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삶과 인식에서 탐색하는 사랑학 -- 윤 옥 시집 『맨발을 녹이리라』 김 송 배 (시인.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1. 평범한 생(生)에서 모색하는 진실 현대시의 발상은 대체로 시인 자신의 생(生)의 체험을 형상화하는 경향을 많이 대할 수가 있는데 이는 그가 응시(凝視)하면서 착목(着目)한 대상 사물이 그의 체험과 결합이 될 때 섬광(閃光)처럼 뇌리(腦裏)에 진동하면서 무엇인가 비장한 메시지를 창출하는 계기가 되고 따라서 거기에 용암으로 흐르는 뜨거운 삶의 애환이나 기원 등이 주제로 승화하는 시법(詩法)을 이해하게 한다. 일찍이 영국의 비평가 리처즈가 말했듯이 평범한 일상생활의 정서생활과 시의 소재나 주제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이러한 생활의 언어적 표현은 시적인 기교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것이 일상과 시의 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의 언지대로 시는 단 하나의 진리이기 때문에 명백한 사실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상(理想)에 대해서 말하는 건전한 심중(心中)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는 시적 진실을 우리는 깊이 새기면서 시와 교감해야 한다. 이와 같은 기본 원리를 감안하면서 윤 옥의 두 번 째 시집 『맨발을 녹이리라』를 일별해 보면 그가 체험한 생의 본질이 무엇이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어떤 것인가를 심도(深度)있게 탐색하는 그의 사유(思惟)의 지향점과 시적 진실의 추적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좋은 시읽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우선 윤 옥 시인은 삶이나 생의 정의를 작품 「느린 것에 대하여」중에서 ‘젖은 풀숲에 달팽이 한 마리 / 머무르듯 느린 걸음으로 길을 가고 있다 / 못 만나고 지나친 사랑을 위해 / 그 뒤를 숲이 천천히 따라가고 / 나도 따라 간다’는 어조와 같이 자연의 섭리(攝理)와 생존의 철리(哲理)를 순응하는 유유자적하면서도 진실이 깊이 내재된 시법을 간과(看過)할 수 없게 하고 있다. 김장을 한다 간간 달착지근하고 고소한 절인배추에 젓갈 소금으로 해마다 같은 손이 하는 김치에도 조금은 짜거나, 대강 맞거나, 정말 맛있거나 고갯짓하며 맞춘 간은 아직도 미지수 그 맛으로 올 겨울을 살아야 한다 그래 그래 너와 나의 만남도 살색과 눈빛처럼 마음도 가지가지 음정 박자 하나도 안 맞는 꼬리달린 생의 리듬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조금씩 간을 맞추어가며 김장독 배추처럼 차곡차곡 무반주로 버무려져서 매운 추위도 가끔은 잊고 살지만 꼭 맞는 간에 남들이 흉내 못내는 풍미를 갖춘 숙성처럼 자꾸만 땡기는 그런 속과 속이 되고 싶다 그대 싱싱한 마음으로 오시라 간을 맞춘 한 세상 함께 익어가리니. --「간 맞추기」 전문 윤 옥 시인은 이처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생성하는 이미지의 중요성을 통해서 창출하는 시적 전개가 난해하지 않게 공간과 연결하는 시법을 익숙하게 다루고 있다. 이는 그가 살아오면서 체득(體得)한 소중한 체험이 숙성하여 분사(噴射)하는 상상이 생산적으로 재생하는 시적 원류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 ‘간 맞추기’를 통해서 ‘그 맛으로 올 겨울을 살아야 한다’는 그의 비장한 삶의 각오를 결론으로 먼저 적시하 것도 이러한 생의 애환이 바로 시적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 현실과 적절한 ‘간’을 맞추면서 살아가야 하는 보편성의 인식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는 그는 ‘음정 박자 하나도 안 맞는 꼬리달린 생의 리듬’으로 현실을 살아가거나 ‘김장독 배추처럼 차곡차곡 무반주로 버무려저서 / 매운 추위도 가끔은 잊고 살지만’ 실재(實在)의 삶과 조화를 위해서 ‘꼭 맞는 간에 / 남들이 흉내 못내는 풍미를 갖춘 숙성처럼 / 자꾸만 땡기는 그런 속과 속이 되고 싶다’는 그의 간절한 기원이 내포되어 있다. 그의 자긍(自矜)과 포용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진흙 탕 물에 뒹굴고 울던 사람도 / 다시 푸른 물을 보면서 / 제 자리에 서게 한다 // 살면서 / 제 울음을 쉽게 그치지 못하는 이들에게 / 바다가 더 넓은 건 /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양재천에서」중에서)’라는 수긍의 어조는 그가 위험천만의 현실적인 삶의 지향점이 인내하고 이해하고 긍정하지 않으면 이 세상의 삶에서 동화(同化)하지 못하는 패자의 부류로 남는 것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삶에 대한 의문은 계속된다. 왜? 인간의 진실과 삶의 진실은 무엇인가를 구명(究明)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나도 사는 동안 / 저렇게 끌고 다녔을 날이 떠 오른다 / 지금은 / 세상이라는 이삿짐 트럭에 실려져 / 다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 단풍 잎 같은 살림살이를 / 줄 세웠다 포개 놨다 / 장난처럼 웃고 울고 살았는데 / 또 다른 자리는 어디쯤일까.(「제자리」중에서)’라는 해법을 아직도 찾고 있다. 2. ‘나’의 재발견으로 탐색하는 인식 현대시에서 ‘나’를 재발견하면서 인식의 범주(範疇)가 다양하게 확대되거나 새로운 각오의 기원 등이 포괄하는 시법은 모든 시인들이 선호하는 지향점이다. 윤 옥 시인도 ‘고개를 든 너를 보는 / 내 앞은 온통 붉은 빛이다 / 너는 이제 한 송이의 꽃이 아니다 / 우주의 한 점을 붉게 물들인 / 또 하나의 작은 화신이다 / 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운 순종 앞에서 / 나는 무서운 질서를 배운다.(「꽃에게서」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그는 한 사물(꽃)에서 배우는 인식의 감도(感度)는 더욱 ‘나’를 향한 또 다른 세계로의 확대를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함의(含意)가 결국 시적인 원류를 형성하는 이미지의 창출이나 투영을 위한 보고(寶庫)가 되기도 하는데 이는 윤 옥 시인이 평소에 사유하거나 지향하려는 인생관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눈여겨 보게 하고 있다. 맨 앞자리에 선이 하나씩 지워져간다 먼 곳을 향해 한 발씩 다가가는 지점에 안 보였던 하늘이 조금씩 열린다 스러져가는 계단이, 긴 생명줄 마디마디가 내 이마위에서 지워진다 어서 그곳에 이르기만을 위해 어디로 가는 건 오늘 하루가 조금씩 접히는 건 기계의 장난질로 여기곤 했지 어디든 가서 나 거기에서도 어제의 나인 줄만 알았었지. --「오늘」 전문 보라. 여기에서 윤 옥 시인의 내면에 잠재(潛在)해 있는 관념(idea)은 어제의 ‘나’가 아닌 ‘오늘’의 ‘나’로서 새로운 관점의 실상을 성찰하고 있다. 그는 ‘먼 곳을 향해 / 한 발씩 다가가는 지점에 / 안 보였던 하늘이 조금씩 열린다’는 현상에서 인식하는 사유의 정점은 ‘오늘’에 와서 교감하는 ‘어제’의 행보를 새롭게 무엇인가 구상하려는 미래지향적인 시적 상황(situation)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가 결론으로 적시한 ‘어디든 가서 / 나 거기에서도 / 어제의 나인 줄만 알았었지’라는 어조로 인식의 척도를 고도(高度)로 더욱 높혀나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작품 「느린 것에 대하여」에서도 ‘못 만나고 지나친 사랑을 위해.. / 그 뒤를 숲이 천천히 따라가고 / 나도 따라서 간다.’는 인식의 감도는 느림의 미학으로 발전하여 인생행로를 다져나가고 있다. 성수동에서 강남으로 가는 샛강 위 가교 불 빛 따라 달리는 버스는 오늘 유난히 덜커덩 거린다 어릴 때 작은 개울에 걸쳐 있던 외나무다리를 발가락을 옴질거리며 건너던 날처럼 ㅡ여기만 지나면 아주 편한 길이 나올 거라고... 외우지 않고도 나를 위로하는 습관이었을까 압구정에 들어서면 날선 얼음쪽 같은 불빛에 찔리우며 긴 그림자로 빠져나와 나무숲이 길을 덮는 골목에서 따뜻한 불빛에 눈을 맞추며 읽다 만 책을 열고 내 맨발을 녹이리라. --「맨발」 전문 윤 옥 시인은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되는 작품 「맨발」에서도 자아를 인식하는 단계에서 ‘작은 개울에 걸쳐 있던 외나무다리를 / 발가락을 옴질거리며 건너던 날’의 ‘어릴 때’ 체험을 상상력으로 재생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위험의 ‘나’는 ‘ㅡ여기만 지나면 / 아주 편한 길이 나올 거라고...’ 자위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적인 정감으로 그의 내면에는 인내의 의지와 극복의 의지로 ‘내 맨 발을 녹이리라.’는 명민(明敏)한 결론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윤 옥 시인은 이밖에도 ‘점 하나 시작인데 잎 되고 꽃이 핀다 / 진작에 듣고서도, 먼 길을 돌아와서 / 오늘사 고 이쁜 사랑 / 알아보는 더딘 눈매.(「꽃대」중에서)’, ‘사람들이 내가 그린 물관을 따라 / 꿈틀거리며 찾아 올 것입니다 / 봄이 오는 길을 / 아직, 나만 알고 있으니까요.(「겨울일기」중에서)’ 그리고 ‘늘 만나고 헤어짐이 서툴러서 / 구름 속과 자갈길을 넘나들며 사는데 / 오늘은 또 / 쬐그만 귀뚜라미 한 마리가 / 나를 타이르고 갔다.(「위로」중에서)’는 등의 어조로 인식의 ‘나’와 시적 진실의 탐색을 위한 그의 상상력이 창조되고 있는 것이다. 3. ‘사랑’에 관한 감응과 생명의 확인 윤 옥 시인에게서 다시 명징(明澄)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감응이다. 그는 자연 심취와 동시에 고향집이나 어머니 그리고 자질구레한 일상의 기억에서 그의 진정한 사랑은 싹트고 있다. 일찍이 박목월 시인은 그의 글 「사랑의 결합에 대하여」중에서 ‘참으로 사랑은 그것을 위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연소시키는 맹목적인 것은 아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주어진 사명을 다하고 우리들의 삶을 보람찬 것으로 이룩하기 위하여 그것(사랑)이 소중할 뿐이다’라는 언지로 사랑에 관한 감을 통해서 생명을 확인하는 중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윤 옥 시인은 이러한 사랑의 원류는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말대로 ‘사랑이란 영혼의 궁극적인 진리’로 절대 긍정하기 위해서 그의 상상력은 무한대로 비상하거나 방황하는 다양한 체험을 교감하고 있는데 그는 작품 「대답」중에서 ‘이 작은 꽃들의 착한 대답에 순진해진 사람들은 오늘도 꽃을 보며 사랑의 시를 쓴다.’는 공감이 확산되고 있다. 또한 그는 작품 「겨울에 쓰는 편지」중에서도 ‘아이는 / 단맛의 사랑을 배우면서 / 세상 것 혼자만 갖고 싶은 욕심에 /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했더랬지’, 그렇다. 윤 옥 시인의 사랑 감응은 더욱 심화(深化)하고 있어서 그가 구현하려는 사랑학은 그의 인생 체험에서 획득한 진실로 승화하고 있다. 만상에 이슬내리는 그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리는 새벽 하늘은 무채색 속살로 내려와 작은 풀잎 목덜미를 간지르며 잠을 깨운다 가득 하여라 억겁을 쏟아낸 사랑남아 하늘은 아직 뿌연 여명인데 땅 끝 어느 산을 넘어 오고 있는 아침은 정영 아름다운 생명을 위한 축복이다. --「새벽에」전문 윤 옥 시인이 절실하게 탐구하는 사랑학은 다시 ‘생명을 위한 축복’의 결론을 장식하는 인간 윤리의 범주를 이탈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랑과 생명의 복합적인 진실로 승화하는 그의 시적 목적이며 진실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생산적인 능동성이라고. 그것은 생명력을 증대하고 소생시키는 것을 뜻하며 그것은 자기를 재생시키고 자기를 증대시키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했다. 윤 옥 시인도 이처럼 ‘사랑=생명’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키면서 이를 위해서 ‘무채색의 속살’과 ‘뿌연 여명’의 ‘새벽에’ 그는 ‘억겁을 쏟아낸 사랑’을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발원지는 ‘어머니’에게서 감전되고 있다. ‘어머니가시고 이십여 년 세상어디에도 없는 어머니가 나와 꼭 닮은 손으로 내 눈에서 제일 가까이 와 있어. 또 내 손등 푸른 핏줄에 당신의 속 살점으로 시작한 삶의 혈류가 지금도 돌아가고 있어, 두 손을 마주잡고 눈을 감는다. 한손은 내 어머니 손이고, 또 한 손은 내손인 것을.... / - 분명 나는 오늘 어머니와 손을 마주 잡고 소꿉질을 하고 있는 것이야.(「소꿉질」중에서)’라는 그의 단정이 그의 사랑이 삶과 생명의 ‘혈류’로 흐르고 있다. 가난한 시인의 글을 읽고 그 옆을 떠나지 못해 불 끼도 없는 화롯가를 빙빙도네 내 어머니의 옹색을 피해 눈길을 돌린 때도 있었는데 오늘은 꽤나 인정스런 내가 되네. 그를 만나면 늘 내게 있는 것 모두 꺼내고, 마음속까지 탈탈 털어내어 대접하지. 그러고 나면 나는 제일 큰일이나 한 것처럼 세상이 다 가벼워지네.- 이제는 남이 되자고 - 다시는 우리 만나지 말자고 혼자서 돌아섰던 내게 그 시인은 이상 스러이 알짱한 정으로 다시 남아 허공을 맴도네 그 가난한 순결이 내 가슴에 맑은 피돌기를 하는 중일까? --「친구」전문 이것이 그가 탐구하려는 사랑의 계보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가나한 시인의 글’과 ‘가난한 순결이’ 상호 보완과 교감을 통해서 그의 사랑 정신을 고양시키는 원동력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시적 상황들이 모두 ‘어머니’라는 대상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속까지 가벼워지는 탈세속의 감성은 바로 시의 위의(威儀)를 더욱 확충하는 어조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윤 옥 시인의 시적 사랑을 정리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현현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과 흡인력을 확대시키고 있다. * 지금도 그건 / 내 눈물이고 사랑이다.(「선 그 조화」중에서) * 어느새 / 사랑이 머문 자리이듯 / 푸를 듯 노랄 듯 꽃눈들이 / 손마디로 잰 듯 줄을 서서 / 반쯤이나 입을 열고 있다(「봄날」중에서) * 나무가 / 하늘 끝에 그 사랑을 전하면 / 눈 붉힌 노을이 따라와 길게 눕는다. (「수목원에 서」중에서) * 아침 이슬방울에 비춰진 / 사랑 이야기에 살짝 취하는 / 한 마리 나비가 된다네(「풀잎전 화」중에서) * 사랑은 그 한 겹으로 녹이기엔 / 너와 나 사이 / 기억의 햇살이 너무 엷어졌다.(「사이」 중에서) * 그래/ 세상이 둥글어서 / 너를 닮아야 하는 사람들은 / 네모난 종이위에 / 동그란 악보를 그리고 / 오--하는 사랑의 화음을 내며 사나보다.(「몽돌」중에서) *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부끄럽던 / 그런 사랑같은 색깔로 물들고 있다(「붉어짐에 대하 여」중에서) 이처럼 윤 옥 시인은 자아를 인식하면서 다시 성찰한 가치관이 새롭게 발현하는 존재의 의미를 형상화하고 있어서 외적인 사물이거나 내적인 관념의 시간성 등이 절대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인간과 시적인 화해를 탐색하는 시적 사랑학이 정립되고 있는 것이다. 4. 자연 섭리와 친화적 교감의 서정성 윤 옥 시인의 시적 서정은 안온하다. 그가 진정으로 염원하는 시적 진실의 향방은 자연 섭리의 순응미학이다. 모든 자연 현상을 친화로써 교감하고 감응한다. 이러한 자연에서 생성하는 평범한 현상도 그에게서는 서정성을 배제하지 못하고 그의 뇌리에서 서성이고 있다. 그는 다시 자연에서도 시간성에 의한 변화의 자연 현상에 민감하다. 사계절이 보여주는 변화의 자연은 ‘긴 겨울을 살고서도 / 떠날 줄을 모르는 / 내 노래는 / 어느 봄날에 넘치는 범람으로 / 풀릴까.(「저녁나절」중에서)’라는 의문의 어조로 그의 내면에서 잔잔한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또한 그는 ‘무섭게 참은 / 어머니의 눈물처럼 / 아주까리 잎으로 / 후두득 비가 내린다--중략--달랠 수 없던 / 어머니의 짙은 속마음이 / 소낙비에 젖고 있다 (「소낙비」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어떤 사물과 시간적인 상황이 그의 서정성의 기반을 조성해주고 있다. 산울림 잠재우던 순백의 꽃이 한낮의 꿈으로 스러지다가 골짜기 찬 그늘 베고 누었다 지친 고요가 계곡으로 스치는 바람결에 제 눈물로 마른 등걸을 적신다 얼만큼을 울어야 저 깊은 땅속에서 봄을 불러낼까 삼월에도 녹지 않는 잔설위에 푸른 잎 빌어다 얹어 놓고 눈물은 꽃이 되었다 할꺼나. --「잔설」전문 여기에서는 시간적으로 겨울을 보내고 ‘삼월’이라는 계절에도 아직 녹지않고 ‘골 짜기 찬 그늘 베고 누’워 있는 ‘순백의 꽃이’ 이러한 서정적 현상으로 현현되고 있 어서 윤 옥 시인이 구사하려는 ‘잔설’의 이미지를 절대적 효과로 간명(簡明)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것이 결론적으로 ‘푸른 잎’과 ‘눈물’과 ‘꽃’이라는 삼중주의 화음으 로 현현하면서 시적 묘미를 살려내고 있다. 처음 시작이 어디 인지 모르는 채 밤낮을 흘러서 강으로 간다 큰 나무가 센 바람을 막아 낼 때 옆에서 그 뒷바람을 다독이고 가는 줄기로 남아있듯이 샛강에는 낮은 모래톱을 간질이는 맑은 물이 흘러 마른 가슴을 적셔주고 너와 내가 강으로 가는 길을 가르켜 준다 그 복종이 하도 투명해서 어린 누이의 새끼손가락인 양 곱고 귀하다. --「샛강을 지나며」전문 이 ‘샛강’에서도 ‘마른 가슴을 적셔주고 / 너와 내가 강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강의 역할이 바로 서정성의 숙성된 시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이 그 에게서는 ‘어린 누이의 새끼손가락인 양 곱고 귀하다.’는 미학적인 감성으로 결론을 정리하고 있어서 그가 탐색하는 자연의 친화가 서정적인 시학으로 전환하는 이미지 를 높이 평가하게 한다. 그 여린 분홍 빛이 이렇게 지지 않는 사랑의 빛으로 되살아 올 줄이야. --「배롱나무아래서」중에서 그래서 아주 먼 곳까지 눈꽃 춤은 이어지고 내일은 햇살이 사랑처럼 따뜻하겠다. --「봄눈」중에서 그렇다. 윤 옥 시인의 시각에서 각인되거나 조응(照應)하는 사물의 모습들은 모 두가 ‘사랑’의 지적인 착목으로 서정성을 흡인하고 있다. ‘지지 않는 사랑의 빛’이나 ‘햇살이 사랑처럼 따뜻하겠다.’는 어조가 그의 진실된 대사물관으로써 시적인 질료 (質料)와 주제의 창출에 많은 효과를 수확하고 있다. 이밖에도 작품 「바다」「봄」「낙숫물」「지도」「설자리」「키 재기」「항아 리」등에서 그의 서정시학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서정시의 범주는 현대에 있어서 사회의 복잡화와 비합리성 등에 대한 시인의 각성이나 시인의 자의식의 과학적인 분석 또는 문화적 열망 등에 대한 정서화한 비평을 포괄하는 시법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윤 옥 시집『맨발을 녹이리라』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윤 옥 시인은 서 정시인이다. 그의 작품「안착」에서 기원한 바와 같이 ‘바람으로 떠밀려 와서 / 비 좁은 틈새에서 / 숨을 가다듬었구나 // 깜박 잠이 든 것 같은데 / 아귀를 튼 새로 목을 내밀고 / 옆구리 성근 벽에 기대서서 / 후....숨을 내 쉰다 // 나도 거기에 기 대서고 싶다.’는 진솔하며서도 순정적인 그의 내면세계를 거울에 비치듯이 아름답게 훤히 드러내놓고 있다. 시는 언어의 예술이다. 우리의 전신 감각기관을 동원해서 사물을 관찰하고 지적 인 사유의 일단을 투영한다고 해도 언어의 조탁(彫琢)이 없으면 그 시는 무미건조 한 상황으로 하락한다. 우리는 이러한 시점을 중시해야 한다. 그러나 호라티우스의 「시론」에서 말했듯이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안되고 우리들의 영혼을 마음대로 이끌어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언지를 명심할 필요가 있으리라. 프랑스의 시인 볼테르도 시는 더욱 위대하고 다감한 영혼의 음악이라고 말한 바 와 같이 우리의 삶과 인식과 사랑과 그 서정의 시법들은 바로 생명과 존재와 영혼 을 연결하는 상관성에서 공감하는 시가 창작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서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 |