定公 元年(紀元前 509年)
元年春王正月辛巳, 晉魏舒合諸侯之大夫于狄泉, 將以城成周. 魏子涖政. 衛彪徯曰 : 「將建天子, 而易位以令, 非義也. 大事奸義, 必有大咎, 晉不失諸侯, 魏子其不免乎.」
원년춘왕정월신사, 진위서합제후지대부우적천, 장이성성주. 위자리정. 위표혜왈 : 「장건천자, 이역위이령, 비의야. 대사간의, 필유대구, 진불실제후, 위자기불면호.」
[解釋] 정공 원년 봄 정월 辛巳日에, 晉나라 魏舒가 諸侯들의 大夫들을 狄泉지방에서 모으니, 成周에 城을 쌓기 위해서였다. 그때 위서는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에 衛나라 彪徯가 말하기를, 「천자의 도성을 세우는데, 배신이 자리를 바꾸어 명령함은, 義에 맞지 않소. 중대한 일을 하는 데 의를 범하면, 꼭 큰 재앙이 있게 되니, 진나라가 제후를 잃지 않는다면, 위서가 아마도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오.」라고 했다.
是行也, 魏獻子屬役於韓簡子及原壽過, 而田於大陸, 焚焉, 還卒於寗. 范獻子去其柏槨, 以其未復命而田也. 孟懿子會城成周, 庚寅栽. 宋仲幾不受功曰 : 「滕, 薛, 郳, 吾役也.」
시행야, 위헌자속역어한간자급원수과, 이전어대륙, 분언, 환졸어녕. 범헌자거기백곽, 이기미복명이전야. 맹의자회성성주, 경인재. 송중기불수공왈 : 「등, 설, 예, 오역야.」
[解釋] 이번에 위서는 이 공사에, 魏獻子는 전부 韓簡子와 주나라 대부인 原壽過에게 맡겨 주고, 자신은 大陸이란 곳으로 가서 사냥을 하다가, 불에 화상을 입고, 돌아오는 도중 寗에서 죽었다. 范獻子는 위서를 장사지내는데 잣나무 곽을 쓰지 않았으니, 이는 그가 復命도 없이 사냥을 간 때문이었다. 노나라에서는 孟懿子가 成周의 성을 쌓는 곳으로 가서, 庚寅日에 공사를 시작했다. 宋나라 仲幾는 공사의 할당을 받지 않고 말하기를, 「滕, 薛, 郳나라들이 우리나라의 몫도 할 것이다.」고 말하자,
薛宰曰 : 「宋爲無道, 絶我小國於周, 以我適楚, 故我常從宋. 晉文公爲踐土之盟曰, '凡我同盟, 各復舊職.' 若從踐土? 若從宋, 亦唯命.」
설재왈 : 「송위무도, 절아소국어주, 이아적초, 고아상종송. 진문공위천토지맹왈, '범아동맹, 각복구직.' 약종천토? 약종송, 역유명.」
[解釋] 薛나라의 대부가 말하기를, 「송나라는 도가 없어, 우리 작은 나라들을 주나라로부터 떼어 내어, 초나라에 인계하였기 때문에, 우리들이 늘 송나라를 따르게 될 것이다.」 그 뒤 진나라 문공이 천토에서 동맹을 맺을 때 말하기를, 「무릇 우리 동맹국들은, 각기 옛 직무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했으니, 踐土의 맹약을 좇을 것인가? 또는 송나라를 따를 것인가는, 오직 여기서의 명령에 달려 있소이다.」고 말했다.
仲幾曰 : 「踐士固然.」 薛宰曰 : 「薛之皇祖奚仲居薛, 以爲夏車正. 奚仲遷于邳, 仲虺居薛, 以爲湯左相. 若復舊職, 將承王官, 何故以役諸侯?」
중기왈 : 「천사고연.」 설재왈 : 「설지황조해중거설, 이위하거정. 해중천우비, 중훼거설, 이위탕좌상. 약복구직, 장승왕관, 하고이역제후?」
[解釋] 이어 仲幾가 말하기를, 「천토의 동맹이 바로 송나라를 섬기는 옛 직무를 따르라는 것이오.」라고 말하자, 薛나라의 대부가 말하기를, 「우리 薛나라의 태조인 奚仲은 薛땅에 살면서, 夏나라의 車正이란 벼슬을 하였소. 그 뒤 奚仲은 邳땅으로 옮겨 갔으나, 그의 후손 仲虺는 여전히 薛땅에 살면서, 湯임금의 左相이 되었소. 만일 옛 직무로 돌아간다면, 천자의 관리가 되었을 것인데, 어찌 제후를 대신하여 일을 할 수가 있소?」라고 하였다.
仲幾曰 : 「三代各異物, 薛焉得有舊? 爲宋役, 亦其職也.」 士彌牟曰 : 「晉之從政者新, 子姑受功, 歸吾視諸古府.」 仲幾曰 : 「縱子忘之, 山川鬼神其忘諸乎?」
중기왈 : 「삼대각이물, 설언득유구? 위송역, 역기직야.」 사미모왈 : 「진지종정자신, 자고수공, 귀오시저고부.」 중기왈 : 「종자망지, 산천귀신기망저호?」
[解釋] 이에 仲幾가 말하기를, 「夏, 殷, 周 3대는 그 관례가 각기 다르니, 薛나라가 어찌 그런 옛 직책이 있었는가? 설나라는 우리가 송나라를 위하여 대신 일하는 것이, 또한 설나라의 직무인 것이오.」라고 했다. 이에 진나라의 士彌牟가 말하기를, 「우리 진나라의 진정자는 새 사람이니, 당신은 우선 할당을 받으시오. 내가 돌아가 서고에 가서 증거를 찾아보겠소.」라고 말하자, 仲幾는 다시 말하기를, 「비록 당신은 그것을 잊었어도, 山川과 鬼神은 어찌 잊었을까요?」라고 했다.
士伯怒, 謂韓簡子曰 : 「薛徵於人, 宋徵於鬼, 宋罪大矣, 且己無辭, 而抑我以神, 誣我也. '啓寵納侮.' 其此之謂矣, 必以仲幾爲戮.」
사백노, 위한간자왈 : 「설징어인, 송징어귀, 송죄대의, 차기무사, 이억아이신, 무아야. '계총납모.' 기차지위의, 필이중기위륙.」
[解釋] 그래서 士彌牟는 성을 내며, 韓簡子에게 말하기를, 「薛나라 사람들은 사람에게서 증거를 찾고, 송나라 사람들은 귀신으로부터 증거를 찾으니, 송나라 사람들의 죄가 크오. 더구나 스스로 할 말이 없으면서, 귀신으로 나를 압박하니, 이는 우리를 속이는 것이오. '너무 사랑하면 수모를 받는다.'는 말은, 아마 이 같은 경우의 일이니, 꼭 仲幾를 죽여야 하오.」라고 말했다.
乃執仲幾以歸, 三月, 歸諸京師. 城三旬而畢, 乃歸諸侯之戍. 齊高張後, 不從諸侯. 晉女叔寬曰 : 「周萇弘齊高張皆將不免. 萇叔違天, 高子違人. 天之所壞, 不可支也, 衆之所爲, 不可奸也.」
내집중기이귀, 삼월, 귀저경사. 성삼순이필, 내귀제후지수. 제고장후, 부종제후. 진여숙관왈 : 「주장홍제고장개장불면. 장숙위천, 고자위인. 천지소괴, 불가지야, 중지소위, 불가간야.」
[解釋] 그리고서 仲幾를 잡아 데리고 갔다가, 3월에, 주나라 서울로 보냈다. 그 뒤 城은 30일 만에 쌓기를 끝마쳐, 諸侯의 군사들은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다만 齊나라의 高張은 뒤늦게 와서, 諸侯들의 대열에 끼지 못했다. 그래서 晉나라의 女叔寬이 말하기를, 「주나라의 萇弘과 제나라의 高張은 모두 재앙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萇叔은 하늘을 어기었고, 高子는 사람을 어기었기 때문이다. 하늘이 파괴하는 것을, 지탱할 수가 없고, 모든 사람들이 하는 일은, 어길 수가 없는 것이다.」고 했다.
夏叔孫成子逆公之喪于乾侯. 季孫曰 : 「子家子亟言於我, 未嘗不中吾志也. 吾欲與之從政, 子必止之, 且聽命焉.」
하숙손성자역공지상우간후. 계손왈 : 「자가자극언어아, 미상부중오지야. 오욕여지종정, 자필지지, 차청명언.」
[解釋] 여름에 叔孫成子가 乾侯로 가 노나라 소공의 상여를 영접했다. 季孫意如가 말하기를, 「子家子가 여러 번 나에게 말하는데, 나의 뜻에 맞지 않음이 없었다. 내가 그로 하여금 정치에 함께 참여하게 하고 싶으니, 그대는 꼭 子家子를 붙들어, 그로 하여금 나의 명령을 듣도록 하시오.」라고 말했다.
子家子不見叔孫, 易幾而哭. 叔孫請見子家子, 子家子辭曰 : 「羈未得見, 而從君以出, 君不命而薨, 羈不敢見.」
자가자불견숙손, 역기이곡. 숙손청견자가자, 자가자사왈 : 「기미득견, 이종군이출, 군불명이훙, 기불감견.」
[解釋] 그러나 子家子는 叔孫成子를 만나려고 하지 않아, 哭을 하려는 시각을 숙손과 어긋나게 바꾸어 왔다. 叔孫이 그를 보려고 청했으나, 子家子가 사양하여 말하기를, 「내가 아직 당신을 만나지 못했을 때, 임금을 따라 나라를 떠나갔었으며, 임금님은 내게 당신을 만나라고 명령도 하지 않고 돌아갔으니, 감히 당신을 만날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叔孫使告之曰 : 「公衍公爲實事羣臣不得事君. 若公子宋主社稷, 則羣臣之願也. 凡從君出而可以入者, 將唯子是聽. 子家氏未有後, 季孫願與子從政. 此皆季孫之願也, 使不敢以告.」
숙손사고지왈 : 「공연공위실사군신부득사군. 약공자송주사직, 즉군신지원야. 범종군출이가이입자, 장유자시청. 자가씨미유후, 계손원여자종정. 차개계손지원야, 사불감이고.」
[解釋] 그래서 숙손은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公衍과 公爲 두 사람이 실로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소공을 섬기지 못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만일 소공의 동생인 공자 송이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면, 이는 여러 신하들의 소망에 부합되는 것입니다. 무릇 임금을 따라 나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당신의 명령을 따를 것입니다. 또 子家氏는 뒤를 이을 사람이 없으므로, 季孫은 당신과 함께 정치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는 전부 계손이 바라는 바로, 저로 하여금 당신에게 말하도록 한 것입니다.」고 말하자,
對曰 : 「若立君, 則有卿士大夫與守龜在, 羈弗敢知. 若從君者, 則貌而出者, 入可也. 寇而出者, 行可也. 若羈也, 則君知其出也, 而未知其入也, 羈將逃也.」
대왈 : 「약입군, 즉유경사대부여수구재, 기불감지. 약종군자, 즉모이출자, 입가야. 구이출자, 행가야. 약기야, 즉군지기출야, 이미지기입야, 기장도야.」
[解釋] 子家子가 대답하기를, 「임금을 세우는 일은, 대신들과 점치는 거북이가 할 일이고, 나는 감히 모르는 일입니다. 만일 임금을 따라 나간 것이, 계손과 원한이 없이 나간 것이라면,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계손과 원수가 된 사람이면, 도망가야 합니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은, 임금이 나간 것만 알고, 돌아올 것을 모르니, 나는 도망가겠소.」라고 하였다.
喪及壞隤, 公子宋先入, 從公者皆自壞隤反. 六月癸亥, 公之喪至自乾侯, 戊辰, 公卽位. 季孫使役如闞公氏, 將溝焉. 榮駕鵝曰 : 「生不能事, 死又離之, 以自旌也. 縱子忍之, 後必或恥之.」 乃止.
상급괴퇴, 공자송선입, 종공자개자괴퇴반. 육월계해, 공지상지자간후, 무진, 공즉위. 계손사역여감공씨, 장구언. 영가아왈 : 「생불능사, 사우리지, 이자정야. 종자인지, 후필혹치지.」 내지.
[解釋] 그리고 소공의 상여가 壞隤 지방에 이르자, 公子 宋은 먼저 서울로 들어오고, 소공을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壞隤에서 도망갔다. 6월 癸亥日에, 소공의 상여가 乾侯로부터 돌아오고, 戊辰日에, 정공이 즉위했다. 季孫은 인부를 노나라 임금들의 묘지가 있는 闞지방으로 보내어, 소공의 산소 가에 도랑을 파도록 했다. 이때 榮駕鵝가 말하기를, 「살아 있을 때 받들지 못하고, 돌아가신 후에는 도랑을 파서 선조와 소공을 떨어지게 하니, 이는 자신의 악을 드러내는 것이오. 그래서 혹 당신은 그것을 참을 수 있으나, 당신의 자손들은 반드시 수치로 여길 것이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계손은 바로 도랑 파는 일을 중지시켰다.
季孫問於榮駕鵝曰 : 「吾欲爲君諡, 使子孫知之.」 對曰 : 「生弗能事, 死又惡之, 以自信也. 將焉用之?」 乃止.
계손문어영가아왈 : 「오욕위군시, 사자손지지.」 대왈 : 「생불능사, 사우오지, 이자신야. 장언용지?」 내지.
[解釋] 季孫이 또 榮駕鵝에게 말하기를, 「내가 임금의 시호를 나쁘게 지어, 子孫으로 하여금 모두 알게 하겠다.」고 말하자, 榮駕鵝가 대답하기를, 「살아 있을 때도 받들지 못하고, 돌아가신 후에 또 임금을 원망하는 것은, 자기의 확신을 표시하는 것이라. 어찌 그 같은 일을 하겠소?」라고 말하자, 계손은 곧 그것도 그만두었다.
秋七月癸巳, 葬昭公於墓道南. 孔子之爲司寇也, 溝而合諸墓. 昭公出故, 季平子禱於煬公, 九月, 立煬宮. 周鞏簡公棄其子弟而好用遠人.
추칠월계사, 장소공어묘도남. 공자지위사구야, 구이합저묘. 소공출고, 계평자도어양공, 구월, 입양궁. 주공간공기기자제이호용원인.
[解釋] 가을 7월 癸巳日에, 소공을 조상의 묘지로 가는 길 남쪽에 홀로 떨어지게 장사지냈다. 후에 孔子가 司寇가 되자, 소공의 묘에 사면으로 도랑을 내어 노나라의 다른 임금의 묘길로 서로 통하게 했다. 일찍이 소공이 나라를 떠났을 때, 계평자는 죄를 용서받고자 煬公에 기도한 일이 있으므로, 9월에, 煬宮을 세웠다. 주나라의 공간공은 그의 자제들을 버리고 먼 사람들을 등용하기를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