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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마음을 찌르는 칼
https://www.youtube.com/watch?v=lc3oUswqEQc
https://www.youtube.com/watch?v=mK_OQptxp9Q
오늘도 말씀을 사모하시는 심령으로 주님 성전을 찾으신 우리 모든 성도님 들과 혹 함께 할 수가 없어서 유튜브 체널 앞에서 예배에 함께하시는 우리 모두에게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화 감동 하시는 은혜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함께 교독한 말씀을 중심으로 마음울 찌르는 칼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 속의 은혜를 발견하려 합니다.
교독한 말씀은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에 대하여 성경은 기록하기를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하면서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라는 말씀으로 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한가지는 그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모두가 시므온 처럼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 위에 있더라는 말씀처럼 성령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는 시므온에게 기록된 말씀처럼 오늘 주님의 말씀을 들으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 들도 주님의 재림의 날 주님 얼굴을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는 아니죠 죽지 않고 무덤을 경험하지 않고 주님 오시는 날 주님을 맞이 할 수 있다는 성령의 지시를 오늘 다 받으시는 은혜가 있길 소망합니다.
이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살던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성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아기를 하나님께 드리는 의식인 봉헌식을 하기 위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아기를 안고 봉헌의식을 행합니다.
자기가 안고 있는 아기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를 비우시고 오신 하나님이심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그 아기가 성령께서 지시하신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봅니다.
아기를 안고 기뻐하는 시므온을 본 제사장은 아마도 놀랐을 것입니다.
날마다 성전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의식을 행하였던 제사장이 몰랐던 아기 예수를 어떻게 시므온은 알아 보았을까요?
이미 드린 말씀이지만 기록된 성경을 올려드립니다.
눅 2: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어떻게 성전에 들어갔다고 합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사랑하는 성도님들 성전을 찾으실 때마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나오시게 되길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그런 목적으로 나오시게 되길 바랍니다.
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목적으로 주님 앞에 이르게 되길 소망합니다.
예배를 목적으로 삼는 자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 앞에 나오길 소망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산다는 삶의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임집사님이 교회 나오시는 모습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 때는 전화를 하여서 아무래도 이번 안식일은 집에서 예배를 드려야 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라고 했습니다.
함께하는 믿지 않는 남편에게도 선한 감화를 보여야 하니까 코로나로 집합금지 상태에서 때로는 교회를 가지 않는 것도 남편에게 좋은 감화를 끼칠 수가 있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요일도 피아노 반주가 없기에 집사람에게 서툴지만 부탁을 하고요 집사람이 반주 할 수 있는 찬미를 선택하여서 예배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예배가 시작되면 세 식구가 어김없이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정말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는 마음이 그의 몸을 집에 붙잡아 두지를 못하는구나 라고 생각을 하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본 받을 만 한 모습입니까?
지난 설날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기에 그렇게 하시고 잘 다녀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또 오셨습니다.
그러면서 예배에 참여한 것을 얼마나 감사하는지 우리 성도님들 예배에 대하여서는 우리 모두가 다 이런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아멘입니까?
교회에 나오면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 좋은 일입니까?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들의 교회에 나오시는 모습들이 누군가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랍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성전에 들어갔다는 시므온의 이야기는 무슨 말일까요?
내 생각으로 성전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성전을 찾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 마음으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성령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갑니다.
내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고 항상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살아간다고요,
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다 성령의 사람들로 살아가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으로 말도 하고 행동도 하게 되길 소망합니다.
누가 그렇게 살았다고 가르쳐 주고 보여줍니까?
시므온이 그렇게 살았다.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서 구세주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은혜를 입었고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성전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가면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그리스도 유아시기에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 중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스도 유아시기에 그를 영접한 사람들 어떤 사람들인지는 우리 잘 아시죠?
지난번에 이 시간을 통하여 말씀드린 목자들이 있었고요?
누가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 살펴볼 여선지 안나가 있고요.
오늘 아기 예수를 안고 부모를 축복한 시므온이 있습니다.
시므온은 어떻게 예수그리스도를 알아 보았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그 시간에 같은 장소에 함께하게 되었을까요?
저에게는 상당한 관심 주제 였습니다. 여러분들께는 관심있는 주제가 아닙니까?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만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시어서 지금도 아버지의 보좌 앞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흥밋거리가 아닙니까?
카톡을 많이 하다 보면 카톡에 심심찮게 올라 오는 것이 제테크를 이렇게 하라는 미혹의 문구입니다.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주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저의 정보가 조금 노출되어 있다 보니 그런 사람들에게도 노출이 되어서 수입 올릴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라면서 미끼를 던집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쓸데없는 미끼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뿐이 아니죠. 신천지에서도 저에게 작업을 겁니다.
좋은 대화를 하면 그리고 제가 대화를 부드럽게 하면 하나 물었다 싶어서 그런지 작업에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제가 다는 몰라도 조금은 알죠.
그래도 아는척하면 그들에게 제가 알고 있는 귀중한 진리를 나누어 줄 수 없기에 부드럽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다가도 어떨 때 속이 상하고 거짓 것에 넘 심하다 싶으면 저도 심한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금방 대화는 단절 됩니다.
그들 생각에 아 이 사람은 안되겠다 싶으면 그만하는 것이죠.
여러분들은 이런 것보다 돈 버는 이야깃 거리가 더 흥미가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 적인 이야기거리 보다 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흥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에 대하여 그래도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성경의 정보들이 눈에 들어오면 눈이 번쩍 뜨이지 않던가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이야기들이 최고의 관심거리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흥미 있는 이야기 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시므온은 그렇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얼마인지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으나 상당히 고령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성전봉사를 하였던 제사장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도 그럴 수 있습니다.
매일 성전을 지키기 위하여 새벽마다 문을 여는 목사도 장로도 그리고 교회일을 충심으로 받드는 집사들도 예수를 모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지금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는 알 수 있다고요?
비록 직분은 없다 할찌라도 시므온처럼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이런 말씀을 한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눅 2:28-29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주재여 하나님이시여 라는 말씀이죠..이제는 말씀 하신대로는 무슨 말씀입니까?
성령께서 어떤 말씀을 주셨다고 했습니까?
26절을 다시 올립니다.
눅 2: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을 통하여 어떤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까?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시므온은 계속 아기 예수를 안고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눅 2:30-32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내 눈이 무엇을 보았다고 합니까? 주의 구원을 보았다.
시므온이 본 하나님의 구원을 우리도 볼 수가 있을까요?
성경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눈으로 보았고 손으로 만진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입니다.
오늘 말씀에 참여하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 모두가 다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만지는 경험들이 있길 축복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모친 마리아를 향하여 이런 말을 합니다.
눅 2:34-35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저는 오늘 이 말씀에서 한 두가지를 좀 깊이 생각해보려 합니다.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 받는 표적
첫 번째는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은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 받는 표적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무슨 표적이 될 것이라고요?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받는 표적이 될 것이다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일까요?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 21:4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이 말씀은 시 118:22의 말씀을 예수께서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을 건축하는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돌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필요할 줄 알고 가져다 놓았는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돌이 건축장에 있으니 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돌이 되었겠습니까? 거치는 돌로서 많은 사람들의 눈에 가시처럼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초돌을 놓기 위하여 그럴만한 돌을 넣었는데 맞질 않아서 그 버림 받은 돌이 생각이 나서 그것을 집어 넣었더니 맞춤돌 처럼 들어 맞았습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바로 그 돌이야기를 지금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돌은 자신을 가리키는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다른 곳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롬 9: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버림 받은 돌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버림 받은 돌이 길에 있으면서 무엇이 되었다는 것입니까?
부딪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예수그리스도는 부딪치는 돌은 아닙니까?
혹은 거치는 반석은 아닙니까?
마21장에서 예수께서는 그 버림 받은 돌이 거치는 돌 부딪치는 반석이 모퉁이 머릿돌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는 모퉁이 머릿돌이 되어야 할까요?
부딪치는 돌이 되어야 할까요?
어떻게 할 때 부딪치는 돌이 되고 어떻게 할 때 모퉁이 머릿돌이 될 수가 있을까요?
같은 돌인데 이거 아니면 저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시대의 소망은 시므온의 말을 언급하면서 이런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시소 56,57.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다고 말하였다.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자들은 먼저 넘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높임을 받으려면 먼저 반석 위에 떨어져 깨어져야 한다. 우리가 영적 왕국의 영광을 알려면 자아를 퇴위시키고 교만은 낮추어야 한다. 유대인들은 겸비를 통하여 얻게 될 그 영예를 받으려고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구주를 영접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셨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지만 수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넘어지지 않기 위하여서는 먼저 넘어지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 넘어지는 것은 돌에 걸려서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반석 위에 떨어져서 깨어지는 경험이 있어야 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반석위에 떨어져서 깨어지는 경험은 어떤 경험을 말하는 것일까요?
올려드린 증언의 말씀에서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 왕국의 영광을 알려면 자아를 퇴위시키고 교만은 낮추어야 한다“
우리가 영적 왕국의 영광을 알려면 다른 말로는 하늘 소망을 나의 것으로 삼으려면 이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하라고요?
자아를 퇴위시키고 다른 말로는 자아를 죽이고 우리의 교만은 낮추어야 한다
아멘입니까?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의 자아를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에 목박아 버리는 은혜가 있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자아가 있으면 그리스도는 항상 우리에게 걸리는 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아가 죽으면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피할 수 있는 견고한 반석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거치는 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피할 피난처 견고한 반석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자아를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 온전히 못박어 버리게 되길 소망합니다.
자아가 무엇인지는 다 이해하시겠지요.
오늘 말씀에서의 자아는 내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나 사이에 자아가 살아 있으면 예수님뜻에 따라 살지 않고 언제나 내가 주인이 되어서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면 우리는 그분의 뜻을 즐겨 순종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모두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에 줄겨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정말 재림 성도들로 살아가게 되길 축복합니다.
칼이 네 마음을 찌르는 듯 하리라
두 번째는 칼이 네 마음을 찌르는 듯하리라는 말씀을 묵상해 보려 합니다.
시므온은 눅 2:34에서 마리아에게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라고 말을 한 뒤
35절에서는 도 이런 말을 합니다.
눅 2: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칼이 마리아의 마을을 찌르는 듯 할 것인데 그것은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라고요.
이곳에 사용된 칼이라고 하는 용어는 작은 칼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닌 긴 칼을 가리키는 헬라어 ”롬파이어“라는 용어로 쓰였습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은 오늘날 군인들이 사용하는 대검과 같은 짧은 칼을 많이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그 칼을 가지고는 헬라어로는 ”마카이라“가 사용되었습니다.
마리아의 마음을 찌르른 칼은 무엇이 아니고 무엇이라는 말씀입니까?
작은 칼이 아니고 큰 칼이었다.
70인역에는 이 롬파이어를 골리앗의 칼로 번역을 하였다고 합니다.
골리앗의 칼이 컸을까요?
이 큰 칼에 의하여서 어떤 일이 있게 될 것이라 합니까?
”네 마음을 찌르는 듯 하리라“ 지금 시므온의 이야기를 누가 듣고 있습니까?
아기예수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이 듣고 있습니다.
근데 시므온은 큰 칼이 너희들의 마음을 찌르는 듯 하리라 하지 않고 마리아를 향하여 네 마음을 찌르는 듯 하리라는 말을 함으로 칼로 찌르는 듯 경험은 누구가 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까? 엄마인 마리아가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은 누가 여러분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등골이 오싹한 느낌과 불길한 그런 느낌 가지지 않을까요? 마리아도 분명 오싹한 느낌을 잠시나마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오싹한 경험이 무엇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고 합니까?
여러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마리아는 이러한 말을 듣고 아마도 그의 기억속에서 그러한 말들을 잊고 살았을지 모릅니다.
아기 예수가 자라면서 그의 영특함과 효심이 가득한 모습을 보면서 더욱 시므온의 이상한 축복의 말을 잊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즙을 만드실 때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 드리면서 공식적인 첫 이적이 나타납니다.
아마도 그럴 때는 마리아의 마음에도 이제 곧 메시야의 나라가 이루어 질 것이라고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난 예수께서 지난 밤에 폭도들에 의하여 안나스의 법정으로 끌려 가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밤새워 기도하면서 아침에 좋은 소식이 들려지길 기다렸는데 들리는 소문은 사랑하는 아들이 십자가형을 언도 받고 지금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여러분들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믿을 수가 없어, 나의 아들은 그렇게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하나님께서 사람되시어 이 땅을 통치하시기 위하여 오셨는데 어떻게 십자가 형을 당할 수가 있어 그렇게 생각한 마리아는 눈으로 확인하기 위하여 아마도 미친 듯이 골고다로 가는 길로 달려 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중 한 분이 자기가 그렇게 사랑하였던 아들 예수임을 보게 됩니다.
엄마의 마음이 어떨까요?
얼마전까지만해도 환호를 하던 사람들이 조롱하는 그 많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을 밖는 모습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변개할 수 없는 십자가에 못에 의하여 고정된 채로 높이 달리신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도 어머니를 잊지 못하시는 예수의 음성을 듣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예수는 죽으면서 자기의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였습니다.
33년전 갓난 아기예수를 데리고 성전을 찾았을 때 시므온의 이상한 축복이 이렇게 성취될 것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 마리아가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러나 그런 것을 잊게하시고 십자가 이후 마리아는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제자들에게 말하였을 것이고 누가는 오늘 우리에게 까지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는 그 당시 사람들 뿐 아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생각도 들어나게 하십니다.
칼이 네 마음을 찌르는 듯 하리라는 시므온의 예언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 졌습니다.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이 마리아가 생각한 것처럼 생각하였고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라는 것을 들어내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시여 이제 예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예수께서 져야 하실 십자가는 우리의 십자가 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또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가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근데 그 십자가는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질 수 없는 십자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다시 십자가는 우리의 생각을 들어내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되길 소망합니다.
십자가 없는 면류관은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구원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없는 영광을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탄이 가져다 준 사구려 구원입니다.
우리 모두 나를 부인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 감사하면서 지고 우리 주님 오시는 날을 준비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의 십자가를 벗고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그곳에 우리 다 함께 참여하게 되길 축복합니다.
기도
하늘에 계시는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를 감사하면서 질 수 있도록 오늘도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삶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주어진 십자가로 인하여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 때문에 주님을 이렇게 믿고 살아갈 수 있다고 감사하면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눅 2:25-3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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