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내 생일이 되어도 평일하고 다름이 없었다.
누가 밥 차려주는 것도 아니다.
내가 내 생일을 차린들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었지만,
안 하고 안 먹 겠다는 식이다.
부엌 살림에 서툰 나는 그냥 밥도 아니고 생일 찰밥 즉 팥을 삶고 찹쌀까지 씻는것을 번거럽게 느꼈다.
쇠고기미역국 끊이는 것도 안하는 것이 일 안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살림은 꼭 해야되는 것 만 억지로 마지 못해했다.
그래도 자식 생일상은 다 차렸다.
남편 생일은 그냥 넘어갈 수가 멊게되었다.
시어머니가 내 생일은 아는 채 하는 법이 없고, 아들 생일이 다가오면 그 이틀 전에 나에게 전화해서 이렇게 말한다.
" 애비생일밥은 해 먹었나? "
그러면 나는 얼른 달력보고
"예 내일 모래인데요."
그래서 남편은 잊어버녔다고 할 수가 없어서 이십 여년 생일찾아 먹었다.
나는 못 찾아먹었는데 말이다.
시어머니가 안 계시자
나는 벼루고 의도적으로 남편 생일을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속으로 ' 이제 생일상 차려 주라고 전화 해 주는 너의 엄마는 없어 '하며 고소해 했다.
문제는 저녁 일곱시가 지나서 터졌다.
저녁먹고 남편에게 "사실은 오늘이 자기생일이었다"고 알러줬더니 서운해하는 것이 지금까지 내가 알던 순덕이 남편과 사뭇 다르다.
부랴 부랴 저녁늦게 튀김통닭 배달시키고 케이크 사서 상차려 준 것이 지금까지 계속 차려주고 있다.
내 생일도 간단히 찰밥과 미역국으로 때웠다.
어느덧 자식도 다 커서 첫째 딸을 먼저 또 이어서 둘째 딸도 혼인시켰다.
내 나이 오십 네살 십일 월 생일날이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남편과 둘이서 있는 반찬에 찰밥과 미역국 끓여 먹고 생일을 때우는 줄 알았다.
아니다 .
킥이 왔다.
내 어깨 키만큼 큰 상자였다.
속에는 큰 꽃다발이 들어있었고, 그 꽃다발을 들어내자 떡으로 만든 큰 케익과 위스키 그리고 예쁜 빽까지 들어 있었다.
둘째사위가 보낸 것이다.
나는 신이 나서 내 생일상을 차렸다.
잡채랑 굴비 굽고, 전 부치고, 나물 여러 가지 하고, 제철 과일을 사서 온 가족과 생일파티를 벌였다.
그 뒤로 부터는 매년 내 생일을 제대로 챙겨 먹고 있다 계속 ~쭉~.
끝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