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리목 코스
한라산 등반은 영실 코스로 올라와 어리목 코스로 하산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들었다. 운전기사도 그랬고, 인터넷에서도 여행 가이드 책자에서도 그랬다. 영실 코스는 경치가 좋고 어리목 코스는 경치는 빼어나지 않지만 길이 좋다는 것이다. 백록담에서 오후 3시 30분, 어리목 코스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길은 곳곳에 안내 팻말이 있어 그대로 따라 가기만 하면 안전하다. 산정을 뛰어다니는 노루 한 마리가 우리를 보더니 기쁨의 소리를 지른다. 해는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고 좀 두려움이 엄습하여 빠른 속도로 걸어내려왔다. 이상한 일이다. 아무도 없다. 알고보니 아침에 어리목에는 짙은 안개로 등산 통제를 했다는 것이다. 같은 한라산인데 남서편의 영실코스에는 눈부신 맑은 날씨이고, 북서편의 어리목 코스에는 흐린 날씨였다니, 한라산의 넒음과 기후 분포 차이를 실감한다. 높은 곳은 더욱 해가 밝고, 하늘이 코발트 빛이다. 하산길 중간에서 모노레일로 빈 박스를 실어나르는 소형 경운기 같은 운반차와 그 차를 조종하며 휴지를 주으며 내려오는 한라산 관리요원을 만났다. 참 반갑고 우리를 평안케 해준다. 하얀 해무가 바다 위에 뒤덮여 설경을 방불케 하고, 사방은 짙푸른 나무 물결 뿐,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고적한 산길에서 인적과 기계음은 큰 위안이다. 또다른 한라산 경비원이 올라와 길목을 둘러보고 내려간다. 역시 큰 반가움이다. 나무 계단과 바윗길을 넘어지지 않으려 긴장하며 걸어내려오니 무릎이 아프다. 그래도 행복한 마음은 여전하다. 오후 5시 20분경 해발 970m의 어리목 휴게소에 도착했다. 넓은 주차장과 짐을 나르는 사람들이 지상에 가까왔음을 알게 해준다. 뒤돌아 보니 아득한 푸른 능선의 한라산이 꽉 차 있다. 우리가 2시간 동안 휴식 시간을 갖지 못하고 속보로 걸어 내려온 저 한라산 어리목 코스, 서서히 어둠에 묻히고 있다. 산의 해는 빨라지는 법, 금새 주변이 어둑하다. 그것이 무서워서 우린 재촉하여 내려왔다. 오르막에는 무거운 느낌으로 힘들었지만, 내리막은 다리의 후들거림으로 힘이 들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우리에겐 문제되지 않는다. 오직 지금 이 순간, 한라산 등반 완주에 대한 보람과 기쁨 뿐이다. 영원히 우리에게 영광과 행복으로 존재할 이 기록적인 장엄한 행군 앞에서 숙연해진다. 분명한 일인데도 꿈처럼 믿기지 않을만큼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가족 일원 중 어느 누구 하나라도 지치거나 다치면 이룰 수 없는 일인데 무사함으로 완주가 가능했던 것에 대하여 깊은 감사함으로 하루를 정리했다. 휴게소에 들러 육개장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울 때 한라산 영실 코스 초입에서 본 검은 까마귀가 우리를 따라온 것처럼 주변을 맴돈다. 물어보니 사람을 보면 그렇게 반가워서 따라다닌단다. 기이한 일이다. 부지런히 1km를 걸어내려와 어리목 정류장에서 6시 20분 제주시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아까 타고 온 그 운전기사다. 참 큰 인연이다. 우리들은 웃으며 기사와 한라산 이야기로 꽃 피웠다. 1100도로의 아름다움은 계속 이어진다.
한라산 백록담 정상이 보이는 곳에서.어리목코스로 하산하며 아쉬움에.늠름한 모습의 큰아들
한라산 백록담에서 어리목코스로 내려오며 본 운해설경.아들이 손에 받쳐든형상으로 찍은 본인김윤자
한라산 백록담에서 내려오며 본 짐 운반용 모노레일.남편과 큰 아들
한라산 백록담에서 어리목 코스로 하산하여.안내 간판 앞에서 남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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