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승리 / 다니엘 6:25-28 / 주일예배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가운데 닮아야 할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대로 닮아선 안 될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순종의 사람 노아나 절대 신앙과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 그리고 자신을 번제로 바치는데 저항하지 않은 이삭, 하나님의 신실한 종 모세는 배워야 하고 본받을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보다 마귀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던 하와, 자기 동생을 질투에 눈이 어두워 살해한 가인, 권력과 돈에 눈이 가려 하나님을 멀리한 사울 왕, 스승을 팔아 돈을 챙긴 가룟 유다 등은 절대로 배우거나 따르면 안 될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신앙과 삶의 모델로 삼고 배워야 할 한 사람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다니엘입니다. 그는 주전 586년 바벨론의 침략으로 남 왕국 유다가 망할 때 포로로 끌려간 젊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품이나 인격도 준수했고 거기다 신앙도 뛰어났습니다.
다니엘 1장 4절을 보면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포로로 붙잡아온 유대나라 청년 가운데 흠 없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용모가 뛰어난 사람), 모든 재주를 통달한 사람, 지식을 갖춘 사람, 학문에 익숙한 사람, 학문과 방언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을 뽑아 바벨론 젊은이들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인격과 재능을 겸비한 사람을 뽑아 이름도 바벨론 이름으로 바꾸고 왕궁 별채에서 숙식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왕이 평소 먹고 마시는 음식과 술을 먹도록 했습니다. 한마디로 출셋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함께 포로로 끌려온 동족들은 천대와 멸시를 겪고 있는데 나만 호의호식할 수 없다는 애국심과 동족애 때문이었고, 왕이 먹고 마시는 음식이나 술은 대부분 우상 제사에 사용했던 것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왕이 하사한 음식이나 술은 자기 몸을 보신하는 데도 좋고 왕의 환심을 사 출세하는 데도 발판이 되는 것들이지만 다니엘은 “아니요.”으로 거절했습니다. 옳은 것은 옳소, 아닌 것은 아니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의 사람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내 뒷덜미를 잡아당기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가 뒷덜미를, 어떤 사람은 오락이나 취미가, 어떤 사람은 습관이나 버릇이, 어떤 사람은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 뒷덜미를 잡아당겨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그 위기와 고비를 넘긴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다니엘의 포로 생활은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온갖 시험과 시련 고통과 박해를 이겨내고 결국 바벨론의 국무총리가 됩니다. 6장 1절 이하를 보면 120명을 뽑아 각 도와 시를 다스리게 하고, 세 명을 세워 120명의 방백들을 관리하고 전국을 총괄하게 했는데 세 사람의 국무총리 가운데 다니엘이 수석 총리가 된 것입니다.
다니엘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가 겪은 시련은 어떤 것이었고 어떻게 이겨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방백:지방관리)
1. 다니엘은 어떤 사람입니까?
1:4에 의하면 그는 모든 것을 갖춘 사람입니다. 용모, 지혜, 지식, 재주, 지도력, 요즘 말로 만능 엔터테이너였습니다. 그는 왕의 후의와 환대도 거절할 줄 아는 신앙과 용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느브갓네살이 꾼 꿈을 해석하는 지혜와 능력도 있었습니다.
6:3을 보면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120명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했다”라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면에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은 늘 가까이 있습니다. 다니엘의 성공과 출세를 다른 총리들과 방백들이 질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6:4을 보면 “아무 틈도, 아무 허물도 찾을 수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인격과 생활이 깨끗했습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허물이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총리 두 사람, 방백 120명이면 122명입니다. 그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허물을 찾고 단점을 찾았으니까 244개의 눈이 허물과 단점을 찾은 셈입니다. 그런데 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도자는 허물이 많으면 안 됩니다. 누구나 허물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허물이 너무 크게 많이 발견되면 안 됩니다. 6:5을 보면 그 사람들이 다니엘을 두고 말하기를 “틈이 없어 고소도 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지도자들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2. 알면서도 전에 하던 일을 했습니다.
다니엘을 미워하고 시기하던 정적들은 다니엘에게서 단점을 발견하지 못하자 묘책을 꾸몄습니다. 바벨론 왕이 아닌 다른 신이나 대상에게 절하거나 비는 자는 사자굴에 집어 던져 사자밥이 되게 한다는 급조된 법을 만들어 왕의 결제를 받아냈습니다.
왕으로서는 음모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쾌히 서명을 한 것입니다. 왕의 서명이 끝나자마자 그 법령이 전국에 공포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법을 어기는 자는 사자굴에 집어던진다”는 법은 다니엘 제거를 위해 만든 법이었습니다.
6:10을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구절입니다.
다니엘은 그 당시 수석 국무총리였기 때문에 나름대로 정보 라인이 다 갖춰져 있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 적들의 손이 목을 조여 오는 긴박한 상태, 피할 수 없는 위기가 다가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 알면서도 전에 하던 일을 계속 했습니다.
‘창문 열고’, 공개한 것입니다. '하루 세 번', 죽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감사 하였더라', 고난과 위기를 긍정적으로 수용한 것입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타협이 가능했습니다.
꼭 창문을 열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창문 열면 기도가 되고 닫으면 기도가 안 된다는 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창문 닫고 보는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조용한 소리로 입속으로 기도해도 됩니다. 그리고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판국에 한번만 기도해도 됩니다. 세 번씩 티를 낼 이유가 없습니다.
그뿐입니까?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제가 뭘 그리 잘못했습니까? 기도를 방해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저 사람들을 사자굴에 집어넣어야 옳지 왜 저를 사자굴에 집어넣으려 하십니까?”라며 원망하고 대들 수 있었을 텐데 그는 감사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때 그 상황과 오늘 우리 입장을 대비시켜 보겠습니다.
첫째,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것은 만천하에 자신의 입장과 정체를 드러낸 것입니다. “나는 다니엘이다. 나는 바벨론 왕이 아닌 하나님께 기도한다.”라고 공개한 것입니다.
아가 2:2을 보면 솔로몬 왕이 사랑하는 여인 술람미를 잔치집으로 초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곳엔 많은 상류층 사교계의 남녀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단연 최고의 인기 커플은 솔로몬과 술람미였습니다. 호기심으로, 부러운 눈으로, 질투하는 눈으로, 반신반의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솔로몬이 하얀 손수건으로 기를 만들어 식탁 위에 세웠습니다. 이것은 우리는 사랑한다는 표시였습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솔로몬과 술람미가 앉은 식탁으로 쏠렸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을 공개한 그 깃발 때문에 그날 이후 그 누구도 솔로몬이나 술람미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자기 신앙 자기 입장을 선포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창문을 열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나는 예수 믿고 죄 사함 받았습니다. 나는 죄 사함 받고 구원 받았습니다. 예수는 나의 구주이십니다. 나는 예수의 사람입니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고 선포합시다.
둘째, 하루 세 번 전에 하던 대로.
전에 하루 세 번 했으면 네 번 다섯 번 해야 합니다. 주일에 놀러가는 사람은 안가야 하고, 새벽기도 못나오던 사람은 나와야 하고, 저녁예배 안 나오던 사람은 나와야 하고, 전도 안하던 사람은 전도해야 하고, 십일조 안하던 사람은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전에 하던 일을 그만두거나 중단한 사람들은 다시 해야 합니다.
셋째, 무릎 꿇고.
국무총리가 무릎 꿇은 대상은 왕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언제나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을 높였기 때문입니다.
이 땅위에 하나님보다 높은 사람은 없습니다. 헤롯 왕이 하나님보다 높은 줄 알다가 피부암이 걸려 죽었습니다. 네로왕이 하나님보다 높아지려다가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무릎 꿇고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위기에서 건지시고 환난에서 건져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겸손히 무릎 꿇는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좋아하십니다.
일본 사람들은 자기네 나라 왕을 천황이라 부릅니다. 천주교는 교황이라 부릅니다. 「황」이란 말은 황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실 명칭입니다.
넷째, 감사하며.
다니엘 신앙의 절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그 상황에서 감사할게 뭐가 있겠습니까? 죽음의 그늘이 드리우고, 원수의 공격이 에워싸고, 절망과 분노가 앞을 가리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감사했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고난을 받아도, 죽임을 당해도 드린 감사였습니다.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위대한 신앙은 위대한 감사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3. 그 결과가 중요합니다
첫째, 죽지도 상하지도 않았습니다.
원수들의 소원대로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졌습니다. 굶주린 사자떼였기 때문에 살아날 희망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23절을 보면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다”고 했고, 그 원인을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24절을 보면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꿇어 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보호해 주셨고, 그들은 하나님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고난이 영광이 됩니다. 절망이 희망이 됩니다. 죽음이 부활이 됩니다. 고통이 감사가 됩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면 사자굴에 들어가도 살고 하나님이 버리시면 모기에 물려도 쓰러집니다.
둘째,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다리오 왕이 전국에 조서를 내렸는데 그 내용은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다니엘 사건이 그 증거다.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않으시고, 그의 나라는 망하지 않으며, 그의 권세는 무궁하시다. 그는 구원도 하시고, 건져 내기도 하시고, 하늘과 땅에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고 사자의 입에서 다니엘을 구원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26-27절).
왕이 친히 다니엘 사건을 지켜보며 갖게 된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다니엘의 신앙과 삶, 그리고 인격이 왕을 감동시켰고 신앙을 갖게 한 것입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고난 때문에 쓰러지는 사람이 있고, 고난을 이기고 일어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그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절망과 실망을 주고 그 사람을 주님과 교회로부터 떠나가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어느쪽에 속합니까? 다니엘처럼 왕을 감동시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28절은 이 사건의 결론입니다.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느브갓네살이 죽고 다리오가 왕이 된 후, 그리고 바벨론이 바사에 의해 멸망한 이후까지 다니엘은 유명 정치가로 존경받고 형통했다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 적잖게 60년이나 됩니다.
고난 속에서라도 찬양합시다. 힘들어도 기도합시다. 절망 속에서라도 하나님을 의지 합시다.
길이 열릴 것입니다. 영광이 임할 것입니다. 그 길이 형통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