것들로부터 가장 세미한 것에 이르기까지 그의 가장 지혜롭고 거룩한 섭리에 의하여 지탱하시고 지도하시고 처리하시고 통치하신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지혜, 권능, 의, 선하심 및 자비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작정, 창조, 섭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그 목적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을 모든 곳에 드러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끔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판단합니다.
즉 하나님의 섭리와 보존, 다스림에 이래저래 시비를 거는 것이죠.
불공평하며, 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근데, 그것은 누구의 판단입니까?
첫째, 우리가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판단할 자격이 있습니까?
우리 같이 심각한 죄성을 가진 인간이, 안과 밖이 너무나 다른 우리가
감히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판단할 자격이 있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불의하고, 불공평하다는 주장은 누구의 기준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선악기준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선해 보이면 선한 것으로, 악해 보이면 악한 것으로 판단할 뿐,
그 판단이 하나님 앞에서 맞다는 보장도 없으며,
선과 악, 공평과 불공평의 기준도 하나님의 그것과는 맞지도 않습니다.
창50:20에 나오는 요셉의 고백을 보시면,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이것이 ‘선’이며, ‘공의’며, ‘구원’입니다.
행2:23에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이 죽음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킨 유일한 화목제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선입니다.
롬9:11에
‘그 자식들이(이삭과 야곱)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하시며, 영원한 작정이며, 계획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선하다 혹은 악하다’고 판단할 조건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의 선과 악에 대한 개념도 매번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달라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지혜에 대하여, 우리의 ‘선악 기준’을 대입시킨다는 것은 그 자체가 불의하며, 불경건한 것입니다.
여하튼 27문답에 기록된 하나님의 섭리
즉 ‘섭리란 하나님의 전능하고 언제 어디나 미치는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의 손으로 하듯이,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잎새와 풀,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먹을 것과 마실 것,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 참으로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그의 손길로
우리에게 임합니다.’
아버지와 그의 손길에서 임하는 모든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의 영광만을 목적으로 할 뿐
그 앞에 ‘선하다, 악하다’ 판단하는 인간의 입은 닫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작정과 연결되어 있는 창조와 섭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자기 영광으로 충만하신 하나님을 예배라고,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확인해 볼 것은 28문답, 섭리의 유익입니다.
28문: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섭리로써 여전히 보존하심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우리는 어떠한 역경에서도 인내하고, 형통할 때에 감사하며,
또한 장래 일에 대해서도 우리의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굳게 신뢰하여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완전히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므로 그의 뜻을 거슬러 일어나거나 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역경에 인내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어떤 역경도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굳은 신뢰와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7문답에 나와 있듯이, ‘가뭄, 흉년, 가난’은 우리가 싫어하는 삶입니다. 가뭄, 흉년, 가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근데,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그의 손길로 우리에게 임한다고 가르칩니다.
저주와 형벌로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임하는 가뭄, 흉년, 가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9:3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또 마10:29의 말씀처럼, 팔리는 참새도 있고, 땅에 떨어지는 참새도 있는 법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세상에서 말하는 모든 역경이 지나는 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기도와 몸부림이 비신앙적인 것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그 목적이 있는 역경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8문답에 섭리가 주는 유익으로
어떤 역경에서도 인내할 수 있는 유익과 형통할 때는 감사할 수 있는 유익과
또한 장래 일에 대해서도 우리의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굳게 신뢰하여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확신과 더불어 모든 피조물이
완전히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므로 그의 뜻을 거슬러 일어나거나 되는 일은 하나도 없음’을
깨닫게 되는 큰 유익이 발생하게 됩니다.
잠16:9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요15:5에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롬8:34-39에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가 주는 최고의 유익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어떤 역경이 우리 안에서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 것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역경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자세히 보시면, 그 분 안에 답이 있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의 십자가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 창조, 섭리 안에 하나님의 영광과 그 분의 사랑만 온전히 충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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