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제목을 좀 과하게 잡았습니다. 30년 일하면서 '제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고 누누히 들었고, 경험했으니까요.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에서 제목에 혹해서 클릭했다가 “에잇, 암 것도 아니네” 하신 적 있으실 텐데, 이 리뷰는 그 정도는 아니랍니다^^. 한번… 끝까지 읽어 주시렵니까?
오름 17기 기본반의 마지막 수업 장소는 ‘작은 한라산’이라고도 할 정도로 봉긋하니 멋진 오름, 조금만 올라가면 코 앞에서 한라산을 볼 수 있는 어승생이오름이었습니다. 제주도에 있는 368개의 오름 중 한라산에 46개의 오름이 있는데 그 중에서 일반인이 올라갈 수 있는 오름은 윗세오름과 사라오름, 어승생이오름 정도이고, 나머지는 가시덤불이 많고 길이 험해서 전문가 인솔없이 올라가는 건 위험합니다. 셋 중 가장 만만해보이는 게 어승생이오름이라서 인기가 좋은 듯합니다.
모임 장소인 어리목주차장은 널찍하니 주차장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구경거리가 많았습니다. 금봉, 족은두레왓, 민대가리오름, Y계곡(원래는 한자 丫(가닥 아)모양의 계곡이라는 뜻이었으나 영어Y자로 통용됨), 어승생이오름 등이 빙 둘러 있고, 이곳에서 광령천, 아흔아홉골 선녀폭포, 무수천 등으로 물이 내려가는 곳이라서 작은 습원도 있더군요.
예전 제주 청년들의 놀이터였다던 어리목산장이 탈바꿈한 탐방안내소 뒤로 큼지막한 오름이 보입니다. 어승생이오름입니다. 해발 1,169m, 지름 2km의 큼지막한 오름입니다. 덩치로 보면 군산이 크다고 하는데 보기에는 이쪽이 더 커보입니다. 제주시나 애월 쪽에서 가장 잘 보이는 오름이기도 하구요.
비고 350m로 영실 장군봉 다음으로 비고가 높은 오름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비고는 남쪽과 북쪽의 높이를 합해서 평균을 낸 것이라서 남쪽은 낮고 북쪽은 가파른 어승생이오름의 비고(350m)와 사방이 모두 편평해서 어디서 재도 같은 높이인 산방산의 비고(345m)는 숫자로는 어승생이오름이 더 높지만 실제로 올라가보면 산방산이 훨씬 가파르다는 것도 감안해야 합니다. 실제로 올라보면 200m 정도라서 한라산에 올라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쉽게 도전하는 오름입니다.
입구에서 어승생이오름의 말 뜻부터 배웠습니다. 어승생은 몽골어로 ‘물이 좋다’는 뜻의 ‘어스 생ус сайн[us sain]’이 변했다고도 하고, 한자로 어승생御乘生, ‘임금이 타는 말을 키우는 곳’이란 뜻이라고도 합니다. 조선시대에 제주에서는 바다와 들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한양에 조공으로 올려 보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말이었습니다. 임금님 생신 때 20마리, 정월에 20마리, 동짓날 20마리, 그 외 정기적으로 수백 마리를 조공해야 했고요. 당시 제주 사람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지 저는 감히 짐작도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올려 보낸 말 중에 실제로 태조 이성계가 타던 명필 8마리 중 한 마리가 여기 어승생이오름 출신으로, 바로 위화도 회군 때 탔던 응상백凝霜白이랍니다. <용비어천가8, 70장>에는 ‘응상백은 몸체와 갈기 꼬리가 모두 순백색이고, 눈과 주둥이와 발굽이 검고, 제주에서 나서, 회군 때 모셨다 凝霜白, 純白色, 烏嘴․烏眼․烏腎․烏蹄, 產於濟州, 回軍時御’는 기록이 있거든요.
여기 제가 쓴 과한 제목의 답이 있습니다. 만일 태조가 위화도에서 회군할 때 응상백이 푸푸거리며 뒷발질만 하고 딴청을 피우며 주저했거나, 갑자기 성을 내며 ‘히히힝!’하고 날뛰느라 태조가 말에서 떨어져 다치기라도 했다면 징조가 안 좋다 하며 회군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랬다면 우리 역사의 5백 년을 차지한 조선이란 나라가 시작도 못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태조 이성계를 태우고 제 몫을 제대로 다했으니 응상백은 조선의 99번째 개국 공신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응상백 말고 제주에서 난 말 중에는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의 사랑을 받아 ‘노정盧正’이라는 이름과 정3품 통정대부 이상의 품계인 ‘가자加資’ 벼슬까지 받은 말도 있었고요. 제11대 중종의 왕비였던 문정왕후 때 활약했던 보우대사가 제주로 유배왔다가 억울하게 죽었는데 유언대로 1백년 후에 제주에서 흰 몸에 갈기와 꼬리가 푸른 ‘총이말’로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제주 말 스토리로 유명합니다.
다시 오름으로 돌아가보죠. 어승생이오름 초입부터 서어나무와 제주조릿대가 가득합니다. 숲에 들어왔을 때 느끼는 맑은 공기, 서늘한 기운, 숲은 늘 우리를 숨쉬게 합니다. 우리가 볼 때는 한결같아 보이는 숲도 미세하게 조금씩 변하는데 이렇게 변하는 것을 숲의 천이遷移라고 합니다.
지금은 큼직하고 안정적인 숲을 지닌 어승생이오름도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화산이 폭발하며 떨어진 유황 냄새 풀풀나는 돌덩어리로 가득했을 겁니다. 그 돌 사이에 한해살이 풀의 씨앗이 날아와 싹을 틔우고, 그 다음에는 여러해살이 풀과 키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햇빛을 좋아하는 양수陽樹들이 숲을 이룹니다. 양수가 일정기간 자라면 서로 그늘을 만들어 잘 자라지 못하게 되고, 그 사이에 햇빛이 없어도 잘 자라는 산딸나무나 때죽나무 같은 가시나무 종류의 음수陰樹들이 자랍니다. 이 음수림을 지나면 숲의 정복자라고 부르는 서어나무들이 숲을 점령하며 숲이 안정된 상태의 극상단계에 이릅니다. 그래서 숲에 갔을 때 서어나무가 많이 보이면 이 숲은 오래되어 안정된 상태의 숲이라고 판단하면 됩니다.
물론 이후에도 기후변화라든가 인간의 개입으로 울창했던 숲이 사막이 되기도 하고, 사막이 다시 숲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 끝도 없는 평원지역인 몽골도 예전에는 숲이었다고 하네요. 공룡은 물도 많고 큰 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살았다는데, 그 지역에서 공룡유적이 나온다는 건 그곳이 숲이었다는 증거니까요.
현재 어승생이오름은 참나무 숲에서 서어나무숲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점점 안정된 숲이 되어가는 중인 거죠. 서어나무 아래는 우후죽순으로 제주 한라산을 점령해가는 제주조릿대가 가득합니다. 조릿대를 없앤다는 박새를 더 심을 수도 없고, 인위적으로 어쩔 수는 없는 듯하니, 조릿대 차나 많이 마셔서 소비해야 할까요?
주목, 잎떨어진 나무에 의지해 덩굴을 올리는 줄사철
이외에도 여름에는 동글동글한 잎이 열리는 제주 특산 식물인 솔비나무(솔피낭),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명이 길어서, 권력자들의 관으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튼튼한 나무를 주는 주목朱木, 참빗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는 참빗살나무, 참빗나무 옆에 살짝 붙어서 잎을 보이는 일엽초(고란초), 잎 떨어진 고목들에 의지해 겨우내 푸르름을 유지하는 덩굴식물인 줄사철나무 등 수직으로 다양한 식물들이 어승생이오름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영실보다는 오르기가 좀 수월해서였을까요? 기운이 남아돌은 나머지 제가 교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참빗살나무의 다른 이름이 왜 물뿌리나무인가요?” 물푸레나무도 아니고 물뿌리나무라는 이름이 신기해서 물었던 건데 우리 교수님,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정색을 하며(그 표정, 다들 아시죠?) “그럼 직접 찾아보고 알려주세요” 하시더군요. 이런 걸 긁어 부스럼이라 한다죠?
어쨌든 찾아봤습니다. 참빗살나무 또는 물뿌리나무.
‘10월이면 한라산을 단풍과 함께 붉은 색으로 물들이는 참빗살나무는 참빗의 빗살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5~6월에는 녹백색의 꽃을 피우고, 10~11월에는 붉은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나무다. 이 나무의 다른 이름이 물뿌리나무인 것은 이 나무가 육지에서는 계곡을 따라 많이 자라는데, 물을 좋아하는 특성이 있다.’ (제주생물자원의 문성필 연구위원님 글에서 찾음) 그래서 이런 이름도 갖게 된 겁니다. 숙제 끝!!!
어승생이오름을 올라가며 만난 수많은 나무들은 한라산의 현무암에 의지해서 단단한 판근(판자처럼 생긴 나무뿌리)을 뻗으며 바위를 감싸고, 바위는 또 그 나무들에 의지해서 기울거나 흔들리지 않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낭은 돌에 의지하고, 돌은 낭에 의지한다’는 제주의 오래된 말은 돌과 나무가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낸다는 뜻도 있지만 그렇게 힘을 합쳐서 험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생명의 강인함을 표현하는 뜻이기도 하지요. 우리도 돌처럼, 낭처럼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니까요. 물론 의지하려면 상대방을 믿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르지요. 믿을 때는 ‘전적으로’ 믿어야 하구요.
나무 구경하며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정상. 올라가 보니 풍경이 참 좋았습니다. 제주시 일원이 눈앞에 훤히 펼쳐지고, Y계곡 뒤로 백록담 화구벽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습니다. 삼형제오름, 노루오름, 숨은 물뱅듸, 바리메, 노꼬메, 족은노꼬메의 능선이 겹겹이 겹치며 담담백백, 연한 잿빛의 수묵화를 그리고 있더군요.
지름만 2km인 어승생이오름의 정상에 자리한 원형 분화구에는 비가 오면 물이 차서 찰랑거리는 모습이 아름다웠다고 교수님의 회고담이 이어졌습니다. 겨울엔 빙판이 되기도 한답니다. <오름나그네>의 김종철선생님도 이 분화구 아래 물 있는 곳을 한 바퀴 도니 80m라고 기록을 남기시기도 했구요. 우리가 올라갔을 때는 물은 안 보이고, 거뭇거뭇한 흔적만 어슴푸레하게 보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풍경에서 마냥 웃을 수만 없었던 건 우리가 서있던 전망대 데크 아래가 일제강점기에 만든 진지동굴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지동굴의 공기순화통이 굴뚝처럼 밖으로 나와 있는 모습을 보니 태평양전쟁에서 패색이 짙었음에도 이곳을 최후의 보루로 삼겠다고 제주 사람들을 이 꼭대기까지 끌고 와서 사역을 시킨 일제의 악랄함에 치가 떨렸습니다.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걸 남겨놓는 것은 전쟁의 힘든 무게를 짐작할 수 있게 함이니 ‘문화유산’이란 이름보다는 ‘전쟁유적’ 이런 식으로 이름이라도 바꾸는 게 좋겠다는 의견들이 오고 갔습니다.
김천석교수님과 오름해설사 17기 기본과정 동기들.
이 날은 유난히 올라갈 때도, 내려갈 때도 평소보다 속도가 빨랐습니다. 헐떡거리면서 따라가긴 했어도 영문을 몰랐는데, 다 내려오니 교수님이 그러시더군요. 그동안 11번의 오름 수업을 잘 받아 그런지 잘 따라 오더라며 이게 12번 수업의 결과라고.
아, 오름해설사 기본 과정 수업을 받은 게 어느새 12번이 되었더군요. 그 수업의 결과 어승생이오름 정도는 수월하고 빠르게 오르내릴 수 있는 근력이 생겼다는 거죠. 그러고 보니 다리 근력만 탄탄해진 것이 아니라 오름의 생성과 변화과정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오름에 있는 식물과 동물을 아끼는 마음도 두터워졌습니다. 제주의 보물인 오름에 대해서 육지 친구들에게 5분 정도는 힘있는 목소리로 설명할 수 있게 된 건 이 오름해설사 수업 덕분이니까요.
먼 훗날, 제주의 오름이 잘 보존되고, 지금보다 더 널리 알려진다면, 또 압니까? 제주 오름의 9,999번째 홍보 공신으로 제 이름이 남을지. 수업은 끝나가지만 저의 오름 공부는 앞으로도 쭈욱 계속될 겁니다.
첫댓글 우와~~~~~
오름의 정상에서만 나오는 감탄사가
후기를 읽으면서도 나오네요
신혜연 선생님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 합니다
너무 소설을 써서ㅎㅎ 고맙습니다.
역사의 전환점 의미를 더욱 느끼게 한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았고 스토리텔링 듣는 것처럼 매끄러운 내용 즐감했습니다.
응상백이 제주에서 잘 자라서 제 할일 했으니 칭찬하는 맘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좋은글은 책에서나 볼수 있는데..수고로움이 보이네요 감사합니다
에구. 고맙습니다
교과서도 교과서 다워야한다
이게 교과서다
교과서에서 뿜어나오는 열정과향기는
오늘 저에게 주어진 시간을 값나게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ㅎㅎㅎ 교과서가 이렇게 허술해도 될까요? 고맙습니다.
어승생의 역사, 그 속 나무와 돌의 인연들이 우리 인간들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네요. 얽히고 설킨 수많은 사연 속에 우리도 새로운 인연을 맺었지요. 어승생 꼭대기의 장엄하고도 수려한 풍경을 닮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읽고 나니, 2조 시연 후기를 쓰라는 총무님, 조장님 부부의 명(?)을 받잡고 있는 처지라 부담감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어승생 정상의 풍경은 정말 멋졌어요. 그런 오름을 십여 개나 같이 올랐으니 새 인연이 이제 깊어져서 너무 좋습니다
화법도 필법도 개성 있는 신혜연 쌤의 리뷰는 전적으로 믿고 봅니다. 탐방 때마다 열심히 메모하는 열정과 그날의 해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다큐멘터리 보듯 재밌게 읽었습니다.
어머나, 현샘의 위트있는 댓글을 기대했는데 너무나 진지한 댓글. 내가 넘 드라이했나봐요ㅎㅎ 고마워요.
저는 작년 수업에서 어승생오름을 오르고 부터 진정 오름의 매력에 빠졌던 것 같아요.
벌써 1년 이라니...
쌤의 후기를 읽고 다시 한번 반성합니다.
작년 어승생 오름 후기를 쓰다 말고 대충 올린것을...
역시 애정이 있고 없고는 글에서도 느껴집니다. 선생님의 정성어린 글은 늘 감동입니다.
아하. 경민샘의 오름 사랑이 어승생에서 시작됐군요. 어승생이 큰일했네요. 늘 따뜻한 시선으로 봐줘서 고마워요.
조선의 개국공신 Top 100안에
역시 사람은 없고 말, 말만….
우휴 슬픈 일이로고~^^
하니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ㅋ
제주오름 공신 9,999가 아니라
99가 될지도 모르겠어요ㅎㅎ
여하튼 헤드라인이 단연 압권입니다, 수고했어요^^
교수님이 조선시대에 태어나셨으면 넣어드릴 수도 있었는데요ㅎㅎ
99는 힘들겠지만 열심히 노력해야겠습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않는 멋진 후기입니다.
감사하고,
수고하셨읍니다.
휴,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신혜연선생님의 후기가 어승생 오름에 대한 책을 한권 읽는 느낌이었어요. 12번의 오름을 같이
오른 인연이란 말에 감동이네요
수고하셨어요~~^*^
12번의 인연, 갑장의 인연. 모두 너무 소중하지요. 고맙습니다.
짧지 않은 글이지만 웃으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날 유독 교수님께서 많은 설명을 하셨는데, 추가로 사진이며 내용이며, 그리고 드라마 정도전의 캡쳐 사진에서 위화도 회군 당시 응상백의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제목도 압권이지만, 끝마무리도 피식 웃게 만듭니다. 9,999번째 공신이면... 정성스런 후기 잘 읽었습니다.
글을 후루룩 넘겨도 이미지는 오래 남는 게 요즘 분위기라서 좀 찾았습니다. 제주의 소즁한 보물들에 대한 스토리텔링, 컨텐츠 개발이 더 필요함을 새삼 느꼈다고나할까요? 고샘같은 분들이 잘하실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