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알아가는 방법이 2가지 스타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 밑에 쓰인 해설을 읽거나 성경구절 순서대로 해설을 달은 주석을 보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경을 해석하고 신학을 이끌어낸 개혁주의•복음주의 성향의 조직신학을 읽어 보는 일입니다. 장코뱅은 이 중 둘째 방법을 종종 선호합니다.
자유주의 신학과 달리, 헤르만 바빙크•루이스 벌코프 등 개혁주의 거목들이 쓴 조직신학은 성경을 읽는 데에 큰 도움을 주고 믿음도 풍성히 담겨있습니다. 해설성경과 주석이 설교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조직신학은 체계적•객관적 지식을 전달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헤르만 바빙크가 『개혁교의학』을 요약한 『개혁교의학 개요』 중에서 아담에게 주어진 사명에 대한 부분을 구분선 아래에서 읽어 봅니다. 성경을 옆에 두고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 주목을 끄는 두 번째 특징적인 내용은 사람에게 잠정적인 명령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본래 이 첫 사람은 그냥 사람(하-아담)으로 불렸다. 한동안 그 사람 혼자만 있었고, 그를 닮은 다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창세기 4:25에 오면 아담이라는 이름이 정관사가 없는 상태로 나타난다. 거기서 처음 그 이름이 개인의 이름이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은 한동안 유일한 인간으로 존재하게 되는 그 첫 사람이 인류의 시작이요 기원이요 머리였음을 분명 시사해 준다. 그런 그에게 두 가지 사명이 주어졌다.
첫째로, 에덴 동산을 경작하고 보존하는 것이었고,
또한 둘째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제외한 동산의 모든 나무의 열매를 자유로이 먹는 일이었다. |
첫 번째 사명은 그와 땅과의 관계를 규정해 주며, 두 번째 사명은 그와 하늘의 관계를 규정해 준다. 아담은 땅을 정복하고 그것을 다스려야 했으며, 두 가지 의미로 그 일을 해야 했다. 우선 땅을 경작하고, 갈아서 하나님이 사람이 사용하도록 거기에 저장해 두신 모든 보화들이 돋아나도록 해야 했으며, 또한 그 땅을 살피고 보호하고 지켜서, 온갖 악이 그 땅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요컨대, 현재 피조물 전체가 부패 속에서 탄식하고 있는데, 그런 것이 끼어 들지 못하도록 안전하게 지켜야 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가 자기를 하늘과 연합시켜 주는 끈을 끊지 말아야만, 그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의 명령에 순종해야만, 이러한 사명을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사명은 본질적으로 하나다. 아담은 땅을 다스려야 했는데, 게으름과 피동적인 자세로써가 아니라 그의 머리와 가슴과 손의 일을 통해서 그 일을 이루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스리기 위해서는 섬겨야 했다. 그의 창조주시요 그에게 법을 주신 하나님을 섬겨야 했던 것이다. 일과 안식, 다스림과 섬김. 이 땅의 소명과 하늘의 소명, 문명과 신앙, 문화와 의식(cultus), 이 모든 것들은 처음부터 항상 함께 나아가는 것이었다. 이것들이 함께 묶여져서 하나의 소명을 이루며, 위대하고 거룩하고 영광된 사람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모든 문화는, 즉 농업이든, 목축이든, 상업이든, 산업이든, 과학이든 간에, 사람이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하는 모든 일은 다 단일한 하나님의 소명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진정 그런 소명을 이루는 상태에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며 순종하는 가운데 그 일을 진행해 가야 한다. 신앙이야말로 삶 전체에 활력을 주며 또한 그것을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되도록 만드는 원리인 것이다.
창세기 2장에 나타나는 세 번째 구체적인 내용은 남자에게 여자를 주신 것과 결혼의 제정에 관한 것이다. 아담은 이미 많은 것을 받은 상태였다. 땅의 흙으로 지음 받았으나,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였다. 그는 아름다운 곳이요 또한 온갖 좋은 것들을 보고 먹을 수 있는 풍성한 곳인 동산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그 동산을 경작하며 땅을 다스리는 유쾌한 사명을 부여받고 있었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제외한 모든 나무를 자유로이 먹으며 활동하여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풍성하고 아무리 감사한 것이 많아도, 이 첫 사람은 만족하지 못했고, 완성되지 못했다. 그 원인을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다. 그가 혼자 있다는 것이 그 원인이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이 그렇지 못하고, 또한 그렇게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자기 자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자기 마음을 쏟아 붓고, 자기의 느낌을 전해야 한다. 자기를 이해할 줄 알며 함께 느끼고 함께 살 수 있는 어떤 존재와 더불어 자기의 생각을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혼자 산다는 것은 빈곤이요, 버려짐이요, 점점 쇠약해짐이다. 혼자 산다는 것은 정말 얼마나 외로운가!
그리고 사람을 이렇듯 표현과 교류의 필요성을 지닌 상태로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그의 권능의 위대하심과 은혜로 그 필요를 공급하실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를 위하여, 그와 함께 지내며 그와 관계하며 그의 어울리는 배필이 되어 그를 돕는 자를 창조하실 수 있는 것이다. 19절부터 21절까지의 기사에서는, 하나님이 들의 모든 짐승들과 공중의 새들을 아담에게로 데려오셔서 그것들 중에 과연 아담의 배필이요 동반자로서 그를 섬길 존재가 없는지를 보게 하셨음을 말씀해 준다. 이 구절들의 목적은 동물들과 사람이 지어진 연대적 순서를 제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 두 종류의 피조물들이 서로를 향하여 서 있는 실질적인 순서, 계급, 관계의 차서(次序)를 제시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계급의 관계는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었다는 사실에서 처음 암시되고 있다.
그러므로 아담은 모든 피조물들을 이해하였다. 그들의 본질을 꿰뚫어보았고, 그들을 분류하고 나눌 수 있었고, 그 하나하나를 그에 합당한 위치에 놓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그가 그 모든 피조물들 중에서 자기 자신과 친근한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무지의 결과도 아니요 교만이나 어리석은 허풍 때문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그와 다른 모든 피조물들이 서로 종류가 다르다는 사실에서, 즉 정도(程度)가 아니라 본질이 다르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헤르만 바빙크, 『개혁교의학 개요』, pp.119~120.
첫댓글 믿고 보는 바빙크의 글이지만 혹시 몰라서 IVP주석을 첨부합니다. 먼저, 동물들이 남자와 함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여자의 창조만이 남자를 만족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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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24 여자의 창조:
에덴 동산은 전원적인 좋은 환경이었으나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하나님이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아니하니' (18절)라고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고 항상 좋다고 계속해서 말씀하셨기 때문에(예를 들어, 1:10, 31) 이와 같은 말씀은 충격적이다.그러나 동시에 이 말씀은 다음의 창조 행위들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먼저, 동물들이 남자와 함께 있도록 창조되었다. 이 동물들은 사람의 권위 아래 있었으나(20절에 보면 사람이 그 이름을 지었다) 억압의 대상은 아니었다(참고, 1:24-31). 아쉽게도 동물들은 첫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동반자가 되지 못했다. 오직 여자의 창조만이 남자를 전적으로 만족시켰다.
<IVP 주석: 모세오경>, p.132.
동물들이 아담의 동반자가 되지 않고 하와가 등장한 것이 천만다행이네요.
@천이다 공감합니다.
동물이 동반자나 반려자가 된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처량하고 징그럽기까지 합니다^^
톰슨3 성경주석에서 창세기 2장 해당 부분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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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노동은 원초적인 인간의 기본 생활 규범이다.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도 일하심으로써 천지를 창조하셨고,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덧입은 인간이 노동하는 존재로 부름 받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진정한 낙원의 의미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가운데에서 발견되며, 또한 그 속에서 참 기쁨과 행복을 맛볼 수 있다.
2:18,19
본절들은 창조 사역의 순서에 따른 연대기적 기록이 아니라 여자의 창조에 대한 서론적 진술이다.
2:18 돕는 배필:
적합한 조력자 혹은 배우자를 가리키는 말로 남편에 대한 아내의 역할을 암시한 표현이다(고전 11:9). 즉 이 말은 인격을 표현한 말이 아니라 기능을 표현한 말이기 때문에 결코 남성 우위론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딤전 서론, 교회 내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
돕는 배필인 하와도 조력자로서 함께 낙원 동산을 경영하는 파트너였을 것 같습니다.
@천이다 공감하고요. 돕는 배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2:19
아담이 각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 준 것은 ① 1:28의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하여 우월성 및 종주권을 합법적으로 선언한 행위이며 ② 동시에 그가 각 동물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톰슨3 성경주석>
사람이 동물을 지배하지 못하고, 동반자로 반려동물의 반려 호칭을 붙이는 것은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남과 여만이 서로 동반자이고 동물은 그 아래에 위치해 있는 것이 창조의 질서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도 좋은 포스팅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이다 무척 공감합니다.
부흥과개혁사에사 비교적 최근에 나온 편인 『베이커 성경주석(구약편)』에서 창세기 2장 해당 부분을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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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흥미롭게도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2:18~25). 아담 자신이 자신의 환경에 대해 불만을 가졌다는 표시는 없다. 하나님은 평가를 하신 후에 해결책을 제안하신다(2:18).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 돕는 자를 제공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아담을 돕는 분이다(하지만 우월하신 돕는 분). 동물들 역시 아담의 돕는 자다(하지만 열등한 돕는 자). 그렇다면 이 돕는 자는 아담과 대등한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여자는 아담에게 배필이 되어야 한다. “배필”(suitable), 곧 어울리는 존재라는 말은 양극을 완성하는 어떤 것을 시사한다. 북극이 남극에 어울리는 존재인 것과 마찬가지다. 둘 중 하나가없으면 불완전하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아담 앞에 동물들이 죽 지나가게 하신다(2:19-20). 이것의 취지는 아담 자신이 누가 자신의 상대자가 될지 선택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결정을 강요하는 대신, 남자가 자유롭게 결정하게 하신다. 남자는 옳고 그
하나님의 선하신 결정이 아담을 우위에서 도우셨던 것 같습니다.
2.남자는 옳고 그른 것을 선택할 자유는 없지만, 평생의 반려자를 선택할 자유는 있다.
동물들이 지나가는 장면이 끝난 후에, 하나님은 아담을 마취시키신다. 그리고 남자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동안 하나님은 남자의 갈빗대 (부수적으로 말하면, 이 말은 구약에서 이 말이 나오는 모든 곳에서 ‘옆구리’[side]로 번역되어 있다) 하나로 여자를 만드신다. 사실상 본문은 여호와가 여자를 "지으셨다"(built)고 말한다.
게리 버지 등, 『베이커 성경주석(구약편)』(부흥과개혁사), pp.22~23.
하와가 단순히 아담의 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셨다(built)는 점에서 하와의 신분이 고귀한 것임을 느낍니다.
베이커 주석의 해설도 좋네요!
조직신학과 주석을 통해서 창세기 2장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댓글과 공감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자신 앞을 지나치는 동물들을 관찰하고 분류하며 이름을 붙여줄 때, 어느 면에서나 자신과 동류가 없음을 깨달아 가는 아담의 심정이 점점 애간장이 탓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동물의 이름을 불러주고는 아주 울쌍이 되었겠지만 잠들고 일어나 자신 앞에서 함께 주님을 섬기며 동산을 지킬 돕는 베필을 만났을때 얼마나 감사하고 기뻣을지...그녀의 이름만 보아도 알수 있겠어요..
아파르님의 댓글을 보면 평소에 성경공부나 주석 같은 것을 많이 보시고 생각도 깊이 하신 표가 많이 납니다. 깊고 풍성한 댓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빙크의 이 글도 심상치 않은 내용이고 신학적 깊이가 대단하네요.
아담, 즉 사람의 본분은 땅을 다스리고 경작하는 자이며 동시에 영혼은 하나님의 명령(살리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임을 대비시켜서 잘 설명하고 있네요. 이것만 보아도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두 명령을 같이 충족시켜야 할 존재로 지음 받은 것 자체가 복인데 이걸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오해해서 신앙을 저버리는 일들도 많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아담과 하와, 그리고 예수님과 인간의 상관관계를 알게 하며, 많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영감을 주는 수준 높은 글이었습니다.
의미 깊은 댓글을 올려 주셔서 제가 많이 참고합니다.
바빙크의 내용을 잘 정리하셨네요. 좋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