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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7. 18
⊙ 1968년 올로프 팔메의 즉흥연설에서 시작, 1983년부터 모든 정당이 참여해 정책세미나, ‘당수와의 만남’ 등 행사
⊙ 유럽정책에서 버스정책까지 다양한 정책 논의, 정당과 국민 간 일체감 형성
⊙ 정치박람회에서 만난 소년, “정치가 좋다”
⊙ 左右정당들이 연립정부 구성하는 블록정치, 원칙 어긋나는 聯政은 안 해
⊙ 각 정당 출신 장관들이 담당 분야 정책 책임지는 ‘책임장관제’ 실시
스웨덴 최대의 여름 휴양지인 고틀란드(Gotland) 섬에서 최근 정치인들의 록 페스티벌이라고 불리는 ‘알메달렌(Almedalen) 정치박람회’가 열렸다. 정치박람회는 1968년 당시 교육부 장관이자 차기 총리로 내정되었던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의 올로프 팔메(후일 총리 역임)가 이 섬에 놀러온 사람들에게 사민당이 추구하는 비전과 정책을 설명하는 즉흥연설에서 시작했다. 그 이후 매년 여름 고틀란드 섬에서 열리는 정책간담회는 사민당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뜨거워지자 1983년부터는 모든 정당이 참여하는 정치행사로 확대되었다.
이 행사에 참여하는 정당들은 정책설명회, 당수와의 만남, 정책세미나, 국민과의 질의시간, 정당 주관 문화행사 등을 통해 국민과 하나가 되는 친숙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최근에는 통상 7월 첫째 주부터 1주일간 ‘알메달렌 정치주간(Almedalen Politics Week)’을 정해 스웨덴 의회 의석을 가진 정당들이 하루씩 배정받아 당수 연설을 포함한 정치행사를 갖고 있다.
정당의 날’ 행사 순서는 매년 바뀐다. 올해 마지막 날 정당의 날 행사를 한 정당은 다음해에는 제일 먼저 행사를 치른다. 올해는 제1야당인 사민당이 제일 먼저 ‘정당의 날’ 행사를 했다. 사민당의 스테판 뢰프벤 대표가 차기 총리 선호도 1위를 지키고 있기 때문인지, ‘사민당의 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당수 연설에는 수천 명이 운집했다. 일부는 연단 앞 의자에서, 다른 사람들은 잔디밭에 서서 그의 연설을 청취했다. 그는 “지난 8년간 집권한 보수우익 연립내각(保守右翼聯立內閣)이 스웨덴의 가치를 훼손했다”며 더 이상 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프레드리크 레인펠트 현(現) 총리가 이끄는 온건당(Moderate party)의 정당행사는 맨 마지막 날 있었다.
▲ 스웨덴 정치박람회에서 여성당(FI) 멤버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필자(오른쪽 끝)
“지식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의 꿈의 한 週”
스웨덴은 올 9월 둘째 주 일요일에 총선을 치르기 때문에 이번 정치박람회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각 정당들의 비전과 정책들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알메달렌 행사를 소개하는 책 표지에도 ‘수퍼선거 2014(super election 2014)’라는 글귀가 들어 있었다.
이런 정치박람회를 통해 국민들은 각 정당의 정책들을 현장에서 비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매스미디어는 각 정당의 날 저녁에 열리는 정당대표 연설을 전국에 생중계한다. 알메달렌 주간이 끝나면 대학 교수가 중심이 되어 각 정당이 제기한 비전과 정책을 심도 있게 비교·분석한다. 정치박람회는 정치권이 국민과 소통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열린 장소로 기능하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정치박람회의 주체가 각 정당들이라는 점이다. 행사가 열리는 고틀란드시(市)는 단지 편의를 제공하고 안전을 책임지는 일에만 전념한다.
각 정당들이 정치박람회를 자신들의 선전도구로 활용하지 않을 것을 합의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런 합의가 잘 지켜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박람회는 3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박람회는 스웨덴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정당 간 합의정치의 산물이다. 소통과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를 배우고 국민들은 정치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지식을 얻는 소중한 공간이다.
고틀란드 시장은 정치박람회에 즈음하여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투쟁은 매일 지속되어야 한다”면서 “‘알메달렌 주간’은 지식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의 꿈의 한 주(週)”라고 연설했다.
철학적 이슈에서 현실적 이슈까지
▲ 정치박람회의 단초를 마련한 올도프 팔메 전 스웨덴 총리
이런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정치박람회에 대한 관심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2007년 정치박람회에서는 400개 세미나가 열렸고 방문객 수는 5000여 명이었다. 2010년에는 세미나 수가 무려 1396개였고 방문객은 1만1000여 명이었다. 작년에는 2285개 세미나가 열렸고, 2만여 명이 방문했다. 올해에는 3308개 세미나가 열리고 3만명 정도가 찾았다.
사회적 이슈에 한해서는 누구나 와서 세미나를 개최할 수 있다. 세미나는 공공(公共)기관, 도서관, 카페, 정원, 텐트, 배, 버스 등 장소와 형식을 가리지 않고 열린다.
그렇다면 어떤 세미나들이 이번 정치박람회에서 개최됐을까? 몇 가지 차원에서 분류해 주목할 만한 세미나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정치 관련 세미나에서는 ‘국민친화적 정치란 무엇일까?’ ‘직접민주주의와 인터넷’ ‘스웨덴 해외원조가 그 나라 민주주의에 영향을 미쳤나?’ ‘정치와 레토릭’ ‘정치와 종교’ ‘언론과 권력’ ‘정치적 이상과 현실’ ‘노동자가 선거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까?’ 등 철학적 이슈부터 현실적 이슈까지 총망라되었다.
9월 총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민당의 관련 세미나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가령 ‘사민당 예비내각의 일자리 창출’ ‘사민당의 대(對)유럽 정책’ ‘사민당 학교정책 분석’ ‘기능장애인을 위한 사민당 정책’ ‘사민당 당수 연설 분석’ 등….
국가 미래 관련 세미나에서는 ‘수퍼 버스(Super Bus): 버스정책의 미래’ ‘인종차별이 없는 국가(Zero Racism)’ ‘학교교육의 미래: 교사들의 지식 확립’ ‘태양전기와 미래’ ‘스웨덴 산업의 새 지평’ 등 다양한 주제가 등장했다.
경제·사회 분야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유럽의 경제정책’ ‘기후와 지속적 성장’ ‘중소기업과 성장’ ‘초임 임금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저임금 국가로 가고 있는가?’ ‘청소년 교화 정책의 평가’ ‘감시기술 발달과 인권침해’ ‘노동 근무 환경과 보조 사무기구’ ‘인권과 종교’ 등의 세미나들이 큰 관심을 끌었다.
스웨덴적 價値의 지속가능성 고민
▲ 여성당(FI)을 창당한 구드런 슈만.
필자는 최근 이 정치박람회에 참여해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와 양성(兩性)평등을 구현하고 있는 스웨덴 민주주의의 본질은 무엇일까’ ‘민주적 제도의 근간인 정당이 스웨덴에서는 과연 어떤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까’ ‘스웨덴은 어떤 선거제도를 통해 오늘날 성숙한 북유럽 민주주의 모델을 구축했는가’ ‘스웨덴 정당체계와 선거제도를 벤치마킹하면 한국 정당정치의 발전과 성숙한 민주주의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참석했다. 이번 정치박람회를 통해 느낀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사항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스웨덴이 추구하는 핵심가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정당뿐만 아니라 미디어그룹, 이익집단, 시민단체, 공공기관과 기업, 지방자치협의회 등 다양한 조직들이 참여해 수많은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런 세미나들은 스웨덴 사회가 소중하게 여기는 복지, 양성평등, 인권과 같은 가치들을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있는 스웨덴에서 여성당의 출현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통상 ‘여성당(女性黨)’이라고 하는 스웨덴 ‘페미니스트 이니셔티브(FI·Feminist Initiative)’는 2006년 스웨덴 총선을 1년 정도 앞둔 시기에 창당됐다. 좌익당(左翼黨) 당수를 지낸 구드런 슈만이 주도해서 만든 정당이다.
FI는 스웨덴의 기존 정당들이 여성의 권익을 위한 대변자 역할을 충분히 다하지 못했고, 여성에게 불합리한 차별적 요소의 개선과 개혁이 기존 정당들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하에 만들어진 정당이다. 과연 FI가 4% 이상을 득표해 원내(院內) 진입에 성공할 수 있을지가 이번 9월 총선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박람회장에서 FI 멤버들의 활동이 눈에 띄었다. 필자가 이들과 만나 대화하면서 느낀 점은 FI 당원들의 신념과 책임성이었다. 누구를 만나도 적극적으로 FI의 정책과 비전을 소개하고 FI가 주최하는 세미나에 참석해 줄 것을 요청했다.
스웨덴은 성 평등(gender equality) 면에서 최우수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2년 성 격차 지수는 세계 4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이 계속해서 ‘완전한 성 평등 실현’을 국가가 추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은 ‘지속가능한 평등과 성장’을 위한 것이다. 라르스 다니엘손 주한(駐韓) 스웨덴 대사가 “성 평등 국가일수록 성장률은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성 격차 지수는 조사대상 136개국 중 111위였고 여성 근로자 임금은 남성의 68.1%에 불과했다. 이런 성 격차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복지도, 창조경제도 달성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평등이 오히려 성장의 발목을 잡는 것처럼 잘못 이해하고 있다.
스웨덴 사회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 스웨덴은 지난 2013년 59개국에 대한 17개의 환경, 사회, 거버넌스 지표를 기준으로 한 로베코샘(RobecoSAM) 국가 지속가능성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사소한 이슈에 대한 세심한 배려
▲ 정치박람회 기간 중에는 다양한 단체와 정당에서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행사들을 개최한다.
둘째, 사소하지만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할 사회 이슈에 대한 세심한 배려이다.
특히 아동 인권에 대한 배려가 인상적이었다. 예컨대 난독증(難讀症) 환자 어린이들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책이나 교재를 발간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활동이 눈에 띄었다. 어린이들이 시력이 나빠져서 안경을 착용할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두통을 없애기 위해, 복용하는 약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대체 약품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도 있었다. 아동학대 등을 막기 위한 ‘아동 옴부즈만’ 단체의 활동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일련의 활동들은 ‘작은 이슈라도 세심하게 살펴야 보다 큰 이슈를 처리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나온 것 같다. 스웨덴 정부조직인 사회부에 아동 문제만을 전담하는 ‘아동담당 장관’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스웨덴에서는 한 부처에 분야별로 복수의 장관을 두고 있다).
노인복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정치박람회에서는 세미나만이 아니라 각종 연극과 다양한 퍼포먼스가 있었다. 이 중에서 ‘모든 국민을 위한 노인 복지’라는 노상(路上) 연극이 눈에 띄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진지하게 연극을 관람했다. 노인 한 분에게 왜 정치박람회에 참여했느냐고 묻자 “참여 자체가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고 대답했다.
사회적 약자(弱者)인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할 때 재정문제를 포함해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해 ‘국영보험국’ ‘국영직업소개소’ ‘사회보건국’ ‘지방자치협의회’가 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셋째, 박람회에 참여하는 각종 단체와 조직은 공익적 이슈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합의이다.
박람회에는 수많은 이익집단과 기업들이 참여했다. 그런데 이런 집단들이 다루는 세미나의 주제는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함보다는 스웨덴의 미래와 일반 개인이 추구해야 할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뒀다.
예를 들면, 노총은 21세기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에너지(energy)협회에서는 ‘어느 정치인이 가장 에너제틱(energetic)한가’라는 흥미로운 이슈를 내걸고 세미나를 진행했다. 경총이 주관한 세미나에 가 보니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네트워킹을 해야 성공할 수 있는가’가 주제였다. 스웨덴 농민협회가 주관한 세미나장에서는 참석자들에게 갓 구워낸 빵과 유유를 주면서 “스웨덴은 대도시보다 큽니다”라는 구호로 농촌문제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사회 이슈에 대한 각 정당들의 입장에 대한 토론과 대화는 국민들의 정치 지식을 높이고 자신의 입장을 정립하며 특정 정당에 대한 일체감(identification)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이런 긍정적 효과가 박람회 이후에도 실현되고 이것이 스웨덴이 수준 높은 정책정당 체제를 구축하는 동인으로 작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左右 블록 정치
스웨덴과 한국은 정치문화, 제도, 관습, 규범 등 여러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비교방법론적 시각에서 보면 ‘가장 서로 다른 정치체제’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상이(相異)한 정치체제를 비교·분석할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득은 새로운 시각으로 정치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가 그동안 성취하지 못했던 것을 독특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표>는 한국과 스웨덴 간 정부형태·정당체제·선거제도를 비교·분석한 것이다. 정부형태에서 한국은 5년 단임(單任) 대통령제를, 스웨덴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내각제 국가에서는 통상 내각에 대한 불신임권이 있어 임기가 불안정하지만 스웨덴에서는 4년 임기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다당(多黨)체제이지만 보통 여러 정당이 연립(聯立)내각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과거 1970년대에는 사민당이 단독정부를 구성할 정도로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최근에는 ‘좌우(左右) 블록(bloc)정치’가 보편화되어 있다. 사민당, 환경당, 좌파당(구 공산당) 등이 좌익블록을, 온건당(구 보수당), 중앙당(구 농민당), 기독민주당, 자유국민당, 스웨덴민주당(극우당) 등이 우익블록을 구성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총선과 2010년 총선에서 보수당(현재는 온건당으로 개명)이 사민당 중심의 좌익블록을 물리치고 선거에 승리, 4개 정당 우익 연립내각을 출범시켰다. 우익 연립내각은 극우당의 참여를 허락하지 않았다. 극우당이 신나치당을 연상시킬 정도로 지나치게 과격한 정책과 인종주의를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極右에서 極左까지 이념적 스펙트럼 넓어
현재 스웨덴 총리는 온건당 출신이다. 온건당은 연립내각에서 재정, 산업, 외교, 국방을 맡고 있다. 중앙당은 농업과 IT, 기독민주당은 사회, 자유국민당은 교육을 맡고 있다. 철저하게 책임장관제가 실시되고 있는 셈이다. 총리는 엄밀하게 표현하면 내각을 상징하는 수준이고 주무(主務)장관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
연립내각에 참여하는 정당들은 정책담당 장관들 간에 정책을 조율해서 총리에게 보고한다. 해당 부처에 문제가 발생하면 총리가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장관이 책임을 진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거론되는 책임장관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 밖에 스웨덴 정부형태에서 특이한 점은 정부의 한 부처에 여러 명의 장관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사회부에는 사회부 장관, 사회보장 장관, 어린이 장관, 노인 장관 등 네 명의 장관을, 외교부에는 외교부 장관, 외교통상부 장관, 해외지원 장관 등 세 명의 장관을 두고 있다. 장관의 업무 영역을 세분화하고 기능화하는 것이 부처 운영에 효율적이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이를 한국 상황에 적용한다면 미래창조과학부에 미래부 장관, 과학부 장관, 창조부 장관을 두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정당체제에서는 두 나라 사이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정당 간 이념적 스펙트럼 면에서 한국은 그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한 보수 양당(兩黨) 독점(獨占)체제다. 반면에 스웨덴은 정당별로 이념적 색채가 뚜렷한 다당체제다. 극좌(極左)에서 극우(極右)에 이르기까지 정당 간 이념 스펙트럼이 가장 넓은 나라이다. 스웨덴에서는 이익과 이념, 열정이 상이한 정당들이 공존과 사회통합을 가져오는 경쟁의 틀이 작용하고 있다. 한국 정당들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두 나라의 상이한 정당체제는 선거제도에서 비롯했다.
한국은, 지역구에서는 단순다수제(單純多數制), 전국구에서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스웨덴의 특이한 선거제도들
스웨덴은 의원을 4년마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349명을 선출한다. 310명은 전국을 29개의 권역으로 나눈 지역구에서 선출하고, 나머지 39명은 보정의석으로 배정한다. 스웨덴 의석은 전국적으로 4% 이상 득표하거나, 지역구에서 12% 이상 득표한 정당에 배정된다.
전체 정당 득표율이 지역구 의석수 비율보다 높으면 보정(補正) 의석을 배분받게 된다. 배분은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친다. 29개 선거구별로 각 정당에 배정된 의석을 합한 수에서 스웨덴 전체를 대상으로 정당 득표수에 따라 349석을 배분한 숫자를 뺀 만큼 보정 의석으로 각 정당에 추가 배정한다. 이것은 소수 정당을 배려하기 위한 것으로 선거 결과의 비례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보정 의석을 할당받은 정당은 의석을 배정받지 못한, 상대적으로 득표를 많이 한 큰 선거구에 우선 배정받게 된다. 또한, 보정 의석에는 한국처럼 따로 비례대표 후보들이 있지 않고 지역구 선거에서의 차점자들이 비례대표 명목으로 의석을 배분받는다.
비례대표 정당명부는 철저하게 당원투표에 의해 결정된다. 놀랍게도 선거 8개월 전에 그 명부작성을 완료한다. 이는 당 지도부가 장악한 공천심사위원회가 밀실에서 선거를 앞두고 졸속으로 명부를 결정짓는 한국과는 크게 다르다.
스웨덴의 투표구조에서 흥미로운 것은 정당이 만든 비례대표 명부순위를 국민들이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에서는 정당명부에 기재된 개인 후보에 대한 선호투표를 한다. 정당명부에서 하위 순위에 있는 후보라도 자신이 열심히 선거운동을 해 8% 이상 득표를 하면 원래 명부순위와 상관없이 1등으로 선출될 수 있다. 정당이 정한 명부를 국민이 바꿀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유권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의미이고, 정당들은 선거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명령이다.
스웨덴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전(事前)투표제가 허용되고 있는데, 그 기간은 3주나 된다. 특이한 것은 ‘후회투표제’다. 즉, 사전에 투표를 했어도 선거 당일 투표장에 가서 자신의 결정을 바꿀 수 있다.
스웨덴의 경우는 우리와는 달리 지역당을 허용하고 있다. 지역 현안에 가장 정통한 지역당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 규모의 정당들은 늘 긴장하게 되고, 유권자들의 선택권은 그 만큼 넓어지게 된다. 건전한 경쟁체제 구축은 선거의 질(質)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한국과 달리 총선과 지방선거를 동시에 치른다. 다만, 지방단체장들은 임명제로 운영된다. 그만큼 의회의 정치적 비중이 높다는 얘기다.
북유럽 민주주의의 상징인 스웨덴 정치박람회와 정당정치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첫째, 스웨덴에서는 선거승리 지상주의(至上主義)에만 빠진 무분별한 정당 간 연대(連帶)는 성숙한 정당정치의 적(敵)으로 간주한다.
스웨덴 정치에서는 좌우 진영(陣營) 간 연립내각이 필연적이지만 이념과 가치를 무시한 정당연대는 회피하고 있다. 9월 총선을 앞둔 현재 각종 여론조사 결과, 사민당의 지지율은 35%이고 연정(聯政) 파트너로 거론되는 환경당은 12%를 차지하고 있다. 좌익블록에 속하는 좌익당의 지지율은 10% 정도이다.
그런데 사민당과 환경당은 비록 과반 득표를 넘기지 못하는 소수(少數) 내각을 구성하는 한이 있더라도 좌익당을 연정에서 배제하고 있다. 좌익당은 1917년 사민당 내 극좌파가 중심이 되어 만든 정당이다. 당시에 “우리는 소련식 사회주의 정당을 만든다”는 기치를 들고 나왔다. 이런 과격한 노선 때문에 세월이 흘렀어도 사민당은 좌익당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잘못된 노선과 이념을 갖고 있는 정당과의 제휴는 그 자체가 재앙이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우익블록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집권세력인 온건당의 지지율은 23% 정도이다. 온건당과 연립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중앙당은 4%, 기독민주당은 4%, 자유국민당은 7% 정도이다. 만약 10%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극우당과 손을 잡으면 정권을 재(再)창출할 수 있다. 하지만 우익정당들은 정권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극우당을 연립내각의 파트너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극우당이 지향하고 있는 극단적 노선 때문이다. 일부 극우당 인사들은 공공연하게 자신들을 신나치당이라고 떠들어 대고 있다. 만약 이런 극우당과 연대하면 현재 우익정당들이 얻고 있는 지지율도 폭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지만 스웨덴 정당들이 그만큼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이념을 중시하기 때문에 극우당과의 연정을 거부하는 것이다.
원칙 없는 連帶는 毒杯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선거 때만 되면 후보단일화가 마치 선(善)인 것처럼 일반화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총선(總選)에서 민주당은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을 부정하는 통합진보당과 선거연대를 했다. 그 결과 민주당은 혹독한 대가(代價)를 치렀다. 2012년 대선(大選)에서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보이지는 않지만 과거 잘못된 선거연대의 여파(餘波) 때문에 부정적 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종북(從北)세력과 손을 잡은 정당에 대한민국을 맡길 수 없다는 정서가 일정 부분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향후 선거에서 정당들은 허황된 후보단일화나 선거연대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며 당당하게 경쟁하는 전통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특정 정당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연대한다면 이는 한마디로 독배(毒杯)를 마시는 것이다. 지난 6·4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통합진보당 후보들이 선거를 코앞에 두고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것이 선거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7·30 재·보선에서 정의당은 서울 동작을(乙)에 노회찬 전 대표, 수원 영통에는 천호선 대표를 공천했다. 만약, 이들이 완주(完走)하지 않고 또다시 야권연대라는 미명아래 선거 막판 후보단일화를 한다면 이는 결국 정당의 존립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된다.
정당 간 이념적 스펙트럼 넓혀야
▲ 스웨덴 사민당이 퇴임한 에를란데르 전 총리를 위해 지어 준 에를란데르 빌리지.
둘째, 정당 간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히는 새로운 정당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다시 말해, 한국 정치에 보수 양당 독점체제를 깰 수 있는 중도(中道) 정당과 노동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합리적 진보정당들의 출현이 필요하다.
한국 정당은 영·호남 지역균열을 통해 보수정당 독점체제를 구축하다 보니 정당 간에 이념적 차별성이 약하다. 최장집 교수의 지적대로 장기간에 걸친 냉전반공주의는 “한국 사회에서의 정치적 틀을 조직하고 그 틀 내에서 허용되는 정치적 실천과 이념의 범위를 매우 좁게 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정당 체제는 이념적으로 좁게 열린 스펙트럼에서 보수 양당 독점체제가 만들어 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한국의 이런 정당구조는 ‘정치적 갈등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양극 분화하고 정치경쟁의 양상을 극한적 적대관계로 몰고 갔다’. 따라서 정당 간에 공존과 타협보다는 극단과 배제가 판을 치게 됐다.
정당 간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은 제도 변화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오히려 진보정당들이 대변혁을 통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얻어야 한다. 현재 1~2%대에 불과한 정당 지지도를 보이고 있는 정의당과 통합진보당은 ‘진보참회록’을 쓰고 대오각성해야 한다. 왜 국민들로부터 버림받고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종북진보’의 어두운 사슬을 끊고 ‘민주진보’의 길을 걸어야 한다.
셋째,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 지도자들과 정당들이 극단과 배제의 정치에서 벗어나 소통과 합의 정치를 구현해야 한다.
스웨덴 국민에게 역사상 가장 훌륭한 정치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타게 에를란데르(Tage Erlander) 전 총리를 꼽는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 45세의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됐다. 68세에 스스로 물러날 동안 23년간 총리에 재임했고 11번의 선거에서 승리했다.
“성장 없이 복지 없다”
▲ 스웨덴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인 타게 에를란데르 전 총리.
스웨덴 국민들이 그를 존경하는 이유는 통치기간이 길고 스웨덴 복지의 틀을 마련했기 때문이 아니다. 소통의 리더십을 토대로 한 스웨덴 민주주의의 틀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매주 목요일 자신의 별장인 ‘하르프순드’로 재계와 노동계 대표를 불러 함께 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서 재계(財界)와 노동계(勞動界) 대표자들은 상호간의 극단적 충돌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고, 대화를 통해 점차 서로를 이해해 갔다. 이것이 바로 스웨덴 민주주의의 핵심인 타협(Compromise), 협조(Co-operation), 합의(Consensus)가 포함된 ‘3C 정치’의 기초가 됐다. 그는 이 ‘목요 클럽’을 재임 23년간 계속했다.
에를란데르 총리가 이런 소통을 추진한 이유는 성장과 복지를 조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그가 취임할 때 국가의 최대 과제는 경제성장이었다. 그는 재계와 노동계 간의 타협과 협조가 없으면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우리는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함께 성장할 것이다”라고 외쳤다. 더 나아가 “성장 없이 사회민주주의 없고, 성장 없이 복지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복지는 특정 정당의 전유물이 아니다’는 신념 아래 그는 스웨덴 복지의 틀을 만들 때 우파인 중앙당의 협력을 이끌어 냈다. 스웨덴 복지체제는 좌우가 상호 협력해서 만든 것이다.
청빈(淸貧)했던 에를란데르 총리는 퇴임했을 때, 돌아갈 집이 없었다. 이에 사민당은 봄메쉬빅(Bommersvik) 지역에 소박한 ‘에를란데르 빌리지’라는 집을 지어 주었다. 에를란데르는 이곳에서 사민당 청년들을 교육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이곳은 현재 사민당 청년위원회 교육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스웨덴 사례는 한 사회가 화합과 통합으로 가기 위해서는 국정운영 최고책임자가 행하는 소통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직후 원칙과 신뢰, 소통과 통합을 강조했다. 하지만 집권 이후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원칙과 신뢰는 온데간데없고 불통과 교만만 남았다.
소통정치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국가 대개조(國家大改造)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런 엄청난 과제는 대통령 혼자 애쓴다고 달성할 수는 없다. 여야(與野)가 함께 협력체제를 만들어야만 가능하다.
최근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여야 원내지도부와 청와대에서 만났다.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가 국정과제를 두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한 것은 새로운 소통정치의 시작으로 본다. 이런 소통정치가 유지되고 성숙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은 무엇보다 “국회와 야당을 존중하겠다”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더불어 대통령이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다 하려는 만기친람식(萬機親覽式) 리더십에서 벗어나 대선에서 약속한 대로 총리와 장관에게 실질적인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책임총리제와 책임장관제를 실시해야 한다.
야당도 투쟁만 먹고살지 말고 대안(代案)을 갖고 움직여야 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넷째, 한국형 정치박람회를 개최할 필요가 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도 5년 전부터 스웨덴을 벤치마킹해서 정치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우리도 8월 초 첫째 주 여름휴가 기간 중 제주도와 같은 휴양지에서 정치박람회를 개최하는 것이 어떨까. 정당들이 모여 함께 정치박람회를 준비하고 국회 의석을 갖고 있는 모든 정당에 동등하게 정치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면 새로운 화합정치의 장이 열릴 것이다.
또한 각 정당이 사회적 현안이 되는 이슈들에 대한 입장을 상세하게 밝히고, ‘특정 정당의 날’에 행하는 당 대표의 정치연설을 국민들이 현장에서 직접 듣고 이것이 전국에 생중계되는 장이 마련되면 좋을 것 같다. 시민단체, 이익집단, 지방자치협의회 등 각종 단체들도 다양한 세미나, 인터뷰,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알리고 홍보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이는 국민들의 정치지식을 높이고 정당 간 차별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정치권이 끊임없이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들이 주저 없이 정치박람회에 참여하면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박람회가 허황된 담론(談論) 논쟁의 장이 아니라 국민들이 체감(體感) 할 수 있는 ‘생활정치형 이슈’에 집중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는 정치권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 정치에서도 합의정치의 시동이 걸렸으면 한다.
스웨덴, 투표율 80%에 달해
전통적으로 전국 선거 이후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선의 투표율은 평균 30%대로 지극히 낮은 수준이다. 이런 저조한 투표율은 대의(代議)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것이다.
스웨덴의 경우, 의무투표제를 채택하고 있지는 않지만 투표율이 80%대에 이르고 있다. 국민들이 정치박람회에 적극 참여하는 것과 같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투표하기 때문이다.
14살짜리 소년에게 왜 정치박람회에 참여했냐고 묻자 “정치가 좋기 때문이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치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 자세가 스웨덴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인 것 같다.
이번 스웨덴 정치박람회를 관찰하고 참여하면서 내린 결론은 명쾌하다. 민주주의는 만드는 것 못지않게 지키고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정치도 여야 정치권이 함께 모여 우리 사회가 어떤 미래를 만나야 할지 진지하게 논의하고 협의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형 정치박람회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김형준 /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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