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이 기도하는 집
마태복음 21:12-17
20240326 (화)
1613. 갈 보리 십자가에
150 갈보리산 위에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4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17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이 되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는 국내외에서 몰려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역사가들의 말에 의하면 적어도 3백만 명 정도가 모였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빈손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반드시 제물을 가지고 나옵니다.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매체로서 꼭 제물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만 됩니다.
이렇게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온 수 백 만명의 사람들이 드리는 소와 양의 숫자가 30만 내지 40만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가까이서 오는 사람들은 제물을 끌고 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먼 지역이나 외국에서 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제물을 끌고 오겠습니까? 제물을 끌고 오다가 제물이 병들 수도 있고 상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매우 번거로웠습니다.
이런 번거로움에 편리를 봐주기 위해서 제물을 ‘이방인의 뜰’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할 수 있도록 배려를 했는데 비둘기를 드리도록 해 주셨습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소와 양으로 제사를 드리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소나 양으로 제사를 드릴 수 없기 때문에 비둘기를 제물로 드릴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이방인의 뜰’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린도전서 3장 17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신 것은 두 번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한 번 성전을 청결케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서 돈바꾸는 사람,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고 다 쫓아내셨습니다.
그 때 한 번 성전을 청결케 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직전, 그 주간에 또 한 번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셨던 것을 보면 그때 청결하게 하셨던 성전이 또 다시 더럽혀 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전이 청결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3장 17절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그 성전을 파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깨끗하고 거룩해야만 성전의 기능을 잘 감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거룩한 성전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이 주인되어 주시고,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으시고, 하나님께만 예배가 드려지고, 인간이 중심되지 않고, 인간의 이권(利權)이 조금도 용납되지 않는 아름다운 성전 될 수 있도록 늘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몸도 성전입니다.
성전만 성전이 아니라 우리의 몸도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殿)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 몸은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이 성전입니다. 우리 마음에도 성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악이 벌어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만 높이고, 하나님만이 주인이 되셔야 하는데 내 마음이 정상적인 상거래가 아니라 10배나 폭리를 취하려는 강도짓이 예루살렘 성전에서만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도 일어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간데없고 오직 돈, 돈, 돈만이 내 마음에 자리를 하고, 물질만이 우리 마음에 판을 치고, 내 이기심만이 횡행하고 내 만족과 내 편리, 내 욕심만이 판을 쳐서 우리 마음의 성전이 더럽혀질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입니다.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고, 하나님만이 주(主)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 절대로 물질이, 돈이, 어떤 사람이, 어떤 권세가, 어떤 다른 것이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면,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던 예루살렘 성전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내 몸이 주의 성전이라는 이 마음만 가지고 있다고 하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경건해지는지 모릅니다. 내 속에 주님께서 거하신다, 나는 주님을 모시는 성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우리의 몸을 마음대로 더러운데서 절대로 굴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몸 속에 마약을 투여한다든지, 이 거룩한 성전, 주님께서 계시는 이 곳에 독한 술을 넣는다든지, 담배로 온 몸을 더럽힌다든지 절대로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주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임을 다시 한 번 깨닫고 거룩하게 지켜 나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이 시간, 우리 교회에 오셔서, 또 우리 마음에 오셔서 우리의 마음과 교회를 보시면 우리 마음의 성전과 이 교회를 어떻게 보실 것 같습니까? 책망하는 성전이 아니라 기뻐하시고 좌정(坐定)하실 수 있는 성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만이 주인이 되시고, 하나님만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하나님 만이 경배를 받으시는 그런 아름다운 성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돈이 주인이 되고, 내 이기심이 판을 치는 우리 마음과 교회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만이 예배를 받으시는 그런 아름다운 성전으로 만들어 나가는데 힘쓰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 뿐 아니라 내 몸의 전체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성소가 있는 성전만이 성전이 아니고 거기 딸려있는 마당과 뜰까지 다 성전에 포함시켰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거하시는 마음만이 우리의 성전이 아니고, 우리의 사지백체가 다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거룩한 성전임을 깨닫고 주님을 위해서 우리의 몸을 잘 드려서 사용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본래 이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는데 너희들이 장사하는 집 뿐만 아니고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56장 7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컫음이 될 것이니라>.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강도의 굴혈로,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놓았으니 예수님께서 그 광경을 보시고 분노하신 것입니다.
성전이 깨끗한 것으로만 끝나서는 안됩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당은 기도하는 집이 되어져야 합니다. 교회는 정치하는 곳도 아니고,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장사하는 곳도 아니고, 교회는 사회 개혁하는 곳도 아니고, 교회는 사회 사업하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는 상처받고 버림받은 영혼들이 와서 기도하여서 치료받고 새 힘을 얻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하는 곳이 교회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당시 사람들은 성전인 하나님의 집을 사람들의 집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기도하는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거룩한 분노를 터뜨리게 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도록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하는 교회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입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기도원을 찾기도 합니다. 물론 기도원에 가면 집을 떠났기 때문에 온전한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께 마음을 집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기 가장 좋은 장소는 교회임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나는 실로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엘리 제사장의 축복을 받고 아기를 가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간절히 기도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평생의 소원인 아기를 허락하여 주시고 다시 아들, 딸을 다섯이나 더 두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이상을 보게되고 평생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이 기브온 성전에서 일 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일 천 번을 드렸다는 말도 되고, 천 개의 제물을 드렸다는 말도 되는데 여하튼 어느 제사이든지 정성을 다 해서, 최선을 다 해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 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정성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주면 되겠느냐?’ 솔로몬이 즉각적으로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나는 출입할 수 있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위 백성의 선악을 분별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무릎을 쳤을 겁니다. ‘그래 되었다, 네가 원수의 생명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래 사는 것, 귀하게 되는 것, 부자되는 것 구하지 아니하고 주의 백성의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지혜도 주고, 온갖 것을 다 너에게 주겠다.’
그 기브온 성전에서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 뿐만 아니라 부귀영화까지 주셔서 이 땅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성전에서 기도하여서 응답받은 것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역대하 7장 12절 ~ 에 보면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 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전을 삼았으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로 소산을 먹게 하거나 혹 염병으로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이 곳에서 하는 기도, 성전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
하늘이 닫히고 비가 오지 아니하는 삶을 살 때가 있습니까?
여기 가도 막히고, 저기 가도 막히고, 사방이 다 막히는 때가 있습니까? 그 때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그 기도 들어주마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메뚜기가 토산을 먹어치우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느냐? 그때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면 내가 그 모든 것을 회복시켜주마 네가 번 것을 내가 먹어야지, 내 자녀가 먹어야지, 사람이 먹어야 하는데 메뚜기가 먹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질병이 먹어치우고, 사고가 먹어치우고, 생각치도 못했던 일 때문에 물질이 소리치며 나가는 때가 있느냐? 교회 나와서 기도하면 내가 그 모든 기도를 들어서 네 모든 경제적인 삶을 지켜주마. 질병으로 고통 당하는 때가 있느냐? 교회 나와서,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의 기도를 들어주마,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 성전에서 하는 기도에 응답해 주마고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성전에서 하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시고 내 눈과 내 마음,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마음이 항상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집중해 있으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이 교회 나와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듣고 있는 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고 응답받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나라를 다스릴 때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쳐 들어와서 나라를 협박하니까 히스기야가 조공을 바치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은과 금을 바치느데 얼마나 많이 달라고 하는지 바치다가 바치다가 나중에는 나라에 은과 금이 없어져서 하나님의 성전,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의 기둥에 입혀져 있는 금까지 벗겨서 앗수르 왕에게 주어야할 지경까지 되었습니다.
어쩔 수가 없어서 앗수르 왕에게 “이제는 당신을 더 이상 섬길 수가 없습니다.”하고 말했더니 앗수르 왕 산헤립이 18만 5천 명의 대군을 이끌고 쳐 들어와서 너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를 배신하느냐, 애굽을 의지하고 배신하느냐, 어디 한 번 해 보아라 하면서 협박을 합니다. 온갖 저주를 퍼붓습니다. 하나님 앞에 욕을 합니다. 그리고 편지를 보내서 항복하지 않으면 너희 모든 백성들에게 오물을 먹일 것이라고 모욕을 합니다.
히스기야가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산헤립의 편지를 펴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 이방인이 이렇게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이렇게 모욕합니다. 이제 하나님만이 우리의 도움이십니다.‘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한 천사를 앗수르 군사에게 보냅니다. 하룻밤 사이에 18만 5천 명을 다 송장이 되게 했습니다. 앗수르로 도망갔던 산헤립은 자기 아들의 칼에 맞아서 죽고 말았습니다.
성전에서 하는 기도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어주마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호사밧 왕 때에 암몬과 모압이 연합군을 형성해서 쳐들어왔습니다. 이길 힘이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 당시의 상황을 ‘여자가 아기를 임신했지만 낳을 힘이 없다’ 고 하고 있습니다. 아기를 배었으면 아기를 낳아야 하는데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아기도 죽고 엄마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게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이 그 지경에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런 처지에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도움이십니다.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했을 때 야하시엘이라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계시를 합니다. ‘이 큰 무리를 인하여서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너희는 노래 잘 하는 사람들을 뽑고 그에게 거룩한 옷을 입혀 앞에 나가면서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노래하면서 나가고 백성들은 칼들지 말고 활들지 말고 뒤따라 가면서 복창만 해라 그러면 너희가 승리하게 될 것이다.’
그 예언의 말씀대로 노래 잘하는 사람들을 뽑았습니다. 가운을 입혔습니다. 앞서 가며 무기 하나 들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하고 찬송하니까 백성들이 따라서 복창을 합니다. 그럴 때에 어디에서 나왔는지 복병이 나오고, 모압과 암몬 군사들이 자기끼리 찔러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기 하나 들지 않고 대승리를 얻어서 전리품을 거두는데 얼마나 많이 거두었든지 사흘동안을 전리품을 거두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하나님 앞에 찬송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찬송의 골짜기’라고 불러서 ‘브라가-찬송의 골짜기’라는 말이 생겨진 것입니다.
성전에서 하는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마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인 줄 알고 기도하면 응답해 주마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소문나는 교회로 만들어 가는데 우리 온 성도들이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벽에도 나와서 뜨겁게 기도하고, 낮에도 기도하고, 저녁에도 기도하고, 밤에도 기도하여서 우리 교회의 기도소리가 끝나지 아니하는 교회로 만들어 나가는데 앞장서는 우리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를 기도하는 교회로 만들어 갑시다. 기도하는 집으로
예루살렘 성도들은 날마다 모였습니다. 성전을 향하여
날마다 모이고 기도하기에 전혀 힘쓰는 사람을 살아서 그 시대의 복음 사역을 감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하루에 꼭 한번씩 하나님의 성전에 들러서 기도하는 삶을 살아보리라고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