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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1
여호와께 감사하라(호두 라이화) - 이 구절은 시편의 제5권에서 뿐 아니라 역대기에서도 자주 사용되고 있는 송영의 한 형태이다(106:1;대상 16:34).
그는 선하시며(키 토브) - 직역하면 '선하시기 때문이다'이다. 여기서 '토브'는 '도덕적, 영적 혹은 실제적 삶의 기준에 일치하는 행위를 하는 존재'를 암시한다(Hempel). 여기서 시편 기자는 먼저 하나님이 찬양받으시고 우리가 그에게 감사해야 할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이유란 그가 우선 우리의 도덕적, 영적, 실제적(삶의 영역을 의미함) 표준이 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본 구절은 의식 용어로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106:1;107:1;118:1).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키 레올람 하스도) - 여기서 '하스도'는 이스라엘 공동체와 맺은 언약에 대해 신실하신 하나님의 자비의 속성을 강조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또한 '레올람'은 '영원히'란 뜻을 지닌다. 그리고 '키'는 '이유'를 뜻하는 강조 접속사이다. 그렇다면 본문은 상반절에 선포된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명령의 근거로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여호와께 감사해야 할 이유는 그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영원히 성실히 이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한편 '키 레올람 하스도'는 본 시편을 구성하고 있는 스물 여섯절 각각의 후렴구로 등장하고 있는데, 이 같은 외형적 특성 때문에 본 시편은 '위대한 할렐'(great Hallel)로 불리운다(학자에 따라서는 120-136편 혹은 135, 136편 혹은 본 시편만을 'great Hallel'로 인정한다). '위대한 할렐'외에 '할렐 시편'도 있는데(113-118편), 전통적으로 이와 같은 시편들은 유월절을 포함한 중요한 연중 절기마다 사용되었다(Anderson). 그 절기 때 본 시편 각각의 상반절과 같은 내용의 주제가 낭송되면 그때마다 후렴구와도 같이 '키 레올람 하스도'가 제창되었다. 주제 선창은 레위인들이 하였고 후렴구 제창은 성가대원 혹은 회중 전체가 하였다.
=====136:2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엘로헤 하엘로힘) - 직역하면 '신들 중의 하나님'이다. 이 구절은 신 10:17을 회상케 한다:"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본 표현은 다신론적(多神論的) 배경 속에서 그 기원을 찾아야만 하나(Kraus), 현 문맥 속에서는 '진정한 신, 참신이신 하나님'을 뜻하는 바 비교가 안 될 만큼의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이해하면 무난하겠다(Henton Davies).
=====136:3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아도네이 하아도님) - 직역하면 '주들 중의 주'이다. 여기서 '주들'이란 땅 위의 모든 권력자들을 뜻한다. 예를 들면 왕들, 군주들, 통치자들이 그들이다. 그런데 바로 그 권력자들보다 월등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본문의 강조하는 바이다. 이것은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한 칭호이기도 하며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키기 위하여 땅 위에 오신 그리스도에게 적용되는 칭호이기도 하다(계 19:16).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이 '주'를 '온 땅의 주'로 부르고 있다(97:5).
=====136:4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 여기서의 '기사'는 '니플라오트'로서 구약 성경 전체에서 45번, 그중 시편에서만 27번 등장하는 용어인데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의 창조사역, 그분의 심판 및 구속(26:7;71:17;75:1;78:4, 11)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본 문맥에서는 특히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드러내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는데 이 구절은 하나님만이 창조 사역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계속되고 있는 주제인 바 피조 세계의 그 어떤 존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월등하신 하나님의 또 다른 증거가 된다(Anderson).
=====136:5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 - 이는 잠 3:19 하반절의 반영이라 볼 수 있다(렘 10:12). 지혜(테부나)는 특별히 창조 사역 가운데 드러난 신적(神的) 속성 중의 하나이다(104:24;욥 9:10). 하늘(솨마임)은 '땅의 덮개' 혹은 '창공'(150:1)이라 불리우는 영역을 뜻한다. 고대인들에게 있어 이 '창공'(궁창)은 금속을 부어 만든 틀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가 능히 그와 함께 하여 부은 거울 같은 견고한 궁창을 펼 수 있느냐"(욥 37:18). 여기서 거울은 흔히 윤기나는 청동으로 만들었다(출 38:8). 또한 신 28:23에서 하늘은 '놋'에 비유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솨마임'은 하나님과 천상적 존재들의 거처를 암시하는 말이다(123:1). 한편 '솨마임'은 하나님의 이적적인 사역을 찬양하는 인격적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19:1;89:5).
=====136:6
땅을 물 위에 펴신 이 - 여기서 '펴신'은 '로카'로서 '두들기다' 혹은 '두들겨 펴다'를 뜻하는데 본절에서 땅은 마치 얇은 금속 물체를 물 위에 펼친 무엇과 같이 회화적으로 묘사되었다(사 42:5;44:24).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따르면 땅은 동시에 산의 기초가 되기도 하는 기둥들에 의하여 지탱되면서 거대한 대양의 물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창 7:11;49:25;출 20:4;신 33:13;삼상 2:8;욥 26:10;잠 8:29;욘 2:6).
=====136:7
큰 빛들(오림 게돌림) - 구약 성경에서는 이곳에만 나오는 용어인데 이것은 막연한 광선이 아니라 발광체, 즉 빛을 내는 물체를 뜻한다(창 1:14-16). 여기서는 해, 달, 별 등과 같은 존재를 가리킨다. 반즈(Barnes)는 다음과 같이 빛들에 대한 감흥을 적고 있다:'눈으로 볼 수 있는 우주 안의 모든 아름다움, 모든 생명체인 식물계와 동물계에 드러난 미(美)와 활기, 거기에 진정한 생명력과 행복이 넘쳐나 보인다. 이러한 것들은 암흑이 지배하고 있는 곳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이다. 행복의 상징, 기쁨의 근원, 제공자, 미의 계시자, 그것이 바로 빛이다.
이러한 빛의 특성을 생각하는 자로서 그 빛의 창조자를 찬양하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 ?'
=====136:8
해(쉐메쉬) - 고대인들은 '쉐메쉬'를 매우 중요한 신(神)으로 간주하였는데 애굽과 메소포타미아에는 이 사실에 관한 상당히 많은 근거들이 있다(Kraus). 메소포타미아에서 태양신 솨마쉬는 공평과 정의의 지탱자로 간주되었는데 예를 들어서 잘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을 포함하고 있는 비문을 새긴 석기둥 위에는 솨마쉬가 함무라비에게 법을 준 자로 묘사되어 있다(ANET). 반면 구약에서 '쉐메쉬'는 하나님의 작품이며 따라서 모든 경배는 창조주 하나님께만 돌려야 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장막을 펴신다는 식으로 표현한 곳이 있는데 이것은 비유법의 일종으로 해가 움직이는 길을 가리키는 표현이라 하겠다(19:4).
=====136:9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 - 여기서 '별들'에 해당하는 '코카빔'은 흔히 운율를 맞추려는 주석가들의 노력 때문에 삭제된다. 창 1:16에도 '별들'은 생략되고 달만이 밤을 주관하는 발광체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맛소라 본문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반즈(Barnes)의 다음과 같은 주해처럼 본문은 별들을 포함함 밤의주관자, 달의 영향력을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됨이 마땅하다:'그 움직임에 있어서조화와 질서를 드러내는, 밤을 덜 혐오스럽게 덜 공포스러운 것으로 바꾸는, 밤에 의해 숨겨진 수많은 하늘의 실체들을 드러내 주는, 뿐만 아니라 밤바다를 향해하는 항해자들의 길을 밝혀주는 달과 별들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하게 한다.
=====136:10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 여기서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레마케 미추라임 비브코리헴)는 직역하면 '그들의 장자 안에서 애굽을 치신 이에게'이다. 단어의 배열 구성을 보면 '애굽'에 해당하는 '미츠라임'이 '장자들'을 뜻하는 '베코리헴' 보다 앞에 나와 있는데, 이는 하나님이 치신 것은 일차적으로는 '장자들'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애굽 국가 그 자체였음을 시사한다. 하나님이 애굽을 치신 것은 그의 백성을 향한 자비의 발로였다. 이 말은 하나님이 애굽을 치신 행위는 속박으로 부터 그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뜻한다. 애굽을 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종살이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학자는 이 하나님의 사역을 출애굽이 인류 구원의 모형이라는 점에서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Barnes).
=====136:11
이스라엘을 저희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 이스라엘이 애굽 땅으로부터, 더 구체적으로는 애굽의 노예생활로부터 해방된 것을 가리킨다(출18:1;20:2;신1:27;4:20;5:15).
=====136:12
강한 손 - 이 표현은 신명기에서 자주 볼 수 있으며(신 4:34;5:15;7:19;11:2;26:8),문자적으로는 대적하는 모든 세력을 휘어잡거나 진압할 수 있는 손을 뜻한다. 그러나문맥상으로는 억눌린 백성들을 구원하고 대적들에 대한 심판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항거할 수 없는 힘을 가리킨다.
펴신 팔로 - 적을 치기 위하여 팔을 뻗듯이 강력한 힘을 사용하는 것을 나타내는표현이다(출 6:6;신 4:34;5:15;7:19;26:8;렘 32:21).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그 능력을 사용하신 일이 하나님의 자비의 표현인 까닭에 대해 어떤 학자는 그 구원의지속성을 으뜸으로 내세운다. 사실 이 사건 이래로 세계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중단된 적은 없었다. 이제 그 구원 사역은 주님 재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Barnes).
=====136:13
홍해를 가르신(고제르 얌 수프) - 여기서 '얌 수프'의 문자적인 뜻은 '갈대의 바다'인데 진보적인 학자들은 '갈대'에 초점을 맞추어'얌 수프'가 바다가 아니라고 강변(强辯)한다. 그들은 아카바만이나 수에즈만에는 갈대가 없으며 따라서 '얌 수프'는 수에즈만 북방의 습기가 많은 지역 혹은 익명의 내륙지방을 가리킨다고 전제한 수 따라서 모세가 가른 것은 바닷물이 아니라 습기가 많은지역에 서식하는 갈대들이었다고 주장함으로써 홍해 기적 사건을 부인한다. 그들은 계속해서 본문과 같은 표현은 혼돈으로 가득한 신화적 배경에 근거를 둔 비유법의 일종일 뿐이라고 덧붙인다(93:3, Deissler). 이 같은 진보주의 학자들에게 논리적 서술로홍해 사건을 납득시키기란 불가능하다. 성경에 나타나는 모든 기적, 기사를 믿지 않는전제를 가지고 있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해 사건을 증명함과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할 그리고 그들에게 제시할 만한 문법적 근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제르'의 문자적인 의미이다. '고제르'의 문자적인 의미는 '두 부분으로 나누다'이다. 그런데 이 '나눔'은 결코 쪼갤 수 없는 한 물체를 두 부분으로나누는 것을 뜻한다. 이 의미를 중시할 때 우리는 모세가 나눈 것, 그래서 그와 그 백성이 그 두 부분 사이로 건너간 것은 '갈대들'이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나눌수 없는 바닷물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본절에서는 바닷물을 나눈 주체는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신 그분은 능히홍해 바다를 가르실 수 있었다(출 14;21, 22).
=====136:14
이스라엘로 그 가운데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 여기서 우리가 감사해야 할 내용은, 양쪽으로 갈라져 벽처럼 서 있는 파도가 되돌아와서 덮치지 않도록 막으신 사실에서 명백히 드러나는 하나님의 주밀(周密)하신 자비이다(출 14:19).
=====136:15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 여기서 '엎드러뜨리신'은 '니에르'로서 문자적인 뜻은 '흔들어버리다'이다. 이 단어는 그 잎사귀들을 떨구기 위하여 나무를 안고 흔들 때 적용될 수 있는 용어이다(사 33:9). 동일한 용어가 출 14;27에서 사용되고 있다:"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흔들어 바닷속으로 넣으시니"(개역 성경에는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136:16
인도하여 광야로 통과케 하신 - 이스라엘의 광야 시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관한 주제는 구약 성경에 자주 반복되고 있다(신 8:15;렘 2:6). '인도하여'란 구체적으로 그들의 필요를 위한 모든 물건들을 공급하신 일, 모든 대적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신 일 그리고 주시기로 약속한 땅에 그들을 안착케 하신 일 등을 가리킨다.
=====136:17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 본절에서부터 22절까지에는 135:10-12과 거의 유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차이가 나는 것은 이곳 각 절들은 후렴구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절에서 22절까지의 핵심은 강한 열방의 왕들을 죽이고 그들 소유지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넘겨주신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의 증거라는 것이다.
=====136:18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 본 구절은 17절과 평행구를 이루고 있는데, 말을 바꾸면 17절과 본절에는 동일한 내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복은 강조를 위함인데 강조할 만한 그 내용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수 12장에 기록되어 있다.
=====136:19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레시혼 멜레크 하에모리) - 원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본절은 서두에 전치사 '레'가 목적어 앞에 놓여 있다. 목적어 앞에 전치사가 놓였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인데 그 이유는 본 시편이 시작된 후 지금까지는 목적어가 아닌 하나님의 품성 혹은 그분의 사역을 나타내는 동사와 관련하여 전치사 '레'가 놓였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절에서는 '여호와께' 앞에, 4절에서는 '큰 기사를 행하시는 이에게' 앞에, 5절에서는 '하늘은 지으신 이에게' 앞에, 그리고 6,7, 10, 13, 16절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레'가 놓였었다. 이제 시편 기자는 본절에서부터 감사해야 할 주체인 하나님 혹은 그분의 사역이 아닌 감사의 객체 곧 하나님의 사역의 대상인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부각시킴으로 좀더 폭넓게 감사의 이유를 깨닫게 하고 있다.
=====136:20
바산왕 옥을 죽이신 - 바산 왕 옥은 강대국의 왕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이 거론되기까지 하는 이유는, 그는 모세 영도하에 광야 여정의 막바지에 이른 이스라엘 군대에게 패배한 최초의 왕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패퇴시킨 후 이스라엘은 이들이 차지하고 있던 트랜스요르단(Trans-Jordan)을 얻게 되었는데 이스라엘 전승은 가나안 진입 직전의 이스라엘에 패퇴한 최초의 이방 왕이라는 사실 때문에 바산 왕 옥의 이름을 기록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그들의 소유 트랜스요르단을 빼앗은 사실을 중요한 기사로 기록하고 있다(참조, 민 21:33;신 3:1-6).
=====136:21
저희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 이것은 아모리, 바산과 같은 이방 민족이 차지하고 있었던 땅이 이스라엘의 유산으로 돌아갔던 사실을 가리킨다(수 12장). 한 나라 백성이 차지했던 땅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이 없어지거나 그 주권을 빼앗아야만 한다. 원래 그 땅에는 악한 이방 족속들이 살았으나 여호와 신앙을 고수하는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함으로써 그 땅도 거룩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문맥에 입각해서 세밀하게 영적으로 주해하고 있는 학자의 글을 보자:'본절은 하나님의 자비를 드러내되 그가 악한 자들을 제거하셨다는 사실 뿐 아니라 그들의 소유지를 더 선하게 사용할 자들에게 넘겨주셨다는 사실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제 시혼, 옥의 소유물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옮겨졌으며 피흘림, 야욕, 범죄, 오염 그리고 우상숭배의 터전으로 사용되었던 그 땅은 예배와 의의실천 도장으로 바뀌어졌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악한 자들을 제거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탐욕과 부정직으로 축적한 사악한 자의 부(富)가 그것을 선하게 사용할 자녀들의 손으로 옮겨지게 하신다'(Barnes). 물론 이 주석의 내용을 목전의 현실 속에서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아직도 탐욕과 부정직의 사람들이 부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통해 우리는 영적 차원에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바라보게 된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곳인데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 이후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영역은 확장되어가고 있다. 이제 이 하나님의 나라는 주의 재림 때 100%의 완전한 확장을 볼 것이다. 그때 땅에는, 악은 없고 선만 가득하게 된다. 현재적으로도 그 나라의 모습을 일부 맛보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앞에 나온 한 주석가의 주석 내용을 부분적으로 성취하실 것이다.
=====136:22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 21절의 평행구이다. 여기서 '종 이스라엘'은 문맥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해지는데 본 문맥에서는 '그 차지한 땅을 자손에게 물려줄 상속자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사야서에서는 주로 이방 나라에 하나님의 하나님되심, 즉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전파하는 자로서의 종 이스라엘을 뜻한다(사 42:1-7;43:8-12;48:17-22).
=====136:23
우리를 비천한 데서 기념하신(쉐브쉬플레누 자카르라누) - 문자적인 뜻인 '낮은 토지에 있는 우리를 기억하신'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하나님께서 사사 시대와 같이 그 수도 적고 분명한 민족성도 형성되지 않아 국가적개념으로 볼 때 아주 유약한 상태에 있었던 시대에도 이스라엘을 지키신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Barnes). 어떤 학자들은 여기서 '낮은 토지에 있는'이란 예루살렘멸망과 바벨론 포로 시대 때에 이스라엘이 받았던 고통을 특별히 상기시키는 구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Kirkpatrick, Deissler). 어쨌든 본문은 이스라엘이 고통스럽고 유약한 상태에 있었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던 것을 뜻한다고 보면 되겠다.
=====136:24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 건지신 - 여기서 '대적에게서 건지신'(이페르케누 미차레누)은 직역하면 '대적들로부터 자유케 하신'이다. 직역을고려한 학자들은 본 구절이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해방, 귀환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Deissler 등).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방으로부터 자유케 된 경우는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해방 사건뿐만은 아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문을 하나님의 많은 구원 사역에 대한 일반적인 암시로 본다.
=====136:25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 '모든 육체'(칼 바사르)란 살아있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여기서 저자가 의도한 대상은 이스라엘 사람뿐 아니라 온 인류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38:3 주석 참조).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 뿐 아니라 악인에게도 생명 유지를 위해 필요한 물질들을 내려 주신다. 이것을 일반 은총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도 땅 위에서 생명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다(마 5:45).
=====136:26
하늘의 하나님(엘 하솨마임) - 본 구절은 시편 중 이곳에서만 등장한다. 후대에 기록된 성경들은 본 용어를 약간 변형시켜 자주 사용하고 있다(스 1:2;5:12;6:9;느 1:4;2:4;욘 1:9). 본 시편에서는 저자는 주로 하나님의 땅 위의 사역을 다루었다. 그러나 마지막 절에서 하나님이 하늘에 계셔서 그곳에서도 역사하신다는 것을 암시함으로써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었다.
독특한 후렴구가 갈 절마다 붙어 있어 특이한 형식을 지니고 있는 본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경배를 주제로 하고 있다. 특히 각 절의 첫 행이 성전의 가수나 성가대에
의해 '...에게 감사하라'고 선포되어지면 회중들은 그에대한 응답으로서 '그 인자하심
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끝을 맺는다. 이런 시의형식은 유대의 포로 시기와 회복기에 주
로 많이 쓰였는데 이로 보아 본시는 유대 후기의 작품이 아닌가 추극된다. 물론 이런
구성 형식의 시들이 쓰여지기도 했지만(그 대표적 예가106-108편 서두의 구성 형식이
다)본시가 포로 후기의 작품이라는 가장 유력한 증거는 본시의 첫 구절이 마지막 구절
에 다시 나오는 이른바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이 형식이 가장 후기에쓰인 문헌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바벨론 포로 치하에서는 각종 절기에서 시를낭송할 때 동
일한 후렴구를 자주 반복함으로써 유대후손들이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하였기 때
문이다.
한편 본시는 시편의 장르상 하나님의 변함없는 인자와 사랑에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기술한 '감사시'(thanksgiving psalm)라고 볼 수 있다. 시인은 감사에 대한 명령으로
시작하여(1-3절) 동일한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26절).
또한 본 시편은 각절의 매 끝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후렴구가 있다는 점
에서 가장 전형적인 사례로서 아마도 레위인 또는 아삽 자손인 지휘자가 각 구절의 전
반부를 낭송하면 회중이 후렴구로 화답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후렴구가 자칫지
루한 느낌을 줄 가능성도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해야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
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 같은 고대 신앙 고백은 신앙 고백의 신약 교회로 전달되
어 사회자와 회중이 교창하는 교독문의 효시가 되었다.
본시는 크게 자연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전반부(1-9절)와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에대해 언급하는 후반부(10-26절)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러한 내용을 좀더 세분하여 1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감사(1-3절) 2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4-9절) 3 출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10-22절) 4 하나님의
일반적 은총에 대한 상고(23-26절)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제 본시를 내용에 의거하여 몇 단락으로 나누어 좀더 심층적으로 고찰해 보면 다
음과 같다.
1. 여호와의 인자와 선하심에 대한 감사(136:1-3)
여호와의 위대하심에 대해 감사할 것을 반복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본연은 1 지존하
신 여호와에 대한 감사(1절) 2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감사(2절) 3 세상 모든 것을 주
관하시는 주님에 대한 감사(3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단락은 전체의 서론적인 부분으로서 하나님께 대한감사의 이유에 대해 하나님의
다양한 명칭을 사용하여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한 하나님의 세 가지 명칭의 의미
와 용례를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 분 류 | 여호와(1절) | 엘로힘(2절) | 아도나이(3절) |
+---------+----------------------+----------------------------+-----------------+
| |자존자(自存者)라는 뜻 |우주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세상을 주관하시 |
| 의 미 |으로서 언약을 맺으시고|심판하시는 권능의 하나님을 |는 통치자들 위에 |
| |구원 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낸 데 사용하는 명칭 |탁월하신 주권자임|
| |드러내는 데 사용하는 | |을 명시하는 표현 |
| |고유명사 | | |
+---------+----------------------+----------------------------+-----------------+
| |창 4:26;출3:7-10, 14, |창 17:1;출 15:2;신10:127;32:| |
|참고구절 |15, 18;33:19 | 8;33:27;수3:10;삼상1:11;마 | 수3:11;시97:5 |
| | |사:26;약5:4 | |
| | | | |
+---------+----------------------+----------------------------+-----------------+
이처럼 시인이 하나님의 명칭을 여러가지로 사용하느 이유는 하나님의 권능과 사역
을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하고 강조하기 위함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본질에대한 찬양을
함으로써 인간의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신적 거룩과 위엄을 영원히 찬양해야 한다고 강
조하고 있다.
2. 하나님의 창조 사역(136:4-9)
다양한 명칭을 통하여 여호와의 인자와 능력을 찬송하던 시인은 구체적으로 하나님
의 창조 사역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피조물로서는 도저히 업두도 낼 수 없는 위대한
창조 사역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본연은 1 천지 창조와구속 사역의 전체 서론인 큰 기
사에 대하여 설명하고(4절), 2 하나님의 위대하신 창조 사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노래
(5-9절)하고 있다.
시인은 본연에서 세상을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명령한다. 더 나아
가서 홀로 큰 기사. 즉 천지창조와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할 것
을 노래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 위대한 사역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직 그분의 말씀
(요1:1-3)과 지혜(5절;104:24;잠8:22-31)로 성취되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지
으시고 해와 달과 별을 만들어땅을 비추게 하시고 인간들에게 알맞는 자연 환경, 식량
등을 제공하셨다(창1:1-2:25). 하나님의 이러한 창조 사역은 그분의 능력과 지혜의 결
정체이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
주 만물을 바라보면서 분석하려고 시도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섭리와은총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감사해야 한다(전3:11;행17:24).
사실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사역은(창1:1-31)인간의 지식이나 이성으로는 도저히 규
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것이다. 창세 이후로부터 인간들은 이 창조의 신비를 벗기기
위해 과학과 천문학 등 인간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학문을 통하여 규명하려 하였지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와 능력은 인간의 사고(思考)로는 포착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오직절대자인 하나님의 의지를 통하여 성취된 신비스러운 작
업으로서 겸허한 감사의 대상일 뿐이다.
3. 이스라엘의 역사를 인도하심(136:10-22)
출애굽에서부터 가나안까지 인도하심 하나님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본 단락은 1 애
굽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신역사(10-12절) 2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호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13-20절) 3 가나안을 기업으로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21, 22
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 부분(1-9절)에서는 주로 우주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언급한 시인은
이제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상고하고 있다. 특별히 시인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모든 생축의 초태생이 죽는 재앙을 언급한다(출11:5). 바로는 많은 재앙들
을 경험하면서도 하나님의명령을 거부하다가 드디어 마지막 장자 재앙에 굴복했다. 이
재앙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써 짐승의 생명까지도
보호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위험한 상황속에서도 언약 백성을 사랑하시고 관
심과 보호를 베푸신다(출9 : 6, 7, 25, 26). 시인은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상기시킴으
로써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택하신 백성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예표적으로 보여지고 있다(롬 5:8).
또한 시인은 광야 생활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승리를 주셨던 주의 은혜
를 찬양하고 이는데, 특히 광야에서 크고 유명한 왕들을 죽이셨던 주께 감사하라고 강
조한다. 홍해를 가르고 그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셨던 하나님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통과하도록 역사하셨다. 이스라엘의 앞길을 막았던 이방 왕들은 하나같이 우상
숭배로 인하여 타락했던 자들로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다(민 21:21-26;신3:14).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열왕들에게 공의로운 심판을 베푸시며 동시에 이스라엘에게 하나
님의 축복을 주셨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의 어떠한힘도 결코 택한 백성을 구원으로 인
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막을 수 없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한편 시인의 찬양은 이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 주의은혜를 찬양하는 데까지
발전한다. 아모리인의 왕 시혼이나 바산의 왕 옥의 영토는후에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차지가 되었다(신 29:8;수12:6;13:15). 그 외에도 가나안 원주민들이 소유했던
많은 땅은 이스라엘의 기업이되었다. 원래 기업이란 자비로은 하나님이 백성들의 순종
에대한 보상으로 내려주는 선물이나 재산을 뜻하는데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앞
에서나(출14:10-12참조) 광야에서 (민 20:2-5)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는 못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땅을 기업으로 주셨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그들이 받은기업은 완전히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의 선물이라고 볼 수 있
다. 따라서 시인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보호와은총을 생각하며 감사하라고 촉구하는 것
이다.
이상에서 시인이 언급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단지 과거 한 민족의 역사가 아니라 하
나님께서 인류를 속량하시는 구원의 역사이다. 죄악된 세상을 방황하며 살아가는 현대
인들은 때때로 바로와같은 사단의 억압,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홍해와 같은 문제, 광
야와 같은 세상의 험난한 위험 등에 직면하게된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굳건한 소망을 견
지해야 할 것이다.
4.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감사(136:23-26)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총에 대해 노래하고있는 본 단락은 전체의 결론 부분으로서 1
대적으로부터 건지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감사(23, 24절) 2 모든 육체에게 양식을 주
시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25, 26)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연에서 시인은 다시 한번 이러한 이스라엘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완벽하게 보
호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하고있다. 이러한 사실을 은총으로 말미암아 다시 가나안
으로 귀환하게 된다는 사실을 예표하고(대하36:22, 23;1:1-4), 더 나아가서 믿는 자들
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시며 모든 영적인 대적들을 물리치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신 사건을 암시한다(골1:13, 14;벧전3:21).
시인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반추해 보면서 환난과 고통속에서도 절망하지 말고 온전
히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특별히 시인은 하나님의은혜가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내려진 것이 아니라 모든피조물에게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우주를 섭리하시고 운행하시는 주권자이시므로 모든백성들에게만 내려진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고있다. 하나님은 우주를 섭리하시고 운행하시는 주권자이시므로 모든 백성들을 보살펴주신다. 따라서 시인은 모든 생명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당연히택한 백성 이스라엘에게 친절과 자비를 베푸신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는자는 의식주에 연연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헌신해야 할 것이다(마6: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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