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손견은 이미 하비와 강남 일대의 용장이 아니라
조야가 다 아는 장안의 명사가 되어 있었다.
황건의 난 때 세운 공으로 별군사마(독립여단이나 전투단의 지휘관 격)로 출발한 그는
양주의 변장 한수 등이 난을 일으키자 또 한번 이름을 드날릴 기회를 얻었다.
중랑장 동탁이 토평의 대임을 맡고 양주로 갔으나 시일만 끌고 이기지 못하매
조정은 다시 사공 장온을 거기장군으로 삼아 변장과 한수를 토벌하게 하였는데
이 때 장온이 표를 올려 손견을 참군사로 천거한 것이었다.
군사를 서로 몰아 장안에 이른 장온은
그곳에서 제명에 의지해 동탁을 불러들였다.
동탁은 마지못해 장안으로 불려왔으나
정한 기일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장온의 책망에 심히 불손한 태도로 나왔다.
이때 그걸 본 손견이 가만히 장온에게 말했다.
"동탁은 지은 죄를 겁내지 않고 오히려 올빼미가 나래를 펴 맹위를 떨치듯 큰소리만 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군령이 정한 기일까지 어겼으니 마땅히 군법을 들어 목을 베야 합니다."
"동탁은 그 위명을 농축일대에 널리 떨치고 있는 자인데
이제 그를 죽이면 서쪽으로 간들 누구에게 의지하겠는가?"
그래도 동탁의 용맹을 아끼는 장온이 근심스레 물었다.
이에 손견이 더욱 강경하게 권했다.
"명공께서는 친히 왕병을 이끌고 출전하시어 위세가 천하를 울리게 하는데
어찌 동탁 따위의 하찮은 이름에 의지하려 하십니까?
제가 동탁의 하는 양을 보니 용서할 수 없는 죄가 세 가지나 됩니다.
첫 째는 윗사람을 가볍게 여기고 예를 갖추지 못한 죄며,
둘째는 도적이 발호한 지 여러 해 되도록 토벌하지 못해
군사의 기를 꺾이게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조정의 힘을 의심케 한 죄며,
끝으로는 대임을 맡고도 중요한 공을 이루지 못한 주제에
소환을 받고도 기일을 어기고 또 와서는 저토록 기고만장한 것입니다.
예로부터 뛰어난 장수 치고, 천자께서 내리신 부월에 의지해
무리를 이끌 때 죄 지은 자를 목베어 위엄을 세우는 것을 망설인 적은 없습니다.
만약 명공께서 지금 동탁을 목베어 위엄을 세우지 않으시면
장차 그 화가 어디까지 미칠지 모를 것입니다."
"자네는 이만 돌아가게. 자칫 동탁의 의심을 살지도 모르겠네."
덕분에 동탁은 죽음을 면하고 장온의 휘하에 들어 다시 양주로 진군하게 되었다.
변장과 한수는 조정에서 보낸 대군이 동탁의 군사까지 아울러 오고 있다는 말을 듣자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급히 무리를 흩고 각기 항복을 애걸해 왔다.
☆☆☆
이에 장온은 싸움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군사를 돌려 낙양으로 돌아왔다.
난은 진압되었다 해도 싸움이 없었으니 논공행상이 제대로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손견이 세 가지 죄를 들어 장온에게 목베기를 권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듣는 사람 치고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 때 벌써 동탁은 조야 모두에게 미움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십상시들도 처음에는 그가 주는 뇌물 맛에 줄곧 그에게 군권을 주어 변방을 지키게 했으나
별 공도 없이 자기 세력만 기르려 하자 차차 의심하기 시작했다.
동탁을 보는 눈길이 그처럼 미움과 두려움 아니면
의심에 가득 찬바람에 거꾸로 득을 본 것은 손견이었다.
그는 싸움 한번 않고 대단한 이름을 드높였을 뿐만 아니라
별로 학문이 깊지 못한 그에게는 명예롭기까지 한 의랑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었다.
그런 뜻에서 보면 방금 그 토벌을 명받은 구성 또한
손견에게는 중요한 성공의 디딤돌이 되었다.
장사태수로 내려간 손견은
한편으로는 선정을 펴 백성들을 어루만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벌써 10년이 넘도록 그를 따르는 네 장수
황개 한당 정보 조무를 앞세워 구성의 무리를 쳤다.
그렇지 않아도 드높은 손견의 위명이었다.
그가 장사의 태수로 왔다는 것만으로도 떨며 굴복해야 할 판에
생각 밖으로 세심한 보살핌까지 곁들이자
백성들의 마음은 금세 구성의 무리에게서 돌아섰다.
거기다가 벌써 수십 번의 크고 작은 싸움을 치른 손견의 네 장수가
정예한 관병을 이끌고 토벌해 오니 구성의 무리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달포 남짓 지나자 무리는 끊어지고
구성은 사로잡혀 베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손견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이웃 군에서 구성과 내통하여 난리를 꾀하던 주조,
곽석의 무리들까지 뿌리 뽑으니 장사에 이웃한 세 군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조정은 그런 손견을 오정후에 봉해 그 공을 기렸다.
☆☆☆
한편 장거, 장순의 무리를 토벌하기 위해 유주목이 되어 내려간 유우는
생각보다 훨씬 큰 적세에 놀랐다.
장순의 무리는 그 사이 10여만으로 자라
오한교위 기조, 우북평 태수유정, 요동태수 양종 등을 죽이고
청주와 기주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었다.
거기다가 오환의 초왕등과도 손을 잡아
유주는 안전한 곳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백성들에게 지난날의 은의를 상기시키고
도적의 무리에게 현혹되지 않게 하는 일도
다스림이 있을 뒤에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당장 발붙일 곳조차 마땅찮은 유우에게는
필요한 게 먼저 자신을 임지에 있을 수 있도록 지켜주는 무력이었다.
이에 유우는 우선 성곽이 튼튼하고 높은 계성에 간부 아닌 군영을 열고
먼저 다스림의 근거지를 확보하는 일에 착수했다.
장거와 장순이 그걸 보아 넘길 리 없었다.
곧 대군을 몰아 계를 공격해 왔다.
이미 허약할 대로 허약해진 주군들인데다
그 자신 대단한 장략을 지니지도 못한 유우에게는 당연히 힘든 공격이었다.
다급한 유우는 같은 종실이요,
가장 가까운 고을의 태수가 되는 대주 태수 유회에게 구원을 청했다.
유현덕과 관 장 3형제를 숨겨 주고는 있어도
그들이 왕법을 어긴 죄인이라는 게 자못 꺼림칙하던 대주태수 유회는
구원을 바라는 유우의 글을 읽자
그걸 그들 3형제를 위한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곧 사람을 보내 현덕을 부른 뒤 유우의 글을 내보이며 말했다.
"비록 그 독우가 탐학한 자라고는 하나 조정이 보낸 관리임에는 틀림없으니,
그에게 매질을 한 것은 왕법을 범한 것이 아닐 수 없네,
그런데 이제 그 죄를 씻을 좋은 기회가 왔네.
군사 3천을 빌려줄 테니 가서 유백안(=유우의 자)을 구하게."
그렇지 않아도 구차하게 숨어 지내는 것이 지루하고 괴롭던 유비이었다.
유회의 그 같은 말에 크게 기뻐하며 기꺼이 따랐다.
관우 장비도 현덕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특히 놀고먹느라 온몸이 근질근질하던 장비는
싸울 일이 생겼다는 말에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
유 관 장 3형제는
그날로 대주 3천을 빌려 바람과 같이 계로 달려갔다.
그들이 밤을 낮 삼아 달려 계에 이르렀을 때는
장거의 무리가 한창 공성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잇단 승리에 취해 마치 천하가 저희들 것이라도 된 듯
경계를 게을리 하고 있던 반도들은 갑작스런 원병이 나타나자
당황하고 말았다.
열 배가 넘는 군사를 가지고도 어이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걸 보자 현덕 3형제와 대주병들은 더욱 힘이 났다.
관우의 청룡도와 장비의 사모가 베고 후리고 찌르고 쑤시며 트는 길로
3천 군마가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성안의 유주병들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기세 좋게 성문을 열고 나와 뒤를 받치는 장거의 군사들은 30리나 쫓겨난 뒤에야
간신히 패군을 수습할 수 있었다.
☆☆☆
그 다음부터는 분전의 연속이었다.
데려간 대주병 3천에다 그들이 분전으로 사기를 회복한 유주병 만여가 가세하니
보름도 안돼 유주일대는 유우의 다스림이 미치는 지역이 되었다.
그러자 유우는 민심의 수습에 들어갔다.
수하의 관원들과 군사들에게 터럭만큼도 백성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고,
장거의 무리에 가담했던 자라도 마음 바꿔 돌아오면 관대하게 용서해 주었다.
그런 다음 오환의 초왕등 장거의 모반에 동조한 자들에게는
글을 보내 달래는 반면 장거와 장순의 목에는 큰상을 걸었다.
민심이 차츰 자신을 떠나고 동조자들도 하나 둘 떠나가자
일이 그른 것을 안 장거와 장순은 처자까지 버리고 변경 밖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장순은 그 수하인 왕정에게 목이 잘리어 유우에게 되돌아오고,
장거는 장순이 죽고 그 졸개들마저 항복해 버리자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유우의 공으로만 보였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뒤를 받쳐주는 유비의 무력이었다.
유우도 그걸 잊지 않고
첩보와 함께 유비의 큰공을 아뢰는 표을 올렸다.
조정은 유우를 태위로 삼고 용구후에 봉하는 한편,
유비도 독우 때린 죄를 면해주고 하밀이란 곳의 승으로 삼았다.
그 뒤 다시 유비는 고당이란 곳의 위로 옮겼는데,
어느 편도 세운 공에 비하면 하잘 것 없는 군리에 지나지 않았다.
나중에 간신히 별부사마로 평원의 현령을 맡게 되지만
그것도 실은 공손찬의 강경한 표문 덕분이었다.
그 사이 변방을 평정하고 오환 탐지왕과 그 족속들의 항복을 받는 등,
어느새 조정도 무시할 수 없을 만한 군벌로 자란 공손찬은
유비를 위함 못지 않게
자기의 근거지 가까운 곳에서 세운 유우의 공을 깎기 위해서도
유비의 공을 힘껏 추켜세웠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