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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게시판 스크랩 <태클 1> 태극 무공 훈장...
최용호 추천 0 조회 16 17.11.13 13:3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태클 1> 태극 무공 훈장...



언젠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의외의 미국 의회 명예 훈장 수훈자 포스팅을 하면서 말미에 우리 무공 훈장 수훈자에 대한 의식이 너무 박하고, 그 혜택도 허접하기 그지없으므로, 더 신뢰도 있고 높은 권위의 훈장을 신설하여 새롭게 그들을 기리고, 그들에게 감사하는 계기로 만드는 게 어떻겠냐고.


오늘부로 당시에 내가 했던 의견을 완전히 철회한다.
왜냐고?
전혀 그럴 필요가 없으며, 그래봐야 공정한 심의 기관도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 이노무 나라에선 애먼 X만 더 나은 혜택을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무공훈장의 사전적 의미는, 전시(戰時)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 사태 하에서 전투에 참가하여 뚜렷한 무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무공훈장은 태극무공훈장(太極武功勳章), 을지무공훈장(乙支武功勳章), 충무무공훈장(忠武武功勳章), 화랑무공훈장(花?武功勳章), 인헌무공훈장(仁憲武功勳章)의 5등급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우리나라 군인에게 수여되는 최고 무공훈장은 태극무공훈장(太極武功勳章)이 되겠으며, 얼마나 높은 등급의 훈장이며 수여받기 어려운 훈장이기에, 외국인을 제외하고 한국군이 받은 태극무공훈장은 단 80여명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제 2 연평해전에서 전투를 지휘하다 전사한 참수리 357호 정장 고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에게 추서된 훈장도 무공 훈장 서열 중 3번째인 충무무공훈장이었으며, 이 전투에서 전사한 6명에게는 충무무공훈장 2개, 서열 4등급 화랑무공훈장 4개만이 각각 추서되었다.


그렇다면 엄청 받기 어려운 훈장이 태극무공훈장인 모양인데, 이게 또 수훈자에 대한 예우가 사회적, 국가적으로 허접하기 그지없어서, 여러 가지로 안타깝기도 하였다.
특히, 미국의 무공 훈장 중 최고 훈장인 의회 명예 훈장과 대비하면, 그 꼬락서니가 참 짜증나는데, 문제는 가뜩이나 대우적으로, 혜택적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우리의 무공 훈장 수훈자 명단을 접해보고는, 한마디로 열 받아 죽을 뻔 했다.



먼저, 미국의 명예 훈장 수훈자들을 일단 살펴보겠다.
미국의 명예 훈장은 1861년 12월 21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에 의해 법률로 서명되어 수여되기 시작했고, 남북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엔, 훈장이 적절한 게 없었으므로 솔찍히 남발된 훈장이기도 하였다.
1860년대 남북전쟁 당시 명예훈장 수훈자는 모두 1,522명으로 전투에서 용감한 행동으로 훈장을 받았으며(사후 수여 32명..) 명예 훈장 수여자 거의 절반이 남북 전쟁의 전공으로 발생했으므로 거의 막 뿌린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렇게 적절한 기준도 없고 막 뿌려댄 이 시기의 명예 훈장이지만, 장성 출신 수여자는 단 12명에 불과했다(비율로 따지면 1%도 안 되는 0.78%다..)
미국 국민들은 이런 데에는 별 관심이 없는 지, 명예 훈장을 받은 장군이 몇 명인지 따로 리스트도 없고 해서, 내가 3,493명의 명예훈장 수훈자 명단을 놓고 일일이 헤아려 보기로 했다.


 
먼저 막 뿌려댄 남북 전쟁 당시 12명의 장군 명예훈장 수훈자다.


1. 압살롬 베어드(Absalom Baird) 육군 준장
존스버러(Jonesborough)의 전투에서 휘하 여단을 주도적으로 지휘.
2. 다니엘 A. 버터필드(Daniel A. Butterfield) 육군 준장 
버지니아 게인스밀(Gaines' Mill) 전투에서 남부군의 빗발치는 포화를 무릅쓰고 와해 직전의 부대를 재편성했다.
3. 매닝 F. 포스(Manning F. Force) 육군 준장
조지아 애틀랜타 전투에서 남부군의 공세를 막다가 중상을 입고 포로가 된 후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입장을 꺽지 않았다.
4. 존 P. 해치(John P. Hatch) 육군 준장
남군의 막강한 화력 앞에도 자신의 여단을 앞장서 선도했고 그 과정에서 중상을 입었다.
5. 올리버 O. 하워드(Oliver O. Howard)  육군 준장  
제 61 뉴욕 보병 여단을 이끌었고 심각한 부상으로 오른쪽 팔을 절단했다.


                           전투 중 부상으로 오른팔을 절단한 올리버 하워드 준장 


6. 뉴턴 M. 커티스(Newton M. Curtis) 육군 준장
포트 피셔의 두 번째 전투에서 공격을 주도하고 4차례나 부상을 입었다.

7. 존 C. 로빈슨(John C. Robinson) 육군 준장
버지니아 로렐 힐(Laurel Hill, Virginia) 전투에서 여단의 선두에 서서 공격을 지휘하였고 중상을 입었다.
8. 루퍼스 색스턴(Rufus Saxton) 육군 준장
셰넌도어 밸리(Shenandoah Valley) 전투에서 용감하게 전투에 임했다.
9. 다니엘 E. 시클스(Daniel E. Sickles) 육군 소장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적극적으로 남군의 공세를 막았고, 자신이 심각한 부상을 입은 후에도 부하들을 독려하기 위해 계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에서 지휘하였다.
10. 줄리어스 스탈(Julius Stahel) 육군 소장
버지니아 피드먼트(Piedmont)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을 때까지 자신의 부대를 계속 지휘했다.
11. 데이비드 S. 스탠리(David S. Stanley) 육군 소장 
테네시 프랭클린(Franklin) 전투에서 중요한 순간?? 그의 여단을 이끌고 부대 선두에 섰으며, 공격선을 다시 설정, 용감하게 성공적 공격을 이끌었다.
12. 알렉산더 S. 웹(Alexander S. Webb) 육군 준장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중요한 시기에 앞장서서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었다.

 

     게티즈버그 전투 당시 링컨과 함께한 북군 장성들..왼쪽에서 두번째가 알렉산더 웹..


이상이 남북전쟁 당시 명예 훈장을 수여받은 장군들의 명단이고 그 기록된 공적 내용이다.


이후 서부 개척 과정에서 426명에게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고, 13명이 사후 추서되었으며 이중에는 그 용감한 행위로 백인 병사가 아닌 인디언 출신 척후병에게까지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지만, 장군은 단 한 명도 수훈자가 없다.
이후 쭉 장성의 명예 훈장 수훈은 없다가 1914년,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서 발생한 분쟁으로 63명이 명예 훈장을 받는데, 이때 프랭크 F. 플레처(Frank Friday Fletcher) 해군 소장이 1914년 4월 22일, 멕시코 베라크루즈(Veracruz) 상륙 작전을 성공시킨 공로로 명예 훈장을 받는다.



직후 벌어진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국은 총 474만 명이 파병되어 약 110,000명이 전사하는 대피해를 입었고, 이때부터 명예 훈장의 수훈 조건이 까다롭게 변경되어, 그 참전 규모에 비해 수훈자가 확 줄어든 119명만이 명예 훈장을 받았으며(33명은 사후 추서) 군별로 보면 육군 90명, 해군 21명, 해병대 8명이었다.
하지만 인류사에 전례가 없었던 대규모 전쟁, 제 1차 세계 대전에 파병되어 그 공로로 최고 훈장인 명예 훈장을 받은 장군은 이상하게도 단 한사람도 없다.



    1차 대전에 참전한 수많은 미국 장성들 중 명예 훈장을 받은 사람은 한명도 없다..


이후 벌어진 2차 대전 기간 동안에는 471명의 미군이 명예 훈장을 받았고, 이중 273명이 사후에 훈장을 추서 받았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헬 게이트이자 국가 총력전에서 명예 훈장을 받은 장군은 몇이나 될까?
그 면면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다니엘 J. 캘러한(Daniel J. Callaghan) 해군 소장 
1942년 11월 13일, 과달카날의 사보 섬 해전에서 전사.
2. 프레데릭 워커 캐슬(Frederick W. Castle) 육군 준장
제 8 공군 94 폭격기 그룹 사령관으로 1944년 12월 24일, B-17 폭격기를 직접 몰고 폭격 임무에 나섰다가, 벨기에 상공에서 ME-109에 의해 격추되며 전사.
그가 끝까지 조종간을 잡고 있어서 9명의 승무원 중 5명이 탈출에 성공했다.



  함부르크에 있는 프레데릭 워커 캐슬 준장의 묘..국립 현충원 장군 묘역..아직 그대로냐?


3. 아이삭 C. 키드(Isaac C. Kidd) 해군 소장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 시 미 태평양 함대 전함 전대 사령관.

공격이 시작되자 그는 함대 기함인 전함 USS 애리조나로 바로 달려갔고 함교에서 전투를 지휘하다 애리조나 침몰과 함께 전사.
4.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육군 대장
이 양반이 왜 받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수상 이유는 1942년 4월 1일 필리핀 바탄 반도 방어전을 잘 수행했기 때문이라고(뻥 치시네..)    
5. 시어도어 루스벨트 주니어(Theodore Roosevelt, Jr.) 육군 준장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침공 당시 유타 해변에서 병력을 이끌고 전공을 세웠다.
명예 훈장 수여가 결정되기 직전 심장마비로 사망하여 사후 추서.
6. 노먼 스콧(Norman Scott) 해군 소장
1942년 11월 12일, 과달카날 사보 섬 해전에서 전사.

 

                            과달카날에서 어이없이 전사한 노먼 스콧..


7. 알렉산더 A. 반데그리프트(Alexander A. Vandegrift) 해병 소장 
1942년 8월 7일부터 12월 9일까지 벌어진 과달카날 전투에서 해병대를 지휘한 공로. 
8. 조나단 M. 웨인 라이트(Jonathan M. Wainwright) 육군 중장 
1942년 4월 1일 필리핀 바탄 반도 방어전을 토깐 맥아더 대신 수행한 공로.
항복 이후 그는 3년간 전쟁 포로로는 가장 계급이 높은 미군 장교였으며, 조기에 그에게 명예 훈장 수여가 결정되었지만, 맥아더가 지 대신 포로되서 고생한건 쌩 까고, 자기가 있었으면 그렇게 빨리 코레히도르 요새가 자빠지지는 않았을 거라며 목에 핏대를 올려 수여가 연기.
하지만 1945년, 지한테도 주면서 다시 수여을 결정하자 이번엔 조용히 찌그러져 있었다.

9. 케네스 N. 워커(Kenneth N. Walker) 육군 준장
1943년 1월 5일, 제 19 폭격기 그룹 사령관이었던 그는, 라바울에 대한 대규모 주간 폭격을 B-17 폭격기에 타고 직접 지휘하다 격추되며 전사.


    B-17 폭격기에 타고 직접 지휘하다 격추되며 전사한 케네스 N. 워커 준장..


우리 강토에서 벌어진 한국전쟁에서 미 공군 4명, 육군 93명, 해병대 42명, 해군 7명이 명예 훈장을 수여받았고, 이 중 장성 출신은 대전 전투에서 포로가 된 제 24 보병사단장 윌리엄 F. 딘(William F. Dean) 육군 소장이 유일했다. 
이후 베트남전을 비롯 걸프전, 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 등, 미군이 투입된 여러 전장에서 수백 명의 명예훈장 수훈자가 배출되었지만, 장군 출신 명예 훈장 수상자는 단 한 명도 없다.  

한편, 전공이 아니라 좀 이상한 케이스로 명예 훈장을 받은 장군 출신도 있는데, 아돌푸스 그릴리(Adolphus Greely) 육군 소장은 북극 탐험 등 평생의 업적으로 1935년에 명예 훈장을 받았고 더글러스 맥아더의 부친, 아서 맥아더(Arthur MacArthur, Jr) 육군 중장은 필리핀의 개척과 식민지 유지에 대한 공로로 명예 훈장을 받았다.




따라서 미군의 최고 무궁훈장인 명예 훈장은 총 3,493명이 수여받았으나, 전공이 아닌 기타 사유로 수상한 2명을 포함해도 실제 전장에 투입되지 않는 최고 지휘관급인 장성이 이를 받은 케이스는 24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비율로 따지면 0.68%, 즉, 명예 훈장 수상자 중 장군은 200명 중에 1명이란 얘기가 되고, 미국의 전쟁 영웅이자 유명한 장군들이며 전쟁 좀 안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존 퍼싱,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체스터 니미츠, 조지 패튼, 오마 브레들리 같은 양반들 중 명예 훈장 수훈자는 아무도 없다.




그럼 우린 어떨까?


  대한민국 역대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1. 신현준 해병중장 [태극무공훈장2회]6,25전쟁
2. 임부택 육군소장 [태극무공훈장2회]6.25전쟁
3. 백선엽 육군대장 [태극무공훈장2회]6.25전쟁
4. 김성은 해병중장 [태극무공훈장2회]6.25전쟁
5. 정일권 육군대장 [태극무공훈장2회]6.25전쟁
6. 김정렬 공군중장 [태극무공훈장 2회]6.25전쟁
7. 손원일 해군중장 [태극무공훈장.2회]6.25전쟁
8. 이형근 육군대장 [태극무공훈장2회]6.25전쟁
9. 강문봉 육군중장 [태극무공훈장2회]6.25전쟁
10. 송요찬 육군중장 [태극무공훈장.2회]6.25전쟁
11. 무명용사탑 [금성태극무공훈장]동작동 현충원 윤보선대통령수여,6.25전쟁
12. 서정학 내무부 치안국장(경찰청장) [태극무공 훈장] 6.25전쟁
13. 김금성 공군준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14. 최영희 육군중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15. 이근석 공군 준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16. 이성가 육군소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17. 김용배 육군준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18. 김용배 육군대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19. 심 일 육군소령 [태극무공훈장]6.25전쟁
20. 한 신 육군대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21. 김홍일 육군중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22. 김백일 육군중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23. 이한림 육군중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24. 김종오 육군대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25. 조달진 육군소위 [태극무공훈장]6.25전쟁
26. 유재흥 육군중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27. 이익수 육군준장 [태극무공훈장]1.21무장공비
28. 최규식 경무관 [태극무공훈장]1.21무장공비
29. 조문환 육군중장 [태극무공훈장]기록없고 묘비에만 새겨져있슴
30. 오정근 해군준장 [태극무공훈장]기록없고 묘비에만 새겨져있슴
31. 엄홍섭 육군소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32. 함병선 육군 중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33. 최득수 육군 이등상사(중사) [태극무공훈장]6.25전쟁
34. 박옥규 해군중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35. 김한준 육군대위 [태극무공훈장]6.25전쟁
36. 김웅수 육군소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37. 임선하 육군 소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38. 이용문 육군소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39. 백인엽 육군중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40. 최 석 육군중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41. 장도영 육군중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42. 박노규 육군준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43. 이준식 육군중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44. 안낙규 육군중사 [태극무공훈장]6.25전쟁
45. 권동찬 육군준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46. 김옥상 육군일병 [태극무공훈장]6.25전쟁
47. 조재미 육군준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48. 허봉익 육군대위 [태극무공훈장]6.25전쟁
49. 박정희 육군대장 [태극무공훈장]박정희
50. 전두환 전.대통령 <서훈취소> [태극무공훈장]
51. 이응준 육군중장 [태극무공훈장] 6.25전쟁
52. 함준호 육군준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53. 박병권 육군중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54. 김동빈 육군중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55. 김창용 육군중장 [태극무공훈장]


        태국 무공훈장 수상자 중엔 인간 개백정이자 쓰레기의 대명사 김창용이도 있다..


56. 이명수. 일등상사 [태극무공훈장] 6.25전쟁
57. 김종갑 육군중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58. 김용식 육군일병 [태극무공훈장]6.25전쟁
59. 김점곤 육군소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60. 홍재근 육군일병 [태극무공훈장]6.25전쟁
61. 백재덕 (이등상사) 육군중사 [태극무공훈장]6.25전쟁
62. 김경진 육군소령 [태극무공훈장]6.25전쟁
63. 김만술 육군대위 [태극무공훈장]6.25전쟁
64. 최용남 해병소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65. 장덕창 공군중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66. 최용덕 공군중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67. 정긍모 해군중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68. 송석하 육군소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69. 민기식 육군대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70. 김석범 해병중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71. 최창언 육군중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72. 임충식 육군대장 [태극무공훈장]6.25전쟁
73. 김영옥 미 육군대령 [태극무공훈장]미육군으로 6.25참전
74. 신상묵 서남지구사령관 [태극무공훈장]6.25경찰
75. 최치환 치안국 보안·경무과장 [태극무공훈장]6.25경찰
76. 채명신 육군중장,주월 한국군사령관 [태극무공훈장]월남전쟁
77. 이세호 육군중장 주월사령관 [태극무공훈장]월남전쟁
78. 김교수 육군대위 [태극무공훈장]6.25전쟁
79. 최범섭 육군중령 [태극무공훈장]월남전쟁
80. 지덕칠 해병중사 [태극무공훈장]월남전쟁
81. 강재구 육군소령 [태극무공훈장]월남전쟁
82. 송서규 육군대령 [태극무공훈장]월남전쟁
83. 정경진 해병소령 [태극무공훈장]월남전쟁
84. 신원배 해병중위 [태극무공훈장]월남전쟁
85. 이무표 육군대위 [태극무공훈장]월남전쟁
86. 임동춘 육군대위 [태극무공훈장]월남전쟁
87. 이종세 상사 [태극무공훈장]월남전쟁
88. 이인호 해병소령 [태극무공훈장]월남전쟁

 

대한민국 무공 훈장 중 최고 훈장인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중 위관급 이하는 88명 중에 단 12명이고, 이 중 사병은 달랑 2명이며, 이외 나머지는 전부 장군들이다.
또한, 이 대부분은 그냥 비전투로 수여 받은 것이며, 비록 전투와 관련 있는 훈장이라 할지라도 현장 전투에서 용맹한 공적을 세운 병사가 아니라, 한참 뒤에서 지휘봉 들고 고함이나 질러댄 장성들이 이를 받았다.



이젠 옛날 일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군대갈 적엔 마치 미친 개마냥 짖어대며 발악하고 온 벽에 붙여놓은 구호가 있었다.


“명예에 죽고 사는 군인이 되자!”


그래, 좋은 말이다.
하지만, 죽는 건 사병이고 명예는 장군이 가진다면 세상에 개소리도 저런 개소리는 없을 것이다.


더 씁쓸한 건, “대한민국 육군은 2011년 10월 육군장례 대상 규정을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중 전사자'에서 '태극무공훈장 수훈자'로 개정하고, 낮은 계급에서도 큰 공을 세워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을 예우하고 있다.”는 뉴스다.
골 때리는 사실은 계급 낮은 사람은 전사하고 큰 공을 세워도 태극 무공 훈장을 안 주고 저 훈장은 장군들이나 받는 훈장인데 무슨 수로 저런 예우를 받을 것인가?


 
따라서, 대한민국은 무공 훈장 따윈 전혀 필요 없다고 보이며, 국가에 대한 충성, 군인으로써의 명예 따위는 마빡에 별이나 달면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지, 젊고 똑똑하며 앞날이 구만리 같은 이땅의 젊은이들은 절대로 저런 사탕발림 같은 헛소리를 귀에 담지 말고, 군 생활하는 동안 몸이나 잘 사리기를 권장한다.
내말이 고까운 양반들은 나를 욕하기 이전에 스스로의 문제부터 잘 생각해보고 특히, 저런 짓을 방치하는 이 땅의 장군들, 이땅의 위정자들은 가슴에 달린 그 빤짝이는 쇠붙이가 부끄럽지 않은지 스스로 잘 생각해 보시길.


              우리는 장군 안 달면 미국처럼 이럴 일은 거의 없단다..썩을...


예전에 영국에서 열린 국빈 행사에 참석한 한국군 장성이 가슴에 온통 훈장으로 도배한 군복을 입고 나타나자, 이 꼬라지를 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인 필립공이 한마디 했다고 한다.


“장군, 등에는 왜 훈장이 없나요?”


                         장군..등에는 왜 훈장이 없나요? 나요? 나요?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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