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국의 시 세계 詩의 社會性 혹은 逆說의 函數 金 松 培 (시인. 한국문인협회 시분과회장) 1. 한 ‘詩翁’의 觀照的 언어 현대시의 구도는 대체로 시인의 삶의 궤적(軌跡)에서 재생하는 이미지가 주축을 이루면서 현실과의 대칭적 의미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보편적인 시법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매슈 아놀드의 언지(言旨)대로 시는 인생의 비평이라는 기능을 살린다면 현실적 갈등과 고뇌에 대한 비평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통설(通說)이다. 우리 시인들이 자아(自我)의 반추(反芻)로 자신만의 인식세계에 몰입하여 성찰하고 나아가서는 존재의 문제까지 해법을 찾는 어쩌면 인본주의의 성취를 구가(謳歌)하는 평범성을 배제하고 시의 사회성을 주제로 설정하는 경우를 자주 대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看過)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 장종국 시인이 상재하는 제5시집『 』을 일별하면서 우선 시의 사회성이라는 명제를 떠올리는 것은 그가 소재와 주제 또는 시법의 구도에서 언어에 이르기까지 좀 특이한 현상을 주목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것이 설령 개인의 취향이나 개성과 상관성이 있다고 하더러도 보편적인 서정적 화법을 일탈(逸脫)하고 그가 간직한 특유의 어법으로 작품을 구조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일상개념의 작품들보다 새로운 정감을 맛보게 하는 장종국 시인만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우선 그는 시적 상황 설정을 그가 거주하고 있는 파주를 중심으로 ‘임진나루터’와 ‘초평도’, ‘도라산’, ‘경의선’, ‘화석정’, ‘곡산역’, ‘문산 오일장’ 등 주변의 정황에서 취택된 소재를 등장시켜서 사회적인 담론을 창출하는 특징도 있다. 그가 ‘머릿말’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임진강변에 두꺼비집 짓고 산지 어언지간 삼십 년 되었다. 지금은 전설처럼 이야기로 남아있는 나룻배는 없고 임진나루터 좌망실에서 시어를 조탁하며 야옹으로 촌음을 불살라 살고 있’는 그의 정서나 사유(思惟)의 지향점은 그의 연륜과 더불어 사물과 현실에 대한 관조적 언어의 조율이라는 단정이 덧붙여진다. 아우가 중국에서 구입 해다 준 짝퉁만년필 몇 년 째 긁고 있다 이름이 멋스런 프랑스문자 새겨진 금장 띠 두른 검정몽블랑만년필 뚜껑이 낡아 도색이 벗겨져 눈 녹은 알프스 산정을 닮았다 그 놈의 동맥에서 검은 피가 흐른다 검정도둑고양이 눈동자처럼 밤 사냥을 즐기는 야행성이며 여백의 일기장에 검은 피로 발톱을 세워 긁적이며 상처를 낸다 날카롭게 세운 발톱이 무서워 떨던 빛바랜 종이마저 이젠 겁이 없다 잉크를 채우는 고무튜브는 동맥경화증에 시달려 흐물흐물 거리고 금촉은 오래신은 신발 뒤축 닮아 삐딱하게 누웠다 검은 핏자국의 족적은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野翁의 요로를 닮았다 갯벌지렁이처럼 꿈길 만들고 밤바다 찾은 별똥별과 야담을 즐기며 뭉뚝한 촉수는 게으른 詩翁의 시에 바퀴를 달아주고 길을 남긴다 늦바람처럼 찾아오는 잠의 무르팍을 꼬집어 주기도 하며 밤마다 동맥으로 뿜어내는 검은 피의 잘못된 흐름을 지우느라 詩翁의 쓰레기통은 늘 풍만하다 만년필촉이 뭉뚝해진 것만큼 시는 길어지고 길어진 만큼 생은 짧아졌다 장종국 시인은 작품「궤적(軌跡)」에서 보는 바와 같이 스스로를 ‘詩翁’ 또는 ‘野翁’으로 지칭하고 있다. 이처럼 ‘시옹’이 관조하는 중심축에는 ‘만년필촉이 뭉뚝해진 것만큼 시는 길어지고 / 길어진 만큼 생은 짧아졌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어서 우리들 공감의 영역은 확산되고 있다. 이것이 그의 인생에 대한 ‘궤적’이다. 그러나 한 ‘시옹’이 정립한 가치관에 도달하기 까지는 ‘밤마다 동맥으로 뿜어내는 검은 피의 잘못된 흐름을 지우느라’ 그의 ‘쓰레기통은 늘 풍만하다’는 어조(語調)는 그의 성숙된 연륜과 무관하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의 일상은 시를 쓰는 일이다. 그는 ‘뒤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시를 쓰(「뒤틀거리며 시를 쓰네」중에서)’지만 간혹 ‘찟긴 통로에 홀씨로 떠돌던 사랑의 시어가 / 맨드라미 홀씨로 우르르 숨(「시인이 찟는 것은」중에서)’기도 하고 ‘나의 원고지에 시어가 되지 못한 낱말 몇 자 적혀있고 / 나머지 팔 활은 빈 공란인데 으뜸글, 초장, 중장, 종장이 / 되기도 하고, 빈 공간에 시가 채워지지 않으면 휴지가 될 / 확 율이 높은 원고지가 수북하게 어질러 있(「나의 안전거리에는 빈 의자 놓여있다」중에서)’기도 한다. 고단한 삶의 편린을 유서로, 낙엽에 쓰고 있는데 청둥오리 한 무리가 강에 몸을 던진다 기절했던 강이 놀라 빗살무늬 그리고 나의 유서는 고쳐 쓴 시의 구겨진 원고지처럼 강물에 던져진다 이 작품「고쳐 쓴 시의 원고지처럼」일부에서와 같이 그는 ‘고단한 삶의 편린’을 관조적 언어로 ‘유서’처럼 시를 쓰고 있다. 그러나 그 ‘유서’는 ‘고쳐 쓴 시의 구겨진 원고’일 뿐이다. 장종국 시인의 내면정서가 가득 풍기는 시와 인생의 함수관계를 명징(明澄)하게 적시하고 있다. 이것이 그가 관망하면서 분출하는 만년(晩年)의 시심이며 향기라고 할 수 있다. 2. ‘坐忘室’의 자화상과 진실 장종국 시인이 기거하는 방이 ‘좌망실’이다. 그는 ‘坐忘室은 詩翁의 풍차가 쉬고 있는 방이라네(「라만차풍차와 똑딱이」중에서)’라고 그의 ‘좌망실’을 일러주고 있다. 그는 이 ‘좌망실’에서 시를 쓰고 시를 찟는 일을 반복한다. 그것이 그가 인생을 살고인생을 잊어가는 유일한 공간이다. 여기에서 그는 사유의 벌판을 유영하면서 자아를 재발견하고 존재의 의미를 탐색한다. ‘좌망실똑때기’ 소리를 들으면서 세상을 풍자하고 사랑을 간구하면서 자화상을 그려나간다. 가물더위에 수국을 감싸고 있는 화분의 흙은 판독하지 못한 고분의 상형문자로 굳어 있고 빼앗긴 잠, 버스럭거리며 하늘만 쳐다보는 나, 메마르기 마찬가지네 이때, 먼발치 마을회관 앞 누워있는 가로등 불빛 기웃거리는 유리창에 청개구리가 퍼덕이네 창밖, 포도나무 잎사귀 끼리 막춤 추고 빗소리가 유리창을 깨뜨리는 소리 버력이 더위 먹은 구름을 야단치고 있는 소리 놀란 개들이 허공보고 짖어대는 소리 빈 장독의 공명음 콩 튀는 소리, 마당을 점령 하네 유리창이 깨지며 구원을 청하는 소리에 멍해진 나, 이대로 들판에 뛰어나가 흠뻑 젖은 수양버들로 서 있다 빗물이 가슴팍을 적시면 나그네 새 되어 날개가 지칠 때까지 강물과 함께 떠내려가야지 --「빗소리가 유리창을 깨뜨리고」전문 그는 잡다한 세상살이에서 ‘유리창이 깨지며 구원을 청하는 소리에 멍해진’ 채 ‘들판에 뛰어나가 흠뻑 젖은 수양버들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그려나가는 자화상의 내면에는 그가 순응하고 수용하는 순리(順理)의 미학이 잠재되어 있다. 그것은 ‘빗물이 가슴팍을 적시면 나그네 새 되어 / 날개가 지칠 때까지 강물과 함께 떠내려가야지’라는 어조에서 그의 관조의식이 확연하게 표징되고 있어서 그가 여망하는 정서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는 다시 ‘비움’의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해서 더욱 세밀한 자화상을 구현하는 의식의 전환이 엿보이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에게 내재된 진실이 승화하는 여과장치기도 하다. 다음과 같이 현현되고 있다. 가쁜 숨 내쉬는데 숲속에서 까르르 웃는 소리 붉은 새때 인기척에 놀라 날개소리 푸드덕푸드덕 낙엽 헤집는다 새들이, 나를 등에 태워 비워둔 하늘로 날고 있다 산 아래 마을이 점점 점으로 보인다 헤아릴 수 없이 부스러지는 날개소리 감악산 품속 포근하다 --「붉은 숲이 익어 술이 되었어라」중에서 강물은 흐르는 게 아니라 비어있기에 채워지는 것 비어있는 것만큼 채워지기에 흐르는 것뿐이라 바다가 출렁이는 것은 늘 비어있기 때문이라 세월 또한 비어있기에 흐르는 것이라 나의 마음은 늘 비어있기에 사랑을 기다림이라 --「강은 늘 비어있기에」전문 장종국 시인은 이처럼 ‘새들이, 나를 / 등에 태워 비워둔 하늘로 날고 있다’ 혹은 ‘나의 마음은 늘 비어있기에 / 사랑을 기다림이라’라는 공허(空虛)의식에의 경도(傾倒)는 그가 철학으로 승화한 시적 진실이다. 일찍이 P.B. 셸 리가 말한 바와 같이 시는 시인의 최상의 마음에서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며 그것이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의미라는 논지를 빌리지 않더라도 그가 ‘영원한 진리’로 정립하는 ‘비움’의 미덕은 형이상적(形而上的 )인 최상의 인식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그가 형상화하려는 시적 원류로 침잠(沈潛)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오늘도 ‘좌망실’에 홀로 앉아서 무엇을 잊을 것인가, 또 무엇을 찾을 것인가를 연구하고 있다. 더러는 ‘술 한 잔에 시 한 수 읊고 웃고 나면 기분 좋아지고 / 건강에 좋고 세상에 모든 것을 사랑하게(「酒色감별사」중에서)’ 되거나 ‘앞으로 살아갈 남은 날에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 성경 말 아니어도 / 샛강이 흐르다 만든 모래섬 다독거려 / 한번도 핀 적 없는 달맞이꽃씨 부려 볼(「이 웬쑤야」중에서)’ 시상으로 자화상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3. ‘치유 불능’의 사회상 鳥瞰 이러한 와중(渦中)에서도 장종국 시인은 예리한 감성과 투철한 자의식으로 이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시의 사회성에 대한 실천이다. 그의 지적 혜안(慧眼)에는 ‘치유 불능’의 ‘찟긴’ 산야가 있고 ‘혀 차는 경노석’과 ‘진열장 속 각인된 유리웃음’과 ‘철거민의 목숨 건 절규’와 ‘노점상 할머니의 귀뿌리’를 투영하고 있다. 이러한 시의 사회성은 고립된 상태에서 살아갈 수 없는 인간들의 교류에 대한 불확실성이나 모순을 비판하려는 시인들의 욕구에서 출발한다. 또한 시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는 시인의 지적사유에서 주제를 도출하게 되고 불합리나 오류를 정정(訂正)하려는 시인의 정신을 반영하게 된다. 그의 시야에는 모두가 찢겨져 있고 모두가 삐딱하게 서 있다. ‘찢긴 강물은 치유 가능 꽃 피고 / 찢긴 하늘로 사라진 기러기 꿈을 펼치고 / 찢긴 땅과 산은 치유 불능(「찢긴 상처는 아무는가」중에서)’이며 ‘가슴을 찟은 말 상처 남기고 / 마음을 찢은 말 아픔 남기네(「가슴을 찢는 말」중에서)’로 현실적 사회상에 대한 질타(叱咤)가 이어진다. 그리고 ‘삼천리 절반 일천오백리에 철심을 심고 / 삐딱한 반도에 / 삐딱한 탓만 난무하고 있지(「삐딱한 것이 어디 한 둘이랴」중에서)’라거나 ‘괴물처럼 삐딱하게 서 있는 가로등이 밝아지며 / 초록의 나무로 보이며 따뜻한 체온이 감염된다(「고장나 녹슨 가로등이 서 있는 이유」중에서)’는 어조로 사회적 갈등구조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무에 그리 바쁜 가 등 돌린 사람아 서울역 지하도 에스카레이타에 등만 두둥실 떠돌고 무에 그리 바쁜 가 지하열차 타는데 등 떠미는 사람아 어디서 본 직한 燈 불 꺼진 등 뒤에서 귓불에 스치는 한풍 동전 한 닢 주이소 서울역 지하도엔 불 꺼진 燈 등 만 보이네 --「동전 한 닢 주이소」중에서 얼굴 가린 길 끝없이 뻗어있고 얼굴 감춘 길 한없이 줄서있다 황토색 얼굴 부끄럽다고 검은 색 얼굴로 뒤집어쓰고 저지른 죄 하도 많아 덮어씌웠나 부끄러운 짓 숨기려 덮어씌웠나 비오면 찔꺽거리며 붙잡는 발걸음 흙먼지 무서워 검정가면 씌웠나 부끄럽게 지은 죄 털털 털며 되는 일 무슨 죄 무서워 먼지마저 숨기려나 검은 길에서 흘리는 눈물 어둠에 감추고 고단한 삶 쉴 곳 없고 외로운 자 벗이 없다 덥고 가린 비정한 포장도로 어디가 끝인가 우걱지걱 걷는 누렁 소 워낭소리 그립다 --「포장도로」전문 그렇다. 그는 ‘서울역 지하도’의 풍경에서 비감(悲感)의 현실을 형상화하고 ‘저지른 죄’와 ‘부끄러운 짓’을 가리거나 덮어씌운 ‘포장도로’에서 비정(非情)의 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동전 한 닢’으로 ‘가슴과 등이 따뜻하게 덥혀지’기를 기원하고 있으며 ‘고단한 삶 쉴 곳 없고 외로운 자 벗이 없’는 매정한 사회에서 ‘우걱지걱 걷는 누렁소 워낭소리’를 그리워하면서 그 해법을 탐색하고 있다. 이처럼 모순된 현실감각이 그의 내면에 침잠된 시인의 정서와 충돌하면 그 갈등과 고뇌는 시적인 진실을 그에게 강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시인도 일반 사회인으로서의 공통된 삶을 영위해야 하는 실재(實在)상황에서 이러한 소재가 그의 예민한 상상력과 창의력에 의해서 능동성으로 전환하면서 비평적인 주제를 창출하려는 그의 감응에서 발현된 다양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현대시는 일상생활의 정서생활과 시적 소재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는 I.A. 리처즈의 말을 절대 수긍한다면 시인들이 현실적 사회상을 조감하는 일은 당연한 생활의 언어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장종국 시인이 이러한 비판적(혹은 비평적) 언술로 작품을 형상화하는 것도 일종의 체감(體感)에서 획득한 자아이거나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데 궁극적(窮極的)인 지표를 설정하였다는 전제가 가능해 진다. 왜냐하면, 그가 다섯 권의 시집을 탄생시키기까지 오랜 시간을 통해서 인식하고 성찰하면서 접목된 현실적 모순과 갈등에 대한 조화가 어떤 것인지를 이미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현실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일반 사물에서도 동류의 시적 발상을 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들을 공감의 장으로 흡인(吸引)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다음 작품「기러기는 나무에 둥지 틀지 않는다」전문에서 그의 심연(深淵)을 확인할 수 있다. 임진강갯벌 선회하며 부르는 난해한 창가 초평도 산정을 맴돌다 굿거리장단에 춤추는 음표들이 낙하하며 지문을 음각 한다 긴 남행으로 허기진 날개 벼까락으로 채우고 잊지 못 할 설원의 꿈 임진강변에 아로새긴다 어미나무로부터 수유를 거부당하고 표류중인 갈참나무 낙엽들과 수인사하며 별시계나침판을 판독하며 날던 여행담으로 갈대숲 분분하다 기러기는 갈대숲에서 난해한 음표로 기행문 쓰며 다시 떠날 채비 하느라 나무에 둥지 틀지 않는다 4. 역설적 구도와 풍자의 미학 장종국 시인은 작품 전체를 역설(paradox)적인 구도로 형성하는 특이한 점을 대하게 된다. 작품 소재나 언어의 조합에서 또는 이미지의 투영에서 일반적인 믿음을 뒤집는 실험정신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얼른 보기에는 보편적인 시법과 모순된 것 같으나 실제로 그 내면에는 상당한 진리를 포괄하고 있어서 현대시 창작의 중요한 기교로 자리 잡기도 한다. 가령 그가 ‘언어가 많은 인간은 날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 ‘꽥’ ‘꽥’ 언어를 먹고 마시고 토한다((「‘꽥’」중에서)’는 역설이 주는 교시적(敎示的) 메시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하나의 경종을 제시하고 있다. 3이 때로는 술잔을 던진다 무수한 파편이 별이 되어 너울 일으킨다 추억이 음각된 술잔 속에서 여인3이 싸운다 너울이 때로는 꿈을 부수지러 뺨을 때린다 3이 때로는 술잔을 사위어 마시고 3이 때로는 흐느끼며 술잔에 빠진다 3은 떠도는 노숙자 차림의 강물 된다 이 작품「마음 3」의 구도는 어쩌면 이상(李箱)시인의「烏瞰圖」중에서 ‘詩第一號’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이 따른다. ‘十三人의兒孩’와 ‘여인3’의 유사성과 동질의 어법은 그의 심저(心底)에서 활화산으로 분출한 일종의 절규이며 그것을 자탄(自嘆)하는 현실적 폭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사회적 모순이나 부조리 등을 꼬집는 풍자(satire)적 기법에도 능숙하다. 약간의 비판적 또는 부정적 요소가 가미되지만, 날카롭고 노골적이어서 때로는 독설(毒舌)에 가까울 정도로 비약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암담한 시대상이 다양한 비유와 상징을 통해서 현실 분석과 비평이 교감함으로써 시적 효과를 상승시키고 독자의 감동을 유로(流露)하는 묘미도 살려 나간다. 다음 작품「땅거미와 떡갈나무」전문에서 확인할 수 이다. 땅거미 굴 앞 햇살 한 줌 쉬는데 햇살 비켜선 떡갈나무 이웃끼리 오고 가는 이야기 “너는 왜 하늘 높이 키가 자라지 않니” “나는 나만큼 만 자랄 거야” “나의 하늘은 누구보다 높지” “너는 왜 좁은 굴속에 만 살고 있니” “나도 나만큼 한 굴속이 따듯해” “나의 세상도 누구보다 넓지” 이야기 엿들은 햇살 슬그머니 자리 뜬다 장종국 시인은 다시 이상의 「오감도」‘시제4호’ ‘환자의용태에관한문제’처럼 도식(圖式)을 시로 현현하는 작품도 읽을 수 있는데「4각의사과」에서 그의 실험을 이해할 수 있다. 4각의사과 4각의사과 4각의사과 4각의사과 4각 각 의 의 4각의 도마에서 벗겨진 붉은 껍질 사 사 4각의 성서에서 죄악의 누명 쓰고 과 과 4각의 사진틀 속 동그란 얼굴 웃고 4 4 4각의 빌딩 속에서 즐거운 사라가 각 각 붉은 배암의 허물처럼 옷을 벗는다 의 의 갈릴레오 마지막 진술처럼 그래도 4 사 4과가 씹히는 소리 4각4각 외친다 각 과 4과는 둥글지 않고 거세된 사각형 의 4 사 사과 4각의사과 4각의사과 4각의 사과 4각의사과 이처럼 그가 시도하는 실험정신은 아이러니(irony)나 패러디(parody)에 근접하지만 이 또한 풍자적인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작품들의 특성은 내면계와 외계 혹은 현실과 외관(外觀)의 대조로 비개성적이지만, 순진하게 자신을 폭로하는 기능도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 추구를 선보인 장종국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서 그 자신만이 구가할 수 있는 좀 특수한 어법과 화법을 통해서 진실을 탐색한다는 점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는 20세기 초두에 형성된 모더니즘을 초월하여 ‘인간의 상상에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초현실주의(surrealisme)의 경향과 흡사하다는 것을 묵과(黙過)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장종국 시인이 오랜만에 침묵을 털고 새로운 경향의 독자적(獨自的)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것은 현대시사에서 창의적인 노력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그의 인품과 열성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만년의 ‘詩翁’으로 임진나루터 ‘坐忘室’에서 관조의 미학을 근원으로 한 새로운 실험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그의 인생(자아)이며 시적 진실의 창조를 위한 필연의 운명긍정이며 이러한 대명제의 해법을 찾는 자적(自適)이며 미래지향의 영혼을 위한 성찰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