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진이 그 전화를 받은 건 점심시간이었다.
제일물산 비서실입니다
나 한경진예요
어마. 한 지사장님. 지금 화징님 식사하러 나가셨어요.
전화 상대가 한경진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최수진은
당연히 백병진을 찾는 것으로 생각했다.
알아요. 그래서 점심시간 택해 전화한 거예요.
최수진은 한경진의 말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 지금 서울에 있어요. 회장은 내가 서울 올라와 있다는 것
모르고 있어요. 알려도 좋지만 알리지 않는 게 미스 최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 거예요
최수진은 한경진의 말을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씀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저녁 7시 북창동에 있는 중국요릿집 산동루로 오세요
네?
오지 않아도 좋아요. 그러나 오지 않으면 최수진 씨는 오래
오래 후회하게될 거예요. 오고 싶어지면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오세요.
전화는 상대가 먼저 끊었다.
최수진은 멍한 표정으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2
북창동 중국요릿집 산동루의 2층 방에 최수진이 한경진과
마주앉아 있었다.
미스 최는 내가 백 회장의 여자라는 것 알고 있어요?
한경진이 불쑥 내밀 듯 말했다.
네?
한경진의 말에 최수진은 까무러칠 듯이 놀랐다.
역시 모르고 있었군요. 나 백 회장의 여자가 된지 2년째
접어들어요
2....년....
최수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최수진은 백병진과 한경진의 관계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백병진은 자기 애인은 최수진 한 사람 뿐이라고 했다.
최수진은 그 말을 믿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한경진이 자기는
이미 2년 전부터 백병진의 애인이라는 말을 한다.
미스 최도 반년 전부터 백병진의 여자가 되었다는 것 나 알고
있어요
네?
최수진은 눈앞이 캄캄해 왔다.
그건 백병진과 자기 두 사람만의 비밀이다.
두 사람만의 비밀을 한경진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한경진의 마음 말이 더욱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내가 미스 최와 백병진의 관계를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죠?.
그 사람이 부산에 왔을 때 자기 입으로 직접 말했어요. 그 말을
할 때 우리 둘은 모두 벌거벗고 침대에 있었어요. 내 말이
거짓말 같이 들리겠죠?. 거짓말이 아니라는 증거도 있어요
증...거.......
최수진은 꺼져 가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스 최 배꼽 아래 작은 사마귀가 하나 있죠. 색깔은 붉고요.
백 회장이 말해 주었어요. 그리고 수진씨 몸 가운데 가장 민감한
부분은
그만하세요!
최수진은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귀를 막았다.
백 화장에게는 미스 최와 나 말고도 백화라는 기생 애인이 또
있어요. 아시죠?. 요정 백화장 마담요. 그 두 사람 사이는 6년째
접어들어요
왜...나...그런.....말을....나에게.?
그래요. 내가 왜 이런 말을 미스 최에게 하는지 그게
이상하죠?. 하지만 질투 때문은 아니예요.
그럼.....?
미스 최. 내 얘기 잘 들어요. 백 회장은 나를 부산으로
내려보내면서 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에게 몸을
제공하라는 말까지 했어요. 진정 자기를 좋아하면 자기를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최수진이 놀라 한경진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난 시키는 대로 어떤 남자에게 몸까지 제공하고
비밀을 빼내었어요
최수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필요하면 몸까지 바치게 한 여자는 나 혼자만이 아니예요.
백화에게도 그런 지시를 했고 백화도 따랐어요. 그 뿐 인줄
아세요. 부산으로 출장 온 조정래 사장까지 나에게 몸을
요구했어요. 백 회장의 승낙을 받았다는 암시까지 주면서요
최수진의 얼굴이 파랗게 변해 가기 시작했다.
백병진이라는 사람에게 애인이란 건 없어요. 자기 목적
달성을 위한 이용물이지요. 최수진 씨에게도 언제 그런 요구를
할지 몰라요.
최수진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가 기밀을 빼내기 위해 어떤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했다는
말을 했을 거예요. 그후 나는 그 사람의 애인이 되었어요.
목적을 위해 몸을 바치는 사이 상대가 너무나 인간적인 면에
감동한 거지요. 그 사람의 애인이 되었다는 건 이미 내가
백병진을 배신했다는 뜻이예요. 난 백병진이 나에게 했던 그대로
복수할 거예요. 아주 냉혹하게요
최수진이 한경진을 바라보았다.
한경진도 최수진은 바라보았다.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나오는 눈 안쪽 깊은 곳에서 파란 불빛이 일어나고
있었다.
언니
최수진은 한경진을 언니하고 불렀다.
얘기해요
나도 복수할 거예요
최수진의 얼굴은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래요. 연약한 여자가 할 수 있는 건 그 길이 뿐이예요
언니 말해 주어요.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 지
우리 천천히 얘기해요
3
같은 시간 같은 중국 요릿집 특실에는 세 사람의 남자가 대형
요리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고진영 한정태 그리고 북창동 화교무역상 친천퉁이다.
친천퉁은 이 집 산동루의 주인이기도하다.
고 사장 당신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빈틈없는 계획도
무섭지만 제일물산이 고무 공장 불하 받았다는 것 어떻게
알았어?
친천퉁이 감탄하는 말투로 물었다.
고무공장을 불하 받았다는 건 정말 우연히 알았습니다
우연이 알았다니?
친천퉁 대신 한정태가 물었다.
한정태도 고진영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고 있었다.
백병진이 부산공장 가동 준비 책임자로 내려보낸 사람과
한경진이 광복동에서 우연히 마주 친 거야.
한경진이 누구야?
친천퉁이 물었다.
백병진의 비서 출신인데 지금은 백 회장 밀명을 받고 부산서
활동 중인 고 사장 애인이지요
햐!. 이거 백병진은 집안에 호랑이를 길렀군. 고 사장. 적군
대장 비서 꼬시는 비법 나도 좀 배우자
한경진이 그 사람에게 부산에는 왠 일이냐고 지나가는 말로
물었어요. 부산 책임자는 상대가 회장 비서 출신이라는 걸 믿고
사실대로 얘기해 버린 거지
그럼 불하 가격은 어떻게 알았어
그건 한 전무 몫이 였지요. 한 전무가 과거 대리고 있던
부하가 적산관제청에 근무합니다
홍콩 왕 사장 말이 생각나는군
왕 사장이 또 우리 험담했군요
고진영과 한정태 두 사람을 배신하면 동남아에서는 발 부칠
곳 없다고 했어
왕 사장이 진 사장 겁주었군
나 두 사람에게 인간적으로 반했어
백 회장이 내 뒷조사해 보고 우리 마누라가 한국 사람
아니라는 것 알고 놀랄 거야
친천퉁이 유쾌하다는 듯이 웃었다.
걱정 말아요. 불하 증서에 백지 위임장에 양보증서까지
우리가 가진 이상 백 회장 속이 쓰려도 말을 못 할거요
공장 사장될 우리 마누라는 누구야?
친천퉁이 농담조로 물었다.
지금 인사하러 올 거요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며 한경진이 최수진을
대리고 들어왔다.
최수진을 본 친천퉁이
아니.? 제일물산 백 회장 비서 아니야?
놀라 소리 쳤다.
미스 한!. 진 사장이요
고진영이 친천퉁에게 한경진을 소개한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한경진입니다
당신이 우리 가짜 마누라야. 햐! 진짜 마누라면 좋겠다
친천퉁의 말에 모두가 웃어다.
수진이 인사 드려요
한경진이 최수진을 소개했다.
이 집은 진 사장님이 경영하시는 곳이요. 급한 일이 있을 때
우리에게 바로 연락하면 남의 눈도 있을 테니 여기로와 진
사장을 찾아요
고진영이 최수진에게 말했다.
진 사장님. 내 동생 오면 요리 얼마든지 주세요. 계산은 고
사장이 하실 거예요
이런 미인이라면 요리 공짜로 얼마든지 준다. 그럼 천천히
놀아요
친천퉁이 나갔다.
백 회장이 불하 기밀이 부산 쪽에서 새어 나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는 모양이에요.
경진이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조금 전에 백 회장이 전화로 조사해 보라는 지시를 하더군요
조금 전에?
부산에 전화를 했더니 날 찾는 전화가 걸려 왔다고 해서 내가
전화한 거예요. 건어물 때문에 평양상회에 나와 있다고 했죠
한경진도 이제 보통이 아니군
어떤 사람한테 배운 거죠!
기밀을 빼 낸 장본인에게 기밀을 누설한 사람을 색출하라는
지시를 했다? 백병진만 우습게되는 군
한정태가 웃으며 말했다. 한정태의 말에
그래서 약삭빠른 고양이 밤 눈 어둡다는 것 아니겠어요
한경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정말 그렇구나.
그러나 백병진이 진짜 약삭 바른 고양이 밤눈 어두운 꼴 되는
건 지금부터가 될걸요. 그렇지?. 수진이!
한경진이 최수진에게 의미 있는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최수진이 눈웃음으로 답했다.
꿈과 사랑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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