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미로리는 방고개(방현), 석탄, 종정밭, 조지전(조지동), 천태밭골, 평지마을 등 6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미로의 안쪽에 위치하여 내미로리라 한다.
마을은 동서길이 4㎞, 남북길이 6㎞이며, 도로를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으며, 민간신앙의 발원지인 두타산이 있어 사계절 탐방객과 기도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쉰음산은 넓은 암석산으로 바위에 구멍이 쉰 개가 파여져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동국여지승람>에 '고을사람이 봄, 가을에 제사하며 날씨가 가물면 기우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마을 사람들이 산메기를 하는 장소도 이 쉰음산이다. 그리고 두타산 밑에는 動安居士 李承休가 龍係別業을 시설해 두고 <帝王韻紀>를 저술했다는 천은사가 자리잡고 있다.
골은 늑밭골, 조롱골, 막골, 샛골, 쐬골, 신배나무골, 삼각골, 풍구대골, 흔태골, 느래골, 감달골, 갈골, 뒷골 등이 있고, 고개는 고천리로 넘어가는 떡고개와 동해시 삼화로 넘어가는 저시고개, 버들미기고개(새덕재)가 있으며 쉰음산을 넘어가면 삼척시 하장면이다. 화전을 하던 골은 막골, 조롱골, 늑박골, 샛골 등이다. 방고개에서는 예전에 기와를 구웠다고 한다.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계곡은 절골인데 두타산에서 발원하며 제일 큰 골이다. 이밖에 갈골에는 솔미산이 있고, 산메기를 하러 다니는 산은 쉰음산이며 천제를 지내는 천제당은 종현동 어귀의 천제봉에 있다.
마을에는 영월 신씨가 가장 먼저 들어와서 늑밭골에 터를 잡았다고 하며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 골짜기는 신씨들의 집성촌이었다. 다음은 수원 백씨, 밀양박씨 등이 들어오고 이후에 각성바지들이 들어왔는데 현재 백씨가 10여집, 박씨 15집, 삼척김씨가 15집 정도 살고 있어 아직도 각성바지 중에서는 가구 수가 많은 편이다.
각성바지들은 주로 화전을 바라보고 들어왔으며 그 외에 숯도 굽고 산나물, 약초 등을 채취하며 살았다. 들어온 사람들은 주로 미로면 사람들이었고 멀어야 강릉, 삼척 등 근방 사람들이었다.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산을 찾아 들어 온 것이며 땅을 사서 들어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정 때와 난이 일어났을 때 많이 들어왔으며, 요즘은 물이 좋다고 살러 들어오는 있다.
마을에는 1982년에는 130여 가구에 756명이 살다가 현재는 107가구에 500여명이 살고 있다. 자연마을 가구 수를 보면 1반인 종정밭에 20여집, 2, 3반인 평지마을에 40여집, 4반인 천태밭골에 12집, 5반인 방고개에 17집, 6반인 석탄동에 13집, 7반인 조지전에 14집 등이 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전부 농사를 짓고 산다.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더 많으며 전체 농경지의 70% 정도가 모두 밭이다. 밭에는 주로 보리와 콩을 심고 있는데, 밭보리는 마을의 주요 소득원으로 올해도 농협에 삼천 가마니 이상 수매를 했고, 다음이 콩에서 들어오는 수입이 많다. 그외 고추, 마늘 등 온갖 게 다 잘된다. 하지만 벼는 자급자족하는 정도이고, 올해는 서숙 농사도 잘 안되었다. 소는 많이 먹이다가 소 값이 떨어지면서 급격하게 줄었는데 50-60평정도의 축사를 가진 집이 대여섯집 정도이고 나머지는 집집마다 한두마리 정도이다. 축사를 가진 사람은 각각 15마리, 20마리, 30마리, 40마리 정도씩 먹인다. 산에서 나오는 소득은 산채(고사리, 두릅, 나물추 등)와, 약초(쥐치, 삽추, 시호, 봉양 등) 등이 있으나 주요 소득원은 아니다.
예전에는 화전에 콩, 팥, 서숙 등을 주로 심었고 주식은 서숙으로 여기에다 콩과 팥 등을 삶아서 섞어 먹었다. 강냉이밥은 먹지 않았고 주로 서숙밥을 먹고 생활했으며 평지에 땅을 가진 사람은 보리를 심어 보리밥을 먹기도 했다. 농경지는 한 집에 보통 천평이나 이천평 정도이고 많아야 오천평 정도 된다. 마을에 절이 있지만 절 땅은 별로 없다.
시장은 예전에 싸근달재와 햇골재를 넘어 옹구점을 지나 북평장을 다녔는데 여기서 한 20리 정도 된다. 새벽에 날이 새면서 출발하면 아침에 도착했으며 한 서너시간 정도 걸렸다. 장에는 주로 콩, 팥 등의 곡식과 장작을 내다 팔고 쌀을 사왔다.
마을제의는 서낭고사, 천제, 산신제, 농사풍년제(정월대보름, 오곡밥) 등이 있고 특히 서낭고사는 음력 오월 단오와, 12월 택일로 1년에 두 번을 지낸다. 마을의 서낭당 자연마을 마다 있어 모두 6군데이고 특히 평지마을 서낭당 안에는 철마가 8기 있는데 함부로 만질 수 없다고 한다. 천제는 천제봉에서 10년이나 20년 간격으로 거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정축년에 천제를 지냈다. 현재 가장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는 것은 산메기로서, 해마다 3월에 날을 받아 쉰음산에서 행한다. 전에는 마을 주민들이 모두 동참했으나 지금은 40-50 집이 행하고 있다. 그리고 미로면 전체에서 행하는 단오굿도 함께 전승하고 있다.
마을에 교회가 생긴지는 12-13년 정도 되었고, 절이 있지만 교회나 절에 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절에 두 명 정도 다니고, 교회에 서너 명이 다니지만 모두 여자들 혼자 사는 사람들이며,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산에 다닌다. 천은사는 정해년에 화재가 나서 그 터에 다시 이룩했으며 당시 부처는 업어서 삼척 향교에다 임시로 모셔두었다가 다시 가져왔다.
마을에서는 지금도 상여가 나가며 16명 정도가 상여를 맨다.
마을에는 30년 전에 세운 두타초등학교가 있었는데 작년에 폐교되고 학생 세 명은 미로초등학교로 갔다.
마을은 이장, 반장 7명, 개발위원이 각 반에 두 명씩 14명,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장, 노인회장 등이 있어 마을의 모든 일을 맡아서 처리한다. 마을에는 백평 정도의 땅을 사서 건물을 짓고 마을회관과 노인회관을 겸해서 쓰고 있는 원래 동사가 있던 자리에 지었으며 한 20년 정도 되었다. 마을 기금은 이월 영등 때나 정월 대보름에 집집마다 풍물을 치고 다니면서 지신을 밟아주고 쌀을 걷어서 마련한 것이다.
5. 산메기
① 산메기 개관
산메기는 문자 그대로 산에게 무엇인가를 먹이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산을 대접하는 의례인 것이다. 지금의 산메기는 조상을 대접하고 자손의 발복을 기원하려는 신앙이 지배적으로 산신과 삼신, 그리고 조상이 복합되어 있는 형태이다.
삼척의 산메기는 자연마을 단위의 동족(또는 문중)을 집단으로 해서 무당이나 경을 읽는 복자 등 전문가를 데리고 가서 행하는 것이 보편적인 형태이다. 그리고 이렇게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삼척의 산메기는 단순한 신앙의례만이 아니라 봄에 마을이나 집안 사람들이 모여 함께 조상에게 예를 올린 후 봄나들이도 하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즉 신앙의례이자 축제적 성격이 있는 것이다.
굿이나 독경의례로 행해지는 산메기는 보통 부정치기, 먼산맞이, 조상맞이, 삼신맞이, 쇠산맞이(군웅), 말명, 뒷전 등으로 행해진다. 예전에는 산에서 큰 굿판을 벌여 진행하던 것이 보편적이었으나 지금은 굿으로 행하는 의례가 점점 소멸되고 무당 한사람이 빌어주는 것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한 집안이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문중신앙, 개인신앙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한 마을에서 각성바지들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행하는 지연중심의 마을신앙 형태를 띠기도 한다. 특히 내미로지역이 이러한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내미로에서는 해마다 음력 3월, 4월에 날을 받아 쉰음산에서 무당을 동원하여 산신, 조상 등에다 빌고 난 후에 하루종일 장구 치고 춤을 추며 먹고 노는 화전놀이를 겸하고 있다.
이렇게 삼척지역의 산메기는 자연마을 단위 혈연중심의 씨족들이 봄날에 자신들이 정해놓은 산을 찾아서 굿판을 벌여 신을 대접하고 화전놀이도 겸하는 신앙의례이자 축제라고 할 수 있다.
② 내미로리 산메기
내미로리 산메기는 주로 봄에 날을 받아 쉰음산으로 간다. 보통 삼월 초순에 날을 받거나 삼짇날 가는데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같은 장소로 가기 때문에 하루에 모두 끝내지 못하고 며칠씩 걸리기도 했다. 예전에는 보통 하루 40여집이 함께 올라갔다. 요즘은 백씨네, 박씨네 등 집성끼리 종손의 생기를 맞춰 날을 받으면 같이 가는데 이때 각성바지들도 함께 가는 수도 있다.
마을사람들이 산메기를 하는 장소는 모두 쉰음정이다.
산메기는 집안 식구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으며, 무당이나 복제 등 전문가를 불러다가 굿으로 진행한다.
무당은 전날 들어와서 마을 대표로 날을 받은 집을 찾아가 거기서 잔다. 그리고 늙은 무녀나 나이가 너무 많아 빨리 걸을 수 없는 사람들은 하루 전에 산을 올라 바위 밑에서 잔다. 무당은 아침에 그 집안에서 굿을 한 석하고 출발하는데 산을 오르는 시간은 이른 아침 날이 새기 전인 새벽 3-4시 경이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오는 시간은 오후 5시 무렵이지만 사람들이 많으면 더 저물어서 내려온다.
의례의 순서는 날 받은 집의 가신들을 앞에서 산메기 가자고 고하는 굿을 한 석하고 산을 오르다가 도중에 은사나무절 근처에서 부정굿을 한다. 부정굿 제물은 마을 대표로 날을 받은 집이 차린다. 산에 도착하면 먼저 산신굿을 하고 이어서 조상굿을 하는데 집집마다 그 자리에 가서 조상을 빌어준다. 삼신당에서 자식 잘되기를 빌고, 용소에서 물이 가물지 않고 농사가 잘되기를 빈다. 그리고 삼베를 갈라 조상 옷을 해 입히고 소지도 올린 다음에 뒷전으로 마무리 한다.
산메기 터에는 아주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서있고, 그 앞으로 넙적 넙적한 돌을 깔아 제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곳에다 제물을 차린다. 제물은 옆으로 길게 놓되 날을 받은 집(종손집) 제물이 제일 가운데인 한복판으로 가고 그곳을 중심으로 서열에 따라 양옆으로 길게 놓는다. 굿 할 때도 날 받은 집 앞에다 자리를 깔고 거기서 굿을 한다.
제물은 보통 목구(목기)접시에 담고, 떡은 코리나 나무로 깎은 소래에 담는데 떡은 시루떡과 산메기떡인 죔떡(동돌개비라고도 한다)을 한다. 메는 쌀을 가지고 올라가 생우메를 지었는데 조상메와 삼신메 등을 짓었으며 메에는 조상 수대로 수저를 꽂는다. 그외 주과포와 육고기, 나물 등을 올린다.
보통 산신은 그냥 빌기만 하고 제일 큰 대목은 조상으로, 산메기 자체를 '조상님 화전놀이 시킨다'고도 한다. 삼신당에는 삼신메 한 그릇만 가져가고 실과 종이를 돌에 매어놓는다. 실과 종이는 산신에도 맨다.
산신은 태백산, 쉰음산, 두타산 산신등을 모시며, 조상굿은 의례에서 가장 큰 대목이다. 소지를 올릴 때는 집안의 소를 위해 우마 대마 소지도 올린다.
산메기의 삼베 가르는 방식은 아주 독특한데 보통은 세로로 길게 잘라 길을 가른다고 하지만 이곳에서는 조상옷을 한다고 하여 가로로 자른다. 가로로 한뼘씩 간격을 두고 지그재그로 가르는데 삼베 한 마만 잘라도 아주 길게 되며 이것을 들고 춤을 추다가 양쪽에 돌을 묶어 소나무에 던진다.
산메기는 조상 화전놀이도 시키고 산 사람도 잘되라고 하는 것이다.
단골 무당은 예전에 고천에 살던 정무당이었는데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삼척에서 데려온다. 단골 무당한테는 봄에 보리를 한 말을 주고 가을에 서숙 한 말을 준다. 마을에서 산메기를 한 집은 모두 내놓는다.
6. 천제
천제는 종현동 어귀에 자리잡고 있는 천제봉에서, 보통 10년에 한 번씩 봄에 날을 받아 지내는데, 산 소를 끌고 올라가 그 자리에서 잡아 제물로 바친다.
최근에 천제를 지낸 것이 정축년 삼월 초하루였다. 마을에 소가 자주 탈이 나고 사람도 탈이 많아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냈으며 산 소를 천제봉에 끌고 올라가 잡아서 제당 주변으로 나무에다 쟁기(각 부위별로 자른 것을 쟁기라 한다)를 걸어놓고 지냈다. 서낭고사는 자연마을 단위로 지내고, 이 천제는 내미로 전체가 모여서 동제로 지낸다.
제의 순서는 먼저 천제를 지내기로 결정이 되면 택일을 한다. 주로 봄에 지내게 되는데 택일은 마을 사람 중에서 풍수에 능한 사람이 있어 택일도 함께 봐주었다고 한다. 지금은 허덕규(남, 무진생)씨가 마을의 택일관이고 예전에는 박종호, 박중현씨 등이 택일관을 했었다.
천제의 날은 마을 책임자가 받아온다. 날을 받아오면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여 마을회의를 하고 여기에서 삼헌관을 선정한다. 요즘은 보통 이장이 초헌을 맡고 나머지 아헌 종헌을 선정한다. 제관이 선정되면 초헌은 제주부터 봉해야 하는데 제주는 천제당 근처 산등성이에다 구덩이를 파서 단지를 묻고 봉했으며, 물도 산에 있는 물을 써야하기 때문에 품다리 물을 떠다가 봉했다. 제주는 쌀 한 되 정도로 담근다. 그리고 마을 이장은 가까운 우시장이나 마을을 찾아가 제물로 바칠 소를 사온다. 소는 좀 깨끗한 것으로 사는데 값이 싸면 큰 소를 사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6-7개월 된 송아지를 사오기도 한다. 우시장은 가장 가까운 장날에 맞추어서 가며 이곳에는 주로 북평장(3, 8일장)을 갔다. 제물로 사 가지고 온 소는 마을 사람들 중에 마굿간이 너른 집에서 제사 때까지 먹인다. 보통 부정하지 않은 사람에게 맡기는데 맡길 때는 받는 사람 쪽에서 '안 먹인다' 소리를 안한다. 금줄은 하루 먼저 제주를 봉할 때 풀도 베고 금줄을 친다.
천제당에는 여자들이나 아이들, 부정한 사람은 못가고 깨끗한 마을 남자 어른들은 모두 갈 수 있다. 보통 오후 3시경에 올라가서 불도 피우고 칡도 끊어 놓는다. 그리고는 소를 잡는데 천제당 아래에 소 잡는 터가 있다. 소는 도끼로 때려서 잡으며, 잡은 소는 부위별로 잘라서 칡에다 꿰어 제당 주변으로 빙 둘러가며 나무에다 건다. 부위별로 하나 하나 떼는 것을 '쟁기뗀다'고 하고 이렇게 거는 것을 '쟁기 건다'고 한다. 소피는 쓰지 않는다. 제관들은 쟁기를 건 다음에 쌀 두서너홉으로 각자 생우메를 짓는다. 보통 밤 11시 반정도에 짓기 시작하며 메를 지을 때는 절대로 뚜껑을 열어보지 않는다. 그리고 과일, 포, 제주 등을 준비한다.
천제는 삼헌관을 중심으로 지내는데 제관들은 도포를 입고 유건을 쓴다. 의례는 다른 동제와 비슷하며 축을 읽고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신이 잘 받았는지 먼저 한 장을 올린 다음에 마을이 잘되게 해달라고 동네소지를 올리고 그 다음에 박씨, 김씨, 최씨 등 마을에 사는 성바지들을 춰서 올린다. 소지를 올리고 순서가 모두 끝나면 제관들과 함께 음복을 하고 산에서 내려온다. 예전에는 천제를 지낸 다음에 소고기를 마을 호당별로 봉지를 싸서 돌렸다고 하는데 요즘은 날이 새면 회관이나(예전에는 공회당) 학교 등에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함께 음복하고 고기도 그 자리에서 나누어 먹는다. 음식 준비는 제관들이 한다.
천제는 보통 10년에 한 번씩 지내는데 마을에 피해가 많거나 하면 '천제를 지낸 지 오래되어 그렇다'고 보고 날을 받아서 지내게 된다. 예전에는 소를 산에다 풀어 놓고 키울 때 산에서 구르기도 하고 새끼를 낳다가 잘못되기도 했으며, 사람은 약을 먹고 죽거나 멀쩡이 넘어져서도 죽고 하는 피해가 있었다. 마을에 호환은 없었다. 천제에서 모시는 신은 '천지지신'이다.
내미로리 공동으로 지내는 천제는 비용도 전체에서 호당 거출하여 충당한다. 가끔 마을 돈이 있으면 그것을 쓰기도 하며 제의의 결산은 만동회의(6월 20일, 12월 20일 일년에 두 번)에서 결산한다.
지난번 천제에서는 마을 사람들 이름을 모두 새겨 넣은 비석을 만들어서 천제당에 세웠다. 현재 박중현씨가 축도 읽고 옛날 축을 보관하고 있다.
7. 미로단오굿
미로지역에서 행하는 단오굿은 농촌지역에 드물게 남아 있는 마을굿이다. 해마다 단오 때가 되면 마을 수호신인 서낭을 모시고 밤낮으로 사나흘씩 굿을 하여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한다. 요즘은 마을의 경제적인 사정으로 단오날 하루 굿으로 끝나지만 예전의 열두거리를 그대로 행하기 때문에 무당은 전날 마을에 들어가 준비를 해가지고 단오날 새벽 6시부터 밤 10까지 계속 진행한다.
굿당은 여서낭당에 꾸미고, 원당에 가서 할아버지 서낭을 모시고 와 진행한다.(서낭당은 미로면 소재지인 하거노리에 위치하고 있다.)
인근 지역인 강릉 단오굿과의 차이점은 집집마다 집에서 상을 차려와 굿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지금은 극히 몇집만 차려오기 때문에 마을에서 공동으로 제물을 준비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각자 집에서 차려 온 상을 놓고 굿을 했다고 한다.
미로 단오굿은 미로면 사람들이 대부분 동참하게 되는데 이날 단오굿당 주변에는 그네뛰기. 밤윷놀이, 줄다리기, 씨름, 널뛰기 등이 행해진다.
8. 전망
내미로 마을의 산메기는 산에서 행하는 마을축제로서, 산간지역의 독특한 민간신앙이자 놀이로서 큰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굿으로 진행하던 원래의 모습이 점차 여러 가지 이유로 축소되거나 소멸되고 있어 보존의 필요성이 느낀다. 산에서 산 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는 천제도 이 지역만의 독특한 민간신앙이고,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없는 농촌의 마을굿도 이곳에서는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급격하게 변화는 농촌의 사회현실을 감안한다면 이곳에서도 머지않아 전승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내미로리는 전형적인 산골마을로서 주변의 어느 마을보다도 풍성하고 다양한 민속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특히 봄날에 벌이는 산메기와 천제를 하나로 엮어서(가령 천제는 삼월 초하룻날 지내고 산메기는 삼월 삼짇날 전후로 행한다고 했으니 음력 삼월 초하루부터 삼짇날까지 연결하여 하나의 축제로 만들 수 있다.) 산에서 벌이는 마을 축제로 만들 수 있다면 훌륭한 문화상품이 될 수 있울 것이다. 사라진 민속을 다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전승되던 그대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보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