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복보다는 인복 / 양선례
케이비에스(KBS) 연말 연예 대상 시상식을 보았다. 채널이 몇 개 밖에 되지 않던 시절에는 올해의 가수왕이나 연기 대상 못지않게 이 상도 누가 받을지 기대와 관심을 모았다. 언론에서도 예상되는 후보를 점치며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제는 백여 개 이상의 채널에다 텔레비전이 아니고서도 정보를 얻는 길이 다양해지면서 예전만큼 눈길을 끌지 못하고 있다.
나는 자나깨나 텔레비전을 켜 놓고 사는 이와 한 집에 산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텔레비전 없으면 못 살거라고 종종 놀린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잠잘 때도 손바닥 위에 리모컨을 올려둔다. 내 수면에 방해될 새라 소리는 0으로 줄이고 자막에 의지해서 본다. 그러나 번쩍이는 빛까지는 어쩌지 못해 급기야 나는 안대를 쓰고 자기에 이르렀다. 온 집에 울리는 TV소리.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데도 방해가 되었다. 결혼해서 한동안은 그게 참 스트레스였다. 어느 날 인생 선배인 동료 교사에게 자문을 구하니 내버려 두란다. 누구는 드라마로, 또 누구는 뉴스로 세상을 읽는 것처럼 남편은 멍하게 그걸 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중이라며.
그런 남편과 30여 년 살다 보니 나 역시 시청 시간이 늘었다. 식사 중일 때는 물론이고 다 먹고 나서도 설거지는 뒷전이고 보던 프로그램을 이어서 볼 때가 많다. 뉴스와 스포츠, 거기다 예능을 즐겨보는 남편과 달리 나는 드라마나 이비에스(EBS)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그런데도 채널권을 쥔 사람이 남편이기에 특별히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아니고서는 거의 양보하는 편이다. 연예대상도 그렇게 해서 보게 되었다. 2021년 대상은 코미디언 문세윤이었다.
시즌 4 ‘1박 2일’의 새 멤버로 그가 나와서 좀 의아했다. 출연한 프로그램을 본 적도 없었고, 토요일 주말을 책임질 정도로 인기있는 예능에 나올 만한 인지도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었다. 뚱뚱하지만 행동은 민첩했고, 게임을 하면서도 의리가 있고, 규칙을 지켰다. 적절한 곳에서 센스 넘치는 멘트로 재미와 감동을 만드는 중심 역할도 했다. 아무리 웃음을 추구하는 예능의 세계라지만 카메라의 안과 밖의 모습이 다르면 시청자는 금방 눈치챈다. 그는 한결같은 사람으로 보였다. 대상 수상자로 이름이 불리자 얼떨떨해 했지만 나는 그라서 기뻤다.
그는 재작년에 처음으로 연말 시상식에 초대받아 와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다시 일 년 만에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수상 소감도 인상적이었다. 주변에서는 상복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인복이 많은 사람이었단다. 한계가 다가오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응원해 준 사람들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하면서 대상 후보자였던 김숙에게도 고마움을 표현했다. 후배의 수상을 울먹이면서 지켜보는 그녀를 보면서 나도 코끝이 빨개졌다.
어떻게 하면 예능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지를 선배인 신동엽에게 물으니 “너는 저평가된 우량주야. 걱정하지 마. 언젠가 사람들이 너의 가치를 알아 줄 날이 올 거야.”라면서 지금처럼 꾸준히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었단다. 연예계처럼 부침이 심한 곳이 있으랴. 하루아침에 벼락 스타가 되어 반짝 인기를 누리다가 사라지는 연예인도 있고, 묵묵히 자신의 분야에서 무명의 시간을 참고 견디며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해서 빛을 보는 이도 있다. 문세윤은 후자 쪽이다. 2001년 개그맨으로 데뷔해서 마흔 한 살에야 화려하게 날개를 펼친 그였기에 진심을 담은 그의 소감이 공감을 얻었다.
나도 상복보다는 인복이 많은 편이다. 힘들고 어려워서 정말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손 내밀어주는 이가 있었다. 그때는 그런 줄도 몰랐는데 돌아보면 그 사람이 바로 ‘귀인’이었다. 그 중 한 명 덕에 나도 상을 받은 적이 있다. ‘저축의 날 기념 국무총리상’이 그것이다. 다른 상도 아니고 저축의 날 표창이라 많이 쑥스러웠다. 이름에서 풍기는 것처럼 저축을 많이 한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오해해서다. 세 아이 키우고 교육시키느라고 들어온 돈 나가기 바쁠 때여서 저축은 남의 일이었다.
전교생 3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학교에서 교무를 맡을 때였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앞자리에서 식사를 하던 김 교장이 며칠 전에 온 저축의 날 유공교원에 나를 추천하고 싶다며 공적조서를 써보라고 했다. 그 학교는 입학생 모두에게 장학금 십만 원씩을 현금이 아닌 개개인의 장학적금 통장에 넣어서 주었다. 학교에서 이런저런 대회 끝에 주는 상장이나 표창장도 상의 규모나 등급에 맞게 모두 돈으로 환산하여 계좌 입금했다. 과제나 발표를 잘하고, 모둠 활동에 성실하게 참여한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벽지 학교여서 통장을 만들 수 있는 은행은 학교 인근의 농협이 전부였다. 한번 만들어진 통장은 용돈이나 세뱃돈을 넣는 창구가 되어 일 년이 지나기도 전에 백만 원을 넘게 모은 아이도 생겼다. 대회를 추진하는 교사가 그때그때 형편대로 상품을 사 오던 방식에서 벗어나서 일관된 교육을 펼치니 아이들의 경제 교육과 행동 변용에도 효과가 있었다. 소인수 학교인 데다 학교 전체가 하는 시책이라서 과연 상을 받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뜻밖에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저축의 날- 2016년 금융의 날로 명칭이 변경됨-은 1964년에 제정되어 매년 10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 시상식이 열린다. 1988년 25%를 육박하던 우리나라 저축률은 1999년(15%)을 마지막으로 줄곧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가 2020년에 11.9%가 되면서 이십일 년 만에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연예인을 비롯하여 기관과 학교, 개인 등으로 수상자가 선정된다. 저축의 날이 되면 각 은행에서 특판 상품을 쏟아내던 시절도 있었으나 낮아진 저축률만큼이나 행사도 축소되어 지금은 수상자 수도 백 명 이내다.
그 해 시상식은 서울 명동 회관에서 열렸다. 대형 원형 식탁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접시의 크기에 비해 내용물은 병아리 눈물만큼씩 담긴 음식이 여러 번 나왔다. 남김없이 먹었지만 배가 하나도 부르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연예인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던 거다. ‘1박 2일’에서 주말마다 만났던 이승기는 이웃집 동생을 본 듯 반갑고 친근했다. 바로 옆에 가서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나야, 나.” 말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프로그램에서 볼 때는 특별히 잘 생겼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일반인 사이에 섞인 그는 군계일학이었다. 몸에 꼭 맞게 입은 검은 색 정장이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절로 탄복이 나왔다. 개봉 한 지 얼마 안 된 ‘내 사랑 내 곁에’의 여 주인공 하지원은 바로 내 앞자리에 있었다. 생활 연기를 잘하여 호감이 가는 손현주 씨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 9시 뉴스를 진행하는 조수빈 아나운서와는 사진도 함께 찍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연예인이 없었는데도 그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이 상을 받는다는 사실보다 더 기분 좋았다. 내가 특별히 잘해서도, 취지에 맞게 저축을 많이 한 것도 아니어서 더 그랬다.
그로부터 십 년이 더 지났다. 여전히 나는 모으기보다 쓰는데 소질이 있다. 문세윤은 최고의 자리에서 그간 고마운 사람과의 일화를 이야기했다. 본디 한 배를 탔으나 불미스런 일로 지금은 하차한 동료의 이름을 언급하는 의리도 보였다. 코로나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김 교장님께 식사 대접이라도 해야겠다. 앞과 뒤가 한결같을 것. 바로 내가 되고싶은 인간상이기에.
첫댓글 어머나 '저축의 날 기념상'이라니 대단한 상을 받았네요. 그래도 공로가 있으니 주는거지 아무나 주는 것은 아니잖아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교사 초년시절 있었던 학생 개인 저금통장이 생각나네요. 그런 것은 좋은 경제교육인데 어느 순간 없어졌어요.
그러게요. 그때는 장학적금 통장을 모두 만들고 일주일에 한 번씩 교사가 저금을 걷어서 은행에 냈었지요.
각 학급마다 저축의 액수를 비교하여 독려하기도 했구요.
나이 들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더니 까마득한 옛날 일 같아서 놀라곤 합니다.
하하.
많은 복 중에 인복보다 큰 복이 있을까요. 이제부터는 상복도 풍성하게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하하, 선례님!
상복은 욕심내지 않습니다.
이미 충분한 걸요.
인복이 많아서 고마울 때가 많습니다.
스스로 복이 많다고 생각하고 산답니다.
이팝나무님. 그런 추억도 있었나요?
까도까도 계속 새로운 속살을 가진 양파 같아요. ㅎㅎ
나는 많이 게으른 사람인가봐요.
저축업무 없어진 게 얼마나 다행이냐며 좋아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