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생(金禮生) 본관 안동
■가계
>5 김묘(金昴)[麗文]
>4 김구용(金九容)[麗進]
>3 김명리(金明理)[麗進] 配경주인 이달충(李達衷)[麗文]의女
>2 ② 김계우(金季友)[文]
>2 ①김맹헌(金孟獻,1397~1426) [문1426] 직제학(直提學), 이조좌랑 配이사검(李思儉)의女
>1김자양(金自讓) 첨정(僉正)
>0 김예생(金禮生), 군수
>-1김윤종(金胤宗), 자는 건지(建之) 경상도절도사(節度使)
>-2 김진기(金震紀) 진사(進士) 字숙부(肅夫). 활인서 별좌(活人署別坐)
>-3김대섭(金大涉, 1549~1594) 자는 사형(士亨)이다.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관력
■기록
○성종실록 51권, 성종 6년 1월 25일 을해 10번째기사 1475년
선농제에서 축사 재랑·집준을 맡은 사람들에게 한 자급을 더하다
기민 양인(耆民良人) 차중부(車仲富)·오근중(吳近重)·고을생(高乙生)·김처상(金處商)·이을경(李乙京)·이연년(李延年)·오충(吳忠)·이휴(李休)·진귀달(陳貴達)·김예생(金禮生)·엄신(嚴信)·이수생(李水生)·엄용(嚴龍)·장효손(張孝孫)·전지(田地)·김권(金權)
○성종실록 267권, 성종 23년 7월 26일 갑오 2번째기사 1492년
삼척 부사(三陟府使) 이예견(李禮堅)·이산 현감(尼山縣監) 이장윤(李長潤)·지례 현감(知禮縣監) 김예생(金禮生)·강진 현감(康津縣監) 김부석(金負石)·검모포 만호(黔毛浦萬戶) 김이장(金以章)이 사조(辭朝)하였다. 임금이 인견(引見)하고 말하기를,
"수령(守令)의 직임(職任)은 지극히 중한 것인데, 백성의 기쁨과 근심이 수령에게 달린 것이다. 수령이 백성을 아들처럼 사랑하면 백성도 수령을 어버이처럼 사랑할 것이다. 만호(萬戶)는 마땅히 군사를 훈련시키고 병선(兵船)을 정비하여 급할 때 대비해야 한다."
하였다.
○중종실록 22권, 중종 10년 6월 29일 갑신 1번째기사 1515년
순천 군수(順天郡守) 김예생(金禮生)은 지난해 여름에 정읍 현감(井邑縣監)에서 체임하여 사의가 된 것이 겨우 1년입니다. 장례원(掌隷院)은 반드시 개만(箇滿)된 뒤라야 승서(陞敍)할 수 있으니, 김예생을 이같이 갑자기 승진시킬 수는 없습니다. 정평(定平)은 비록 내지(內地)라고 하나 바로 양계(兩界)의 땅입니다. 만약 유사(有事)할 때에는 부사(府使)도 또한 변장(邊將)입니다.
○예안읍지
공평하고 청렴하며 정직했던 명관(名官)
권천(權踐), 성엄(成 揜), 권권(權倦), 문여형(文汝衡),조 증(趙增), 정계(鄭 係), 권경행(權景行), 조변흥(曺變興),안억수(安億壽),이지(持),이의진(李義振), 김예생(金禮生),배계후(裵季厚), 홍의손(洪義孫), 김세헌(金世憲),임내신(任鼐臣),류몽정(柳夢鼎)등 모두 17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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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은암 서문〔大隱庵序〕
대은암(大隱庵)은 명례방(明禮坊)수하동(水下洞)에 있다. 다리를 베개 삼고 시내에 임해 있으며, 앞쪽으로 남산(南山)을 마주하였는데, 국사당(國祀堂)이 있는 남산 중턱과 직면해 있다. 처음 나라에서 한양(漢陽)에 도읍을 정할 때, 상락공(上洛公) 김방경(金方慶)의 5대손이며 척약재(惕若齋) 김구용(金九容)의 아들 김맹헌(金孟獻) 공이 직제학(直提學)으로 있으면서 송도(松都)에 있는 가옥의 자재를 뜯어다가 이곳에 지었다.첨정(僉正) 김자양(金自讓), 군수(郡守) 김예생(金禮生), 절도사(節度使) 김윤종(金胤宗), 진사(進士) 김진기(金震紀)로 전해 내려오다가 나의 외조부 도사공(都事公) 김대섭(金大涉)의 소유가 되었다. 그 집이 두 번 전해져 내 소유가 되었는데, 안채는 선친께서 수선하고 대은암이라 명명하셨다. 객당(客堂)은 내가 지었는데, 지금은 외손자 신필화(申弼華)에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