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률 기자 / 새누리 신문
최근 오대양, 세모와 '구원파'의 관계가 본인들의 완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점차 실체를 드러내면서 사교(邪敎) 집단의 맹신적 행태에 대한 경악과 우려의 소리가 커지는 한편, 이들 집단은 단순히 신도들을 신앙적으로 미혹시킬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종교와 기업 경영을 일치시키고 권력과도 유착을 서슴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발생 원인과 특징
사이비 종교는 원래 사회적 불안과 모순의 심화, 기성종교의 기능과 역할 상실 등이 발생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4백여 개의 신흥 종파가 파악되어 있고 이에 관련된 신도만도 2백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흥 사이비 종교의 발생이 사회적 불안과 얼마나 깊은 관계가 있는지는, 이들의 발생 시기가 6.25 직후와 80년 전후에 몰려 있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6.25 직후에 통일교.전도관등 수많은 신흥 종파가 태동했고, 80년을 전후해서도 30여 개의 신흥 종파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들 신흥 종파는 계파별로 보면 기독교와 불교에서 파생된 것이 많으며 최근 들어서는 전통 사상에 입각한 민족적 신흥종교의 출현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는 사이비 종교는 대개 기독교계 신흥 종파가 많다고 한다. 이원규 교수(감신대 종교사회학)는 그 이유를 기독교계가 우월 의식, 선민 의식과 배타성이 강하고 연대 의식, 공동체 귀속감이 높아 자기 종교에 대한 광신과 절대적 충성으로 나타나기 쉽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기독교계에서 파생된 신흥 종파는 1951년의 기독교통일신령협회(통일교), 54년의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전도관), 최근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등 78개(기독교대백과사전 통계)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해방 이후 교회 자체가 엄청난 교파 분열을 거듭하면서 기성교단과 유사한 교리와 예배 의식을 내세운 사이비 교파가 쉽게 출현할 수 있는 소지가 마련되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물론 신흥 종파가 모두 사이비는 아니다. 한국에서 발생한 기독교계 신흥 종파는 대략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기성종교를 보다 발전적으로 계승하면서 토착화를 모색한 경우로, 기독교대한복음교회가 이 경우에 해당되며 '사이비' 논란과는 거리가 먼 것은 물론이다. 둘째 경우는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주로 교리적 차원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신흥 종파들로, 순복음교회 성락교회, 대성교회 등이 그 대표적 경우다. 세번째가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된 '구원파'와 같은 사교 집단들. 탁명환 소장(국제종교문제연구소)은 이들 사교집단의 공통된 특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첫째, 거의 모든 사교집단은 교주들을 현인신처럼 떠받들도록 하고 있고 이에 따라 교주의 권위는 절대적이고 카리스마적 지배 체제를 확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내세관의 구체성이다. 즉 자신들이 정한 구체적 장소가 말세 심판의 피난처임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셋째, 독선적이고 극단적인 선민 의식과 시한부 말세 심판론이다. 자신들만이 신으로부터 선택된 백성임을 강조하며, 심지어 구체적 일시까지 지적하여 말세 심판을 예고하고 이를 통한 공포 분위기와 위기의식을 조장한다는 것.
이에 따라 맹신도들은 모든 현실적 생활을 포기하고 교주의 뜻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결국 가정 파괴는 물론 반사회적 사태까지 이르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넷째,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무속적 신비 체험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기업/정권과의 결탁
최근 들어 사이비 종파들은 몇 가지 특징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선, 농촌이나 계룡산 등의 산간에 근거를 두던 과거의 양상과 달리 산업화.도시화에 따라 그 기반을 농촌에서 도시로 옮기는 경우가 현저해졌으며 도시 서민들의 정신적 불안을 교세 확장의 터전으로 이용하면서 특히 주부나 여성의 불안 의식을 악용, '말세론'을 내세워 혹세무민하는 것이 요즘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또 하나는, 사이비 집단들이 종교와 기업을 결합시켜 물질적 재화를 축적하는 일방 더 나아가 정치권력과도 손잡는 양상이다. 종교 집단으로서 기업을 경영한 대표적 사례는 통일교와 전도관이며 이들이 나름대로 성공한 사례를 남김으로써 그후에 많은 신흥 종파들이 기업 경영 등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이번 구원파와 세모의 결합 관계는 그 단적인 사례라 하겠다.
이처럼 신흥 종파가 기업 경영에 관심 갖는 것은 경제적 기반을 확립하고 교인들의 생계 보장을 자체 해결, 책임짐으로써 교세를 더욱 확장시키고 기존 사회에서 분리돼 자기들만의 폐쇄적 공간을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신도들의 충성심을 이용해 재산과 노동을 최대한 수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종교와 기업을 일치시킬 뿐 아니라, 정치권력과 갈등을 피하고 가능하면 권력층과 연분을 맺음으로써 정권 차원의 보호와 특혜까지 도모하는 것이 또 다른 특징. 이러다 보니 자연 정치적으로 철저히 우익적 친정부적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승공'을 앞세운 통일교의 정치 행각은 이미 잘 알려진 바이며, 전도관 박태선 교주는 4.19 후 이기붕의 지령으로 전도관과 신앙촌을 통해 부정선거를 획책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구원파'의 경우도 5공 당시 전경환씨와의 관련 및 청와대 비서진의 정치적 비호가 있었던 것으로 강한 의심을 받고 있다.
기성종교 자기 반성 절실
이처럼 사이비 종파가 번성하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것과 관련, 종교학자들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 회복과 기성종교의 제 기능.역할 회복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카톨릭대학 백민관 교수는 "우리 사회 곳곳에 사이비 종교가 번식하는 것은 오랫동안 진실이 은폐되고 부도덕에 우리 모두가 마비된 때문"이라며 "진실이 은폐된 사회에서는 사기가 판을 치고 이성적인 생각을 하지 않게 되며 모두가 감정적으로 움직이게 된다"고 지적하고 사회 모든 면에서 진실을 바탕으로 한 생활을 되찾고 기성종교가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서울대 종교학과 정진홍 교수는 사이비 종교의 발호에는 내세지향적 물질축복지향적 기성종교의 책임이 크다며 반지성적 광신적 신앙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종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종교인들이 신앙은 지극히 상식선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새삼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의 교인이 한 때 사이비 종파에 미혹돼 고생했다는 한 목회자는 "사실상 사이비 종파와 별다를 바 없는 신앙을 강조하는 말세론적 구복적 부흥신앙이 교인들로 하여금 경계심 없이 사교집단에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고 반성하면서 아울러 대개 정신의학적으로 다소간 문제가 있는 일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사이비 종파 가담도 사교를 의심 없이 믿게 만드는 한 요인이라고 지적하였다. 실제로 '구원파'에는 전 목원대 신학과 교수와 지역유지급 인사들이 여럿 가담해 있고 현 국무총리인 정원식씨도 이단시비에 올라 있는 모 교회의 장로로 봉직하는 등 일부 지도급 인사들의 신흥 사이비 종파 참여는 우려할 만한 상태라는 것이다.
종교사회학자 이원규 교수(감신대) 인터뷰
'구원파'가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것과 관련, 사이비 종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종교사회학자 이원규 교수(감신대)로부터 사이비 종파가 발호하는 현상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들어보았다.
#'구원파'와 같은 사이비 종파가 나타나고 신자를 끌어 모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신흥종교는 대개 정치적.사회적 격변기에 대중의 불안 의식을 이용해 싹튼다. 또 가치관이 혼란.갈등에 빠져 참다운 가치와 진리가 무엇인지 혼동되면서 삶에 있어 의지할 만한 기준이 흔들리는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또한 기성종교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참신한 규범과 가치를 제시하지 못할 때 기성종교에서 얻을 수 없는 '매력'을 내세워 이들 사이비 교파가 대중을 유혹하는 것이다.
실제로 사이비 종파 신자 중에 대체로 기성종교의 경력을 가진 사람이 많다.
#'구원파'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구원파'는 일반 신흥 종파와 출현 배경에 있어서 똑같다. 다만 한국 사람들의 전통적 종교 성향이 '축복'지향적인데 바로 이 점을 짚고 있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구원파'에 참여함으로써 구원을 받고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모두 용서 받아 무엇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교리는 죄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물질 축복을 강조하고 강한 소속의식 집단의식을 내세워 공동생활을 하면서 기업과 종교를 결합시키고 정치권력과 밀착된 형태를 보인 면에서 통일교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할 수도 있다.
#사이비 종파의 발호와 관련, 한국교회가 반성할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우선 기성교회들이 교인을 올바로 돌봐야 한다. 물질축복이나 강조하고 교회의 대형화에나 신경쓸 것이 아니라 교인 하나 하나를 사랑으로 감싸주고 인도하는 '돌봄과 치유의 목회'가 절실하다.
아울러 오늘날처럼 도덕성이 떨어진 사회에서 교회가 미래의 지표와 확고한 가치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구원파'가 사이비, 이단이라는 점을 내세워 한국교회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발뺌하는 자세를 가지면 안된다. 사이비 집단의 발호에 대해 우리 기독교인의 책임도 크기 때문이다.
-{새누리신문} (1991. 8. 3.)
- 미혹의 영으로 우리의 영을 파멸시켜 -
광주시 기독교교단협의회 주최 특별집회(1995. 5. 12) 전단에서 일부 발췌함
1992년 10월 휴거설의 정체
최근 우리 한국 사회와 교회 주변에 심각하게 번져가고 있는 시한부 종말론의 시작은 1988년 한국에 와서 집회를 가졌던 {내가 본 천국}의 저자 펄시 콜레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펄시 콜레는 '휴거가 일어난지 7년 후에는 예수님께서 천사들과 휴거된 성도들의 일부만 대동하고 지상 재림을 하게 되며 승천하셨던 감람산의 바로 그 장소에 다시 오시게 된다.
그리하여 이 지구상에는 예수님의 천년왕국이 건설되고 천년 동안 평화를 누리게 된다'고 기록하여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으로 계산하면 AD 2000년에서 그날을 감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자가 없으리라고 하여 1년을 감하여 1999년으로 보고 거기서 7년 대환난을 빼면 1992년이 나오게 되는데, 펄시 콜레가 5일 반 동안 천국여행을 다녀왔는데 때가 매우 가까웠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펄시 콜레의 주장에 가장 민감했던 사람이 이장림 다미선교회장이었고 한국예루살렘교회(인천 소재) 이초석은 펄시 콜레를 한국에 초청하여 엄청난 사례비도 지불하고 자기 선전에 열을 올린 것이다.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는 아이들의 계시 받은 것을 수집하여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라는 책을 내고 이를 약해서 다미선교회라 명명한 후 {하늘문이 열린다} {경고의 나팔} {1992년의 열풍} 등의 책을 냈다.
어린 아이들이 직접 계시를 받았는데 1992년이나 1993년에 예수의 공중 재림과 성도들의 휴거가 있게 되며 1999년에 예수의 지상재림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성도들의 휴거가 있은 후 무시무시한 7년 대환난이 있게 되는데 그 환난을 피하려면 때가 임박했으므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장림 목사는 책에 소개된 어린 종은 진군과 H군, 대구 K소녀 등인데 이 목사는 어린 종들의 직통 계시에 16세기 프랑스의 점성가인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7월 14일 지구 종말설, 구주공동체(EC)의 1992년 통합설, 환경오염, 대기오염 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이 목사는 자신의 다미 시리즈 책을 보고 모여드는 신도들을 관리하기 위해 다미선교회를 만들고 전국 도시에 그 지부를 두고 있다.
다미 시리즈에 소개된 어린 종들이 제각기 선교회를 만들어 독립을 하고 독자적인 집회를 하기도 했다.
걸프전쟁이 터지면서 1992년 10월 시한부 종말설은 그 절정을 이루었고 TV에서도 특집으로 다루게 되었다. 1992년 10월 종말설은 이장림 목사나 어린 종들을 통해서 공포되지 않고 막연하게 1992년 1993년이라고 했는데 다미선교교회 여전도사인 전양금 전도사가 1989년 6월 12일 영시 예배때 입신하여 1992년 10월 10일이라고 예언을 했다.
한편 인천온누리교회 담임목사의 부인 박화자씨가 1992년 10월 28일이라고 주장하고 나서서 10월 10일설과 차이가 나게 되었다.
이장림씨는 구약 4000년 신약 2000년으로 이 세상은 끝나고 천년왕국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았다. 6일간 천지창조로[를] 했으며 하늘의 하루는 땅의 천년 같다고 했으니 6천년이 마감되는데 인류와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1999년에서 7년을 빼면 1992년이 되는 것인데 여기다가 EC의 통합,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10월 종말설의[이] 모두 배경이 되어 1992년 10월 종말설이 신빙성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1992년 10월 시한부 종말론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진학을 포기하여 깨끗한 성도가 되기 위해 결혼도 안하고 그날에 젖먹는 아이와 아이 밴 자가 화 있을 것이라는 성구에 의하여 낙태 수술을 하는가 하면 자녀를[자녀] 안 낳기 운동을 하고 저축한 사람들이 돈을 찾아 흥청망청 써 버리고 직장마저 포기해 버린 사례가 흔히 있다.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고 했고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가 아니라'(행1:6)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살전5:1).
이상의 성경 구절에서도 강조하였거니와 정확한 종말이기를[종말은]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했고 너희의 알 바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셨는데 그 날을 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정면 도전인 것이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알 만한 사람들에게는 알려 주신다는 것이 지론이다. 그래서 노아의 때는 120년 전에 예언을 했고 7일 전에 알려주셨으므로 지금 노아의 때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아의 때와 같다는 뜻은 그 당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마24:38)' 같은 깨어 있지 못한 상태를 뜻하는 것이고, 또 그들은 '아들도 모르고'의 뜻을 예수가 사람으로서는 모르나 하나님으로서는 전지전능한 데 모르실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아들과 '아버지'가 대조적으로 나오는 것은 '아버지'가 하나님을 뜻하고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뜻하는 것이다. 심판권은 하나님의 절대 비밀이요 주권에 속한 것이다.
우리는 언제 주님 재림과 세상 종말이 올 것인가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언제 주님이 재림하시고 종말이 올지라도 준비하고 영접할 준비가 돼 있으면 되는 것이지 미리 종말 시기에 관심을 갖고 직장을 포기하고 임신중절 수술을 하고 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생업을 등지고 설쳐대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니다. 과거 안식교나 여호와의 증인 등 이단들이 시한부 종말에 대한 예언을 했다가 망신을 당한 예가 허다하다.
통일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구속을 인정하지 않는다. 곧 십자가 실패설을 주장하며 인간의 성적 타락설을 가르친다. 재림 예수는 한국에 오며 그가 곧 문선명 교주라고 본다. 제사상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는 우상 숭배를 하면서 기독교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기성교회 정복 및 정치권력 장악, 경제, 사상, 문화의 통일을 이룬다는 이름 아래 극우승공을 표방하지만 공산주의자들과 야합하는 등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구원파, 세 부류가 활동
기성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자기네들이 가르치는 성경공부를 하고 깨달음을 얻어야 구원받는다고 한다. 구원을 받으면 구원받은 생일날이 있으며 그 후에는 어떤 잘못을 하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여 도덕폐기주의적인 입장을 나타낸다. 권신찬파, 이요한파, 박옥수파 등 세 개의 파가 활동 중이다.
박윤식 교리 이단시비
최근 예장합동보수(총회장 이강로)와 예장 합동측 김만규씨가 박윤식씨의 말씀 공부가 이단이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일간신문, 교계 신문에 요란스러운 인신공격과 함께 예장통합측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를 공격하고 있다.
그렇다면 박윤식씨(대성교회 원로목사)가 가르쳐 온 말씀공부는 어떤 것인가? 박윤식씨의 설교 녹음테이프, 대성지, 말씀의 승리가(내주께 찬양)를 종합해 보면 확실하게 그 교리가 들어난다[드러난다]. 박씨의 주장과 교리중 핵심을 이루는 것은 성경(마6:5-12)에 근거하여 진리와 말씀을 구별하여 가르친다는 것이다. 말씀은 생명이요 진리요 하나님 말씀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참되다고 소개하는 소개장에 불과하고 땅에 속한 것이며 육체의 법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씀은 예수가 전하려고 2천년 전에 이 땅에 와서 3년간이나 전해야 할 사람을 찾아 다녔으나 못 전하고 십자가 핏 속에 묻어 놓았는데 2천년 동안 아무도 그 비밀의 말씀을 받은 자가 없었으나 박윤식씨가 지리산과 장안산에서 3년 6개월 7일간 기도하면서 40일 금식기도를 두 번씩이나 한 끝에 하늘에서 말씀을 내려 주셨다는 것이므로 기성교회에서 전하는 것은 진리요 대성교회에서 전하는 것을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다.
땅 위에서 잘 살아보자는 것은 진리이고 하나님 비위 잘 맞추어서 잘 살아보자는 것이 말씀이다. 진리는 그림자요 말씀은 실체요 진리는 껍데기요 말씀은 알맹이다. 기성교회 교인을 전도하는 것은 사도 바울도 유대인을 먼저 구하라고 했으니 영적 유대인인 기성교회 교인들을 구해야 하며 때가 급하므로 언제 초신자를 전도하여 훈련시킬 시간이 없으며 기성교회 교인들을 데려와야 된다며 남의 교인 미혹하는 것을 합리화시킨다.
최근 인천에 있는 예장합동보수측 모 교회에서 안모씨가 말씀 공부를 가르치다가 이단성이 드러나 교인들이 들고 일어나 대부분 다른 교회로 가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박윤식씨는 명목상 원로목사로 있지만 말씀 공부의 핵심이므로 실제적인 주역이다. 대성교회 지교회가 전국에 10여개가 있는데 합동보수측에 속한 것도 있으나 예장합동주류측에 가입한 교회도 있다.
<지교회명: 부산 은혜교회, 광주 산성교회, 대구 산서교회, 대전 성도교회, 성남 브니엘교회(성화교회), 울산은혜교회, 원주 원동 중앙교회, 태백시 동광교회, 봉덕은혜교회, 포항 명신교회>
박윤식씨의 말씀 공부로 인한 기성교회 피해가 큼으로 예장통합측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는 각 노회의 헌의를 받아 현재 자료를 분석하여 이단 여부를 가을 총회에서 가리기 위해 조사를 하게 되자 예장합동보수측은 엄청난 광고비를 들여 공격 비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확실한 증거자료가 이단 여부를 판별해 줄 것이다. 또 박윤식씨는 시대구분에 있어서 통일교의 원리강론처럼 구약의 때, 종의 때, 아들의 때, 성약의 때, 주인의 때로 구분하고 있으며 성경을 비유와 은유로 보고 에덴 동산의 이야기는 비유와 상징으로 설명되고 있으며 인류 창조 이전에도 인간이 존재했다는 이중 창조론을 주장했다.
여호와의 증인
삼위일체를 부인하며 예수의 신성도 부인하고 부활도 영적 부활만 주장한다. 지옥도 없다고 하며 이 땅 위에서 144,000명을 위한 지상천국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병역을 기피하며 수혈을 거부하며 세상 교육을 사탄의 지식으로 보아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않는다. 국가도 사탄시하여 공무원 등의 직업을 갖지 않고 여호와의 증인이 아니면 결혼도 하지 않는 등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정명석의 서울교회(JMS)
1980년 전직 통일교 승공강사 정명석에 의해 시작되어 30개론이라는 원리강론을 토대로 한 교리를 가지고 대학생 등 청년층에 파고들고 있다. 애천교회 - 낙성대교회 - 서울교회 등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위장을 하고 있고 대학교에서 서클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정명석은 통일교 문선명의 사명은 끝났고 그 사명이 자기에게 주어졌다고 하며, 교리공부를 마치면 문답을 하고 통과번호를 준다.
엘리야복음선교원이란
말세 마지막 선지자 엘리야로 온 교주 박명호가 1980년 4월 16일에 강원도 원성군 귀래면에서 첫 집회를 갖고 그가 다니던 안식교에서 이탈해 나와 1984년 6월 25일 강원도 원성군 소초면 둔둔리 산 171-1에 엘리야 복음 선교원을 창설했다.
하나님을 친아빠. 친아버지라고 호칭하며 기도에서도 같은 호칭을 쓰며 인간은 창조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태에서 낳았다 하며 선악과에 무서운 독이 들어 있어 아담과 하와가 먹고 즉시 죽었으며 십자가를 아버지 하나님이 지신 크신 십자가, 아들 예수가 지신 작은 십자가가 있으며 성경 사 41:25에 나오는 해돋는 곳이 동방 한국이며 강원도 원성군 소초면이 그 중심지이며 마지막 선지자 박명호가 엘리야라는 것이고 안식교와 같이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며 여호와의 증인과 같이 인간의 영혼불멸설을 부인하고 중매장이가 중매 후 필요 없는 것처럼 예수는 우리를 하나님께 중매했으니 이제 직접 하나님 아버지 품에 안겨야 하고 중매쟁이 예수는 필요 없다고 하며 예수가 문을 꼭 닫고 창녀 마리아와 연애를 했으며 남자 신도는 "왕자님", 여자 신도는 "공주님"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이들은 봉고차를 타고 경향각지 교회를 순방하면서 위장 이름을 내세워 찬양을 해 주고 카셋트 테이프와 박명호의 책자를 판매하며 때로는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다고 모금까지 했다.
엘리야 복음 선교원에 미혹되면 이혼 별거 등 부부간의 갈등이 생기며 가정 파괴 현상이 생기고 부모 형제의 인연을 끊고 학생들은 학업 중단, 진학 포기하기까지 한다.
이단의 피해를 예방하는 길
(1)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가정 생활
부부간의 불화, 부모 형제 간의 갈등 등으로 가정 생활에서 사랑의 공동체 의식을 느끼지 못할 때 이단에 쉽게 빠진다. 이단들은 성경의 말씀을 교묘하게 악용하여 부모 형제와 아내나 남편, 자식들이 서로 미워하고 사탄시 하도록 유도한다. 평화로운 가정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이단의 공통점이다.
(2) 지속적인 성경공부와 교회에서의 봉사
성경 말씀으로 무장한 사람에게는 이단이 침범할 수 없다. 올바른 성경 지식은 왜곡되고 이단적인 성경 해석을 금방 분별하도록 영분별의 은사를 준다.
(3)영적인 욕구와 체험을 말씀 위에서 소화
신령한 신비 체험에 대한 호기심과 체험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나 성경에서 벗어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4)교회도 허물 많은 인간이 모인 곳
가장 거룩한 곳이어야 할 교회이지만 사람들의 모여 있는 곳이기에 인간적인 실수와 잡음이 있다. 교회는 과대평가되어서도 그렇다고 과소평가되어서도 안된다.
진리는 평범하고 변함없다.
진리를 사랑하는 많은 성도들이 진리와 이단을 구별하지 못한 채 단순한 호기심, 성경적인 지식의 부족, 신비스러운 이단들의 매력에 끌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단의 소굴에 빠진다. 가짜와 진짜의 구별은 쉽지 않다. 겉으로는 비슷하지만 그 내면적 본질은 전혀 다른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가짜가 진짜보다 더 그럴듯하게 보인다. 이단과 진리도 마찬가지이다. 이단들은 더 매력있게 보이고 신비스럽고 그럴듯해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러나 진리는 변함이 없다. 그렇게 매력도 신비스러움도 보이지 않는다. 이단들은 이적 기사, 만병통치, 만사형통, 영생 불사 등을 내세워 사람들의 구미를 돋군다.
성경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신비스러운 것을 내세운다. 계시, 환상, 꿈을 성경보다 더 강조한다. 결국 이단은 모든 진리의 기준인 성경에서 탈선하거나 이탈한 것이며 성경보다 앞서거나 성경에 없는 이상한 주장을 내 세우는 것이다. 우리 모두 우리 주변의 이단 사설을 경계하자. 이단에 속한 사람은 한 두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딛3:10)고 했다.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그와 인사도 말라'(요2서1:10)고 했다.
임종권 기자 / 크리스쳔 신문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 사이비 신앙운동 및 기독교이단대책위원회(위원장:정행업 목사)는 제74, 75회 총회 주요 안건인 반기독교서적(관련기사 7면)과 사이비 이단 신앙에 관한 최종 연구 결과를 발표, 이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번 이단 사이비 신앙 연구 대상은 △대성교회 박윤식씨 △엘리아복음선교원 박명호씨 △다미선교회 이장림씨 △지방교회(회복교회) △한국예루살렘교회 이초석씨 등과 조용기목사 소속교단(순복음교회)과의 연합활동에 관한 것 등이다.
이 연구는 대책위 위원과 위촉된 전문위원들로 이뤄졌으며 연구방법은 위원회 위원과 전문위원이 각 연구 주제별로 분과위원회로 나누어 연구한 뒤 전체회의로 모여 각 보고문을 심의 채택했다.
또 대책위는 교단 교리의 표준인 신구약 성경, 세계보편교회의 신조인 니케아신조(AD 325)의 삼위일체 하나님, 콘스탄티노플신조(AD 381)의 성령론, 칼케돈신조(AD 451)의 기독론 및 세계개혁교회의 신앙고백 전통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신앙고백서(1986) 등을 연구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이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대성교회 박윤식씨에 대해 △예수께서 이 땅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함으로 기독론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타락론의 측면에서 볼 때 하와가 뱀과 성관계를 맺어 가인을 낳았다고 함으로 통일교와 같은 성적 모티브를 가졌으며 특히 타락 후에 인간에게 월경이 생겼다고 하며 이 월경하는 여인의 입장에서 탈출하는 것이 구원이라고 함으로 정통적 타락관과 배치된다. △박윤식씨는 진리는 사망이요 말씀은 생명이란 틀을 가지고 있는데 정통교회마저(타종교) 진리 차원으로서 이를 벗어나 말씀 차원에 이르지 못하면 결국 사망이라 함으로써 정통교회를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 박윤식씨는 자신이 지리산에서 3년6개월 동안 기도하다가 비밀 말씀을 받았다고 하여 자신을 말씀의 아버지라고 하고 있으며 이것을 시나 찬송가로 노래하고 있는 것은 박씨를 신격화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박윤식씨는 주로 자신의 설교는 지리산에서 받은 계시임을 말하고 그 비밀은 주석에도 없다는 등의 표현을 하는 것을 성경계시 외에 직통계시를 말하는 것으로 성경계시를 왜곡시키거나 부정함으로 정통적 계시관과 위배된다. △박윤식씨의 창조론을 보면 에덴동산은 인간의 마음을 가리킨다고 하며 또한 아담은 미생물로부터 발아된 생명의 맨 윗가지에 핀 꽃으로서 창조적으로 진화한 상향의 끝이 아담의 생령이고 생령이 하향한 밑바닥의 근저는 물질이라 함으로 진화론적 창조론을 가지고 있다. △박윤식씨가 지리산에서 3년 6개월 7일 동안 받았다는 위와 같은 계시들은 통일교 출신인 변찬린씨가 썼던 {성경의 원리}로부터 대부분 인용 표절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내용은 △박윤식씨의 육성 녹음테이프 50여개 △말씀 승리가 노래집(77년) △내 주께 찬양 노래집(81년) △박윤식씨가 변찬린씨의 {성경의 원리}에서 인용한 설교 리스트 △변찬린씨가 쓴 {성경의 원리 상,중,하} △{목회와 신학}(91년 2월호) △박윤식 교리의 강의를 기록한 성경공부 노트 등을 참고, 분석한 것이다.
또 박명호씨(엘리아복음선교원)에 대해서는 교주 본명은 박광규인데 현재는 박명호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는 '울면서 부르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대표한다'는 뜻이라고 밝히고 84년 6월 25일 강원도 원성군 소초면 둔둔리 산 171-1에 추종자들이 집단을 이루어 천막생활을 시작한 이래 전국에 50여개 집회소와 미국, 일본, 아르헨티나 등 국제집회소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연구보고서는 원래 안식교인이었던 박명호씨가 중졸 후 고아원에서 지내다가 천호동 뒷산에서 환상을 보았는데 유명한 안식교 목사들이 양떼들을 멸망의 길로 끌고 가는 것을 보고 놀라서 "엘리야의 하나님, 나를 엘리야로 보내소서"라고 외치다가 깨어났다며 박씨는 이것을 근거로 세 가지 성경을 주장, 제1성경이 천연계(天然界), 제2성경이 66권, 제3성경이 대언의 영이라고 함으로써 피조물을 성경으로 격상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대언의 영을 성경이라고 하여 자신의 가르침도 성경이라는 통로를 열어놓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박씨는 "선악과에 무서운 독이 들어 있어서 아담과 하와는 독 있는 선악과를 먹고 즉시 죽었다"고 하는 등 잘못된 성경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
이 연구보고서는 또 박씨는 "세 하나님은 각기 한 몸씩 가지신 세 하나님들"이라고 주장, 잘못된 삼위일체관을 갖고 있으며 성부, 성자 동행 동시수난설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박씨는 "우리 하나님은 머리와 머리털을 가지고 계신다"고 하여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을 가졌다는 신인동형동성설(神人同形同性說)을 주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 연구보고서는 박씨는 구원 얻는다는 것은 '사탄의 거짓'이라 비난하고 '스쳐가는 생각까지'라도 범죄치 아니하는 제2의 예수가 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며 "너도 예수가 되라", "너도 하나님이 되라"는 제목으로 설교할 뿐 아니라 "기성교회 교인들은 한 사람은[사람도] 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오직 자신의 교리를 통해서만 될 수 있다"고 주장, 행위구원을 강조하고 정통교회를 비난하고 있다는 잘못된 구원관을 지적하고 있다.
또 박씨는 △기성교회를 모두 마귀가 만든 것이라고 했다. △토요일 안식일 준수를 가르친다. △안식교의 조사심판설을 수용하고 있다는 등 잘못된 교회관을 드러낸다.
이 연구보고서는 "박명호씨는 안식교의 시상을 기초로 하여 자기의 신비체험 등을 교리화하여 한국은 성경 이사야 41:25에서 가리키는 동방이요 특히 강원도 원성군이 동방의 중심지이며 동방에 나타나는 마지막 선지자 엘리야가 자신이라고 하면서 절박한 말세 심판설은 신도들에게 속세에 대한 절망감을 야기시켜 산속으로 도피케 하고 있다"고 지적, "이로 인한 부부의 별거, 이혼 등으로 가정 파괴가 빚어지고 학업을 포기하는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연구보고서는 "이신득의의 진리를 거부하고 성경에서 벗어나 천연계에 들어가 신선이 되어야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이 신이 되며 예수처럼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명백히 이단으로 판단된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크리스천신문} (1991. 8. 22.)
최삼경 소장 / 예장(통합)이단사이비연구소
I. 이단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한국교회
{{. 최삼경, {한국교회선교의 비전과 협력}(서울: 도서출판 횃불, 1993) }}
한국교회는 오래 전부터 이단들로 인해 몸살을 앓기 시작했고, 이제 그 심각성은 위험수위를 넘어가고 있다고 본다. 이미 그 실상이 하나씩 나타나고 있음을 실감한다. 사교로부터 가정이 파괴되거나 교회가 추한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일은 이제 그리 흔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예컨대, 1991년 5월에 아버지의 신앙을 따르지 않는다고 아들을 16개월 씩 밀실에 감금해 두었던 사건을 모르는 자가 없다(1991년 5월 29일자 조선일보) 이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에서 이단으로 정죄된(1990년 75차 총회시) 밤빌리아란 이단의 이야기이다.
그보다 우리는 1987년 8월 29일에 있었던 끔찍한 사건을 잊지 못할 것이다. 경기도 용인군 남사면 불리에 소재하고 있는 주식회사 오대양 구내식당 천장 속에서 발견된 32구의 시체들로 온 세상을 놀라게 한 소위 '오대양 사건'이다. 그런데 이 오대양 사건이 또 다시 살아나서 1991년 여름을 서늘하게 했다. 한국 전 역사에 기독교 이단문제로 이렇게 세상이 시끄러웠던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구원파와 오대양의 관계, 자살이냐 타살이냐, 세모와 5공과의 관계 등의 문제들이 밝혀지기를 숨조이며 지켜보았는데 별로 신통한 답을 얻지 못한 부분도 있었고, 우리 정통교회 편에서 볼 때 얻은 것도 많았다고 본다. 어쨌든 이제 이단문제는 이단에 빠진 자들이나 그들의 가족만의 문제이기 보다 기독교 자체의 문제가 되었고 심지어 사회적 국가적 문제로까지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마다 필자가 느끼는 안타까움이 하나 있다. 세상 사람에게는 정통교회와 이단을 구별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이단이나 사교에 속한 자도 똑같이 교회란 이름이나 목사라는 이름을 쓰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기독교 자체의 문제로 오해하기 쉽고 또 그렇게 오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어느 때보다도 기독교인들의 조직적이고도 연합적인, 그리고 지속적인 관심과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토의할 문제:범람하는 이단으로부터 어떻게 정통교회를 보호할 수 있는가?
II. 왜 이단이 발생하는가?
[한국교회는 이단의 천국인가]라는 질문을 피하기 어렵도록 지난 1세기 동안 한국교회는 많은 이단을 배출시켰다.
왜 이렇게 많은 이단이 발생하는가?
물론 먹을 음식이 없으면 곰팡이가 필 리 없고, 곡식이 없는데 쥐가 구멍을 뚫을 일이 없으며, 죽은 사람에겐 질병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에 이단이 많은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교회의 부흥을 증명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단이 발생하는 부정적 요인은 위기이다. 그런 점에서 이단을 위기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집안 단속이 소홀할 때 도둑이 들어오고 몸이 약할 때 질병에 들기 쉬운 것과 같다. 그런 점에서 역사적으로 전쟁의 위기를 맞고나면 사이비 종교와 이단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사업에 실패하거나, 실연 당한 후에 이단에 빠지는 자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동네에 이단교회가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 필자의 상담경험에 의하면 사회적 위기, 가정적 위기, 경제적 위기, 인간관계의 위기를 통해 이단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쟁 후에 이단이 많은 것도 같은 현상이다.
이것을 교회의 측면에서 그리고 교리적인 면과 윤리적인 면으로 세분하여 살펴보자. 왜냐하면 정통교회의 교리적 윤리적 약점이 이단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1. 교리적인 측면에서 본 이단의 온상
교리적인 면에서 볼 때 이단의 온상이 되는 토양은 두 가지라고 본다. 첫째는 신비주의와 자유주의는 동전의 양면처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자유주의의 시조 쉴라에르마흐에르(schleiemacher)는 독일의 경건주의를 바탕으로 생겨났음을 보아 알 수 있다. 물론 신비를 부정하면 이성주의자가 되고, 신비만 인정하고 신비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면 신비주의자가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이단은 신비적 접촉을 시도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신비주의자는 쉽게 이단에 빠질 수 있다. 한국교회에 이단이 많은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한국인들의 신비주의성 때문이다.
또한 자유주의는 대부분 이단자들에게 교리적 근거를 제시하는데 공헌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통일교도였던 김영운이 쓴 {통일신학}이란 책(서울, 성화사 1981)을 보면 성경은 유오하다(p.40)는 것이요 그러기에 새로운 계시가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김씨는 성경이 유오하다는 5가지 증거를 제시할 때 교계의 모 자유주의 신학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성경에는 모순이 많고, 원본의 내용을 알 길이 없고, 또한 신화와 비과학적 설명이 포함되어 있으며, 전설도 많고, 도덕적으로 무가치한 구절이 있으며, 예수님도 구약성서의 무오성을 인정하지 않았다(pp.40-41)는 것이다. 또한 자유주의 신학자 하비 콕스가 통일교를 극찬한 것이나 연세대 신학과 교수였던 고 서남동 교수가 통일교를 옹호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2. 윤리적인 면에서 본 이단의 통로
교리적인 부패 못지 않게 윤리적인 부패는 이단의 온상이 된다.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망각할 때 우리의 양떼는 이리들에게 잡혀가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단에 대한 무관심이 오늘날 한국교회를 이단의 천국으로 만든 것이다. 교회가 가져야 할 관심이 있다는 말이다. 놀기에 힘쓰는 아이는 공부를 잘할 수 없음과 같다. 교회가 선교적 관심을 잃게 될 때 교회는 강도의 굴혈이 되고 만다.
하나님의 명령은 세상 속에 교회를 심으라는 것이다. 세상 속에 교회가 심어져 가고 있으나 반면에 교회 속에 세상이 심어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교회 속에도 물질주의와 교권주의의 담이 높아만 가는 것을 보니 하나님의 영광의 탑이 낮아만 가고 있는 증거가 된다.
수십 종이 넘는 비성경적인 헌금을 만들어 강조하는 것은 면죄부를 파는 중세교회와 다를 바가 없다. 더우기 오늘날 노회나 총회의 기능이 권력 싸움의 도장이 된다면 이단을 막을 힘이 남아 있을 수 없게 된다. 노회나 총회의 최대 관심이 선거에 있거나, 순수한 교리적 논쟁이 아닌 교권주의적으로 논쟁이나 일삼으려 한다면 한국교회는 자멸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기독교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는 내적으로 교리적인 문제에 더 의존하고 있지만 외적으로는 세상 사람들에게 도덕적으로 인정되느냐 인정되지 않느냐에 더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교회의 도덕성이 흐려질 때 불신자의 눈에는 정통교회와 이단이 다를 바가 없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변증가들마다 기독교가 참 종교임을 증명하는데 교리적 변증 외에 기독교의 도덕적 우월성을 내세웠던 것이다.
토의할 문제:
1) 이단 발생의 사회적, 국가적, 경제적 원인과 교회 편에서의 원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2) 이단 발생의 교리적인 면과 윤리적인 면을 토의해 보자.
III. 이단이란 무엇인가?
한국에는 어림잡아 백여 개의 이단이 있는데 그 중에도 외국에서 들어온 소위 외래파는 열개 밖에 없다는 점과 인간 예수, 인간 하나님이 오십 여명이나 된다는 점은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다. 아마 기도원이나 안방에 숨은 소수의 이단까지 합한다면 이백여 개는 되리라고 본다. 이렇게 많은 이단에 대한 한국교회의 대책이 무엇인지를 말하기 전에 먼저 이단이 무엇인지부터 밝혀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단에 대한 대책은 커녕 아직 이단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립부터 안되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이 될까? 평신도들은 이단의 논쟁이란 마치 감정 싸움으로 인한 또는 시기 질투에 의한 정죄 수단이라고 잘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예장(통합)에서 김기동씨의 귀신론과 조용기 목사에 대한 이단 및 사이비 집단 규정 같은 것이 그런 경우일 것이다. 물론 이단이 아닌 자를 감정적 싸움이나 시기 질투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한다면 이단으로 정죄된 자보다 이단으로 정죄한 자가 더 악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먼저 이단이 무엇인지를 밝혀 알게 될 때 그것이 감정 싸움인지 아닌지 알게 될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면 이단이란 무엇인가?
이단이란 한 마디로 교리적으로 잘못될 때 이단인 것이다.
대부분 이단은 윤리적 부패를 수반하지만 비록 윤리적으로 선해도 교리적으로 잘못되면 이단임을 알아야 한다. 예컨대 안식교 같은 이단은 그들의 교리체계 내에서 선하게 살려고 하지만 교리적으로 잘못되었기에 이단이다.
그렇다면 자연히 생기는 문제가 있는데 교리적으로 무엇이 잘못되면 이단이 되며 이단을 규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 신체를 예를 들어보면 눈이 멀었거나 팔을 잃었다고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명기관에 병이 들면 죽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역사적 신앙과 결정적인 교리가 한가지만 다를 때에도 이단으로 규정된다. 창조론, 구원론, 계시론, 신론 중 단 하나만 잘못되어도 이단이 될 수 있다.
이것을 성경에서 예를 들어보자. 요한이서 1장 1절에 보면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고 했다. 이 말은 요한이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하고, 신성만 인정하는 도케티즘(가현설주의자)에 대한 말이었다. 즉 예수님은 영으로 오셨고,영으로 죽으셨고,영으로 부활하셨다고 주장하여 예수님의 인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자들이 그들이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이 이단을 규정하는 필요충분한 조건으로써의 말씀인 줄 오해함으로 인성만 부정하지 않으면 이단이 아닌 줄 알고 있다. 물론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해도 이단이지만 그 반대로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거나 제한해도 이단임을 알아야 한다. 바로 예수님의 인성을 인정하나 신성을 제한하던 아리우스도 이단으로 정죄된 것과 같다.
이것을 김기동씨의 경우에서 살펴보자. 김기동씨와 그와 같은 사상의 이초석씨는 동일한 주장을 하는데 자기들은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하지 않는데 왜 이단이냐고 요한이서 1장 7절에 의해 따져 묻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기동씨는 신성을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신이라고 하면 오히려 이단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님은 신의 생애가 아니고 사람의 생애요 예수님이 물 위를 걷고 기적을 행하는 것은 신이기 때문에 일으킨 것이 아니요 인간으로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역사라는 것이다(제9기생 강의 테이프 29-2, 19-2).그래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성령을 자신보다 높여서 성령에게 존칭어를 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김기동, {성령을 알자}, 베뢰아, 1986, p.23). 사실 김기동씨의 경우 예수님의 신성만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그토록 주장하는 인성도 역사적 기독교의 인성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씨의 창조론에도, 삼위일체에도, 계시론에도, 성령론에도, 마귀론에도 이단사상은 가득차 있지만 그가 주장하는 다른 모든 것들이 꼭 옳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신성 하나가 부정되는 것만으로도 이단이 되기에는 필요충분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많았던 이단 논쟁은 예수님의 양성(신성과 인성) 문제에서 발생했던 것과 섬세한 차이에도 이단 논쟁이 발생했던 점을 상기시켜 볼 때 교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유사하나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아리우스가 이단으로 정죄된 때가 니케아회의(325년)요, 그리스도의 인성을 제한하던 아볼리나리스가 이단으로 정죄된 때가 콘스탄티노플회의(381년)에서 이며, 그리스도의 양성이 완전히 독립되었으나 승천 때 합해진다는 네스트리오는 에베소회의(431년)에서 정죄되었으며, 칼케톤(451년) 회의에서는 그리스도의 양성을 부정하던 유디게가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이처럼 그 교리중 어느 하나라도 성경을 보면 역사적 기독교와 다를 때 이단이 된다.
토의할 문제:
1) 교리의 이론성과 실제성이 무엇인가? 2) 이단은 정도에 따라 구별할 수 없는가? 3) 이단과 구원문제는 어떠한가? 4) 이단의 윤리성 문제를 토의해 보라 6) 기독교중심의 신학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이며 정통신학의 최대 약점이 되고 있는 종말론이나 마귀론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는가?
IV. 이단과 성경
이단이 성경과 접촉점을 가지지 않았다면 기독교 이단이라고 할 수 없다. 성경과 접촉점을 가지고 있고, 최소한 성경적 분위기를 가졌을 때 기독교 이단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이단이 보는 성경계시는 두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성경계시 외에 자기계시를 가진 이단이요, 둘째는 성경계시만 계시로 인정하는 이단이다. 이단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단이란 성경 외에 자기 계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통일교는 성경 외에 {원리강론}이라는 자기계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만 계시로 인정하는 이단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때로는 전자보다 후자가 더 무서운 이단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실제 예를 들어보자. 보는 사람의 견해에 따라 안식교나 여호와의 증인을 전자에 속한 이단으로 볼 수 있다. 안식교의 경우 화이트여사의 대정투를 성경 외의 계시로 인정한다고 볼 수 있으나, 표면적으로는 그렇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물론 세분하자면 성경만 계시로 인정하는 이단은 둘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실질적으로는 자기 계시를 가지고 있으나 표면적으로 성경만 계시로 인정하는 것같은 이단과 정말로 성경만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로 인정하지만 성경해석에서 그 차이점을 들어내는 이단은 구별되어야 한다. 비록 안식교나 여호와의 증인은 내면적으로 자기 계시를 가지고 있더라도 기성교인에 대한 표면적 주장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 왜 이같은 구분을 하게 되는가. 그 이유는 실질적으로 성경만 계시로 인정하든, 표면적으로 인정하든 여기에 속한 이단이 더 무서운 이단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일교에서 살펴보자. 통일교만큼 {원리강론}이란 자기계시를 분명히 가지고 있는 이단은 없다. 그런데 통일교마저도 성경만 하나님의 계시로 인정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통일교는 성경에 대해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얼굴은 친성경적인 얼굴이요, 다른 하나의 얼굴은 반성경적인 얼굴이다.먼저 첫번째 얼굴을 보라. 그들의 신조 두번째가 신구약성경을 경전으로 받든다고 했으며 {통일교회 소개} (1982년 8월 13일 인쇄, 8월 30일 발행 발행인 유광열, 발행처 성화사)라는 책자에서 문답으로 알아보는 통일교회라는 항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문:통일교회에서는(원리강론)의 원리를 교리로 삼고 있는데 그 원리는 성경에 입각한 것인가?
답:문선명 선생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와 성경 가운데 있는 일관한 뜻을 가지고 종합해서 체계화시킨 것이 원리강론이다. 즉(원리강론)은 성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일종의 조직신학서라고 할 수 있다(p.19).
한마디로 원리강론은 성서에 대한 조직신학서라고 말함으로 성서의 권위를 높이고 있고, 또한 성서를 이해하기 위한 보조자료로 보는 것같다. 조직신학 서적에 불과한 원리강론이 결코 원전인 성서보다 더 높이 평가될 수 없을 것이고 더우기 성서를 경전으로 본다는 말같이 들릴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이다.
이제 두 번째 얼굴을 살펴보자. 통일교 원리강론은 결코 조직신학이 아닌 새 계시, 새 성경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김영운씨가 쓴 {통일신학}이란 책(서울 성화사 1981)에서 보면 성경은 유오하기 때문에(pp.40-41) 새로운 계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점은 {통일교의 소개} 책자에서 살펴보면 똑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왜 통일교가 출현해야 하는가(p.11)에서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1.기독교 역사의 추이로 보아서, 2.종교와 과학을 통일할 수 있는 진리의 필요성에 의해서, 3.성서예언에 따라 그렇다는 것이다.
이 점을 그들이 주장하는 원리강론에서 들어보자. 성서의 문자는 진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요, 진리 자체가 아니요(p.139), 그런 점에서 새 진리가 나와야 하는데 성서는 진리 자체가 아니요 진리를 가르쳐주는 교과서이므로 말세에는 반드시 새 진리가 나와야 한다(pp.140-141)고 하며 이 교과서인 성경을 절대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P.9). 결국 원리강론은 성서에 대한 조직신학이라 하면서도 반대로 구약은 소생기의 것이요, 신약은 장성기의 것이요, 원리강론은 완성기의 성경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문제는 성경임을 알 수 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성경만 계시로 인정하는 이단이 더 무서운 이단이다. 그러나 성경만 계시로 인정하든 성경 외에 자기 계시를 가졌든 논재[논쟁]의 촛점은 성경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비록 성경 외에 자기 계시가 있는 이단이라도 그들이 주장하는 최소최대한의 성경적 접촉점, 그것이 우리 논쟁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단에 수십년씩 빠졌다가 돌아온 자들마다 정통교회의 이단 비판서적을 보고 이단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본인이 볼 때 이단에서 나온 자들은 이단에 대한 이해는 깊으나 비판의 기준이 약하고, 이단에 빠지지 않고 이단을 비판하는 자들은 비판의 기준이 강하나 이단에 대한 이해가 약하다. 이단자들이 가진 성경 외의 자기 계시나 교리기준을 이해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는 말이다. 이것이 이단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자들에게도 어려운데 일반 목회자나 하물며 평신도야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네 것]은 모르더라도 [내 것]은 분명히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 것]이 바로 성경이다.
잠언기자는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는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14:12)라고 했다.
토의할 문제:
1) 이단자들의 성경해석과 정통교회의 성경해석에는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Ⅴ. 왜 하나님은 이단을 내버려 두시는가?
이단에 대하여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왜 하나님은 이단을 내버려 두시는가? 왜 하나님께서 이단교회의 부흥을 보고만 계시는가?" 라는 것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이단을 그냥 두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하나님은 통일교의 재력을 꺾지 아니하시며, 한국의 100여개나 되는 이단의 왕국을 그냥 보고만 계시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이단을 부정적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예컨대 모세에 대하여 바로는, 예수님에 대하여 가룟 유다는, 아다나시우스에 대하여 아리우스는, 어거스틴에 대하여 펠라기아는 부정적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교회사를 살펴볼 때 정통신학이 먼저 형성되고 이단사설이 생겼던 경우보다 이단사설이 생김으로 정통신학 형성을 자극하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 나라에는 구원의 역사와 심판의 역사를 동시에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성경은 밝히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악대로 극대화시키시고 선은 선대로 극대화시키시어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이루시는 것이다.
한국교회에 이단이 많다는 말은 한국교회에 교리적 윤리적 약점이 많다는 말이 된다. 이제 종말론은 기도원 신학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며, 펄시 콜레의 종말론이나 이장림의 종말론에 선량한 양떼들을 잃어서는 안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토의할 문제:
1) 더 많은 이단 전문연구가의 필요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2) 해외에서의 이단들의 활동에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