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면에서는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종교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불신앙적인 동시에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현재의 상황을 돌아볼 때 시대의 등불이라는 정체성에 맞게 애가哀歌를 부르며 회개하고 또 절규해야 마땅한 교회가 오히려 “아무 문제도 없다, 평안하다. 안전하다. 염려할 이유가 없다. 다 잘 될 것이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라고 외치는 선에서 끝내지 않고 태평가太平歌까지 부르며 기뻐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성聖은커녕 속俗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부의 시크릿 :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인생을 역전시킨 부와 성공의 비밀”이라고 번역된 그Bob Proctor의 책12 Power Principles for Success에 따르면, 인간 존재의 핵심은 육체나 지적 능력이 아닙니다. 신神 또는 영靈입니다. 신 또는 영은 질서 있게 움직입니다. 완벽하게 움직입니다. 이는 우주를 움직이는 법칙입니다. 또 신은 자신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 인간을 도구로 사용합니다. 인간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자신의 능력을 수나 양, 공간이나 시간 등을 완전히 초월해서 인간에게 공급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탁월하고 완벽한 공급원이 되어줍니다.
신의 능력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확장하는 탁월한 특성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신으로부터 능력을 공급받는 인간은 무한한 잠재력 또는 가능성을 가진 위대한 존재가 됩니다. 당연히 누구나 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아니 누구나 다 성공해야 마땅합니다. 성공의 비결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누워서 떡을 먹는 것만큼이나 쉽습니다. 성공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됩니다. 마음에 성공하겠다고 결정만 하면 됩니다.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공하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공하겠다고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주어져 있는 무한한 능력을 스스로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위대하고 탁월한 학자라 할지라도 절대 수치화數値化할 수 없는 무한한 능력을 제한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혹시, 오늘 저와 여러분이 누구나 다 바라는 가장 부유하고, 가장 행복하고, 가장 성공적이고, 가장 탁월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면 그 이유 역시 자신에게 선물로 주어져 있는 무한한 능력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주장하는 내용을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먼저, 성공입니다. 인간은 이미 성공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성공은 인간 본성입니다. 성공하고 싶으면, 당장 성공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됩니다. 성공을 향해서 전진하면 됩니다. 이미 주어진 능력을 활용하면 됩니다. 어떤 방법과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예 몰라도 됩니다. 따져볼 필요도, 궁금해 할 이유도 없습니다. 반드시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그게 다입니다. ② 결정입니다. 성공하고 싶다면 자신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무한한 능력을 사용하겠다고 결정만 하면 됩니다. 결정한 사람은 최정상에 오릅니다. 결정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오늘 자신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스스로 결정한 결과가 됩니다. ③ 위험입니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어떤 존재도 될 수 없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위험을 감수하며, 위험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만 성공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위험은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④ 끈기입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릅니다. 성공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그렇게 자주 바뀝니다. 한 두 가지도 아닙니다.
다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당연히 쉽게 단념하지 않고 끝까지 버틸 수 있는 끈기가 필요합니다. ⑤ 책임감입니다. 책임은 위대함의 대가Winston Churchill입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책임져야합니다. 책임 회피는 스스로 성공을 피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⑥ 확신입니다. 자신은 충분히 훌륭하고, 훌륭한 정도를 뛰어넘어서, 탁월하기까지 하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합니다. 어떤 외부의 상황에도 흔들리지 말아야합니다. 자신에 대한 확신 없이는 누구도 의미 있는 목표를 이뤄낼 수 없습니다. ⑦ 행동입니다. 행동할 때는 반드시 폭발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엄청나게 행동해야 합니다. 누구도 따라할 수 없도록 행동해야 합니다. 엄청난 행동을 해내고야 마는 사람, 탁월한 활약을 해내고야 마는 사람, 위대한 일을 해내고야 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고야 말겠다고 스스로 결정해야합니다. ⑧ 돈입니다. 돈은 신으로부터 무한한 능력을 공급받고 있는 사람의 의식 속에 존재합니다. 스스로 끌어당기면 반드시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부유한 사람은 번영과 풍요를 생각합니다. 번영과 풍요를 끌어당깁니다. 반면, 가난한 사람은 결핍과 한계를 생각합니다. 결핍과 한계를 끌어당깁니다. 부자는 지금보다 훨씬 부유해집니다.
가난한 자는 지금보다 훨씬 가난해집니다. ⑨ 목표입니다.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이 짜릿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주는 원대하고 신나는 일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깨어 있는 시간 내내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목표를 세워야합니다.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소중한 인생과 기꺼이 맞바꿀 수 있는 목표를 세워야합니다. 마음을 조금도 분산시키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목표를 세워야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볼 수 있는 목표를 세워야합니다.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목표를 세워야합니다.
성공한 순간을 느낄 수 있는 목표를 세워야합니다. 성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멋지고 원대할수록 좋습니다. ⑩ 태도입니다. 태도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잡은 상태에서 상황에 대처하느냐, 태도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놓쳐버린 상태에서 상황에 휘둘리느냐의 최종 결과는 극과 극입니다. 성공과 실패입니다. 긍정적인 태도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습니다. 성공입니다. 부정적인 태도는 부정적인 결과를 얻습니다. 실패입니다. 성공하기 위해서 반드시 갖춰야할 법칙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성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어라, 그리고 성공하라.”입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태도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무수히 많은 실패를 반복할 수 있습니다. ⑪ 창조성입니다. 인간은 창조주의 창조물입니다. 창조주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창조주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원래부터 그랬습니다. ⑫ 소통입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만들어 줄 수 있어야합니다.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즐기는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합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 있어야합니다. 우주의 법칙을 주관하는 신 또는 영으로부터 지극히 긍정적인 결과로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성공, 결정, 위험, 끈기, 책임감, 확신, 행동, 돈, 목표, 태도, 창조성, 소통”은 위대한 성공의 비밀입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입니다. 전 세계 인구의 1%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 전 세계 돈의 96%를 벌어들이고 있다는 논리의 근거입니다. 행복한 삶과 물질적인 성공을 동시에 안겨줄,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줄 마법 같은 법칙입니다. 그Rhonda Byrne는 “수 세기 동안 단 1%만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자신의 책The Secret을 통해서 “그들의 마음을 지배한 생각은 부였다. 부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그들에게 부를 끌어당겼다.”라고 주장합니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적인 삶은 우연이라기보다는 마음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었던 생각이 끌어당긴 위대하고 탁월하며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고 주장합니다. 변호사인 그髙橋宏達Takahashi Hirokatsu의 주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책Quantum Secret量子力學的 : 願望實現の敎科書 潛在意識を書き換えて思考を現實化する11の法則을 통해서 제시한 우주를 지배하는 열한 가지 성공 법칙을 정복하면 인생은 생각한 그대로 흐르게 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돈과 일과 연애와 인간관계와 건강 등 모든 행운이 따르게 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생각하라 그러면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부자가 되리라Think and Grow Rich Deluxe Edition”라는 책의 저자Napoleon Hill의 주장도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하면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열두 가지 성공 법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단순히 부를 원한다는 차원에 머물러 있지 말아야합니다. 부를 간절하게 원하고 또 부를 얻기 위한 확실한 방법을 세워야합니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반드시 얻게 되어 있습니다. 부자가 되겠다고 생각하면, 생각이 자신을 부자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마침내 부자로 만들어줍니다. 생각이 만복의 근원입니다.
탁월한 방송인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된 그녀Oprah Winfrey의 주장에 따르면, 실패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개념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전혀 예상하지 않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주었던 여러 가지 환경들이나 상황들이나 조건들이나 경험들이나 과정들 가운데 하나에게 붙여준 이름 정도에 불과합니다. 실패는 뜻하지 않게 그르치고 말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것과 구별하여 부르기 위해 붙인 이름 정도에 불과합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을 사용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무조건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Chicken Soup for the Teenage Soul”의 저자Jack Canfield 역시 “(무엇이든) 원하는 걸 결정하라.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으라. 당신에게는 그걸 얻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믿으라.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믿으라. 그런 뒤에 날마다 몇 분간 눈을 감고 원하는 것을 이미 얻었을 때, 소망이 이루어졌을 때 (가질 수 있는) 감정을 상상하라. 그런 다음에는 고마운 일들에 집중하면서 그 감정을 즐겨라. 그런 다음에는 잊어버리고 우주에 맡기라. 우주가 알아서 당신에게 가져다준다고 믿으라.”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그들은 한 목소리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상위 1%의 자리에 올라가서 부와 명예와 권세를 누릴 수 있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 시대에 상대적인 박탈감까지 느끼며 살고 있는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마음을 빼앗길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수백만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 마케팅 전략은 그대로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정말 많은 교회에서 날것 그대로의 하나님 말씀보다 각종 마케팅 전략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마케팅은 우리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물론 생존을 위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전략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 유명 기독교 사이트 가운데 하나Godpeople에 마케팅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면, “희망을 마케팅 하라, JESUS CMO 최고 마케팅 경영자 예수-사람을 낚는 예수의 마케팅 비밀, 지금부터 시작하는 교회 마케팅, 교회 마케팅101, 전도 마케팅, 컬트 마케팅, 21세기 패러다임 교회 마케팅 성장론, 목사님 카피라이터가 되세요-교회 성장 마케팅 47가지 전략, 마케팅이 뛰어난 교회가 더 성장한다.” 등의 책들이 줄줄이 나열되고 있습니다.
또 마케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똑같은 내용을 주장하고 있는 책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일일이 다 확인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때는 카피Copy가 마음에 들어 집어 들었다 내용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내려놓을 정도로 교묘합니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가파르게 성장한 한국 교회가 의도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하나님 나라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얼마나 인간 중심으로 변질되어 있는지, 세속적 가치 추구에 얼마나 혈안이 되어 있는지, 세상과 구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교회에서 날것 그대로의 예수 그리스도 복음보다, 원형 그대로의 하나님 말씀보다 자기 계발서의 내용이 더 많이 울려 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기 계발서의 내용과 버무려서 선포해야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심판을 받았었던 예루살렘 성전의 전철을 밝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떠돌이 노동자, 레스토랑 보조웨이터, 사금 채취, 부두 노동자를 전전하면서 독학으로 자신의 사상 체계를 구축한 길 위의 철학자Eric Hoffer의 지적대로, 내면에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심각한 결핍缺乏이 있기 때문입니다. 귀에 단 소리라도 듣지 않으면 당장 죽을 것 같은 결핍이 있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다는 말이라도 들어야 숨이 쉬어질 것 같은 결핍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해소하기 어려운 심각한 불안으로 이어집니다. 불안은 현실 왜곡歪曲으로 발전합니다. 현실 왜곡은 두 가지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부정적인 해석입니다. 지극히 어두운 현실의 상황은 결코 좋아질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차라리 떠나버리는 편이 상책이라고 주장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심각한 인권 유린과 노동력 착취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의 현장으로까지 몰아붙이는 극단적인 종말론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천만 다행으로, 정상적인 교회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극히 긍정적인 현실 해석입니다. 마음에 결단만 하면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불확실한 현실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마케팅의 핵심 원리인 끌어당김의 법칙을 주장합니다. 불확실한 현실로부터 벗어난 사람을 내세워 자신의 경험한 내용을 간증하게 합니다. 한번 그대로 따라해 보면 똑같이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외칩니다. 모든 사람에게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처럼 확대해서 광고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돈벌이의 한 방편으로 이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불확실한 현실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나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성공적인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지극히 적은 소수입니다.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크고 화려하며 웅장한 건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었던 부와 명예는 물론 생각을 말하게 되면 두말하지 않고 그대로 따르는 추종자가 생길 정도의 권세가 주어지기도 합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절대 다수입니다. 사람과 건물과 부와 명예와 권세는 아예 그림자조차도 구경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상대적인 박탈감과 함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결하지 못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습니다. 비웃음과 함께 정죄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똑같이 따라해 보지만, 되는 사람보다 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교회는 긍정적인 해석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끌어당김의 법칙을 외치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되는 것처럼 선포하고 있습니다.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 선지자와 제사장과 장로와 방백 등 백성의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영적으로 간음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마르둑, 몰렉, 밀곰 등의 우상들을 섬겼다는 의미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모셔야할 자리에 다른 무엇인가를 앉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또 탐욕을 채우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극히 이기적이었습니다.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어찌하여 너희는 내 백성을 짓밟느냐? 어찌하여 가난한 자의 얼굴을 짓이기느냐?”(사4:15a)라는 증거대로, 그렇지 않아도 힘겨운 삶을 겨우 살아내고 있던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무참하게 짓밟았습니다. 피와 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던 얼굴을 사정없이 발로 짓이겼습니다. 자신을 변호할 수도, 지킬 능력도 없는 백성들은 학대했습니다. 쓰임이 다하면 언제든지 아무렇게나 버릴 수 있는 도구들 가운데 하나처럼 부렸습니다. 그들은 또 정의를 버렸습니다. 오히려 불의를 조장했습니다. 막대한 이익을 챙겼습니다.
자신들이 가진 것에 비하면 세발의 피도 되지 않는 백성들의 소유를 탐냈습니다. 강제로 탈취했습니다. 잔뜩 튀어나온 배를 채웠습니다. 하나님의 진멸殄滅을 재촉했습니다. 그때, 앗수르와 신흥강국 바벨론이 자웅雌雄을 겨루고 있었던 중근동의 정세政勢는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남 왕국 유다의 국내외적인 정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정치와 종교와 관련된 온갖 기득권을 통째로 누리며 등 따습고 배불렀던 거짓 선지자들이 나섰습니다. 현실이 어렵기는 하지만 괜찮다고 외쳤습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외쳤습니다. 조금만 지나고 나면 다 좋아질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라고 외쳤습니다. 다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면 된다고 외쳤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들통 날 거짓 평화를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비록 거짓 선지자라고 불리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자격까지 갖추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전에 정식으로 등록된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실제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거짓 평화를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성전에서, 공인된 정식 절차를 거쳐서 선포했다는 의미입니다.
거짓 평화를 외치는 행위가 일부 몰지각한 선지자들만이 아니라,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선지자 집단 전체에 의해서, 더 넓게는 성전 시스템 자체에 의해서, 더 넓게는 국가에 의해서 행하여졌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거짓 평화를 외치기 위해서 성민으로 구성된 국가 조직 전체가 움직였다는 의미입니다. 백성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영혼과 삶을 피폐疲弊하게 만들어버린 거짓 선지자들의 외침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선동과 낙관주의와 긍정적인 해석에 현혹되지 말라는 선지자의 절규를 외면했습니다.
돌아서기는커녕 눈이 짓 물릴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렘4:19)라고 애가를 부르는 선지자를 비웃었습니다. 조롱했습니다. 핍박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과 야합했습니다. 죽이기로 작당했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멸망을 외치는 매국노로 몰아붙였습니다. 이집트까지 쫓아갔습니다.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거짓 평화를 선동하는 행위를 기꺼이 수용하고 권장까지 하는 타락한 문화가 남 왕국 유다 전체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선지자의 예언대로 나라와 민족이 송두리째 풍비박산되고 철저하게 망하는 것을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가항력적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 우리 교회가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선동과 낙관주의와 긍정적인 해석을 버리지 못한 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높은 첨탑과 보는 순간 누구나 환호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웅장하며 화려한 건물과 벌판 같은 주차장과 웬만한 방송사 못지않은 첨단 장비들을 소유한 대형 교회들이 선두에 서 있습니다.
반면, 허물과 죄로 죽었고, 죄의 경향성이 농후하며, 죄를 낳을 수밖에 없고, 지극히 작은 죄가 보이기만 하면 옳다구나 하며 정신없이 쫓아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실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 없는 죄에 대해서도,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무수히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복까지 주시는 하나님 사랑만 주야장창 외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서로 하나처럼 합력하여 잘되도록 움직일 테니 함께 태평가나 부르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복의 유일한 근원이신 하나님을 철저히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뜻보다 인간의 생각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심지어 온 우주의 유일한 주인이시며 모든 존재의 생사를 당신의 뜻대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인간이 마음에 생각하고 결단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수단과 도구 정도로 여기는 불경까지 저지르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교회가 다 패악을 저지르고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생명인 혈액을 온 몸에 보내는 심장처럼 건재하게 존재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절대 다수가 완벽한 진멸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타락한 현실을 외면한 채 태평가를 부르는 중에도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절규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실패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영원한 성공을 위해서 오늘을 기꺼이 희생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나보다는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곧 멈출 수밖에 없는 태평가가 아니라 영원히 태평가를 부를 수 있는 날을 사모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호흡이 있는 동만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예와 권세보다는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구원과 생명과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는 진리 같은 거짓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한 진리는 외면하는 반면 반드시 거절해야하는 거짓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부요케 하시는 하나님보다, 당장 눈에 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예와 권세를 훨씬 더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없어도 되지만, 부와 명예와 권세는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같은 가짜들의 지휘를 받으며, 잠시 동안만 부르다가 반드시 멈출 수밖에 없는 태평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도 소리 높여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한편, 세상 끝 날에는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거짓 평화를 외쳤던 거짓 선지자들뿐 아니라 거짓 선지자들이 뻔뻔한 얼굴로 거짓 평화를 예언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세력까지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거짓 평화를 듣고도 문제를 삼기는커녕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였던 백성들 역시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이 속해 있었던 사회 곧 거짓 예언을 조장하는 사회도 마찬가지로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애가를 부르며 하나님을 찾아야할 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평가를 부르며 즐거워했었던 성민 이스라엘에게 내려진 혹독한 심판을 통해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Alighieri Dante는 자신의 대 서사시神曲La divina commedia를 통해서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혼돈의 시대에 중립을 유지한 사람들을 위해서 비어 있다.”라고 노래했습니다. 복음주의 신학자인 그James I. Packer는 “(부와 명예와 권세 곧 성공을 끌어당기는) 낙관주의가 보장할 수 없는 바람이라면,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장해 주신 확실한 실재實在다."라고 외쳤습니다.
자신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 특별히 콕 찍어서 발골拔骨한 말씀이 아니라 조금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소화하기도 힘들지만 날것 그대로의 말씀, 원형 그대로의 말씀을 사모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자신의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추구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을 자신의 도구로 삼기보다는 자신을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내어드릴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 자신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애가가 아니라 태평가를 영원히 부르게 하시는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복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