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천지회 사람들은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가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노 인 한명이 영당 앞으로 가 서서는 은은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여러 형제들. 우리 윤(尹) 향주의 원한은 이제 갚게 되었소.오배란 녀석의 머리를 끝내 자르고 말았으니 이야말로 천지회(天地會) 청목당 (靑木堂)의 커다란 기쁨이 아닐수 없소." 위소보는 오배란 녀석의 목을 자르고 말았다는 말에 그만 귀가 멍해 졌다. 놀람과 함께 기쁨을 느끼게 되었고 번개 같은 생각이 그의 뇌리 에 떠올랐다. (이들은 오배의 부하가 아니고 오히려 오배의 원수란 말인가?)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느라고키가 크고 비쩍 마른 노인의 십여미디나 되는 다음 말을 위소보는 전혀 들을수가 없었다. 한 참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그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덧 이미 한 토막을 빠뜨린 이후였다. 이때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오늘 우리가 강친왕부를 발칵 뒤집어 놓고 오배를 죽인 후 무사히 돌아온데 대하여 오랑캐들은 반드시 간담이 서늘해 졌을 것이니 본회 의 청나라를 물리치고 명나라를 되찾자는 대업(大業)에 실로 좋은 점 이 많은 것이오. 그리고 본회의 각당의 형제들이 알게 되고 반드시 우 리 청목당에서 지혜와 용기를 갖추고서 과감하게 행동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탄복해 마지 않을 것이외다." 뭇사람들은 다투어 말했다. "옳소.옳소." "우리 청목당은 이번에 크게 체면을 세웠소." "연화당(蓮花堂),적화당(赤花堂), 그들은 언제나 자화자찬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 우리 청목당 만큼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일을해내지는 못했소." "이일이 천하에 알려지게 된다면 곳곳의 찻집에서는 이야기를 꾸며 서 노래를 하게 될 것이외다. 그야말로 장래에 오랑캐를 관외로 내쫓 게 된다면 천지회의 청목당 이름은 영원불멸할 것이오." "오랑캐를 관외로 내쫓아 모조리 죽여서 한결같이 죽여도 뼈를 묻힐 곳이 없도록 만들어야 하오." 뭇사람들은 너나 나나할 것없이 한마디씩 해댔다. 그리고 세로운 기 운이 솟아나는 듯 조금전 슬퍼하던 감정은 삽시간에사라지고 말았다. 위소보는 거기까지 듣게 되자 비로소 깨닫는 바가 있었다. 즉 이 한 떼의 사람들은 바로 조정을 반대하는 지사들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모십팔을 만나기 전에 양주의 거리에서 종종 많은 사람들로 부터 천지회에서 청나라에 반대하여 여러가지 의혈에 찬 일들을 했다는 말 들을 들은 적이 있었다. 과거 청나라 군사가 양주로 쳐들어와 마구 사 람을 도살하고 간음할 뿐만 아니라 노략질을 하는 등 못된 짓을 저지 른 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양주십일(揚州十日),가정삼도(嘉定三屠)' 라는 말까지 생기게 되었는데 양주에서는 거의 모든 집마다 커다란 도살에 난을 당하지 않은ㄴ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따라서 이곳 주민 들이 청나라에 대항하여 싸운 의사들을 흠모하는 점은 다른 고장의 사 람들 보다 더 깊게 되었다. 그리고 '양주십일'이라는 참혹한 사실이 있었던 때와는 불과 이십 몇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데 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위소보는 어릴 적 부터 끊임없이 청나라 군사의 악행을 들었 고 또한 사각부(史閣部)가 어떻게 적에게 항거하다가 난을 당하게 되 었으며 또 어떤 사람은 어떻게 적과 싸우다가 함께 죽었는가 하는 이 야기도 많이 듣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번에 모십팔이 염효들과 여춘원에서 싸움을 일으키게 된것 도 바로 천지회를 변명 한답시고 나섰다가 싸우게 된 것이 아닌가? ㄱ고 그는 길을 오면서도 모십팔로 부터 천지회의 많은 영웅적이 행적 을 듣게 되었고 그 뿐만아니라 그 누구라도 진근남을 만나지 못하면 영웅이라 일컫는 것도 헛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등등의 말을 들어왔 기 때문에 마음 속으로 이미 천지회를 십분 흠모하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 이때 그는 이 한 떼의 사람들이 바로 오랑캐를 죽이는 것을자기의 임 무로 삼고 있는 영웅호걸들임을친히 보게 되자 그만 분위기에 ㅈ어 크 게 흥분하게 되엇고 일시 자기가 바로 오랑캐 조정의 소태감의 신분이 란 사실마저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노인은 이때 사람들의 소리가 잠시 조용해지 기를 기다려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 청목당은 이 년간 윤향주 윤형님의 운한을기억하지 않은 때가 없었으며 한결같이 만운룡(萬雲龍)형님의 영전에 피를 뿌리며 맹세를 하되 반드시 오배라는 녀석을 죽여 윤형님의 원한을 갚겠다고 했소. 윤향주께서 그 당시 의젓하게 우리를 위해 죽음을 고스란히 받아들이 게 된 사실에 대해서 강호의 모든 사람들은 존경해 마지않았소. 그리 고 오늘 하늘에 계신 그의 영혼도 오배라는 자의 머리통을 보고는 반 드시 기뻐 크게 소리내며 웃을 것이오." 여러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옳은 말씀이오. 옳은 말씀이오." 그러자 사람들 틈에서 웅장한 음성이 들려왔다. " 이 년전 모두들 오배를 죽이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 청목당이 개새 끼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며 다시는 얼굴을 쳐들고 강호에서 떠돌아 다 니지 못할 것이라는 맹세를 했었소. 그런데 오늘 끝내 그와 같은 커다 란 치욕을 씻을 수 있었소. 이 번(樊)가는 이 년동안 밥도 배불리 못 먹었고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소. 그리고 밤낮으로 어떻게 하면 윤 향주의 원한을 갚고 청목당이 받은 치욕을 씻을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 소. 그런데 모두들 끝내는 소원을 성취하게 되었소. 하하하...." 모든 사람들은 그를 따라 웃음을 터뜨렸다.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노인이 말을계속했다. "정말 좋은 일이오. 우리 청목당이 다시 옛날의 위세를 되찾게 되고 모두들 얼굴을 쳐들고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게 되엇소. 이 이년동안 청목당의 형제들은 한결같이 넋이 나간 사람같이 자기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으며 처지회의 모임에 있어서도 다른 당의 형제들이 한번 쳐다 보고 냉소를 띄우기만 하더라도 그저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찾고 싶 은 심정이었고 토론을 하고 있는 크고 작은 일에 대해서 한 마디 입도 뻥긋하지 못했소. 물론 총타주(總舵主)께서는 몇번이나 전갈을 보내시 어 우리들을 깨우쳐주시려고 했소. 즉 윤향주의 원한을 갚는 것은 천 지회 형제들의 일이지 결코 청목당 한 당의 일만은 아니라는 말씀을 하셨소. 그러나 다른 당의 형제들은 언제나 차가운 말과 태도를 보였 으며 결코 그와 같이 생각하지 않았소. 그러나 오늘부터 우리는 과거 와는 크게 달라지게 되었소."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맞았소. 맞았소. 이형님의 말씀이 옳소이다. 우리는 이 기회에 단 숨에 세상 사라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을몇 가지 해치우도록 합시다. 오배라는 이 악적은 만주족 제일 용사라고 일컬어지는 자인데 오늘 우 리 손 아래 죽게 되었소. 따라서 만주 제2용사 제3용사 제4용사들은 한결같이 죽음이 두려워 벌벌 떨고 있을 것이오." 뭇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다 와 하니 웃음을 터뜨렸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네들은 방금 울었다가 방금 웃는 것이 꼭 어린애들만 같구려.) 이때 사람들 틈에서 차가운 음성이 들렸다. "우리 청목당에서 오배를 죽인 것이오?" 뭇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 조용해졌다. 대청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이 백여명이나 되었는데 삽시간에 쥐죽은듯 조용해지고 말았다. 한참 후에야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오배를 죽인 사람은 따로 있소. 하지만 그 역시 우리 청목당에서 강친왕부로 공격해 들어간 이후 혼잡한 틈을 타서 오배를 죽인 것이 아니겠소?" 먼저 번의 그 사람은 냉래한 어조로 말했다. "알고보니 그랬었군." 그러자 한 굵직하고도 웅장한 음성을 가진 자가 큰소리로 외쳐 물었 다. "기노삼(祁老三)그대는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지?" 그 기노삼이라고 하는 사내는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나에게 또 다른 무슨 뜻이 있겠소? 없소. 아무런 뜻도 없소. 다만 다른 당의 형제들이 만약에말이오. '이번 청목당은 그야말로 위풍당당 하게 되었군. 그런데 오배를 죽인 사람은 귀당의 어느 형제분이지?'하 고 한마디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약간 곤란해지지 않을수 없을 것이오. 모두들 생각해 보시오. 다른 사람들이그와 같은 질문을 할 수 없겠소? 아마도 천명 가운데 구백 구십 구명은 묻게 될 것이오. 모두들 자화자 찬을 하면서 자기 얼굴에 금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약간...허허허 모 두들 속으로 짐작들 하고 계실 것이오." 뭇사람들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의 말이 귀에거슬리는 기분 좋은 말은 아니지만 반박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한참 후에 그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노인이 입을 열었다. "이 청궁(淸宮)의 소태감이 공교롭게도 오배를 죽이게 되엇는데 이 것이야말로 윤향주의 하늘에 계신 영이 몰래 도우신 것이며 어린애의 손을 빌어 그 간악한 자를 제거한 것이 아니겠소? 모두들 하늘 아래 부끄럽지 않은 남아대장부이니 양심을 속여 거짓말을 할 수는 없을 것 이외다." 뭇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으며 어떤 사람들은 고개를 가 로저었다. 본래 신이 나서 떠들었지만 오배를 죽인 사람이 결코 청목 당의 인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게 되자 대뜸 모두 기분이 잡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노인은 말했다. "이 년간 본당에서는 우두머리가 없었소. 그리고 모두들 이 형제에 게 잡시 대리로 향주(香主)의 직책을 맡도록 했소. 이제 윤향주의 원 한을 갚게 되었으니 나는 영패(令牌)를 윤향주의 영전에 바치겠소. 뭇 형제들은 따로이 어질고 능력있는 분을 선출하여 주시오." 그는 영전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두 손에 한 조각의 목패를 들고서 몇 번 절을 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더니 영패를 영위(靈位)앞에 놓 았다. 그러자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이형이 이 년간 본당의 일을 매우 잘 처리해 주었소. 따라서 향주 의 자리는 이형 외에 그 누가 있어 차지 할 수 있겠소. 이형은 너무 겸손해 하지마시고 일찌감치 그 영패를 거두어 들이도록 하시오." "이 향주의 지위는 결코 우리 스스로의 뜻에 따라서 그 누가담당하 게 되는 것이 아니외다. 이는 총타에서 위임하는 것이외다. " 먼저 번의 그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규칙은 그렇지마는 언제나 해 온 관례에 따른다면어느 당에서 상의 하고 정한 이후 보고를 하게 된다면 위에서 한 번도 물리친 적이 없소 이다. 따라서 유임 한다는 것은 그저 관례적인 공사에 불과한 것이 오." 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형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각 당의 신향주(新香主)는 언제나 먼저번 의 향주에게 추천을 받았소. 전 향주가 나이가 많거나 병이들게 되엇 을때 유언을 남겨 형제 가운데서 한 사람을 선출하여 자리를 이어가도 록 했던 것이지 한 번도 스스로 추대하여 뽑은 규칙은 없소이다." 먼저 번의 사람이 말했다. "윤향주는 불행히도 오배에게 해침을 당했으니 어떻게 유언을 남길 수 있었단 말이오.가노육(賈老六) 이 일을 그대가 모르는 바도 아닌데 왜 꼬투리르 잡고 늘어지는 것이오/ 나는 그대의 뜻은 알수가 있소. 나는 그대가 이형을 본당 향주 자리에 모시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마 음 속으로 불측한 마음을 품고 달리 도모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오." 위소보는 가노육이란 말을 듣고 속으로 흠칫했다. (양주의 뭇염효들이 찾던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그는 고개를 돌리고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머리는 민숭민숭한 대머리였고 뒤통수에 조그맣게 머리를 땋기는 했으나 남아있는 머리카락은 몇 가닥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얼굴에는 커다란 흉터가 있었다. 그 가노육은 노해 부르짖었다. "내가 도 어찌하여 마음 속으로 불측한 마음을 품고 있으며 달리 도 모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오? 최해자(崔害子) 그대는 억울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지 말고 말을 분명히 하시오." 그 최가라는 사람은 왼쪽눈이 없었다.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흥. 우리 솔직히 털어놓고 이야기 합시다. 청목당에 있는 사람들가 운데 그대가 그대의 자형인 관부자(關夫子)를 떠받들어 향주로 모시고 자 한다는 사실을 그 누가 모르겠소? 관부자가 향주가 된다면 그대는 바로 처남 나으리가 되는 것이니 역시 큰 권리를 손에 쥐게 되고 무슨 일이든지 내키는 대로 하겠다는 수작이 아니겠소?" 가노육은 큰 소리로 말했다. "관부자가 나의 자형이든 아니든 그것은 별개의 문제요. 이번에 강 친왕부로 쳐들어가게 되었을 때 관부자가 우리들을 이끌고 갔으며 끝 내 공을 세워 돌아오게 되었소. 그런데 우리 자형의 재간으로 향주가 될 수 없다는 말이오? 이형은 경력도 오래되엇고 인덕도 많소. 따라서 나는 결코 그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오. 하지만 재간을 두고 논할땐 역 시 관부자가 더 낫다는 것이외다." 최할자는 갑자기 소리내어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는 경멸의 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가노육은 노해 부르짖었다. "왜 웃는 것이오? 설마하니 내 말이 틀렸단 말이오?" 최할자는 웃으며 말했다. "틀리지 않았소. 우리 가노육의 형의 말씀이 어찌 틀릴 수 있겠소? 다만 관부자의 재간이 너무도 무섭다고 느꼈을 뿐이오. 오관(五關) 자 나게 되었지마는 여섯 장수를 진짜 관공 관부자처럼 베지는 못했소. 그리고 사실에 임하게 되었을 때는 원수인 오배를 한 어린아이로하여 근 한 칼로 죽도록 했을 뿐이오." 별안간 사람들 틈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는 얼굴 가득히 누 기를 띄우고 영전에 섰다. 위소보는 그 사람이 바로 사람들을 데리고 강친왕부를 공격해 들어 갔던 기다란 수염의사내란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기다란 수염 을 가슴팍에 드리우고 있는 모양은 매우 위엄있게 보였다. 원래 이 사 람은 성이 관(關)씨이고 이름이 안기(安基)였다. 다만그 수염이 멋이 있고 성이 관씨인지라 다른 사람들은 그를 관부자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최할자를 노려 보더니 거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최형제 그대가 가노육과 입씨름을 하는데 있어서 무슨 말을 해도 상관이 없으나 이 관가는 그대에게 죄를 지은 바는 없소. 모두가 사이 좋은 형제이며 만운룡 형님의 영전에서 맹세를 한 바가 있지 않소. 어 떻게 하더라도 생사를같이 하겠다는 맹세가 아니었소? 그런대 그대는 나를 헐뜯다니 오대체 무엇 때문이오?" 최할자는 속으로 두려움을 느낀 듯 한 걸음 물러서서는 말했다. "나는...나는, 그대를 헐뜯는 것이 아니오..." 그리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관 둘째형. 그대...그대가 만약에 이형을 본당의 향주로 추대하시 는 것을 찬성한다면...그렇다면 이 형제는 그대에게 절을 하고 말을 잘못했다는 뜻으로 사과를 드리겠소." 관안기는 무게있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절을 하고 사과를 하겠다니 내 어찌 감당할 수 있겠소. 본당의 향 주를 그 누가 차지하든 이 관가는 그와 같은 일에 찬성할 자격이 없 소. 최형제 그대 역시 천지회의 총타주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 오. 그대 역시 청목당의 향주가 누가 되든 간에 그대가 나서서 말할 채례는 되지 않았소." 최할자는 다시 한 걸음 물러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 "관 둘째형. 그 말은 공공연히 사람을 헐뜯는 것이 아니오? 이 최할 자가 어떤 인물이오? 열 여덟 번 다시 죽었다 살아난다 하더라도 천지 회 총타주는 될 수가 없는 몸이외다. 나는 다만 이역세(李力世) 이형 의 덕망이 높으니 본당에는이형과 같은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 속으로 부터 승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외다. 본당의 향주 를 만약에 이형으로 하여금 이어가도록 하지 않는다면 아마 십중팔구 는 모두 다 승복하지 않을것이오." 그러자 사람들 틈에서 한 사람이 말했다. "최할자, 그대는 본당의 사람이 십중팔구 명이나 되는 형제가 아닌 데 어찌 십중 팔구의 형제들의 마음속으로 승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단 말이오? 내가 보기에 이형은 퍽이나 좋은 사람이오. 모두들 그 분과 술을 마시고 환담을 나누며 햇볕을 쪼인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일 이외다. 그러나 본당의 향주가 된다는 것 은 아마도 십중팔구 명의 형제들이 마음 속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 같구료."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내말도 그거야. 장형제의 말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옳아. 덕망 이 높으면 어떻다는 것이오? 우리 천지회는 청나라를 무찌르고 명나라를 되찾자는 것이지 공부자를 흉내내어 인의도덕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지 않소? 덕망이 높다고 해서 오랑캐들이 놀라 도망친단 말이오? 덕망이 높은 사람을 찾으려면 서당에서 온종일 시운자왈(時云子曰)을 지껄이 고 있는 늙은 선비들 가운데서도 얼마드지 찾아 낼 수 있을 것이오." 사람들은 모두 그 말들을 듣자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한 명의 도사가 입을 열었다. "그럼 그대의 의견으로 누가 본당의 햐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 는 것이오?" 그 사람은 말했다. "첫째 우리 천지회에서 하는 일이란 것이 청나라를 물리치고 명나 라를 되찾자는 큰 일 이외다. 그리고 둘째 우리 청목당은 천지회 각 당 중에서돋뒤어난 일들을 해 보여야 한다는 것이외다. 우리 형제들 가운데 재간이 있고 또 가장 실력이 있다면 모두들 그를 향주로 받들 어야 할 것이오." 도사는 말했다. "가장 재간이 있고 가장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빈도가볼때 역시 이형이 제일 인것 같소." 그러자 사람들 가운데서 수십 명이 모두다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우리는 관부자를 추대하오. 이형의 재간이 어찌 관부자에게 미칠 수 있겠소?" 도사는 말했다. "관부자는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매우 충동적인 데가 있소. 이 점은 모두가 탄복하는 것이오." 많은 사람들은 외쳤다. "그렇소. 그러니 더 말할 것도 없지 않소?" 그 도사는 두 손을 들고 마구 흔들며 부르짖었다. "잠깐 잠깐 내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시오. 하지만 관부자의 성미는 매우 조금하오. 거절하면 성을 내고 욕을 하오. 그는 지금 본당에서 일반 형제에 불과한데도 모두들 그를 대할 때 마음 속으로십분 쯤 미 리 겁을 집어먹게 되오. 따라서 그가 향주가 된다면 아마 그 누구도 편안하게 하루를 보낼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오." 그러자 한 사람이 말했다. "관부자의 성질은 최근에 와서 많이 나아졌소. 그가 향주가 된다면 더욱 좋아질 것이오." 도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강산은 쉽게 바뀌어도 본성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고했소. 관부자 의 성질은 수십 년에 결쳐 이루어진 것이오. 설사 일시적으로 참아낼 수 는 있다지만 일년이나 반년 동안 어찌 참아낼수 있겠소? 청목당의 향주는 한평생을 두고차지할 자리이니 성질이 나쁜 사람을 시키면 안 되오.그렇게 된다면 형제들 간에 불화가 일 것이며 모두들 인심이 흐 트러져 큰 일을 그르치게 될지도 모르는 노릇이오." 가노육은 말했다. "현정도장(玄貞道長) 내가 그대의 성질을 볼때 어떤 점에 있어서나 그보다 더 낫다고는 볼 수가없더구료. " 그 도사의 도호는 현정이라 했다. 그는 가노육의 말을 듣더니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그것이 바로 각자의 일은 그 스스로가 안다는 것이 아니 겠소? 빈도의 성질이 좋지 못하고 남의 성질을 거슬릴 때가 많기 때문 에 나는 될 수 있으면 말을 적게 하려고 했소. 하지만 향주를 뽑는 일 은 본당의 큰 일이라 참을 수가 없어서 몇 마디 말을 한 것이오. 빈도 의 성질이 좋지못하면 향주노릇을 하지 않는다면 상관이 없는 노릇이 아니겠소? 어느 분의 형제이고 간에 눈에 거슬린다고 생각한다면 나와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그 쁜일 것이며 멀리 피한다면 또한 그럭저럭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그러나 만약 빈도가 향주가 된다면 어느 형제가 아랑곳 하지 않고 멀찌기 피하겠소." 가노육은 말했다. "그 누구도 그대를 향주로 추대하고자하는 사람이 없거늘 어찌해서 그대는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소?" 현정은 발끈해져서 날카롭게 외쳤다. "가노육 강호의 친구들은 빈도를 대하게 되면 그래도 도장일랍시고 한 마디의 존칭을 해주오. 설사 총타주라 하더라도 깍듯이 대해준단 말이오. 그런데 그대는 어째서 이토록 무례하게 주시오? 그대야말로 개가 주인의 힘을 믿듯이 이 현정을 깔보고 덤비는 모양인데 그렇게 쉽지는 않을껄? 내분명히 그대에게 말해 두겠는데 관부자가 본당의 향 주가 되는 데 대해 이 현정이 첫번째로 반대하오. 그가 만약 향주가 되겠다면 첫번째로 반드시 해치워야될 일이 있오. 그 일을 만약 해낸 다면 빈도는 어쩌면 반대하지 않을 지도 모르오." 가노육은 그가 본래 개가 주인의 세력을 믿고 운운하는 말에 마음 속으로 가득 울화가 치밀었으나 첫재로 현정도사의 무공이 고강하기 때문에 정말 그가 화를 내게 될 때는 감히 그와 맞서서 입을 놀릴 수 가 없고 그리고 둘째로 이 도사는 강호에서 명성이 꽤 자자 한 편이라 총타주가 그에게 깍듯이 대하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며 또한 그 자신이 자기의 자형을 본당의 향주로 옹호하는 마당에 만약 이 도사가 나서서 방해한다면 그때는 커다란 장애가 될 것이 뻔했기에 그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현정 도사가 만약에 그의 자형이 한 가지 일을 한다 면 그의 자형이 향주가 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자 속으 로 기뻐서 물었다. "그게 무슨 일인지 이야기나 해 보시구려." 현정도인은 말했다. "관부자가 첫번째로 처리해야 할 큰 일은 바로 십족진급(十足眞金) 가금도(賈金刀)와 반드시 이혼을 해야 한다는 것이오." 그 말을 듣자 뭇사람들은 대뜸 와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 현정 도인이 말하는 가금도는 관부자의 처이고 가노육의 친누님 이었다. 그 녀는 두 자루의 금도를 사용했는데 남들은 그녀에게 우스개 소리로 종 종 묻고 했었다. "관 아주머니 그대의 이 두자루 금도는 도대체 진짜 금으로 만든 것 이오? 아니면 가짜 금으로 만든 것이오?" 그러면 그녀는 반드시 정중하게 대답했다. "십족진금이오. 심족진금이 어찌 가짜일 리가 있겠소?" 그래서 십족진금이라는 호가 붙게 되엇다. 현정도인이 관부자에게 처와 이혼을 하라고 한 것은 그야말로 가노육을 꼴 사납게 만들려고 하는 수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십족진금 가금도는 사람됨이 솔직 하고 말이 빨랐으나 정말 좋은 사람이엇다. 그녀의 동생인 가노육 역 시 나쁘지는 않았으나 다만 그의 자형을 너무나 추켜올렸다. 거기다가 관부자는 성질이 조급하기 대문에 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지를 때가 많 아 모두들 등 뒤에서 이러퉁 저러쿵 말을 듣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때 관안기가 손을 뻗치더니 쿵하고 탁자를 내려치며 호통을 내질렀 다. "현정도장 무슨 말을 하는거요? 내가 향주가 되고 안 되고 무슨 상 관이 있다고 내 마누라까지 들먹이는 것이오?" 현정도사가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관부자 윤향주는 죄를 짓지 않았소. 그런데 그대는 그의 영대를 왜 내려치는 것이오?" 원래 관안기는 흥분된 김에 영대위를 내려 쳤던 것이었다. 관안기는 깜짝 놀랐다. 그는 위인됨이 없긴했으나 눈치가 빨랐다.그 는 큰 소리로 말했다. "이 형제가 잘못했소. " 그리고 그는 영전 앞에 꿇어 앉아서는 몇번 큰 절을 하고 말했다. "윤형님 이 형제가 성이 난김에 형님의 영대를 일장으로 내려 쳤군 요. 정말 이 형제의 불찰입니다. 형님께서 하늘에 계신 영이나마 너무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쿵쿵쿵 하니 몇 번 큰 절을 올렸다. 다른 사람들도 그가 그와 같이 행동하자 더 따지지 않았다. 최할자가 입을 열었다. "모두들 보시오. 관부자는 정말 소탈한 사내 대장부인데 그처럼 성질 이 급하고 참을 성이 없는것이 탈이오. 그가 잘못을 저지르고 즉시 잘 못을 시인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오. 그러나 만약 향주가 되었을때 한 가지 일을 잘못 처리하게 된다면 종종 커다란 결과를 가져오게 되 는데 설사 잘못을 시인한다 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느냔 말이오." 관안기는 원래 기세등등하게 현정도사에게 어찌하여 그의 처인 십족 진금 가금도를 들먹이느냐고 따지려 들었었다. 그러나 너무 화가 난끝 에 윤향주의 영대를 후려치게 된 관계로 힐난을 받게 되고 말았다. 그 는 즉시 영위에 큰 절을 하여 뭇 형제들이 더 따지지 않게 되었으나 끝내 그의 기세가 수그러지고 말았다.잠깐이라도 현정도사와 더 따지고 들 마음이 나지 않았다. 현정 역시 이 기회를 빌어 적당히 얼버무렸다. "관부자 그대와 나는 형제지간으로 함께 생사를 격고 또한 어려운 일을 격어내지 않았소. 그러니 일시라도 언쟁을 벌여 형제지간에 우애 를 상실하지 않도록합시다. 방금 빈도가 한 말은 우스개 말이니 널리 이해아여 주시오. 그리고 나중에 집에 돌아가서 가금도 아주머님께 말 씀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았을땐 그녀가 달려나와 빈도의 수염을 잡고 늘어진다면 야단이 나오.." 사람들은 모두 그 말에 웃었다. 관안기는 본래 이 도사에 대해 어느 정도 꺼리는 바가 있는지라 그저 웃고 말았다. 뭇사람들은 중구난방으로 한 마디씩 지껄였다. 어떤 사람은 이형이 좋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관부자가 좋다고 했으며 시종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이때 별안간 한 사람이 소리내어 대성 통곡을 하면서 말했다. "윤향주. 윤향주. 그대가 이 세상에 살아계실땐 우리 청목당의 형제 들은 얼마나 화목했소. 뭇형제들은 그야말로 친 골육(骨肉)처럼 혐심 합력하여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명나라를 건국하자는 큰 일을 했소. 물 행히도 그대가 오배라는 간적의 해침을 받게 되자 우리 청목당에는 그 대 처럼 인연(人緣)이 좋고 재간이 뛰어난 사람을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었소. 윤향주 그대가 죽었다가 되살아 나지 않는한 우리 청목당은 아무래도 서로 다투기를 멈추려 하지 않을 것 같으며 모래알 처럼 흐 트러져서는 다시 그대가 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처럼 세력을 떨치기는 틀린것 같소." 뭇사람들은 그가 그와 같이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되자 그만 참을 수 없다는 듯 다시 눈물을 흘렸다. 이ㄸ 한 사람이 다시 말했다. "이형은 이형의 좋은 점이 있고 관부자에게는 관부자의 좋은 점이 있소. 두 분다 우리와는 사이좋은 형제 이니 향주를 추대한답시고 서 로의 불화는 가져올 수 없소. 나의 의견은 차라리 윤향주의 하늘에 계 신 영이 결정하도록 했으면 하오. 우리가 이형과 관부자의 이름을 쓰 고 모두들 윤향주의 영위를 향해 절을 한 이후 제비를 뽑아 결정하는 것이 가장 공평할 것 같소."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 소리에 찬동을 표했다. 그ㄸ 가노육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 방법은 좋지 않소." 어떤 사람이 물었다. "왜 좋지 않다는 것이오." 가노육은 말했다. "모든 사람이 한 분의 형제를 추대해서 뽑으면 될 것이 아니겠소?" 가노육은 말했다. "그래도 그 사람이 혹시 사사로운 감정으로 인해 어떤 폐단을 일으킬 지도 알 수 없는 일이 아니겠소?" 최할자는 노해 부르짖었다. "윤향주의 영전에서 그 누가 그토록 대답한 짓을 한단 말이오. 감히 수작을 부려 하늘에 계신 윤향주의 영을 속일수 있단 말이오?" 가노육은 말했다. "사람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방비를 하지 않을 수 없소." 최할자는 욕을 햇다. "제에미 그대나 그런 생각을 하지 다른 사람이 누가 그런 생각을 가 지겠소?" 가노육은 노해 부르짖었다. "그대는 누구를 욕하는 것이오?" 최할자는 노해 부르짖었다. "그대를 욕하는 것이오. 어떻 하겠다는 것이오?" 가노육은 말했다. "나는 오랬동안 참아왔소. 그러나 그대가 우리 어머니를 욕하는 것 은 결코 참을 수 없는 일이오." 그리고는 휙하니 강철 칼을 뽑아들고 왼손 손가락으로 최할자를 가 리키며 호통을 내질렀다. "최할자 우리는 밖의 마당으로나가서한 번 겨루어 봅시다." 최할자는 천천히 칼을 뽑아들고 말했다. "이것은 그대가 도전을 한 것이고 나는 부득이 응전을 한 것이오. 관 부자 그대도 친히 들었겠지요" 관안기는 말했다. "모두 형제들끼리 이런일 때문에 칼 부림을 해서는 안되오. 최형제. 그대가 나의 처남을 욕한 것은 그대의 잘못이오." 최할자는 말했다. "나는 이미 그대가 나를 꾸짖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소. 그대는 아직 향주가 되기도 전에 이모양인데 만약 향주가 된다면 야단이 나지 않겠소?" 관안기는 노해 부르짖었다. "그럼 그대가 윗 어른을 욕하는 것은 잘한 짓인가? 내처남에게 '제 에미'라고 했는데 그렇게 따지게 되면 나는 그대에게 어떻게 되는 사 람이지?" 뭇사람들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일시 대당은 소 란스러워지고 말았다. 가노육은 그의 자형이 자기를 위해 나서자 기세 가 등등해져서는 마당으로 뛰어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누가 손을 뻗쳐 그를 막으며 권유했다. "가노육, 그대의 자형으로 하여금 향주가 되도록 하려면 다른 많은 사람들의 비위를 거슬릴 수가 없네. 이런일에 부딪히게 되었을 때에는 반드시 한 걸음 정도는 양보할 줄 알아야하네." 최할자는 천천히 칼을 거두어 칼집에 꽂으며 말했다. "나 또한 그대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오. 다만 모두들 의리를 중시 하는 형제들이라 칼을 들고 목숨을 걸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오. 어찌 됐든 간에 관부자가 향주가 된다는 것을 이 최가는 도저히 찬성 할 수가 없소. 관부자가 화내는 것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으나 가노육 이 내는 화는 견딜 수가 없을 것이오. 염라대왕은 만나기 좋아도 작은 도깨비는 감당하기 어렵소." 이때 위소보는 한쪽에 서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 마디씩 다투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마구 욕을 해댔고 또 어떤 사람은 칼을 휘둘러서 싸우자고 나서는 꼴을 냉정한 눈으로 구경을 하고 있자 니 퍽이나 재미있게 느껴졌다. 처음 그는 이 사람들이 오배의 부하들로서 자기를 죽여 오베의 앞에 제사를 지내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모두다 오배를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마음 속으로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말끝마다 청나라를 무찌르고 명나라를 되찾는다는 말을 하는지라 다시 걱정이 되었다. (그들은 자연히 나를 청궁의 태감으로 인정할 것이고 내가 아무리 변명을 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반드시 믿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향주 를 뽑는 건 이후의 일이고 첫번째 할일은 나를 죽이는 일이 될 것이 다. 이것이야말로 청나라를 무찌르고 명나라를 되찾겠다는 것이 아닌 가? 눈 앞의 청나라 사람은 나밖에 또 누가 있더란 말이냐? 더군다나 내가 이곳에서 그들의 모든 비밀을 다 듣게 되었으니 설사 나를 죽여 입을 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를 가두어서 살아 생전에는 바깥으로 못 나가게 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곳에서 빠져 나가는 것이 좋겠 다.) 그리고는 천천히 한 걸음 한걸음 문쪽으로 물러갔다. 그리하여 대청 안의 형세가 조금더 어지러워 지게 될때 뺑소니를 칠 작정이었다. 이때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제비를 뽑는 일은 너무도 허망하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어린애 장 난 같은 것이오. 내가 볼때 역시 이형과 관부자가 무공으로 승부를 결 정 하는 것이 좋겠소. 권각법으로 겨루어도 좋고 무공을 사용해도 좋으나 상대방의 몸에 손이 닿는 것으로 끝내되 상처를 입히지는 않도록 하면 될 것이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한편에 서서 눈을 커다랗게 뜨고서 누가 이기고지는 가를 똑똑히 볼 것이니 누구도 다른 말을 할 수 없을 것이오." 가노육은 먼저 찬성을 했다. "좋소, 바로 무공을 겨루는 겨루어 승패를 결정하도록 합시다. 만약 이형이 이기게 된다면 이 가노육은 이형을 향주로 받들어 모시겠소이 다." 그의 한 마디가 떨어지자 위소보는 즉시 생각을 했다. (네가 무공을 겨루는 것을 찬성하는 걸 보니까 너의 자형의 무공이 이형을 압도하는 모양이로구나. 그렇다면 겨룰 것이 뭐 있느냐?) 위소보마저 이런 생각을 하는 정도이니 다른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 가 없었다. 따라서 이씨를 옹호하는 파에서는 대뜸 다투어 반대하는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은 말을했다. "향주가 되는것은 본당의 형제들이 화목하게 지내도록 하면서 큰 일을 하자는 것이지 무공이 좋고 나쁘고는 별 큰 상관이 없소." "정말 무공을 겨루어서 향주를 정하게 된다면 본당의 형제 가운데 그 누구의 무공이 관부자를 이기게 될 때에는 그로하여금 향주가 되게 할 것이오?" "이것은 향주를 추대하자는 것이 아니라 누대를 세우고 무공을 겨루 자는 것이 아니겠소. 그렇다면 관부자가 누대를 설치해서 천하 영웅호 걸들로 하여금 누대 위로 올라가 도전을 하도록 만드시오." "만약 오배라는 간적이 죽지 않았더라면 그는 만주제일용사(滿洲第 一勇士)이니 관부자의 무공으로써는 반드시 그를 이겨낼 수 없을 것이 오. 따라서 누대를 설치하고 시합을 가지게 된다면 설마하니 오배를 우리의 향주로 모셔야하는 꼴이 되지 않겠소?" 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옥신각신할때 갑자기 누가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윤향주, 윤향주. 그대가 죽은 이후에 모두들 그대를 업신여기는구 려. 그대 영전에서 한말과 한 맹세는 모두가 개방귀 같은 수작으로 변 하고말았소." 위소보는 그사람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 살마은 바로 시 큰둥한 말을 잘하는 기노삼의 말이었다. 뭇사람들은 즉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몇 사람이 곧이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기노삼. 그대의 그와 같은 말은 무슨 뜻이오?" 기노삼은 냉소하였다. "흥. 이기가는 과거 만운룡 형님과 윤향주의 영전에서 절을 하고 손 가락 끝을 찔러 피를 낸 이후 맹세를 한바 그 맹세는 윤향주의 원한을 반드시 갚겠다는 것이며 또 친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소. '어느 형제 가 오배를 죽여 윤향주의 원한을 갚게 된다면 이 기표청(祁彪淸)은 바 로 그를 본당의 향주로 모실 것이며 충성으로 그의 명령을 받들되 어 기지 않겠소이다.' 이 한마디 말을 이 기노삼이 했던 말이오. 이 기가 는 자기의 한 말에 책임을 지며 결코 개방귀 같은 소리로 만들지는 않 소이다." 삽시간에 대청 안은 조용해졌으며 아무런 기척도 들을 수 없게 되었 다. 원래 그 한 마디 말은 대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 말이기도 했 다. 잠시후 역시 가노육이 가장 먼저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기 세째형. 그대의 그 말은 틀리지 않았소. 그 몇 마디의 말은 모 든 사람들이 다 말한 것이었소. 이 가노육도 자기가 한 말에는 어찌 책임을 지지 않겠소? 그러나...그러나...그대가 알고 내가 또 모두 다 일고 있되 바로 오배를 죽인 것은 저....!" 그는 몸을 돌리고 위소보를 찾았다. 그런데 별안간 위소보가 한 걸음을 대청 문 밖 쪽으로 내딛으며 곧 장 밖으로 도망을 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큰 소리로 부르짖었 다. "그를 잡으시오. 그를 도망치게 해서는 안되오." 위소보가 냉큼 달아나려고 하는 그 순간 육칠명이 덮쳐 들었다. 그 리고 십여개의 손이 거의 동시에 그의 몸을 움커 잡고는 그를 안으로 끌어들었다. 위소보는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이것 놓아. 이것 놓아. 이 후레자식들아 왜 나를 잡느냐?" 그는 이번엔 살아남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욕이라도 실컷 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때 사람들 가운데서 몸에 선비 차림을 한 사람이 나서더니 입을 열었다. "소형제, 우선 욕은 그만 두시지." 위소보는 그의 음성을 알아들을수 있었다. "그대는 기노삼이지?" 그 사람은 바로 기노삼 기표청이었다. 그는 아연해져서 물었다. "그대는 나를 아는가?"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그대의 어머니를 알지." 기표청은 책벌레다운 기질이 있어서 위소보가 자기를 욕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더욱 이상하게 여기고서 물었다. "그대가 어떻게 우리 어머님을 알지?"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그대의 어머니와 옛날 옛적부터 좋아하던 사이였거든."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소리내어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이 소태감은 주둥이가 여간 야무지지 않군." 기표청은 얼굴을 살짝 붉히더니 말했다. "농담을 다 할 줄 아는군." 그리고 그는 정색을 하여 말했다. "소형제 그대는 어째서 오배를 죽였지?" 위소보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오배 그 간적은 나쁜 일을 많이 저질렀을 뿐 아니라 우리 한나라 사람 가운데 무수한 영웅호걸들을 해쳐 죽였으니 이 위소보는 그와 한 세상 아래서 살수 없는 처지외다.나는...나는 무단히 그에게 잡혀서 황궁으로 들어가 태감이 되었소. 나는 그야말로 그를 갈기갈기 찢어서 는 연못의 자라 밥을 만들어야만 속이 시원하겠소." 그는 격양되어 말을 하면 할 수록 살아날 기회가 더 크다는 것을 알 고 있었다. 대청의 뭇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놀랍고도의아하다는 표 정을 지었다. 기표청은 물었다. "그대는 태감이 된지 얼마나 오래 되었지?" 위소보는 말했다. "오래 되기는 커녕 반년도 되지 않았소. 본래 나는 양주 사람인데 그에게 잡혀 북경으로 오게 된 것이오. 빌어먹을 못된 오배는 죽어서 도 허리는 칼산(刀山)에 찍히게 되어 기름 가마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커다란 못이난 판자대기 위에 몸을 뒹굴며 뼈골마저 못 박히는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오." 그는 잇따라 양주의 욕지거리를 마구 터뜨렸다. 한 중년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정말 양주 사람이군." 그가 말하는 것역시 양주의 말씨였다. 위소보는 말했다. "아저씨 우리 양주 사람은 만주 오랑캐들에게 그야말로 참혹한 죽음 을 당하지 않았소.잇따라 혈흘 간 살해를 당했으며 아침 부터 저녁까 지 멈출 사이가 없었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큰 할머니 둘째 할머니 세째 할머니 네째 할머니 어느 한 사람 오랑캐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 은 사람이 없었소. 만주 오랑캐들은 동문(東門)에서 서문(西門)에 이 르기 까지 사람을 죽였고 남문(南門)에서 북문(北門)에 이르기까지 사 람을 죽이면서 소란을 피웠는데 이것이 모두 오배가 내린 명령이 아니 겠소. 나는...그야말로 그와는 불공대천의 원수 지간이오." 그는 양주 십 일간의 대도살이라고 하는 참사를 많이 들은 적이 있 었던 지라 가면 갈수록 그럴싸하게 주워 섬겼다. 따라서 뭇사람들은 그와 같은 위소보의 말에 얼굴 표정들이 움직이게 되었으며 연신 고개 를 끄덕였다. 관안기는 말했다. "무리는 아니군. 무리는 아니야." 위소보는 말했다. "또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우리 아버지마저도 오배에게 죽 음을 당했소." 기표청은 말했다. "가련하군,가련해." 최할자가 물었다. "너는 금년에 몇 살이지?" 위소보는 말했다. "열네살이오." 최할자는 말했다. "양주에서 대도살을 벌인 것은 이미 이십 년 전의일인데 어찌하여 너의 아버지마저 오배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냐?" 위소보는 생각해 보니 잘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짓말을 하다보니 일이 비틀어져서 말이 헛나가게 되었으나 잠자코 있을 수 없 어서 입을 열었다. "내가 어찌 알겠소. 그때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그것 은 우리 어머니가 말씀 하신 것이오." 최할자는 말했다. "설사 네가 유복자라 하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냐?" 기표청은 말했다. "최형제 그대의 말은 잘못되었소. 이 소형제는 그의 아버지가 오배 에게 죽음을 당했다고 했지 양주 십일이라는 사건이 있었을때 살해당 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소. 오배는 최근에 이르기까지 큰 벼슬을 하면 서 하루동안에 무수한 사람을 죽이지 않았소. 우리 윤향주만 하더라도 오배에게 해침을 당한 것은 불과 이년 전의 일에 지나지 않소." 최하라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려." 가노육은 갑자기 물었다. "소....소형제. 오배가 무수한 영웅호걸들을 죽였다고 했는데 그것은 너와 무슨 상관이 있지?" 위소보는 말했다. "왜 상관이 없소? 나에겐 친한 치구가 한 사람 있는데 바로 오배에 게 청궁으로 잡혀가 죽음을 당했단 말이오. 나와 그는 함께 잡혀간 것 이란 말이오." 뭇사람들이 일제히 물었다. "그게 누구지?" 위소보는 말했다. "그 사람은 강호에서 상당히 유명하죠. 그 사람은 바로 모십팔입니 다." 십여 명의 사람들은 일제히 아! 하고 고함을 쳤다. 가노육은 말했 다. "모십팔이 너의 친구란 말이냐? 그는 죽지 않았다."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그가 죽지 않았다고요? 정말 입니까? 그것 참 잘 됐군요. 가노육 당신이 양주에서 염효들에게 욕을 했기때문에 모십팔은 당신을 위해 그들과 싸움을 버였었소. 나는 그를 도와서 싸웠죠." 가노육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건 사실이야." 관안기는 말했다. "좋아. 이 어린 친구가 도대체 친구인지 적인지는 상당히 중대한 문 제이니 노육 자네가 몇 분의 형제를 데리고가서 모십팔을 모셔와 사람 을 알아 보는지 두고 보기로 하지." 가노육은 대답했다. "예" 그리고 그는 몸을 돌려서 대청을 나갔다. 기표청이 하나의 의자를 끌어다 갖다 주며 말했다. "소형제 앉아요." 위소보는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누가 한 그릇 의 국수와 한 잔의 차를 가져왔다. 위소보는 정말 배가 고팠던 참이라 깨끗이 먹어 치웠다. 관안기,기표청,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이형이라 부르는 이역세가 그를 상대로 환담을 나누엇다. 그들의 말투는 퍽이나 겸손했다. 그러나 실지에 있어서는 바로 위소보의 신세와 겪은 일들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위소보 역시 조금도 숨기지 않고 말햇다. 간혹가 다가 과장할때도 있었고 오배를 몇 마디 욕하는 말도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강희 황제를 도와 오배를 죽이게 됐는지도 일일이 이야기를 했 다.다만 해로공에게서 무공을 배우게 되고 강희가 친히 칼을 써서 오 배를 찌른 일은 언급하지 않았다. 관안기는 이비 오배는 원래 소황제 와 한 때의 소태감들이 잡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위소보가 정말 경험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십중팔구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관안기는 탄식하며 말을 하였다. "오배는 만주 제일의 용사라고 일컫는 사람인데 너에게 살해됐을 뿐 아니라 너에게 잡혔다니 그것이야말로 진정 운명이 아닐까 한다."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