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게 빼앗긴 자유
최 방식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며 장수하는 것, 이것은 누구에게나 관심을 끌 수 있는 일이다. 현대의학의 발달과 다양한 채널을 통한 의료정보, 건강식품도 건강하게 장수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그러나 요즈음 코로나 바이러스 출현으로 건강하게 잘 살고 있어도 나도 모르게 전염병에 감염되면 냉혹하게 격리되어 완치될 때까지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치료를 받아야한다.
1월 중순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이 최초로 바이러스에 감연 자로 확진 판정을 받은 후 정부는 주의 단계에서 경계의 수준으로 격상 시켰다. 나는 방송으로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 전염병 확산을 보면서 중국이 심각하네, 오늘은 어제보다 몇 명이나 더 감염되었나 하며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처럼 보고 있었다. 그러다 우리나라에서 첫 발생 자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달라져 매일 신중하게 보도를 지켜보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부 당국자도 중국에 마스크 등 의료장비를 보낸다며 매스컴의 자막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대통령도 머지않아 코로나바이러스가 종식 될 것이라며 승기를 잡은 듯 발표를 하여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끼지 못하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그러나 사태를 안이 하게 보았는지 며칠 후 2월 중순, 분위기는 갑자기 급반전 되었고, 청도 대남병원과 신천지 대구교회의 신도들이 무더기 코로나19 확진 자가 발생하자 대구, 경북 지방의 격랑은 이때부터 시작되었고 급기야 정부는 심각단계로 격상 시켰으며, 전국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무서움과 불안 속에서 전염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만 갔다.
정기적인 각종 모임도 무기한 연기 되어버렸고, 이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간격을 두어야 하며, 다중시설을 피하고 경로당, 교회, 문화공연, 박물관등도 문이 잠겼다. 천 원짜리 마스크 한 장을 사기위해 줄을 어디까지 서야 하고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도 바깥에 나가지 못하고 자유를 빼앗긴 채 구금 아닌 구금생활이 시작 되었다. 고작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TV를 보는 단조롭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자 권태롭고 밋밋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차에 골든 글로브 작품상, 감독상을 수상한 1917이라는 영화를 감상하러 영화관에 갔다. 영화관에 가면서 과연 몇 명이 영화를 보러올까 호기심도 가져 보았다. 점심시간이 좀 지난 시간이지만 넓은 매표소 앞에는 평소 북적거리던 젊은이들은 한 명도 없었고 텅 빈 공간에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나는 외눈박이 인간처럼 혼자였다. 사람들이 표를 체크하는 나를 보았다면 간이 크게 부었거나 아니면 상황판단이 잘 되지 않는 사람으로 볼 수 있었다. 나는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어둠이 깔린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에 다닐 때 한 반에 꼭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 한 두 명이 있었는데 그 학생 같은 느낌이다. 오래전 중국에 직장의 동료들과 워크샵을 갔을 때, 가이드가 여기는 치안이 안전하지 못하니 저녁에 밖에 나가서는 안 된다고 신신 당부를 했었다. 저녁 식사 후 룸메이트에게 치안이 우리나라 보다는 못하지만 호텔 근처는 그런대로 안전한데 행여 사고라도 나면 골치 아프니까 밖에 나가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거야. 호텔로 오면서 차창 밖을 보니 상점들과 가로등도 불이 훤히 켜져 있고 사람들도 많이 다니던데 치안은 괜찮은 것 같아. 야시장도 구경할 겸 밖으로 나가자고 꼬드겨 호텔 밖으로 나갔다. 낯선 이국의 밤거리를 배회하며 상점의 사람들과 물건을 구경하였고, 야시장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보며 밤늦도록 놀다가 자정이 가까울 때 호텔로 돌아왔다. 이 때도 엇박자를 내며 행동하였다.
영화관에는 젊은 연인과 중년 남자 한 명 그리고 나, 모두 네 명이 넓은 영화관에 앉아 상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염병 위험도가 높고 낯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극장을 피하는데, 이 사람들은 코로나19로 인하여 몇 명 입장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여 허를 찌르는 행동으로 느긋하게 영화감상을 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안전 불감증인가, 아마 나처럼 설마 내가 걸리겠나 하며 객기客氣를 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젊은이들의 객기는 애교로 봐 주기도 하지만 지공세대는 추태를 부리는 것이다. 바람이 강하면 납작 엎드려 기다려야 하는 것도 배웠고,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는 것도 배웠는데, 가지 말라고 경고를 했는데도 그 말을 무시하고 2% 모자라는 철부지처럼 행동하는 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영화를 재미있게 감상한 그날 저녁 아내에게 좋은 영화였으니 한번 보라고 권유를 하고 얼마 있지 않아 간호사 출신인 딸이 전화를 했다. 아버지는 연세도 있고 고혈압이 있는 기저질환자인데 다중시설인 극장에 가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라며 이러쿵저러쿵 아이가 어른 걱정을 하였다. 연신 절대 가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 알퐁스 도테의 글 중에 '스갱씨의 염소'라는 콩트가 있습니다. 스갱씨가 기르는 염소가 매일 막대기에 묶여 있고 울타리 안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 속박으로 느껴져 짜증을 부립니다. 저 멀리 펼쳐진 풀밭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풀을 뜯어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열망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염소는 속박을 벗어나 탈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아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었던가. 그는 이리 저리 뛰면서 신선한 풀을 뜯어 먹습니다. 풀밭에서 뒹구는 기분은 정말 하늘을 날 것 같았습니다. 행복한 순간은 잠시, 늑대가 나타납니다. 두려웠지만 사력을 다해 저항합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습니다. 염소는 피를 흘린 채 죽어갑니다. 점점 희미해지는 눈으로 멀리 주인의 집을 응시한 채…
막대기에 묶여 있거나 울타리 안이 염소에게는 불편한 나날이었고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었지만 진정 자신의 삶과 자유를 지켜주는 장치인 것을 깨닫지 못한 염소가 되어버린 이들, 울타리를 벗어나기 전에 자발적인 순종이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바깥은 따뜻한 햇살이 비치지만 아직까지 나뭇가지 사이로 찬바람이 불고 있다. 밖에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 못하고 TV앞에 앉아 리모컨만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이전의 평범한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제야 깨닫는다. 그래도 나는 이 삼일에 한 번 농장에 가서 바람을 쐬며 농사일을 하면 몸은 피곤해도 일하는 재미도 있다. 과수나무 전정을 하며 밑거름을 주고 농사 준비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집에 머무르는 동안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먹는 밉상이 될까봐 설거지는 내가 하기로 자청했다.
사월 중순 어느 날, 며느리가 열이 있고 배에 통증이 있어 병원에 갔더니 고열로 인하여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여 종합병원에 갔다. 진찰과 코로나검사를 받고 내일 저녁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격리를 해야 된다고 하여 집에서 격리를 하고 있다며 아들의 전화를 받고 아내와 나는 무슨 이런 일이 하면서 걱정이 되었다. 며느리는 평소 소심한 성격이라 벌써 몇 개월 동안 손자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안에서만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외부인의 접촉이 거의 없었다. 혹시 아들이 직장에서 옮겨 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라 내심 불안하고 걱정을 하였다. 며칠 전 아들 내외가 우리 집을 잠시 방문했을 때 아들이 약간의 감기 증세가 있었던 것이 마음에 걸린다. 네 살 먹은 손자는 이웃에 있는 외갓집으로 피신을 갔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하자 밤에는 울었다 잠들었다 반복하였고 밤새 울어 온가족이 잠을 설쳤고 마음도 무거웠다.
다음 날 걱정이 되어 별로 할 말도 없었지만 아들과 통화를 하였다. 아내는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믿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고 초조한 마음이 진정이 안 되는지 기도 시간이 길어졌다. 짧은 하루가 오늘 따라 하루가 길게 느껴지며 초조한 하루가 흘러갔다. 저녁이 되어서야 음성판정이 나왔고 고열의 원인은 담석에 염증이 생겨서 발생되었다고 한다. 집안의 분위기는 금방 바뀌었고 며느리가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코로나 검사를 받은 사람이었다.
첫댓글 다행 이네요
환경을 더 신경쓰고 오염되지 않도록 해야 할것 같습니다
인간이 만든 질병같은 느낌입니다.
건강 합시다^^
잘 지내고 계시죠?
전 세계가 코로나로 인하여 대기가 많이 맑아 졌다네요.
그리고 보니 요즈음 미세먼지 경보 주의를 잊고 있었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