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라는 촉수로 숨쉬는 책방
책과아이들은 부산에서 25년째 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직원으로 있은 지 5년 정도 되었는데 지난 시간 동안 책방의 어려움과 고비, 그리고 그것을 손잡고 넘어왔던 강정아, 김영수 두 대표님의 사연을 옛날이야기처럼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또 얼마 전부터 책과아이들 소식지를 살펴볼 기회가 생겼는데, 정말 일이 많았더군요. 어린이 문학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회원들과 소통하려는 노력, ‘동심’을 지켜가려는 책방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또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프로그램, 문화 네트워크, 지역 책방으로서의 정체성이 만들어졌구요. ‘동심’이란 사심없는 마음인데 강정아 선생님 인터뷰집 <서점은 내가 할게>에 나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말에서 비롯되었는데요, 사적인 욕심 보다는 어린이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더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길다면 긴 세월 동안 나뭇결처럼 쌓인 책방의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아이와 학부모가 함께 오는 그림책교실, 서점나들이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 한 반이 와서 어린이 문학을 즐기는 한반나들이, 초등학교 아이들이 친구와 함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친구와 함께 책읽기반, 청소년 인문학 읽기, 어른 모임인 이오덕 읽기 모임, 동화 읽기 모임 청어문, 그림책 읽기 모임인 달맞이 그림책, 어린이와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생활연극 ‘두근두근 당당하게’까지 셀 수 없습니다. 대표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이 이렇게 많은 모임과 만남을 진행해 왔었네요.
그런데 작년 11월 책방에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지요. 강정아 선생님이 암 4기 진단을 받고 4년간 투병끝에 영면에 드신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슬퍼했습니다. 장례식에서 환하게 웃고 계신 선생님의 영정 사진이 선명히 기억에 남습니다. 문학, 문화 관련 작가, 예술인, 출판사분들, 책방과 연을 맺은 무수한 사람들이 자리를 지켜주셨죠. 그 슬픔에 응답해 12월 말에는 선생님을 기리는 추모제가 있었습니다. 짝지셨던 김영수 선생님과 자녀분들의 주최로 책방 선생님과 회원, 문화인들이 참가하여 추모제를 열었었죠. 노래도 부르고 낭독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슬프고 즐겁게 선생님을 보내는 자리였습니다. 지금도 책방에서는 선생님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집니다. 책과아이들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허전함을 많이 느끼시겠지요. 직원인 저도 선생님과 좀 더 오래, 책방 일을 재밌고 즐겁게 같이 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강정아 선생님이 돌아가신 그쯤에 신기한 일이 있었는데요, 장례식이 끝난 다음날, 딱새가 책방을 방문했습니다. 딱새 크기는 참새보다 조금 큰데 꽁지깃은 흰색에 눈 주위가 검은색이었어요. 매일 와서 철제 문간에 비친 자기 모습을 계속 계속 바라봤습니다. 며칠동안 책방을 찾아주었죠. 책방 식구들 모두 조금은 강정아 선생님을 떠올리며 그 새를 특별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런 일이 있은 가운데에서 책방은 일상을 살아갑니다. 책방은 문은 열고 직원들은 먼지를 쓸고 닦고, 까치와 참새들은 아침마다 방문해 부리로 땅을 쪼고 벌레를 잡아먹습니다. 책방에 들어온 책은 책장에 꽂혔다가 다시 떠나기도 하고, 아이들은 해맑은 얼굴로 책방을 들어서지요. 책방이 커다란 생명체라고 상상해 봅니다. 책이라는 촉수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촉수를 뻗어 사람들과 섬세하게 접촉하지요. 책방의 일상은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숨을 쉬게 됩니다. 꾸준히 책을 사는 회원분들과 아이와 함께 오는 분, 기관과 학교의 방문, 공부를 하러 편하게 들른 학생들까지. 책을 사러 오는 손님들이 예전보다 줄어들어 걱정이지만, 귀한 접속이 있기에 오늘도 숨을 쉬어 갈 수 있는 거겠지요.
촉수가 뻗친 여러 프로그램 중 그림책교실을 소개할까합니다. 그림책교실은 학부모와 아이가 함께오는 자리입니다. 3-7세까지의 아이들이 양육자와 함께 그림책도 감상하고 시노래도 부르고, 이야기 선생님께 옛날이야기도 듣고, 연주 담당 선생님의 연주로 퍼커션(타악기)과 함께 그림책도 봅니다. 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 볼 수 있는 책입니다. 걸어 다니는 미술관이라고 할 만큼 감동도 주지요. 시각적 이미지와 짧은 글로써 독자에게 다양한 스펙트럼의 감흥을 끌어냅니다. 책방 대표님을 비롯한 선생님들이 고른 좋은 그림책과 시노래가 양육자와 아이들에게 다가갑니다. 또 계절마다 시노래와 그림책이 달라지는데 사계절을 알고 감각한다는 건 참 중요한 일이지요. “계절을 아는 것은 철이 든다는 것이다”라고 하신 강정아 선생님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시간들을 통해 아이와 양육자가 대화의 주제를 넓히고, 서점 나들이가 그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셨습니다.
그림책교실에서 있었던 몇가지 재밌었던 일을 소개하고 싶어요. 3-4세 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으앙~”하고 나영이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옆에 있던 수진이도 덩달아 같이 웁니다. 진땀나는 상황. “나영이, 수진이 뚝”하고 달래봐도 잘 그치질 않았어요. 간혹가다 3-4세 반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게 생깁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의사표현을 우는 걸로 대신하지요. 다행히 강정아 선생님이 그 소리를 밖에서 듣고 잠시 들어오셨습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엄마가 아이를 업게 했습니다. 이내 아이들은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냄새와 온도에 민감하다는 걸 말씀해주셨죠, 또 낯선 환경에서 엄마와의 스킨십을 통해 안정감을 되찾은 것이겠지요.
또 한 가지는 시노래를 부르며 시를 감상하는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시를 접하기 어려운 요즘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자연스럽게 시를 익힐 수 있는 시간입니다. 시노래 중에 “받아쓰기 보다 더 어려운 공부가 있어”라는 곡이 있는데요, 그 곡에서 “그런데 엄마는 왜 의사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고 아무것도 안됐어~”라는 가사를 부를 때였어요. 공부 안하면 소가 된다는 엄마의 으름장에 아이가 엄마에게 대항하는 말로써 저 표현을 쓰는데, 어이쿠! 엄마는 되로 주고 말로 받았네요. 그런데 아이의 말이 부당하다고 느꼈는지(저도 그랬지만요) 그림책교실을 듣던 7살 서영이가 “엄마가 됐잖아요.”라고 야무지게 말했습니다. 저도 그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맞아요, 맞아요”라며 멋진 말이라고 호응해주었습니다. (평소 수업에서도 알려주곤 한답니다)
부모가 아이를 앞에 앉히고 그림책을 감상하는 모습은 꽤 인상 깊습니다. 그런 유년시절을 겪지 않은 저를 생각하니, 아이들이 참 좋겠다, 라는 생각도 하게 되구요. 권윤덕 작가님이 에세이에서 자녀와 함께 그림책을 같이 읽던 경험을 회상하시며 “나는 내 무릎에 앉은 아이와 그림책을 읽으며 공감하던 그 시간이 참 행복했다. 따뜻한 온기뿐 아니라 냄새와 숨소리와 감정 들까지 아이의 등 뒤에 맞닿은 내 가슴으로 고스란히 빨려 들어 왔다.(나의 작은 화판, 돌베개)”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이처럼 책을 같이 읽으며 느끼는 감정과 몸의 교류란 아이와 양육자에게 정서적 충만감을 안겨주는 귀중한 순간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게 그림책교실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요즘 그림책교실도 부산의 아이가 줄어드는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좋은 그림책과 시노래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요, 더 많은 학부모님들과 아이가 책방에서 추억들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존 버닝햄 작가의 책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존 버닝햄의 그림책 “크리스마스 선물”은 산타가 크리스마스 때 ‘하비 슬렘펜버거’라는 아이에게 줄 선물을 빠뜨리면서 생기는 이야기입니다. 산타는 아이를 위해 기나긴 여정을 나섭니다. 마침 순록은 감기가 걸려 못가고 이 사람 저 사람의 도움으로 결국, 마침내 하비 슬렘펜버거네 집에 도착합니다. 한 아이를 위한 마음이 빛나는 그림책인데요, 그런 마음이 사실 어린이 책방의 촉수를 이루는 세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요. 그 촉수가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어떤 촉수로 사람들에게 다가갈까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