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꾼 한국방송통신대학
2월 말 한국방송통신대학 대구경북지역 신·편입생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왔다. 졸업생 자격으로 새로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성공담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방송대와의 인연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고를 졸업하기 전 은행에 합격한 나는 졸업 후 바로 은행에 출근했다. 대부분 상고 출신인 은행원 다수가 못다 한 공부를 위해서 야간 대학에 진학했다. 업무를 마치고 서둘러 학교로 가는 그들이 부러웠다. 일찍 혼자되신 엄마가 가끔 눈물 흘리는 모습을 봐 왔기에 공부하고 싶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야간 대학에 비교해 등록금이 싸고 학교에 나가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방송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입학 원서를 썼다. 당시만 해도 방송대는 졸업도 입학도 모두 어려웠던 터라 입학 통지가 오자 안도했다. 열심히 해서 꼭 5년 만에 졸업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86학번 영어영문학과 학생이 되었다.
그해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서예도 시작했다. 학원에서 획걸이 동기로 남편을 만났다. 연애를 시작하자 공부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학원이 근무하던 은행 옆이라 깊이 생각지 않고 등록했다가 뜻밖의 변수가 생겨버렸다. 당시만 해도 열악했던 방송대 학업 환경에 혼자 공부하기도 어려웠지만, 연애하느라 공부할 시간을 내지 못했다. 결국 1학기 기말시험을 치고는 포기하고 말았다.
남편과는 그해 말 결혼했다. 아이들을 낳고 육아에 신경 쓰느라 공부에 대한 열망과 나의 꿈과 이상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게 흘렀다. 작은 아이가 중학교에 2학년 때였다. 생활도 안정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다시 부족했던 공부에 대한 그리움이 찾아왔다. 아이들에게도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방송대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혼자라 쉽게 포기한 것 같아 친구와 함께 지난번과 같은 학과에 등록했다. 이번에는 꼭 졸업까지 공부하자고 친구와 손을 걸었다. 하지만 환경은 나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아들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할머니 댁에서 낮을 보내고 엄마와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에 힘들어했다. 출근 시간이면 울며 매달리는 아이를 떼어놓으며 숱하게 울었다. 유치원을 다니던 아이가 어쩌다 혼내기라도 할 때는 ‘엄마도 할머니와 똑같네. 내 말은 들어 보지도 않고’라고 말하면 가슴이 찢어졌다. 그러던 아이의 방황이 시작되자 우리의 관심은 온통 아들에게 집중되었다. 사춘기 아들을 돌보는 사이 고3 딸은 성적이 떨어져 재수생이 되었다. 학업은 이번에도 이어갈 수 없었다.
힘들었던 일들도 정리되고 안정이 되자 조금씩 취미 활동을 시작했다. 귀농한 농부를 위해 홈페이지를 만들고 SNS를 시작하면서 글이 부족함을 느꼈다. 도서관이나 문화센터의 수필강좌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지켜보던 남편이 방송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해 정식으로 배워보기를 권했다.
2019년 드디어 세 번째로 방송대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학년 대표를 맡게 되면서 적극적으로 학생회 활동을 했다. 학우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자료도 찾았다. 학창 시절 어떤 직책도 맡은 적 없었던 내가 학년 대표로 2년, 학생회장으로 2년 맡았다. 과를 대표하고 전국연합회에서는 대구·경북 국어국문학과를 대표해서 활동했다.
그렇게 세 번째 도전에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적극적인 학생회 활동과 가족의 도움이 있어서 성공할 수 있었다. 이미 60세가 넘은 나이지만 배움의 시간은 많은 변화를 주었다. 평범한 아줌마로 가끔 독서는 했겠지만,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대학 영어를 맛보고 대학 도서관에서 논문도 찾아보는 학생으로서의 4년은 세상을 읽는 눈을 달라지게 했다.
올해도 방송대에는 수많은 사람이 지원했다. 못다 한 학업에 대한 미련으로 또는 궁금했던 학문을 위해 2차 3차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그렇게 저마다 각기 다른 사정으로 방송대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 새로운 시작의 자리, 입학식 날 있었던 학과 오리엔테이션에서 후배들에게 들려줄 성공담을 준비하면서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첫 번째, 아니 두 번째 도전에서 성공했더라면 나의 진로가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목표한 바를 이루고 다시 공부하는 노후의 삶을 시작할 수가 있어서 기쁘다.
요즈음 방송대학은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졸업 학점도 낮아져 예전보다 수월하게 졸업할 수 있다. 국어국문학과를 비롯한 총 24개 학과의 4년제 대학으로 손색없는 위치에 당당히 선 한국방송통신대학, 관심 있으신 분들, 잘 살펴서 망설임 없이 도전해 보시길 빈다.
첫댓글 꿈을 위한 발자국에 선배님^^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학업도 어려운데, 직책을 맡아 활동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배움의 길은 억지로 되는 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포기않고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신 용기가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