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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쇄신책을 제안함
- 是 夢 -
서 언
한국불교는 1700여년에 걸쳐 우리 민족과 더불어 흥망성쇠를 함께 하여 왔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불교가 흥할 때 나라가 흥하고 불교가 쇠잔해지면 나라 또한 쇠잔 해진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같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불교가 종단의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고 그 시스템이 올바르게 작동되지 않는 것 같다.
이는 이씨 조선 500년과 36년 일제 강점기 치하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1954년 비구 대처 분규를 거치면서 그 전통이 깨지고 말았다.
이와 같이 한국불교의 적폐는 600여 년에 걸쳐 지속하여 온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을 바르게 붙들고 세울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데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고 그 허물을 역사에만 돌릴 수 없다. 이제 분연히 일어나 지난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면서 종단 쇄신책을 제안하고자 한다.
1. 수행과 전법 등 본분은 뒷전이고 주지 못해서 안달인 사판승들
출가한 승려는 수행과 전법을 본분으로 삼고 일은 파적삼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승가의 전통이다. 이것을 잘 지킬 때 승단은 건강해 질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승가를 살펴보면 그와 같지 않는 것 같다. 전도된 모습이다 수행과 전법은 온데간데없이 일을 못 해서 안달이다. 사판에 뛰어든 주지 등 소임자들의 능력을 불사에 맞추고 있다. 돈을 모아서 집을 짓고 가람을 수호하는 데만 열중이다. 이는 하발(下鉢)이 승려들이 하는 일이다.
옛 스님은 말했다 “상 근기는 참선하고 중 근기는 간경하고 하 근기는 탑사 경영 한다”라고 하였다. 절집의 사판승들이 수행과 전법은 뒷전이고 돈 모아서 집 짓고 일 못해서 안달이니 첫 번째 불행이다.
2. 시비와 상벌이 친소와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조계종
소수 집단은 상벌이 엄격하지 않는 대다 시비를 구분 짓지 못하고 정실에 흐르는 것이 허물이다 이를테면 옳고 그름이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설사 그 일이 틀림없이 그릇된 일인데도 나와 친한 사람이면 바르지 못한 일이 옳은 일로 둔갑한다. 옳은 일 또한 마찬가지다. 시비와 상벌이 사람의 친소에 따라 달라지고 있으니 조계종의 둘째 불행이다.
공자께서 「춘추」를 지으매 난신적자가 다 두려워했고, 마명보살이 「기신론」을 지으매 단상(斷常)의 이집(二執)이 저절로 깨어졌다. 세상으로 하여금 포폄(褒貶)과 상벌의 조목을 알아 군자의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은 곧 공자의 「춘추」요, 수행자에게 중도실상의 이치를 깨달아 성현의 지경에 이르게 하여 만고에 멸하지 않는 것은 오직 마명의 「기신론」이다. 이 같이 시비와 상벌이 공명정대하여 바르게 행해져서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는다면 사회와 승단은 저절로 건강해질 것이다.
3. 본사 주지 등 주요 소임 자에 대한 기준을 엄격하게 해야
종단의 주요 소임 자는 종정 예하를 비롯해서 총무원장 . 종회의장 . 호계원장 . 교육원장 . 포교원장 . 교구 본사 주지 . 종회의원 . 말사주지 등이다. 이들 소임 자들의 인사에 대하여 승납과 세납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
예컨대 종단이 정한 말사 주지 자격은 ‘승납 10년 세납 30세 이상의 비구로 한다.’ 라고 규정되어 있는바 승납 10년 말사 주지 자격만 되면 주지 병에 걸린 사람처럼 주지를 못해 안달이 나서 발광 질이다. 그리고 줄을 잘 타면 주요 소임은 물론 갑종 사찰의 주지도 하게 된다.
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가공무원은 9급에서 시작된다. 9급에서 8급으로 한 단계 진급하기 위해서는 그 절차와 시험 등 상당 기간의 경력에 따라 보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조계종은 이 같은 인사 시스템이 올바르게 작동되지 않고 있다. 1954년 비구 대처 분규 당시에는 가정가진 승려를 단박에 밀어내고 공황에 빠진 사찰마다 함량미달의 사람들을 머리만 깎고 승복을 입혀 주지에 발령한 것이다. 오늘날 조계종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분규의 원인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라는 우리 속담은 인과응보의 진리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조계종의 시작이 정화라는 명분을 빌려 폭력에 의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생겨났으니 이 종단이 건강할 수 있겠는가,
탄허 대종사께서 지금 조계종의 계속되는 분규 등 종단의 구성원들을 일컫기를 “무식한 승려들이 새끼를 낳아 가르치지 않으니 그 새끼 또한 무식하다. 조계종의 현실이다.”라고 하면서 안타깝게 여겼다. 이 같은 일이 6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별반 달라지지 않고 있으니 세 번째 불행이다.
앞서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밥 그릇 수만 차면 말사주지 자격이 되었다 하여 그 절차가 무시된 채 단박에 갑종사찰의 주지가 되고 종단의 주요 소임을 맡게 된다. 이 같은 일을 종도들이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는가, 모든 일이 이와 같다. 한 가지 일을 보면 그 나머지 일은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다.
이에 종단의 주요 소임 자들의 자격을 지금 종법이 정하는 것보다 훨씬 높여야 한다. 예컨대 교구본사 주지는 종사 법계, 종회의원은 종덕 법계, 주요 사찰주지는 사격에 따라 종덕 법계. 종사 법계 등으로 인사원칙을 정하자는 것이다. 사실 저처럼 법계를 정하는 것 자체가 시답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젊은 승려들이 종단의 주요 소임을 맡다 보니 온갖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사실 공부에 열중해야 할 시기에 수행과 전법 등 본분 사는 뒷전이고 사판에서 놀다보니 수행은 온데간데없고 그 심성이 오염되고 있는 것이다.
절집안의 위계는 다만 장유유서의 차별만 있을 뿐 소임에 따른 차별은 있을 수 없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살림살이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생긴 소임일 뿐이다.
사찰은 수행자를 위한 공간인데 수행자를 밀치고 사판승들이 제 집 마냥 전횡하고 있으니 이를 막지 않는다면 속인들의 살림보다 한술 더 뜬 욕망덩이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수행이 높을수록 하 소임(下所任 - 허드레 일, 이를테면 밥하고, 물 긷고, 마당 쓸고, 땔 나무 하는 등속의 일,)을 차처하고 나선 일은 오랜 절집의 전통이다.
오늘의 절집 현실은 수행을 방해하면 하였지 본분을 해치는 소임을 서로 하겠다고 설쳐대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다. 속인들도 경계하는 일을 서슴없이 하고 나선다. 세속에서 하는 짓의 감투 같은 것을 만들어 입후보를 해서 표를 찍어 달라고 하는가하면 거기에는 매표행위까지 더한다. 소임은 그런 것이 아니다. 주지 같은 소임은 맡기면 서로 피해 멀리 달아나기 일쑤였다. 그런 주지를 서로 하겠다고 나서서 경쟁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4. 스님이 존중받아야 불법을 중하게 여긴다.
이제 인사 제도를 상향 조정하여 엄격하게 실행 하여야 한다. 그리고 인사의 척도를 일에다 두어서는 안 된다. 물론 그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나 이것을 전부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그 일을 힘차게 추진하는 동력이 될 수 있지만 승가는 수행과 전법으로 사부대중의 존중을 받는 일이 더 우선시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님이 존중을 받을 때 부처님 법이 존중받고 스님이 가벼이 여겨지면 그 법도 가벼워진다.”〔僧重則法重 僧輕則法輕〕 라는 옛 스님들의 말씀을 상기하면 오늘날 스님들의 갈 길과 살림살이를 깨닫게 된다.
5. 원로회의가 산중을 통어하고 위계를 확립해야 한다.
이제 한 산중의 재적, 재직 승 및 문도들이 5백 명에서 1천 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을 통어하고 위계질서를 세우기 위해서는 산중의 노덕들의 지도가 절대 필요하다.
한 산중의 지도자를 선임하는 일과 같은 중차대한 일을 산중의 초하(初夏) 비구와 원로 노덕들이 한 자리에서 논의하여 결정하는 것은 그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율장 코삼비〔拘贍彌〕전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부처님 재세 시 제자들끼리 다투는 일이 생겼을 때 부처님 말씀도 따르지 않아 마침내 부처님께서 그들 곁을 떠나는 일이 생기기까지 하였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에 앞서 제자들에게 불교와 승단의 흥망성쇠에 관해 말씀하신「七不衰退法」제1, 2에서는, 모여서 의논하되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행동하고, 화합하여 ‘해야 할 일’을 하고, 동법 제3, 4에서는 “새로운 것을 제정하지 말고, 이미 제정된 것을 버리지 말 것이며, 경험이 풍부한 장로를 승단의 아버지와 스승 같이 존경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따르는 한 불교와 승단은 쇠망하지 않는다.” 라고 부처님께서는 교계하셨다.
이상과 같이 부처님의 교법에 따라 한 산중을 통어하고 위계질서를 세우기 위해서는 산중의 노덕들이 중심이 되는 원로회가 후학들을 지도 감독하여 승가의 위상을 확립하여야 할 것이다.
6. 삼보의 정재가 주지 개인의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시대를 자본주의 시대라고 일컫는다. 돈이 사람을 움직이는 시대가 되었다. 돈을 섬기는 것이 맘모니즘이요, 맘모니즘이 사회제도의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 자본주의 경제체제다. 끝없는 이윤추구와 부의 축적을 목표로 하는 것이 맘모니즘의 원리이다. 여기에서는 돈이 만물의 척도가 되고 돈이 일체 가치기준의 원칙을 삼는다. 학문과 예술도 맘몬에 의해 지배되기 쉽고 인격의 존경과 사상의 지조와 종교적 양심의 권위도 돈 앞에서는 비틀거리기 쉽다.
어느 시대이건 돈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사회가 혼탁해지고 질서가 깨지고 말았다. 사회는 물론이고 수행을 본분으로 삼는 승단의 일만 보더라도 항상 돈이 문제를 일으켰다. 오늘과 같은 시대는 승단의 혼탁이 극에 달해 있다. 주지 소임을 맡은 사람들이 수행과 교화는 뒷전이고 부처님의 정재를 개인이 착복하여 개인의 소유로 하고 있으니 이를 고치지 않고서는 불교 앞날을 장담할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딱하게도 한국불교는 미래 승려보장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있다.
옛 선사스님들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수행자는 공부하다 논두렁이나 밭두렁을 베게삼아 죽을 각오가 되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같은 승단 구성원들이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승려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이 때문에 저들은 불안하여 평상심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지 못해서 안달이고 주지가 되어서는 삼보의 정재를 훔쳐 자기 개인 것을 만들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무소유를 원칙으로 삼는 승려 개인은 큰 부자가 되어 있고 절집은 가난하니 이것이 승단의 불행이다. 그리고 이들 주지들이 재임명을 받기 위해서는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고 임명권자의 비위를 맞추는 등 온갖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수행자와는 십만 팔천리보다 멀리 떨어져 있다. 이 또한 불교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다. 불쌍한 말사 주지들의 현실이다.
7. 출가 수행자는 가난과 친해야
집을 떠나 수행의 길에 뛰어든 사람은 제일 먼저 가난과 친해져야 한다. 세속적 욕망을 벗어던지지 않고서는 이 길을 갈 수가 없다. 일찍이 서산대사는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불렀다.
學道先須且學貧 學貧貧後方道親 一朝體得成貧道 道用還如反低身
도(道)를 배우고자 할진데 먼저 모름지기 가난을 배워야 한다.
가난을 배우고 난 뒤에야 도(道)와 친숙해 진다.
하루아침에 가난의 도(道)를 이루고 나면
도(道)를 쓰되 도리어 자신을 낮추게 될 것이다.
라고 가르쳤다. 가난이야 말로 도(道)에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다.
수행자들이 이처럼 세속적 욕망을 미련 없이 내 던질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70년대 초 삶의 끝자락을 슬쩍 보여주고 홀연히 자취를 감춘 어느 선객은 “세속인들은 감히 엄두고 못내는 부처가 되겠다는 대욕(大欲)을 품고 스스로가 정신과 육체를 착취하는 고행을 자행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도반이 계산해 놓은 수행자의 1년 소비물량을 보면 수행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주식비 1만6천4백25원(하루 3홉, 1년 1095홉×15원), 부식비는 자급자족, 피복비 2500원(승복, 광목 20마×50원=1000원, 내복 1500원), 신발 240원(고무신 2켤레 × 120원) 1년 살림살이 합계 20,000원이면 족하다고 했다. 요즘 시세로 치면 100만 원 정도일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면서 수행자는 모름지기 3부족(三不足)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의 ․ 식 ․ 수(衣 ․ 食 ․ 睡 - 옷, 밥, 잠)가 그것이다.
공자는 가난하면서도 그것을 오히려 편안하게 여겨 도 닦는 생활을 즐기는 제자 안회를 이 같이 칭찬하였다.
“어질다 안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그릇의 표주박 물을 마시면서 누추한 집에 산다면 남들은 그 가난과 시름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안회는 가난을 고치거나 벗어나려 않고 오히려 가난을 편안하게 여기면서 도를 즐기는 생활을 지키니 안회야말로 참으로 어질 구나. 안회야말로 참으로 어질 구나.”
물론 수행자들에게 고행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것을 통해 세속적 욕망을 초월한다 해도 기껏해야 수행자가 가야할 길 중 가장 초보적 단계인 욕계(欲界)를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일찍이 수행자들은 먹는 것, 입는 것, 이성적 욕망을 뛰어넘어 영원한 평화의 법락(法樂)을 향해 길을 걷는 것이다.
8. 남자의 동물적 속성, 이것을 뛰어 넘어야,
남자는 그 속성이 매우 동물적이다. 출가 수행자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이곳이 출발점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훈육과 스승, 사회의 가르침에 따라 성인이 된다. 성인이 되고부터는 한 가장으로 그 책임을 맡게 되면서 가정을 위하여 돈을 벌게 되고 돈이 생기면 부모를 섬기고 부인과 자식을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국가 사회를 위하여 그 직분을 충실히 하는 건강한 시민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일탈하게 되면 파탄이다.
그래서 남자는 유년기에는 가정에서 부모의 훈육을 받으면서 성인이 된다. 성인이 되어 가정을 갖게 되면 부인의 충정〔잔소리〕어린 소리를 들으면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남자로 태어난 운명이다. 이때부터 남자의 고달픈 삶이 시작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상생활에서의 일탈을 막게 되면서 건강한 사회인이 되는 것이다.
9. 공부가 없는 비구는 세속의 홀아비와 다를 바 없다.
수행자는 가정으로부터, 돈으로부터 자유다. 잔소리꾼이 없다. 그렇다면 이는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공부가 없는 비구는 세속의 홀아비와 같다. 스스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건대 비구승은 책임감이 없다. 돈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느 일정의 교육기간이 끝나면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조차 벗어나 일상을 일탈할 수 있는 위험에 빠진다. 잘못하면 남성들이 갖고 있는 동물적 근성만이 남는 위험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일어난 백양사 도박사건도 이 같은 사례일 뿐이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7일이 되는 날 샤카족 출신의 발란타 비구는 말하기를 “여러분은 걱정할 것이 없다. 세존께서 열반하셨으니 우리는 이제 자유를 얻었다. 그 노인은 항상 말하기를 ‘이것은 마땅히 행해야 하고 이것은 마땅히 행해서는 안 된다.’ 라고 말하면서 우리들의 삶을 간섭만 하였다. 지금부터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스승이 없는 사람과 가르침을 받지 않는 사람은 그 근성이 동물적인 삶과 다를 바 없다. 오늘을 사는 비구들은 자칫 저 발란타 비구처럼 건방지고 오만에 빠져있지 않은가를 살펴야 한다.
사실 사판에 뛰어든 젊은 승려들의 자유 방종이 도를 넘고 있다. 이것을 제어하는 것은 오직 수행자의 본분을 지키겠다는 자신의 종교적 양심뿐이다. 이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순자 등 일부 성현들은 이 같은 인간적 양심을 믿지 못한 것 같다. 인간의 동물적 욕망을 제도적으로 틀어막자는 것이 그들의 사상인 듯하다.
10, 스스로 불러들인 승려들의 고달픈 살림살이〔事判〕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자
고달픈 삶은 의, 식, 주, 문제에서 비롯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의 속담이다. 여기에서 자유스러울 수만 있다면 적어도 삶의 고통은 끝날 것 같아 보인다. 생, 노병사와 같은 근본적 고뇌의 문제는 그 다음의 일이다.
현하 조계종은 1954년 비구, 대처 분규가 시작되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절간이 절 빼앗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다.
이 때문에 불교는 민중들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다. 특히 지식인들은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아 교법을 공부하는 제자는 될지언정 사찰에 나와 불교 신도 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조계종이 창종 되면서 총무원을 둘러싸고 싸움질이 1년이 멀다하고 분규가 끊일 날이 없다. 그리고 돈이 많은 절간마다 절 빼앗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그 지긋지긋한 분규가 60년이 넘도록 그칠 줄 모르니 재가불자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조계종의 분규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다. 분규 때마다 종단개혁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으나 도로 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지난 여름철의 더위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이때 설조 대종사는 80 노구로 목숨을 걸고 40여일에 걸쳐 단식을 하면서 종단 개혁을 외치고 있으나 출가 비구는 침묵하고 있었다. 참다못한 재가불자들이 종단이 안고 있는 적폐를 청소하고자 들고 일어났다. 이제껏 종단의 문제는 스님들한테 맡기고 있었던 저들이었다. 신도들이 단단히 뿔이 난 것이다. 저들은 종단과 스님들을 향해 온갖 나쁜 말을 쏟아 부었다.
1970년 대 재가불자인 조 덕송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그 신문 사설에서 “조계종은 동네북인가” 라는 제하에 조계종을 일컬어 아무리 두들겨도 소리 나지 않은 북, 찢어진 북이라면서 절규하듯 외친 적이 있다.
세상은 그야말로 몇 차례나 개벽한 것 같은데 조계종만큼은 60년이 흘러간 지금까지 옛 보다 못한 것 같으니 참 딱한 집단인 것 같다.
사실 조계종이 60수 년 동안 싸움질이 멈추지 않는 원인은 서양의 물신주의의 천박한 자본주의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승려가 돈을 만지고부터 승단이 조용할 날이 없다. 절간의 돈은 삼보의 정재가 아닌가, 삼보의 재산을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은 종법은 물론 출가 수행자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 사찰의 삼보 정재를 주지 승려들이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삼아 독단 전횡하고 있다. 일찍이 봉암사에 세워진 지증 국사 비문에 고운 최 치원은〔不爲 淸衲之 所居, 其作 黃巾之 窟〕 “사찰이 청풍납자가 살지 않으면 그 황건적의 굴을 짓는다.” 라고 하였다. 오늘의 한국 사찰을 실태를 여실이 간파한 말씀으로 생각된다.
작금 종단의 개혁은 승려들한테서 돈을 떼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승려 개인들이 소유한 돈을 종단에 귀속하는 극약처방이 필요하다.
차제에 종정 예하 그리고 원로스님, 교구본사 주지 등 종단의 중요 소임자는 물론 중진 스님들의 재산부터 공개하고 종단에 귀속시키는 대 결단이 필요할 것 같다.
전 세계 불교를 신앙하는 나라 가운데 돈을 직접 만지고 관리한 나라는 유독 한국 승려들이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사실 한국 승려들처럼 고달픈 승려들은 없다. 살림살이 하는 일을 벗어나 승려의 본분(本分ㅡ수행과 전법)에 충실 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다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돈을 관리하는 주지 승려들이 물세, 전기세 등 공과금과 집 수선하는 일 등 돈 걱정하는 일이 참으로 고달픈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공연히 돈을 직접 만져 한국 승려들이 스스로 고달픈 생활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11, 결어
일제 강점기를 살다 가신 만해 한 용운은 말했다. “이 세상에 제일 더러운 것은 똥이다. 똥보다 더 더러운 것은 송장이다. 송장보다 더 더러운 것은 30본사 주지들이다.”라고 하였다.
저 만해의 절규는 당시 절박한 시대적 상황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절대 자유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전 근대적 사찰 환경은 말하기초차 어렵다. 말을 하게 되면 종단을 헐뜯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넋두리는 끝이 없다.
한국불교 1700년 역사를 돌아 보건데 오늘과 같은 대명천지 민주 자유주의 체제하에 저 위대한 불교를 만났으니 다행하고 기쁘기 한량없어야 하겠거늘 오늘의 불교 현실을 지켜보면서 출, 재가자들 모두가 불쾌하고 기분이 나쁘다.
이제 삼보의 정재는 사찰마다 건강한 재가불자들에게 맡기고 출가 승려는 본분(本分 - 수행과 전법,)에만 열중하는 것이 해답이다. 무엇 때문에 저 더럽고 지저분한 돈을 거머쥐고 고달픈 삶을 자초하는가,
어떻게 해서든 승려들이 돈으로부터 자유스럽게 해야 한다. 승려 개인이 돈을 소유할 수 없는 극약처방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출가 스님들의 수행환경이 돈 때문에 위협받는 일이 없는 제도적 방안이 마련할 것을 전제한 것이다.
위 세 문건의 제안서는 2011년 貧道가 백양사 주지 재임시절 본사주지 협의회의 자리에서 공론화에 부쳤으나 관심을 끌지 못한 사실을 밝힌다. 그것은 아마 뒷방 공사를 생략한 채 불쑥 내 놓은 까닭이리라, 그리고 승려들은 본시 나부터 회의에 익숙하지 못한 때문으로 생각된다. 승려는 공부에 임해서는 철야 용맹정진을 하면서 죽을힘을 다하기도 하고, 또 종권을 둘러싸고는 온갖 추태를 보이지만 공론화를 통한 구종의 모습을 이제껏 볼 수 없었으니 이 것이 첫째 한국 불교의 불행이다.
설조스님 단식에 따른 사건의 소회 일단은 이후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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