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장
제 2 장 심판
(대 지)
一. 심판의 원리(1-16)
1. 심판의 보편성(1-5)
2. 행위에 의해 심판 받음(6-11)
3. 심판의 규범(12-16)
二. 유대인의 죄(17-24)
三.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25-29)
(본문강해)
一. 심판의 원리(1-16)
1. 심판의 보편성(1-5)
.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사람들이 남의 잘못을 판단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결과가 된다.
판단 남을 정죄함을 가리킨다. 이 말씀은 유대인에게나 모든 이방 사람에게나 다 같이 해당되는 일반적 원리이다. 교만하고 외식하는 종교가들은 성경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자기도 곧 그와 같은 일을 행한다. 이것은 자기가 자기를 정죄한 것이 되어 아무 핑계도 할 수 없다.
핑계치 못할 것 말로써 자기 죄에 대한 정당성을 변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남을 정죄하는 데만 이용하면 안 된다. 그 말씀을 통하여 자기의 잘못을 찾아서 회개하고 자기가 바로 서는 자가 복 받는다.
. 2: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 남을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판단은 진리대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라고 너그럽게 보아주시는 것이 아니고, 이방인이라고 더 가혹하게 정죄하시는 것도 아니다. 종교적 특권을 가진 자라도 범죄하면 진리대로 정죄를 받고 심판을 받는다.
진리대로 성경말씀대로, 성경에 의하여 심판을 받는다는 뜻이다. 또 하나님의 공의대로 심판 받는다는 뜻도 있다.
. 2: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남을 판단하고 자기도 같은 일을 행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이 범죄한 것을 판단하고 정죄하면서 자기가 같은 죄를 범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시지 않고 그 행위가 진리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에 따라 판단하신다. 진리에 어긋나는 것은 누구를 막론하고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사람이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많이 있으나 당장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그 사람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그 기간이 다 차도록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하나님께서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으로 우리가 회개하기를 하루가 천년같이 기다리는 줄 알고 즉시 회개하여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없어서 하나님의 징계가 없는 줄로 생각하면 교만한 것이요,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가 된다.
.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신자가 진리와 양심을 거역해도 당장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가 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하여 더욱 담대하여 자기 고집대로 나아가며 회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점점 쌓는 일이며 마침내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이 나타날 때에는 무서운 진노의 형벌이 쏟아져 내려 올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에 자기가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 양심에 가책되는 것을 찾아 즉시 회개하고 말씀대로 바로 순종해야 하나님의 진노를 면할 수 있다. 성도가 회개하고 진리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 개인 뿐 아니라 그 사회, 국가, 그 시대 사람 전체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져 내려오게 된다.
2. 행위에 의한 심판을 받음(6-11)
.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징악상선(懲惡賞善)이 하나님의 일반적인 원리이기 때문이다.
. 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하는 것을 구하는 방법은 선을 행하는 것이다. 선을 행하려면 참는 것이 필요하다. 인내가 없이는 선을 행할 수가 없다. 참으면서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영생으로 갚아주신다. 참된 선은 선하신 하나님을 찾고 그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려면 잘 참아야 한다. 참지 못하면 선을 행하지 못하고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없다. 우리 성도가 참는 것을 배워 나가야 한다. 참으면 믿는 일을 할 수 있고 참지 못하면 믿는 일을 하지 못한다. 믿음과 참음은 불가분리의 관계가 있다. 성도가 인내함으로써 연단이 이루어지고 믿음이 자나난다. 참고 견디지 못하면 믿음은 형식적인 것이 되고 열매가 없다(약 1:3-4 참조).
영생으로 하시고 영생은 장차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는 것과 또 자기 영이 날마다 새 생명으로 살아나가는 것을 말한다. 성도가 참고 견디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순종해야 날마다 새 생명으로 살아나게 된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않을 것을 선물로 주신다.
. 2: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진리를 좇지 않고 불의를 쫓는 자는 반드시 당을 지으려고 한다. 죄는 전염성이 있고 범죄자는 동조자를 구하기 때문이다. 교회나 노회나 총회에서 당을 짓고 당파적으로 움직이는 자들은 벌써 진리를 떠난 자요 사단의 인도를 받아 불의의 길을 걷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이 주장하는 단체는 불의의 집단이요 사단의 회이다. 이러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진노와 분을 쏟으실 것이다. 당을 짓는 자들은 이 사람 저 사람을 격동시키고 악한 말로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악평하여 불평과 불만을 품게 하고, 당을 지어 공동으로 죄를 짓는다. 한 사람이 주동이 되어 선동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 일에 동조하여 악한 세력을 구성한다. 그들은 진리를 따라가며 진리를 세워나가는 일은 하지 않고 권세를 잡아 자기들의 유익을 도모하고 자기들의 고집과 의견을 세워나가는 데만 급급하므로 심령이 어두워지고 부정과 불의한 일을 거침없이 하게 된다(롬 13:12-14 참조). 이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노와 분으로 갚아서 심판하신다. 요한계시록 16:13에 개구리같이 더러운 영이 나온다고 말했다. 개구리 같은 영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개구리처럼 떠들며 남을 훼방하고 악평하여 격동시키고 작당을 하여 점점 더 악을 행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당파에 가담하는 것은 악에 가담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33에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당파를 만들지 말고 악한 일에 가담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들도 잘못된 아이들과 어울려 놀다가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여자들도 여럿이 모여 계를 하거나 놀러 다니다가 탈선하여 가정이 파탄되고 신세를 망치는 사람이 많다.
. 2: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악을 행하는 각 사람 악을 행하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이 하나님께 벌을 받아 환난과 곤고가 있다.
영에게 영의 원어 (프쉬케)는 혼 혹은 목숨의 뜻인데 여기에서는 속 사람을 가리킨다. 악을 행하는 자는 외부적으로만 환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속 사람 즉 내적 심령의 고통이 먼저 오게 된다. 신자도 악을 행하면 흑암에 빠져 마음이 답답하고 두려우며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다. 다윗이 범죄한 다음에 하나님의 손이 그를 주야로 내리누르고 진액이 다 마르고 뼈가 쇠할 만큼 곤고와 환난을 당했다(시 32:3-4).
환난 죄 값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난인데 사람이 피할 수가 없다.
아모스 5:19에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라고 했다.
곤고 하나님과 말씀 안에서 살면 평안과 안식이 있고, 하나님의 명하신 위치에서 떠나면 곤고와 피곤이 닥쳐온다.
전도서 1:8에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 도다"라고 했다. 이것은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만물이 악에게 이용되었으므로 피곤하다는 것이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유대인은 하나님을 먼저 알고 진리를 먼저 받았기 때문에 악을 행하면 환난과 곤고와 징벌도 먼저 받는다(1:16 해석 참조). 그러나 헬라인 즉 이방인들은 하나님도 모르고 성경 말씀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악을 행했으므로 유대인보다 나중에, 또 경(輕)하게 당할 것이다.
누가복음 12:47-48에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는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하셨다. 다 같이 매 맞을 일을 하였을지라도 알면서 행한 자는 먼저 맞고 많이 맞게 된다.
. 2: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선을 행할 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이 하나님의 상급으로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받는다는 것이다.
선 도덕적, 율법적 선을 말한다. 궁극적으로는 복음의 선 즉 신앙적 의와 선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그 선의 결과가 영광, 존귀, 평안이기 때문이다.
영광과 존귀와 평강 영생의 상태이다. 믿는 사람이 선을 행한 것은 말씀을 순종하여 믿음을 쓴 결과이므로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와 평강으로 갚아주신다. 사람이 선을 행하면 그 마음이 평안하고 즐겁고 그 인격이 존귀해지고 영광스럽게 된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9절 해석 참조)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알고 순종한 자는 하나님의 축복도 먼저 받고 또 많이 받게 된다. 그러므로 진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진리를 알고 있어야 그대로 행할 수 있고 진리를 순종한 것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 2: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라고 해서 더 관대히 보아주는 것이 아니고 헬라인이라도 해서 더 관대히 보아주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하나님은 민족, 유무식, 빈부의 차별이 없이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
3. 심판의 규범(12-16)
. 2: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은 진리대로 심판하시므로 율법이 있는 유대인이나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나 범죄하면 다 같이 망한다는 뜻이다.
.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유대인들이 안식일마다 회당에 모여 율법 책을 낭독하는 것을 들었으나 행하지 않았다.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의인이 되지 못하고 행하는 자라야 의인이 된다(약 1:25 참조).
. 2: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율법 없는 이방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주신 본성으로 율법을 행하면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의 율법이 된다.
본성 생래(生來)적으로 받은 본성인데 이성과 양심을 가리킨다. 여기 율법은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아담이 범죄한 후에는 사람이 본성으로 율법을 완전히 행할 수 없다. 범죄하기 전의 아담은 본성으로 율법을 다 행할 수 있었으나 범죄한 후에는 사람이 어두워졌고 우준 해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율법대로 다 행할 수가 없게 되었다.
. 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양심이 증거가 되어 이 구절은 사람이 양심을 지켜서 구원받는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우리가 옳게 살지 못한 것을 우리의 양심이 증거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율법대로 살지 못한 것에 대해 양심이 증거하기 때문에 핑계할 수 없다는 말이다. 양심을 지켜서 구원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나면서부터 영혼이 죽고 또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양심을 지켜도 죽은 영혼이 살아날 수 없고 원죄를 사함 받을 수가 없다. 사죄와 중생(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양심대로 일생을 살았다고 해도 원죄가 있고 또 하나님의 요구죄가 있다. 요구죄란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에 미달되는 것을 말한다. 공자와 같은 성인이라도 원죄가 있고 하나님의 원죄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미달한 것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우상 섬긴 것, 주일 지키지 않는 것 등등이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믿지 않으면 죄사함을 받지 못하고 그 영혼이 살아나지 못한다. 세대주의자들은 인류의 구원 역사(歷史)를 일곱 세대로 나눈다. ① 창조주부터 타락까지 에덴 동산에서 살던 시대를 무죄시대, ② 타락부터 노아 홍수까지를 양심을 지켜서 구원받는 시대라 하여 양심시대, ③ 노아 홍수에서 아브라함까지를 인정(人政)시대, ④ 아브라함에서 시내산까지를 약속시대, ⑤ 시내산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까지를 율법시대, ⑥ 십자가부터 재림까지를 은혜시대, ⑦ 재림 후 천년간을 천년시대라고 한다. 세대주의자들이 이와 같이 세대를 구분하면서 시대별로 구원의 방편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창세기 3:15에 벌써 첫 복음을 주어서 여인의 후손 되는 그리스도가 와서 뱀(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여 인류를 구속해 줄 것을 약속했으므로 그 때(아담 때)부터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담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이 구원을 받게 되며 그 때부터 계속적인 은혜시대라고 볼 수 있다. 양심을 지켜서 구원받는 시대가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또 양심을 지켜서 구원받은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어느 시대에나 오직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 아브라함도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고, 모세에게 주신 율법도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방편으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이 행위 계약이 아니고 은혜 계약에 속한다. 아브라함 때나 모세 때나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을 수 없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은혜시대인 것이다.
. 2: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이다. 그날에는 우리 속에 은밀히 숨겨진 죄가 벌거벗은 것과 같이 낱낱이 다 드러나게 된다. 지금은 사람을 속이면서 죄 지을 수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는 비디오 테이프를 상영하는 것과 같이 각자의 죄가 다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미리 회개하고 바로 서는 자가 복이 있다. 아무리 크고 은밀한 죄를 지었다고 해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다 용서해 주신다.
二. 유대인의 죄(17-24)
. 2:17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본 절 이하에서부터 본 장 끝까지는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율법을 자랑하면서 자기들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이를 어기어 범죄하고 있는 사실을 책망하는 말씀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고 오늘날 그리스도 교인들 중에 하나님과 성경(진리)을 자랑하면서 그 성경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다. 그 이유는 28-29에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6:16에 이방인으로서 예수를 믿는 사람을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자랑하며 자기의 우월감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을 자랑하는 자가 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 같으나 마음의 깊은 속에는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를 나타내려는 악한 일이다.
. 2: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유대인이나 기독신자에게는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
. 2:19-20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유대인이나 기독신자들은 진리의 지식과 규모를 가진 자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어두움에 있지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빛 가운데 있으므로 하나님에 관해서 말해 줄 수 있고 진리에 대해서 말 해 줄 수 있다. 또 어리석은 자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느 정도 깨우쳐 주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에게 옳은 것을 가르치기도 한다.
. 2: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서 자기 자신을 가르치지 않는 것을 책망한다. 타훈기암(他訓己暗)이라는 말이 있다. 남은 가르치면서 자기는 어두움에 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서 자기를 가르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두움 가운데 있는 불쌍한 사람이다. 그 사람은 남은 구원하지만 자기는 버림받을 사람이다.
고린도전서 9:27에 사도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했다. 이것은 바울이 남은 가르치고 자기를 가르치지 못하게 되면 하나님께 버림이 될 것을 두려워하여 한 말이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를 가르치고 진리대로 힘써 복종하는 일을 하지 아니하면 남을 가르치고도 자기는 버림을 당한다. 성도가 자기 자신을 먼저 가르치고 그 다음에 남을 가르쳐야 한다.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종교가들 가운데 실제로 남의 것을 훔치거나 사기 횡령하는 자들도 있다. 또 일하지 않고 먹으려 하는 것은 도적의 심보이다.
데살로니가후서 3:10에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다. 또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다(말3:8). 십일조 드릴 때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온전한 십일조는 십분의 일만 하나님의 것이 아니요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 줄 알아야 한다(시24:1). 자기는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것을 사용해야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다.
누가복음 16:9에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했는데 친구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불의의 재물은 세상 재물을 가리킨다. 세상 재물을 불의의 재물이라고 한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자기 것으로 삼고 자기 위해 사용하느라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이 곧 도적질한 것이다. 또 성도가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날(日)도적이다. 엿새 동안은 사람이 일하는 날이나 주일은 하나님의 날이요 주의 날이요 안식일이다. 그러므로 이 날에 세상의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날을 도적질하는 날 도적이 된다. 길선주 목사님께서는 토요일에는 결혼 주례를 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토요일에 결혼하면 신랑 신부가 주일을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남의 권리나 남의 하인을 빼앗는 것도 도적이다. 성경말씀을 가지고 자기 이(利)를 도모하는 자와 성경진리에 맞지 않는 말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자들이다.
예레미야 23:30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자들은 입으로는 도적질 말라고 반포하면서 자기는 도적질하는 자들이다.
. 2: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고 말하는 종교가들이 간음한다는 것이다. 간음은 여러 가지가 있다. ① 육체적 간음, ②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것(마5:28), ③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것(마16:4), ④ 세상과 벗되는 것(약4:4)이 간음하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기독신자들도 이러한 간음을 많이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다(롬2:24 참조).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신사(神祠)는 우상을 섬기는 집이다. 우상은,
①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는 것,
②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③ 하나님의 재배보다 더 지배를 받는 것,
④ 탐심이다(엡5:5).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것을 탐심으로 취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취하는 것이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또 신앙을 양보하고 번 돈과 평안과 성공은 다 우상의 제물이 되고 신사물건을 도적질한 것이다. 유대인이 자신은 이렇게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면서도 우상을 가증히 여긴다고 스스로 믿고 있으니 어리석은 자요 소경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도 이런 자가 많다.
. 2: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하나님과 율법을 자랑하는 자가 율법을 범하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자랑하는 일이 헛되고 가증한 일이 되는 것이다.
. 2: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이 구절의 말씀은 이사야 52:5절을 인용한 말씀인데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죄를 많이 범하면 이방인들에게 욕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대인에게만 이 욕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도 이 욕이 돌아간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범죄 사실이 세상에 나타날 때에는 하나님께 욕이 돌아간다. 상기한 여러 죄(21-22)를 범할 때는 더욱 큰 욕이 하나님께 돌아간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우리의 못된 성질과 물질문제에 대하여 바로 하지 못한 것과 서로 시기하고 싸우고 다투고 당파를 짓고 갈라서는 일들은 다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는 일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삼가 조심하고 인내하고 절제하여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이름에 욕이 돌아가지 않도록 해야 하나님께 복을 받고 하나님이 그 가운데에 같이 계신다.
三.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25-29)
. 2:25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할례는 이스라엘인들이 남아(男兒)를 출생한 후 팔일 만에 오늘날 포경수술과 같이 양피(陽皮:성기의 표피)의 끝을 베어버리는 종교의식이다. 할례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① 정욕을 제거한다(렘4:4 참조). ② 하나님의 백성된 표이다(창17:14). ③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한다(창 17:13). 유대인들은 육신의 할례만 행하고 할례의 참 뜻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할례를 받은 자가 정욕대로 살고 율법을 범하면 할례가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무할례가 되느니라 할례 받지 않은 자와 같다는 뜻이다.
. 2: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것이 아니냐
무할례자는 할례 받지 않은 사람 즉 이방인을 가리킨다.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할례 받은 자와 같이 여긴다는 뜻이다. 종교적 의식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도 율법을 지키면 의식에 참여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외부적인 의문과 제도에 참여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그 의식의 뜻을 깨달아 그 신령한 면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 2: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
율법의 의문과 할례를 가진 유대인들이 율법을 범하면 할례 없는 이방인들이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종교적 의식과 세례를 받고도 범죄하면 불신자(이방인)들이 판단하게 될 것이다.
. 2:2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표면적 유대인 아브라함의 자손을 가리킨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요, 아브라함의 신앙을 가진 자가 참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다(갈 3:6-7, 29 참조).
표면적 육신의 할례 육신으로 할례를 받았으나 할례의 참뜻에서 떠난 자는 진정한 할례를 받았다고 할 수 없다. 예컨대 콜라 병에 코카콜라 상표는 붙어 있으나 그 병 속에 물이 들어 있는 것과 같다.
.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이면적 유대인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별 없이 아브라함의 신앙을 가진 자들이 이면적 유대인 즉 참 이스라엘이다(롬 4:12-16; 갈 3:6-7, 29).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할례의 참 뜻은 마음가죽(정욕)을 베어 버리는 것과 영적으로 하나님께 속하여 신령한 생활을 하는데 있다(렘 4:4). 유대인들은 신령한 면을 무시하고, 육적 할례만 가지고 자랑했다.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는 참된 도는 의문, 제도, 의식에 있지 않고 마음으로 죄를 회개하고, 그 영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말씀을 순종해 나가는데 있다. 이러한 신자는 사람에게 칭찬을 받거나 판단을 받는 일을 매우 적은 일로 여기고(고전 4:3-5),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칭찬 받는 것을 매우 귀중히 여겨 하나님께만 충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