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빛 말간 사과푸딩
남 지 선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 시인이 엮은 잠언시집의 제목으로 십여 년 전 처음 접하게 된 글귀이다. 듣는 순간 너무나 마음에 와닿던 울림을 붙잡고 가만히 되새기다 보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대도 알고 있다면’이라는 대구가 떠올랐다. 후에 컴벌리 커버거의 원문을 읽어보니, 꽤 긴 그 시의 마지막은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대도 알았더라면......”으로 끝맺고 있었다. 내가 그 시를 미처 읽어보기도 전에 시인의 생각을 관통하였나 싶은 기분 좋은 흐뭇함과 함께, 사람들의 생각이란 다 다른 것 같아도 결국 별반 다르지 않다는 보편성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또 하나의 유쾌하지 않은 진실에 마음 한 켠이 왠지 서운하다.
‘스무 살’ 또한 보편적인 감성을 지닌 대표적인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풋풋하고 상큼하다. 새로운 세상에의 호기심, 패기와 열망어린 활기찬 발걸음과도 어울린다.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에서 배어나오는 어설픔도 또한 자연스럽다.
만 나이 오십을 문자 그대로 코앞에 둔 지금-오늘은 나의 50세 생일을 42일 앞둔 날이다- 스무 살을 떠올려본다. 지나온 30년의 심플하지도 또는 평범하지도 아니한 나의 지난날들이, 나의 그 두 나이 사이에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은 어떤 유사성을 선사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로의 ‘출발선’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30년 전 스무 살 때에는 갓 성인이 된 나의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상 앞에서, 지금은 100세 시대의 두 번째 50년의 시작을 앞두고 나는 그 앞에 서 있다. 지천명이라는 옛말이 무색하게도 지금의 나는 기대, 설렘, 불안, 우울, 그리고 선택과 결정에의 압박 등을 스무 살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게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출발선 앞에 서 있는 기대와 긴장이 혼재된 그 마음이, 마치 예쁜 접시에 잘 놓이긴 했는데 조그만 외부의 충격에도 이리저리 부서질 듯 흔들리고 마는 푸딩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스무 살의 필요조건인 풋풋함을 담는다면, 마알간 연둣빛의 사과푸딩 이라고나 할까?
스무 살의 날들은 대개의 사람들에게 일생 중 가장 꽃답고 화려한 시절이겠지만, 내겐 대체로 힘겨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나 자신의 진중하지 못한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그 시기에 오롯이 겪어내야 했기 때문인 듯하다.
스무 살을 석 달 앞둔 고3의 어느 날이었다. 대학입시를 위한 담임 선생님과의 마지막 상담이 있었고, 그 때 내렸던 순간의 선택이 여러 나비효과를 이루어 지금까지도 내 인생에 꿋꿋이 영향을 주고 있다. 그 날은 드디어 지망할 전공을 최종적으로 선택해야 할 시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내 장래 희망은 ‘영어 선생님’이었다. 그 꿈에 맞춰 그간 치러온 전국 모의고사마다 늘 영어교육과를 지망해왔고, 당연히 그렇게 정해질 줄 알고 들어간 상담이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을 마주하고 자리한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문득 책상 앞에 앉아 공부만 했던 지루한 수험생의 나날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며, 이대로 대학에 간다면 4년 내내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며 살다가 또 한 번의 시험 스트레스 속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엄청난 압박감으로 나를 짓누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전공 개설학과 안내 책자를 처음으로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결국 난 한 전공학과를 발견해내고야 만다. 인문계열에서 지원 가능하면서도 책상머리를 떠날 수 있는 학과를....... 그것은 바로 대부분의 대학교에서 이과계열 학과에 개설되었던 ‘의상학과’였다.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하고 어릴 적 양말로 마론 인형 옷도 직접 지어 입히곤 했던 나는 “유레카~~!!!”의 심정으로 호기롭게 의상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그땐 내가 미처 간과한 아니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의상학과는 무언가를 잘 만드는 야무진 손 매무새보다는 디자인의 바탕이 되는 ‘그림’ 실력이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동기들 대부분은 미술이 너무 하고 싶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미대에 진학하지 못한 친구들로 이미 출중한 그림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림’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나는, 실제 누드모델을 앞에 두고 10분마다 새로운 포즈를 그려내야 하는 패션크로키 수업시간이나 스타일화를 위해 각종 전문 화구들을 십분 활용하여 그간 억눌린 예술혼을 마구 불태우는 친구들 속에서 남몰래 좌절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마침 꽃샘추위가 한창이었고, 이런 나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던 꽃샘추위는 낯선 환경 속에서 더 아리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 등 주변인들과 또 나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남기고 싶지는 않았고, 방학 때 사설 미술학원을 수강하는 등 나름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어떻게든 의상학과에 적응하여 살아남았다. 결국 나는 졸업 후 패션디자이너와 MD가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질 나의 다채로운 직업 세계의 첫 문을 열게 되었다.
이후의 나의 삶을 생각해보면 신중함과 대담함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던 것 같다. 나는 평소에는 매사에 지나치리만큼 신중하다가도 이러한 인생의 몇 안 되는 큰 결정 앞에서는 무모하리만큼 대담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돌아보면 실수도 실패도 후회도 맘속 깊이 꽤 여럿 남아있다.
이제 인생 2장인 다음 50년을 여는 출발선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설렘인지 불안함인지 모를 두근거림을 느낀다. 마지막 입시 면담 시간에 불쑥 내린 결정으로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을 선택한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여러 분야를 오가며 편치 않은 직업 세계를 겪어야 했던 경험. 그 경험은 지금의 나의 선택과 결정이 앞으로의 내 삶에 있어 얼마만큼의 무게를 지닐 것인가에 대해 매우 큰 부담으로 작용 중이다. 그래도 이젠 조금은 기댈 구석이 있다. 지난 30년의 긴 세월을 ‘시냇물에 굴러가는 조약돌처럼’ 지내오면서 나의 내면이 점차 단단해지고 내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품은 뜻대로 세상이 안 움직여 주더라도 이제는 그로 인해 무너지지는 않을 것 같다. 주어진 삶을 겪어내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시나브로 쌓인 무게중심이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오뚝이처럼 다시 일으켜 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스무 살 때 말캉한 푸딩같이 여리던 마음이 지금은 흔들림 없이 자리 잡고 견고하게 서 있다는 뜻은 아니다. 지나온 시간동안 ‘밤양갱’처럼 달디달기도 하고, 에스프레소처럼 씁쓸하기도 하며, 레몬즙처럼 상큼한 듯 다가와서는 결국 아린 뒷맛을 남기기도 하는 각양각색의 인생의 맛을 본 지금의 내 마음은, 내 안의 약함을 내보이지 않고 더는 바깥으로부터 다치지 않도록 겉옷만이라도 단단하게 갖춰 입은 한 알의 마카롱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껏 이렇게 30년 전 스무 살을 떠올리며 글을 쓰긴 했지만, 실은 난 아직도 내 나이가 실감이 되지 않는다. 가끔 옛 추억을 하나둘 떠올리다 보면 어떤 것은 20년 전, 어떤 것은 30년 전이고 심지어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의 기억은 40년도 더 지나 있다. 이 사실이 너무도 믿어지지가 않을 때는, 마치 온 세상이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새 내 아이도 그 ‘스무 살’을 벌써 이태 전에 보낸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같은 나이를 나와는 달리 너무도 맑고 밝고 활기차게 보낸 아이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자니, 왠지 나의 거친 스무 살의 기억도 보드랍게 힐링이 되는 듯하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수만큼의 스무 살이 있고, 그 모두는 사과푸딩처럼 약간은 시더라도 상큼하고 향긋할 것이다. 스무 살을 겪었든 앞두었든, 모든 사람의 모든 나이는 모두의 인생에서 유일한 것이기에 그 자체로 보배롭고 특별하다. 오늘 하루도 그 나이를 정성스레 채워가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고 싶다. 모두, 파이팅!
*주제문
- 새 출발을 앞두고 있던 글쓴이의 스무 살 때 마음과, 다음 반백년을 앞둔 지금 쉰 살 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이다.
*작가 프로필
- 어릴 때부터 영어선생님을 꿈꿨지만 뜻밖의 선택으로 의상학과에 진학하였다. 졸업 후 디자이너로서 의류업계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경력단절 이후 본업 복귀가 아닌 진학을 택한다. 성악 전공 후 음악과 영어를 가르치다 다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의류업계의 물류, CS(소비자 상담), 선적 관련 업무에 종사하게 된다. 이후 다른 분야들도 잠시 기웃거리다 지금의 1인 출판 창업까지 계획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이 스무 살 때의 선택으로 인한 나비효과라 느끼고 있다.
첫댓글
어쩌다 모르는 기차역에 내렸지만, 거기서 또 재미있는 삶을 살아보셨군요.
제목처럼 상큼한 작가님의 표정은 이런저런 상황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셨기에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