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물러갈것 같지 않던 무더위가 한풀 꺽이고 아침 저녁으로는 찬바람에 창문을 닫고 자야 하고 푸른 하늘은 높아만 갑니다.
여름이 가기전에 서둘러 지난주에 이어 한번 더 지리산을 찾습니다. 금요일 밤 12시 동서울에서 백무동으로 들어가는 심야버스는 지난주 6대에서 금주는 4대가 산님들로 만석을 이루고 출발합니다.
버스는 한적한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 인삼랜드에 한번 정차한후 마천을 경유 새벽3시40분 백무동에 도착합니다.
버스에 내려 상가마을을 지나면 바로 산행을 시작할수 있는데 하동바위-장터목과 가내소- 세석대피소 갈림길을 만나는데 하동바위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하동바위는 함양원님과 하동원님이 내기 장기를 두었는데 하동원님이 이겨 함양땅에 있는 이 바위를 하동사람들의 바위란 뜻으로 "하동바위"로 이름지었다고 합니다.
심야버스 옆지기와 당일 화엄사까지 종주한다며 이런 저런 산행 이야기 나누며 거의 잠을 못자고 내려오니 때늦게 잠이 오고 몸이 축 처집니다. 900m하동바위는 1시간,시원한 물이 있는 참샘(1125m)까지는 40분을 더 올라가야 합니다.
소지봉(1312)까지는 몸이 안풀린 상태에서 어두운 등로를 갑자기 고도를 높여야 하기에 힘이 드는데 이곳부터는 동이 트고 새소리가 들리며 오르고 내리는 비교적 수월한 산길이 장터목 대피소까지 이어 집니다.
시간에 쫒기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간섭도 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을 즐기며 오르는데 그 많던 산님들을 다 품에 안고 지리산은 조용한 아침을 시작합니다.
동이 트며 잠에서 깨어난 지리산 능선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햇살을 받으며 장터목대피소가 보입니다.(백무동에서 장터목은 5.8km)
산행 3시간 50분만에 장터목 대피소에 올랐는데 지난주와는 불과 일주일 차인데 바람이 불고 쌀쌀해서 양지바른 대피소 건물 햇볕에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진주방면 삼신봉 능선이 아름답습니다.
장터목 대피소(1653)는 삼국시대부터 장이 섰다고 해서 장터인데 산청군 중산리 사람들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물건을 이곳에서 만나 사고 팔았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식수장 가는쪽 낡은 대피소가 있었고 대부분 야영을 하는 바람에 능선 조금만 벗어나면 온통 똥밭이었는데 지금은 135명이 잘수 있는 대피소가 있습니다.
대피소에는 아침을 먹느라 식당안과 밖이 그야말로 장터같습니다. 중산리쪽 계곡과 산 그리고 멀리 섬진강이 유유히 흘러갑니다.
좌측 그림은 세석으로 가는 연하봉이고 우측은 천왕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입니다.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 1.7km 1시간을 올라야 하는데 돌계단이 힘들게 하지만 길목의 야생화와 고사목은 지리산의 상징처럼 되어 있지요.
제석봉의 고사목지대를 지나는데 한국전쟁 직후까지도 수천 그루의 아름드리 구상나무 거목들이 원시림의 장관을 이루고있었다 하는데 자유당 말기에 파렴치한 인간 송충이들의 무자비한
도벌로 인하여 애석하게도 그토록웅장했던 수림은 사라지고 황량한 초원으로 변하여 옛 자취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며 야생화가 천국을 이루고 있습니다.
천왕봉은 동쪽으로 개천문(일명 개선문), 남서쪽으로는 통천문을 통해 오를수 있는데 이들 두 관문 이외에 천왕봉을 향하는 길목은 칠선계곡과 치밭목~중봉을 거쳐
오를 수 있는 험난한 두 길이 있으니 모두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만 주봉에 닿을 수 있어 천왕봉은 쉽게 등정을 허락하지 않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일출을 본 부지런한 산님은 내려가고 방학을 맞은 예산고등학교 한반 학생들과 산님들로 천왕봉은 시끌법석 이고 발아래 중산리는 금방이라도 내려설것 같은 느낌입니다.(그래도 3시간은 내려가야겠지요)
힘들게 올랐으니 차례를 기다린끝에 증명사진도 남기구요.(시간은 아침 9시)
지난주 올랐던 반야봉과 노고단이 멀리 보입니다.
지난 5월 성삼재-천왕봉 종주산행시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고도 11.7km를 가야 한다는 대원사 코스를 포기하고 중산리로 하산했는데 오늘은 대원사로 갑니다. 중산리(5.4km)는 3시간여,대원사는 11.7km로 6-7시간 걸린다고 합니다.
천왕봉에서 마주 보이는 중봉과 써리봉이 만만치 않게 버티고 서 있습니다.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들 중에서 두번째 높은 봉우리가 바로 천왕봉과 마주하며 서있는 중봉(1875m)인데 고도차 40m로 천왕봉에 가려 늘 2인자의 설움을 안고 묵묵히 서있습니다.
중봉은 천왕봉에서 고도를 뚝 떨어트려 내려갔다가 다시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합니다.(30여분) 중봉에서 보는 써리봉(1602)능선을 휘감고 돌아 치밭목산장이 보입니다.
중봉을 오르 내리고 써리봉도 치고 올라야 하기에 생각보다 힘이 들고 또 잠을 설치고 백무동에서 올라온 탓에 점점 지치고 속도가 떨어집니다. 중봉에서 금방이라도 갈것 같던 치발목은 아직도 멀었는지 낌새도 보이지 않습니다.
써리봉에서 본 천왕봉과 중봉이 나란히 서있습니다. 이 대원사 코스는 다른 곳과는 달리 산님을 거의 만날수 없어 더 지루하게 느껴지고 6-7시간의 중압감을 벗어 날수 없기도 합니다.
천왕봉에서 4km 2시간10분걸려 치밭목대피소에 도착합니다. 1971년에 세워진 이곳은 개인이 운영하는 유일한 대피소로 햇반등 물품이 공단 운영보다 조금 비싼대신 하루 숙박은 5000원입니다.
'치밭목'의 유래는 '치나물 밭 길목'에서 생겨난 이름으로 쥐오줌풀을 치나물이라고 하는데 이 부근에쥐오줌풀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40여분 점심으로 빵,맥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니 다시 힘이 납니다. 그래도 대원사까지는 아직도 7.8km를 더 가야만 합니다.
지리산 피아골대피소 함태식옹이 얼마전 산에서 내려가 이곳이 유일한 민간인 대피소로 꽁지머리로 유명한 설악산 소청산장도 공단에서 인수하려 하지만 여의치않습니다.
대피소를 떠난지 잠시후 새재로 가는 지름길을 만나는데 요즘에 거리가 짧은 새재로 내려가 차를 얻어 타고 하산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마음먹고 하는데 대원사 코스로 가야지요 ...하지만 끝도 없어 힘이 듭니다.
그런데다가 중봉,써리봉을 넘으면 대원사까지 쭉 내리막길이겠지 했는데 아니더군요. 물소리가 우렁찬 계곡을 오르 내리다가 사진에서 보는 큰 산 하나를 넘어야만 합니다.(산너머가 유평리)
유평마을 간판이 이렇게 반가울수가....민간인이 운영하는 상점과 민박집입니다.
맑고 시원한 계곡에 물이 많아 소리가 요란한 이곳에서 알탕은 차마 하지 못하고 웃통을 벗고 땀을 씻으니 몸이 가쁜한게 기분 상쾌 그만입니다.
약 2km에 걸쳐있는 유평마을앞 계곡에는 때늦은 피서객과 차량이 도로에 줄지어 서 있는데 유평리부터는 1시간20여분 아스팔트 도로를 지루하게 걸어야만 합니다. 세워 달라고는 안했지만 혹시라도 내려가는 차가 서서 타라고는 안할까...?희망사항이지요.
지리산 대원사는 비구니 스님의 선원으로 이름난 아름다운 사찰입니다. 남한 제일의 탁족처로 꼽히는 대원사 계곡은 1960년대까지 화전민이 살아 왔으며,
지리산의 피아골처럼 빨치산이 기승을 부린 시절에는 낮과 밤의 주인이 바꿨던 곳으로 민족의 아픔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천왕봉에서 13.8km를 내려온 대원사 계곡 탐방 안내소에 4시10분 도착하니 총 산행거리 20.3km, 산행시간 12시간20분(휴식시간 포함)의 오늘 산행을 마칩니다. (백무동-5.8-장터목-1.7-천왕봉-4-치밭목-7.8-대원사-1-주차장)
대원사에서 진주로 나가야 하는데 진주 가기전 원지에서 갈아 타면 1시간여 시간 절약할수 있습니다. 주차장에 힘들게 오니 치발목산장에서 만났던 지리산에서 몇날을 보내고 내려 간다는 경상도 산님이 건네 주는 소주 한잔과 비빕밥으로 시장한 뱃속을 채우는데 밥알을 처음 먹어 봅니다.
세상 참 많이 좋아졌지요.옛말에 진주라 천리길이라는 노래말도 있었는데 20분 간격으로 서울 남부 터미날로 고속버스가 다니는데 17시50분 버스를 원지에서 타니 3시간 10분만에 서울 남부 터미날에 내려 지하철 갈아타고 집에 오니 밤 10시를 지납니다.
산에 다니면서 안 가본 길은 가보고 싶은 충동을 참을수가 없는데 오늘 대원사 지루한 길을 무사히 마칠수 있슴에 감사드리며 2주에 걸친 지리산 산행을 모두 마칩니다. 지루한 글 읽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산행일 2009.8.22 나홀로산행 구남필(knp7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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