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관법의 심리적 분석
1)자기통찰
(10)관세음보살 색신
제10~11관은 각각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관한다. 보살(bodhisattva)은 중생 구제의 원력과 자비실천을 지향한다. 제10관세음보살 색신관에 대한 심리적 이해는 진실을 말하는 소통의 진정성이 주는 관계의 회복이라 해석할 수 있다. 경청과 공감의 관계적 영역을 통찰했다.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는 존재론적 변형을 경험하게 한다. 관상이 고도의 정신적 영역의 의식 변화가 주는 성장의 지평을 넓혀 주는 이유이다.
관세음(觀世音) 범어는 아발로키테스바라(Avalokitĕśvara)이다. 『법화경』 등에서는 광세음(光世音), 관자재(觀自在), 관음(觀音), 관세자재(觀世自在)라 한다. 강은애는 「'관음주송(觀音呪誦)'의 종교학적 함의』에서 "관세음보살은 33응신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구원자로서의 변모를 갖추는 등 변용이 진행 중이며 무한한 자비 능력에 대한 신뢰가 변화관음을 발생시켰다."고 보았다. "명호를 외우는 관음주송에 대해 무한한 자비의 구제력을 갖춘 이름이 화두와 같은 집중의 매개역할을 하며 자력적 수행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며 현대적 의미를 살폈다. 대승불교에서 관음은 중생을 향한 자비심에서 반야를 수행하던 초기불교의 단계를 확장한 적극성을 띈다. 따라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를 경우 이근원통을 자각하는 대비원력(大悲願力) 성취의 자기실현을 이룬다. 대상에 대한 신앙이 점차 자신의 수행으로 이어져 주제와 대상이 합일되는 불이의 경험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다양한 정서적 변화와 심신치유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법화경』 '제25관세음보살보문품'은 관음의 명호를 듣거나, 몸을 친견하거나, 마음에 늘 염하여 모든 고뇌를 소멸하게 하는 다섯 가지 관법을 설했다.
"진실의 관(眞觀), 청정한 관(淸淨觀), 넓고 큰 지혜의 관(廣大智慧觀), 연민의 관(悲觀), 자비의 관(慈觀)을 항상 원하고 우러르면 오염되지 않은 청정의 빛, 지혜의 태양이 모든 어둠을 무너뜨리고 풍화의 재앙을 능히 조복하고 널리 세간을 비춘다."
진관(眞觀)은 범본에서 '아름다운 눈(śubha-locana)'을 말한다. 즉 진제를 비추어 보는 공관(空觀)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청정관은 '맑은 눈'이며 갖가지 다양한 모습을 살피는 가관(假觀)이다. 광대지혜관은 큰 지혜로 비춰보기 때문에 공(空)과 가(假)를 함께 비추는 중도관(中道觀)이라 할 수 있다.
제10관의 순서는 육계와 천관 순서로 관하고 나머지 모습들도 차례차례 관상한다.
"만약 관세음보살을 관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땅히 먼저 그 육계를 관해야 하며, 그 다음으로 천관을 관할지니라. 그 나머지 여러 모습들도 역시 차례차례로 관하여 모두 밝고 또릿또릿하게 관하여 마치 손바닥 안을 들여다보듯이 하여야 하느니라. 이러한 관을 이루는 사람은 이를 이름하여 정관이라고 하고 만약 이와 다른 관을 한다면 사관이라고 부른다."
관세음보살 색신관은 마음으로 관음을 짓고 그 마음이 관음임을 자각하는 관상이다. 관세음보살 칭념은 언어적 통찰이다. 제10관세음보살 색신관은 관세음이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에서 말이 정화돼 진실을 말하고 듣는 관계의 진정성으로 치유와 성장을 이룬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11)대세지보살 색신관
제11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관은 지혜의 빛을 상징한다. 의(意)의 청정성을 자각하는 단계로 해석할 수 있다. 삶의 여정에서 목적에 집중하는 지혜의 빛을 비춤으로써 장애물을 극복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대세지보살 범어는 마하스타마프라프(Mahāsthāmaprāpta-bodhisattva) 마하나발(摩訶那鉢)이다. 시방세계를 비추어 인연 있는 중생들에게 한량없는 청정 광명의 힘이 있어서 대세지인 것이다. 대세지보살은 관세음보살과 크기가 같다. 관세음보살의 머리 위의 천관 가운데는 한 분의 화신불이 서 있고, 대세지보살의 머리 위에는 보배 병이 있다. 육계 위에 있는 보배 병에는 모든 광명을 담아서 불사(佛事)를 나타낸다.
"아미타불에 자비와 지혜의 두 문이 있으니 관세음은 자비문을 표하고, 대세지는 지혜문을 표한다. 이름을 대세지라 한 것은 ①큰 지혜가 온갖 곳에 이르는 까닭 ②지혜의 빛으로 모든 중생에게 널리 비치어 삼악도를 떠나서 위없는 힘을 얻게 하는 까닭 ③이 보살의 발을 던지는 곳에 삼천대천세계와 마의 궁전이 진동하는 까닭 ④세상의 국왕 대신과 같이 위엄과 세력이 자유자재한 까닭이다. 이 거룩한 이가 이와 같이 대자비로 자재한 지위를 얻었으므로 이렇게 이름하였다."
대세지보살은 무량수불이 거느린 권속이므로 보살을 비추는 것은 붓다를 비춘다고 할 수 있다. 보살을 관하며 오온에 속박되어 있어도 두려움 없이 바라보는 이해와 통찰이 지혜를 가져온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온몸의 광명은 자금색으로 시방세계를 비추어 인연있는 중생은 모두 볼 수 있느니라. 다만 이 보살의 몸에 있는 털구멍 하나에서 나오는 광명만 보아도 곧 시방세계에 계신 한량없는 청정하고 미묘한 모든 부처님의 광명을 볼 수 있느니라. 그런 까닭에 이 보살을 무변광(無邊光; 無量光)이라고 이름하며, 또 지혜의 빛으로 모든 중생들을 비추어 삼도(三塗; 지옥·아귀·축생)에서 벗어나게 하는 위없는 힘을 얻기 때문에 이 보살을 '대세지(大勢至)보살'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대세지보살은 지득대세(得大勢) 또는 대세지, 줄여서 세지라 한다. 제8관까지가 거친 상상(麁想)이었다면 제9~11관까지의 색신관(色身觀)은 부처님의 모습을 '두루 비추어'보는 개방적인 연기적 흐름에 맡기는 것을 신뢰했다. 순간의 깨달음이 주는 자기(본질) 확신의 지혜로 의(意)가 정화된 청정 자각을 의미한다.
눈으로 부처의 몸을 보는 것(觀), 곧 부처님의 마음을 보는 일이다. 몸을 봄으로써 마음속의 생각이 더욱 밝아지는 까닭에 부처의 마음을 볼 수 있게 된다. 색신관은 대자비를 의미한다. 중생에게서 연유한 자비, 법에 연유한 자비, 무연자비(無緣慈悲)로서 중생을 두루 거두어들이는 마음이 부처의 마음의 모습이다. '이 마음이 부처되고(是心作佛), 이 마음이 곧 부처(是心是佛)'라는 부처에 감응하고(應佛), 선정을 닦아서 자신이 부처를 이루는 것[果佛]을 뜻한다. 제8~11관은 원형적 사념체로서 진신을 관한다고 볼 수 있다.
(12)보관(普觀)
제12보관은 스스로 연화대에 자리한다. 소우주적 자아가 대우주와 조화를 이룬다. 자존감을 회복해 심리적 안전기지(secure base)를 구축한 단계를 상징화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일상은 과도한 열정과 집중, 자기팽창 요구로 안정은 위협받는다. 불안과 강박, 심리적 위축, 우울과 무기력, 자존감 하락, 거부당한 느낌의 좌절감, 정신적 에너지의 붕괴로 내면의 분노에 의한 침묵과 의존증, 섭식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불륜과 이혼, 독신, 섹스리스, 가정폭력, 은둔형 외톨이, 등교 거부, 게임 중독, 불안장애, 심신증, 스트레스 장애, 강박성 장애 등을 동반할 수 있다.
영국의 정신과 의사인 존 볼비(John Bowlby)의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을 발전시킨 심리학자 메리 에인스워스는 애착이 빚어내는 안도감의 기반을 '안전 기지(secure base)'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안정된 사람일수록 마음읽기와 성찰능력이 탁월하다. 보관에 대한 심리적 이해는 두루 비추어 보는 성찰의 능력과 안정감으로 이해될 수 있다.
보관(普觀)은 '두루 비추어 봄'을 말한다. '무량수불의 극락세계를 보는 것'이라고 하여 두루 관하는 보관상(普觀想)이라 한다. 보광은 "보관이 자신의 왕생을 생각하는 관"이라 해석했다. "마땅히 자기 마음을 일으켜[當起 自心]자신이 서방극락세계에 태어나 연꽃 속에서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연꽃이 오므라들어 합해지는 것을 생각한다."고 하였다.
"관할 때는 마땅히 생각을 일으키고 마음을 먹어 자신이 극락세계에 태어나서 연꽃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연꽃봉오리가 오므라들고 합하는 것을 생각하고, 또 연꽃봉오리가 피는 것을 생각할지니라. 연꽃이 활짝 필 때에는 오백 가지 색의 광명이 나와 자기 몸을 비추는 것을 생각하고, 또 자기 눈을 뜨게 한다는 것을 생각할지니라."
적극적인 관상의 실천은 생각(mind)의 작동이기보다는 마음(heart)의 열림을 뜻한다. '연꽃 속에서 결가부좌를 하고 앉는다'는 의미가 고요의 선정상태를 나타낸다면 '연꽃이 피어날 때 오백 가지 광명이 나와서 자신을 비추는' 관상은 누구나 지닌 본래의 빛[佛性]이 자연스럽게 드러남을 의미한다. 더욱이 안목(眼目)이 열리는 관상은 현실 치유을 함의한다.
"또 부처님과 보살들이 허공 속에 가득한 것이 보이고, 숲과 나무와 강물과 새와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이 모두 묘법을 설하고 있으며, 그 법문이 십이부경(十二部經)과 합치되는 것을 보게 되느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무량수불의 극락세계를 보는 것'이라고 한다. 두루 관하는 보관상(普觀想)이라 하며 제12관이라고 한다. 무량수불의 무수한 화신(化身)이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과 함께 항상 이 수행하는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오시느니라. 이러한 관을 정관(正觀)이라고 하며 이와 다른 관을 사관(邪觀)이라 부른다.
인용문은 무량수불의 화신인 관세음·대세지보살과 함께 수행하는 사람이 숲과 나무, 강물과 새를 비롯한 자연계가 부처님의 묘법을 설하는 무정설법(無情說法)의 장관이다. 물질계와 정신계가 하나로 어우러진 물아일체(物我一體)는 자력의 정토관점에서 볼 때 불국토와 다름아니며, 극락은 죽음 이후 왕생만을 의미하지 않고 생사가 둘이 아닌 현실 장(場)에서 펼쳐지는 긍정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우리는 실존적 한계로 제한된 세계에 살고 있지만 '자신이 극락세계에 태어나서 연꽃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광명이 자기 몸을 비추듯 두루 비추어 본다는 삼업(三業; 身·口·意)이 정화된 자기수용의 상태를 의미한다. 개성화의 단계에서 건강한 방어인 승화, 유연한 이해단계로서 유머가 가능하다. 지관(止觀)을 바탕으로 상(像)을 이용해 상(相)에서 벗어나는 선정이 표현됐다.
(13)잡상관(雜想觀)
제7~13관까지 차제의 관상은 정보관(正報觀)이다. 따라서 제13잡상관은 제1~13관이 내포한 인간과 부처의 세계를 통합한다. '마음 밖에 부처가 없고, 부처 아닌 게 없다'는 대승보살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제13관은 모든 부처님이 한 모습과 같음을 관하여 단절과 분리감을 해소하여 전체성을 이룬다.
만약 지극한 마음으로 서방정토에 태어나고자 한다면 먼저 마땅히 높이가 육척이 되는 불상 한 분이 연못 위에 계신 모습을 관해야 하느니라. 앞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무량수불의 몸은 끝이 없어서 범부들의 마음으로는 미칠 수가 없느니라. 그러나 그 부처님에 대한 숙세의 원력 때문에 깊이 생각하면 반드시 성취할 수 있느니라. 오직 불상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큰 복덕을 얻게 되는데, 하물며 부처님의 구족된 모습을 관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가 얻게 되는 복덕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의는 "크거나 작거나 모두 부처님의 몸이며, 의심을 털어내서 모두가 부처님을 존중하는 생각을 낳게 한다."며 아미타불이 변화하여 나타남이 자유자재하다고 밝혔다. 색신관의 관상을 위해 공(空)에 들어서야 한다. 분열되지 않은 본 마음인 '일심(一心)'을 관한다. 지의는 일심삼관(一心三觀)으로서 공관(空觀)·가관(假觀)·중관(中觀)을 말했다. 차제의 관법으로 공관은 공(空)을 깨닫는 단계이며, 가관은 공(空)을 깨달아 중생교화의 단계, 중관은 중생교화의 공덕으로 완전한 깨달음(성장)을 얻는 단계이다. 오염된 의식에서 오염된 현상이 전개됨으로 정화단계를 거쳐 자기가 실현된 세계를 의미한다.
<관상의 심리치유적 원리와 적용 가능성 연구/ 황선미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상담심리전공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