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 정채봉
쫓기는 듯이 살고 있는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늘 바쁜 걸음을 천천히 걷게 하시며
추녀 끝의 풍경 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
거미의 그물 짜는 마무리도 지켜보게 하소서
꾹다문 입술 위에
어린 날에 불렀던 동요를 얹어 주시고
굳어 있는 얼굴에는
소슬바람에도 어우러지는
풀밭같은 부드러움을 허락하소서
책 한 구절이 좋아
한참을 하늘을 우러르게 하시고
차 한잔에도 혀의 오랜 사색을 허락하소서
돌 틈에서 피어난
민들레꽃 한 송이에도 마음이 가게 하시고
기왓장의 이끼 한 낱에서도 배움을 얻게 하소서
<지은 이>
정채봉(丁埰琫, 1946~2001), 전남 순천 출생으로서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서 동화부문
'꽃다발'로 등단하고, 월간 샘터 편집부 기자와 편집 이사를 역임
하였다.
한국잡지언론문화상과 새싹문학상 그리고 소천아동문학상 등을
수상受賞하다. 주요 작품으로 '물에서 나온 새', '오세암' 등이 있고
간결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는 '생각하는 동화' 시리즈를 샘터에
연재하여, 우리나라에서 성인 동화라는 새 장르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다음백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