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와 비유로 주제를 담아내는 글
「수필문학」 9월 호를 읽고
오경자(수필가·평론가)
수필은 곧 인생이고 사랑이다. 지난날의 추억을 불러오고 현재를 둘러보며 반추하는 것도 결국은 오늘의 승리를 노래 하기위한 기초공사에 다름 없다. 주위의 온갖 것들을 다 보듬어 안고 사랑하는 이야기들로 점철된 글이 바로 수필이 아닌가 한다. 그 사랑은 자신을 불태웠던 젊은 날의 애정을 다룬 그 좁은 의미의 사랑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늙으신 부모님에 대한 사랑, 철이 없어 못다 한 가족 사랑 등은 누구에게나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은 아픈 기억이면서 묘하게 아름다운 그리움 한 자락이다. 거기에 이웃 사랑, 자연 사랑 등 그 범위는 실로 끝이 없지만 역시 어떤 것이든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촉촉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김형애의 정원에서 일어난 작은 비극(?), 박새의 죽음은 작가의 가슴을 파고들면서 작은 새 한 마리의 어이없는 참변을 아파하는 작가의 자연 사랑에 옷깃을 여미는 심정이 되어 함께 고개 숙이게 한다. 어느 왕후장상의 죽음만이 세인의 애도 대상이 아님을 이 작품을 다 읽고 나서야 몸으로 느끼게 된다.
깻잎, 상추, 쑥갓, 로메인, 돌나물 등을 돌아보고 아침에 샐러드 만들기 위하여 로메인을 뜯어서 손에 한 움큼 쥐었다.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감나무 뒤에 있는 백합을 바라보다가 그 아래에 있는 박새를 발견하였다. 박새는 두 날개를 쫙 폈고 머리는 반이 땅속에 박혀 있었다. 머리와 목의 푸른색이 감도는 검은색은 묻히고 뺨의 흰색만 보였다. 박새의 참담한 모습을 보며가슴이 아팠다. -「박새의 변」중에서
그야말로 한 마리 새가 변을 당한 현장에서 측은한 생각을 노래할 수있다. 여기서 그쳤다면 이 글은 그냥 한 편의 자연 사랑 단상에 그치고만다. 그러나 작가는 탁월한 상상력과 비유를 통해 시대적 화두를 스스럼없이 문학에 녹여 넣는 것으로 뼈 있는 수필을 완성한다.
“아 아 어제 거실 유리창에서 난 소리가 너구나!”
어두움이 잦아들기 전에 밤 지낼 곳을 찾아 우거진 감나무 잎을 찾아왔다가통유리창에 비친 나뭇잎을 보고, 그냥 돌진하다가 사고를 당했구나.
박새는 통유리창에 비친 가짜 나뭇잎 때문에 생명을 잃었다. 요즈음 우리 사회를 도배하고 있는 가짜가 점점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처음엔 그런 것이 아니겠지 하다가, 떼로 몰려다니며 피켓을 들고 외쳐대고 아우성을 치면 그것이사실인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우리의 분별력을 흐리게 하는 가짜의 무서운 파괴력이 있다. 우리의 안전과 질서를 파괴하며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하여 있는 가짜를 속히 사라지게 하여야 한다. 「박새의 변」중에서
작가는 위의 문장으로 우리들의 불편한 진실을 우회적으로 끌어들여 은유적으로 주제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자연 사랑을 통해 가슴을 파고들어 험한 사회적 화두를 가감 없이 지적하며 소신을 힘 있게 주장한다.
작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가짜뉴스의 횡행과 진실을 재판이라는 실례를 들어 판례로서 가짜뉴스와 관련된 허황됨을 증거로 제시한다. 자신의 주장에 객관적 설득력을 덧입혀 수필의 밀도를 조밀하게 높여주고있다. 박새의 시신을 사철나무 밑에 묻어주고 그 위에 조그만 돌멩이에 박새라는 푯말을 써서 올려놓았다는 결말은 독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풍부한 여백을 만들어 주면서 깊은 공감으로 이어지게 하는 여운 있는 수필을 탄생 시켰다.
작가 이석룡은 「구십 고개에서의 허탈감」에서 많고도 많았을 인생역전을 미련 없이 다 따돌리고 젊은 날의 즐거웠던 추억으로 춤에 빠졌던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려내는 솔직함을 보여준다. 독자의 마음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시작하는 글은 담담하기 그지없다. 노래에 심취한모습을 잠깐 소개하고 공직에 있는 동안 소신껏 충실하게 일한 보람으로 오늘도 당당하고 행복하다는 심정으로 마무리한 글은 회고담의 진부함을 완전히 불식시킨 작품이다. 눈여겨볼 만한 구성이다.
20대 시절의 화려했던 그 시절을 회상할 때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곤 하는데… 그 무렵 동창들이나 죽마고우의 벗들을 보면 결혼을 해서 알뜰한가정을 이루고 사는데 나는 아직도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돈도 없고 서두름도 없었다. 밤만 되면 뭇 여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즐기는데 결혼은 왜 하느냐는생각이 팽배했었을 것이다. 일컬어 방탕생활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나도 모른다.
라스트 블루스가 끝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가는데 가쁜 숨을 몰아쉬며 뒤따라오면서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안면이 있는 여성이 투덜대면서 왜 자기는 한 번도 잡아주지 않았느냐며 따지고 달려든다. 참 처세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아 그랬군요, 내일 저녁에 잊지 않고 한번 즐겨 봅시다.” 이런식으로 변명을 늘어놓고 헤어지곤 했었다.
- 구십 고개에서의 허탈감」중에서
자신의 일탈에 속할 수도 있는 젊은 날의 일들을 솔직하고 담백하게그려 낼 수 있는 것은 바르게 살아온 생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버팀목이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수필은 인생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석룡은 공직 생활을 마감하고 난 후 자신의 별명이 '안 통하는 원칙주의자'였음을 소개하면서 수필의 결말을 장식한다. 이 부분에서 수필이란 어떤 문학인가를 독자들은 은연중에 가슴에 새기면서 작가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존경을 전하게 된다.
수필은 나의 이야기를 쓰는 글이기에 나 자신의 이야기뿐 아니라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들은 이야기들, 내가 감상한 영화나 미술 작품들이 모두 주요대상이 된다. 그중에서 어떤 순간 내가 깊이 만나고 있으면그것이 글감이 되고 그것에 대한 나의 태도, 해석, 관조 등이 주제를 끌어내며 깊이 있는 수필을 빚어내게 된다. 박경화의 오무라 마스오 교수님을 생각합니다」는 그런 작품의 하나이다.
마스오 교수의 학술상 시상식에 자신의 건강 형편이 안 좋아 가지 못했다는 미안함에서 출발한 편지 형식을 빌린 글은 아주 담담하게 마스오 교수 내외와 작가 내외의 교분과 소통을 넘나들면서 존경과 사랑을담담하게 담아낸다. 그 글 속에 작가가 전하는 참 좋은 사람이라는 대상에 대한 면모를 자신들의 만남의 모습을 통해 흘깃흘깃 흘리는 것 같은조심스런 필체가 마스오 교수 내외를 신비롭게 만든다고 하면 좀 지나친 표현이 되려나?
작가는 참된 선비라는 것의 정형을 소개하고 싶어 이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며 읽어 내려가게 하는 단아한 한 편의 수필이다. 국적을 뛰어넘는 진실이라는 것의 위력이 인간의 소통에서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일깨워 주며 작가의 주제 의식에 깊이 빠져들어 가 보게 하는 작품이다.
정선희의 장맛비 내리던 날」은 아버지의 2주기 제사를 마치고 어머니의 요양원을 찾았다가 황당하게도 아버지가 삼겹살을 좋아하니 사다가 꼭구워 드리라는 당부를 하는 치매의 노모를 보면서 무너져 내리는 자괴감을 잘 담아내고 있다. 그 글의 전반은 부모님에 대한 애정과 못다 한 효도에 대한 회한 등을 주 글감으로 하여 회고와 주제를 잘 그려낸 작품이다.
장연희의 살아주기는 과중한 일인다역의 무게에 짓눌린 자신이 친정에 가기만 하며 잠 보따리를 풀어 놓던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머니의 생과 자신의 지난 삶을 잘 섞어 가며 고단한 삶의 단면을 맛깔스럽게 풀어낸다. 아들을 호열자로 잃은 어머니의 애환과 이제 자신도 세월이 흘러 딸들의 잠보따리 풀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결말 부분에 가서 치열했던 자신의 삶이나 어머니의 삶이나 모두 무슨 사명감 같은 것을 갖고 소명의식으로 무언가를 위해서 살아 주었던 것 같다는 말로 주제를 형상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후로도 나는 친정에만 가면 늘어지게 잠을 자고 엄마는 ‘다 안다. 다안다’며 나를 재웠다. 그리고는 시차를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살았다. 엄마는 말없이 당신 삶의 모티브였는지 돌아가실 때도 상추 밭일을 하다가 쓰러져 돌아가셨다. 어쩌면 오빠를 만나러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세월은 흘러 이제는 내가 우리 딸들의 누울 자리부터 찾는다.
이러다 보니 문득 나는, 요즘처럼 이렇게 그냥저냥 사는 일도 무슨 사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 안다, 다 안다.' 하면서 감당하는 사명 말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평범한 일이 무슨 사명이겠냐고 묻는다면 그것이 뭐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 그저 이렇게 서로 대를 이어 살아주는 것도 사명이 아니겠냐고 답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수로 우리가 여기까지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아요, 엄마? - 「살아주기」중에서
흔히 수필이 회고를 주로 쓰는 것 때문에 진부해지기 쉽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편견임을 보여 주는 수필 한 편이 실렸다. 곽영주는 「한창을 찾아서」을 찾아 나선다.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라는 동요를 불러들여 자신의 한창을 신명나게 읊어 나간다. 우리 모두에게 한창일 때가 있었다. 공감은 자연스레 일어나며 독자의 입이 헤벌어진다. 이래서 수필은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문학의 숲이라 할 수 있다.
한창은 젊음이요. 젊음은 꽃으로 피어나고 꽃은 찬란함의 순서로 지나온 세월이었다면, 이젠 찬란함이 빛으로 영광으로 다가올 또 한 번의 '한창'을 기대해본다. 아무도 '한창'을 한 번뿐이라고 규정한 일은 없으니까.
누가 뭐랄 것인가 내 맘이지.
이제, 부족한 부분을 메꿔가며 빛의 영광을 위해 내가 가진 그릇의 함량을 두둑하게 채워보리라.
- 「한창을 찾아서」중에서
이유준의 엄마와 딸의 계보는 요즘 가정의 모계 중심 행태를 잘 그려내고 있으며 탄탄한 문장력이 주제를 선명하게 전달해 주는 힘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하는 작품이다.
기획연재 나의 애장품에서 박종규는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진솔하게 풀어내고 지금 자신을 성취의 단계로 이끌어 올린 옛 원고 뭉치에 대한 사랑을 담아내고 자신이 버팀목으로 삼았던 다방 누나에 대한 담담한 회고는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면서 주제를 선명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양호인의 폐역 탐방 시리즈는 여전히 애잔한 서러움 같은 것을 잔잔하게 글에 녹이면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그 속에 또 다른 미래가 숨어있음을 노래하는 희망의 역설을 잘 펼쳐 보이고 있다.
전명주의 뮤지컬 등을 관람하고 쓰는 테마 수필은 맛깔스런 그의 문장력과 독특한 서사법에 힘입어 또 다른 재미를 독자에게 한 아름 안겨주고 있다. 그가 무대를 통해 접하는 사람들의 온갖 모습을 통해 담담하게 소개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의 관조의 창으로 들여다본 세상만사와 천태만상의 인간 군상 이야기는 바로 저게 나의 모습이라고 외치고 싶은 독자들의 가슴을 대신 다독여 주기에 충분하다.
수필은 작가의 이야기이고 실제 경험이기에 오늘도 우리는 또 다른 인생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싶어 수필집을 끌어당겨 읽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