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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회]
슈우우~!
갑자기 교수광의 눈앞에 있던 신황의 모습이 사라졌다.
한참 신황을 상대로 자신의 견식을 뽐내던 교수광은 갑자기 눈앞에서 신황이 사라지자 어리둥절해했다. 아직 사태파악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 순간 신황은 현월보를 극성으로 펼쳐 이미 무이의 앞에 도달해 있었다.
"흑!"
검은 그림자의 눈이 크게 떠졌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신황 때문이다.
그의 눈에 유독 신황의 차가운 눈이 크게 들어왔다. 약간의 붉은 빛을 띠고 있는 신황의 눈, 단지 그것뿐이었다.
콰드득!
“켁!”
검은 그림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그의 목이 신황의 손에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무서운 힘으로 목을 조이는 신황의 손아귀. 검은 그림자는 그의 손을 풀려고 애를 썼지만 헛수고였다. 월영봉을 오르내리면서 단련된 그의 힘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으니까.
탁!
신황은 허공에 뜬 그대로 검은 그림자의 발 부분을 건드려 균형을 무너트리며 몸을 회전시켜 그와 자세를 뒤바꿨다. 그리고 그대로 검은 그림자를 바닥에 처박았다.
콰-아-앙!
“크허헉!”
굉음과 함께 삼장 높이에서 검은 그림자가 그대로 바닥에 내리 꽂혔다.
동시에 그림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온몸을 전율케 하는 엄청난 통증 때문이었다.
우두둑!
그러나 미처 비명을 마치기도 전에 신황의 발이 그의 목을 밟았다. 무서운 힘으로 눌러오는 신황의 발, 그는 막혀오는 숨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넌 누구지?”
그제 서야 신황이 그림자의 정체를 물었다.
“무슨 일인가?”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에야 교수광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갑자기 눈앞에서 신황이 사라지더니 어느새 그가 낮선 남자를 제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넌 누구냐?”
우드득!
“크흐흑!”
신황의 발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 모습에 교수광과 목정인 등은 어이가 없었다.
보통 낮선 사람이 습격을 해오면 일단 정체를 물어보기 마련이다. 그래야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정체를 모르고 함부로 움직이는 것은 잘못하면 예상치 못한 변수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황은 달랐다. 그는 일단 상대를 제압하고 봤다. 대화는 그 이후의 일이었다.
“이.....이보게! 숨통을 조금 트여줘야 말을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숨이 다 넘어가게 생긴 낮선 남자를 보며 교수광이 급히 소리를 쳤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얼굴은 시꺼멓게 죽어가고 있는 것이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그제 서야 신황이 발을 약간 들어 그의 숨통을 터줬다.
“누구지?”
다시 신황이 예의 그 표정 없는 얼굴로 정체를 물었다. 남자는 그의 얼굴을 보며 말을 더듬었다.
“나.........난!”
꾹!
그가 말을 더듬는 기색을 보이자 신황이 다시 그의 목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다시 남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렇게 남자의 목을 밟고 있던 신황은 남자의 숨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발에 힘을 뺐다. 그러자 남자가 급히 큰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한 번 더 말을 머뭇거린다면 다음번엔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지 못할줄 알아. 난 같은 말은 두 번 안 해.”
끄덕 끄덕!
신황의 말에 남자가 급히 자신의 목을 잡고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눈앞의 남자가 한번 입 밖으로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킬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신황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급히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또다시 신황이 발을 누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난 무림맹 서안지부의 제자인 오칠이오. 난 그냥..........”
“그냥?”
“그냥 말이나 얻어 타려고. 워낙 사안이 중대한 일이라............”
남자는 급히 자신이 정체를 밝혔다.
무림맹의 제자라는 말에 놀란 것은 교수광이었다. 그는 급히 오칠의 곁으로 다가왔다.
“자네가 정말 무림맹의 제자란 말인가?”
그의 말에 오칠이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전 무림맹 서안지부, 제 2조장 오칠이라고 합니다.”
“난 교수광이라고 하네. 한번쯤 들어봤겠지.”
“아~! 반개 어르신이었군요. 반갑습니다.”
오칠은 강호의 고수인 교수광에게 포권을 하려다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다시 신황을 바라봤다. 그가 무림맹의 제자라는 것을 밝혔어도 신황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의 발에 담긴 힘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기에 오칠은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이자는 무림맹을 모르거나 아니면 무림맹을 우습게 보는 자가 틀림없었다.
“아니! 무림맹의 제자인 자네가 왜 우리 일행을 습격하는 것인가?”
“어르신, 습격하는 게 아니라 무림맹 서안지부에 급히 보고할 사항이 있는데 제가 말이 없어 한마리만 빌리려 했습니다.”
그의 말을 듣는 신황의 얼굴에 싸늘한 기운이 스쳐지나갔다.
말이 빌려가려 했다는 것이지 만약 자신이 힘이 없었다면 그대로 무이를 바닥에 밀치고 무이가 탔던 말을 타고 그대로 갔을 것이다.
그것을 지금 빌려가려 했다는 말로 포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신황의 기색을 눈치 챘는지 교수광이 급히 말을 꺼냈다.
“자네! 이쯤에서 그만 놔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이 사람은 무림맹의 사람일세. 적이 아니니 한번만 봐주게. 급한 일이 있어서 사정을 설명할 겨를이 없었던 모양이야.”
교수광의 말에 신황은 다시 한 번 오칠을 지그시 바라봤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무심함.
차라리 냉랭한 기운이라도 뿜으면 마음이 편할 텐데 아무런 감정을 보이지 않자 더욱 무서웠다.
오칠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몸이 먼저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제야 신황은 오칠의 목을 밟고 있던 발을 때었다. 그는 무이 쪽으로 다가가 그녀의 몸을 살폈다.
“괜찮으냐? 놀라지는 않았더냐?”
그의 말에 무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처음엔 놀랐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백부님.”
“다행이구나.”
신황은 흐릿한 웃음을 지으며 무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무이는 백우인의 유일한 혈육이다. 자신은 백우인도 백우인의 처도 지켜주지 못했다.
하지만 반드시 무이 만큼은 하북에 무사히 데려다 줄 것이다. 그것이 그가 백우인한테 한 맹세였다.
한편 교수광은 그런 신황의 행동을 보면서 어이없다는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어이가 없구나. 무이에게는 저리 따뜻한 웃음을 보이면서 적에게는 이리 냉정할 수 있다니...............”
어찌 보면 이중인격자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지켜줘야 할 사람, 자신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따뜻하면서도 적이라고 규정지은 자에게는 추호의 자비도 없다.
극단적이리만큼 명확한 적아(敵我)의 구분, 그것이 교수광이 본 신황의 특징이었다.
교수광은 오칠을 일으켜 세우며 이야기를 건넸다.
“그래! 무슨 일인데 전후사정 살펴보지 않고 말을 빼앗으려 했던 것인가? 속 시원히 말 좀 해보게.”
오칠은 3장 높이에서 바닥에 처박힌 충격에 온몸이 해체될 듯이 아파왔지만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 일단 잘못은 자신이 했기 때문이다.
“사.......사실은 이곳에 큰 일이 있었습니다.”
“무슨일인데 그러는 것인가? 알기 쉽게 이야기해보게.”
“그.......그것이 말입니다. 이곳에 만화미인첩(萬華美人牒)이 출현했습니다.”
“만......화미인첩 말인가?”
“그렇습니다.”
오칠의 말에 교수광의 얼굴이 굳어졌다.
만화미인첩(萬華美人牒), 삼백년 전의 여후(女后)인 만화선자의 독문절기가 숨겨져 있다고 알려진 기물(奇物)이었다.
만화선자는 화중지녀(花中之女)라 불리 울 정도로 출중한 미모와 세상을 오시하는 무공을 지니고 있었는데, 중원의 여고수중 그 누구도 그녀를 당할 자가 없었다고 한다.
“아니 만화미인첩이 왜 갑자기 이곳에 출현을 했다는 말인가? 분명 아무런 조짐도 없었는데 말이야.”
“저희도 그것이 궁금합니다. 하지만 일단 맹에 그 사실을 알려야 했기에 실례를 범했습니다.”
오칠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잘못을 사죄했다.
“도대체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갑자기 이곳 부풍현에 만화미인첩이 출현했다는 소문이 이곳 섬서성에 퍼졌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만화미인첩이 출현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섬서성의 무인들이 모두 이곳 부풍현에 몰려들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저희 무림맹 서안지부에서도 미처 그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지 못한 채 이곳으로 왔습니다.”
이곳까지 온 오칠과 무림맹 제자들은 곧 만화미인첩의 소문이 사실인지 진위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채 그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누군가 만화미인첩을 확보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고, 곧 무인들이 그쪽으로 움직였다.
그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혈전이 벌어졌다. 누군가 만화미인첩을 가졌다는 말이 나오면 수많은 무인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벌집을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혈투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만화미인첩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혈투가 벌어졌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무기를 휘두르는 상황으로 변질된 것이다.
“지금 보고 있는 시체들이 바로 그래서 생긴 것입니다. 하다못해 이곳을 터전으로 노략질을 하던 호골채까지 나왔다 모조리 몰살했으니 알만할 겁니다.”
“어찌 그런 일이 아무런 조짐 없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만화미인첩이란 것의 진위여부 조차 파악이 되지 않은 물건인데 그런 뜬소문만 믿고 무인들이 참극을 벌였다는 말인가?”
“그것이 워낙 분위기에 휩쓸렸다보니. 저희도 처음엔 그들을 말리려 했지만 저희의 힘이 미약한 관계로 한목숨 보전하기도 바빴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 혼자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르신 일행이 지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의 일은 부끄럽게도 어르신이 아시는 바대로입니다.”
오칠은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는 신황 일행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가장 만만한 무이의 말을 빼앗으려 했다. 만약 이 일이 밖에 알려진다면 그는 두 번 다시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신황은 말에 올라타고 있었다.
그는 주위에 있는 수많은 시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몰아 시체의 숲을 헤쳐 나갔다. 그 모습에 교수광이 급히 소리쳤다.
“아니, 자네 뭐하는 겐가?”
그는 급히 신황의 뒤를 따르며 말의 고삐를 붙잡아 멈춰 세웠다.
신황의 눈은 왜냐고 묻고 있었다. 그러자 교수광이 입에 침을 튀기며 말했다.
“아니, 자네는 어이해 혼자 가는 것인가? 이곳을 수습하면 같이 움직이는 것이............”
“난 여기서 시간을 소비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자네 너무하는 것 아닌가? 비록 생면부지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같은 무림인으로 말이야. 더구나 우리의 친분이.................”
교수광은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싸늘해지는 신황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군요. 난 당신하고 어떤 친분도 없습니다.
이제까지 당신이 따라온 것일 뿐이니까 별 상관이 없었기에 그냥 두고 봤지만 더 이상 따라다니면서 우리의 여정에 참견한다면 이젠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하오체가 아니다. 또박또박 쏟아져 나오는 존댓말, 그것은 그가 교수광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겠다는 의미였다. 아무 상관없는 자에게 반말이나 하오체를 쓸 수는 없는 법이니까.
“자네...........!”
“더 이상은 억지 쓸 생각하지 마십시오. 무이에 대한 욕심도 버리고.............. 이제부터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신황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기이한 기운, 교수광은 자신이 그에 위축되는 것을 느끼며 깜짝 놀랐다.
부르르
‘떨어? 이 내가..............’
그의 소매 속 팔뚝에 하나 둘 올라오는 소름, 그의 몸이 위험을 신호하고 있었다.
사실 이제까지 교수광은 어느 정도 신황을 자신의 밑으로 보고 있었다.
비록 신황이 아무리 뛰어난 무공을 익혔다 할지라도 그의 나이는 서른 정도에 불과했고, 그 나이라면 아무리 자질이 뛰어날지라도 일정 수준 이상을 넘지 못했다.
때문에 교수광은 신황이 가끔씩 보여주는 불가사의한 능력이 뛰어난 무공때문인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신황의 앞에 서서 그의 기운을 받자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 없기에 그는 내공을 끌어올려 한자 한자 말을 뱉었다.
“난 자네를 이대로 보내줄 수 없네. 무이가 탐이 나기도 하지만 자네 자체에 대한 호기심도 멈출 수 없거든. 그러니 잠시만 기다리게. 이곳의 일이 끝나면................”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더 이상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신황의 눈이 차갑게 빛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수광은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만약 내가 힘으로 막겠다면?”
“죽이지는 않는다고 약속하지. 하지만 험한 꼴을 당하게 될 거야.”
“감히.............! 개방의 장로인 나 교수광 앞에서 힘자랑을 하겠다는 것이냐?”
신황의 눈이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여기에도 자신보다 방파의 이름을 앞세우는 멍청이가 또 있었군.”
“네가 조그만 무력을 가지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교수광이 굵직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사실 그에게 있어 신황이란 인물은 그리 큰 존재감을 가지는 인물이 아니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것이 그의 자존심이었다. 개방이란 거대 방파의 정점에 존재하는 장로의 자존심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명문대파라 불리는 문파에 속한 사람들의 마음이기도 했다.
아무리 교수광이 거지꼴로 소탈한 척 하나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 그리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당금 무림의 현실이었다.
신황이 말에서 내렸다. 그는 무이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불안해하던 무이의 눈빛이 많이 안정이 됐다. 그는 그렇게 무이를 안심시켜주고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분명 반말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네가 정녕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뚜두둑!
신황이 목을 좌우로 꺾었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해보자는 거지?”
“뭐?”
“날 시험해보고 싶으면 그렇게 말 돌릴 필요 없어. 그냥 싸워보면 되는 거야.”
개방의 장로를 향해 내뱉는 나직한 말이 너무나 광오했다. 그 모습에 오히려 지켜보던 목정인과 오칠이 입을 벌렸다.
중원에서 명문대파의 이름이 가지는 가치를 아는 그들로써는 신황의 말이 미친 사람의 광언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 녀석!”
“입으로만 싸우겠다면 사양하겠어. 거지.”
“크~! 이 노~옴!”
드디어 교수광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고, 마치 활화산처럼 성질이 폭발했다.
촤르륵!
교수광의 허리에 차여있던 새끼줄이 그의 손에 이끌려 허리에서 풀려져 나왔다.
얼마나 오랫동안 빨지 않았던지 시커멓게 윤이 나는 그의 새끼줄, 평상시에는 그의 허리띠였지만 싸울 때는 교수광의 독문무기로 돌변한다.
허리띠 속에 가느다란 강선을 수십 가닥 꼬아 만든 쇠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교수광은 이것을 비루봉(批淚봉)이라 불렀다. 한번 펼치면 반드시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봉이란 뜻에서 말이다.
웅 웅 웅!
교수광의 몸에 비루봉이 착 달라붙어 회전을 했다. 마치 비루봉이 혼자 살아서 교수광의 몸 위에서 움직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것이 바로 교수광의 독문무공인 비루봉법이었다.
“네놈의 광오함을 후회하게 해주마!”
봉의 회전이 극에 달했을 때 교수광이 외치며 신황에게 달려들었다.
휘이잉-!
비루봉이 크게 원을 그리면서 신황의 발을 쓸어왔다. 비루봉의 첫 번째 초식인 비루삭(批淚削)이라는 초식이었다.
봉을 마치 낫처럼 사용해 발을 마치 벼를 추수하듯 잘라버린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만약 그의 비루봉에 얻어맞는다면 발목이 잘라져 나가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분명 그의 봉에는 그 정도의 경력이 실려 있었으니까.
“미친놈!”
교수광의 입가에 득의 빛이 실렸다.
신황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분명히 비루봉이 자신의 다리를 쓸어오는 것을 보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교수광의 눈에 그 모습은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교수광은 비루봉에 실린 공력을 약간 줄였다.
혹시 진짜 발목을 자르기라도 한다면 무이를 보기가 껄끄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것이 그렇듯 왕왕 생각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곤 한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슈아아악!
갑자기 신황의 발을 쓸어가던 그의 비루봉이 오히려 잘려나갔다. 마치 날카로운 칼에 베여진 듯 잘려나가는 비루봉, 그 모습에 교수광의 눈이 크게 떠졌다.
신황은 월영인을 다리에 끌어올린 상태였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교수광이 내력을 줄였으니 이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해보자구.”
나직하게 뱉어지는 신황의 말. 동시에 그가 움직였다.
쉬리릭!
마치 은은하게 세상을 비추는 달빛처럼 분열하는 그의 신형, 만월보(滿月步)였다.
온 세상에 달빛이 비추니 내가 가지 못할 곳이 어디인가!
“헛!”
교수광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갑자기 그의 눈앞에서 신황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는 급히 다시 비루봉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며 신황의 종적을 찾았다.
쉬이익!
그런데 갑자기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날카로운 파공성, 교수광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허리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신황의 팔이 그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서거억~!
동시에 잘려나가는 교수광의 앞 머리카락.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니 이제 시작이었다.
“젠장~!”
신황은 교수광의 허리를 향해 다리를 마치 길가의 돌멩이 걷어차듯 후려쳤다. 그에 교수광은 급히 비루봉을 휘둘러 막았다. 하지만 그 정도로 신황의 월영인을 막을 수 없었다.
싹둑!
다시 비루봉의 나머지 반이 두 동강 났다. 자신의 두 손을 보는 교수광의 눈에 놀람보다 허탈함이 떠올랐다.
그가 이제까지 비루봉을 만들기 위해 기울였던 심혈에 비해 너무나 허망하게 봉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봉은 아깝고 목숨은 아깝지 않은 모양이지?”
잠시 정신을 빼앗겼는데 갑자기 신황의 목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들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옆을 보니 신황이 예의 그 무심한 눈으로 그의 눈을 보고 있었다.
주르륵!
등에 한줄기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어느새 간격을 허용한 것이다. 그의 입에서 무어라 말이 나올 찰나.
콰득!
갑자기 옆구리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어느새 신황의 주먹이 작렬한 것이다. 교수광은 이를 악물고 급히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주먹을 쥐어 신황이 있는 부분으로 짐작되는 곳에 급히 용호십팔식(龍虎十八式)을 펼쳐냈다. 그러자 그의 전면에 주먹으로 만들어낸 그림자의 물결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촤아악-!
그러나 용호십팔식은 미처 펼쳐지기도 전에 신황의 팔에 생겨난 월영인에 의해서 사그라져야 했다.
눈앞의 엄청난 주먹 물결을 손짓한번으로 잘라낸 신황이 그 공간을 비집고 교수광에게 쇄도했다.
“도, 도대체 뭐야?”
교수광의 눈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도저히 신황이 무슨 수로 자신의 용호십팔식을 해소했는지 알지 못하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궁금증을 해소하기보다 목숨걱정을 해야 할 때였다.
씨이익!
신황의 수도가 교수광의 목으로 짓쳐들었다.
교수광은 급히 팔을 들어 신황의 팔을 막으려 했으나 신황의 팔은 불가사의한 궤도로 곡선을 그리며 팔꿈치로 교수광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퍼-어-억!
“큭!”
두개골이 흔들리는 충격에 교수광의 머리가 흔들렸다.
“말했잖아.”
신황이 교수광의 얼굴 옆으로 바싹 붙으며 속삭였다.
“험한 꼴을 당할 거라고!”
마치 환청처럼 신황의 말이 들려왔다. 하지만 교수광은 두개골이 흔들려서 그것이 현실인지 환각인지 구별하지 못했다.
촤-아-앙!
신황의 팔에 보이지 않는 칼날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그의 손이 마치 섬전처럼 아래에서 위로 교수광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월영인(月影刃) 참(斬).
슈아악!
마치 무형의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듯 그렇게 날카로운 바람이 교수광의 온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
잠시간의 정적, 그 누구도 말을 하지 못했다. 당사자인 교수광,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칠과 목정인 일행. 누구도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입을 열수 없었다.
휘-이-잉!
바람이 불어왔다. 동시에 마치 석상처럼 굳어있던 교수광의 신체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
스스스~!
마치 가루처럼 흩어져 나가는 그의 상의, 그리고 드러나는 그의 알몸, 거기에는 마치 거미줄 같이 미세하게 빨간 선이 그어져 있었다.
“무슨?”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멍청하게 입을 여는 교수광,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오칠과 목정인 일행도 같은 표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주르륵!
갑자기 교수광의 전신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혈인이 되는 교수광.
“흑!”
그 참혹한 모습에 사진령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털썩!
교수광이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도저히 서있을수 없기 때문이다.
“약속했지! 목숨은 빼앗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번만이야. 다음에도 시답지 않은 이유를 붙여 따라붙는다면 이렇게 끝나지는 않을 거야.”
신황이 교수광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사실 교수광의 상처가 위중한 듯 보였으나 그것은 단지 피부위에 옅게 난 상처일 뿐이다. 피 역시 많이 나오는 듯 보이지만 이미 멈춰 말라붙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교수광이 마음에 입은 상처는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완벽한 패배. 제대로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당한 충격의 패배에 교수광의 정신은 온전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개방의 장로로 승승장구 해왔던 그였다. 남들보다 빠른 나이, 불과 마흔에 개방의 장로의 지위에 올랐고, 그 무엇도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무의식중에 약간의 오만함이 베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자존심에 도저히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그것도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중에 말이다.
“어.......떻게?”
교수광의 입에서 말이 덜덜 떨려 나왔다. 그는 자신이 처해져 있는 이 상황이 마치 아득한 꿈결처럼 느껴졌다.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 말이다.
신황은 망연히 중얼거리는 교수광을 뒤로 하고 무이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길목에 서있던 오칠과 목정인 일행이 급히 길을 열어줬다. 신황은 그들이 만들어준 통로로 무이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제 출발하자.”
“거지 아저씨, 많이 다친 것 아니에요?”
무이의 눈에는 걱정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신황은 손을 들어 무이의 머리를 슥슥 문질러주며 말했다.
“괜찮다. 그는 약간의 상처만 입은 것뿐이다.”
“정말요?”
두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 무이에게 신황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단다. 내가 언제 거짓말을 한 적이 있더냐?”
“아니요!”
신황의 말에 무이가 힘차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신황은 그런 무이의 모습에 흐릿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에 올라탔다.
“그는 잠시 후면 나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가자꾸나.”
“네!”
신황은 더 이상 교수광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말을 몰았다. 그러자 설아가 무이의 품에서 빠져나와 말의 머리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길게 목을 뽑았다.
캬-우-웅!
마치 승자의 비웃음처럼 설아의 울음소리가 숲에 메아리쳤다.
설아의 울음을 들으며 사무위는 몸서리를 쳤다.
“내.......가 저런 괴물을 건드렸었다니...........!”
사무위가 자신의 목을 만지며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하며 망연히 중얼거렸다.
개방의 장로인 교수광에게 반격할 틈도 주지 않고 제압하는 괴물에게 자신이 그렇게 간 큰 행동을 했었는지 이제 와서 절실히 후회가 되는 그였다.
한편 오칠의 눈 역시 경악의 빛을 담고 크게 떠져 있었다.
“저........자! 누군가? 어째서 저런 자가 무림맹의 정보망에서 감지되지 않았던 것인가?”
서안은 섬서성의 성도로 수많은 명승고적들을 보유한 곳이었다. 이곳에는 당대의 유명한 사찰들이 즐비했다.
흥교사(興敎寺), 법문사(法門寺), 향적사(香積寺)등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또한 서안 근교의 여산에 당의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눈 곳으로 유명한 여산(驪山)의 산록에 있는 온천인 화청지(華淸池)가 있어 많은 시인묵객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렇게 다양한 문화를 가진 서안은 요즘 꽤 살벌한 풍경이 많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것은 갑자기 이곳에 많은 무인들이 몰리면서부터 생긴 일이었다.
만화미인첩(萬華美人疊)이 출현하면서 섬서에 존재하는 많은 무인들이 서안으로 몰려들었다.
공간은 한정이 되 있는데 갑자기 많은 무인들이 몰리자 당연히 사소한 문제로 많은 충돌이 일어났고, 덕분에 하루가 멀다 하고 피를 보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존심강한 무인들이 부딪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신황과 무이가 서안에 들어섰을 때도 그런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하지만 신황이나 무이나 모두 만화미인첩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그저 묵묵히 객잔을 찾아들어갔다.
스으으~!
객잔에 들어서자 답답한 공기가 그들을 짓눌러왔다. 객잔의 1층에는 많은 무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둘이서, 혹은 셋이서 자리를 잡고 있는 무인들, 그들은 자신들끼리 이야기하다 새로운 인물의 출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등장한 인물이 다름 아닌 평범한 남자와 어린 여자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리며 신경을 껐다.
그들이 경계하는 것은 무인들이지 일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서 오십시요. 손님!”
그들이 들어서자 이제 20대 초반의 점소이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요즘 매일같이 살벌한 무인들만 보다 일반인을 보자 무척이나 반가운 모양이었다.
“방 있는가?”
“저희 집에 잘 찾아오셨습니다. 다른 객잔들은 대부분 방이 동났지만 저희집은 다행히 몇 개의 방이 남아있지요.”
“잘됐군. 깨끗한 방으로 하나주게. 어린 아이가 있으니 신경을 써주게.”
신황의 말에 점소이는 무이를 쳐다보며 웃었다.
“정말 예쁜 아가씨군요. 따님이신가요?”
그의 말에 무이가 얼굴을 붉히며 신황의 손을 꽉 잡았다. 무이는 자신의 백부가 정말 좋았으나 백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신황은 얼굴에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러셨군요! 어쩐지 닮았다 했습니다. 어여쁜 따님을 위해서 남은 방중 제일 좋은 방을 드리겠습니다.”
“고맙네!”
“어이쿠~! 별말씀을요. 요즘 하도 살벌한 광경을 많이 보다보니 요즘은 이런 예쁜 아이들만 봐도 마음이 좋아진답니다. 절 따라오십시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점소이가 얼굴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앞장을 섰다. 비록 어느 정도는 상술이기도 하겠지만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점소이였다.
신황은 그런 점소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힘을 가진 것을 축복이라 여기지 못하고 자랑하는 자에게는 결코 용서가 없는 그였으나,
자신의 삶에 열심인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꾹!
신황의 손가락을 잡은 무이의 손바닥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무이는 그렇게 신황의 손을 꽉 잡고 종종걸음으로 점소이의 뒤를 따랐다. 무이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다음날, 원래대로라면 바로 출발해야 옳았으나 그간 힘든 여정으로 인해 무이가 많이 지쳐있었기 때문에 신황은 서안에서 며칠 머물다 가기로 했다.
또한 그 자신도 서안을 와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무이와 함께 이곳저곳을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서안 자체가 만화미인첩의 출현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으나 어차피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었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침 일찍 신황과 무이가 내려오자 어제 그들을 맞아준 점소이가 예의 그 환한 웃음으로 그들을 맞아주었다.
“어떻게 잘 주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잘 잤습니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좋은 방을 주셔서.”
무이가 신황보다 먼저 나서 인사했다.
어젯밤 너무 편한 침상에서 잠을 잔 무이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매우 편하게 잠을 잤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날의 여행으로 다른 객잔들의 침상이 이렇게 좋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에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이다.
“편하게 주무셨나요? 꼬마 아가씨.”
“네! 덕분에 아주 편하게요.”
“꼬마 아가씨가 잘 주무셨다니 내 마음이 다 좋아지네요! 하하하!”
점소이는 무이의 말에 정말 기분이 좋은 듯 웃었다. 그 모습에 신황이 마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며칠 동안 더 머물 터이니 그 방을 계속 비워두게나.”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맙네!”
“별말씀을요. 참! 식사를 하셔야지요?”
“음~! 자리가 있나?”
신황의 말에 점소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곧 말했다.
“아~! 마침 저기 자리가 났네요. 잠시만 앉아 계십시오. 곧 치워드릴 테니까.”
“알겠네!”
점소이의 말에 신황과 무이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점소이가 부지런히 움직이며 어질러진 탁자를 치웠다. 그는 접시들을 쟁반에 담으면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요즘 이곳에 무슨 무림에서 보물로 여기는 물건이 나타났다고 난리도 아닙니다. 섬서성에서 힘깨나 쓴다는 무인들은 모두 서안으로 몰려왔지요.
뭐, 저희 같은 사람들이야 덕분에 호황을 누립니다만, 그래도 여간 살벌해야지요. 정말 요즘 같아서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습니다요.
무림인들이야 저희 같은 사람을 어디 사람으로 여겨야 말이지요.”
점소이는 구석구석 탁자를 닦으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거참! 요즘 이곳에서는 길거리에서 무인들끼리 싸우는 일을 자주 보게 됩니다.
뭐,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 싸움 구경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한번 싸우면 반드시 피를 보니, 그 또한 마음이 편치 않지요.
덕분에 이곳에 사는 상인들은 자신들이 부디 그런 일에 휘말리지 않기만을 빈답니다.
물론 저희 객잔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그렇고요. 어서 빨리 이일이 지나가야지, 정말 불안해서 못살겠습니다.”
“별일이야 있겠는가! 다 잘될 것이네.”
“하하! 저도 그러길 빌고 있습니다. 참, 주문하셔야지요?”
“자네가 알아서 챙겨다 주게나. 우린 여러 날 여행해서 좀 담백한 음식을 먹고 싶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주방장에게 이야기해서 특별히 만들라 이르겠습니다.”
“고맙네!”
“별말씀을요!”
점소이는 끝까지 싹싹하게 이야기를 하며 물러갔다. 정말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었다.
무이는 얼굴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점소이의 등을 바라보다 신황을 향해 말을 건넸다.
“음~! 백부님, 그럼 오늘을 어디로 갈 거예요?”
비록 살벌한 광경이 마음에는 걸렸지만 서안의 고풍스런 모습은 무이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이제까지 모든 풍경을 지나치면서 구경만 했지, 이렇게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자세히 구경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후후~! 글쎄다. 나 역시 이곳은 처음이다 보니 아는 곳이 없구나. 하지만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구경할 만한 곳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
“우음~! 백부님도 모르는 것이 있군요?”
무이는 신기한 듯 신황을 바라보며 웃었다. 무이는 자신의 백부가 못하는 것이 없고, 모르는 곳이 없는 것 같았다.
그만큼 신황을 보면 뭐든지 거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황이 모르는 것이 있다고 하니 신기한 것이다.
신황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사람이니 어찌 모든 것을 알겠느냐. 당연히 모르는 것이 더 많단다.”
“헤헤! 그래도 무이는 백부님이 세상에서 제일 많은 것을 아시는 것 같아요.”
“후후! 고맙구나.”
신황과 무이는 그렇게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그들의 대화에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보아하니 따님하고 유람을 나오신 모양인데 정히 아는 곳이 없으시다면 비림(碑林)에 한번 가보십시오. 개성석경을 비롯해 수많은 비석과 묘비가 세워진 곳인데 그 광경이 또 일품입니다.”
낯선 남자의 말에 신황이 고개를 돌려보니 창백한 얼굴을 가진 20대 초반의 청년이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왠지 어두운 얼굴을 가진 청년, 그러나 악의가 없었기에 신황은 고맙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개성석경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
그러자 남자가 웃으며 답한다.
“하하하! 개성석경은 송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114개의 석판에 유교경전 13경(655,025자)을 조각한 것이지요. 만약 서예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들러 봐야할 곳입니다.”
그의 말에 신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맙소! 많은 도움이 되었소,”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사해는 다 동도라 하였는데 어찌 그런 것을 가지고 도움이라 하십니까.”
남자는 병색이 완연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그것은 신황에게 매우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무언가 부조화스러운 모습이 그의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어디 아프신 것 아니시오? 안색이 안 좋은데.”
“하하! 약간의 지병이 있답니다. 뭐 그리 걱정할만한 것은 아닙니다.”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는 자리에 일어나 포권을 하며 말했다.
“저는 남문용이라고 합니다. 저 역시 이곳에는 처음이라 아는 것은 없으나 몇 가지 들은 게 있어 말씀드려봤습니다.”
그의 말에 신황 역시 일어나며 포권을 취했다.
“신황이오. 덕분에 좋은 사실을 알게 되었소. 감사하오.”
“하하하! 이거 정말 별거 아닌 것 가지고 생색을 내는 것 같군요. 저는 식사를 모두 끝냈으니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따님과 좋은 구경 많이 하십시오.”
무이와 신황의 모습을 보는 남문용의 눈에는 따스한 빛이 가득했다. 어찌 보면 부러워하는 것처럼 보이고, 어찌 보면 약간의 질투도 배여 있는 아련한 눈빛, 그것이 남문용의 얼굴이었다.
“고맙소!”
신황은 마지막 인사로 그를 보내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무이가 말을 걸어왔다.
“백부님! 저분 어디 많이 아프신가 봐요? 얼굴빛이 안 좋아 보여요. 무이도 얼마 전까지 그랬는데..............”
남문용의 모습에서 무이는 얼마 전의 자신의 모습을 느꼈나보다. 그래서인지 남문용의 뒷모습을 보는 무이의 얼굴이 더욱 안타까워 보였다.
“후후! 그런 것 같구나. 하지만 무이는 모두 나았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네!”
무이는 이미 자신의 몸이 완전히 나은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신황에게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이는 자신의 몸을 낫게 해준 백부를 더욱 좋아했다. 무이에게 있어 신황은 정말 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점소이가 음식을 가져오며 말했다.
부스럭!
그러자 무이의 품이 움직이며 무언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캬르릉!
설아였다. 설아는 이제까지 무이의 품에서 잠을 자다 음식냄새를 맡고 얼굴을 내민 것이다.
“이제 일어난 거야? 정말 음식냄새는 귀신처럼 맡는다니까.”
무이는 설아를 두 손으로 들어 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설아의 머리에 자신의 뺨을 비볐다.
크르릉!
그러자 설아의 입에서 기분 좋은 울음이 세어 나왔다.
신황과 무이는 비림에 가기 앞서 시장에 들렀다.
가죽으로 만든 신황의 옷은 아직까지 끄떡없었으나 무이의 옷이 많이 낡고 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격적인 구경에 앞서 옷을 사주려는 것이다.
신황은 무이를 자신의 어깨에 앉히고 복잡한 시장을 걸었다.
“자, 멀리 북경에서 가져온 비단입니다. 재질이 아주 좋습니다. 한번 입으면 그 감촉에 반하실 겁니다.”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 자기입니다. 아주 질이 좋은 것으로 저 멀리.............”
“쌉니다. 싸요. 오늘이 지나면 두 번 다시 사기 힘드니 이번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상인들의 흥정소리와 손님을 끄는 소리가 어지러이 들려왔다. 시끌 복잡한 광경, 그러나 신황은 이 모습이 싫지 않았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 왠지 활력이 도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무이는 신황의 어깨위에 앉아서 신기한 듯 주위를 연신 둘러봤다. 그렇게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무이는 예전부터 신황에게 궁금했던 점을 물어봤다.
“저~! 백부님,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요?”
“뭐든지!”
“우움~! 왜 백부님은 그렇게 거지 아저씨한테 심하게 대하시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잘 대해주시면서요.”
무이는 그것이 매우 궁금했다.
평상시 신황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나 일반사람들한테는 무공을 익힌 것을 표시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무인들과 무슨 문제가 생길 때는 극단적이리만큼 단호한 면모를 과시했다. 항상 그것이 궁금하던 무이였다.
슥슥!
신황은 그런 생각을 하는 무이가 기특하다는 듯이 머리를 문질러주며 말했다.
“무이야! 넌 무공을 익힌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신황의 말에 무이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음~! 무공을 익힌 사람들은 강하잖아요. 하늘도 날아다니고, 장풍도 쏘고,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못하는 것도 할 수 있잖아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래! 무공을 익혔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무공을 익히면 이미 일반인들하고는 궤를 달리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지.
손짓 한 번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단다. 그들의 사소한 몸짓 한 번에 일반인의 일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도 있단다.
그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지. 하지만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나의 인생이 누군가에 의해서 그렇게 간단히 바뀐다는 것은 말이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신황의 말에 무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러자 신황이 다시 흐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힘을 가졌다는 것은 축복받을만한 일이지만 그것을 함부로 사용해서는안 된단다. 자칫하면 한 개인, 한 생명체의 존재가치를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을 가진 자일수록 겸손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자신이 축복받았다는 사실도 모른 채 자신의 힘을 과신하는 자들이 많단다.
그들은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이 특별한 줄 알지. 난 그런 부류들이 싫단다.”
“왜요?”
“후후! 옷을 벗겨놓으면 똑같은 사람인데 마치 선택받은 삶인 것처럼 으스대는 위선이 싫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런 자들 앞에서면 나도 모르게 차가워진단다. 전에 그 거지도 알게 모르게 그런 기운을 품겼던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라면 봐줄만 했지만 그는 나에게 목적을 가지고 접근했지.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말이다.
그런 자들한테 우유부단하게 대했다가는 나중에 귀찮아진단다. 그래서 미리 사전에 예방한 것이란다.”
“그런 것이군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는 거군요. 정말 어렵네요.”
무이는 무언가 알겠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신황의 말은 무이의 가슴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그것은 무이의 일생에 커다란 나침반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렇게 신황과 무이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옷가게에 도착을 했다.
여기저기 아름다운 색상의 옷이 가게곳곳에 걸려 있었다. 신황은 무이를 어깨에 올려놓은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무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가게 안에는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 세 명이 옷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이의 탄성에 일제히 고개를 돌려 신황 쪽을 바라보았다.
비록 수수한 차림의 옷을 입었지만 그녀들의 얼굴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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