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관 건립, 100년사 편찬 등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 ■이천 최초 공립학교의 탄생 이천 최초의 공립학교인 이천초등학교가 지난 5월 19일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이천초등학교는 일제 강점기 시절 전국의 모든 군과 면에 한 개 이상의 초등교육기관을 수립한다는 공교육 체제 강화에 따라 일군일교, 일면일교정책이 추진되면서 1911년 5월 17일 ‘사립이천보통학교’로 창립 개교했다. 1912년 2월 15일 국가로부터 정식 교육기관으로 인정받은 공립학교로 편입, 이천초등학교는 이천지역에서 인가받아 현존하는 최초 공교육기관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이후 ‘꿈과 사랑을 키우는 학교’라는 슬로건 아래 ‘내 할 일을 스스로 찾아하는, 슬기로운 생각을 키우는, 바른생활을 실천하는, 튼튼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실력 있는 어린이’를 교육목표로 98년간 2만 49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이천 공교육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이천 공교육의 모태로 일제 강점기 중등교육기관이 전무한 상태에서 학교 교육을 대표한 공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이천지역민의 교육의 모태가 된 곳이 바로 이천공립보통학교, 지금의 이천초등학교다. 해방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학령기 아동을 미처 수용하지 못해 1955년에는 이천남초등학교를 분리시켰고, 1990년에는 설봉초등학교를 분리함으로써 명실공히 이천 교육의 모태로서 이천 공교육의 선도역할을 해왔다. 또한 이천 시내 뿐 아니라 인접한 신둔, 백사, 마장, 부발 지역의 모든 초등학교는 모두 그 뿌리를 이천초등학교에 두고 있으니, 과히 이천 교육의 종갓집이라 할 수 있다.
■이수흥 열사 등 항일독립운동가 다수 배출 시대의 특성상 이천초등학교는 다수의 항일독립운동가를 배출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로 이수흥 의사를 비롯해 3.1운동 당시 이천보통학교 학생 신분으로 4월 2일 장날에 ‘이천읍 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강문형(당시 16세), 최종석(당시 16세), 서석운(당시 14세) 등이 있다. 이와 함께 일제강점기 시절 이천보통학교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 중 하나로 ‘불온 낙서 사건’이 100년사를 편찬하며 새롭게 발굴됐다. 1941년 6월 21일 이천보통학교 고등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인수 학생이 종이에 ‘조선이 독립된다(朝鮮獨立ナル)’는 글귀를 적어 소지하고 있다가 같은 학급의 히카와 하쯔꼬 학생에게 발각됐다. 그에 따라 이인수 학생은 7월 3일 이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경기지방법원 여주지청 검사분국 감독서기 가네꼬 칸에게 내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배후가 없으며, 이인수 학생이 범죄를 구성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고 판단, 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결론되면서 이인수 학생은 풀려날 수 있었다.
■대를 잇는 동문가족 이천초교 71회 졸업생인 이기훈 씨 네는 3대에 걸친 6명의 동문이 한 가족이다. 15회 졸업생인 할아버지부터 41회 아버지, 77회 막내 동생까지 대를 이은 동문가족이다 보니 아버지가 공부하던 그 교실에서 큰 딸이 수업을 받았다거나 예전 담임선생님을 학부형이 되어 다시 만나는 등 특별한 추억거리도 많다. 또 책가방이 없던 시절 보자기로 둘러 싼 ‘책보’'를 허리에 메고 다닌 일, 운동화가 닳을까 아까워 운동장에서 맨발로 공을 차며 뛰어놀던 일, 트럭 짐칸에 앉아 소풍가던 일 등 아버지가 들려주는 추억담은 전쟁을 전후해 모두가 궁핍했던 그 시절 시대상을 느낄 수 있다. 그런가하면 일제강점기에 학교를 다녔던 할아버지의 공립보통학교시절 얘기들은 한편의 시대극을 보는 듯,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공부가 된다. 이렇듯 이천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이천초등학교에는 대를 잇는 동문가족들이 수두룩하다.
■새로운 100년을 도약하는 ‘이천교육’ 이천초등학교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교표와 교목을 새롭게 바꿨다. 기존의 교표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으며 학생들이 그리기가 어렵다는 의견에 따라 이천 최초 공립학교로서의 상징성과 새로운 도약을 위한 이미지로 교체한 것이다. 은행나무였던 교목은 민족문화 100대 상징물 중 하나인 소나무로 바꿔 재도약하는 새로운 100년을 기리고자 하는 소망을 담았다. 지난 4월 8일에는 일부 동문들이 기증한 개교100주년 기념 표석이 세워졌으며, 같은 달 30일에는 이천초등학교 100년의 역사를 정리한 ‘이천초등학교 100년사’ 발간기념회를 열었다. 또한 100주년 기념일을 나흘 앞둔 5월 15일에는 이천초등학교 교정에서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총동문체육대회를 열고 1천여명의 동문과 지역주민이 함께 모여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했다. 이와 별도로 학교 내에서는 교육과정 운영과 연계한 100주년 기념 축제 및 각종 문예 행사를 진행해 1년 내내 10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각계각층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동문들을 초청해 재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실어주기 위한 강연을 연중 개최할 계획이다. ※ 인터뷰 / 박인오 이천초등학교 총동문회장 “명문초교의 밑거름으로 지역사회 발전 앞장” “이천초교가 100년 전부터 꾸준히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 100주년을 기점으로 ‘찾아오는 명문교육도시’ 이천의 희망으로 거듭나게 될 때까지 3만 동문 모두가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천시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천초등학교가 개교 100주년 기념식과 총동문체육대회를 범시민축제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총동문회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빛을 발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천초등학교 총동문회를 이끌고 있는 박인오 회장(53회)은 올해 100주년 기념행사를 내실 있게 치르기 위해 모교와 동문 간의 화합과 끈끈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이천초 100년사 자료수집에 온 열정을 쏟아 부었다. 박 회장을 비롯한 동문들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를 구성하고, 일제 강점기와 전쟁으로 소실된 자료들을 수집하느라 수년전부터 발품을 팔며 동분서주했다. 그 결과 100년사를 발간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과 사진 등 소중한 자료들을 모을 수 있었던 것. 박인오 회장은 “동문 없는 모교 100년사는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동문들의 화합과 단결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며,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을 위해 협조한 동문들과 원로 선배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박 회장은 또 “우리는 우연히 스쳐가며 만난 인연이 아니라 6년간 같은 배움터에서 학문과 기술을 배우며 꿈과 이상을 키워온 동문들”이라고 강조하며, “동문간의 우정과 스승에 대한 은혜에 보은하며 살아가는 이초인으로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는 동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천초교는 이천시의 역사이며 전통을 이어 나가는 중심 학교”라며 “개교 100주년을 맞아 동문회 발전은 물론 지역사회 발전에 계기가 되는 기점으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 인터뷰 / 윤석모 이천초등학교 교장 “개교 100주년 행사를 통해 이천초가 차지하는 이천지역에서의 교육적 의의를 되새기고 새로운 100년을 도약하는 이천초의 위상과 역량을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을 것입니다.” 지난 2008년 3월 이천초등학교 제22대 교장으로 부임한 윤석모 교장은 “이천초와의 인연은 운명이 아닌 숙명”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이천초교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하다. 윤 교장과 이천초교의 역사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에서 교직생활을 하던 윤 교장은 1991년, 타지인 경기도로 발령 받아 이천초교와 첫 인연을 맺으며 8년간 근무했다. 이후 관내 여러 학교를 거쳐 12년 만에 이천초교 교장으로 오게 된 것. 윤 교장은 “마치 친청집에 돌아온 듯 마음이 편안하다”면서 “애착이 큰 만큼 지역에서 첫 100년사를 맞이하는 학교 교장으로서의 의무감과 책임감이 크다”고 소회를 전했다. 지역에서 처음 맞는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며 윤 교장은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단’과 별도로 ‘교내추진위원회’를 조직, 운영하고 있다. 교내추진위는 학예행사분과, 홍보협력분과, 학교사편찬분과, 기금조성관리분과로 나눠 100주년 기념행사가 끝난 이후에도 교육과정 운영과 연계한 100주년 기념 축제 및 각종 문예 행사를 연중 진행할 예정이다. 윤 교장은 “재학생들에게는 애향심을 북돋우고 졸업생들에게는 모교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는 계기로 삼아 주민참여를 유도해 학교 발전과 전통을 이어 나가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출처] 이천교육선도 100년 ‘이천초등학교’ ‘백년 역사의 혼, 천년 미래의 꿈이여 영원하라!’|작성자 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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