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彭年 先生 記錄(朝鮮王朝實錄에서 발췌)128~133 기사＜11＞

[柳志世-朗惠]

129.선조실록 14권, 선조 13년 5월 26일 갑오 2번째기사 1580년 명 만력(萬曆) 8년

조강에 《춘추》를 강하고, 이산해가 전장과 산업의 영위는 권간의 일임을 아뢰다

상참은 정지하고 조강이 있었다. 상이 사정전에서 연 조강에 나아갔다. 《춘추》를 강하였다. 대사간 김첨경(金添慶)이 아뢰기를,

"조종조에서 매일 상참과 조참을 행한 것은 정사를 지극히 부지런히 하신 훌륭한 고사입니다. 근래에는 상참이 없어서 소관(小官)이 전혀 천안(天顔)을 뵙지 못하며 심지어 왜인(倭人)·야인(野人)도 입시(入侍)하지 못하였으니, 그들이 제 나라로 돌아가서 무슨 말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예문(禮文)에 있는가? 있다면 하는 것이 마땅하다. 봄철에는 일이 많았고 지난번에는 피전(避殿)도 하였지만 지금은 날씨가 더우니 수시로 해야 한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근래 사습(士習)에 대하여 사대부 사이에 의논이 분분합니다. 부자가 된 후에야 선(善)을 행할 수 있다 하며 명사(名士)라는 사람들도 모두 재산 늘릴 것만 생각하여 노전(蘆田)과 해택(海澤)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진전(陳田)까지도 제방을 쌓거나 개펄을 파내는데 회문(回文)을 돌려 협동 작업을 하자는 자도 있으니 이는 그 마음가짐이 매우 밝지 못한 것입니다. 먼저 마음을 잃고서 뒤에 선을 행한다는 말은 신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상께서는 다시 신칙하고 격려하시어 이러한 폐습을 근절시키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세상의 이목이 있으니, 한두 사람을 탄핵해서라도 징계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또 이르기를,

"부자가 된 뒤에 선을 행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인데 이 말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하였는데, 김첨경이 아뢰기를,

"일정한 산업이 없으면 본심을 지킬 수 없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말은 백성을 기르는 방법이지, 사대부가 자처(自處)할 도리는 아니다."

하였다. 이산해(李山海)가 아뢰기를,

"조종조에서는 조금이라도 산업을 경영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탄핵했기 때문에 벼슬하는 사람은 일체 이러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였는데, 상이 이르기를,

"중국의 조관(朝官)은 벼슬길에 나온 뒤에는 집을 새로 짓지 않고 모두 빌어서 거주한다 하는데 이 말이 사실인가?"

하니, 산해가 아뢰기를,

"중국의 경우는 알 수 없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벼슬한 뒤에는 가업(家業)을 경영하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권징이 아뢰기를,

"전장(田莊)이나 늘이고 산업을 영위하는 등의 일은 전일 권세를 휘두르던 간신들이 한 일이지 지금에야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이이(李珥) 같은 사람은 살고 있던 가옥도 팔고 갔습니다. 근일 붕우 사이에는 서로 믿고 벼슬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도리가 없어져서 지난날 홍혼(洪渾)의 처자는 상수리를 주워 먹었습니다. 신이 보니 김계휘(金繼輝)도 고부(古阜)에 있을 때 그 처자가 의지할 곳이 없었고 홍섬(洪暹)이 소신의 집 옆에 살았는데 전혀 가산을 영위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와 같이 하면 사습도 역시 아름답게 될 것이다. 임금은 충신한 사람에게 후한 녹봉을 주므로 지사(志士)는 구렁에서 죽을 것도 돌아보지 않는다고 하였다. 박팽년(朴彭年)이 세마지기 밭을 사들였는데, 그 친구가 ‘녹만으로도 농사의 수확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 하자, 팽년이 즉시 그 밭을 팔아버렸다고 하였다. 대간은 임금 앞에서 탄핵할 때에 범연하게 아뢰어서는 안 된다."

하였는데, 성낙(成洛)이 아뢰기를,

"비록 탄핵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논의를 들으면 필시 스스로 부끄러워서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김수(金睟)가 또 아뢰기를,

"이이의 일은 전에 아뢰려고 하다가 감히 아뢰지 못하였으나 지금 이미 언급이 된 터이라 감히 아룁니다. 그 사람이 벼슬사는 것을 즐겁게 여기지 않아 병을 핑계대고 물러난 후에 의식이 매우 어려워서 처가쪽의 집까지도 팔았습니다. 당초에 봉가(奉家)와 해택(海澤)을 가지고 다툴 때에 비록 이이의 이름으로 소장을 올렸지만 실은 그의 형 이번(李璠)이 한 일인데 봉가에서는 이이가 사주한 것이라고 의심합니다. 이이가 그 형을 막지 못하였으니 허물을 받아 마땅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설사 형이 그런 일을 하더다도 형을 의리로 설득시켜 제지하였어야 할 것인데 어찌 이와 같은 일을 하였단 말인가. 빼앗고 안 빼앗은 것은 내가 알지 못하겠지만 시골에 있을 때는 부유하게 살았다고들 한다."

하였는데, 김수가 아뢰기를,

"당초의 처지가 소홀하기는 하였지만 남의 토지를 뺏은 일은 없었습니다."

하였다. 우승지 권징(權徵)에게 전교하기를,

"전 전생서 주부 정순희의 딸과 승훈랑 홍여겸의 딸을 숙의로 결정하여 명호(名號)까지 정하였다. 후궁이 된 사람이 여염에 있을 수 없으니, 정씨는 어의동(於義洞)에 있는 궁으로 홍씨는 봉상시동(奉常寺洞)에 있는 궁으로 민씨는 수진방(水眞坊)에 있는 궁으로 각각 명일에 옮길 것을 예조에 이르라."

하였다.

이미 중궁이 있는데 또 숙의를 두는 것은 후사(後嗣)를 넓히는 것이다. 다만 우리 나라는 혼례가 엄하지 못하여 사대부집 처녀들을 궁중에 모아놓고 간택하되 그 중에서 적합한 자를 보아서 결정하는 것이니 이는 남녀의 교제를 신중히 하고 혼인의 예절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선왕 때부터 정해진 예가 없고, 예관(禮官)도 아직까지 혼례를 강구하지 않는다. 숙의 선택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대혼(大婚)의 예도 그러하여 근심하고 진지할 의의가 전혀 없으니, 예문의 결여된 곳이 이와 같이 많다.

선비로서 가산을 경영하는 것은 비루한 일이므로 의논할 것이 못된다. 다만 지나치게 심한 자가 있으면 분명하게 적발해서 논핵하려 하고 그렇지 못한 바에는 차라리 논하지 않는 것이 낫다. 어찌 애매하게 지적하는가. 사대부가 가산을 경영하는 것을 사류의 병통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온 조정의 사대부가 모두 모리만하는 비부(鄙夫)가 될 것이니, 임금으로 하여금 마음속에 의혹이 쌓여 모든 사람을 다 똑같이 보아 사대부란 모두 모리만하고 염치없는 좋지 못한 사람이라도 여기게 할 것이다. 그러니 군상이 선비를 가볍게 보는 마음을 열어주어 후일 사대부의 말도 믿지 않고 계책도 받아들이지 않게 하는 것이 지금 어떤 애매모호한 그릇된 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딱하다. 처음 발설한 자가 어떻게 그 죄를 면하겠는가.

【태백산사고본】 8책 14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361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경연(經筵) / 왕실-비빈(妃嬪) / 외교-왜(倭) / 외교-야(野) / 사법-탄핵(彈劾) / 농업-전제(田制) / 농업-경영형태(經營形態) / 역사-사학(史學)

130.선조실록 161권, 선조 36년 4월 21일 정미 1번째기사 1603년 명 만력(萬曆) 31년

사헌부에서 산음 현감 김응성과 태안 군수 박충후를 탄핵하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산음 현감(山陰縣監) 김응성(金應成)은 앞서 현풍 현감(玄風縣監)으로 제수되었을 때 본현(本縣)에 비록 조상의 분묘가 있기는 하지만 족속(族屬)들이 사는 곳으로 노비나 전답이 있어 법에 마땅히 기피하도록 되어 있는 곳이 아닌데, 감히 자신의 사정(私情)만 가지고 법을 무시하고 정장(呈狀)했으니, 이미 불가한 짓을 하였습니다. 어찌 그의 소원대로 따라서 다른 고을을 제수할 수 있겠습니까. 김응성을 그전에 제수한 대로 내보내고, 맞바꾸게 한 공사(公事)를 시행하지 말도록 하여 뒷날에 법을 무시하며 사정만 따르게 될 폐단을 막으소서.

태안 군수(泰安郡守) 박충후(朴忠後)는 난리 뒤에 출신(出身)한 사람으로 무재(武才)가 없고 또한 글을 알지 못합니다. 적을 방어하고 백성을 다스리기에는 실로 소임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체차를 명하소서."

하니, 【박충후는 문종조(文宗朝)의 충신 박팽년(朴彭年)의 후손이다. 세조(世祖)가 육신(六臣)을 모두 주살(誅殺)한 뒤에, 박팽년의 손자 박비(朴斐)는 유복자(遺腹子)이었기에 죽음을 면하게 된 것이다. 갓 낳았을 적에 당시의 현명한 사람을 힘입어 딸을 낳았다고 속여서 말을 하고 이름을 비(斐)라고 했으며, 죄인들을 점검할 때마다 슬쩍 계집종으로 대신하곤 함으로써 홀로 화를 모면하여 제사가 끊어지지 않게 되었다. 박충후는 곧 그의 증손으로서 육신(六臣)들 중에 유독 박팽년만 후손이 있게 된 것이다. 】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고 의성군(義城君)을 추고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93책 161권 6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469면

【분류】

왕실-종친(宗親)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사법(司法)

131.선조수정실록 21권, 선조 20년 9월 1일 정해 8번째기사 1587년 명 만력(萬曆) 15년

공주 교수 조헌이 소장을 올렸는데 감사가 받지 않자 사임하고 귀향하다

공주 교수(公州敎授) 조헌(趙憲)이 주도(州道)를 통하여 소장을 올렸는데 감사가 받지 않자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조헌이 이미 만언소(萬言疏)를 올려 시사(時事)를 말하자 조론(朝論)이 공박하기를 마지않았으나 상이 용서하였다. 이 해 5월에 다시 소장을 올려 시사에 대해 극언(極言)하면서 고금의 사례를 원인(援引)하여 분주(分註)하여 첩황(貼黃)하였는데 모두 수만언이었다. 가난하여 행장을 꾸려 서울에 올라올 수가 없었으므로 관례대로 주도를 통하여 소장을 올렸다. 감사가 그 소장의 내용이 시기(時忌)070) 에 크게 저촉됨을 보고 연루될까 두려워하여, 격례(格例)에 잘못이 있다고 핑계하여 물리쳤다. 조헌이 곧 다시 짧은 소장을 첨부하여 네 번 올렸으나 네 번 모두 받지 않았다. 뒤에 초소(草疏)를 올리려 하였으나 시행되지 못하였다. 드디어 글을 지어 선성묘(先聖廟)에 고하고 관직을 사임하고 옥천(沃川)의 향리로 돌아갔다. 그의 첫번째 소장의 대략에,

"삼가 헤아려보건대, 우주가 있은 이래로 한 세상의 뭇 소인들에게 거스름을 받은 사람으로 천신(賤臣)보다 심한 경우가 있지 아니하며, 천지 부모 같은 은혜로 사적으로 관대하게 비호한 것도 천신보다 더한 사람이 있지 아니한데, 한마디 말이 행해지지 않자 깊은 산 속으로 물러나는 것은 신이 차마 못할 일이긴 합니다.

소장을 올린 뒤부터 역(易)으로 달을 계산하면, 복괘(復卦)·임괘(臨卦)로부터 태괘(泰卦)에 이르고 태괘로부터 대장괘(大壯卦) 및 건괘(乾卦)에 이르러 이미 육양(六陽)이 자라난 것을 보았습니다. 망령된 의견으로는 천심(天心)이 화를 뉘우치고 경사(卿士)가 허물을 반성하여 지난 일을 생각하고 어제의 잘못을 깨달았다면, 성주(聖主)께서 곧 선으로 돌아오심을 보는 것이 마땅히 지난 해 겨울에 있었어야 하고 선류(善類)를 일으켜 인정(仁政)을 보필함은 금년 봄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몽폐가 더욱 심하고 저해가 더욱 심해서, 도깨비 같은 무리가 번갈아가며 환괴(幻怪)를 부려 짙은 안개와 구름이 하늘의 해를 가리듯 성상을 속이고 있으니 신은 삼가 성주께서 요순(堯舜)의 자질이 계시나 좌우 측근에 강직한 신하가 적은 것을 우러러 슬퍼합니다. 성인이 없다고 여겨 제멋대로 하면서 참되게 하지 않고 교묘한 말로 변명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 경영하는 것뿐이요, 한 마디도 국가의 계책에 대해 언급한 것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붕당을 만들어 원수가 되었는데도 당이 없다고 하고 벼슬길이 극히 혼탁한데도 맑은 조정이라고 하고, 민생이 흩어지게 되었는데도 그런 대로 안정되었다 하고 변경의 계책이 오래도록 졸렬한데도 근심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염려하시는 전하의 뜻으로 하여금 스스로 연안(宴安)하는 가운데 태만해지게 만들고 도를 바라고 현인을 애타게 구하는 전하의 성의로 하여금 하루 따뜻하게 하고 열흘 동안 차게 하는071) 즈음에 은연 중 사라지게 해서, 임금의 덕이 고립되어 팔다리 같은 신하의 도움이 적고 사방의 문이 열리지 않아서 듣고 보는 것을 의탁할 데가 없게 만들었습니다.

작상(爵賞)과 형벌이 혹 중화(中和)와 지성(至誠)의 발로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제 잘난 체하는 소장을 올려 사정(邪正)을 다투고 선류를 무함하는 말로 사람의 시비를 미혹시키고 바르지 못한 노여움이 하늘에 사무치고 뭇 의심이 나라에 가득하여 몇 해를 지나도 맑아질 기약이 없습니다. 이 또한 신이 분기를 타고 소장을 지으면서 그 예봉을 거두지 않고 현인을 해치고 나라를 좀먹는 것을 개탄한 나머지 한갓 거리에 떠도는 의논을 채집하였을 뿐 실지의 악을 밝혀 탄핵하지 못한 탓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말하는 사람이 조정에 가득하여 논쟁하느라 안정되지 않음에 따라 우리 군부(君父)를 참소와 하소연 사이에 시달리게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위 높은 고관들이 한 사람도 앞장서서 기운을 내어 공적인 시비의 소재를 진달한 것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성주께서는 조선의 사직이 편안하다고 여기십니까, 아니면 위태하다고 여기십니까. 그리고 팔도의 민생이 안락하다고 여기십니까, 아니면 고통스럽다고 여기십니까. 출입하며 보필하는 인사로는 누가 참으로 우리 임금을 사랑하는 자이며, 주변(籌邊)072) 의 일을 주간하는 신하로는 누가 참으로 나라를 근심하는 자이겠습니까.

신은 생각건대 나라를 근심하는 것이 자기 집을 근심함만 못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것이 자신을 사랑함만 못하다고 여깁니다. 그리하여 분산(分散)의 형세는 유악(帷幄)073) 에서 결정되는데 머리가 불타고 문드러지는 화는 엉뚱하게 숲과 못의 고기에게 미칩니다. 안위(安危)라는 두 글자를 말할 여지도 없이 존망(存亡)의 기미가 이미 결정되었고, 휴척(休戚)이라는 두 글자를 논하지 않더라도 산란(散亂)의 형세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신은 실로 모르겠습니다만, 누가 혜택을 베풀어서 백성의 살과 뼈를 기름지게 하고 누가 심사(心思)를 다하여 임금을 밝게 도와 유지하고 공고히 하여 수십 년 거수(居守)할 계책을 세우겠습니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가슴이 무너지고 간담이 서늘해집니다.

신이 이미 일생 곧고 고집스런 목숨으로 간인의 칼날 위에 내맡겨졌으니, 어떻게 차마 명주(明主)를 위해 공정한 시비의 소재를 다 진달하여 국론을 결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이 신의 소장에서 어질다고 한 자를 곧 참으로 주공(周公)·공자(孔子)·정자(程子)·주자(朱子)로 여기는 것이 아니고, 사행(事行)의 시종도 진선 진미(盡善盡美)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할 줄만 알고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자는 주공·공자의 무리이고, 그 선유(先儒)의 훈계를 실천하고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배척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정자·주자의 무리라는 말입니다.

판탕(板蕩)의 시기를 당하여 소인들이 뜻을 얻게 되자 여러 현인이 어육(魚肉)이 되고 선왕(先王)의 사랑하는 아우와 아들이 죄없이 형벌을 당하는데도 사람들이 감히 말을 하지 못하니 권간(權奸)이 국정을 담당하여 참독(慘毒)을 부린 것이 어떠하였습니까. 그런데 이탁(李鐸)이 능히 박순(朴淳)의 말을 들어 죽음도 돌보지 않고 시랑(豺狼)074) 을 쳐서 내쫓았습니다. 이때를 당하여 이산해는 황혹(惶惑)하여 벌벌 떨면서 감히 붓을 잡지 못하였습니다. 만일 이탁이 또 이산해처럼 나약하고 비겁하였다면 박순의 말이 홀로 행해질 수 없고 우리 조선 한 나라도 심히 위태롭게 되었을 것입니다. 선왕(先王)075) 의 지혜로운 결단을 어디에 시행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적(事跡)에 의거하여 마음을 논하여 보면 길가는 사람이나 심부름 다니는 사람이라도 박순이 자신을 위해 도모하지 않았고 자기 집을 위해 계획하지 않았다는 것을 훤하게 알 것입니다. 그런데 곧 척리(戚里)에 의탁하려 하였다 하여 그가 일생토록 현인을 구하고 왕을 보좌한 충성까지 묻어버리고서 자신이 그의 웃자리에 있고자 힘썼는가 하면 충심으로 공직에 봉사한 일대(一隊)의 사람까지 헐뜨으며 손으로 많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자 힘썼습니다. 그리하여 박순더러 정사를 전단(專斷)했다 하였는데, 박순의 형 박개(朴漑)는 한 고을의 군수를 지낸 데 불과하고 고종(姑從) 아우 고덕부(高德符)는 염근(廉勤)한 것으로 이름이 나서 감무(監務) 벼슬을 역임한 데에 불과하였습니다. 박순더러 당여를 부식했다 하였는데 그가 천거하여 쓴 사람은 기개를 숭상하고 염치가 있는 동서남북에 사는 사람으로서 오늘날 시배들의 형제와 인아(姻婭)가 모두 현달한 자리에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성명(聖明)이 위에서 통촉하시고 공의가 오래도록 펴졌는데도 사부(士夫)의 횡론(橫論)이 마침내 송응개(宋應漑)의 견식을 벗어나지 못할 줄을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송응형(宋應泂)은 반드시 그의 아비가 형의 팔을 비틀 의사가 없었다고 할 것이나 신은 이를 믿지 않습니다. 신은 듣건대 송인수(宋麟壽)의 어짊은 동국(東國)의 보배라 합니다. 그가 죽던 날 그를 알건 모르건 탄상(歎傷)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는데 송기수(宋麒壽)는 홀로 출사를 그만두지 않고 정원에 사진(仕進)하였다고 합니다. 동료들이 괴이하게 여겨 물으니, 답하기를 ‘이미 국적(國賊)이 되었으면 마땅히 속적(屬籍)에서 끊어야 하니, 무슨 복(服)이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뒤에 송인수를 위해 묘지(墓誌)를 지을 적에는 찬양을 극도로 하여 공론에 죄를 얻지 않으려 하였으니, 이른바 ‘평생의 간위(姦僞)는 그가 죽은 뒤에야 진성(眞性)을 알 수 있다.’ 한 것이 이것입니다. 신종효(愼宗孝)는 두둑이 잇닿아 있는 기름진 전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무관이 되자 벼슬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으로 을러서 그 전지를 빼앗았습니다. 윤임(尹任)의 아내가 그의 사패 노비(賜牌奴婢)가 되었는데 그에게 직접 길쌈을 짜서 바치게 했고 공신의 사제(賜第)를 받아서는 이를 팔아 댓가를 적립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사기행위로서 청렴한 행동이 못됩니다. 만일 자신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그 집을 온전히 보존하여 백년 뒤 공론이 정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옳은데, 어찌 반드시 급급히 팔아서 그 댓가를 저축하여 후일 이름을 사려는 계책을 한단 말입니까. 그것이 간계(奸計)에 의한 재물임이 드러나서 사람의 대열에 넣어주지 않았으므로 박순·백인걸(白仁傑)·김계휘(金繼輝)·이이(李珥)가 바야흐로 청론(淸論)을 주장하던 때 송기수가 이조 판서로 있었으나 감히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날로 분한을 축적하고 있었으며 그의 아우는 더욱 악하여 특히 청의(淸議)를 원수처럼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밖으로는 허봉(許葑)·김첨(金瞻)과 혼인을 맺어 감히 이이를 무함하는 소장을 올리는 한편, 박순·정철·백인걸·김계휘의 무리도 아울러 언급하여 번번이 추후하여 무함하였습니다. 송응개·송응형·허봉·김첨이 과연 나라를 근심하는 사람이라면 어찌 차마 양조(兩朝)의 강직한 신하를 아울러 한결같이 배척하여 내쫓기를 도모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이때 조정 반열에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홍가신(洪可臣)이 김첨에게 ‘그대는 그대의 처남 송응개가 한 일을 옳다고 보는가? 이이를 군자(君子)이면서 인(仁)하지 못한 자라고 하는 것은 옳거니와 소인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였습니다. 김제갑(金悌甲)도 오히려 하낙(河洛)의 소장을 옳게 여겼는데 성낙(成洛)·박근원(朴謹元)에게 견제되어 모두 중한 견책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어찌 오늘날 일단 언로(言路)나 시종(侍從)의 자리에 들어간 자이면 모두 허물을 숨기고 잘못을 얼버무리는 것만을 힘쓰면서 조금도 선을 도울 생각이 없는 자와 같은 지경에야 이르겠습니까.

대저 이발(李潑)·이길(李洁)이 처음에 성혼·이이의 문하에 종유(從遊)하면서 자신을 굽히고 남에게 겸허하였으므로 칭예(稱譽)하는 사람이 많아서 선인(善人)이란 이름을 얻었고, 성혼·이이도 함께 선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심의겸이 김효원에게 미움을 받게 되어서는 그 무리가 심의겸과 일을 같이하는 자는 박순이라고 공격했기 때문에 이발의 무리가 몰래 김효원을 주도하여 심의겸을 모함하고 박순을 내쫓으려고 힘썼는데, 정인홍(鄭仁弘)·김우옹(金宇顒)은 그들의 술책에 빠지는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성혼과 이이는 마음 속으로 반드시 ‘심의겸이 병통이 있기는 하나 평생의 일을 살펴보면 나라 일에 마음과 힘을 다 바치고 스스로를 봉식(封植)하지 않았으니, 외부의 의논이 비등하다 하여 호언(狐偃)076) 같은 충신을 가벼이 내쫓아서는 안 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발과 김우옹·정인홍은 성혼이 심의겸을 편든다고만 의심하였을 뿐 이것이 국인의 공언(公言)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당초 각립(角立)할 즈음 이발이 정철에게 ‘공이 어찌하여 심의겸을 끊지 않는가.’ 하니, 정철이 ‘의겸이 어버이를 섬기고 사람을 사랑함에 있어 볼 만한 점이 많이 있다. 어찌 그대 아저씨 윤의중(尹毅中)이 형의 아들을 죽이고 자기 아들에게 종통(宗統)을 빼앗아 준 것과 같은 지경에야 이르렀겠는가.’ 하였는데, 이것이 정철이 준엄하고 강직하여 이씨와 윤씨의 가문에 거듭 거스름을 받게 된 이유였음은 물론 친우까지 아울러 배격하여 있는 힘을 다하게 된 이유입니다. 이이의 허물을 논함에는 말단의 사람 쓰는 것에 대한 잘못을 말하였으니, 이는 구사맹(具思孟)과 고경명(高敬命)의 무리를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구사맹이 선을 좋아하는 마음을 지닌 것은 윤의중에 비하면 말할 수 없이 현격하게 다르고 고경명이 나라를 영화롭게 한 것은 허봉에 비하면 같은 선에다 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심의겸과 혼인을 맺었다 하여 반드시 구사맹을 내쫓고 이량(李樑)과 서로 안다 하여 반드시 고경명을 내쫓는다는 것은 모두 일방적인 말입니다.

이발이 친한 사람은 박근원(朴謹元)이므로 박근원을 허물이 적은 사람으로 여겼고, 이길이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은 허봉이므로 손을 빌어 이이를 해치는 것을 해롭지 않다고 여긴 것입니다. 당대의 특립(特立)한 선비들 중에는 혹 간인을 배척하는 데에 힘을 다하는 한편 선류(善類)를 힘껏 진용(進用)하는 자도 있고, 혹 예를 삼가고 정사를 밝히며 재화(才華)가 특이한 자도 있고, 혹 경서를 깊이 궁리하여 쓰여질 수 있음은 물론 도에 의거 나아가고 물러나는 자도 있고, 혹 신실하고 질박하고 정직하여 뭇 소인에게 흔들리지 않는 자도 있고, 혹은 세풍(世風)을 계술(繼述)하여 기골이 강한 자도 있습니다. 가령 작은 허물이 있다 하더라도 백성이 우러르는 정승의 자리에 오래 처한다면 이는 곧 첫 정사를 바르게 부호하고 만절(晩節)을 꿋꿋이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털을 불어 흠을 찾아내듯이 과오를 지적하여 한결같이 공박할 것을 도모하여, 반드시 경석(經席)에서 과감히 말을 못하게 하는 풍조를 만들고 재신(宰臣)의 반열에 있는 자는 아부에 따르도록 습관이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열읍의 뇌물이 권요(權要)의 문전에 폭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군사와 백성의 원망이 하늘에 사무치고 땅을 움직이게 하는 자라도 능한 관리라 하여 해마다 영전하여 제수해 마지않습니다.

영남·호남의 수운(輸運)이 적신(謫臣)의 집에서 없어지게 되자 옮겨 간 백성과 거주하는 군사들의 굶어 죽은 시체가 잇닿아 널려 있었는데도 두 차례 보낸 어사는 하나도 이에 대해 자세히 주문(奏聞)한 적이 없습니다. 언로(言路)에 바칠 탐장(貪贓)에 관한 서간이 영동(永同)의 도안(盜案)에 드러나고 재상에게 바칠 채수(債帥)의 댓가가 영새(嶺塞)077) 의 빈한한 군사를 두루 박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모두 박순의 무리가 평소 개탄하던 바이므로 이름이 알려진 자까지 일체 논박하여 쫓아내었습니다. 오직 음으로 권세가에게 후하게 한 자는 비록 나라를 좀먹는 역적이라도 사람들이 감히 지적하지 못하였으니 공도(公道)가 씻은 듯 없어지고 사욕이 범람하였습니다.

심지어 뜻이 있는 변방 장수라면 자신의 비장(裨將)으로 마땅히 형초(荊楚)의 기재(奇材)078) 를 선발해야 할 텐데, 당로자(當路者)의 부탁으로 시정(市井)의 자제가 아니면 향리의 용렬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활을 잡을 줄 아는 자가 드물어서 하찮은 적을 만나도 반드시 패하여 왜적이 횡행하게 하였습니다. 수령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자는 마땅히 잠질(岑晊)·범방(范滂)079) 의 아류(亞流)를 향사(鄕司)로 삼아야 하는데, 경재소(京在所)에서 뽑은 것은 권세가의 족당(族黨)이 아니면 전노(田奴)들이므로 기강을 정돈하는 술책이 없어서 모든 직무가 해이해져서 마침내 해충 같은 탐관오리가 구름처럼 일어나게 만들었습니다.

황전(荒田)의 부세(賦稅) 등급을 한결같이 중하(中下)로 하게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암행 어사[繡衣御史]가 핵실한 것은 조신(朝臣) 가운데 얼굴과 이름을 모르는 자뿐이었으므로 한수(漢水)가에서 이미 탄핵의 논의가 정해졌는데, 백성을 편리하게 하는 조종(祖宗)의 법이 쇠잔한 민호(民戶)에게는 미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형송(刑訟)의 판결은 일체 세리(勢利)에만 의거하므로 법관이 적용하는 법은 오직 그 종족이 한미하냐 혁혁하냐를 볼 뿐이니, 향려(鄕閭)의 사이에 쟁탈이 서로 잇따를 뿐 밤낮으로 다친 사람 보듯하는 군주의 은택이 선량들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온갖 관사에는 간사한 서리(胥吏)들이 고슴도치 털처럼 일어나게 되어 포목(布木)을 실어나르는 것이 큰 길에 잇따랐는데 조당(阻當)하는 비용이 사문(私門)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10에 6∼7할 이상입니다. 그러나 중외의 유사는 다시 정리할 계획을 하지 않고 소관(小官)과 대관(大官)을 막론하고 듣기 싫어하는 것이 습성이 되었으니, 군민(軍民)의 폐막(弊瘼)을 월(越)나라 사람 야윈 것을 보듯 합니다.

강직한 말을 전하께 앙달(仰達)하게 된 까닭은, 감히 스스로 읍장(邑將)과 방백(方伯)에게 진달하지 못하여 억울하고 원통함을 소설(疏洩)할 길이 전혀 없어서입니다. 아래에서 원망하는 사람이 한이 없고 하늘이 위에서 노하는 것이 한 달에 한두 번에 그치지 아니하니, 위망의 화가 조석에 임박하여 있습니다. 그런데 수년 사이에 하나의 사(私) 자로 말미암아 선량한 백성들이 고민하니 전하의 국사를 패망하게 하는 것이 장차 어떠한 지경에 이르겠습니까. 그러나 대관(臺官)과 학사(學士)는 이를 버려두고 논하지 않은 채 들어와 집에서 논하는 것은 오직 사적인 일로 공격당할까 두려워할 뿐이고 나아가 조정에서 논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당에 부회하는 것을 어질게 여길 뿐입니다. 그리하여 방정(方正)이 전도되고 충사(忠邪)가 도치되었습니다. 밝은 천일(天日)이 홀로 위에서 운행하는데 음냉한 기운이 힘써 엄폐하려 합니다. 이이가 죽고 박순이 쫓겨난 뒤로부터 하늘의 빛이 밤처럼 어둡고 별들이 밝지 못한 지가 지금까지 이미 4년이 되었는데, 어찌 태백(太白)과 흰 무지개 그리고 지진과 서리·우박만이 지난 해보다 많을 뿐이겠습니까.

아, 변고는 까닭없이 생기지 않는 것이어서 반드시 부르게 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위앙(衛鞅)080) 이 진(秦)나라에 들어가자 혜성(彗星)이 서쪽에 나타났고, 가사도(賈似道)081) 가 국권을 잡자 별이 어둡고 혜성이 나타났으며, 무오년의 살육(殺戮)082) 에는 큰 비바람이 일고 대낮에도 깜깜하였으며, 기묘년083) 의 화변에는 음란한 무지개가 해를 둘러쌌습니다. 하늘이 소인을 싫어하여 진노함이 메아리처럼 빠른데 혓바닥을 잘 놀리는 사람은 도리어 정류(正類)가 부르게 된 것이라 하면서 차마 상천(上天)도 속이니, 이를 차마 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인들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까.

사숭지(史嵩之)084) 가 송(宋)나라의 정권을 잡고 있을 적에 아비의 병을 간호하지 않다가 상을 당하게 되었는데도 기복(起復)되기를 바라면서 지류(遲留)하며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집정(執政)이나 시종(侍從)이 사숭지의 팔다리와 우익이었고 대간과 급사(給舍)가 사숭지의 심복이며 조아(爪牙)였으므로 감히 잘못을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황개백(黃愷伯)·김구만(金九萬)·손익봉(孫翼鳳) 등이 국자감(國子監)의 유생을 거느리고 말하였고, 삼학(三學)의 유생인 옹일선(翁日善) 등이 잇따라 일어나서 말하였는데, 이종(理宗)은 용렬하여 회보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무학생(武學生) 유내(劉耐)가 홀로 사학(四學)을 배반하고 나서서 제생(諸生)을 축출하기를 청하였고 당시 정승은 경조윤(京兆尹)을 넌지시 타일러 선비를 축출하고 유적(儒籍)에서 삭제하게 하였는데, 송(宋)나라의 사직도 그만 지켜지지 못하였습니다.

신은 삼가 생각건대, 유공신(柳拱辰)·임석지(任釋之) 등 관학 유생(館學儒生)의 소장은 황개백의 공언(公言)이고, 이홍로(李弘老) 등은 허봉(許葑)과 평소에 후하게 지냈으므로 감히 유내와 같은 소장을 올렸던 것입니다. 유공신이 옥당에 들어갔을 적에는 내쳐 평사(評事)로 삼았고 임탁(任鐸)이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었을 적에는 유성룡이 드러내 놓고 배척하며 화를 내어 곧 그로 하여금 문을 닫고 들어앉게 하였습니다. 그 뒤로도 공의(公議)가 없어지지 아니하여 정여립(鄭汝立)·이발(李潑)·이길(李洁)이 도리를 어기고 성명을 속인 죄를 분명히 알게 되어서는, 안소(安劭)·신응구(申應榘)·유대건(兪大建)·윤시헌(尹蓍獻) 등이 곧 을유년085) 에 70인의 동지를 거느리고서 소장을 올리려 하였는데 유전(柳㙉)이 유홍(兪泓)에게 글을 보내어 자기 아들을 금지시키게 하였으며, 노식(盧植)은 호조에 있으면서 손수 글을 보내어 윤자신(尹自新)에게 후일의 화를 들어 경계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유대건·윤시헌이 감히 유생의 대열에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배삼익(裵三益)이 또 안소를 형신(刑訊)하고자 하자 신응구가 소장을 지어놓고도 내놓지 못했고 70인의 제생(諸生)도 모임을 파하였습니다. 이들은 바야흐로 성주(聖主)의 총애를 입고 있으면서도 성주의 사문(四門)086) 을 닫아버리도록 힘써 하낙(河洛)의 소장을 가로막았으니 어찌 박근원(朴謹元)뿐이었겠습니까. 배삼익이 안소를 형신하려 한 계책은 이사(李斯)가 시서(詩書)를 불태우고 유생을 구덩이에 묻어 죽인 그런 조짐087) 입니다.

아, 박팽년(朴彭年)은 노산군(魯山君)088) 의 충신이었으나 오히려 강희안(姜希顔)을 머물러두어 후일 기용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발·이길의 무리는 기필코 일시의 청류(淸流)를 잡아다가 일망타진하니 편당(偏黨)의 해가 이미 온 나라를 텅 비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산해는 그의 기염(氣焰)을 두려워하여 조부의 여풍(餘風)을 잃어버렸고089) 옛날 종유(從遊)하던 바를 잊은 채 겁내고 두려워하고 시종 벼슬을 잃어버릴까만 근심하였습니다. 김응남(金應南)과 백유양(白惟讓)이 간사한 사람이라 하면 충심을 바치고 정성을 다하는 사람일지라도 친소(親踈)를 따지지 아니하고 배척하되 미처 못할까 두려워하였고, 김응남·백유양이 어진 사람이라 하면 도덕에 어긋난 짓을 하는 사람도 신구(新舊)를 논하지 않고 진용하되 속히 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이러므로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 관의 부정을 다룰 수 있는 자는 일체 황야에 물러나 은둔하였고, 포의(布衣)로서 공론을 지닌 사람에 이르러서도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혹 선비의 반열에 발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은 자도 있으니 선비가 백성의 말을 전할 날을 어떻게 기약할 수 있겠습니까. 하정(下情)이 막혀 답답한데도 하늘이 재앙을 내리지 않는 경우는 있지 않았으며 재난과 해독이 아울러 이르는데도 나라가 망하지 아니한 경우도 있지 않았는데, 위로는 하늘의 경계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중간으로는 밝은 임금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아래로는 사람의 말을 두려워하지 않고서 선인을 미워하는 사람을 진용(進用)하기를 힘쓰고 선인이 오게 하는 길은 영원히 폐지하였습니다. 이산해의 무리가 이발·이길이 풍력(風力)이 있어서 박순과 정철을 제어할 수 있다고 여겨 급급히 그들을 임용하면서 스스로 잘못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아, 가사도(賈似道)가 국정을 담당할 적에 대간이 일을 말하는 것을 꺼려한 나머지 모두 용렬하고 나약하여 제어하기 쉬운 자들을 써서 감히 마음대로 탄핵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오직 먼 주현(州縣)의 관사만을 취하여 작은 일을 낱낱이 들어서 고사(故事)에 응하게 했을 뿐이었습니다. 이들의 전하의 국사를 농간한 것을 살펴보면 가사도의 소위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러나 묘당(廟堂)의 대신들은 분명하게 말하려 하지 않고 협심하여 녹봉만 보전하였습니다.

노수신(盧守愼)은 을사 사화를 겪고 살아난 사람입니다. 당초에는 만절(晩節)을 보전하고자 하지 않은 것이 아니나 유성룡의 의논에 미혹되어 중년의 견식을 변개하였고 배회하면서 여생을 마치려 하였습니다. 정유길(鄭惟吉)은 정광필(鄭光弼)의 손자입니다. 당초에는 어찌 스스로 선대의 미덕(美德)을 버리고자 했겠습니까. 성낙(成洛)의 논박에 겁을 내어 겉으로는 양쪽이 옳다는 논의를 하면서도 몰래 아들의 당을 주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천문(天文)이 경고를 나타내 보였으나 몸을 삼가고 행실을 닦는 도리를 진달하지 않고, 인도(人道)가 괴란하였으나 기강을 정돈하는 거조가 일체 없었습니다. 이 위급한 시기를 당하여 박순의 충성과 유전(柳㙉)의 간사한 정상을 집에 있었기 때문에 모른다고 해서는 안 되는데, 마음을 같이 하여 서로 존중하며 간당(奸黨)을 힘껏 원조하고 잠시 병으로 사직하였다가 잠시 벼슬에 나서서 오직 권세와 총애만을 굳힐 뿐이었으니 이를 곧 대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 인주의 의사가 한번 좌우되는 바가 있으면 시세를 관망하고 빌붙는 자들이 마치 바람 앞의 풀처럼 휩쓸리는 것이니, 차라리 꺾일지언정 소나무·잣나무처럼 우뚝한 자가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전하의 예성(睿聖)스런 자질로 천인(天人)이 서로 감응하는 도를 밝혀 조용히 깊이 생각하고 원대한 식견을 두어 정교(政敎)와 호령을 발한 것이 크게 국인의 경복(敬服)을 받아온 지 지금 21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겸손이 너무 지나쳐 스스로 퇴탁(退托)을 달갑게 여기십니다. 대각(臺閣)의 공론을 오래도록 믿고 계시나 대각에 있는 사람은 실로 학식과 역량이 이이·성혼에게 미치는 자가 없습니다. 그저 편협한 소견으로 망령되이 수년간 분쟁의 단서를 일으켰을 뿐 변경의 근심과 백성의 고통은 일체 도외시하여 버려두고 잘못을 반복하여 변호하며 오직 당여를 부식시키는 것만을 일삼아서 간인을 가리켜 충신이라 하고 현인을 가리켜 사인(邪人)이라 합니다. 그리하여 성명의 거조가 백성들에게 열복받지 못하게 하고 조정의 기강과 군사의 기율이 여지없이 패하여 수습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성상의 춘추가 한창이시고 행의(行義)가 드러난 군주이신데도 힘써 멋대로 옹폐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백대 사이에 가령 어린 임금이 있을 경우 생각대로 행하는 이 무리들을 본받는다면 무슨 짓인들 하지 못하겠습니까.

아, 권세는 아랫사람에게 옮겨져서는 안 되고 조짐이 자라나게 해서도 안 됩니다. 당당한 대조(大朝)에 어찌 구할 만한 정승 한 사람이 없고 임용할 만한 경(卿) 한 사람이 없고 발탁할 만한 선비 한 사람이 없기에 기필코 이발·이산해·백유양의 무리로 하여금 권강(權綱)을 마음대로 농락하여 형정(刑政)을 탁란시키는 것이 이처럼 극도에 이르게 한단 말입니까.

아, 정부(政府)는 병을 요양하는 방리(坊里)가 아니고 대각(臺閣)은 간사한 자를 배양하는 곳이 아니니, 선왕의 중대한 부탁을 이 무리로 말미암아 갑자기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바라건대 우리 성주(聖主)는 여정(輿情)을 밝게 살펴 건단(乾斷)을 과감하게 행하시어 곧 늙어서 안일만 탐내는 자들은 치사(致仕)하게 하고 간인과 붕당을 지어 일을 그르치는 자들은 멀리 내쳐 빙산(氷山)이 절로 녹아버리고 삼굴(三窟)의 거점을 잃게 하소서. 전하께서 처음 즉위하여 정사하실 적에 보필하던 사람을 거두어 불러들여 선왕께서 만년에 몸소 공검을 닦던 덕을 거행하시고, 한편으로는 사람을 사랑하는 인사를 불러들여 상하가 부지런히 수행하소서. 이를 오래도록 게을리하지 않았는데도 나라가 다스려지지 아니하면 신은 문을 닫고 죽음으로써 간당(姦黨)에게 사과하겠습니다."

하였다.

두 번째 소장의 대략에,

"신은 시론(時論)이 크게 변하여 간언을 극진히 하는 자는 반드시 배척하였으므로 공의(公議)가 오래도록 답답해 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슬프게 여겨서 삼가 소장 한 편을 갖추어 5월에 올리려 하였으나 감사가 ‘지위는 낮으면서 말은 높아 사도(斯道)에 무궁한 화가 있을까 염려된다.’ 하여 신에게 그만두기를 권하였고 신도 스스로 두려워하여 감추어버렸습니다.

마침 조보(朝報)를 보건대 5월 23일 위에서 글을 내려 구언(求言)하셨는데, 간절함이 극진하였습니다. 신이 인하여 생각건대, 《역(易)》 중부(中孚) 구이(九二)의 효사(爻辭)에 ‘우는 학이 음폐(陰蔽)한 곳에 있는데 그 새끼가 소리에 따라 화응(和應)한다.’ 하였는데 공자(孔子)가 사설(辭說)을 덧붙이기를 ‘군자가 집에 거주하면서 말을 한 것이 선하면 천리 밖의 사람이 그 소문을 듣고 응하는데, 하물며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야 말할 게 뭐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임금의 위대하신 하문에 대해 신하가 뜻을 다해 대답하지 못하면 사람에게는 유분(劉蕡)090) 에게 부끄러움이 있고 짐승에게는 학의 새끼에게 부끄러움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화복을 도외시하고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소장을 봉진(封進)합니다.

성상의 근일 정사를 헤아려보건대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을 부지런히 구휼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봉강(封疆)의 수비를 두루 완전하게 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도 하늘의 견책과 노여움이 달마다 생겨납니다. 타는 듯한 가뭄이 오래되어 논에 모를 심지 못했고 거센 바람과 사나운 비에 기장과 조가 시들어갑니다. 그리고 여름철에 눈이 산에 가득히 쌓인 것은 전사(前史)에 듣지 못하던 일이고 소나무가 마르고 땅이 꺼지는 것은 지난 문적에도 매우 놀랍게 여기던 것이니, 이는 반드시 숨겨진 억울함이 실로 많아서 원한이 하늘에 사무쳤기 때문이며 반드시 영행(佞幸)이 치장(鴟張)하여 언로가 막혔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금 성주께서 조심하여 행실을 닦음에 있어서 먼저 하셔야 할 것은 영행을 배척하고 충직한 사람을 진용(進用)하며 언로를 열어서 숨겨진 억울한 일을 진달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공검(恭儉)의 덕이 백성에게 미치는 은택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른바 영행이 치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이 이미 전의 소장에서 다 진달하였으니 신의 몸의 위태로움이 아, 두렵습니다."

하였고, 세 번째 소장의 대략에,

"인신이 진언(進言)하는 길은 하나뿐이 아니나 충성을 바치는 것은 같습니다. 언책(言責)이 있는 신하가 소장을 품고 탄문(彈文)을 소매 속에 넣고 와서 진언하는 것은 곧 상례로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종묘·사직의 안위가 호흡 사이에 걸려 있는 경우에는 난간을 부러뜨리고(折檻)091) 임금의 옷자락을 끌어당기기도[牽裾]092) 하며 뜰에서 통곡하기도093) 하였는데 그때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이 소장을 올릴 적에 혹 두세 건의 일을 대략 거론하여 자루에 넣어 우역(郵驛)으로 급히 전하는 경우도 있고 혹 조진(條陳)하여도 소회를 다 피력할 수 없으면 안으로는 세주(細註)로 물정을 두루 통하게 하고 밖으로는 첩황(貼黃)하여 요령을 특별히 진달하기도 하였으니, 일생 동안 쌓인 소회를 하나의 봉장(封章)에다 담아 멀리 부치는 것은 참으로 부득이한 일인 것입니다.

신이 지금 변변치 못한 사람으로 제독(提督)이라는 학교에 소속된 관직에 있으면서 사우(師友)가 무함당한 까닭으로 지난해 가을 망령되이 진달하였었습니다. 그런데 성주께서는 곧 주벌하여 배척하지 않으셨으나 당로자(當路者)는 있는 힘을 다해 신을 치죄하였습니다. 신을 유숙하게 한 주인도 아울러 신을 유숙케 한 견책을 당하였으므로 도성 사람으로서 신이 왔다는 말을 들으면 관문을 닫고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였으며, 남은 노기가 혁혁하여 중외(中外)의 사람이 모두가 지목하였습니다.

신의 헌언(獻言)은 단지 감사를 통하여 전달(轉達)하는 규례가 있을 뿐이니 신도 어찌 입을 다물고 기미를 살펴 행동할 줄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참으로 성주(聖主)는 저버릴 수 없고 사우(師友)는 버릴 수 없고 하늘의 노여움은 소홀히 할 수 없고 백성의 곤궁함은 보고만 있을 수 없고 변경 근심은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만언소를 진달하되 옛 사람이 첩황(貼黃)한 규례에 따라 소장의 끝에 붙였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격례(格例)가 아니라 하여 신으로 하여금 제거하도록 하였습니다. 신이 왕복하며 굳이 다투다 보니 세월이 이미 가버리고 시사(時事)가 여러 번 변하였습니다. 정사(精寫)하던 초기에는 오동나무 꽃이 한창 피었는데 주저하는 사이에 오동나무 잎이 언뜻 나부끼고 있습니다. 도리어 두견새가 먼저 울어 온갖 풀이 아름답지 못할까 두려우므로 다시 한 장의 종이에 곡절을 진술하여 성감(聖鑑)이 계시기를 바랍니다. 망령되이 옛 사람의 봉장을 본받은 것은 곧 고집스런 신의 죄입니다. 바라건대 성상은 언로를 크게 넓히고 근래의 격례에 구애되지 마소서. 그러면 하정(下情)이 진달되지 않을 것을 근심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백성의 원망이 조금은 피고 하늘의 노여움이 조금은 그치게 될 것입니다."

하였고, 네 번째 소장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필부로서 종묘 사직의 대계(大計)를 진달하고 초야에 있으면서 조정의 시비를 논하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 사리에 맞지 않는다 하여 가소롭게 여깁니다. 그러나 칠실읍(漆室邑)의 과부도 오히려 노(魯)나라의 일을 근심할 줄 알았으니094) 국가의 대계는 필부라 하여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석공(石工) 안민(安民)도 차마 간당(姦黨)의 비석을 새기지 못하였으니095) 시비는 초야에 있다고 하여 만홀히 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신의 직분은 한 지방의 교화의 책임을 지니고 있는데야 말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사론(邪論)이 오래도록 들끓어 사우(師友)의 도가 없어져감에 따라 사습(士習)이 날로 잘못되는 것을 민망히 여기고 왕법의 기강이 문란해지는 것을 마음아프게 여겨 첫번째 소장과 두 번째 소장으로 지리하고 번다한 말을 무릅쓰고 진달하였습니다만 사람들이 대부분 잘못을 고집하여 처음의 본성으로 돌아가지 못하였습니다. 일세(一世)의 조론(朝論)이 모두 공도(公道)를 말미암지 않게 되어서는 신이 세 번째 소장을 짓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간인의 심보를 바로 지적하여 굴혈(窟穴)을 파고 숨어 있는 것을 밝혔던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이를 들은 자는 몸을 움츠리고 혀를 내두르며 모두들 신의 생사가 오늘날에 결단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신이 진실로 거두어 저장해 두려 하였으나 삼가 헤아려보건대 상소에는 성상께 관계되는 문자가 수백 군데 이상인데 이를 강물에 던져버리는 것도 신이 차마 할 수 없고 불 속에 던져넣는 것도 신이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집에다가 보관하자니 집 안에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므로 모름지기 궁전에 진달하여 태묘(太廟)에 간직하게 한 뒤에야 하늘과 땅이 각기 제자리가 정해지고 얼음과 숯이 제 처소를 얻어서 만물이 형창(亨昌)하고 나라가 영원히 튼튼해질 것이라 여겼습니다.

신의 소장이 지체된 뒤로부터 가을 장마가 농사를 해치고 하늘의 해가 항상 흐리며, 각도 민생의 곤고함이 하루하루 더욱 심해진다는 소문만 들릴 뿐 도적을 그치게 하고 흉년을 진휼(賑恤)하는 계책은 사람들의 희망을 위로할 만한 것이 있다는 말을 전혀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상하가 그저 예사로이 여겨 태평 시대의 조도(調度)와 같으니 신은 삼가 민망하게 여깁니다. 성주께서 만일 신의 말을 여덟 아홉을 쓰는데도 하늘이 환하게 개지 않고 해와 달이 밝게 빛나지 않으면 신은 목을 빼고 죽음을 기다림으로써 망언한 죄를 사과하겠습니다."

【태백산사고본】 5책 21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570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변란(變亂) / 인물(人物) / 과학-천기(天氣)

[註 070]시기(時忌) : 시론에 기휘됨.

[註 071]하루 따뜻하게 하고 열흘 동안 차게 하는 :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에 "비록 천하에 잘 생장하는 물건이 있다 하더라도 하루 따뜻하게 해주고 열흘 동안 차게 한다면 잘 생장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하였다. 곧 하루 부지런히 하고 열흘 게을리함을 말하며 또한 배양하는 자는 적고 해치는 자가 많음을 말하기도 한다.

[註 072]주변(籌邊) : 변방의 군비.

[註 073]유악(帷幄) : 군영을 뜻함.

[註 074]시랑(豺狼) : 소인.

[註 075]선왕(先王) : 명종.

[註 076]호언(狐偃) : 춘추 시대 진(晉)나라 사람. 진 문공(晉文公)이 공자(公子)로 있을 때 망명하여 외국에 가 있었는데 호언이 19년 동안 수행하였다. 진 문공이 귀국하여 임금이 된 뒤에는 문공을 도와 주실(周室)의 난을 평정하고 패업(覇業)을 이룩하였다.

[註 077]영새(嶺塞) : 영남 변방.

[註 078]형초(荊楚)의 기재(奇材) : 훌륭한 인재를 말함. 중국 형초(荊楚) 지방에 좋은 재목이 나므로 전용된 말.

[註 079]잠질(岑晊)·범방(范滂) : 모두 후한(後漢) 때 향리에 은거한 명사로 지절이 있었다. 잠질의 자는 공효(公孝). 고재가 있고 천하를 바르게 하려는 뜻을 두었다. 남양 태수(南陽太守) 성진(成瑨)의 초청으로 공조(功曹)가 되어 호세가(豪勢家)를 피하지 않고 일을 처리하였다. 뒤에 당고(黨錮)의 화가 일어나자 도피하였다. 《후한서(後漢書)》 권97. 범방의 자는 맹박(孟博). 청절(淸節)이 있고 효렴(孝廉)하였다. 기주(冀州)에 도적이 일어나자 청조사(淸調使)가 되었는데 그는 개연히 천하를 맑게 하려는 뜻을 두었다. 뒤에 당화(黨禍)에 연루되어 죽었다. 《후한서(後漢書)》 권90.

[註 080]위앙(衛鞅) : 전국(戰國) 때 위(衛)나라의 서얼 공자(公子)인 공손앙(公孫鞅), 형명학(刑名學)을 좋아하였다. 진 효공(秦孝公)의 좌서장(左庶長)이 되어 변법령을 정하여 제도를 개혁함으로써 부국강병책을 시행하였으나 너무 가혹하였다. 뒤에 혜왕(惠王)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사기(史記)》 권58.

[註 081]가사도(賈似道) : 송(宋)나라 이종(理宗)·도종(度宗) 때의 권신, 원(元)나라 군사가 침공하자 땅을 떼어주고 폐백을 바쳐 화의를 청하였으며, 정권을 천단하였다. 《송사(宋史)》 권474.

[註 082]무오년의 살육(殺戮) : 연산군 4년(1498) 훈구파(勳舊派)가 학자를 싫어하는 연산군을 충동질하여 김일손(金馹孫) 등 사림파(士林派)를 대거 처단한 일.

[註 083]기묘년 : 1519 중종 14년.

[註 084]사숭지(史嵩之) : 자(字)는 자유(子由). 벼슬은 우승상(右承相)에 이르렀고 영국공(永國公)에 봉해졌다. 아버지 상중에 기복(起復)을 청하여 공론에 용납되지 못한 적이 있었다. 《송사(宋史)》 권414.

[註 085]을유년 : 1585 선조 18년.

[註 086]성주의 사문(四門) : 사문은 사방의 문. 즉 각 지방의 형편과 실정을 밝게 살피고 분명히 듣는 것을 말함.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사악(四岳)의 신하에게 물어 사방의 문을 열어 각 방면이 서로 연락되도록 하며 각 지방의 형편을 밝게 살피며 각 지방의 실정을 상세히 들었다." 하였는데, 여기서 온 말임.

[註 087]이사(李斯)가 시서(詩書)를 불태우고 유생을 구덩이에 묻어 죽인 그런 조짐 : 이사(李斯)는 유학자 순경(筍卿)의 제자로 진 시황(秦始皇) 때 승상이 되어 군현제(郡縣制)를 정하고 분서(焚書)의 영을 내리는 한편, 시서(詩書)를 말하는 자는 기시형(棄市刑)에 처하도록 건의하여 시행하였다. 《사기(史記)》 이사전(李斯傳).

[註 088]노산군(魯山君) : 단종이 복위되기 전의 군호(君號).

[註 089]이산해는 그의 기염(氣焰)을 두려워하여 조부의 여풍(餘風)을 잃어버렸고 : 이산해의 조부는 이치(李穉)로 갑자 사화 때 숙부 이파(李坡)와 함께 진도(珍島)에 유배, 중종 반정(中宗反正)으로 풀려났다. 이산해가 강직한 조부의 기풍이 없음을 말한다.

[註 090]유분(劉蕡) : 당 덕종(唐德宗) 때 사람. 현량과(賢良科)의 대책(對策)에서 당시 권세와 횡포가 심한 환관을 꾸짖었다. 고시관이 그의 글을 보고 탄복하면서도 환관을 두려워하여 급제시키지 못하였다. 뒤에 비서랑(秘書郞)이 되었으나 환관의 무고로 폄직(貶職)되어 죽었다. 《당서(唐書)》 유분전(劉蕡傳).

[註 091]난간을 부러뜨리고(折檻) : 한(漢)나라 주운(朱雲)이 성제(成帝)에게 승상 장우(張禹)의 목을 벨 것을 극간하다가 성제의 노여움을 사서 전상(殿上)에서 끌려 내려갈 적에 어전의 난간을 잡고 버티며 간하는 바람에 난간이 부러진 고사. 《한서(漢書)》 주운전(朱雲傳).

[註 092]임금의 옷자락을 끌어당기기도[牽裾] : 위 문제(魏文帝) 때 시중(侍中) 신비(辛毗)가 문제의 이민(移民) 계획이 부당함을 주장하였으나 문제가 답하지 않고 전내(殿內)로 들어가니 신비가 따라가 문제의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간한 고사.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신비전(辛毗傳).

[註 093]뜰에서 통곡하기도 : 춘추 시대에 오(吳)나라가 초(楚)나라를 공격하여 수도인 영(郢)에 들어오자 초나라 대부인 신포서(申包胥)가 진(秦)나라에 가 대궐 뜰에서 7일 동안 통곡하며 구원을 호소한 결과 나라가 구제되었다는 고사. 《사기(史記)》 오자서전(伍子胥傳).

[註 094]칠실읍(漆室邑)의 과부도 오히려 노(魯)나라의 일을 근심할 줄 알았으니 : 노(魯)나라 칠실읍의 여자가 기둥에 기대어 슬피 부르짖기를 "노나라 임금은 늙고 태자는 어리다." 하니, 이웃 여자가 "이것은 노(魯)나라 대부(大夫)의 근심인데 부인이 무슨 상관인가" 하자, 그녀는 "노나라에 근심이 있으면 군신 부자가 모두 욕을 당하게 되니 부인인들 어디로 피하겠소." 하였다 한다. 《후한서(後漢書)》 노식전(盧植傳).

[註 095]석공(石工) 안민(安民)도 차마 간당(姦黨)의 비석을 새기지 못하였으니 : 송(宋)나라 장안(長安)의 석공 안민의 고사. 희령(熙寧) 연간에 채경(蔡京)이 원우당인비(元祐黨人碑)를 써서 주현에 나누어주어 돌에 새기게 하였다. 이때 안민이 각역(刻役)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애걸하여 본인의 성명을 그 비석 끝에 새기는 것을 면하게 되니, 당시 사람이 의롭게 여겼다. 《송사(宋史)》 권336. 원우당인이란, 채경이 송 철종(宋哲宗) 때 사마광(司馬光)·문언박(文彦博)·정이(程頤) 등 왕안석(王安石)의 신법을 반대한 당시 문인 학자 1백 19인을 지칭한 것임.

132.인조실록 25권, 인조 9년 10월 12일 임자 3번째기사 1631년 명 숭정(崇禎) 4년

홍서봉이 뇌물을 받았다는 일을 해명하여 상소를 올리다

익령군(益寧君) 홍서봉(洪瑞鳳)이 상소하기를,

"삼가 듣건대 어제 경연에서 신의 이름과 이귀(李貴)의 이름이 이야기하는 사이에 함께 거론되었다 합니다. 대체로 탐장(貪贓)에 관한 율(律)은 지극히 엄하니 귀한 근신(近臣)이라 하여 용서할 수 없고, 무망(誣罔)한 죄도 엄하니 지위가 높다고 해서 버려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귀가 말한 홍시태(洪時泰)와 박종남(朴宗男)의 일에 대해 진달드릴까 합니다.

홍시태는 곧 임실(任實) 사람으로서 성균관에 여러 해 있었는데, 정엽(鄭曄)이 대사성이 되어 그의 순수하고 근실한 점을 칭찬하며 전조(銓曹)에 천거해서 재랑(齋郞)에 보임(補任)된 뒤 차례를 따라 직위가 옮겨져 전생서의 주부가 되었고, 김수현(金壽賢)도 일찍이 수령에 의망(擬望)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두 신하가 어찌 모두 시태에게 사정(私情)을 두었겠습니까. 신이 전조에 들어와서 겨우 반 달만에 곧장 대정(大政)069) 에 참여하였는데, 이때 시태가 시임(時任) 주부로서 운봉 현령(雲峯縣令)에 비의(備擬)되어 다행히도 상의 낙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전선(全船)을 뇌물로 주었다는 것은 더욱 근거가 없으니, 시태가 운봉에 비의된 지 겨우 10여 일만에 어느 겨를에 7일이나 걸리는 임실 길을 달려가서 얼음이 꽁꽁 언 계절에 바닷배를 몰고 서울에 도착했겠습니까. 이는 강가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일일 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삼가 생각하건대 이귀가 필시 증거를 갖춘 다음에 이런 말씀을 올렸을 것이니, 그와 더불어 대질하면 신의 죄가 드러날 것입니다.

박종남이란 자는 바로 박팽년(朴彭年)의 후손으로서 그 아비와 숙부가 모두 선조(先朝) 때에 녹용(錄用)하라는 전교로 관직에 제수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은 이 사람이 아무리 충신의 후손이라 하더라도 별로 드러난 재주가 없다고 여겨 끝내 의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본조(本曹)의 문서를 가져다가 상고하여 종남의 이름이 혹 정초(政草)070) 에 나오면 이귀의 말이 바야흐로 크게 증험될 것입니다. 심지어 시태와 종남이 벌써 모두 죽었다고 하면서 스스로 해명할 길을 단절시키려 했습니다만, 이미 죽은 종남은 일으킬 수 없으나 시태는 병없이 생존해 있으니, 혹 국문하게 하여 신과 함께 말의 뿌리를 조사하여 밝히게 하면, 옳고 그름과 사실 여부를 즉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소(疏)를 올리자 상이 도로 내주도록 명하고 이르기를,

"뇌물을 받았다는 말이야말로 놀랍고 참혹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임금이 그 원통한 정상을 환히 알고 대신이 무고한 일임을 진달하였으니 비방을 입은 자가 다시 변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익령군 홍서봉은 임금과 신하의 분수가 엄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분하고 미운 사심만 품은 채 세 번이나 소장을 올려 계속 번거롭고 소란스럽게 하니, 지극히 잘못된 일이다. 그 가운데 박팽년이 충신이라는 이야기는 더욱 놀랍고 괴이하니, 우선 추고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5책 25권 32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451면

【분류】

사법-탄핵(彈劾) / 왕실-종친(宗親)

[註 069]대정(大政) : 12월에 실시하는 도목 정사(都目政事).

[註 070]정초(政草) : 도목 정사의 초안.

133.효종실록 9권, 효종 3년 11월 13일 신사 2번째기사 1652년 청 순치(順治) 9년

전 판서 조경이 분부에 응해 올린 궁장의 폐해, 사육신의 정려 등에 대한 상소

전 판서 조경이 포천(抱川)에서 분부에 응하여 상소하기를,

"나이 일흔에 죽을 때가 다된 늙은 신하가 궁벽한 산중에서 병들어 있으므로 국가의 소식을 듣지 못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지난달 본현(本縣)의 저보(邸報)를 얻어 재앙을 만나 직언(直言)을 구하시는 말씀을 읽건대, 전하께서 천위(天威)에 크게 경동(警動)하심이 지극하다 하겠으나, 신의 마음에는 근심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신이 그 직위에 있지는 않으나 두 조정의 도타운 은혜를 입어 일찍이 대부(大夫)의 반열에 있었으니, 해바라기가 해를 향하는 정성을 죽기 전에는 스스로 버릴 수 없거니와, 한마디 말씀이라도 덕을 닦고 허물을 살피시는 데에 다소나마 돕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홍무(洪武) 9년153) 에 고황제(高皇帝)가 손수 쓴 직언을 구하는 도서를 내려 ‘근래 사천감(司天監)이 오성(五星)의 도수(度數)가 어지럽고 일월(日月)이 서로 범한 것을 아뢰었다. 그래서 고요히 스스로 살피건대, 고금에 천도(天道)가 변화하여 재앙을 보이는 것은 임금에게 달려 있으니,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두려워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 신민에게 고하여 내 허물을 말하는 것을 허가한다.’ 하였습니다. 고황제는 명성(明聖)하고 위무(威武)한 자질로서 천하를 평정한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거니와, 안으로는 조정의 백관에 다 마땅한 사람을 얻었고 사이(四夷)·팔만(八蠻)이 다 이미 빈복(賓服)하였으며 정사가 수명(修明)하고 기강이 진장(振張)하며 천지가 개벽하고 백성이 편안하며 사해(四海) 안이 감화하여 태평해졌는데도 한번 별의 재변을 당하니 두려워 전전긍긍하여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고 싶어하듯 자기 허물을 듣고자 하였습니다. 신은 전하께서 오늘날 직언을 구하신 것을 고황제에 견주면 늦은 듯하다고 여깁니다.

신이 듣건대, 올해 6월에 양남(兩南)의 풍재(風災)가 을해년154) 과 다름 없었다 하니, 이것은 더욱 두렵습니다. 신이 을해년 겨울에 외람되게 암행(暗行)의 명을 받아 풍재당한 곳에 들렀더니 1 백년 된 큰 나무의 뿌리가 바위를 안고서 마치 어지러운 삼대처럼 쓰러졌고, 기타 뿌리가 튼튼하여 곧바로 쓰러지지 않은 것들도 바람에 갈라져 마치 노끈처럼 가닥났으니, 참으로 고금에 듣지 못한 재앙이었습니다. 역졸 같은 무식한 사람들도 보고서 모두 놀라 눈이 휘둥그래지고 낯빛이 변하며 ‘장차 어떤 변이 있을 것인가.’ 하였는데, 이듬해에 과연 병란이 있었으니, 재앙이 어찌 헛되이 일어난 것이겠습니까. 그 뒤 내외의 크고 작은 변고에도 반드시 태백성·지진·풍수의 재변이 먼저 있어서 그 응험(應驗)이 마치 부고(桴鼓)155) 의 영향처럼 빨랐으니, 옛사람이 이른바 천도(天道)가 멀다는 것은 거짓말일 뿐입니다. 어찌 하늘이 우리 동방을 인애(仁愛)하여 여러번 재변을 내어 견고(譴告)함이 이처럼 정녕합니까. 올해로 말하면 한 해 안에 큰 가뭄과 큰 홍수가 잇달고 양남에 지진이 있고 10월에 겨울 천둥이 또 일어나서 비상한 변이 전보다 훨씬 더하므로 낮은 백성도 오히려 놀라고 두려워서 분주하며 서로 전하여 말하니, 전하께서 자신을 책하여 덕을 닦고 허물을 살피시는 것은 극진하게 하지 않는 것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송(宋)나라 신하 호안국(胡安國)이 《춘추전(春秋傳)》을 지었는데 이르기를 ‘인사(人事)가 아래에서 잘못되어 천변이 위에서 응한다.’ 하였습니다. 지금 인사가 아래에서 잘못된 것을 신이 어둡기는 하나 조금 들은 것은 있습니다. 예전에 마주(馬周)가 당 태종(唐太宗)에게 간하기를 ‘제왕(諸王)을 총애하심이 지나치게 후합니다.’ 하였는데, 신도 전하께서 공주와 부마를 부유하게 하시려는 것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익평(益平)156) 의 궁노(宮奴)는 완산(完山) 등에 전장(田庄)을 설치하고 청평(靑平)157) 의 궁노는 호내(湖內) 등에 전장을 설치하였다 합니다. 나라안의 작은 전지라도 어찌 임금의 땅이 아니겠습니까. 산택(山澤)이 개간되지 않았다면 그만이겠으나, 개간되었다면 백성이 그 가운데에서 대대로 갈아먹되 공전(公田) 사전을 가리지 못하는 것이 어찌 한정이 있겠습니까. 입안(立案)하여 준 내수사 소속의 기름진 전토가 분명히 부족한 것이 아닌데, 무슨 까닭으로 불분명한 민전을 침탈하여 그 근방에 사는 신구(新舊) 백성이 집을 헐고 유리(流離)하게 합니까.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원망은 큰 데에 있지 않으며 또한 작은 데에 있지 않다.’ 하고, 또 ‘일반 백성들이 스스로 다함을 얻지 못하면 백성과 임금이 다함께 그 공을 이루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이 몇 고을 백성이 원망하는 것만으로도 어찌 천지의 정기(精氣)를 감응시켜 천재를 부르기에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신은 전하께서 신의 말을 늙은이의 말이라 여기지 말고 굽어 살피시기 바랍니다.

신이 광해(光海) 때에 호우(湖右)158) 에 유락(流落)하면서 직접 보니 길가의 전야는 다 권귀(權貴)나 궁가(宮家)의 농장으로 양민에게 미치는 폐해가 이르지 않는 곳이 없었는데, 얼마 후에 들러 보니 폐허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은감(殷鑑)이 아니겠습니까. 국가가 백성을 사랑으로 배양하여 인심(仁心)이 백성에게 골고루 미쳐 끝없는 복으로 결속시키면, 왕실의 지친과 공주·부마의 집이 어찌 부유하고 안락하지 못할까 근심하겠습니까. 만약 이와 반대라면 여러 궁가의 소유가 크게 훔쳐서 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신은 전하께서 오늘날의 백성을 괴롭다고 생각하시는지 즐겁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예로부터 이제까지 백성의 고락에 따라 나라의 흥망이 판이해진다는 사실은 어리석은 자이건 지혜로운 자이건 다 알고, 다 말합니다. 국가의 모든 백성 중에 어찌 한 사람이라도 남북의 지공(支供)에서 고혈(膏血)을 피할 수 있는 자가 있겠습니까. 백성이 탄식하고 원망하는 것을 또한 상상할 만합니다. 그렇기는 하나 백성도 사람이니 어찌 백성을 괴롭히는 것이 우리에게서 말미암지 않는 줄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를 위하여 백성에게 포정(布政)하는 자가 조금이라도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있다면 백성이 원망하고 욕하여 변란을 생각함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신은 전하께서 또한 굽어살피시기 바랍니다.

신이 듣건대, 검소는 덕 중에서 큰 것이고 사치는 덕을 해치는 것이라 합니다. 예로부터 국가나 가정을 소유한 자로서 검소하여도 흥하지 않거나 사치하여도 망하지 않은 자는 없었습니다. 전하께서 일국을 굽어보시면 바야흐로 사치가 성한 것을 어찌 살피지 못하시겠습니까. 도성(都城) 안은 위로 경대부(卿大夫)로부터 아래로는 시정의 천인까지 모두가 지극히 사치하여, 벽에 바르는 것은 외국의 능화지(菱花紙)가 아니면 쓰지 않고, 입는 옷은 능단(綾段)·금수(錦繡)가 아니면 쓰지 않고, 타는 말은 모두가 상승(上乘)이고, 먹는 음식은 모두가 맛나고 기름진 것이니, 가의(賈誼)가 이른바 백 사람이 만들어서 한 사람을 입히지 못하고, 한 사람이 농사지은 것을 열 사람이 모여서 먹는다는 것은 바로 오늘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온갖 물건이 비싸고 백성이 고달픈 것은 다 이 때문인데, 신은 이것을 길이 하면 어디에서 그칠지 모르겠습니다.

신이 일찍이 장로(長老)의 말을 듣건대 ‘우리 나라의 열성(列聖)은 모두 몸소 검약(儉約)을 실천하셨으므로 뭇 신하가 교화되어 당시의 경대부와 서인도 모두 사치를 부끄러워하고 검소를 귀하게 여겼다.’ 하는데, 광해 때에 이르러 사치한 버릇이 크게 성하여 마침내 나라를 망치게 되고야 말았으니, 그 해독이 실로 천재보다 심합니다. 어찌 성명(聖明)께서 임어하신 때에 사치한 버릇이 또 광해 때보다 줄지 않을 줄 알았겠습니까. 신은 임금이 모범을 보이는 방도가 미진해서라고 여깁니다. 전하께서 상방(尙方)을 시켜 아름다운 무늬를 취하지 말게 하시면 사대부가 어찌 감히 금수를 답습하겠으며, 전하께서 태복(太僕)을 시켜 외국에서 나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말게 하시면 사대부가 어찌 감히 그 말을 아름답게 꾸미겠습니까. 그 밖에 혼인과 음식의 화려하고 사치한 것을 금단하는 일을 전하께서 먼저 궁중부터 다스리시면 뭇 신하가 어찌 감히 분수를 넘어서 함부로 행하겠습니까. 대개 사치하는 자는 거의 다 참람하게 절도 없이 위를 본뜨는데, 계속 참람하게 위를 본뜨다 보면 어찌 끝까지 가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 여기에 성의를 깊이 두어 이 폐단을 힘껏 고치시기를 신은 바랍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날마다 경연에 나아가 부지런히 강구(講求)하신 것이 어찌 몸을 닦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서 벗어나겠습니까. 지금의 치효(治效)를 보면 옛 임금들이 몸을 닦고 집을 다스린 도리에 아주 못 미치는 듯합니다. 곡례(曲禮)에 이르기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 없이 하며, 엄숙하여 늘 생각하는 듯이 하며, 말을 안정(安定)하게 하면 백성을 편안하게 할 것이다.’ 하였는데, 주자(朱子)가 풀이하여 ‘군자가 몸을 닦는 요체는 이 세 가지에 있고 그 효과는 백성을 편안하게 할 만하다.’ 하고, 여대림(呂大臨)은 ‘세 가지가 바르면 어디에 가도 바르지 않은 것이 없으니, 천하가 크기는 하나 이것으로 몸을 닦으면 부족할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신이 우선 이따금 저보(邸報)에서 본 것과 항간에서 전하는 것을 말하겠습니다. 전하께서 뭇 신하와 수답(酬答)할 때에 가까이하고 사랑하는 데에 치우치고 천하게 여기고 미워하는 데에 치우치신다면 공경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에 어그러질 것입니다. 거둥하실 때에 급한 언덕을 달려 내려갈 뜻이 있고 화란(和鑾)159) 이 음률에 알맞게 할 절도가 없으시다면 엄숙하여 늘 생각하는 듯이 한다는 것은 아마도 이러하지 않을 듯합니다. 뜻에 거스르는 말을 한 번 들으면 문득 당장 깔보고 욕하는 위엄을 보이고 조용히 타이르는 덕이 없으시다면 말을 안정하게 한다는 것은 또한 이러하지 않을 듯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전하께서 몸을 닦고 집을 다스리는 도리가 옛 임금에 못 미치신다는 것입니다. 아, 상(商)나라에 치구(雉雊)160) 의 재앙이 있었으나 중종(中宗)이 엄숙하고 공경하고 삼가고 두려워하여 안정시켰고, 주(周)나라에 운한(雲漢)161) 의 재앙이 있었으나 선왕(宣王)이 두려워하고 삼가며 행실을 닦아서 안정시켰습니다. 전하께서 이 재변으로 말미암아 갑자기 깨달아 온갖 조치에서 겉치레와 말단의 일을 버리도록 힘쓰고 하늘에 응답하고 백성의 일에 부지런하여 실질적인 은덕과 은혜가 있는 것만을 헤아려 행하신다면, 어찌 재앙을 막고 없앨 뿐이겠습니까. 국가의 억만년 그지없는 사업이 여기에서 터잡을 것입니다.

이어서 생각해보면, 신은 너무 늙었고 병도 이미 깊어졌습니다. 다시 당세에 쓰일 생각을 할 수 없으나 바로 군신의 분의(分義)에 감격, 직언을 구하실 때를 당하여 엉겁결에 참으로 꿈속의 잠꼬대 같은 말을 하게 되었으니, 신은 실로 황공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남은 생각이 있으니, 선언을 하여 세 가지를 부탁한 증자에 비길까 합니다162) . 우리 나라에서는 충신·열사에 대하여 아름다움을 포장(褒奬)하고 뛰어남을 정표하는 은전(恩典)을 거행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전조(前朝)의 사절(死節)한 신하 정몽주(鄭夢周) 등에게도 다 아름다운 시호를 주고 자손을 거두어 썼으니, 이것이 어찌 천지의 사(私)가 없는 도량으로 본조나 다른 왕조를 차별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신의 어리석은 마음에 간절한 것은, 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 여섯 신하들이 천명(天命)이 돌아간 것을 모르기는 하였으나 그 섬기는 바를 위하여 죽은 대절(大節)은 뚜렷이 빛나는데 정려하는 은전이 아직 들리지 않고 있는 것이니, 어찌 겨를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예전에 명나라 문황제(文皇帝)163) 가 방효유(方孝孺)·연자령(練子寧) 등을 정표하고 마침내 말하기를 ‘연자령이 살아 있다면 내가 등용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만력 황제(萬曆皇帝)164) 가 즉위 초에 대종백(大宗伯)165) 에게 제조(制詔)하기를 ‘고인이 된 파직되고 죄받은 제신(諸臣)은 섬기는 바에 충성하고 형륙(刑戮)을 달게 받았으니, 유사(攸司)와 소재관(所在官)을 시켜 분묘에 제사하고 생존한 후손을 후히 돌보고 등용해서 충신을 정표하여 신하의 절의를 장려하라.’ 하였습니다. 우리 선조 대왕(宣祖大王)께서도 하교하여 여섯 신하의 후손을 등용하셨으니, 넓은 덕이 신종 황제와 도리를 같이하셨습니다마는, 당시 조정의 신하들이 분묘에 제사하고 충성을 정표하여 성의(聖意)를 넓혀서 거행하지 않은 것을 한탄할 뿐입니다. 신이 예전에 홍주(洪州)에 살았으므로 상세히 물어 보니, 성삼문은 본디 홍주 사람인데 그 옛집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합니다. 이때에 덕음(德音)을 내어 상용(商容)의 집에 정표한 것166) 처럼 하신다면, 어찌 지하의 썩은 뼈를 위로할 뿐이겠습니까. 실로 선왕의 남은 교훈을 드날려 천하 후세의 신하로서 두 마음을 품는 자를 부끄럽게 할 것이니, 어찌 성대하지 않겠습니까. 바야흐로 인심과 세도(世道)가 어리석고 어두워서 점점 깊은 밤중으로 들어가므로 충효가 어떠한 것인지 전혀 모르니, 신의 이 말이 교화에 조금도 보탬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명께서는 유의하소서.

또 생각건대, 어려움을 당하여 신하가 죽는 의리를 안 자는 고상(故相) 김상헌(金尙憲)과 고(故) 참판 정온(鄭蘊) 두 사람뿐입니다. 정온은 그때 병든 몸으로 시골에 내려간 뒤에 죽지 못한 것을 스스로 허물하여 처자를 물리치고 사는 집을 버리고 궁벽한 산중에서 혼자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 고난을 받으며 절조를 지킨 것은 자결을 시도했으나 죽지 못한 유감을 보상하기에 충분한데 아직 증시(贈諡)의 은전을 받지 못하였으니, 또한 어찌 성조(聖朝)의 부족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유사에 명하여 조헌(趙憲)의 예에 따라 특별히 증시하고 후손을 등용하게 하소서. 정온의 평생 지절(志節)이 어찌 죽은 뒤의 시호를 명예롭게 여기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경이 직위에 있지 않으면서도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정성이 이러하니, 내가 매우 아름답게 여기고 기뻐한다. 체념(體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43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586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왕실-종친(宗親) / 농업-전제(田制) / 재정-상공(上供) / 윤리(倫理) / 인사-관리(管理) / 역사-고사(故事)

[註 153]홍무(洪武) 9년 : 1376 우왕 2년.

[註 154]을해년 : 1635 인조 13년.

[註 155]부고(桴鼓) : 북채와 북.

[註 156]익평(益平) : 효종의 둘째 딸 숙안 공주(淑安公主)의 부마 익평위(益平尉) 홍득기(洪得箕).

[註 157]청평(靑平) : 효종의 세째 딸 숙명 공주(淑明公主)의 부마 청평위 심익현(沈益顯).

[註 158]호우(湖右) : 호서.

[註 159]화란(和鑾) : 임금의 수레에 달린 방울.

[註 160]치구(雉雊) : 꿩이 운다는 뜻. 은 고종(殷高宗) 때 융제(肜祭:정제〈正祭〉 이튿날에 다시 지내는 제사)하는 날에 정이(鼎耳)에 올라 앉아 우는 꿩이 있으므로 어진 신하 조기(祖己)가 하늘의 꾸중이라 생각하여 고종에게 간하여 고종이 덕을 닦으니, 은나라가 이 때문에 중흥하였다. 《서경(書經)》 상서(商書) 고종융일(高宗肜日) 《후한서(後漢書)》 권106 조절전 주(曹節傳注) 본문에 ‘중종(中宗)이……’ 하였으나 중종은 은나라 제9대 임금이고 이때에는 상곡(桑穀)의 재앙이 있었으며, 고종은 제22대 임금이다.

[註 161]운한(雲漢) : 《시경(詩經)》의 편명. 운한편은 주 선왕(周宣王) 때에 한재가 있으므로 임금이 두렵게 여겨 행실을 닦으니, 백성이 임금의 교화가 다시 행해질 것을 기뻐하여 지은 시라 한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운한(雲漢).

[註 162]선언을 하여 세 가지를 부탁한 증자에 비길까 합니다 : 증자(曾子)가 임종에 가까워서 문병하러 온 맹경자(孟敬子)에게 세 가지를 경계하여 "새가 죽어 갈 때는 울음 소리가 애처롭고, 사람이 죽으려 할 때는 착한 말을 한다. 군자가 중하게 여기는 예도(禮道)가 셋이 있는데, 용모를 움직일 때는 사나움과 태만함을 멀리하고, 낯빛을 바꿀 때는 성실함에 가깝게 하며, 말을 할 때는 비루함과 도리에 위배되는 것을 멀리 해야 한다." 하였다. 《논어(論語)》 태백(泰伯) 여기서는 조경 자신도 죽음을 앞두고 진심으로 부탁하겠다는 것이다.

[註 163]문황제(文皇帝) : 성조(成祖).

[註 164]만력 황제(萬曆皇帝) : 명 신종(明神宗).

[註 165]대종백(大宗伯) : 예부 상서(禮部尙書).

[註 166]상용(商容)의 집에 정표한 것 : 상용은 은 주왕(殷紂王) 때의 대부로서 직간하다가 폄출되었는데, 주 무왕(周武王)이 은나라를 쳐서 평정한 뒤에 상용의 여문(閭門)에 정표하였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무성(武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