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심리학자는 말하기를 현대인들에게 가장 큰 병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 의식에 빠져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 같은 속성들이 다 있으나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며 승화시켜 긍정적이고 생산적이며 자신감과 기쁨 넘치는 삶을 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실상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그 사람의 능력이나 성품보다는 좋은 가문과 학벌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시도도 해보지 않고 열등감과 좌절에 빠져 쉽게 포기하거나 문제아로 일생을 살아가기가 쉽습니다.
혹 오늘 우리 가운데 자신의 외적인 환경이 다른 사람과 보다 열악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좌절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보다는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진실하게 의지하기만 하면 그의 가문이나 신분이나 과거가 어떠하든지 그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그를 부르시고 훈련시키시고 세우셔서 큰 일꾼이 되게 하시며 그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심을 오늘 성경 입다를 통해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 입다의 배경
입다는 (삿 11:1)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 라는 말씀처럼 자신의 태어난 환경을 저주하며 일생을 절망하며 살 수 밖에 없는 기생의 아들이었습니다. 여기서 기생이라는 말은 돈을 벌기 위해 자리를 옮겨가며 몸을 파는 창녀를 가리키는 '여솨 조나' 라는 말로 공동번역에서는 (삿 11:1) 마침 길르앗 사람 가운데 입다라는 굉장한 장사가 있었는데, 그는 길르앗 이라는 사람이 창녀의 몸에서 얻은 아들이었다 라고 한 것처럼 창녀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를 비난하지 아니할지라도 스스로도 깊은 열등감에 사로 잡혀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는데 길르앗이 본처에서 낳은 아들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아 집에 쫓겨나기까지 하였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삿 11:2) 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 집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고 한 말씀처럼 재산 때문 이었습니다. 한번 입다가 집에서 쫓겨날 때까지 그의 이복 형제들에게 받아온 상처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같은 입다를 동정하고 돌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집에서 쫓겨난 입다는 할 수 없이 (삿11:3) 이에 입다가 그 형제를 피하여 돕 땅에 거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는 말씀처럼 생존을 위해서 하는 수 없이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사람들과 하류 인생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원인은 입다 에게 전혀 없었으며 그의 아버지의 방탕함과 그의 이복 형제들의 몰인정과 길르앗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입다는 건달패의 두목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입다가 (삿 11:1)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 라는 말씀처럼 누구보다 힘이 세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것이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을때 이처럼 볼품없는 삶을 살게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입다는 그곳에서 좌절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삿 11:3) 이에 입다가 그 형제를 피하여 돕 땅에 거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 여기서 잡류"란 말은 반드시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생활 안정을 얻지 못하고 유리 하는 가난한 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소외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그들 속에서 지도력을 발휘하여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는 삶을 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의 힘은 자신이 받은 상처로 인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폭력으로 발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모두가 버려진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서 입다는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과거의 아픈 상처에 연연하지 않고 그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의 힘으로 자신처럼 소외된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일에 사용하여 그들의 지도자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2. 입다의 소명
기생의 아들이라고 집에서 쫓겨난 입다가 돕 땅으로 피신하여 일평생 자신의 출신 성분을 비관하며 건달패의 두목으로 일생을 보낼 수밖에 없던 입다 에게 마침내 기회가 왔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암몬 사람들의 침략을 받아 누군가가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암몬 족속을 막을 만한 지도자가 필요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이스라엘 사람들은 힘센 장사 입다가 필요하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에게 찾아와서 자신들의 장관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삿 11:4)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삿 11:5)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삿 11:6)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이것이 바로 세상 인심입니다. 만약에 입다 에게 남다른 뛰어난 힘과 지도력이 없었다면 이러한 기회가 그에게 오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외적인 환경이 어떠하든지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하고 정반대로 자신의 가능성을 선하게 사용하며 실력을 키우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입다가 출생 신분으로 인해 가정에서 쫓겨나고 동네 사람들의 멸시의 눈을 피하여 고향을 떠나야만 하였든 슬픈 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힘이 있을 때 그를 버렸던 사람들이 다시 그를 필요로 하고 다시 찾는 기회가 오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마음 아픈 과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 아픈 과거에 사로잡혀 복수하는 일에 연연하여 일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진정한 승리자는 돌이키지 못할 과거에 매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1) 관용과 용서하는 사람이 승리자입니다 . 2) 환경을 탓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환경이든 매사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인생을 가꿈으로 최선을 다 하는 사람입니다. 3)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입다는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사람은 늘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삽니다. 입다 는 다른 사람보다 더 힘든 싸움을 해야했습니다. 입다 는 길르앗 장로들이 그를 필요로 할 때 선뜻 나서지 아니하고 신중을 기하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란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라고 하였습니다(7절). 왜냐하면 지금 그를 찾아온 장로들이 과거에는 그의 가족들이 자신을 내버리는 일에 묵시적으로 동의하였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사람들이 원한다고만 해서 되어지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되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삿 11:9)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본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붙이시면 내가 과연 너희 머리가 되겠느냐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를 필요로 할 때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결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장담하고 자신의 힘을 과시한 것이 아니라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붙이시면" 이라고 강력히 주장한 것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삼상 17:47).
한 때 입다를 버렸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암몬 사람의 침략을 받게되자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입다의 외적인 힘만을 보고 입다를 불렀지만 하나님은 입다의 이같은 내적인 가능성인 신앙을 보신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외적인 가능성이 아니라 내적인 믿음입니다. 자신의 외적인 처지를 비관하고 세월만 보내는 사람에게 기회는 오지 아니하며 기회가 올지라도 그 기회를 선용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을 때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개발하여 최선을 다하며 믿음으로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1:27-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습니다.
3. 입다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
입다는 신분이 비천하여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암몬과 전쟁할 제의가 들어왔을 때 그가 미스바에 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군사 작전을 짜고 무기를 정비하고 군사를 훈련시키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처한 문제들을 극복하는 입다의 방법입니다.
(삿 11:11)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로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
입다는 큰 용사였지만 자신의 힘만을 앞세우고 암몬 자손들과 무모한 전투를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전투에서 승리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보장하여 주시지 아니하는 전투에는 너무나 많은 희생이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암몬 자손과 (삿 11:12)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고 협상과 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암몬 자손은 무조건 과거 자신의 조상들이 살았던 땅을 달라고 위협하였을 때 그에 반격하는 입다의 대화 속에 기생의 아들이라고 멸시받던 천한 신분과는 달리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가 배어 나왔습니다.
(삿 11:27)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컨대 심판하시는 여호와는 오늘날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의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나 (삿 11:15) "나 입다가 말한다. 이스라엘은 모압 영토나 암몬족의 영토를 빼앗은 적이 없다 그러나 암몬 사람들은 입다의 신앙적인 설득력에 할 말을 잊었으나 (삿 11:28)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고 한 것처럼 후퇴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였을 때 (삿 11:29) 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들에게로 나아갈 때에 놀랍게도 입다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특별한 능력과 탁월한 지도력을 부어주며 그와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두 가지의 은혜스러운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입다는 누구였습니까.가문도 혈통도 없는 서자입니다.당시 사회에서 천대받는 사람입니다. 거기다가 그는 쫒겨난 신세입니다.그는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께서 지도자로 쓰실만한 이유를 갖추지 않았던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입다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그를 찾아가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애굽에서 취한 아브라함의 여종인 하갈도 역시 보잘것없는 여자입니다. 그러나 그가 광야에서 울고 있는 슬픔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그에게 역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여리고 성에 살던 기생이었던 이방여인인 라합은 얼마나 보잘것 없는 여자였습니까.하나님은 역시 그 여인에게도 사랑을 베푸셔서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베푼 사람들을 보십시다. 그들의 신분이 어떻습니까. 모두가 가장 낮은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주님에게 별명을 붙이기를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붙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성별이나 신분이나 학력이나 가진 것이나 외모나 재능이나 과거의 경력이나 현재의 환경이나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누구에게나 똑같이 은혜를 베푸시며 사랑을 베푸시는 분인 것입니다.이 사랑으로 이방인이며 하나님 앞에서 비천한 존재였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로 믿습니다. 입다가 영웅이 된 것은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후에 싸움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신이 감동하여 임하기 전에 입다가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없습니다. 단지 다른 사람보다 조금 싸움에 능하든지 약간의 지도력정도만 있었을 뿐입니다.그는 군사훈련의 경험도 없고 전쟁의 경험도 없습니다.
(삿 11:32)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 손에 붙이시매 (삿 11:33)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크게 도륙하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입다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입다는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혀 출정을 하게 되었습니다.그는 자기민족을 사랑하였기에 꼭 승리하기를 바랐습니다.그래서 그는 떠나기전에 하나님 앞에서 이런 약속을 합니다.
30-31을 보십시다.승리하고 돌아 올 때에 제일 먼저 나오는 그를 번제로 드리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그리고 33절에보니 입다의 용맹과 사기에 눌려 급기야 암몬사람들은 전쟁에서 패하고 항복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34-40절에 보면 안타깝게도 자기의 딸이 자기를 먼저 영접하였습니다.그리고 그 딸을 제물로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우리는 우선 이 본문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입다 입장에서는 너무 비이성적이며 심한 서원이며 또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죽이는 제사를 정말 받으실 정도로 무정하신 분일까하는 생각이듭니다.우선 전통적인 해석은 말 그대로 딸을 바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대두되는 다른 해석은 딸을 바치되 번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저도 성경전체를 볼 때 나중의 해석을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의 성경37과39절을 보시며 입다의 딸이 죽었다라고 써있는 곳을 보면 작은 글씨로 되어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본에는 없지만 문맥을 보아서 한글성경을 번역할 때 써 넣은 내용입니다.그래서 헬라어 원본이나 영어성경이나 다른 성경에는 죽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입다가 딸을 번제로 드렸다는 것은 무었입니까. 번제는 동물을 잡아 불에 태우는 것입니다. 입다는 전쟁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그가 마스바에서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의 무남독녀(無男獨女)의 딸이 소고를 치고 춤추며 나와서 아비 입다를 환영하였다. 입다는 옷을 찢으며 괴로와 했으나 하나님께 서원했으니 돌이키지 못했다. 그래서 함부로 맹세하지 말라고 하였고 일단 맹세했으면 죽더라도 지켜야했다. 딸은 아버지의 맹세를 따라서 순종하기로 결심하였으니 효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부득이한 헌신으로 인하여 산에 올라가 두달 동안 애곡하였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인으로서는 무자(無子)함과 독신생활을 일종의 죄로서 취급된다 할찌라도 너무 비열한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득이한헌신은 자기와 하나님께 고통뿐이요, 영광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이스라엘 가운데 규례가 되어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질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는 풍속이 생겼다. 그저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부랑자들의 우두머리일 뿐입니다.버림받은 사람들의 무리이며 학식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기억하셨을 뿐 아니라 그를 6년동안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쓰셨습니다.
더구나 그의 이름은 신약 히브리서 11:32에 믿음의 영웅인 기드온,삼손, 등과 함께 나란히 기록되어있습니다. 봉사 잘 하겠습니다." "교사도하고 기도생활도 잘하겠습니다." 약속은 지키는 것이 인간관계에서도 신뢰를 쌓는 기초입니다.그 시간이 지나면 주님과의 약속조차도 잊어버리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어떤 약속이든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자세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