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채류’에 얽힌 사연들
(작성 중 ; 나물 시리즈 6회)
앞쪽 파일에서 소개드린 것처럼 ‘나물’은 사전에서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의 총칭(總稱), 또는 그것을 조미(調味)하여 무친 반찬’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나물의 종류에는 재배나물(남새, 채소)과 산나물, 들나물 등 세 가지의 부류(部類)가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남새’는 재배채소(栽培菜蔬), 즉 농가(農家)에서 재배하는 나물을 가리키고, 산과 들에 저절로 나서 자란 나물은 통틀어 ‘푸세’라고 한다.
농가에서 재배(栽培)되는 나물로는 오이, 아욱, 가지, 토란, 상추, 부추, 풋고추, 무 등이 있고, 산채(山菜) 나물로서는 참나물, 취나물, 도라지, 고사리, 두릅, 고비, 버섯 등이 있다. 지금은 산채나물도 온상(溫床)이나 밭에서 재배하고 있다.
나물 캐는 여인
본론으로 들어간다. 이글에서 말하는 근채류(根菜類)란 뿌리채소류를 말하는데, 밭에서 재배(栽培)하는 무, 당근, 우엉, 그리고 연못이나 산에서 자생하는 연뿌리, 더덕, 도라지 따위를 말한다.
여기에서도 나물노래 한 가지를 소개하고 넘어간다. 가사에 등장하는 무나물과 ‘푸세’나물인 돌가지(돌개 ; 도라지)나물이 뿌리채소, 즉 근채류(根菜類)에 속한다.
나물 노래
엉굴엉굴 엉거꾸나물 쪼글쪼글 쪼가리 나물
허리 길쭉 콩나물 백설 같은 무우 나물
천방지방 호박나물 살콤 데친 미나리나물
산중호걸 고사리 나물 아리랑고개 돌가지나물
올로오는 올 고사리 늦어가는 늦 고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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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채나물에서의 근채류(根菜類)는 몇 종류에 지나지 않는다. 앞쪽 노래가사에서 등장하는 ‘돌가지(도라지)’와 더덕, 그리고 ‘물쑥뿌리’와 ‘모메(메꽃)’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메꽃’의 경우는 어린잎을 나물로 먹기는 하지만, 뿌리는 나물보다는 주로 대용식(代用食)으로 만들어 끼니를 때우곤 했었다. 흉년(凶年)에는 뿌리를 채취하여 밥 대신 삶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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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고향 외동읍(外東邑)에는 야산에도 심산(深山)에도 돌가지(돌개 ; 도라지)가 지천으로 자생하고 있었다.
‘돌가지’는 ‘도라지’를 말하는 것으로 경주(慶州) 지방에서는 ‘돌개’라고도 한다. 이 외에도 도라지는 길경·도랏·길경채·백약·질경·산도라지라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갖고 있다.
도라지 꽃
흰색 꽃이 피는 것을 ‘백도라지’, 꽃이 겹으로 피는 것을 ‘겹도라지’, 흰색 꽃이 피는 ‘겹도라지’를 ‘흰겹도라지’라고도 한다.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라는 뜻이다.
봄·가을에 뿌리를 채취(採取)하여 날것으로 먹거나 나물로 먹는데, ‘도라지나물’과 ‘도라지생채’, ‘도라지 초무침’등의 메뉴가 있다.
6.25 당시 어려웠던 시절에는 하학길마다 영지저수지(影池貯水池) 호반의 야산(野山)에 올라 ‘도라지’를 캐어 주린 배를 채우기도 했었다.
도라지 밭
‘도라지 나물볶음’은 도라지, 들깨가루, 다진 마늘, 파, 소금, 참기름 등이 소요되는데, 조리방법(調理方法)은 먼저 껍질을 벗긴 도라지에 굵은 소금을 쳐서 조물조물 해서 쓴맛을 제거 한다.
다음은 냄비나 옹솥 또는 오목한 팬에 들깨가루·다진마늘·참기름·소금을 넣고, 중불에 달달 볶은 후 여기에 ‘도라지’가 반쯤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뚜껑을 덮고 다시 끓인다.
끓이는 중간 중간에 재료(材料)를 잘 뒤섞어 주다가 육수가 반 이상 졸았다 싶으면, 파를 넣고 한 번 더 뒤섞어 준 다음 불을 끈다. ‘도라지나물’이 완성되었다. 둘이 먹다가 둘 다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이 일품이다.
‘도라지’ 나물
‘도라지’의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은 도라지꽃에 얽힌 슬픈 사연(事緣)을 바탕으로 한다. 사연을 요약(要約)한다. 옛날 어느 마을에 의지할 곳 없는 ‘도라지’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다.
오빠가 10년 기약으로 중국(中國)에 공부를 하러 가게 되자 ‘도라지’는 마을 뒷산에 있는 절에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 오빠가 돌아오지 않자, ‘도라지’는 더 이상 절에서 신세를 질 수 없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움막을 지어 오빠를 기다리며 혼자 살았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소녀는 할머니가 되었다. 하루는 높은 산에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며 “지금이라도 오빠가 돌아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도라지야!”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도라지’는 뒤를 돌아보려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렇게 기다리던 오빠가 할아버지가 되어 나타났지만, ‘도라지’는 오빠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불귀(不歸)의 객이 되고 만 것이다.
이듬해 봄, 그 소녀(할머니)가 숨진 자리에서 돋아난 풀에서 작고 귀여운 보라색 꽃이 피어났는데, 사람들은 그 꽃을 ‘도라지꽃’이라 불렀고, 그 풀을 ‘도라지’라 불렀다고 한다.
도라지 뿌리
‘도라지’는 많은 대중가요(大衆歌謠) 가수들에게서 찬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고향에서 가끔 흥얼거렸던 ‘도라지 타령’의 가사(歌辭)를 잠시 음미해 보기로 한다.
도라지타령
경기민요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심심 산천의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여도
대바구니에 스리살살 다 넘누다
에헤요 데헤요 에헤요
에이야라 난다 지화자자 좋다
네가 내 간장 스리살살 다 녹인다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요 몹쓸놈의 백도라지
하도 날데가 없어서
돌 바위틈에 가 왜 났느냐
에헤요 데헤요 에헤요
에이야라 난다 지화자자 좋다
네가 내 간장 스리살살 다 녹인다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강원도 금강산 백도라지
한뿌리 두뿌리 뻗으니
산골에 도라지 풍년일세
에헤요 데헤요 에헤요
에이야라 난다 지화자자 좋다
네가 내 간장 스리살살 다 녹인다
풍년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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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경우 ‘도라지’는 추억의 ‘먹거리’였기도 하다. 하학(下學) 길에 허기를 달래주던 대용식이기도 했지만, 앞쪽 어느 파일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공일날이면 이웃집 ‘아지매’들의 뒤를 따라 ‘먼산’에서 산나물을 뜯어 올 때도 허기를 달래는 최고의 대용식(代用食)이 되어 주었다.
괘릉재
(잿길이 있었던 산마루인데, 잿길은 흔적조차 없어졌다)
‘괘릉재’ 잿길을 체구(體軀)보다 더 큰 나물보따리를 둘러메고 내려오다 쉬어오는 굽이에 다다르면, 보따리를 내려놓고, 잿길 옆 가파른 ‘산비알’을 더듬어 ‘도라지’뿌리를 캐내어 손톱으로 껍질을 벗겨 먹으면서 허기를 달래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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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살던 괘릉리(掛陵里)의 ‘하이골’에는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듬성듬성 ‘더덕’이 자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괘릉재 너머에 있는 ‘먼산’에는 깊은 골짜기마다 ‘더덕’군락(群落)이 널려 있기도 했었다.
‘더덕’은 식용(食用)과 약용을 겸한 다년생(多年生) 덩굴성 식물로서 덩굴은 시계방향으로 감아 올라가는데, 잎과 줄기, 뿌리를 자르면 양유라는 끈적이는 유액(乳液)이 흘러나온다.
더덕 뿌리
‘더덕’은 특유의 독특한 향기를 발산(發散)하고 있어 눈으로 보지 않고도 그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다.
뿌리는 방추형으로 섬유질(纖維質)이 많고, 가로로 주름이 많이 잡혔으며 울퉁불퉁 혹이 달린다.
식용(食用)으로 밭에서 재배된 것은 주로 2~3년생으로 향이 적고, 오래두면 썩어버리지만 고산지대(高山地帶)에서 자생하는 오래된 ‘산더덕’은 향이 진하고 약성(藥性)이 뛰어나다.
더덕 밭
‘더덕’의 품종은 북사삼(北沙蔘)과 백사삼(白沙蔘)의 두 종류가 있으며, 북사삼은 뿌리의 표면 색깔이 붉은 색이다.
반면 백사삼(白沙蔘)은 색갈이 연한 흑갈색인데 ‘푸른 더덕’이라고도 한다. 북사삼(北沙蔘)은 뿌리가 굵고 잔뿌리가 적으며, 생장력(生長力)이 왕성하나, 백사삼은 잔뿌리가 많고 길며 가늘다.
‘더덕’은 칼슘, 인, 철분 같은 무기질(無機質)이 풍부하고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비타민 B 등 영양가(營養價)가 골고루 갖추어진 고칼로리의 영양식품으로 인기가 높다.
‘더덕’ 넝쿨
초롱꽃과에 속하는 ‘더덕’은 우리나라에서만 먹어 온 나물로 ‘해동역사’에 의하면 고려시대(高麗時代)에 더덕을 나물로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고려 이전부터 ‘더덕’을 널리 먹어왔다는 증거가 된다.
‘더덕’은 ‘도라지’와 비슷하지만, ‘도라지’보다 향기롭고 살이 연해 훨씬 귀 한 대접을 받아 온 나물이기도 하다.
어린 순으로 나물을 무쳐 먹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 뿌리를 먹는데, 쌉쌀하면서도 달고 독특한 향취(香臭)가 식욕을 자극한다. 수분이 적은 편이나 씹는 맛이 독특하고 오래 씹을수록 향이 그윽하다.
‘더덕’ 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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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고향 외동읍(外東邑)에는 ‘물쑥’이라는 쑥이 있다. ‘물쑥’은 입맛 떨어진 임금님 수라상에 자주 올랐다는 야초(野草)로 입맛을 돋우는 것은 물론이고, 단백질․비타민․무기질 등 각종 영양소가 많이 들어 있어 건강식(健康食)으로 그만이다.
‘물쑥’은 습지식물(濕地植物)로서 물가의 젓은 땅에 자라는 키가 조금 큰 야초로 쑥 같이 생겼지만, 종류는 다른 것이다.
한방에서는 ‘물쑥’을 ‘누호(蔞蒿)’라 해서 뿌리를 제외한 전초(全草)를 생리통, 간 기능보호에 약용하기도 한다.
물 쑥
옛적 필자네가 어려웠을 때의 일이다. 해마다 필자의 선친(先親)께서는 겨울방학이 끝날 때쯤이면, ‘물쑥’을 캐러 가자며 필자들에게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속옷과 외투를 잔뜩 껴입게 하셨다.
그리고는 ‘소래이(쇠스랑)’을 어깨에 메시고 필자들에게 ‘마다리’포대와 호미, 낫 등을 들게 하여 길을 재촉하곤 하셨다.
괘릉리(掛陵里) ‘웽고개’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불국사역(佛國寺驛) 쪽으로 가다가 시래교 좌측 북단에서 이어지는 시래천(時來川) 방천을 따라 서쪽으로 따라가면 당시의 내동면(內東面) 시리(矢里) 벌판에 이른다.
겨울철 허허벌판으로 쌩쌩 부는 바람을 안고 걸어가면, 여간 춥고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곳 벌판에는 필자의 대고모(大姑母)님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고모님댁이 있었다. 왕복(往復) 20리는 조이 되는 거리였다.
고모님댁에 잠시 들려 뜨거운 ‘시락국’에 보리밥을 말아 점심요기를 하고, 다시 시래천(時來川) 방천으로 나와 마른 ‘물쑥대’ 위에 다른 곳에서 낫으로 베어온 마른 풀을 두툼하게 덮어 불을 지른다. 언 땅을 녹여야 ‘물쑥뿌리’를 캘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북풍(北風)이 몰아치는 겨울이지만, 웬만해서는 화재(火災)가 발생하지도 않았다.
산비탈이든, 논두렁이든, 개울가 방천이든 소먹이와 땔나무로 풀포기까지 모조리 베어 냈기 때문에 성냥불을 그어 불을 붙이면, 불이 번지기는커녕 도리어 꺼져버리기 일쑤였다.
물쑥뿌리
‘물쑥’ 군락(群落) 위에 마른 풀을 계속 베어 덮어 불을 지피면, 얼음이 녹으면서 뽀얀 김이 피어오른다. 언 땅이 어느 정도 녹으면, 아버지께서 ‘소래이’로 땅을 파헤치는데, 허옇고 통통하게 살이 찐 ‘물쑥뿌리’가 한 뭉치씩 모습을 드러낸다.
필자들은 아버지께서 파내어 놓으신 ‘물쑥뿌리’에 달라붙은 흙을 호미로 으깨어 털어내고, 갖고 간 ‘마다리’ 포대에 차곡차곡 담는다.
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마른 풀을 베고, 호미질을 하고, 가지런히 간추려 포대에 담다보면, 손가락이 곱고, 씨려 나중에는 아무런 감각이 없어지기도 한다.
동상(凍傷)을 입기 직전이라는 신호다. 두어 시간 정도 캐면 ‘마다리’ 포대에 그득해 진다. 아버지께서는 자루를 꽁꽁 묶어 미끈(멜빵)을 만들어 짊어지시고 성큼성큼 앞서 가시면, 필자들은 ‘소래이’와 호미 등을 나누어 갖고 종종 걸음으로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갈 때는 세찬 북풍(北風)을 안고 가느라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이 춥고 힘이 들었지만, 돌아 올 때는 바람을 지고 밀려오다시피 뛰어오니까 그만큼 힘이 덜 들기도 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께서 깨끗이 씻어 삶아 초고추장 ‘무침’을 해주시는데, 그 맛은 말 그대로 기가 막혔다. 먼 길을 가서 캐왔다는 성취감(成就感), 아버지와 같이 갔다가 거뜬하게 돌아왔다는 자랑스러움이 곁들여진 맛이었다.
밖에서 종일 얼었다가 녹아드는 온 몸으로 쌉쌀하고 매콤하고 새콤한 ‘물쑥뿌리 무침’으로 보리밥이지만 꿀맛 같이 먹었던 기억이 이제는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 추억(追憶)이 되어 버렸다.
‘물쑥’은 ‘쑥’과 달리 뿌리만 먹는데, 진한 향이 특징(特徵)이다. 참기름에 살짝 볶아서 고추장, 된장, 통깨를 넣고 간이 잘 배도록 주물러 무쳐 먹어도 일품이다.
물쑥뿌리 무침
‘물쑥뿌리’는 국을 끓여 먹기도 하는데, 데쳐서 물에 우려 쓴 맛을 없앤 다음, 달아오른 솥에 기름을 두르고, 된장과 데친 ‘물쑥뿌리’를 함께 넣어 볶다가 고춧가루를 넣고 잘 섞은 다음 ‘속쌀뜨물’을 붓고 푹 끓인다.
끓인 다음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채친 마늘을 넣어 맛을 내고, 깨를 뿌려서 내면 그 맛 또한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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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고향 외동읍(外東邑)에는 ‘모메’라는 뿌리나물이 있다. ‘메꽃’은 흔히 나팔꽃으로 착각(錯覺)되기도 하는데, 메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풀밭, 밭둑, 길섶 등에 흔하게 자라는 풀이다.
‘덩굴 풀’로 줄기는 가늘고 길며, 다른 풀줄기나 나무줄기에 감겨 올라간다. 여름에 나팔꽃 모양의 큰 꽃이 낮에만 엷은 붉은색으로 피고 저녁에 시든다. 뿌리줄기는 어린잎과 함께 식용(食用)한다.
메꽃
메꽃에는 큰메꽃, 갯메꽃, 애기메꽃 등이 있는데, ‘갯메꽃’에는 약간의 독성(毒性)이 있어서 먹을 수 없고, 다른 종류는 모두 먹을 수 있다. ‘메꽃’ 뿌리는 성기능(性機能)을 높이고 콩팥 기능을 높이는 데에도 효과(效果)가 좋다고 한다.
여기에서 잠시 의인화(擬人化)한 ‘메꽃’이지만, ‘메꽃’의 상징적(象徵的)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이영균의 ‘무녀의 딸’을 음미하고 넘어간다.
메꽃 뿌리
무녀의 딸
이영균
인적이 끊긴 외딴 집 울타리
아침마다 메꽃이 고왔다.
동네에 흉한 일이 지나고
장마가 시작될 무렵
그 애는 단골 네와 함께 사라졌다.
혹자는 강에 빠져 돌아오지 못했다고도 하고
누구는 부산에서 봤다고도 했다.
아침에 피던 메꽃인 듯
늘 풀죽어 울 뒤로 숨던
하늬바람에도 꽃잎 구겨지곤 하던
먼 하늘에 시선 둔 깊고 맑은 눈
언제나 슬픔이 고여 오고
가만가만 어느새 등 뒤를 따라오곤 하던
누이 같아서 꽃신도 닦아주고 손잡아주고 싶던 그 애
이유 없는 돌팔매에 서럽던
울 붉은 옷차림한 어미 손에 이끌릴 때면
시선이 멈춘 인형인 듯
외롭다고 세상 향해 소리치는 듯 하던 그 애
웬일일까 불현듯
가련했을 비애의 가인
장마 끝에 피는 메꽃에 어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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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어릴 적 국숫발을 닮은 하얀 ‘메꽃’ 뿌리를 캐서 날로 먹거나 삶아 먹은 추억을 갖고 있다. 보릿고개를 넘기는데 아주 요긴(要緊)한 식물이었고, 꼬마들에게는 맛난 간식(間食)거리였다.
메꽃 뿌리 캐기
‘메꽃’은 생명력(生命力)이 너무 강해 쉬이 죽지도 않는다. 논두렁을 돌아다니면서 ‘메꽃’뿌리를 캐고 또 캐지만, 아침에 학교(學校)를 가다보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메꽃’이 활짝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그렇게 많이 뿌리를 캐내었는데도 어디에 숨어 있다가 그렇게 꽃을 피우는지 어린 마음에도 너무나 신기(神奇)하게 생각되기도 했었다.
봄이 오기 전, 아직 땅이 얼었을 때 곱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나무꼬챙이로 ‘메꽃’뿌리를 캐서 날로도 먹고, 삶아서 먹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가슴이 아려온다.
그런데도 칼바람을 맞으며 논두렁에 엎드려 ‘메꽃’뿌리를 캐던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추억(追憶)이라는 가슴앓이 병 때문일 것이다. ‘메꽃’ 뿌리는 생으로도 먹었지만, 쪄서 먹으면 고구마 맛이 나기도 했다.
날로 먹으면 조금은 입안이 아르르 하지만 몇 번 먹다보면 길이 들여져 구수한 맛이 나기도 했었다.
메꽃 뿌리
흉년(凶年)에는 봄이 되어 눈이 녹자말자 아이들과 아낙네들이 괭이와 바구니를 들고 묵정밭에 나가 ‘메꽃’뿌리를 캐 와서 끼니로 쪄먹기도 했었다.
그래서 옛적에는 ‘메꽃’의 뿌리를 구황식물(救荒植物)로 지정했고, 그 근거는 동요(童謠)에서도 전해오고 있다. ‘메꽃’ 동요를 소개한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호미들고 괭이 메고 뻗어가는 메를 캐어
엄마아빠 모셔다가 맛있게도 얌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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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뿌리나물’에 대한 얘기를 대충 엮었다. ‘도라지’와 ‘더덕’을 제외하고는 웬만큼 빈한(貧寒)한 가정이 아니면 먹어 볼 수 없는 나물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나물들을 먹어 본 필자의 경우도 거의가 60여년 전의 기억과 추억이라 정확하고 구체적(具體的)인 내용을 소개하지 못해 회원님들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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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딱뿌리란 것도 캐 먹고 ......간식꺼리로 허기를 면했던 것 같기도 하고....안 먹는게 없었네요...ㅎㅎㅎ
봄이오면 노래 오랫만에 들어 봅니다. 이른 봄에 나오는 풀(나물?)을 거의가 먹을수 있지요. 어릴때를 회상케 해주신 요오님 정말 백과사전입니다. 바쁜와중에 이렇게 긴 나물시리즈를 연재해주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