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일
핸드폰 작은 가방을 어깨에 매고 다니는 희정이.
첫 날, 핸드폰을 십 분마다 확인하느라 잘 놀지 못한다. 그리고 20분 마다 전화를 한다.
“엄마, 나 더 놀아도 돼?”
이모가 핸드폰을 가방에 넣어두자고 이야기해보지만 단호하다.
일주일 쯤 지나니, 전화를 한 번 정도만 한다. 핸드폰 가방도 이모에게 맡겼다. 그래도 의심스러운 눈이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다. 아이들이 가고 나서 남아있는 핸드폰 가방. 희정이 거다. 희정이가 핸드폰 잃어버리고 간 거다. 핸드폰을 보고 이모들이 크게 웃었다. 다음 날 아침, 도서관 선생님이 희정이에게 핸드폰을 전해주셨다.
4월 30일
모래 놀이를 하던 은우가 정희에게 모래를 던져 눈에 들어갔다. 정희가 울며 놀이터 이모에게 왔다. 이모가 정희 눈을 살핀다. 울음이 그치자 정희와 은우가 붙었다.
모래를 뿌린 은우는 사과할 기색이 없다.
놀이터 이모는 아이들의 잘 싸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불명확한 말을 정확하게 옮겨주고, 다툼을 부르는 말만 조금 바꿔서 확인해준다. 싸울 때, 힘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 너가 나를 보고 방구자식이라고 놀렸잖아!”
“ 내가 언제!”
“ 어제 밥 먹을 때!”
그제야 정희는 은우가 모래를 뿌린 이유를 이해한다. 씩씩거리긴 하지만 벌써 화의 ‘김’은 빠졌다. 그제야 은우는 정희의 붉은 눈이 마음이 쓰인다. 가는 척하며 정희만 듣게 살짝 말한다.
“‘미안해.”
6월 12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놀이터는 하늘이 마당이다’는 멋진 말에서 이름을 땄듯이 우리 놀이터는 울타리를 두지 말자고 했다. 하늘에 어디 울타리가 있는가! 그래서 동아리 회원이 아니라도 오가는 아이들 누구나 하늘마당에서 놀 수 있다. 나가면 노는 아이들이 있고, 필요할 때 도와주는 이모들이 있는 안전한 마을놀이터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놀이터에 처음 오면 긴줄로 ‘꼬마야, 꼬마야’를 가장 많이 한다. 그래서인지 길가다 나를 보면 ‘꼬마야꼬마야 선생님이다’고 한다. 그 말이 참 좋다.
“엄마도 이렇게 놀았어?”
하늘마당은 상계동 주공12단지아파트 ‘햇빛놀이터’에서 수요일, 금요일 2시에 열린다. 이 놀이터는 길목이다 보니 오가다가 구경도 하고, 함께 놀이에 끼기도 한다. 덕분에 시간이 가면서 놀이터가 조금씩 풍성해져 간다. 처음에는 놀이가 긴줄넘기, 팔자놀이, 구슬치기정도였다. “나 어렸을 때 땅따먹기 하느라 해지는 줄 몰랐는데!” 그 엄마는 놀이터 아이들한테 땅따먹기를 가르쳐 줬다. 어떤 엄마는 집에서 자주 한다는 ‘왕놀이’란 가위바위보 놀이도 알려줬다. 아빠도 동참했다. 구슬로 노는 방법도 구슬치기만 있는게 아니고 ‘홀짝’이 있고, ‘일이삼’이 있단다. 아이들은 신기해 한다. 만날 잔소리만 하던 엄마가 동심에 젖어 놀아주는 모습을 보며 아이 마음이 확 열리는 게 보인다.
마음이 열리는 해방구 놀이터
놀이터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다툼을 중재하는 일이다. 아이들은 이모 눈에는 별일도 아닌 걸로 싸운다. 양보하면 될 걸로 끝내 고집을 부려 싸움은 끝이 나지 않는다. 처음 오거나 놀이터에 온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은 싸움이 더 잦다. 엄마로서 아이들 다툼을 보는 것은 참 불편하다. 그래서 다툼을 잦은 아이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버리거나 다음부터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모들도 싸움은 싫다.
‘그런데 왜 싸울까?’
놀이터 평화가 깨지는 경우는 대개 졌다고 화내고, 안된다고 짜증내고, 죽었다고 삐치고, 안 죽었다고 우기고, 이기겠다고 규칙을 어기는 경우이다. 그런데 놀다보면 졌다가 이기고, 안됐다가 되고, 죽었다 산다는 것을 안다. 지고, 안되고, 죽는게 별거 아니라는 걸, 다음에 잘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미숙함과 실패와 어려움을 이겨내고 용감해지고 단단해지는 마음이 생긴다.
놀이터는 모든 감정이 열리는 해방구이다. 온갖 상황이 다 벌어지고 온갖 감정이 다 표현된다. 대개 엄마들은 놀이터에서 흠뻑 놀아 ‘즐겁기만’을 바란다. 그러나 이모들은 놀이터를 지켜보며 알게 되었다. 행복감만 주려는 것은 온실 속 화초 키우 듯 양분, 햇빛, 물만 주어 키운다는 뜻임을. 슬픔, 화, 미움, 질투, 좌절 따위도 잘 다독이면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힘이 된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상대방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 이해는 배려의 밑거름이 된다.
이모들은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우리가 '행복스트레스'에 빠진 것을. 그래서 우리아이가 흠뻑 즐거움에 빠져 놀기만 바라지 않고 어떻게 건강하게 자기를 표출하게 할 지 지켜보고 방법을 찾아 보기로...놀이터에서 아이들도 커가고 이모도 커가는 이 모든 과정은 2013년 6월 현재 진행형이다
6월 14일
단오다. 장명루를 잘 만드는 이모가 있었다. 이모가 장명루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꼼꼼하게 30분 이상 앉아서 집중해야 제대로 된다. 또 누군가 잡아주어야만 할 수 있다. 모두 하려고만 하고, 잡아주는 건 안하려 한다. 둘씩 짝지어 교대로 하자 했지만 하는 아이는 별로 없다. 하다가도 금방 싫증을 내고 가버리기도 한다.
명환이는 잡아주기 싫어 자기도 안 한단다. 이모가 즉석 이야기를 해주었다.
“옛날 옛날에...”
김서방과 이서방이 호랑이한테 잡혀갔는데, 장명루가 있는 김서방만 살아난 이야기. 오래 살라는 장명루의 ‘효험’을 들은 아이들이 슬그머니 장명루를 붙잡는다. 명환이는 해보다 안 되니, 다른 아이들 것을 잡는 일을 선택한다. 양 손과 두 발을 다 써서 아이들 넷의 실을 잡아준다. 고마웠는지, 장명루를 하나 더 만든 은주가 명환이에게 하나 준다.
영우는 하나 만들고 이모한테 실을 더 달란다. 이유를 물으니,
“엄마 드릴 거예요. 엄마 오래 살라고.”
영우는 그 날 두 시간 내내 장명루를 만들었다. 다 만들고 난 영우의 표정은, ‘득의만만’. 바로 그거였다.
7월 12일
“나 오늘부터 매일 논다!”
윤정이가 친구들에게 자랑한다. 윤정이는 월, 수, 금은 학원이 있어서 놀이터에는 목요일만 왔다.
“학원은 어떡하고?”
엄마와 약속을 일주일 동안 지키면, 학원을 빼고 와글와글 놀이터에서 놀기로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약속을 모두 지킨지 일주일.
약속은, ‘숙제 엄마 오기 전에 다하기’, ‘핑구 똥 엄마 말 하기 전에 치우기’였단다.
윤정이 뿐 아니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 정도만 나오던 아이들이 학원을 조정하고 놀이터를 나온다. 이모는 또 하나를 깨닫는다. 마음껏 논 아이들은 뭐라도 한다.
9월 16일
“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나요?”
“ 애들 관리가 좀 허술한 것 아닌가요?”
처음에 와글놀이터 이모들에게 항의하던 엄마들이 몇 분 계셨다. 영우 엄마도 그랬다.
7월이 되자, 하루 놀이터 이모들이 생겼다. 하루 놀이터 이모는 매주 나오지는 못해도 시간이 있을 때, 하루라도 나와서 같이 노는 이모다.
영우 엄마는 월차만 되면, 하루 놀이터 이모로 오신다. 그 날이면, 영우가 입이 함지박만하게 찢어진다. 영우는 더 열심히 놀고, 더 너그럽다. 영우 엄마가 긴줄을 돌린다. 아이들이 몰려들자, 영우는 슬며시 양보한다.
놀이터가 끝나고, 영우엄마와 영우가 집으로 향한다.
일하느라 늘 바쁜 엄마. 숙제도 못 봐주는 엄마. 하지만, 영우 엄마는 오늘 점수를 제대로 땄나보다. 2학년이 되고 나서 웬만하면 손을 잡지 않던 영우, 오늘은 슬그머니 엄마 손을 잡는다.
7월 29일
돌을 들고 다니며 친구를 위협하던 윤호, 놀지 않고 주변만을 배회하던 민식이, 놀이를 하다가 지기만 하면 소리를 질러대고, 친구를 밀치던 지환이, 싸우러 왔는지, 놀러 왔는지 알 수 없던 경호, 내내 조용히 모래 놀이만 하던 윤희와 이모에게만 붙어서 놀아달라던 정은이...
어느 샌가 이 아이들이 안 왔나 싶어서 찾아본다.
“진놀이하자!‘
엄지 손가락을 내미는 아이가 경호고, 제일 먼저 잡는 게 민식이다.
20 여명의 아이들, 자기들끼리 진놀이가 시작된다. 잡혀 넘어진 지한이가 그냥 일어나 다시 노는 것도 놀랍다. 30분이 지나도 아이들의 놀이는 계속된다. 잠깐 실갱이가 있는 모양인지 목청을 돋구며 다툰다. 이모들은 모른 척한다.
“아이씨! 놀 시간 다 가잖아! 그냥 너희들 말이 맞다구 해!”
윤호다. 다툼은 쉽게 평정이 되어버렸다.
윤희가 여기저기 파놓은 터널이 정은이의 터널과 언제부터 연결이 되었을까? 윤희가 파놓은 커다란 웅덩이에 정은이가 물을 퍼와서 붓는다. 물길을 내고, 더 깊고 더 커다란 연못을 만든다. 집을 짓고, 나뭇가지도 꽂는다. 왕국을 다 건설한 두 왕이 마주 보고 웃는다.
둘이 소곤소곤하더니, 윤희가 엄마에게 전화한다.
“엄마, 오늘 정은이네 집에 놀러간다. ”
언제부터 둘이 저렇게 친해졌을까?
학교 교무회의에서 교사들이 이름을 붙여주었다.
‘와글와글 놀이터의 힘’이라고.
와글와글 놀이터 이야기7
10월 18일
오늘은 와글와글 놀이터 야간개장이 있는 날이다.
김밥, 따뜻한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교감선생님이 잘 놀아야 튼튼해진다고 덕담을 해주셨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은 그간 닦은 기량을 마음껏 펼쳤다. 깨끔발이 잘 안되던 경철이가 깨끔발을 하고 뛰어다니고, 한 발 뛰기가 안되던 현서는 나는 듯하다. , 긴줄넘기의 달인이 되어버린 경아...
‘어흥! 안 놀아주면 잡아먹지!’ 는 즉흥 놀이마당이다. 부모들은 배고픈 호랑이가 된다. 고개마다 호랑이들이 진을 치고 소리친다.
“어흥! 안 놀아주면 안 잡아먹지!”
첫째 고개는 시계놀이, 둘째는 해바라기, 셋째 고개는 진놀이, 다섯째 고개는 땅뺏기다.
“아이구, 또 졌네!”
엄마들의 호랑이 연기가 점점 물이 오른다. 고개를 다 넘은 아이들은 엄마, 아빠에게 무사히 돌아가고, 놀이는 대문놀이와 꼬리잡기로 이어진다.
달이 휘영청 떴다. 둥그렇게 하나되는 대동놀이는 역시 달밤에 해야 제맛이다.
11월 31일
아이들이 모여 ‘마음껏 놀이터’에게 편지를 썼다.
‘ 놀고 나면 마음이 시원해져요.’
‘ 마음밥 놀이터야. 방학 때도 하면 안되니?“
‘ 700학년이 되어도 와글와글 놀이터는 계속 할거다.’
‘ 놀이터야, 너 아홉시까지 하면 안되니? 난 아홉시까지 나 혼자 있는데.’
‘ 놀이터야 널 망가뜨리지 않을게. 우리를 놀게 해줘서 고마워.’
‘ 놀이터에서 나는 이학년 박한식 형아랑 친하다.’
보건선생님께도 편지를 썼다.
‘아플 때 치료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다 나았어요.’
운동장 바로 앞 도서관 선생님께도 편지를 썼다.
‘선생님, 도서관 앞에서 시끄러운데 안 혼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책 많이 읽을게요.’
청소를 해주시는 최00 기사님께.
“저희가 화장실 모래로 어질렀는데 치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질러도 야단 안 쳐서 고맙습니다.”
첫댓글 놀이터는 모든 감정이 열리는 해방구다. 온갖 상황이 다 벌어지고 온갖 감정이 다 표현된다. 대개 엄마들은 놀이터에서 흠뻑 놀아 ‘즐겁기만’을 바란다. 그러나 이모들은 놀이터를 지켜보며 알게 되었다. 행복감만 주려는 것은 온실 속 화초 키우 듯 양분, 햇빛, 물만 주어 키운다는 뜻임을. 슬픔, 화, 미움, 질투, 좌절 따위도 잘 다독이면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힘이 된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상대방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 이해는 배려의 밑거름.
이모들은 알게 되었다. 우리가 '행복스트레스'에 빠진 것을. 그래서 우리아이가 흠뻑 즐거움에 빠져 놀기만 바라지 않고 어떻게 건강하게 자기를 표현할 방법을 찾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