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이 되면
54년 전~
평화로운 가을 들녘!
황금 물결이 일렁인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6학년 담임 선생님은 우리 동네 사시는 분이어서 나는 자연스럽게 친해졌을뿐 아니라
궂은일은 다~ 도맡아 했다
그 선생님은 4학년 때도 담임이어서 2년 동안 2km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4교시 공부를
빠지면서 도시락을 갖다 드렸다
때로는 가기 싫어도 가야 했고 ,
자원하는 맘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종례 시간에 애~ 내일은 진학 상담을 위해 개별 면담을 할 테니 꼭! 부모님과
잘 상의하고 오너라 하시는 거였다
그땐 나는 우리 집이 그 정도면 가난한지 부자인지 별 관심이 없었다.
당시엔 중학교 입학이 절반도 더 진학을 포기하는 친구들이 많아 졸업식장은 울음바다였다
집에 가서 어머니와 상담을 하니 "네가 장학생이 되면 보내주마" 하시는 거였다
생각 밖의 결과에 나는 내 실력껏 시험을 봤으나 장학생은 못 되었지만, 진학은 할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시험을 보아 합격했으나 계속 내 꿈을 펼치기엔
어려움이 있어 서울로 상경하여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신학교에 입학하여 열정을 쏟으며
학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드디어 3년 개근상을 받았다.
그 후~
어떻게 하면 다시 공부를 할까 여러 번 망설임도 있었으나 나에겐 진학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어느 날~
뜻밖의 신학 교무처장님의 소개로 현 남편을 소개받았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중 우리 가정엔 2남 1녀의 자녀들이 교회에서 기둥같이
쓰임 받고 있었다
이젠 부모의 품을 떠나 각 지역에서 나름 제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어 너무 감사하다.
목회 생활 40년 정년을 앞둔 나는 꿈을 꾸고 움츠렸던 나의 나래를 편 것은 나의 의지도
있었고 자녀들의 응원도 컸고 남편의 내조가 있었기에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여 공부하니 나이를 잊고 산다.
평소에 KBS1 방송에 우리말 겨루기를 즐겨보는 편인데 대한민국에 살면서 제대로 국어를
모르는 상황이라 이번 국어국문학과에서 제대로 배워서 귀하게 쓰임 받고 싶다
그 시절!
어머니의 하신 말씀 "장학생이 되면" 이란 단어가 그립고 또 정겹게 들리는 것만 같다.
희망을 품은 사람에겐 언젠가는 기회가 오는 것 같다
꿈은 있지만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길이 되어준 학교!
어설픈 들꽃이 세상 풍파 다~ 견디고 모질게 걸어온 길이 드디어
빛을 보았습니다!
빛을 찿았습니다!
어느 위치!
어느 석상이든!
진실과 성실함과 봉사로 주변을 섬기면서 자랑스러운 늦깎이
학생으로 쓰임 받기를 나 자신에게 약속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