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축 사 관장님
발간사 여는글 강순임
시 봄의 꽃망울 임인숙
나에겐 나보다 소중한 별들이 있다 임인숙
독후감 ‘부의 미래’를 읽고 이형주
‘새의 선물’을 읽고 이선임
수 필 그 여자 강순임
독후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고 김영숙
출산후기 둘 째 낳던 날 이형주
독후감 ‘남한산성’을 읽고 조윤주
참관기 영광도서 독서 토론회를 다녀와서 조윤주
기행문 경주를 다녀와서 장주연
독후감 ‘도쿄타워’를 읽고 이은희
‘소풍’을 읽고 강순임
견학감상문 산성도예를 다녀와서 임인숙
기행문 금강산을 다녀와서 이선임
독후감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 없다’를 읽고 이형주
편지글 사랑하는 아들‘재훈이’에게 조윤주
공연관람기 박성호 무용단 ‘그 일그러진 상’을 보고 임인숙
독후감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고 장주연
참관기 구포 도서관 시낭송회를 다녀와서 조윤주
영화감상문 ‘즐거운 인생’을 보고 정은정
독후감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읽고 임인숙
참관기 차 문화 예술제를 다녀와서 이형주
독후감 ‘리진’을 읽고 강순임
기행문 산청, 함양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김영숙
독후감 ‘릴케의 명시'를 읽고 임인숙
여는글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아직 가을빛이 한창인데 오늘 아침 뉴스는 벌써 윗 지방의
첫눈 소식을 전합니다.
샛노란 은행잎이 나비처럼 날리는 길을 걸으며 참 좋은 이 계절을 오래 붙들고 싶었습니다.
첫 눈 소식에 실려 올 해 도 어느 새 끝자락으로 접어듭니다.
디딤돌 회지를 엮으며 한 해를 마무리 할 때가 된 것입니다.
8년 전 창간호를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회지를 만들면서 어려움도 아쉬움도 많았지만
한권씩 늘어가는 회지를 볼 때마다 회원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힌 일곱권의 회지를 보니 올 해 그 옆에 나란히 꽂힐 여덟번째 회지가 기다려집니다.
올 해는 회원들 각자 개인적인 어려움이 많은 해였습니다.
아기를 출산하고. 학업을 다시 시작하고 수험생의 엄마로 또 각자 자신의 일을 가지고 있는 회원들까지....
돌이켜 보니 참 부지런히 한 해를 살았습니다.
2007년을 시작하며 세웠던 계획들을 차근차근 실천 했으니 많은 내면의 성장이 있었을 것입니다.
2007년은 우리 디딤돌이 꼭 10살이 되는 해였습니다.
10년 동안 한결 같이 디딤돌을 이끌어 주시는 조윤주회원, 이선임회원 두분 정말 감사합니다.
비록 지금은 함께하지 못하지만 처음 디딤돌 독서회를 함께 만들어주셨던 여러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10년 전 처음 시작이 있었기에 디딤돌 8호를 엮는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
책으로 맺어진 인연이지만 이제는 1주일에 한 번 만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습니다.
2008년엔 좀 더 성숙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해가 되기를 기대 하며 앞으로 20년 후 30년 후에도 디딤돌회원으로 함께 하고 싶습니다.
회지 발간을 도와주신 명장 도서관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2007년 12월 디딤돌 회장 강순임
봄의 꽃망울
임인숙
추운 겨울을 견디려고 꼅꼅이 쌓아 둔 옷
한겹 한겹 벗을때마다
새로움이 앞을 가로 막아서
눈 앞의 시야가 다른 길인가 멈칫
눈을 다시 감았다 뜨면
하얗게 가로막던 연기는 사라지고
옛날의 놀던 그길이 변하지 않았건만
한발짝 옮기려는 내 발은 무겁기만 하다.
추운 겨울을 견디려고 겹겹이 쌓아둔 옷
하나 씩 하나씩 벗어버리고
햇빛의 따스함을 감사하고
살랑살랑 불어주는 바람도 감사하고
가끔씩 내려주는 빗물에 감사하면서
오는 가을에 맞을 훌륭한 열매를 위해서
무섭지만 꽃망울을 터트려 보렵니다.
첫 번째 꽃망울을 터뜨리고 나면
새로운 힘과 용기를 더 많이 만들수 있는 힘을 주시겠죠.
부디 건강하고 훌륭한 열매들을 맺을수 있도록
하느님께 감사하고 기도합니다.
나에겐 나보다 소중한 별들이 있다.
임인숙
나에겐 나보다 더 소중한 별들이 있다.
반짝반짝 빛나주기를 바라며
때로는 해가되고 때로는 달이되어
나의 혼신의 힘을 다해서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며
하늘이 있기에 감사하며
해가 될수 있어 달이 될수 있어 감사하며
별들이 마음껏 반짝일수있도록
하늘에 먹구름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며
엄마별 아빠별보다 크게 자란 별들
이제 스스로 빛나주기를 바라며
살며시 내려 앉으려니
엄마별도 함께 빛나기를 바라며
예쁜손 내밀어준다.
혁명적인 부의 주체는 나!
(‘부의 미래’를 읽고)
이형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보다 더 많은 부를 가지기를 원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궁금해가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나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에 포함된다. 그래서 ‘부의 미래‘ 라는 이 책의 제목은 나의 관심을 끌었다. 650여 페이지의 두꺼운 책이었지만 지루하지 않은 내용들과 충실한 논거자료를 바탕으로 탄탄하게 전개된 문장들로, 미래학하면 아주 난해하면서도 형이상학적인면이 부각되기 쉬운데, 우리에게 친숙한 예시들로 미래를 예측하게 하고 있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미래쇼크와 제 3의 물결에 이어서 세계적인 미래 학자로 평가받는 앨빈 토플러의 최신작 ‘부의 미래’또한 사회전반에 대한 폭넓은 통찰과 긴 시간동안 관찰한 결과를 통한 성과물로 일반인을 비롯한 우리나라 정치·경제인들에게 제3의 물결만큼의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생각이 든다.
평범한 주부인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낡은 지식(무용지식)과 안일한 생활태도를 가진 나 자신을 확인하게 되면서 미래가 두렵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앨빈 토플러의 일련의 집필내용으로 세계의 많은 나라가 영향을 받고 움직인다고 생각하니,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현실에 대해 되짚어 볼 필요성을 품게 되며, 이 책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안내는 받을 수 있겠지만 맹목적인 지지에 대한 경계심도 필요할 것이다.
부의 미래의 원제는 Revolutionary Wealth 이다. 지금까지 부라는 것이 조성되고 분배되고 이동하는 방식이 미래에는 급격하게 변하게 된다는 의미로써, 혁명적인 부라는 뜻이다
이런 혁명적인 부가 창출되고 미래에는 과거와는 다른 요소들이 핵심요소로서 심층기반을 형성하게 되는데, 그 요소들은 바로 시간. 공간. 지식이다.
기존의 가치창출의 구성요소는 자본. 토지. 노동과 같은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며 정량화가 가능한 요소들이었으며 그것들의 상호작용에는 한계가 있으며 선점하는 가치가 크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그러한 요소를 공유하지 못했다. 하지만 미래의 부는 내가 가진 부가 다른 사람의 부가 될 수 있으며 무한한 가치로 재생산이 가능한 것이다.
먼저, 심층기반 중 시간에 대해 앨빈 토플러는 시간의 가치창조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들 즉 비동시화효과들을 사회조직별로 구분하고 있다. 가장 빨리 변화하는 기관으로 기업이나 사업체 그 다음으로 시민 단체와 가족 등이 포함되며 이러한 조직들과 달리 시대의 흐름을 쫓지 못하는 관료조직이나 법, 교육 같은 분야를 들고 있다. 이러한 비동시화 현상을 제거하지 못하면 우리는 시간에 대해 세금을 내는 것과 같은 비경제적인 현상을 겪게 된다. 시간을 컨트롤하고 동시화를 저해하는 조직을 정비함으로 해서 우리는 미래의 부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심층기반 중 공간에 대해 이해한다. 유사 이래 부의 이동은 아시아에서 유럽, 유럽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다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러한 공간이동은 농업혁명, 산업혁명, 세계대전 등과 같은 역사적 사건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의 적합성 등의 의미도 있지만 우리가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곳 즉 우주라는 공간에서 창출되는 부를 이용하게 되며 일부는 이미 실현단계에 들어서있다.
마지막으로 지식이다.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도 지식이 부와 권력의 핵심요소로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식은 비경쟁적이며 저장이 용이하고 확장성이 강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지식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재화이지만 무용지식을 가려내고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식에서 진실을 가려내는 안목을 키워야 하며, 이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과학은 진실을 가려내는 도구로 그 중요성을 더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간. 공간. 지식의 심층기반 변화와 더불어 프로슈밍에 의해 미래의 부는 변화하게 될 것이다. 생산(Produce)과 소비(Consume)의 합성어인 프로슈머는 자신의 사용이나 만족을 위해 제품, 서비스 또는 경험을 생산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들은 비노동 시간을 할애해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프로슈머의 활동에 의해 부를 창출하고 있으며 개별화 및 자가생산구조는 미래에 더욱 확대될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미래가 결코 어둡지 않고 우리 젊은 세대들이 개척할 분야가 넘쳐날 정도로 많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 동감하며 지식 사회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과 긍정적인 사고를 하며 미래를 대비해 보겠다.
새의 선물을 읽고
이선임
여섯 살에 엄마를 잃고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주인공 진희는 11살에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다.
진희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70년대의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과 별반 다르지가 않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진희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겨 버렸다.
진희가 살고 있는 감나무집은 어릴때 우리가 살던 집과 별반 다를바가 없다.
우물가를 중심으로 살림집 두채와 가겟집 한채로 되어있는데,
살림집 한 채에 할머니와 이모 , 삼촌 그리고 주인공 진희가 살고 있으며, 다른 살림집 한 채에는 장군이네가 세를 들고 있으며, 장군이네에 이선생과 최선생이 하숙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가겟집에는 광진테라. 뉴스타일 양장점, 우리미장원 그리고 문화 사진관이 세들어있다.
여섯 살에 아이를 기둥에 메어놓고 목을 매어버린 엄마이야기를 들으면서 진희는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나와 보는 나로 분리하여 일찍 세상살아가는 법을 터득하여버린 똑똑한 아이다.
진희의 눈을 통하여 보여지는 세상의 사람들은 하찮은 보통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을 통하여 진희는 삶을 하나 둘 통찰하는 법을 배운다.
진희의 이모는 진희와 제일 가까운 사람이다.
진희보다 나이는 많지만 아직 철이 덜 들어서 할머니의 눈에 어설퍼 보인다.
애인에게 잘보이기 위해 쌍꺼풀 수술을 했지만, 수술의 상처 때문에 친구인 경자를 군대에 있는 남자 친구 면회를 보낸뒤 친구에게 애인을 뺏겨버리는 어설픈 인물이다.
머릿속에 든것은 없어도 그런대로 예쁜 외모로 쉽게 남자를 가까이 하며 너무 가볍게 인생을 살아가는 요즘 젊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인물이다.
아래채에 세들어 사는 장군이 엄마는 군인이었던 남편이 자신의 실수로 목숨을 잃자 유복자인 장군이를 키우며 일수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남의 이야기 하기 좋아하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속물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광진테라의 재성이 엄마는 남편인 인간 박 광진이가 밖으로 돌면서 허세를 부려도 자신의 세계를 떠나지 못하는 착하고 순해빠진 여자이다.
진희는 재성이 엄마가 밤에 재성이 아빠의 횡포에 못견뎌 울음소리가 들릴때마다 재성이 엄마가 떠나서 새로운 세상를 개척하기를 바라지만 한번 마음을 준 남편을 떠나지 못하는 재성이 엄마가 답답하기만 하다.
염소가 풀을 뜯는 언덕에서 하모니카 부는 청년으로 삼촌의 친구인 허석을 마음에 두고 은근히 좋아하게 됐지만 허석은 도시에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만 좇아가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친구인 경자에게 뺃기고 허석을 좋아하게 된 이모는 순정파이지만 허석은 자기식대로 이모를 좋아하다가 임신을 시키고는 이모를 팽개치고 떠나가 버린다.
비누 공장의 화재로 빨갱이의 아내인 정여사를 구하다 숨진 이선생은 이런 얘기를 했었다.
숲속에 마른 열매 하나가 떨어졌다. 나무 밑에 있던 여우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멀리서 호랑이가 그 여우를 보았다. 꾀보 여우가 저렇게 다급하게 뛸 때는 분명 굉장한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도 뛰기 시작했다. 호랑이의 뛰는 모습을 본 숲속 동물들이 보았다. 산중호걸인 호랑이가 저렇게 도망을 칠 정도면 굉장한 천재지변이거나 외계인의 출현이다. 그래서 숲속의 모든 동물이 다 뛰었다. 온 숲이 다 뒤집혀졌고 숲은 생긴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삶도 그런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세월은 한참 흘렀지만 지금도 다를 바가 없다. 여전히 세계 어느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아이들은 선생님에게서 위선과 악의를 배워가며 이 형렬들은 군대에서 애인을 구하고 뉴 스타일 양장점의 계는 깨졌다가 다시 시작되며
신분상승를 위한 미스리의 교태가 반복되는 한편에서 광진테라 아줌마는 둘째아이를 가짐으로써 뒤웅박 팔자속에 구덩이를 판다. 정여사의 남편들은 아직도 감옥에 있으며 유지공장의 불 같은 뜻밖의 재난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떼죽음으로 몰아가고 그 사고는 이내 잊혀진 뒤 반복되며 사고가 잊혀진 뒤까지도 그때 대동병원이 번 돈처럼 돈들은 증식을 계속한다.
지금 40대 후반에 접어든 나를 진희의 눈에는 어떻게 보여질까?
작은 이익을 쫒기위해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속물로 보이지는 않은지?
남보다 편안하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가까운 사람을 무시하거나 피해를 입힌적은 없는지?
내 아이를 위해 남의 아이에게 피해주는 말을 한적은 없는지?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나의 삶은 진실되고 상대방에게 믿음을 주는 삶을 살리라.
그 여자!
-강순임-
그 여자는 요즘 자주 이런 말을 합니다.
‘내 나이가 몇인데.’ ‘50이 다된 이 나이에 주책 맞게.’
‘아이들을 보면 자기가 어디까지 와있는지 몰라?’
그래서 가끔은 이런 핀잔도 듣습니다.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라고.......
어느 날 그 여자는 미장원에서 잡지를 보다가 기가 막힌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어느 시인이 쓴 에세이에서 발췌한 글이었습니다.
그 시인은 이십대에 입버릇처럼 내 나이가 사십이 되면 스스로 죽을 거라고.
그 끔직한 사십이라는 나이를 어떻게 감당하면서 사냐고 넋두리를 했답니다.
그런데 그 시인은 이미 사십하고도 중반의 나이에 젊은 시절 그녀의 넋두리를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으로부터 어떻게 아직도 살아있냐는 말을 듣고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젊은 시절 그리도 끔찍해했던 사십을 훌쩍 넘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이를 먹는 건 인간이 자연에 속한 한 생물체로 살아가고 소멸하는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일 뿐이라는 게 그 여자의 평소의 지론이었지요. 그런데 요즘 들어 그 여자는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대한 감정의 변화를 겪으며 혼란스러워 하고 있답니다.
눈만 감으면 아직도 이십대의 그 자신감이 교만할 만큼 충만 한데 눈앞의 현실이 그 여자는 가끔 두렵습니다. 자신감이 점점 없어진다는 것. 때로는 아이들과 남편의 등 뒤에 숨고 싶은 자신을 발견할 때면 그 여자는 이렇게 도리질을 해봅니다. ‘이건 내가 아니야!’ ‘내가 왜?’
자주 깜박깜박 잊어버립니다. 가끔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TV드라마나 소설을 읽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기도 합니다.
전엔 이런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에게 시간 많아서 좋겠다고 부러움처럼 비웃곤 했답니다.
시간 있으면 감정 낭비하지 말고 나를 위해서 공부를 하든지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를 해보라고 말해주곤 했답니다.
그런데 요즘 그 여자를 보면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격입니다.
가끔 본인도 내가 조울증이 아닐까 의심이 들만큼 감정 변화의 폭을 감당하기조차 힘들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 조근조근 말로 잘 타이르던 아이들에게도 불같이 화를 내어서 아이들을 당황하게하기도하고 까닭 없이 남편에게 뾰로통해지기도 하고요.
그야말로 감정 낭비라고 밖에 할 수 없을 만큼 사소한 일들을 자주 저지르고 사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들이 갱년기 여성들이 겪게 되는 흔한 증상들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그 여자는 가끔 허무하고 혼란스럽습니다. 나는 잘 알고 있기에 슬기롭게 잘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나도 별 수 없다는 생각에 그 여자는 더 실망스럽습니다.
정말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일 뿐이라고 혼자서 위로해보기도 합니다만 잠깐의 위안 일 뿐이지요.
하지만 나로 인해서 내 주변의 사람들까지 힘들어 질까봐 그 여자는 혼자서 이겨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 여자는 지금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무엇이 나의 빈 한 곳을 채워 줄 수 있을까 하고.
평소처럼 책도 읽고 읽은 책으로 수다도 열심히 떨고 싶은데 요즘은 그것도 여의치 않습니다.
시간도 그렇지만 전처럼 쉽게 책에 집중이 안 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도 다시 읽어보고 읽다만 책들도 다시 꺼내보고 가벼운 소설로도 눈을 돌려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혼자 결심 했습니다.
일요일 남편의 나들이 요청을 거절하지 말자고.
눈이 부신 5월 입니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그 여자는 햇살 쏟아지는 한낮의 거리를 가슴을 활짝 펴고 걸어갑니다.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퇴근을 합니다.
양산도 펴지 않은 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고
김영숙
미국의 신경학 전문의인 올리버 색스는 “나는 인간이 어떤 부분을 상실하거나 손상당한 상태에서 그것을 이겨내고 새롭게 적응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며 우리에게 아라비안나이트를 들려주듯 이야기를 해준다. 흥미롭고 기이하기 까지 한 일들을 잘 짜인 문장으로 가슴 아프게도 하고 따스한 감정을 느끼게도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한다.
24편, 하나하나의 이야기 마다 병에 걸려 그것을 이겨내고 극복하려는 사람의 의지와 자발적인 노력 그리고 그들을 돕는 순수한 열정의 의사 선생님--환자의 병력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의사의 따뜻한 배려가 눈에 보이듯 손에 잡힐 듯이 말한다. 자못 어렵고 복잡하고 힘든 이야기를 명쾌하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모두 4부로 이루어져있다.
1부; 상실 편에서는 신경기능의 장애나 불능으로 인한 결손으로 인해 시각이나 기억(시간),고유감각(제육감; 자기 자신을 자신으로 인식하는 감각),언어를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특히 책 제목의 남자 P씨는 말 그대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다. 바로 그대로 평생 같이 살아온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여 아내의 머리를 잡고서 자기 머리에 쓰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끔찍한 일임에 분명하지만 그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P씨는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병에 걸린 것이다. 시각을 사용할 수 없는 P씨는 음악을 의지해 살아간다.
2부; 과잉 편에서는 뇌 기능의 과잉, 잉여로 인하여 뇌정신이 고양된 상태나 과도하게 활발한 상태가 되어 기묘한 동작이나 행동을 지나치게 반복하여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익살꾼 틱 레이>투렛증후군을 앓고 있는 레이는 끊임없는 틱 증상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결혼생활 까지 위기에 쳐했다. 거침없는 욕설과 신경과민으로 사회생활을 이어나가기 어렵게 된 것이다. 위안이 있다면 틱 증상으로 인해 기민해진 운동신경과 예민함으로 즉흥적인 드럼연주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치료를 함으로써 성실하고 분별력 있고 반듯한 사람이 되었지만 치료의 부작용으로 그의 생계 수단인 음악적 영감, 즉흥성을 잃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5일은 치료약을 투여하고 주말 동안은 약을 투여하지 않음으로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며 살아가고 있다.
3부; 이행 편에서는 회상 즉 관자엽과 변연계에 특이한 자극을 가한 결과로 사람의 과거로 이행시키는 병에 걸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회상>에 C부인은 뇌경색으로 인해 누군가가 라디오를 틀어놓은 것처럼 수시로 음악이 들려온다. 다른 사람과 대화중이거나 잠자려고 할 때나 아무 때나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미칠 지경이다. C부인과 달리 뇌종양에 걸린 19세 소녀 바가완디는 어릴 적 기억 속으로 들어가 마냥 행복한 표정으로 죽음을 맞는다.
4부; 단순함의 세계에서는 어떤 뇌 장애로 인하여 구체성에 사로 잡혀 세세한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저능아, 자폐아로 인정받지만 그들의 놀라운 능력들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쌍둥이 형제>는 당시 백치천재로 세상에 알려진 존과 마이클형제의 수학적 재능을 알아주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그리고 사물이 갖는 상징성과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것을 잡아내어 그림으로 그리는 19세 자폐아 호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렇게 여러 이야기길 들려주는 올리버 색스는 자신의 기이함을 드러내는 것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건망증, 약간의 틱 증세, <스타트랙>에 대한 괴짜 같은 열정, 아침과 점심은 시리얼과 바나나, 저녁은 밥과 생선만을 먹는 엄격한 식습관, 가끔씩 음악회에 가서 무대를 등지고 앉아 글 쓰는 것을 즐기고, 그의 환자였으며 지금은 친구가 된 이들이 그려준 그림들이 언제나 벽면에 가득 메운 집에서 살고 있다한다.
조금 특이하다면 다 한번 씩 다시 쳐다보고, 나와 다른 사람들과는 배타적인 관계를 짓고 사는 우리들에게 이들의 이야기가 호기심을 채우는 일에만 쓰일까 우려한다
둘째 낳던 날
이형주
첫째 아이를 힘들었지만 정상 분만한 나는 욕심을 내어 둘째는 인권분만을 하는 곳을 찾아 산전 진찰을 받으면서 출산을 기다렸다.
남편은 본인이 태아의 탯줄을 자르고 분만 전 과정을 동참하는 것에 대해 설레임과 두려운 감정을 내비쳤다.
주위에선 안전하게 산부인과 병원에서 출산하기를 권했지만 ,병원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나는 정상 분만을 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인권분만으로 아기를 출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느릿한 내 성격을 닮았는지 둘째아이는 출산예정일을 일주일이나 넘기고도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너무 커지면 정상 분만이 힘들어질 수 있다면서 일주일째가 되던 날 아침에 출산준비를 해서 조산소로 향했다. 환한 웃음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며 조산사는 예감이 좋지 않다면서 내진을 했고, 아직 태아가 골반내로 하강을 하지도 않고 골반도 확장되지 않아 조산소에서 정상 분만을 시도하다가 수술을 할 경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면서 미리 병원으로 가서 분만을 하도록 요청했다.
조산소에는 어젯밤에 분만한 산모와 친정어머니께서 아기와 함께 도란도란 지내고 있는 모습은 내가 원했던 그 모습 이였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건 욕심이었다. 인권 분만을 한 그 산모는 무척 만족스러워 했고 남편도 평생 잊지 못할 큰 추억이 되었고 아내와 함께 출산을 도왔다는 것에 뿌듯해 하고 있다고 했다.
출산을 위해 병원을 알아보고 차로 이동하면서 남편과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병원에 도착하여 나머지 검사를 한 후 나는 분만준비실로 들어가서 분만을 위한 준비를 했다. 분만 촉진제를 맞고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잠시 후에 만날 아기를 생각하니 또 다른 힘이 생겼다.
병상마다 출산을 코앞에 둔 산모들이 온갖 자세로 진통을 참아내고 있었다.
함께 아이를 만든 남편들은 분만실 문 밖에서 대책 없이 기다리기만 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았다.
난무하는 비명소리, 울음소리, 원망의 소리들...
나도 진통이 시작되고 있었다. 태아도 많이 힘들어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나의 고통은 나만의 고통이 아니었다.
나보다 조금 더 빨리 진통이 규칙적인 산모가 있는지 의사와 간호사들이 무척 바쁘게 움직였다.
나도 이들과 함께 분만에 동참하고 있음을 피부 깊숙이 느낄 수 있었다.
둘째아이 출산하기 위해 아침 일찍 친정에 맡겨두고 온 네 살짜리 아들 녀석도 생각나고, 분만실 문밖에서 우왕좌왕하고만 있을 남편도 걱정되고, 딸자식 병원에 보낸 후에 애가 타실 친정 부모님 생각도 나고, 손주녀석 보실 생각에 일이 손에 안잡히실 시댁부모님도 생각이 났다. 그 중에서도 지금 문밖에서 나만 생각하고 있을 남편이 제일 걱정이 되었다.
간호사에게 남편과 면담을 요청했더니 점심도 거르고 아무것도 못 먹었는지 입술은 말라있고 긴장된 남편은 단숨에 나에게로 달려 들어왔다.
조금만 더 힘내라고 하면서 곁에 있어주지 못해 더 미안하다고 했다.
잠시간의 면회 후 남편은 다시 분만실 문 밖으로 나갔다.
나 혼자 천장을 쳐다보면서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를 힘겹게 버티고 있을 때 쯤 진통은 계속 길어지고 자궁문도 완전히 열렸는데 골반이 더 이상 확장하지 않아서 태아머리가 걸려 있고, 태아는 힘들어 태변을 먹었다며 의사와 간호사들이 번갈아 나의 복부 위로 올라가서 태아를 밀고, 나도 힘을 있는 것 주어보았지만 힘들었다. 나 또한 너무 큰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분만은 여전히 힘들었다.
의사는 태아의 상태가 위험할 수 있다면서 응급수술을 제안했고 남편과 면담 후 나는 분만실이 아닌 수술실로 이동했다.
수술실로 이동하면서 잠시 볼 수 있었던 남편 얼굴, 참았던 울음이 터뜨려져 버렸다.
나에게 남편은 내 자신 이상의 무엇이다.
그 때 남편의 심정을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저려온다.
응급으로 수술실에 옮겨진 나는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눈물이 닦여진 기억이 나면서 그렇게 한참을 잠들어 있었나 보다.
희미한 의식으로 눈을 힘겹게 떴을 때는 회복실이었다.
간호사를 간신히 불러보았다. 옆에 있던 산모가 간호사를 불러주었다.
간호사는 아기는 괜찮다고 했다. 남편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다급히 들어오는 해쓱한 남편을 보면서 고마움과 미안함 많은 감정들로 인해 또 울음보가 터졌다.
눈물을 닦아주면서 이제는 다 잘 될 거라고, 아기도 건강하고, 당신만 몸 추스르면 된다고 나에게 힘을 주었다.
몇 시간 동안 병원 복도를 우왕좌왕 했을 남편이 이렇게 나의 든든한 보호자이다.
남편도 속으로 많이 울었을 것이다. 참으로 여린 사람인데...
회복이 된 후 병실로 올라왔다.
아이는 여자 혼자 낳는다고?
분만실 문 밖에서 대책 없이 기다리기만 할 뿐 출산에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는 그의 마음은 누가 알아줄까!
초음파상으로만 보면 태아를 눈앞에서 확인하고 신생아실로 보낸 후에도 수술실에서 나오지 않는 아내를 기다리는 수술실 앞의 탈진한 그의 마음을 누가 알까!
나는 안다. 조금 안다. 이제야 조금 안다.
고맙다는 말로 밖에 할 수 없음에 목이 메인다.
당신, 고마워요!
지금 벌써 7개월인 딸 아이는 소파를 잡고 일어서고, 오빠, 아빠, 엄마를 보면서 방긋방긋 웃는다.
여전히 육아의 절반 이상은 남편이 책임지고 있다.
항상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
사랑하는 남편에게 조금 더 육아의 책임을 지우려고 한다. 셋째아이도 준비해야지...
나는 내 자녀들에게 물려줄 재산은 형제라고 생각한다.
형제라는 끈으로 서로를 엮어주는 것.
이것이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지만, 그런 경험이 앞으로 힘든 사회생활을 할 때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형제란 보이지 않는 커다란 재산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아이들이 나와 나의 가족만 소중히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 역시 배려하며 나누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남한 산성을 읽고
조윤주
저, 이거 샀거든요.”
영숙씨가 책 한 권을 건냈다. 책표지가 꽃분홍 한지 느낌의 겉면 위에 연두빛 풀 한포기가 아무렇게나 뻗어 있다. 풀 끝에는 막 돋아나는 젖니 같은 작은 흰꽃이 몇 개 달려있지만 무슨 꽃인지 가름 할 수는 없다. 시집처럼 예쁜 이 책 위에 오른쪽으로 기울여 검은 글씨체의 책제목이 있다.
남한산성...
그 아래 김훈의 장편소설이라고 조그맣게 찍혀있다. 영숙씨가 중언부언 없이 책을 건낸 이유를 알겠다.
짧지만 깊은 문장, 툭툭 던지는 말투의 깊은 울림. 섬세한 묘사.....김훈의 글맛을 좋아하는 우리는 이미 김훈의 열혈 독자들 아닌가.
이 책은 병자호란 당시 1636년 12월 14일에서 1637년 2월 2일까지 47일간의 피난 과정을 그린 역사 소설이다. 당시 남한산성으로 피난한 인조가 청의 대군에 포위된 채 보낸 날들 속에 조국의 운명 앞에 주전파와 주화파의 말들과 민초들의 고통을 그리고 있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
책머리에 있는 작가의 말처럼 누구도 두둔하지 않지만 그가 언어로 조절한 뷰파인더엔 풍전등화의 당시의 조선 현실이 생생하게 얹혀 고통스런 낱낱을 드러낸다.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삶의 영원성이 더 가치있다고 주장한 주화파 최명길,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도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고집한 척화파 김상헌, 그 둘 사이에서 번민을 거듭하며 결단을 미루는 임금 인조. 산성의 방어를 책임진 수어사 이시백 등 그들의 말이나 내면을 읽을 때 약소한 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가 한없이 가여웠다. 또 자신의 생활터전을 떠나지 못하고 나라를 믿지 못하면서도 나라의 요구에 응하면서 견디고 있는 당시의 백성들이 6.25 때 좌우이념의 갈등 속에 전쟁의 피해만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작가 최민식의 사진 속 인물을 보는 듯 가슴아팠다.
371년 전의 남한산성 속의 말들이 지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아서 명분과 실리를 놓고 강대국 사이에서
그 때처럼 말들이 난무하는 지금 더 많은 개방을 요구하는 강대국의 세계악에 또 힘없은 우리나라의 위정자들은 ‘약한자가 희생되어 강한자를 살리는 것으로 나라를 살립시다’
하는 것만 같아 두렵기만 하다.
가까운날 남한산성은 못 가봐도 금정산성에라도 올라 이 땅의 돌과 풀뿌리를 쓰다듬다가 와야겠다.
영광도서 독서토론회를 다녀와서
조윤주
서면 영광도서에서 주최하는 영광독서 토론회에 이번 달 지정 도서가 김훈의 '남한산성'이다.
김훈이 그 곳에 온다니 만사 일을 제껴 놓고 달려갔다. 일찍가서 필요한 책도 사고 김훈을 잘 볼 수 있는 앞좌석에 가서 기다렸다.
사회토론은 문학평론가이며 부산대 교수인 김용규교수가 지정토론은 김경연 (문학평론가)부경대 교수가 맡았다. 김훈이 소개되고 자리에 앉자 여기 저기서 카메라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10대 후반에서 70대 노인까지 복도까지 사람들로 꽉 메워졌다. 김훈의 독자층이 뚜껍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책에서 본 사진에는 하나 같이 라운드 티셔츠에 체크무늬 남방을 덧입은 모습이었는데 넥타이까지 맨 정장차림이어서 뜻밖이었다. 상의는 오자마자 벗어 의자에 걸었다. 지정토론자는 김훈의 칼의 노래이후 역사소설과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 등 역사드라마의 유행에 대한 김훈의 생각을 물었다. 김훈은 그런 현상을 자신이 책임져야 할 필요가 없다는 말로 특유의 유머로 받았다.
사회토론자는 김훈의 남한산성 집필 동기를 묻는 것으로 시작했다.
김훈은 대답으로 자신은 세계와 인간에 대해 희망을 말하고 싶은 데 그 희망은이데올로기나 이념적인 담론이 아니라 일상의 구체성 속에서 그 희망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했다. 즉 고립무원의 성에서 삶의 정통성과 경건성을 펴면서 정신적 존재를 믿는 것이나 적의 노예로 적의 속국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자며 현실적인 가치를 믿는 것이나 모두 옳으며 개별적인 인간성을 인정하고 싶었다고 한다. 전체의 일부분로써, 공동체로써의 인간보다는 개별적인 인간의 특성과 선택에 대한 긍정. 이것이 김훈 문학의 공통점이 아닐까 한다.
지정토론자는 또 김훈의 작품에서 민중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했다. 역사 발전의 추동력은 민중, 즉 민초들의 힘인데 남한산성에서의 뱃사공이나 서날쇠, 정명수 등은 너무 이데올로기에 벗어난 현실인식이 없는 민중들로 그려진 것이 아닌가? 이 질문에 김훈은 인조에게 성문을 나가라고 하는 군사들이 목숨을 바치라고 하는 나라에 자기 목숨을 요구하는 것에 회의를 보이고 반기를 들줄아는 민중의 모습이 자유인의 모습이라고 하자. 사회자는 작가한테 알고 있어도 말을 안 하면 모르기 때문에 토론회에서는 그것을 끄집어 내는 것이라 하여 또 한번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밖에도 독자의 질문에서 정치외교학과 학생이라고 소개한 한 독자는 현대사 중에서 독립운동사에 대해 알아보니 자료가 미비하다고 김훈에게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대한 소설을 써 주길 부탁했다.
이에, 김훈은 확실한 대답은 안 했지만 김구의 부하였던 아버지 얘기를 했다. 그리고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로서의 완성된 인간이었다는 얘기를 하는데 비감한 느낌이 들어서 만약 김훈이 쓴다면 이순신 못지않은 개인의 내면을 보여주는 안중근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다음 작품은 고대나 중세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태어난 이승만시대와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하니 다음 작품이 또 기대되었다.
그리고 어디서나 빠지지 않는 질문이 김훈의 문체에 대한 질문이었다. 김훈은 우리말은 조사를 읽는 것이라고 했다. '꽃이 피었다'와 '꽃은 피었다'는 하늘과 땅 차이란다. 꽃이 피었다는 사실이지만 꽃은 피었다 에는 의견이 들어간 말이라는 것이다. 꽃도 피었다.고 해버리면 문맥이 엉뚱해져 버린다고...
또 어떤 독자가 왜 기자 생활을 접고 소설을 써는가 질문했는데 육하원칙의 글을 쓰면서 이것이 인간의 진실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은 직업적 딜레마에 빠져서 떠나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쉽지 않았을 김훈의 그런 용단이 있었기에 우리 독자들은 그의 주옥같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김훈의 글에서는 노인의 아름다움이 없는가 하는 질문에 자신은 젊음을 부러워 하지 않는 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철없고, 계통없고, 들뜨는 젊음. ..자신이 그 시절을 지난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단다. 병장이 신병을 보면 한심하고 어떻게 저 시절을 견딜까 걱정되듯이...
토론회가 끝나고 추첨을 했다. 한 열번 째쯤 순임씨가 당첨되어 기뻤다. 난 기대없이 3년전 시청에서 부산일보가 주체한 독자와의 만남에서 처럼 추천 기다리다가 김훈 싸인 받을 기회마저 놓칠까봐 싸인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번호를 불렀다. 마지막 3권 남았을 때였다.
우째 이런 일이~~~
너무 기뻤다. 형주씨는 독서 상품권이 당선되어 우리 세 사람 모두 운이 좋았다. 그리고 줄서 있다가 싸인도 받았다. 가져간 영숙씨 책에도 싸인을 받아오고...
그리고 평소에는 만나기 힘든 영광도서 대표, 김윤환씨와 동참한 순임씨와 함께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오늘 토론회 들은 것 필기해 온 수첩 메모 정리 마무리 하여 이것으로 2007년 6월 27일 남한산성 독서토론회 참석 후기를 마친다.
경주를 다녀와서
장주연
비가 조금씩 내리는 여름날이었습니다. 비야 오든 말든 떠나기로 마음먹었던 우리는 동래 역(지하철이 아닌 기차역)에 모였답니다. 동래 역! 시골역도 아닌데 자그마하고 한산한 게 그날의 여행 콘셉트와 딱 맞아 떨어지는 예쁜 역입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예쁜 역은 우리의 설렘을 한껏 돋워주었지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기차를 기다렸습니다. 평일이라 텅 비었으리라 예상했던 기찻 간. 제법 사람들이 탑니다. 그래도 우리가 앉을 자리는 무지하게 많았는데, 꼭 끼여 앉았답니다. 엉덩이가 아프도록.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아줌마들의 수다에 대해 오해를 하곤 하지요. 영양가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줌마들의 수다야말로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자양분이자, 가정을 튼튼히 지켜주는 버팀목이지요. 언제나 그렇듯이 기찻 간, 우리들의 수다는 끝이 없었습니다.
어느덧 기차가 멈추고 목적지에서 내렸습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경주! 사실 꼭 경주여야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저 함께 떠나고 싶었던 거지요. 마음 맞는 지인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일상에서의 벗어남이라기보다 일상을 풍부하게 해 줄 따뜻함입니다.
기차에서 내렸더니 배가 고프네요. 우리는 시장을 찾았습니다. 아이들 마냥 떡뽁이, 김밥, 순대, 파전을 먹으며 너무나 행복해했지요. 볼 곳이 많은 경주라 어디로 갈꺼나, 망설일 법도 한데. 어느 누구의 이의 없이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방대한 본관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별관(미술관)으로 먼저 갔지요. 시도 때도 없이 발동하는 불타는 향학열로 별관에서 너무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 버렸답니다. 지친 우리는 본관을 뒤로 하고 휴게실에서 피로한 몸을 달래야 했지요. 이 곳 박물관에서만 시간을 보내기에 우리의 열정은 넘치고 시간은 부족하고... 본관 관람은 다음을 기약해야 했습니다.
박물관에서 분황사로!
걸어가는 내내 우리는 참 행복했습니다. 예쁘게 핀 꽃들의 이름을 가르쳐 주는 분이 있어서 행복했고,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분이 있어서 행복했고, 몰랐지만 이 모든 것을 함께 느끼려 애쓴 분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소박한 자태를 뽐내는 분황사에서, 우리는 행복한 마음 그대로 서로에게 감동했습니다.
경주를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아쉽지만, 받아들여야 하지요. 우리들의 여행은 돌아올 것을 약속한 떠남이었으니까요. 그래요. 돌아올 곳이 있기에 우리의 떠남이 스산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또 다른 행복한 떠남을 기대하며 경주 여행을 기억한답니다
도쿄타워를 읽고
이은희
요즘은 제가 거짓말쟁이가 되어갑니다
정말 오랫만에 카페에 들어와서는 열심히 살아가는 흔적들을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봤습니다
잠시간의 기간이었던 것 같은데 너무도 많은 사연들 앞에.......
나도 너무 힘든 시기였구나!
병원과의 힘겨운 씨름이후 처참한 패배와 가족과의 갈등으로 여러 갈래로 찢기는 삶을 살아 온 것 같은...
릴리프랭키라는 나와는 비슷한 연배의 일본작가의 도쿄타워를 보면서
정서적으로 참 비슷하단 생각을 하게 된 건 나만의 느낌일까요
가족은 있지만 핵가족화 되어 가면서 잃어가는 주체성들
그 속에 나의 흔들리는 주체성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별로 달라지지 않은 현실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는것 같고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와도 같은
가족의 재구성을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영화도 함께 보고 싶어 컴퓨터로 다운받아 이해 못하는 일본말과 함께 그저 일본배우들만 멍하니 보았지만 책과는 참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책에서 뭔가가 빠진 것 같은 내용과 우리 문화와 일본문화의 차이를 생각하면서.....
책을 덮으면서 쓸쓸함이 남았습니다
저의 게으름을 탓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참 힘들었고 모두들 너무 보고 싶습니다
성석제의 소풍을 읽고
강순임
꽃이 지고 난 자리에 어린잎들의 연두 빛에 눈이 부십니다.
가로를 지키고 선 우직한 은행나무들은 이제 아기 손톱만한 잎을 가득 달고 한낮의 태양을 맞고 있습니다.
며칠 오다 말다 봄비가 서성이더니 오늘은 창밖의 햇살이 무척 반갑습니다.
소풍을 읽는 며칠동안 오랜만에 행복한 책읽기였습니다.
글 잘 쓰는 사람의 글을 읽어서 그랬고,
나와 같은 시대를 걸어온 작가의 추억담에 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더군다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렇게 멋있게 감동 할 수 있는 작가가 부럽기도 합니다.
어쩌다 저녁식탁에 특별한 음식이라도 차려낼라치면 몇 번씩이나 찬사를 해대는(?) 남편에게 무슨 남자가 그러냐고 맛이 좋으면 한 번만 맛있다 하면 그만이지 그걸 몇 번씩이냐 그럴게 뭐있냐고 핀잔을 주곤 했었습니다.
사람에 따라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느끼는 감동이야 다를 게 있겠습니까?
저는 올봄에 여느 해와 다른 내 몸의 변화를 느꼈습니다. 해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시절이 오면 입맛을 잃고 봄앓이를 하는 것을 연례행사로 알고 사십 몇 해를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올 봄에는 입맛을 잃기는커녕 평소보다 더 식욕이 왕성해져서 가족들도 다들 의아해 할 정도였습니다. 나로서는 정말 특별한 봄맞이를 한 셈이지요.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부터 새 학기되면 나는 몸이 아파서 학교에 결석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저의 엄마께서는 양지쪽을 다니시며 어린 쑥을 캐서 쑥떡이나 쑥버무리를 쪄 주셨습니다. 언제나 나는 그걸 먹고 기운을 차리게 되었구요.
그래서 봄이 오면 언제나 돌아가신 엄마와 함께 그때 먹었던 쑥떡 생각이 간절하답니다.
이렇듯 음식이라는 것이 단지 맛으로 기억되기보다는 그 음식과 함께한 추억으로 기억되기에 더욱 애틋하게 그리워지는 것인가 봅니다.
가끔 우연히 마주치는 거칠고 소박한 음식에 대한 감동은 작가의 소박했던 지난날의 추억 그 자체였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들의 자난 날이기도 하구요.
이 책에서 작가가 추억하는 토막들이 나의 젊은 시절의 추억 그대로 묻어있어서 잠깐씩 지금의 나를 잊고 그 시절의 내가 되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다가 아이들에게 읽어주기도 하고 혼자서 키들 키들 웃기도 하며 즐거웠습니다.
책을 다 읽고 덮으며 혼자서 또 빙그레 웃었답니다.
여러분은 어땠나요?
'산성 도예' 도자기와 차 그리고 삼대가 함께 사는 모습을 보고 와서
임인숙
7월6일 금요일 도서관 주부 독서회 모임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으니 전화가 왔다.
독서회원 영미 씨의 전화 “오늘 특별한 일이 없으면 도자기 만드는 곳에 가서 점심을 먹으면 어떻겠는가?”
도서관에 가니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모이면 출발하기로 하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회원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디쯤 오고 있는지, 함께 갈 수 있는지 확인하며 오늘 일정을 계획했다.
택시를 타고 ‘산성 도예’까지 가서 점심을 먹고 도자기를 굽는 가마도 보고 택시타고 돌아오기로 했다.
우린 두 대의 택시에 나누어 타고 산성 도예를 향해 출발을 했다.
택시를 타고 명장정수장근처를 지나기 시작할 때 빗방울이 하나씩 차창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밤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지금 비 온다 어떻게 해...... 요즘 양산 우산 겸용이라 괜찮아...... 우리 애 아빠 장마철이라 우산 준비해서 다녀야 한다며 가지고 가라고 하더니만...... 아저씨 추운데요..... 에어컨 끌까요?.... 네..... 창문 조금 열면 되겠죠?.... ”
날씨의 갑작스런 변화가 아닌 예고된 변화인데도 우리의 감정은 함께 변화하고 있었다. 변화된 감정을 금방 추스르며 차창 밖 빗방울을 감상하면서 일상생활의 대화로 돌아갔다.
구불구불 산성에 가는 길은 양쪽 소나무 가로수가 찬란하게 위엄을 세우며 지켜 주는 듯하다. 앞에 앉은 영미씨 “이 길이 지금은 이렇게 멋있고 운치가 있는데 밤에 오니 왜 그리도 멀고 힘들던지..... 왜 그럴까”한다. 한편으로는 아주 멋있는 광경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멋있는 광경이라도 또 다른 한편은 무섭고 힘들어 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 내 마음의 문제라고 한편으로 접어 두는가.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다른 생활에 열중하는가. 내 마음의 문제가 무엇인가 깊이 생각을 해야 하는가. 마음에 맞는 다른 사람과 어울려서 여행이라도 떠나는가. 혼자서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가. 이세상의 사람의 숫자만큼 해결방법도 다양할 것이다. 그래도 조금씩 다르지만 같은 부분을 생각하며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함께 어울려 다닌다.
‘산성 도예’ 도착 .
알고 보니 이름을 들어 봤던 이상문 도예가의 집이다.
비가 오는데도 우린 점심식사 보다는 주변을 구경하고 싶어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영미씨 달려가서 어머니 안녕하세요? 동이선생님은 어디계세요?
검은색 긴 원피스를 입고 우아한 자태를 하고 입구에 예쁜 여인이 서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건물에 들어서려니 입구에 키가 큰 꽃대가 올라와 있다. 마치 집을 지켜주는 새처럼 긴 부리를 내 밀고 앉아 있는 듯한 형상
“어머 이건 뭐예요?” “물 칸나입니다.”
중앙에 준비 되어진 선생님의 자리.
다양한 문양을 뽐내고 있는 다기들을 보고 있으니 도자기와 함께 도자기가 아닌 아무리 봐도 알 수 없는 특별한 것이 층층이 쌓여있다. 도대체 이건 무엇일까?
“선생님 이건 뭐예요?” “보이차입니다.”
아니 소설책에서 봤을 때 아무리 상상을 하려고 해도 안 되더니만 이렇게 생겼구나.
항상 열심히 살면서 주어진 삶에 충실하며 남의 것은 욕심내지 않고 자신의 주변을 잘 챙기는 영미씨 “선생님의 자리에 앉아서 사진 촬영을 해도 되나요?” 무례 아닌 가 남의 자리를 함부로? 하지만 “그러세요” 한다.
내 집에 오신 손님이니 내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편안하게 머물다 가소서 하는 우리의 옛 선조의 모습,
상대를 배려해서 기꺼이 내 시간과 마음을 내주는 넉넉한 마음.
도자기를 하나하나 설명을 들으며 구경하고 있으니 다음 택시가 도착했다.
먼저 점심부터 먹고 차와 도자기를 관람합시다.
미리 전화를 해서 인지 점심상을 봐 두셨다. 손님상 곁에 주인의 상이 함께 차려져 있다. 경계는 동그란 통나무 하나.
차려진 밥상을 보고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대량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조금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너무나 정성이 가득한 특별한 대접이다.
함께 밥 먹으면서 대화를 한다. 자연에서 얻어지는 음식들의 재료와 만드는 과정까지.
가운데 있던 통나무 위에 무엇인가 만족되지 않은 얼굴을 한 작은 아이가 뾰로퉁한 모습으로 올라섰다. 마치 나를 좀 봐 달라고 무언으로 얘기하듯이.
“우리 총각은 오늘 기분이 왜 안 좋을까?” 아이의 대답은 입 꼬리의 미소뿐.
곁에서 할머니와 다른 분이 지금 잠이 와서 그래요 한다.
“너무 귀엽고 예쁘다..... 우리아이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우리 지원이 같다..... 너무 귀엽다 하며 사진을 찰칵..... 보면서 예쁘지..... 아유 예쁘다.”
점심을 다 먹고 차를 한잔 하려고 도자기가 많은 곳으로 갔다. 선생님은 벌써 차를 준비하고 계셨다. 그곳엔 우리나라 전통 유병, 후에 차를 끓일 때 물병으로 쓰기도 했다는 특별하게 생긴 도자기가 있었다.
우리는 도자기의 용도를 묻고 문양을 관람하고 선생님 앞으로 모여 앉았다.
차에 대한 종류와 효능, 차와 도자기의 조화, 차의 맛과 향에 따라 다기를 다르게 사용해야 차의 맛을 높여준다는 설명을 해 주면서 손수 시범을 보이며 대접해주셨다.
녹차와 보이 차의 다른 맛과 향기. 다기의 특성과 차 맛 그리고 음미하는 즐거움.
약간 식혀진 물에 맑은 다기에 타는 녹차의 맛과 뜨거운 물에 열을 머금고 있는 진사 다기에 타는 보이 차의 맛. 가마에서 갓 나온 다기들의 세상을 향한 탄생음.
우리는 차의 향기에 취하고 그보다 가냘픈 여인의 몸에서 풍기는 강인함 속에서 오는 여인들만이 느끼는 향취를 뒤로하고 가마가 있는 곳으로 갔다.
도자기를 굽는 가마를 교과서에서 봤던 학창시절 선생님의 설명을 상상하면서......
아궁이가 있고 봉우리가 다섯 개 꽤 큰 가마라고 하겠다.
옛날의 우리 선조 도공들은 몇일 동안 계속해서 같은 온도의 불을 지펴야하는 가마 아궁이의 불꽃을 보고 도자기의 성패를 분간했다고 한다.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섬세한 관찰과 끈기를 보여준다.
지금은 세상 곳곳이 현대화를 부르며 변화를 추구하는데 우리의 옛 문화가 우리의 신념을 만들어 주는 산교육이라고 일깨워주는 것 같다.
비가 와서 멀리서 바라보는 광경은 얻을 수 없었다.
우린 오기를 잘 했다고 서로 서로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내가 참석한날 와서 정말 좋다...... 비가 와서 더 좋다..... 야외 들풀은 관찰할 수 없어도 관상용으로 심어 놓은 연의 곧게 올라온 꽃망울, 신기하게 꽃을 맺은 물 칸나, 아주 작은 장미, 그 외 다른 꽃들....... ” 이제 집으로.
“선생님 우리 콜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자주 부르는 택시 있습니까? ”
“아버님께 여쭤봐야 하는데요.”
우리 조상들의 가족 간의 위계질서.
곁에서 볼 때는 아름다운 모습이며 권장하고 승계해야 하는 전통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여성은? 그 전통이 내 모습이 될 때는 혼란이 온다. 당당하게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 하기도 힘들다.
택시를 동이 선생님의 아버님(이상문 도예가)과 같이 타고 나오는데 택시기사가 얘기를 시작했다.
택시기사의 거친 발언 “형님 나는 요즘 뉴스만 들으면 짜증이나 죽겠어요.”
정치에 관심이 있던 없던 요즘 누구나 듣는 뉴스...... 라디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우리나라를 걱정하시는 마음의 표현을 너무 강렬하게 표현하니 곁에서 듣기 민망하다.
함께 듣고 있던 도예가 선생님께서 “우리 집에 오늘 초행이지요?” 하시며 “아이들을 지도한다고 하니 하는 말인데 우리문화의 중요성을 함께 해야 하는데” 하며 화제를 돌린다. 정치적 이념과 자신의 신념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와 교육의 힘 아니 교육
정치를 위해 교육을 희생시키는 것인가. 교육을 위해 교육을 희생시키는 것인가. 정치와 교육은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관심이 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자신의 관심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정책을 위해서 교육이라는 하나의 수단으로 풀어가고 싶어 통합을 부르짓는 사람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각 분야의 독창성과 변화 발전하는 미래를 위해서 통합하는 데는 요구되어지는 것이 다르다. 무조건의 통합은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 한 가족의 통합도 세대가 다르면 추구하고자 하는 관심이 다르다.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도 이루어진다. 가족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며 어느 한세대의 희생이 없는 지혜로운 가정을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가정도 작은 사회의 한 부분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한도에서 배워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하여 마음자세는 항상 배우는 자세로 준비되어 있다.
호기심 많은 아이를 키울 때 지나치게 질문을 많이 하면 엄마가 힘들어진다고 하는데 그 많은 질문에 답변을 해주신 젊고 예쁜 선생님께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오늘 점심식사를 위해 차와 도자기 설명까지 해주시고..... 점심 맛있게 먹고 상큼하고 깨끗한 공기도 흠뻑 마시고 자연관찰도 함께 곁들여진 즐거운 하루를 만들어준 많은 분께 감사합니다.
함께 택시를 탄 형주와 주연에게 오늘 함께 할 수 있어 더욱 즐거웠다고 얘기하고 다음 주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금강산을 다녀와서
이선임
6월 8일 금요일 저녁 하루 일과를 마치고 금강산에 갈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며칠 전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옷차림은 등산복과 등산화를 신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소풍가는 아이들 마냥 설레어하며 가방이 가득할 만큼 과일과 과자 그리고 빵과 오이까지 잔뜩 챙겼다. 나중에 보니 같이 동행한 사람들은 거의 빈 가방으로 와서 요긴하게 잘 먹긴 했다. 우리는 이 먹거리들을 금강산 등산할 때도 짊어지고 가서 그곳에서 안내하는 북한 사람들에게 많이 나눠주기도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짊어지고 가서 다른 사람 줬다고 생각하면 정말 웃기는 일이지만 우리는 행복했다.
부산에서 금강산을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저녁 10시쯤 연산동 로타리에서 일행을 태운 차는 밤을 달려 금강산으로 향했다.
너무 늦게 출발해서인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술을 한잔씩 나눈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하나 둘 잠이 들었다. 비좁은 버스 안에서 불편한 잠을 잤지만 금강산을 구경할 수 있다는 인내심으로 참았다.
남편과 나는 자리를 하나씩 잡아서 잠을 잤지만 성격대로 남편은 꼿꼿하게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제대로 잠을 못 잤다고 불평을 했지만 나는 옆에다 가방을 동겨 놓고 기대서 그런대로 잘 잤다. 다음날 거뜬한 것 보니 그런대로 괜찮았던 것 같다.
새벽5시쯤 날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할 무렵 차는 진부령고개를 넘고 있었다.
굽이굽이 넘어가는 고개 옆으로 울창한 숲이 반기고 있었다.
약간의 안개가 끼어있었지만 시골의 아침은 맑고 깨끗했다. 8시간여를 달린 끝에 차는 집결지인 화진포의 현대아산 센터에 도착했다.
여기서 우리는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식당이지만 반찬이 별로였다. 시간이 없어서 서둘러 우리는 여권 비슷한 신분증을 받아들고 출입국관리소로 향했다.
출입국심사는 현대식으로 간편하게 끝났지만 휴대폰이나 칼등 쇠로 만든 것과 충전기등도 가져갈 수가 없어 우리는 관광버스 기사에게 맡겨야했다.
출국 수속을 마친 우리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북한을 들어갈 수 있는 버스는 허가를 받아서 그곳에서만 운행하는 버스가 따로 있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약500명의 관광객들이 단체로 수속을 밟고 단체로 움직였다.
그 곳에서부터는 현대아산의 관광안내원이 탑승하여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처음 가보는 휴전선이었지만 살벌함과 냉전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버스가 지나갈 때 군인들이 검문을 하긴 했는데 우리를 반기는 것 같았다.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달리지 않는 경의선 철길을 바라보며 우리는 북한으로 넘어갔다. 북한 땅을 처음 보는지라 감개가 무량했지만, 남과 북은 너무 가깝고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도 지도자들의 이념 차이일 뿐 사람들에겐 남북한 사람이 같아 보였다.
거의 10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북한의 출입국관리소에 도착하였는데 한눈에 보아도 너무 초라하였다.
남쪽은 현대식 시설을 갖춘 현대식 건물로 잘 지어져서 도착하는 순서대로 금방 수속이 끝났지만 천막으로 지어진 북한의 출입국장은 번호순서대로 줄을 서서 수동으로 진행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경제의 차이를 처음으로 실감하였다.
수속을 마친 우리는 잠시 후에 온정각에 도착하였다.
온정각에 도착한 우리는 차를 다시 갈아타고 숙소인 금강산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등산용 짐만 챙긴 채 나머지 짐은 호텔에 맡기고 기다리던 금강산 관광을 하게 되었다.
첫날은 구룡폭포로 가는 등산이었다.
외금강에 있는 구룡폭포는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형을 가진 거대한 폭포이며 아래로 옥류동 폭포 외 여러 군데에 아름다운 폭포를 많이 품고 있었다.
조그마한 셔틀버스를 타고 15분쯤 올라가니 간단한 음식을 파는 북한 식당이 있었다. 우리는 거시서부터 등산을 했다. 처음 오르는 금강산이라 신기하기만 했다.
등산초입은 우리나라의 보통산과 다를 바 없이 숲이 우거지고 주변이 너무 깨끗했다.
날씨는 지금의 부산날씨와 다를 바가 없어서 등산하기에 참 좋았다
산길을 조금 오르자 계곡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바위가 널브러진 계곡은 여태껏 본적이 없을 만큼 크고 경이로웠다.
큰 바위위로 흘러내리는 물은 남쪽에서는 볼 수 없는 맑고 깨끗한 물이었다.
화강석위로 흘러내리는 푸른 물이 신기했다.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색을 낼 수 있는지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취해있을 때 옆에서 남편은
“야! 저 소나무! 아! 저 금강송!”
경탄의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돌아보니 수백 년을 자라온 금강송이 곧게 뻗은 자태를 뽐내면서 당당하게 서있는 기품이 너무도 당당하고 경탄 스러웠다
아름다운 바위들과 붉고 푸른 금강송이 빚어내는 금강산의 비경을 상상해 보시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르는 등산길이 아름다운 경치 때문에 힘든 줄을 몰랐다.
어느 듯 우리는 옥류동 계곡에 올랐다.
맑고 거대한 폭포가 소를 이루고 있었는데 바위 위를 흐르는 물이 얼마나 깨끗하고 아름다운지 아름다운 구슬이 흘러내리는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아름답고 거대한 폭포는 사람들의 감탄소리와 폭포의 맑은 물소리가 함께 어우러져 들렸다.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서 올라오느라고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 했는 지 여기저기
서 사진을 찍느라 부산했다.
옥류동 폭포를 지나 조금 더 오르니 구룡 폭포가 나타났다.
정말 거대하고 아름다운 폭포다.
이렇게 바위로 만들어진 산에 어디서 그런 맑은 물들이 있어서 거대하고 아름다운 폭포가 만들어 지는지 감탄 그 자체였다.
금강산은 곳곳에 긴 물줄기를 뿜어내는 폭포들이 있어서 물과 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곳곳에서 비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힘든 산행에 지쳤는지 상팔담 행을 포기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포기할 수 없었다.
언제 또 금강산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또 다른 비경을 보기 위하여 상팔담으로 향했다.
옛날에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이 잇는 상팔담
못 갔으면 평생 후회할 뻔했다.
오르는 길은 너무 가팔라서 철 계단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가파른 철계단을 30분 이상 올라가니 상팔담 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상팔담은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신기했다.
8개의 거대한 폭포가 만들어내는 비경, 눈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바위산
이곳은 거대하고 웅장한 바위가 하나의 산을 이루고 있었다.
얼마나 높은지 정말 거대한 바위산 덩어리였다.
상팔담에서 내려다본 계곡은 너무 크고 아름답고 무섭기까지 했다.
바라다보는 바위산은 산이라기보다는 어떤 신령스러운 힘이 느껴졌다.
시간이 넉넉지 못하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아서 우리는 느긋하게 경치에 취해 있을수가 없었다.
내려오는 길은 어찌나 다리도 아프고 멀기도 한지, 우리가 어떻게 힘들고 먼길을 올라갔나 싶었다.
가파른 길을 올라갔다 내려오는데4시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하산해서 우리는 북한식당인 목란관에서 비빔밥과 파전을 시켜서 점심을 먹었다.
사람들은 친절했으며 음식은 조미료를 넣지 않은 깔끔하고 맛있는 찬들로 맛있었다.
4시부터는 문화회관에서 인민배우들의 교예를 관람했다.
객석은 꽉 찼다.
배우들은 완벽할 만큼 흥미로운 연기를 펼쳤다.
어릴 때부터 연습을 하면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남편은 배우들이 목숨 걸고 연기를 한다며 불쌍하다고 하자 관광 안내원이 그렇지 않단다
남한에서는 편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대접받지만, 북한은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이 더 대접받는 사회라면서 그곳에서 연기하는 배우는 조금 낮은 사람은 차관급 대우를 좀 더 어려운 연기를 하는 사람은 장관급 대우를 받는 사람이라고 했다.
저녁은 호텔 옆 북한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흑돼지 구이와 냉면을 먹었는데
돼지고기가 맛있기는 했지만 좀 질기고 냉면도 우리 쪽 냉면과는 좀 달랐다.
너무 피곤해서 저녁에는 일찍 잤다.
남편과 단둘이서 함께한 여행이었지만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피곤해서.
다음날 5시쯤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일요일은 아침에 일찍 산새소리를 들으면서 잠에서 깨었다.
창문을 열어보니 멀리 금강산이 그림처럼 둘러져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잠이 들었나 싶었다. 내가 일어난 기척이 들리자 남편도 잠에서 깨었다.
그동안 세 아이들 키우느라 우리 둘만의 자유로운 여행을 해보지 못한 우리는 모처럼 아이들에서 벗어나 몸도 마음도 자유로웠다.
저녁에는 피곤해서 호텔 밖의 아름다운 산책로를 거닐어 보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아침에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서로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 하면서 둘만의 아름답고 산뜻한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남편은 어제저녁에도 여기저기 둘러보고 호텔앞 산책로를 걷고 싶어 했지만 내가 체력이 바닥이 나서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부산에서 금강산에 가실 분은 체력부터 다져야 할 것 같다.
6시 30분부터는 호텔 식당에서 한식 부페로 식사를 했다.
일요일은 만물상에 관광을 가는 날이었다.
만물상은 800m가 넘는 높은 곳에 있어서 우리는 2/3정도는 작은 버스를 타고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만 했다. 길이 비좁아서 차가 교차를 할 수가 없어서 10대 정도 되는 셔틀버스가 줄을 지어서 1백 여섯 구비가 넘는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갔다.
만물상 가는 길옆은 아름다운 계곡이 이어져 있었으며 아름다운 금강송이 자라고 있어서 풍경이 장관이었다.
30분정도 차를 타고 올라간 뒤 우리는 등산로 초입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우리는 만물상으로 향했다. 만물상 가는 길은 너무 험해서 철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가쁜 숨을 쉬면서 철 계단을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함성이 터졌다.
야! 저기 귀면암이다. 저기 두더지처럼 생긴 바위 좀 봐!
사람들의 감탄소리가 울려 퍼진다. 가파른 낭떠러지 저쪽으로 만물상의 바위들이 펼쳐져 있었다.
어디서 저렇게 아름다운 바위들을 모아왔을까? 정말 신기하기만 했다.
우리는 힘이 들어도 망양대까지 가보기로 했다. 망양대 가는 길은 너무 험했지만 아름다운 야생화가 많이 피러 있어서 힘든 줄을 몰랐다. 산목련이 제철인지 아름답게 피어있었고, 이름을 알수 없었지만 아름다운 색을 띤 꽃들이 곳곳에서 반겨주었다. 이쪽은 귀한 산나물과 약초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고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 힘들게 올라간 망양대에서 바라다보니 동쪽 산 너머로는 고성항이 아름답게 펼쳐져있고 넓고 길다란 모래밭을 가진 해수욕장이 푸른 물과 어우러져 정말 아름다웠다.
반대쪽으로는 맑은 날만 볼 수 있다는 비로봉이 멀리로 보였다. 힘들게 올라온 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사진도 찍어주고 북한 안내원과 이야기도 하면서 금강산에서의 추억을 만들었다.
구경할 것은 너무 많았지만 시간이 모자라고 일행이 기다려서 우리는 서둘러야만 했다.
내려오는 길에서 북한 안내원이 파는 가판대에서 북한산 구기자와 잣 등 선물을 구입했다. 북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우리를 부드럽게 대했으며 친절했다.
내려와서 점심은 비빔밥과 해물파전을 시켰는데 정말 맛있었다.
이틀 동안의 여행이었지만 상상으로만 보던 북한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금강산 주변의 북한은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길 주변 민가는 다른 곳으로 옮겼고 온정각 가까운 곳에 온정리 마을이 있었는데 강둑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너무 낡고 오래되어 북한주민들의 어려움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주변의 야트막한 산들은 6.25의 상처가 너무 깊어서 인지 나무가 자라지 않는 다는 풀로 덮여 있었다. 아름다운 금강산에 비하면 주변의 다른 여건들은 너무나 열악했다.
길옆의 논에 줄지어선 전봇대는 60년대 우리나라에서 구경했을 법한 나무로 된 향수가 물씬 풍기는 풍경이었으며 넓은 벌판이 있었지만 아직도 모내기를 하지 않아서 인지 황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관광버스를 타고 다시 휴전선을 넘어왔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한으로 넘어오니 산 아래 조그만 밭에서 감자가 하얀 꽃을 피우고 있어서 우리는 반겨주었다. 남편도 모처럼 둘만의 여행이 좋았던지 이제는 시간을 내어서 가끔씩 여행을 해야겠다고 한다.
참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나는 해낼 수 있다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를 읽고)
이형주
신문과 TV를 통해 알게 된 김현근 군을 이렇게 책으로 접하니 더 친근감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김현근 군의 어머니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자식 교육에 대한 열정과 교육에 대한 철학, 자식에 대한 믿음에 나의 모습까지 돌아보게 되었다. 아직 어린 아이를 가진 엄마지만 나는 일관된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자식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지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부모로서 자세를 반성하고, 하나의 방법적 지침을 소개한 계기가 되었다.
자녀에게 꿈과 목표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이제야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지금의 나부터 하루하루의 급급한 일에 매달려 저녁을 맞이하는 일이 많아지고, 나의 꿈이 무엇인지 솔직히 논리정연하게 말하지 못하겠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내 자신에게 답답했고, 나 또한 학창시절 이렇게 열정적으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만 커졌다.
평생교육이라고 하지만, 지금의 위치에서 교육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로서도 가정일과 육아 그리고 사회생활 등을 함께해야 하는 입장에서 공부는 주가 아닌 부가 되어 또 다른 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공부도 때가 있다’고 하는 말을 실감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초,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보낸다는 단편적인 교육방법에서 특목고등학교를 거쳐 아이비리그 해외유학으로 이어지는 엘리트코스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김현근 군처럼 공부의 지존들과 겨뤄보고 싶어 하는 아이라면 최고의 교육방법을 찾아서 도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또한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첫 아이를 가지고 육아와 교육에 관한 다양한 책을 접해 본적이 있다.
우리들의 아이가 모두 김현근 군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특성과 소질에 맞는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은 부모의 큰 역할이며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현근군 처럼 최고의 엘리트교육코스를 밟는 학생도 있고 제도권 교육에서 탈피하여 대안교육을 받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제도권 밖의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나의 제도권 교육에 대한 경험이 썩 성공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들 수 있는 관심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적 교육에서의 경쟁을 내 아이에게 하게하고 싶지 않고 ,호화로운 성공의 이면에 있는 외로움보다 인간적 풍요로움을 맛보게 하고 싶은 내 욕망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김현근군의 도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게 되었다. 학창시절 내가 해보지 못했던 도전을 이뤄낸, 나에게 대리만족을 시켜준 김현근 군에게 기립박수를 보낸다.
김현근 군에게서 나는 배운다.
신념을, 승부근성을, 문제해결력을, 자기주도학습을
그중에서도 꿈을 가지고 도전을 하며 느끼는 순간순간이 행복이라는 것을 크게 배웠다.
나는 지금 프린스턴 대학을 향한 목표는 아니지만 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되는 것이 목표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의 역할과 중요성을 어느 때보다 크게 실감한다. 지금 시점에서는 김현근 군에게도 많은 것을 배웠다.
몇 년 후 나에게서 꿈을 배워갈 이들을 위해 오늘도 즐겁게 노력해본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
고승덕 변호사는 항상 자신이 해낼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확신 없어 하는 85%의 사람들은 이미 실패한 것이고, 자신이 된다고 확신하는 15% 사람들과만 경쟁하므로 유효경쟁자 수는 엄청나게 줄어들기 때문에 해낼 수 있다는 자기암시는 엄청난 효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여러분 우리 한번 외쳐볼까요?
“나는 해낼 수 있다” 고
조윤주
재훈아,
아침에 걸려온 너의 전화 못 받아서 정말 미안하다. 어렵게 기회를 얻어 전화를 했을 텐데 엄마가 못 받았구나. 걸려 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아침에도 또 저녁에도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메시지만 나오는구나. 정말 안타깝다.
살아가면서 너와 내가 서로 뜻이 잘 안 맞아서 이렇게 어긋나는 경우가 종종 있겠지?
그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금의 안타까움처럼 가슴이 많이 아플 텐데......
될 수 있으면 엄마는 이렇게 어긋나서 서로에게 안타까움을 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비록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른다 하더라도 서로 마음을 열어 놓고 함께 해결해 가도록하자.
그저께 50킬로 걸었다는 네 말을 듣고 몹시 마음이 아팠다. 형편없다는 밥과 반찬도...
엄마는 네가 이번 고생을 통해 사소한 어려움은 잘 견디고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키웠으면 하는 마음에 네가 선택했을 때 은근히 기뻤지만 너무 좋은 쪽으로만 생각을 했나 반성하기도 한다. 발에 물집은 잡히지 않았는지, 예민한 성격의 네가 밤에 잠은 잘 자는지, 늘 엄마가 곁에서 챙겨도 잃어버리는 물건 많은데 소지품들은 잘 정리정돈 하는지, 전국에서 모인 각양각색의 네 또래 청소년들과 공동생활은 잘 하는지......이렇게 긴 시간 널 떼어 놓아 본 적이 없어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구나.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을 앞두고 그 소중한 시간을 영어, 수학 특강을 들으며 학력을 신장 시킬 것인지 국토순례를 통해 자신감을 배울 것인지를 두고 우리는 많은 고민을 했었지. 더군다나 우등생 다영이 엄마가 이번 여름 방학부터 시키자고 짜놓은 영어그룹 학생들 속에 널 포함시켜 놓고 있어서 거절하기도 쉽지 않았단다. 그래도 공부는 맘먹고 열심히 하면 이번 방학이 아니어도 될 것 같았지만 청소년기에 국토종단 체험은 이번 기회가 아니면 점점 더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것 같아서 네가 국토 순례를 하겠다고 선택했을 때 내심 반가웠다.
네 친구들은 이 시간에 시원한 에어컨 속에서 영어 수학을 공부하고 있겠지. 고생해 보니까 공부가 얼마나 쉬운 일인지 또 공부를 할 때 부모님이 챙겨 주실 때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도 알 수 있겠니?
그래도 고생을 해 봐야만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강해지고 자신감도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엄마는 자꾸 마음이 약해져서 귀찮아하면 강요하지 않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서라도 네가 좀더 가슴이 넓은 사람으로 커 갔으면 싶다. 우선은 힘들겠지만 앞으로 어떤 일도 이 보다는 더 쉬울 거라 생각도 한다.
지금 네가 행군하고 있는 이 시간이 참으로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지?
청소년기에 인생을 설계하고 그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가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방치해버리면 이처럼 나중에 힘들고도 지루한 인생을 살아야 할지도 몰라. 청소년기 지금의 순간순간이 소중한 시간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이번 순례로 네 자신의 내면과 자주 만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너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또 네가 얼마나 하찮은 인간인가도 느껴보고, 너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사람인지도 깨닫고 하면서 그동안 너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수많은 네 안의 여러 모습을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영혼과의 만남.
그것은 익숙한 사람들 틈에서 만나기는 어렵고 낯선 곳에서 긴 시간 혼자가 되어 외로움을 느낄 때 기회가 올 거야. 좀더 충만한, 좀더 존엄한 너의 정체성을 발견하길 바란다.
이제 19박 20일 중에서 한 주일이 지나고 2주일 정도 남았구나.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는 책에서 현근이 엄마가 냉장고에 붙여 놓았던 말 기억나니?
‘이 또한 곧 지나가리니...’
힘든 이 생활이지만 시간이 멈추지 않고 가고 있으니 이 또한 곧 지나가겠지.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콩나물 시루의 물이 빠져나가며 콩나물을 키우는 것처럼
재훈이가 어제와 다른 재훈이로 날마다 거듭 나도록 마음을 쑥쑥 키워주며...
엄마가 힘찬 응원 보낸다, 재훈이 화이팅!
2007년 8월 3일 새벽 1시 반
사랑하는 아들을 믿으며 엄마가
그 일그러진 상(象)을 보고 와서. (경성대 무용학과. 박성호 무용단)
임 인 숙
갑자기 윤주씨 전화를 했다. 박성호 무용단 공연을 보러 갈수 있겠는지 묻는다.
나는 오히려 박성호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되물었다.
초대장이 있으니 함께 갈수 있겠느냐고, 시간이 있는지 묻고,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한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20분만 출발 시간을 늦추자고 했다.
공연에 대해선 뭔지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르고 갑자기 전화해서 번개 팅을 요구하니 확실히 사람을 보고 함께 움직인다.
무용단의 무용을 상상하면서 하늘거리는 옷과 아름다운 여자무용단원을 상상하면서 과연 남자 무용단원은 어떤 복장을 하고 나올까?
시작이 울리고 태고의 시작인가? 종교적인 무용인가? 잠시 어떤 무용이기에 이렇게 시작하는가? 하는 의문점이 들었다.
변함없는 달빛은 비추고 있다.
이어서 고무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래 산업사회를 연상시키고 싶었는가보다.
고무 산업을 시작해서 우리나라 산업사회의 정점을 이루던 시절에는 이 냄새가 진동했지.
현대문명의 변화 최후의 승리자만이 남는다는 사마귀의 특성,
일등 제일주의의 혼자만을 위한, 혼자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모든 것을 파괴하고 절교하고 혼자 남은자의 외로움은 살갗을 에이는 것 같은 아픔을 감당하기 힘들다.
분노와 배신감으로 이승과 저승을 오간다.
사마귀는 한쪽 벽으로 살짝 비겨두고 암모니아 냄새가 진동하는 도시에서 누군가와 함께 하고자 한다.
함께 하면서도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태에서 새로움과 평온함의 유지는 타락과 혼란을 싹트게 한다. 혼란 후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태풍과 살기 위해 몸을 움츠리는 무리들이 있다.
움츠려드는 몸은 어떤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별력을 상실한다.
자신이 살기위해 영웅을 만든다. 만들어지는 영웅은 태평성대인 듯 착각을 하고 동아줄인가 붙잡고 있던 실체는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
그러는 사이 태풍은 지나가고 다시 평온한 빛을 비추어주는 달이 뜬다.
이제 인공위성의 시대로 정보화 시대가 왔다.
환희와 기쁨에 빠져 사는 즐거운 세상도 잠깐 혼란의 길에 접어드니 자신들이 씌웠던 영웅의 가면을 벗겨 내고 연결되어진 끈까지 던져준다.
향기로운 냄새, 평안한 향기가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대해 알려준다.
꿈을 갖으라고..... 희망이 있다고.....
꿈은 이루어 진다.
악몽에 시달리는 세상에 날이 밝았다는 새벽종을 울린다.
온세상을 비출 태양이 뜬다
끝남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종은 날마다 울리고 있다.
공연을 다보고 아무래도 이해가 부족한 것 같으니 팜플렛을 하나씩 사서 읽어 보았다.
우리가 몇%쯤 받아들였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정확히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작품 의도는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작품 의도는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근원적인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보통사람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본원적인 힘 - 그것은 끝없는 용서와 화해. 그리고 - 어머니 자궁 - 과도 같은 태곳적 평온함이다. 이것이야 말로 사람들이 그토록 갈구하는 참된 삶의 모습이자. 살아가면서 깨닫게 되는 생의 진실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찾고자 하는 의미 있는 일탈 행위임을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이렇게 설명 되어 있다.
아무리 의미 있는 일탈 행위라도 용서와 화해 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 까지 이겠는가?
용서해야 하는 자와 용서 받아야 하는 자는 근본적으로 생각이 다르다.
특히 남과여의 생각은 더더욱..... 가끔 여인들은 머리는 가능한데 가슴에선 불가능해요 이런 말을 한다.
조개 속에 실수로 들어온 모래를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진주라고 한다. 진주가 되었을 때는 모래였다는 생각을 못한다. 조개들이 실수로 들어온 모래를 다 진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일부조개는 모래를 뱉어 내고 또 많은 조개들이 진주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죽는 조개나 진주를 만들어 내는 조개나 아픔과 고통은 느낄 것이다. 조개가 되어보지 않으면 어찌 그 고통을 알겠는가?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고
장주연
정말 제목 그대로입니다. 장영희, 그녀의 책 마지막 장을 넘기며 아, 그렇구나! 문학의 숲을 거닐었구나! 하게 됩니다.
그녀는 병원에서 만난 소아암 환자에게서 ‘어린왕자’를 봅니다. 꿈꾸는 아버지를 주제로 하는 오프라 윈프리 쇼를 보며 ‘세일즈맨의 죽음’을 떠올립니다. 작은 구멍가게 한쪽을 빌려 떡볶이와 오뎅(어묵)을 팔던 명훈 엄마를 보며 ‘우동 한 그릇’을 기억합니다. 그녀의 일상은 문학작품을 떠올리는 모티브가 됩니다. 참으로 많은 작품이 그녀의 일상과 함께 자연스레 소개되어 있습니다. 읽은 책이 이야기 되어지면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하게 되고 읽지 못한 책이 이야기 되어지면 꼭 읽어 봐야지 하게 됩니다.
표현력이 부족하여 그녀의 탁월한 문학성을 어떻게 전해야 하나 난감하고 죄송합니다. 우습지만 그녀의 책을 꼭 읽어 보시라는 말로 나의 그녀에 대한 극찬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감히 그녀의 흉내를 내어 보는 나를 용서하시기 바라며, 그녀처럼 나도 언젠가 읽었던 책을 떠올려 봅니다.
베트남 하노이에 갔었습니다. 베트남 역사는 우리나라 역사와 아주 닮은 데가 많아 정감이 가는 나라이지요. 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이 일했던 집무실을 보았습니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지냈다고 하기엔 너무나 소박한 곳입니다. 그가 죽었을 때 남긴 재산이라고는 라디오와 입었던 옷가지가 전부라니, 그런 지도자를 가졌던 베트남 사람들이 은근히 부러웠습니다. 오롯이 자국민의 힘으로 강대국 프랑스, 미국을 물리친 나라 베트남. 그들의 이야기가 담겨진 책 한권이 떠오릅니다.
대학 다닐 때 읽었던 책이라 기억에 가물가물합니다. 전두환 대통령재임 하던 시절이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언제 그런 시절을 살았나 싶은데, 그때는 참 엄혹했습니다. 읽을 만한 책은 거의가 금서라 몰래 돌려가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이공의 흰옷’. 지금은 호치민으로 이름이 바뀐 곳. 사이공! 그곳에서 조국의 독립, 통일을 위해 싸운 남베트남의 젊은이들 이야기입니다. 독재타도를 외치던 그 시절, 미국을 물리친 베트남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감명을 받았더랬지요. ‘사이공의 흰옷’에 호 아저씨가 등장합니다. 이야기는 실제 인물을 그린 것이거든요. 호 아저씨도 실제 인물이었지요. 이 곳 가이드가 베트남 사람들이 호치민을 호 아저씨라 불렀다고 하네요. 최고 지도자가 아저씨라! 그 모습이 그려지면서 또 한번 그런 지도자를 가진 베트남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프랑스 식민지로 100년. 미국에 의해 분단된 기간 30여년. 그 긴 시간을 오로지 독립과 통일에 바치느라 경제를 돌볼 여력이 없었던 나라 베트남. 지금 시작인가 봅니다. 하노이의 거리는 참으로 활기가 가득합니다. 수많은 오토바이가 뿜어내는 매연이 걱정스럽긴 한데, 환경을 볼모로 삼지 않는 개발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문학의 숲’을 나도 거닐고 싶었는데, 참 부끄럽네요. 언젠가 제대로 거닐 수 있도록 읽은 것들을 모아두어야 할까 봅니다.
구포도서관 시낭송회를 다녀와서
조윤주
구포도서관에 갔다.
재 개관 1주년 행사에 우리 도서관에 초청장을 보낸 모양이다.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몇명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해서 행사를 알게 되었다. 서면에서 지하철 2호선으로 갈아타고 구남역에서 내렸다. 전철역에서 구남중학교 쪽으로 가다가 다시 구포중학교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구포중학교 그 옆에 바로 구포도서관이 있었다.
재 개관 후 이용객이 10배로 증가하여 전국에 성공 모델이 되고 있는 이 도서관은 명성에 걸 맞게 건물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미술관이나 예술 공연장이 아닐까 싶을 만큼 산뜻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백양산 자락에 등산로 연결되어 이용객들이 책 보다가 심심하면 백양산 등산로를 따라 산책을 즐기다 올 수 있는 친환경적 공간이란다. 눈앞에 펼쳐지는 낙동강 전망이 경사길을 올라오느라고 힘든 때 시원한 눈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고래들의 노래방>이란 이름의 알록달록 동화 속 장면 같이 꾸며 놓은 유아자료실, <정보문화누리터> 등 시작 시간이 다 되어 자세히 둘러 보지 못하고 낭송회가 열리는 <소리와 빛터>란 강당을 찾았다.
넓어서 어디에 붙었는지 두리번 거리고 있는 날 안내를 하던 서포터즈가 입구까지 데려주었고 강당 입구에서는 오늘 낭송될 시가 들어있는 소책자를 나눠 주었다.
시낭송회는 취향에 안 맞는 사람들은 듣기 싫은 음악처럼 못견뎌 하는 것 같다. 작곡가가 만든 노래를 가수가 잘 불러서 그 노래를 빛나게 하는 것처럼 똑 같은 시를 그냥 눈으로 읽을 때와 낭송으로 들을 때 느낌이 다르다. 나의 경우 어떤 시는 느낌 전달이 잘 안 되었다가 정서를 잘 살린 그 시의 낭송을 듣고 시가 주는 느낌이 살아나는 경우도 있었다. 시집을 읽을 때 주목하지 않았던 시라도 누군가의 낭송을 통해 이 시가 그런 깊은 울림이 든 시였던가 새삼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번 시낭송회는 중간 중간에 초청가수 노래를 들을 수 있어 더욱 좋았다. 한울타리 멤버 최근호씨가
안치환의 '내가만일'과 유익종의 '사랑하는 이에게'를 편안한 목소리로 들려주어 그 속으로 빠져들었다.
구포 도서관의 소리와 빛터라 이름을 가진 이 홀은 작은 공간이지만 참 부러운 공간이다. 음향 조명 시설은 물론 무대에선 출연자의 목소리가 맨 뒤쪽 관객까지 잘 전달되어서 웅장한 울림이 온 몸을 감싸는 듯 했다. 공연자가 가진 재능을 충분히 보여주고 전달해 주는 장치가 이 무대 공간이 아닌가 싶었다. 아마도 다른 곳에서 똑 같은 사람이 같은 곡을 불러도 이 느낌으로 전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음에 이어진 바다 사랑 바다 시 낭송회 금상을 수상했던 경남고 2년 김다슬군이 낭송할 때는 깜짝 놀랐다. 어찌나 목소리가 맑은지 변성기도 안 온 소년의 목소리였다.
서예가이며 시조시인 안도영은 숨바꼭질 이란 시를 무대 위에서 붓글씨로 즉석에서 써 내려갔다. 아이들이 신기해 하며 구경하러 무대 위에 올라가서 보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 선조들은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면 즉석에서 시를 지어 저렇게 묵필로 써 내려가 술과 함께 주고 받으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이런 퍼포먼스를 즐기던 선비들의 문화가 참 멋스럽게 전해지는 것 같다.
숨바꼭질
안도영
달동네 여름밤에
흥겨운 숨바꼭질
술래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창수는 골목길 구석에
꼭지는 장독대 뒤에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게
우물가에 꼭꼭 숨어 있었지
옛 친구 보일 듯 말듯
숨바꼭질 하던 그 시절
솟구치는 그림움
완성된 것은 끝날 때까지 무대 옆에 붙여 놓았다. 마치고 가까이게서 촬영해 오려했는데 끝나고 너무 피곤하고 그냥 오고 말았다. 퍽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황진희가 미모에 저런 재주까지 지녔으니 그 멋진 예인에게 어찌 선비들이 반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알바스트로 시낭송회 회원이 쓴 '돋보기'란 시를 낭송하는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다.
책을 펴니/ 한 시간도 안돼 깨알 같은 글자들이/ 싫증을 낸다//
멀리서 내민 글자들은 좁은 길로 가려 하고/ 가까이에서 내민 글자는 넓은 길로 오려한다/
갈 지 자로 걷는 모습/ 약주 드신 아버지 같다/ 모므렸다 폈다 하는 신경초 같다//
자꾸만 달아나는 글자들을 쫓아가다 보니/ 돋보기 밖으로 돌아보는 아버지//
아버지가 보고 싶은 땐 돋보기를 본다/
'모래 찜질' 이란 시를 낭송했던 정순근씨의 시도 좋았다. 한국초염력 연구원장이란 직함을 갖고 있었는데 KBS, MBC에 페널로 자주 출연한 모양이다. 어머니가 할머니의 신경통 치료를 위해 모래사장으로 가서 모래찜질을 하던 경험을 노래한 시다. 여름날 모래 기운이 생명의 원천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염력'이란 지금 생각하는 마음의 힘이라고 했다. 마음의 방향을 기쁨, 감사, 밝음, 즐거움으로 바꾸면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관객들 모두에게 실험을 했다.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순수한 마음 그대로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초청가수 청소년 가수인 최선덕 양의 노래를 들었다. 정말 잘 했다.
최선덕 양이 노래하는 모습은 인터넷에 동영상으로 올라와 있으니 울 회원님들 한번 들어보시길 바란다.
시청에 근무한다는 김찬식씨는 '안개'라는 자작시를 낭송했다. 시 보다는 색소폰 연주가 더 멋있었다. 우리 사회가 직장인들이 열심히 일하면서 다들 취미생활도 할 수 있는 형편이 되면 참 좋겠다.
'그 섬에 살고 싶네'를 낭송했던 라영훈시인도 남부 경찰서에 근무한다는데 얼굴에 경찰이라고 써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의 직업을 알 수 있을 만큼 분위기가 드러난다면 밥벌이가
생활을 너무 짓누른 탓이라고 김훈은 어딘선가 말했던 것 같은데 ㅎㅎ . 세월이 좀더 흐르면 라영훈씨가 시인의 얼굴처럼 변할련지......
작곡가이며 공연예술기획 '락당'대표 최길씨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고 난 뒤, 같은 노래를 트럼펫으로 연주하는 모습도 사진기에 담았다. 이 악기의 선율이 영혼을뒤흔드는 것 같다. 혼자 듣기가 아까워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경험을 공유했으면 싶었다. 딸내미보고 같이 자가고 했는데 피곤하다며 안 따라오겠다고 했다. 이런 경험이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텐데 안타깝다...
설현숙 시낭송가가 용혜원의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을 낭송했다. 용혜원 시는 그냥 읽어도 좋은데 이렇게 낭송가의 목소리로 들려 준 시는 더욱 가슴을 적셔 주었다.
변종환 시인협회장이 정영일 시인이 쓴 시를 낭독했다. 정영일 선생님은'이주홍문학상'을 김재원선생님께서 수상하시던 날 한번 뵌적이 있다. 서정적인 시와 수필을 읽으려 가끔 선생님 홈피 방문을 했었는데 이 곳에서 선생님 시의 낭송을 듣게 되어 더욱 기뻤다.
정영일 시인의 시낭송을 마지막으로 장장 두 시간 반 동안의 시낭송회가 끝났다. 그 시간동안 몰입해 있어서 온몸이 뿌근했다. 그래도 마음만은 충만하다. 배는 출출해도 영혼의 양식을 많이 먹어서 가슴 속은 꽉 찬 것 같다.
알바트로스 시 낭송회의 다음 일정은 2007년 9월 19일 저녁 6시 30분에 추석, 고향, 부모, 자연을 주제로 영광 도서 4층 문화 사랑방에서 열린다고 한다. 우리 회원들도 시간되면 가서 시와 음악이 함께하는 이 행사에 한번 푹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찾아가는 길이 힘들긴 해도 구포도서관에 잘 다녀온 것 같다.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면 즐겁기는 하지만 돈 없으면 주눅 들고 또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서 후회한 적이 많다. 도서관은 주머니 사정 여의치 않아도 음식값 저렴하고 부담없이 차 한잔 나눌 수 있는 편한 공간이니 다녀와서 별로 후회 해 본적은 없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이런 만족스런 공적인 공간을 앞으로도 많이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만들어 논 공간을 많이 활용해야 더 잘 만들테지만....
즐거운 인생을 보고
정은정
기영, 혁수, 성욱, 상우,
20대라는 시절이 없었던 것처럼. 처음부터 아이들의 아버지였던 것처럼. 중년의 모습에 너무나 잘 적응해 있는 3명의 친구가 등장한다.
전직 은행직원이였던 기영이. 내가 본 기영은 직장을 알아보지 않았다. 이 생활에 적응해서 일까? 기영은 이제 자신이 할 만한 일은, 자기를 필요로 하는 일은 이제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에 순응하며 살고 있는 거 같았다.
중고차 사업을 하는 혁수. 아이들을 캐나다로 조기유학을 보냈고 아이들만 보낼 수 없어 아내도 함께 보냈다. 살고 있는 집까지 팔아 유학을 보냈기 때문에 혼자 남은 혁수는 창고 2층에서 간이 침대를 놓고 지낸다. 힘든 하루를 보내지만 피곤함 보다는 외로움이 더 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이들 동영상을 보며 혼자 웃는다. 외로움보다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면 전화를 하지만 목소리조차 마음껏 듣지 못한다. 이런 혁수는 아내로부터 이혼하자는 말을 듣게 된다. 전화상으로 .
큰 회사에 다니며 돈을 잘 벌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성욱. 성욱은 명예퇴직을 했다. 그래도 가장으로의 써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낮에는 퀵써비스, 밤에는 대리운전을 한다. 회사에서 퇴직을 했지만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복직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해 두었다. 회사에서 퇴직이라는 말을 처음 듣고 얼마나 놀라고 힘들었을까? 그 힘듬을 성욱은 혼자 고스란히 겪었어야 했을 거다. 가장이니까.
이 셋은 또 다른 친구 상우, 상우의 장례식장에서 만나다. 그리고 그 장례식장에서 상우를 꼭 빼닮은 상우의 아들 현준군을 만나다.
현준은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었고 아버지의 기타도 미워하고 있었다. 기영은 상우의 기타를 본 순간 자신의 20대를 기억해 낸다. 지루하고 답답하고 우둔해 보이는 이 사람들도 20대라는 시절이 있었단다.
그리고 그들의 20대의 하이라이트시절에 있었던 활화산이라는 락밴드를 다시 결성하자고 제안한다. 제안했던 기영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말도 안 되는일이라며 고개를 흔들지만 한 번 흔들린 그들의 마음은 평소에도 있을 법한 좀 기분 나쁜 일에 활화산 락밴드 결성에 동참하게 만든다.
밴드를 하면서
기영은 밴드를 하면서 식구들 몰래 보석하나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혼자 좋아한다. 그런 기영을 식구들은 무시하고 화도 내어 보지만 기영은 신경 쓰지 않는다.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있던 기영은 어느날 부인으로부터 바람이 났다는 오해를 받게 되고 그래서 비밀을 털어 놓게 된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던 가족들도 점점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서서히 기영의 음악활동을 받아들이고 그들만의 콘서트에 가서는 노래를 하고 있는 기영을 향해 환하게 웃어준다.
그의 전부였던 가족을 잃고 그 가족이 요구하는 돈, 그의 전 재산을 가족들에게 보낸 혁수. 가장 힘들 것 같은 혁수는 오히려 담담하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힘들어 한다. 그러나 잠시, 담담해져 있다. 그 동안 그를 힘들게 했던 가족, 그에게 희생만 요구했던 가족이 없어졌기 때문일 것 이다. 혁수 본인은 그 때는 그것이 희생이라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막상 그 짐을 떨쳐버리니 분명 달라진 무엇인가를 그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이혼한 후 부인에게 전화해 아이에게 할 말이 있다며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 바꿔달라고 강역하게 요구도 할 수 있게 된다.
밴들 연주를 하면서 성욱은 웃기 시작하고 그제서야 그는 그의 가족에게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이야기 하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 이야기에 아내는 집을 나간다. 그래도 밴드 활동은 계속한다. 그들만의 공연을 하던 날 아내는 돌아와 그를 향해 웃어준다. 연주를 하고 있는 성욱을 보며 성욱의 아내는 결혼 전 아니며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기 전의 성욱을 기억해 내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성욱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해하는 성욱을 너무나도 오랜만에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20년 전의 그들은
20년 전 그들은 자유가 존재하는 대학가에서도 최고의 자유를 누리며 최고의 껄렁한 모습으로 활화산이라는 이름의 락 밴드의 활동을 했다. 그들의 이야기로는 드럼의 천재였고 손에 물집이 잡힐 만큼 열심히였다 하나, 3년 연속 대학가요제 예선 탈락한 것으로 보아 그리 실력이 좋았던 것 같지 않다. 열정과 자아도취, 그리고 하고 싶다는 마음 뿐 이였던 것 같다. 대학 4년 중 3번이나 도전했고 더 하고 싶었지만 군대문제로 더 이상 도전을 할 수 없어 해산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요즘 텔레비전에 방송하는 무한도전과 비슷하지 않았나, 내 나름으로 생각해 본다. 동기 여대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최고였고 다른 밴들들 역시 자기밴드를 부러워했다고 기억한다.
그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밴드 활동도 실력도 좋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추억이기에 추억이라 그들이 기억하고 싶은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현준군의아버지 상우는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계속해서 그 일을 본업으로 하며 평생을 살았다. 그러면 그는 행복했을까? 아니요. 그래서 그는 그의 아들의 기타를 부수며 자기 피가 흘러 보컬로써의 재능이 있는 아들을 가로 막았을 것이다. 오히려 기영이 현준군을 찾아가 아버지가 부끄럽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현준군은 왜요? 라는 질문을 도리어 하며 밤무대에서 일하는 것이 뭐 어떠냐고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부끄럽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는 기영이 오히려 친구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나 싶다. 왜요? 라는 대답을 하는 현준군을 보면서 생각의 차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셨다는 분이 많으신데 나는 계속 웃었다. 밴드를 연주하는 동안의 그들의 얼굴을 유심이 보고 있으면 천진난만하다는 표현이 떠올라 웃고 있다. 웃음이 전염이 되고 행복이 전염 되듯 아니면 그들이 너무 귀여워서라도 나는 웃었다.
밴드를 결성해 음악을 연주하며 행복해서 웃었지만 그들은 음악연주가 아닌 그들의 삶에서의 일탈이기에 행복했던 것 같다. 음악연주가 그들의 삶이였다면 그들은 거기에서도 또 다른 일탈을 꿈꾸었을 것이고 철없었던 과거를 후회를 하며 살 수도 있었을 것 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은 또는 선택하지 못한 다른 길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로 살아가는 것이니까. 누구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읽고
임인숙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반응하는 엄마의 표정을 보니 혹시나 무슨 걱정이 있나 싶은 마음에 엄마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던 작은아이가.
“엄마 제가 괭장한 것을 찾아냈어요. 이 책을 한번 읽어보세요. 엄마의 마음을 확 풀어 줄 수 있는 책이예요.” 하며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건내 준다.
“엉? 이 책은? ”
“아 우리 학교에서 책 돌려 읽기를 하는데.... 왠지 엄마하고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제가 3시간 동안 푹 빠져서 읽었잖아요. 그런데 다 읽고 난 후에 생각해도 엄마가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아요.”한다.
“알았어. 엄마 조금 있다 읽을게” 하니
“엄마 이 나이에 엄마를 위해서 이렇게 애교를 펼치는데 그럴 거예요?” 하는 아들의 말을 그냥 지나 칠 수 없어 모든 것을 미루고 읽어보기로 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되어 엄마의 감성을 헤아려 주는 아들이 고맙다.
의술은 인술이다.
엄마로 살려면 반은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해결 해 줄 때는 아픈 마음을 봐주고
눈으로 말 할 때는 아픈 곳의 강도를 들어주고
피부로 이야기하고 피부로 이야기 하는 것을 알아듣고 피부로 대답할 수 있어야한다고 하셨던 아버지 말씀.......
그땐 무슨 말인지 확실하게 이해 못해서 왜 말 할때 듣고 대답해 줘야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봐줘야 하는지?
눈으로 말을 하는데 어떻게 들어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피부로 듣고 피부로 대답해 줄 수 있어야 하는지?
너무나 엉뚱하고 희한한 요구에 반항을 했던 사연들.....
두 아이를 키우고 난 후 이제야 무슨 말인지 조금씩 이해되려고 한다.
자신의 마음가짐 중에 대민봉사의 마음이 첫 번째가 되어야 만 즐겁게 일할 수 있다고 하는 직업들......
의사로서 생활을 이야기하는 책속의 이야기들....
시골의사라기보다는 의사의 직업으로 전념을 다 한 사람의 회고록.....
순박하고 정이 넘치는 시골사람들...
의사라는 직업.
의사로서 살면서 해결하기 어려웠던 환자와 어렵고 힘든 환자의 병을 이겨냈을때 얻어지는 감정들.....
의사로 살아가려면 얻어지는 것 과 포기해야하는것....
절망 속에 빠져서 헤어 나오려는 기력조차 없는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의사.
응급처치의 순서로 호흡을 확보하고 지혈을 시키고 혈압을 올리고 약을 투여한다고....
수술을 해야 한다면 신체 중에 가장 먼저 가슴을 해야 한다고 하는 생명을 구하는 순서. 가슴 - 머리 - 배 - 팔 - 다리 순서라고 한다.
뇌출혈과 폐기흉이 동반 되면 폐기흉을 먼저. 뇌출혈과 장 파열이 동반되면 뇌수술을 먼저...........
신체와 정신 중에 어느 쪽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 하다고 말할 수 없다.
사회의 제도와 제약의 기준 속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키워지는 우식이의 꿈...... 황당한 꿈?을 가능하게 ...... 꿈을 갖는 것은 씨앗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는데...... 꽃을 맺을 수 없다면 씨앗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청소년을 키우는 엄마로서 많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청소년들에게는 장래를 위한 충고를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다가 정신에서도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인 것을 생각한다.
머리보다 가슴을 먼저로 얘기하면 신뢰감과 정확성에 문제가 생겨난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그래도 가슴이 먼저이다. 아니 가슴과 머리는 함께 가야한다. 많은 다른 사람들은 기다려 주는데 익숙하지 않다.
혼신의 힘을 다 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는 의사의 삶을 이해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오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환자의 입장에서는? 하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될 때가 있다.
항상 어린 아이로만 생각했던 작은 아이가 이제 자신의 생각을 얘기 할 수 있는 고등학생이 되었구나....
요즘 부쩍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엄마가 안스러웠던 것일까?
고3 수험생을 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모양이다.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에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즐거워진다.
차 문화 예술제를 다녀와서
이형주
해운대 장산에서 불어오는 억새밭의 바람...
철마 보림사 옆 국화 밭에서 불어오는 바람...
나는 이러한 10월의 가을과 동행하여 차문화예술제를 다녀왔다.
가을..억새..국화..그리고 차(茶)...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이것들과의 동행이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줄지어 늘어서있는 차(茶)관련 부스들의 주인장들은 축제 준비에 바빠 보였고, 그런 그들 사이에서 나는 길 잃은 미아처럼 이 부스 저 부스를 기웃거리며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내 무의식이 차(茶) 관련 date를 취하지 못하자 신체적 허기가 몰려왔다. 배설욕구로 화장실을 찾아들어가듯 2층 식당으로 올라가서 우선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섭취하고 그 후에 나머지 영양소를 섭취하며 디저트로 달작지근한 커피를 마셨다. 일차적 허기를 채우고 2층에서 내려다본 1층 축제장은 내 손에 들린 커피와는 또 다른 카페인의 그 맛의 차(茶)문화축제가 아니던가.
나는 실소했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가 마셔볼 카페인의 맛을 음미하며 커피를 마저 마셨다. 그 맛은 참 달았다. 쓴 커피 맛이 달았다.
2층에서 내려다 본 중앙 무대에선 택견 시범이 있었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태권도 못지않게 절도 있어 보였다. 내가 한국인임에 자긍심이 생긴다. 아마 축제의 분위기가 한몫 했을 것이다. 기회가 되면 택견도 배워보고 싶다.
저쪽에서 노오란 유니폼을 입은 유아들이 차(茶)관련 부스를 바쁘게 구경하면서 지나간다. 학부모들의 욕구에 맞춰 문화정보에 발 빠른 유치원교사들인 것 같다.
‘저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나를 따라온 우리 네 살 박이 아들도 오늘 차문화예술제에서 무얼 느끼고 있을까? 지금 우리 아들은 운동장에서 뛰어놀 듯 달려 다닌다. 한복 입은 분들이 특별해 보이는 지 멈춰 서서 보더니 또 달려 다닌다.
좋은 볕에 말려진 (성능 좋은 기계에서 쪄냈을지 모를)노오란 국화차가 진열된 부스, 색색깔로 염색된 찹쌀반죽 위에 꽃이 놓여져 부쳐지는 화전 부스, ‘생활’이란 단어를 붙여 대중적인 이미지만 있는 생활목공예·생활한복 부스, 장인은 없고 판매인만 보이는 다기 판매 부스, 정말로 이름모를(?) 야생화만 가득하던 야생화 판매 부스, 여백의 미(?)를 강조한 차(茶)관련 도서 부스, 엉뚱하게도 건강의료기 판매 부스...문화라는 그럴싸한 옷을 입은 시장 같았다고 하면 내 지극한 개인적 생각일까?
청명한 하늘에 부는 세찬 가을 해풍은 요트경기에는 제격일지는 모르지만 차 향은 실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차맛을 음미해 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역시 차 맛은 좋았다.
색과 향과 그 맛이 참으로 부드럽다.
이러한 맛을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손길이 있었을까 생각하니 저절로 엄숙해진다.
찻잔을 내어주시는 분의 손길이 경건하여 내 마음과 몸이 긴장된다. 이런 긴장감 속에서 지나온 것들에 대해 반성을 해 본다.
한 치 앞의 문제해결을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며 깊이 있는 삶보다는 많은 것을 이루려고 욕심냈던 내 모습이 찻잔에 비친다.
지나온 것들에 대해 반성이 된다. 다시금 차문화예술제의 참정신을 생각해 본다.
“에이, 볼 거 하나도 없네!”라며 자전거를 끌고 왔다 가는 중년 남성의 말에 관계자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그렇다. 볼 것은 없다고 쳐도 느끼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그 느낌이 자신의 인생, 삶에 긍정적 강화를 줄 수 있다면 오늘 이 축제는 대성공이다.
자전거를 타고 온 중년남자는 무엇을 본 것 일까? 아니 무엇을 보고 싶었을까? 그 분의 속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럼 나는 왜 이곳에 온 것일까? 무엇을 보고 싶었을까?
평소에 가지기 힘들었던 여유로 인해 나를 돌아보고 그런 시간들로 인해 더 발전될 나를 확인하고 싶었을까?
여전히 차 맛은 좋다.
안채도 아닌 별당마님처럼 앉아 차 맛을 우려내고 있는 지금 저 분의 무료함을 보면서 좀 더 자신의 문화생활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주길 바랬다.
사실상 다도를 하시는 분은 거의 여성분이고, 차문화 역시 일종의 식문화로 먹거리를 제공하는 기존의 여성적이고 모성적인 일로 생각할 우려도 있다. 좀 더 개방적인 사고로 여성들 역시 여성 사회에서의 편안함 보다 양성성의 사회와의 화해도 참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산야초를 찾아다니는 동적인 생활과 차 문화의 정적인 생활을 함께 하고 있는 여성분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젊은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태양을 향해 높이 나는 이카루스를 동경하는 봉황의 무료한 눈빛을 가지고 차맛을 우려내고 있는 단아한 한복을 입은 다도인을 보면서 자신의 문화생활에 대한 긍지와 자신의 꿈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길 바래본다.
부산은 문화의 불모지란 소리를 들은 적이 있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 문화란 개인, 시 지자체 관련 협의회 등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활성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 지자체의 경제적 지원, 관련 협의회의 시민과 교감할 수 있는 문화커리큘럼 확보와 문화를 즐길 자세를 가진 개인의 어우러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도에 대해 무지한 일반인을 위해 책자나 설명을 하시는 가이드를 배치하고, 사전 예약을 통해 일반인을 위한 다도수업을 개설해 축제 행사기간동안 공개 수업을 하거나, 시청각 교재를 이용한 차 생산 과정 등을 보여준다면 남녀노소 모두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축제 행사 이후의 연계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일반인들의 문화생활이 되도록 지속적인 관심도 해 주길 바란다.
이번 차문화예술제를 통해 문화 소비자로서의 나를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고 문화 또한 진화하는 것임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기다림, 느림의 여유로 나를 반성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리진을 읽고
강순임
마지막장을 읽고 책을 덮은 지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다시 책의 내용을 되새기려니 마음 한 구석부터 아려 온다.
궁의 여인과 법국 공사의 사랑이야기.
A4용지 한 장 분량의 자료를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라지만 그 시대에 그런 사랑이 가능했을까?
이 책에서 리진의 출생에 관해서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리진의 생부가 천주교인이었음은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엄마와 단 둘이서 궁궐 가까운 곳에 있는 배꽃마을로 흘러 와서 살다
이름도 얻지 못한 채 생모를 여읜 아이는 이웃에 사는 서씨라는 여인에 의해 거두어진다.
서씨는 그 아이를 배꽃아이라 부르며 친자식처럼 돌본다. 어느 날 궁녀인 서씨의 동생이
이 아이를 궁으로 데려가면서 배꽃아이는 궁과 인연을 맺게 된다.
매일아침이면 서상궁은 이 아이를 궁으로 데려왔다가 저녁이면 배꽃마을로 데려다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명성황후를 만나게 된다. 그 날 이 후 아이는 자주 명성황후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글도 익히고 춤도 익히며 중전의 총애를 받으며 성장한다.
결국 이 아이는 궁중 무희가 되어 궁의 여인으로 살다 조선의 주재원으로 발령 받아온 프랑스공사 콜랭과 만나게 된다.
프랑스 공사를 환영하는 연회에서 춤을 추는 무희를 보는 순간 콜랭은 자신의 첫사랑
마리를 떠올리게 되고 단숨에 그 무희를 사랑하게 된다.
궁의 여인은 절대로 결혼을 할 수도 궁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금기 앞에 콜랭의 사랑은
물러섬이 없다.
감히 왕의 여인을 사랑하는 건 대역죄라는 주변의 만류도 아랑곳 하지 않고 콜랭은 왕과 왕비
앞에서 궁중무희와의 사랑을 고백한다.
리진과 콜랭의 사랑을 이루게 해준 명성황후의 심경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세에 침착하게 대처하는 왕비도 여자였다.
법국의 공사로 부임한 콜랭을 환영하는 연회에서 춘앵무를 추는 서나인을 바라보는
왕의 시선을 왕비는 놓칠 리가 없었다.
하지만 5살 때부터 피붙이처럼 끼고 정을 키워 왔고 또 왕비가 위기에 처할 때 마다
언제나 함께한 리진에 대한 왕비의 감정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가거라 나는 가지 못하지만..... ’
엄마가 딸을 통해서 자신의 욕구를 대리만족하듯 명성황후는 리진을 통해서 미지의
넓은 세계를 경험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름도 없는 궁중무희 서 나인에게 왕은 자신의 성을 따서 ‘리진’이라는 이름을 하사한다.
그 때까지 이름도 없이 어렸을 땐 배꽃아이로 궁에 들어와선 서나인으로 불리우던 그녀가
이름을 얻고 궁을 떠나 벽안의 남자의 여인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궁중의 여인은 자신의 앞날을 선택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출궁을 하여도 걸혼을 할 수 없다.
그런 리진은 왕비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법국의 공사관에 머무르도록 허락 받은
리진은 자신이 다시 궁으로 돌아 갈 수 없음을 알 고 있었다.
리진의 곁에는 배꽃 마을 서씨집에서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고 리진이 궁중 무희가 되자
함께 궁중 악사가 된 강연이라는 청년이 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거리를 떠도는 아이를
블랑 주교가 서씨 집으로 데려 오게 되었고 리진과는 친남매처럼 지내는 사이다.
강연은 말을 하지 못하고 글씨를 써서 의사소통을 한다. 하지만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말은 리진을 ‘은방울’이라고 부르는 말이다.
리진이 콜랭과 함께 법국으로 떠나던 날 배위에서 멀어져가는 항구를 바라보던 리진은 얼어
붙은 듯 한자리에서서 배를 응시하고 있는 강연을 발견하고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물결이 출렁인다.
‘그가 왔구나! 강연이가’
배는 점 점 항구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법국에 도착한 리진은 새로운 세상에 대하여 왕비에게 생생하게 편지를 쓰기도 하고
프랑스 책을 조선말로 번역해서 왕비에게 보내 주기도 한다.
아름다운 동양 여인 리진의 프랑스 생활은 어딜 가나 주목을 받았다.
물론 변함없는 콜랭의 사랑과 배려가 있었기에 리진은 낯선 이들의 호기심어린 시선들에도
지혜롭게 잘 적응 해 나갔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에펠, 모파상 이런 인물들과 리진의 만남도 흥미로웠다
콜랭의 리진에 대한 사랑은 한결 같았고 리진도 낯선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을 즈음에
리진은 아기를 유산 하면서 심한 정신적인 혼란을 겪는다.
리진을 위한 콜랭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리진은 조선으로 가고 싶어 한다.
콜랭과 함께 조선으로 돌아온 리진은 궁에서 왕비와 한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지금 왕비가 얼마나 외롭게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콜랭 혼자 돌려보내고 배꽃마을로 거처를 옮긴 리진은 서씨와 강연을 도와 고아들을
돌보며 지내게 된다.
모로코 공사로 발령받아 떠난 콜랭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편지를 보내오지만
리진은 나를 잊어 달라는 편지를 콜랭에게 보낸다.
리진은 여기까지면 충분하다는 말로 콜랭과의 이별을 결심한다.
리진을 향한 강연의 순수한 사랑조차 용납 될 수 없는 궁중의 법도는 악사인 강연의
손가락을 절단하는 벌을 내린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리진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강연은 더 이상 자신이 사용 할 수 없게된 수첩과 만년필을 남긴 채 리진을 떠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리진은 강연에 대한 연민으로 괴로워하며 강연을 찾아 나서지만 세상 어디에도 강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즈음 조선은 열강들 앞에서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하게 되고 마침내 을미사변이라는
역사의 치욕을 겪게 된다.
명성황후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리진은 살아남은 자신을 용서 하지 못한다.
명성황후의 침소였던 텅 빈 교태전에서 리진은 절규 한다.
“죽을 수도 없습니다. 살 수도 없습니다.”
곡기를 끊은 리진은 미리 구한 비상을 발라놓았던 누런 프랑스말 사전을 씹으며
명성황후의 운명을 따른다.
부모님을 일찍 여읜 리진에게 있어서 왕비는 어머니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지표였다.
어린 리진의 입에 숟가락으로 배를 긁어 먹여주며 왕비는 너무도 일찍 자신의
곁을 떠난 공주를 생각했다.
왕비와 리진의 만남은 그렇게 따로 할 수 없는 운명적인 만남이 된 것이다
리진의 눈을 통해서 본 명성황후의 시해 장면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작품 속에서 보다
가슴을 아리게 한다.
조선 말기에 리진이라는 한 여인이 이렇게 사랑하고 이렇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짧은 기록위에 입혀진 작가의 상상력이 너무도 생생한 그 시대 조선의 슬픈 역사를
나에게 강하게 다시 일깨워 주었다.
산청. 함양을 다녀와서
김영숙
내가 여행을 떠날 때면 대체로 미리 계획을 세우고 사전조사를 하고, 봐야 할 것들에 대해서 꼼꼼히 살피는 편이다. 여행을 자주 할 수도 없을뿐더러 지금 느끼는 것과 나중에 다시 왔을 때의 느낌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엉겁결에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나선 여행은 설레임을 한껏 고조시키고 뭔가 일을 꾸미는 아이처럼 비밀스럽고 흥미진진하다. 순임 언니의 애교 섞인 발언으로 우리는 일명 뭇지마 관광을 하게 된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알려고 들면 왜 모를까 만은 우리 모두 뭇지마 관광에 편승하기로 했다.
기대감에 수다스러워 부산을 출발 하여 창원, 진주를 지났건만 고속도로에서의 지루함이나 피곤은 아무도 느낄 수 없었다. 어느새 우리는 정갈하고 아담한 산청에 도착하였다. 지리산으로부터 내려온 물줄기가 많은 수량과 맑음을 뽐내며 산청을 휘돌고 있었다. 산청(山淸)이 원래는 산음(山陰)이라는 지명이었단다. 조선시대 때 7살 난 아이가 아이를 낳는 괴기한 일이 벌어져 음기가 너무 세어 그렇다며 산청(山淸)으로 개명을 했단다. 내가 보기에 처음부터 산청 <산淸(살아있는 맑음), 山청(산을 청하다),산청(산과 물이 푸르다)>이었을 것 같은데…….
그곳에서 내 어릴 적 다니던 초등학교 같은 학교 앞에 사시는 회원님의 후박하고 정갈한 접대를 받고 산청한의학박물관으로 향했다. 산청은 신의 류의태의 고향으로 예로부터 뛰어난 명의들이 많이 나온 곳이란다. 황매산을 멀리 바라보며 산 중간에 걸터앉은 박물관은 빼어난 사찰들에게서 볼 수 있는 확 트인 시야를 확보하고 있었다. 2010년 완공 예정이라 아직 부대 시설물이 다 들어서지 않은 언덕엔 매 한 마리가 맴돌고 있었다. 높은 곳이 그의 차지였겠지만 지금은 박물관 높다란 건물에게 자리를 내주고 저 아래 사뭇 초라해진 소나무 위를 빙빙 돌며 없는 토끼를 찾고 있지나 않을지…….박물관 안에선 약초 냄새가 가득 배어났다. 갖가지 한약재들과 한의학에 관련된 전시품들을 둘러보고 구형왕릉지로 향했다. 아직 정확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구형왕릉은 금관가야 마지막 왕으로 신라 법흥왕에게 항복한 후 태왕궁에서 살다가 운명한 왕이다. 김유신의 증조할아버지이시다. 내가 김해 김 씨이므로 내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전구형왕릉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돌무지무덤이다. 무덤은 7단으로 쌓여져 있고 중간에 감실이 있는 것이 참 특이했다. 문득 김훈의 현의 노래가 생각났다. 죽음을 기다리는 임금보다 함께 묻혀져야 할 사람들의 절박함이 소로를 따라 흐르는 물소리로 이어지는 듯 했다. 마침 비가 약간 내려 습한 기운에 경주나 고분들에서 볼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가까이에 있는 유의태 약수터에서 쏟아져내려오는 맑은 물에 손을 담가 보았다. 차가웠다. 정신이 화들짝 들었다.
산청에서 함양으로 가는 길은 굽이굽이 작은 마을들이 올망졸망 누워있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영남의 들판은 호남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호남의 산등성은 여리고 안온한데 영남의 능선들은 힘차고 각이 있다. 그래서 호남의 들판은 넓어도 아늑하게 감싸주는 포근한 맛이 있지만, 영남의 들판은 좁아도 탁 트인 호쾌한 분위기가 서려있다. 그래서일까 호남의 마을에서는 거기에 주저앉게 하는 눅진한 맛이 있는데, 영남의 마을에서는 산굽이 너머 달려가고 싶은 기상이 일어난다” 그의 말처럼 산굽이굽이 돌때마다 무엇이 나타날까 궁금하여 차창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함양 상림은 신라 말 최치원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 숲이란다. 아름드리나무가 강을 끼고 쭉 늘어선 나무아래 꽃무릇이 한창이었다. 시간을 갖고 천천히 걸어야 할 곳을 바삐 둘러보고 돌아와야 해서 너무 아쉬웠다. 묻지마 관광도 시간에 쫒기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지리산, 황매산에 올라야 하고, 빨치산토벌전시관, 내원사, 법계사, 대원사, 단속사지, 남명조식유적지, 정여창 고택, 삼둘이네 집, 그리고 거연정, 농월정 등등.
그러나 여행은 아쉬워야 제 맛인걸.. 다음에 다시 와야지................
누구랑 언제? 묻지마!
마음이 편해지는 '시'를 읽고.
임인숙
가을엔 시와 함께
인생은?
자신의 나이와 세월이 지나가는 속도가 비례하다는 말이 있다.
요즘 들어 부쩍 과속의 위험이 있는 속도에 현기증을 일으키려한다.
가을엔 천천히 시를 음미하면서
지나온 시절을 회상하고픈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마음대로 안 된다.
세월은 달리더라도 우리는 잠깐의 여유를 즐기자.
릴케의 기도시
- 가을 날 -
주여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여름은 너무나 위대 했습니다.
해 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던져 주시고
들판녁에는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
마지막 열매가 무르익도록 하명하여 주시고
~~~중 략~~~~~~~~~~~~~~
~~~~~~~~~~~~~~~~~~~~~
밤을 밝혀 책을 읽으며 긴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러다 불안에 잠기면 가로수 길을 마냥 헤메일 것입니다.
잎이 휘날리는 날에는.
- 그리움이란 -
그리움이란 이런 것.
출렁이는 파도가 집.
그러나 시간 속에 고향은 없는 것.
소망이란 이런 것.
나날의 시각이 영원과 나누는 나지막한 대화.
그리고 산다는 것은 이런 것.
온갖 때 가운데서도 더없이 외로운 순간이
어제 하루를 뚫고 솟아오를 때까지
다른 자매(姉妹)들과는 또 다른 미소를 머금고
영원을 맞아
심담(沈黕) 하고 마는 것.
자신의 집에 고이 간직해 놓은 지난 시절의 읽었던 시집을 읽으면서
추억을 되새겨보자. 하며 각자의 간직해둔 시집을 소개하는 10월이다.
80년대에 예쁘게 만들어진 릴케의 시화집을 보면서 20~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예쁘다고 감탄을 했다.
가슴 속 깊은 곳 내면의 세계를 정리 해 보았다.
모 일간지에 실려 우리에게 날아온 '시가 있는 아침'에 함께한 시.
고등학생 자녀의 '시와 문학' 참고서를 보면서 우리들의 고등학교시절을 회상하고
그 시절엔 누구나 시인이 되었고, 화가가 되었고, 음악가가 되었던 시대.
어른이 되었을 때는 이렇게 살아야지 꿈을 꾸며 앞날을 설계 했던 시절을 떠 올렸다.
가슴속 깊은 곳의 씨앗들이 움틀거려서 주체할 수 없는 황홀감에 빠져 들었다.
시에 곡을 붙여 가요로 알려진 노래를 불러주는 아릿다운 목소리가
한층 더 깊은 추억의 바다로 데리고 갔다.
시와 그림이 함께 하고
시와 음악이 함께 있기에
더욱 감미롭다.
첫댓글 이렇게 모아 놓고 보니 너무 뿌듯합니다. 다들 너무 수고 많으셨구요 . 읽어 보시고 잘못된 부분 있는지 확인 바랍니다. 월요일쯤에 담당 선생님께 연락 할려고요.
제목이 "그 일그러진 상"인데 "그 " 자를 추가 해 주세요. 수고 많으셨지요? 올해엔 더욱 깊이 있는 글들이 많아졌네요.
정말 올해는 좋은 글들이 너무 많네요. 뿌듯합니다. 그런데 회장님 영광독서 토론회 참가기는 실으면 안 될까요? 김훈 작가 만난 것 올 한해 뜻 깊은 경험이어서리~~사진이 실려 탈락 된 듯....ㅠㅠ
아, 그리고 구포 도서관... 좀더 수정했는데 귀찮으시더라도 다시 수정한 것으로 올려 주시면 감사......
영광도서를 남한산성 바로 다음에 넣었는데 괜찮겠죠? 사진은 안 넣어도 되나요? 그리고 구포 도서관 수정한것 올렸어요.
회장님, 감사 ^____________^
어차피 삽화를 넣을 거면 사진을 넣었으면 싶기도 혀고... 용량 많이 차지하여 어렵다하시면 빼도 되고 좋으실대로....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