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위치: 아프리카북동부
인구: 17,026,329명 (2023년 추계)
수도: 모가디슈
면적: 637,657.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소말리아 공화국 (Federal Republic of Somalia)
기후: 아열대성기후, 열대성기후
민족 구성: 소말리족(85%), 반투족(15%)
언어: 소말리어,아랍어
정부/의회형태: 과도정권 / 단원제
종교: 수니파 이슬람교
화폐: 소말리아실링 (SOS)
대륙: 아프리카
국가번호: 252
GDP: USD 7,781,000,000
인구밀도: 24명/㎢
전압: 220V / 50Hz
도메인: .so
소말리아와 한국과의 관계
▶ 외교
▶ 경제·통상·주요 협정
▶ 문화교류·교민 현황
요약
'아프리카의 뿔'에 해당하는 대륙 최동단의 돌출부에 위치하는 아프리카 북동부의 국가. 수도는 모가디슈(무크디쇼)이며 화폐는 소말리아실링이다. 민족은 소말리족 85%, 반투족 15%으로 구성되어 있고, 언어는 소말리어와 아랍어를 혼용하며, 종교는 수니파 이슬람교이다. 소말리아 인구의 2/3 이상이 유목민이거나 반유목민인데 전통적으로 유목생활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로 통한다.
'아프리카의 뿔'에 해당하는 대륙 최동단의 돌출부에 있으며, 적도에서 홍해까지 뻗어 북쪽은 아덴 만, 동쪽은 인도양, 서쪽은 케냐와 에티오피아, 북서쪽은 지부티와 각각 접하고 있다.
자연환경
소말리아 북부에는 해안평원인 구반이 아덴 만 연안과 평행으로 뻗어 있다. 덤불로 덮여 있는 반건조지대로 단조로운 느낌을 주는 이 평원은 강우량이 적고 기후가 뜨겁고 습해 식생이 드물다.
구반 평원은 아덴 만에서 멀어지면서 개석 고지의 가파른 북쪽 절벽으로 솟구쳐올라, 에티오피아와의 북서쪽 국경으로부터 '아프리카의 뿔' 끝까지 뻗는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이 산맥을 따라 수루드카드 산(2,407m)을 포함한 이 나라의 최고봉들이 솟아 있다. 이 산맥은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기후가 보다 서늘하고 건조한 하우드 평원으로 바뀌게 된다. 이 지역 일대에는 여러 곳에 인공 저수지가 있다.
소말리아의 남단은 주로 완만한 평원으로 되어 있다. 2개의 큰 강인 주바·셰벨리 강은 에티오피아에서 발원하여 소말리아를 거쳐 인도양으로 흐른다. 소말리아는 열대 및 아열대 지대에 속하며, 하루 중 최고기온은 30∼42℃, 최저기온은 18∼27℃를 오르내린다. 연강우량은 보통 남부와 서부 지역이 100∼610㎜ 정도로 많은 편이다.
대부분의 소말리아 북부지역에는 키작은 나무들이 산재해 있고 간간이 작은 풀밭들이 있다. 지대가 높은 곳에서는 규모가 작은 삼림들이 나타난다. 소말리아에는 사자·코끼리·하이에나·여우·표범·기린·얼룩말·영양 등이 살고 있다. 전국토의 2%만이 가경지이며, 그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땅에서는 곡물이 재배되고 있다. 한편 국토의 절반 가량은 목초지나 방목지로 이용이 가능하다.
국민
국민의 약 4/5가 소말리아인이며, 기타 반투족과 아랍족, 유럽인이 있다. 디르, 다루드, 하위예, 이스자아크 등의 씨족이 소말리족의 대부분을 구성하며, 디길과 라한위인등의 씨족들로 구성된 유목민, 대부분 반투족인 소수민족이 있으며, 부족간의 대립이 유지된다.
소말리아 인구의 2/3 이상이 유목민이거나 반유목민인데, 이들은 건기에는 물이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에 모여 지내다가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가축을 끌고 각 지역으로 흩어진다. 전통적으로 유목생활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로 통한다. 인구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종족은 소말리인들이다. 과거에는 유목민(사말족)과 정착생활을 하는 경작인 및 가축사육인(사브족) 사이에 문화적인 벽이 있었으나, 언어·종교·문화가 하나로 통합되어 있어 지금은 그다지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1970~80년대에는 에티오피아 오가덴으로부터 전쟁과 가뭄에 시달린 약 100만 명(소말리아 인구의 1/3에 해당)의 피난민들이 대거 소말리아로 유입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에는 수많은 소말리아인들이 가뭄과 내전으로 인한 폭력·기근·질병으로 사망했고, 약 10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난민들이 인근 국가로 빠져나갔다. 소말리아의 인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가파르게 증가하여 1995년 780만 명에서 2010년 1,205만 명으로 증가했고 2023년 기준 1,702만 6,329명을 기록했다. 인구밀도는 28명/㎢ 이다. 15세 이하 인구가 인구의 절반에 가까우며, 도시거주자는 인구의 1/3에 달하고 있다.
언어
공식어는 소말리어와 영어이며,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소말리어는 소말리아를 하나로 묶어주는 가장 강력한 요인 중의 하나이다.
2004년 2월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작성한 소말리아공화국의 임시연방헌장 7조(언어)에는 "1. 소말리아공화국의 공식어는 소말리어(마아이 및 마하하티리) 및 아랍어다. 2. 임시연방정부의 2언어는 영어와 이탈리아어다."고 규정했다. 남부에서는 이탈리아어외에도 스와힐리어도 통용되며 일부는 러시아어도 통한다.
소말리어와 아랍어가 공식 언어로, 소말리어는 토착 민족이자 최대 민족인 소말리인들의 전통 언어이다. 소말리어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의 쿠시어파 계열에 속하며, 가장 가까운 어족은 오로모어, 아파르어, 사호어 등이 있다. 소말리어는 쿠시어파 계얼의 언어들 가운데에서 가장 자료가 많기도하고 사용자도 가장 많은 언어이며, 1900년대 이전부터 연구가 진행되었을 정도로 관련 조사도 매우 많이 이루어졌다.
문화예술
시는 소말리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대부분 전쟁·평화·여성·말·낙타 등을 주제로 삼고 있다. 민속무용도 인기 있는 예술이다. 소말리아에는 천문학과 점성학을 주제로 하는 구전문학이 풍부하며, 이 나라의 2대 문화시설은 가레사 박물관과 국립극장이다.
역사
소말리아의 북부와 동부 해안은, 고대 이집트의 문헌에 의하면 푼트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7∼10세기에 이슬람교도 아랍인들과 페르시아인 이민들이 아덴 만과 인도양 연안의 곳곳에 무역 거점을 형성했다. 10세기에 이르러 아덴 만에서 들어간 내륙지방은 소말리아 유목민들이, 그리고 남부 및 서부는 전원생활을 하는 여러 집단의 갈라족이 차지했다. 이무렵 모가디슈·메르카·브라바·제일라·베르베라 등의 무역 중심지에서는 이슬람교가 확고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 나라에 대한 유럽의 본격적인 탐사가 시작된 것은 1839년 영국이 아덴 만 일대를 차지했을 때부터이다.
영국은 1884년 소말리아 북부 지역을 자국의 보호령으로 만들었다. 한편 이탈리아는 1889년에 소말리아 북동쪽 모서리에 2개의 보호령을 만들고, 1905년에 소말리아 해안 남부 지역에 또다른 식민지를 건설했다. 1900년대 초반 소말리아 자치령에 대한 영국의 지배는 사이이드 모하메드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당시 사이이드 모하메드는 전국 이슬람교도들을 결속하여 영국 식민주의자들에게 대항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에서는 이탈리아인 이주가 더욱 증가하여, 1936년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는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제국의 한 주로 편입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0년 이탈리아는 영국령 소말릴란드를 침공했으며, 1년 후 영국군은 이 지역을 재탈환하고 전지역을 1950년까지 영국 통치하에 두었다. 1950년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는 이탈리아에 의해 통치되는 UN의 신탁통치지역이 되었다. 이 지역은 1960년 과거의 영국령 소말릴란드 지역과 하나로 합쳐져 독립 소말리아 공화국이 되었다. 1967년 아브디라시드 알리 셰르마르케가 대통령에, 그리고 무하마드 하지 이브라힘 에갈이 총리에 선출되었다.
셰르마르케는 1969년에 암살되었고, 에갈 총리의 정부는 무하마드 시야드 바레 소장이 주도한 군사혁명으로 붕괴되었다. 시야드 바레는 의회제도에 기초한 정권 대신 군장교들로 구성된 최고혁명위원회를 설치했으며, 소말리아 민주공화국을 수립하고, 소련과 강한 유대관계를 맺었다.
1977년 소말리아는 영토합병을 목적으로 주민 대부분이 소말리아계 사람인 에티오피아의 오가덴 지역을 침공했으나, 이 침공은 실패로 끝났다. 오가덴 전쟁 당시 소련은 에티오피아를 지원했고, 소말리아는 소련과의 관계를 끊고 미국을 동맹국으로 삼았다. 1980년에 오가덴 지역에서 게릴라전이 발생하여 이 지역으로부터 여자와 어린이들이 대대적으로 탈출하자, 바레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 국가비상사태는 소말리아가 유럽 국가들 및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기 시작하면서 1981년 말에 해제되었다.
바레 대통령은 1984년 12월 자신이 군사혁명평의회 의장직과 총리직을 겸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1990년까지 독재정권을 유지했다. 1991년 바레는 부족에 기초한 반정부 집단 연합체에 의해 축출되었으며, 소말리아는 부족 또는 부족연합체가 관장하는 여러 지역으로 분열되었다.
지역간의 무력충돌이 발발하면서, 이미 오랜 가뭄으로 나빠진 식량사정이 더욱 악화되어 약 150만 명으로 추산되는 소말리아인 들이 기아에 시달리게 되었다. 1992년 12월 미국의 주도하에 다국적군이 안정적 식량보급을 비롯한 구호 및 내전 종식을 위한 소말리아 내 평화유지활동에 들어갔다. 1993년 1월과 3월 15개 파벌 대표들이 아디스아바바에 모여 평화 및 무장해제를 위한 조약에 서명했다. 그러나 그해 6월 평화 무드는 깨졌으며, 파견군대의 인명피해 속출에 부담을 느낀 미국·유럽 등은 1994년 3월까지 소말리아에서 군대를 철수했다.
국제연합(UN)군은 제3세계 국가들로부터 연합군을 단계적으로 축소했으며, 내전을 촉발시킨 부족에 기초한 파벌간의 대립과 긴장은 미해결 상태로 남게 되었다.
종교
임시연방헌장 8조(종교)는 "1. 이슬람은 소말리아 공화국의 종교다. 2. 이슬람의 샤리아는 국가입법의 근본원천이다."고 했다. 이는 이슬람이 국교임을 천명한 것으로, 이는 국민의 99%가 이슬람교도인 현실을 헌법에 명시한 것이다.
퓨 리서치 센터에 의하면 소말리아 국민들의 99.8%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수니파가 우세를 점하며, 수피교도 지방의 학교와 사원들을 여럿 세우며 상당한 세를 불리고 있다. 소말리아의 헌법에는 이슬람교를 연방공화국의 국교로 아예 못박아놓고 있으며, 이슬람교의 샤리아법이 국가 법령에도 도입될 정도로 종교의 입김이 매우 강하다. 또한 샤리아와 어긋나는 그 어떠한 법도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정부 차원에서 지정해놓고 있다.
이슬람교는 매우 초기에 소말리아에 진출하였는데, 고대에 아프리카의 뿔 지방에 아랍 난민들이 홍해를 건너 모여들며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전파하였던 것이다. 이슬람교가 워낙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기에, 심지어 아랍 지방에서 터를 잡기 전부터도 소말리아에서 상당한 신도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소말리아의 사회는 주로 이슬람의 셰흐들과 사제들이 지휘하는데, 이들은 주로 아프리카의 뿔 지역들과 중동에서 교육받은 이슬람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역사적으로도 유명하여 주로 14세기의 우스만 빈 알리 자일라가 소말리아의 신학자로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그는 이슬람의 권위적인 경전들을 대거 집필하였다.
기독교는 소말리아의 소수 종교며, 2010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0.1% 정도만이 기독교를 믿는다고 전했다. 가톨릭도 워낙 세가 작기에 소말리아에는 가톨릭 교구가 오직 모가디슈 한 곳에만 존재한다. 게다가 2004년에도 모가디슈 교구에 소속된 신자들이 약 100여 명 정도 밖에 안된다고 한다. 1913년에 식민지 기간 초에는 소말리아에 거의 기독교 신자가 아예 없었으며, 100명에서 200명 정도의 사람들만이 영국령 소말릴란드에 세워진 선교회를 찾아와 개종하곤 하였다. 이탈리아령 소말리아에는 아예 선교회나 선교사 자체가 거의 없었다. 1970년대에 시아드 바레 장군 주도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교회 주도의 학교들이 폐지되었으며 선교사들은 추방되었다. 1989년 이래 소말리아에는 주교가 없었으며, 모가디슈에 겨우 세워져있던 대성당은 내전 기간에 심각하게 파손되었다. 2013년 12월에 사법종교부는 기독교와 관련된 행사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령을 전국에 공포하기도 하였다.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소말리아 전체 인구의 0.1%도 안되는 사람들이 민속 신앙을 믿는다고 한다. 주로 소말리인들이 아닌 소수민족들이 민속 신앙들을 믿으며, 주로 애니미즘을 기반으로 한 종교들을 믿는다. 최대 소수민족인 반투족의 경우에는 동남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자신들의 종교들을 여전히 믿고 있는 경우가 많다. 추가적으로 소말리아 인구의 0.1%도 안되는 사람들이 유대교, 힌두교, 불교 등 타 종교를 믿는다고 한다.
소말리아와 한국과의 관계
외교
소말리아는 한국과 1987년 9월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두 나라는 수교 이전부터 경제협력과 인사교류를 하는 등 여러 차례 접촉할 기회를 가졌는데, 정식 외교관계 수립 이후 한국은 1987년 12월에 주 소말리아 대한민국 대사관을 개설했다. 이후 1992년 2월 대사관을 폐쇄하고 주 케냐 대한민국 대사관이 외교 업무를 겸임하도록 했다.
소말리아에서는 2011년 11월 아비카르 과도정부 외교부 차관, 2014년 11월 이브라힘 통신우체부 장관이 방한했으며, 한국은 1993년 외무차관 홍순영이 소말리아를 방문했다. 한편, 소말리아는 북한과 1967년 4월에 수교했다. 북한의 대소말리아 외교 업무는 주 에티오피아 북한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한국은 1980년대 소말리아 난민을 돕기 위해 경제원조를 제공한 바 있으며, 1993년 6월부터 1995년 3월까지 UN 평화유지군의 일부로서 공병 상록수 부대가 소말리아에 파병되기도 했다. 또한 2004년 12월 인도양 연안지역 발생한 쓰나미의 피해를 돕기 위해 한국안 소말리아에 6만 달러 상당의 구호물자와 현금 10만 달러를 지원했다. 2020년 기준 소말리아의 대한국 수출액은 100만 달러, 수입액은 1,50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석유화학제품 등이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2017년 기준 소말리아에는 재외동포가 없으며, 한국에는 2018년 12월 기준 16명의 소말리아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